5. 우주의 핵과 인생노정
우주의 중심 핵은 부자관계
선생님은 본래 과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종교의 길에 몸을 담게 되었느냐? 문제의 해결점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본주의라든가 소위 물본주의적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으로는 세계를 수습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마음이 없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섭섭해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몸적 인격, 그 다음엔 마음적 인격이 있습니다. 이 두 인격이 합해져서 한 인간으로 완성됩니다. 소위 인간의 존재가치 완성을 위한 근본 해결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문제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평면적 세계는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근원이 되어 있는 배후세계가 얼마나 방대한 세계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이 외적인 세계만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영계, 즉 영적 세계를 취급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을 알려면 영적 세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영계의 중심존재라면 그 중심존재와 통하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의 개인적 기반을 넘고, 가정적 기반, 종족․민족․국가․세계적 기반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중앙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방대한 배후세계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의 해결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청춘시대에 오랜 수도의 길을 통해서 그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 하나님을 붙드는 날에는 놓지 않고 담판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후의 세계를 파악하고, 하나님의 실재성을 파악하고 난 후에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한 끝에 해답을 받았는데, 그것은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냐? 우리 인간은 뭐냐? 거기에 대한 답은 간단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중심의 핵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가 우주의 중심 핵입니다. (137-49)
우주의 축을 이루고 있는 힘은 참사랑의 힘
그러면 이 우주의 핵, 다시 말하면 역사의 흐름과 이 우주의 핵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이 붙들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그 핵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상 하는 그 기점과 그분이 아버지라면 그 자녀가 바라는 기점도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축을 이루고 있는 힘인데, 그 힘은 참사랑의 힘입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학문한 지식을 절대시하고 있지만, 그 지식은 어디로 가느냐? 그 귀결점이 어디냐? 무엇을 축으로 하고, 어떤 방향을 통해서 갈 것이냐? 지식이 제일이라고 하고서 지식을 만유 존재물의 공통분모로 삼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지식은 방향감각을 자극하고 촉구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의 중심이 되는 핵의 작용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식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또 권력과 권세가 그런 힘이 있느냐? 권세의 방향이 우주의 공통분모가 될 수 없습니다.
요즘 황금만능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위 미국의 실용주의자들은 공산주의도 황금의 능력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건 사상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돈이, 황금이 모든 문제 해결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느냐? 없습니다. 정치․경제․문화 어떠한 것도 이 우주 전체의 공통분모로서, 모든 것과 연관지을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세운 그런 공통분모는 뭐냐? 사랑입니다. 이 우주에 사랑의 축이 몇 개냐? 축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축을 중심으로 운동하지 않는 것은 방향감각과 위치감각을 상실해 버립니다. 지구가 도는 데도 누가 설정해주지는 않았지만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생활하는 데도 자신은 모르지만 인생이란 자기 목표의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우주의 크기가 2백10억 광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대한 우주도 그냥 정착해 있지 않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축을 중심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는 연결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세계는 관계로 엮어져 있습니다. 높고 낮은 관계, 넓고 좁은 관계, 전후좌우 관계, 이렇게 세계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연결에서 그 분모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뭐냐? 경제인들은 경제가 제일이라고 하고, 정치인들은 정치가 제일이라고 하고, 사상가들은 사상이 제일이라고 하고, 종교인들은 종교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제일이라고 하는 것이 이 우주가 공인하는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느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분열 혹은 발전하는 데 있어서 공통분모로서 연결될 수 있는 그 기점은 무엇이냐?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물이 공통분모로 설정할 수 있는 하나의 핵이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일반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구(球)를 잘라 보면 자른 면은 평면이지만 360도로 엮어집니다. 그러나 통할 수 있는 중심기준, 공통의 점은 하나입니다. 완전한 구는 그 중심을 통해서 작용합니다. 중심을 통하지 않는 작용 원칙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중심을 통해서 나오는 힘이나 순환운동 또는 동화작용은 인정되지만, 이 중심점을 벗어난 힘은 파괴적 힘으로 나타납니다. 자체 내에 모순, 파괴 요소로 잠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은 천년 전이나 몇억만년 후나 같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절대적입니다. 그 사랑은 시작부터 영원히 그 작용과 힘의 원칙에 있어서 변함이 없습니다. (137-50)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참사랑의 대상자
선생님은 영계의 전문가입니다. 영계의 모든 것이 지상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어디를 초점으로 하고, 어디를 공통분모로 하고 관계가 맺어지느냐?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주의 핵, 우주의 축이 되어서 모든 것이 이것을 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지구는 북극이 있고 남극이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을 하고 이것을 축으로 해서 돕니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중심한 우주의 축이 둘이겠느냐, 하나겠느냐?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이 하나의 축에 닿기만 하면 절대적인 힘의 작용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런 기원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도대체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돈입니까, 지식입니까, 권력입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그것은 다 내가 자유로이 소유할 수 있는 권한 내의 것이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아무리 물리학자가 무엇을 연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서 공식을 세우고 측정을 하고 단위를 만들어서 어떻다고 평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을 창조한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권력도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합니다. 하나님은 돈도 필요없습니다. 황금도 다이아몬드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절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개개인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
사랑은 혼자서는 작용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박사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권력자고, 천하를 장악하고 소유하고 있는 황금의 대왕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가 혼자서는 사랑을 발동 못 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그 절대적인 분이 왜 인간을 지었느냐? 돈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지식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니요, 권력 때문에 지은 것도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인간이라는 상대를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아버지고 인간은 아들딸이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하나의 축입니다. 만약 이 축이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체가 됩니다. 이렇게 일체가 된 관계는 그 무엇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습니다. 저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걸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가 필요합니다. (137-52)
작용을 통하지 않은 힘은 없다
과학자들에게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고 물으면, '뭣으로 돼 있긴? 힘으로 돼 있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간단히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힘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우주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작용을 통하지 않은 힘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기의 힘도 플러스 마이너스의 수수작용을 통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작용이 먼저냐, 힘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할 때 계란이 먼저입니다. 우주의 모든 발전 원칙으로 볼 때,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떻게 하느냐? 주체 대상 개념을 떠나서는 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주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육신은 원소의 종합 구성체인데, 그 원소세계의 작용은 자기 나름의 상대적 원소와 통하는 힘이 있습니다. 상대 여건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작용을 시키려고 해도, 하나님이 명령을 해도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 누가 폭력을 가한다 해도 안 합니다. 상대 여건이 조성돼야 원소끼리 작용합니다.
원소끼리 작용하는 데도 손해나는 자리에서는 절대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작용은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추구합니다. 자꾸 더 좋은 것을 추구합니다. 더 좋은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사랑의 축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가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의 작용하는 모든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됐습니다.
교수나 사업가도 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무엇과 작용하려고 하느냐? 남자끼리, 여자끼리 작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와 관계된 학문이나 사업적인 작용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분야에서 또 다른 평면적이고 또 다른 방향의 작용입니다. 근본적인 핵의 작용은 무엇이냐? 남성은 여성과의 작용을 요구합니다.
근본적으로 남자란 인격과 여자란 인격이 주체 대상의 상대관계를 중심으로 힘의 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가정도 형성됩니다. 애국이란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생활기반이 사랑을 중심으로 엉클어진 것입니다. 성인도 세계의 주체 자리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가 엉클어지게끔 작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전부 다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성인의 생활 기본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원칙에 따라 살았고, 그것을 교육했습니다.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사랑,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공통분모의 작용 원칙이 있는데,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는 유리(遊離)하는 것입니다. 유리하다가 상대를 못 찾으면 깨집니다. 그러나 이 주체 사랑, 핵의 주축 사랑에 연결되면 해체되지 않고 영속합니다. (137-56)
우주의 축의 사랑에 연결돼야
우리 인간에게 만유가 작용하는 사랑의 축에 연결된 기준이 있었다면 사랑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완성된 인간 대 인간,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어 사랑을 중심으로 한 가정이 현현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사랑을 축으로 해서 이루어진 종족․민족․국가․세계가 현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세계가 어찌된 연고로 이렇게 되었느냐?
오늘날 미국에서의 사랑은 일일 사랑입니다. 길을 가다가 만나서 교제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공통분모가 우주에 설정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이 났으니 하나님은 이것을 수리공장을 만들어서 재생하는 일을 역사를 통해서 해나왔습니다. 그 수리공장이 종교입니다. 어떤 종교는 다리를 만들고, 어떤 종교는 팔을 만들고, 어떤 종교는 머리를 만들고, 어떤 종교는 눈을 만들어서 하나의 고장난 인간을 재생시킵니다. 이런 분(分)공장들이 여러 종교입니다. 이것을 확장해서 문화 배경이 다른 분야에서 수습해 올라갑니다. 그렇게 하여 최후에 종합수리공장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복귀를 말합니다. 병난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병이 나기 전의 입장으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본연의 나,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절대 대상자가 되어서 사랑을 축으로 하여 완전히 일체가 될 때는 그 누구도, 하나님 자신도 분립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이상형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부터 온전하게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밑에서부터 올라가서 중앙점에 도달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중앙점까지 찾아가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기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숙해야 중앙에 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축의 사랑이 하나님과 인간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축을 지지하는 축받침의 입장이고, 지상에 있는 인간들, 즉 아들딸은 축을 만드는 입장입니다. 아들딸은 사랑을 통해서 자꾸 크면서 올라가 중앙점으로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상봉한 다음에 내려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의 수직선 사랑권과 평형선 사랑권이 핵을 중심으로 90각도로 합할 수 있는, 이 우주의 공통분모가 되고 핵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을 찾아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해 놓고 인간이 거기까지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자녀로서 성숙함에 따라 우주를 알고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없습니다. (137-57)
이렇게 해서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접촉함으로써 가정권을 이루고, 가정권을 중심으로 우주의 축인 사랑이상권을 이루게 됩니다. 횡적인 사랑은 90각도의 중앙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공통분모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기를 통하게 될 때에는 상하가 연결되고, 전후가 연결되고, 좌우가 연결됩니다. 여기를 떠나서는 상하도 상충이요, 전후도 상충입니다. 작용하면 할수록 혼란과 파탄, 비애의 결과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렇지만 영계와 지상세계가 공통분모인 사랑의 축을 갖다 놓게 될 때는 무한한 힘이 발생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 감화의 힘의 작용이 여기에서 발동합니다. (137-66)
우주는 사랑이상을 가르쳐주는 교재
하나님은 우주를,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이상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대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물질의 구성단위인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작용합니다. 작용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영속,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용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커 가면서 자연을 보고 습득합니다. '곤충세계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달이 비치고 별이 빛나는 가을 밤에 가만히 들어 보면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립니다. 무엇 때문에 곤충들이 그렇게 우느냐? 그것은 상대를 찾아 이상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입니다. 새나 다른 모든 동물들도 슬픈 소리, 기쁜 소리를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하면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따라서 소리를 냅니다. 급은 낮지만, 축에서 먼 거리에 있지만 그 축을 중심으로 평형선을 취하며 돌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성숙해 감에 따라서 '아, 저렇게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인간 사랑이상을 성숙시킬 수 있는 교재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걸 배워 가는 것입니다. 점점점 커 감에 따라 '아하, 옛날에는 동생과 같이, 오빠와 같이 지냈는데 가만 보니까…' 이렇게 감정이 달라집니다. '아, 이렇구나!' 하며 배워 갑니다. 그래서 '너와 나는 죽더라도 안 만나면 안 되겠다. 딴 데 못 간다' 하고 평형선으로 직행하면서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 가서 부딪쳐야 되느냐? 수직선에서 부딪쳐야 됩니다. 수직선에 부딪치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집니다. 이상적 공통분모인 사랑이 우주에 연결됩니다. 이렇게 되면 축은 하나입니다. 축은 둘일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이 축의 사랑을 연결시키지 못해서 고장이 났습니다. 각도가 다름에 따라 비스듬하게 도니 불평하게 되고, 파괴와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어떻게 타락한 인간을 점점점 찾아 들어가서 본연의 축의 자리에 이어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인간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이러한 주체 대상의 사랑의 개념을 가지고 우주의 핵과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모든 경서(經書)를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만 그런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놀라운 선포입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랑의 결합점, 공통분모점, 그리고 신랑 신부가 될 수 있는 공통분모점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여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화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원만한 구형작용은 역사과정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137-59)
인간이 찾아가야 할 인생행로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과 육, 마음과 몸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언제 합하느냐? 혼자 아무리 수양을 하고, 아무리 기도를 하고, 아무리 도통을 해도 완전히 하나되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관이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에도 오관이 있습니다. 이 외적 오관과 영적인 내적 오관이 하나되어 꽉차 폭발할 수 있는 선까지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힘은 오로지 우주의 공통분모 되는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도취경, 이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먹는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잠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세계입니다. 이러한 본연의 가치를 지녀야 할 인간인데, 그 가치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평면적으로라도 보급하고 자극을 받기 위해서 술에 취하려고 합니다. (137-67)
그러므로 사랑에 녹아나면 '저 사람이 저럴 수가! 미쳤지, 미쳤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랑에 녹아난 다음에는 입이 벌어지고, 별의별 모습이 나옵니다. 사랑에 접붙으면 남자 체면을 다 잊고 여자에게 붙들려 삽니다.
그렇게 한번 잡혀서 살고 싶습니까? 선생님은 거기에 붙들려 일생 동안 그렇게 삽니다. 세계 어디에 가도 욕을 먹고,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 어디 가든지 선생님을 맞이하겠다고 밤을 새워 가면서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노?' 하면서 한국에 편지를 해서 전부 조사하여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은 그 방법을 모르니까 한국 출신 부인들을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데려와서 준비하고 야단합니다. 정성을 들여도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면서 정성을 들이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건 왜 그러냐? 밤을 새워 가면서 주고 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한히 주고도 또 주고 싶고, 무한히 받더라도 또 무한히 돌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무한히 주고 무한히 받을 수 있는 사랑에 취해 사는 사람 이상 행복한 사람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행이 뭐냐? 주려야 줄 사람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주려고 해도 못 주니 불행을 느낍니다. 주고 싶을 때 주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여기에 왕래할 수 있는 수수(授受)의 예물이 되는 한, 우주의 모든 불평불만, 모든 원한의 궁지를 격파하고 직행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생명까지 줬으니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사랑에서 생겼으니, 본질적인 사랑 앞에 생명을 희생하며 가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니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고 뼛골이 울리는 심정을 가지고 단에 서야 합니다. 찾아가야 할 미래의 세계, 본연의 세계를 망각한 몰지각한 무리를 앞에 놓고서는 눈물 없이는 단상에 설 수 없습니다. 온 세포가 떨립니다. 그런 죄책감으로 자책하면서 단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르쳐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피를 토하고 눈물이 터져 나오는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망할 줄 알았는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동서남북 온 세상에 괴수라고 소문날 줄 알았는데, 동서남북에서 대문을 다 열어놓고 밤이든 낮이든 들어와 주인이 돼 달라고 합니다. 당신만 있으면 열쇠도 필요없고 모든 것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만 천국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철학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존재는 상대권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 자체를 그렇게 했습니다. 상대를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권한, 소유의 권한을 부여하는 놀라운 그 사랑을 위하면서 주겠다고 하는 이 길이 인생에서 얼마나 행복한 길이냐? 하나님은 그렇게 위하면서 주겠다는 사람에게 천지 우주를 상속해줍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일생의 행로입니다. (137-75)
무한한 인간의 욕망
사랑에 취해서 사는 인생행로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본래 사람은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나의 기원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내가 귀합니다.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고, 우주의 핵에 동참했기 때문에 내가 귀합니다. 타락은 했을망정 그 형은 같습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으로 길리움 받아 우주의 핵과 통할 수 있는 남성 여성으로 성숙하여 결혼을 해서, 사랑에 품겨 사랑하며 살다가 자녀를 낳아 사랑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사랑을 횡적으로 줄 뿐만 아니라 종적으로도 줘야 합니다. 왜 종적으로 줘야 하느냐? 그래야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운동을 합니다. 모든 힘은 원형운동을 해서 중앙을 통해 사방으로 뻗치는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죽고 난 후에는 사랑으로 영생합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주체인 아버지라면, 나는 그분의 절대적인 대상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으로 영생의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적 주체인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의 가치를 지녀야 하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영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권을 차지합니다. 그 자리에 서게 되면 위나 아래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자 나입니다. 하나님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려고 하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사랑의 호주머니는 큽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크냐? 몸은 아주 조그마해도 욕심은 큽니다. 보기에는 조그마하고 지붕에 열려 있는 호박통같이 형편없이 생긴 사람이라 해도 '키가 작으니 욕심이라도 커야지'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마음의 보따리는 세계를 갖다 줘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큰 것이 있으면 그것도 내가 갖겠다고 하고, 더 높은 곳은 내가 가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집어넣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집어넣고도 차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마음 보따리에 집어넣고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비밀까지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비밀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이 사랑까지도 집어넣겠다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것을 딱 점령하고 나서야 '이젠 됐어. 이젠 필요없어' 합니다.
인간은 최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말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아무리 큰 하나님이라 해도 그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되면, 사랑으로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사랑이라는 원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무형세계와 유형세계 전부를, 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그 감옥이 문제가 아닙니다. 수난 가운데, 피 흘리며 쓰러질 수 있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합니다. 그 죽음의 자리를 격파하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모든 핍박, 동족의 핍박, 자연의 핍박, 모든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 너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경지를 느꼈습니다. 타락의 선 너머 본연의 세계 선상에 방대하고 놀라운 우주의 공통분모의 작용, 그 위대한 원칙이 있는데, 그 경계선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인간이니 인생은 고해(苦海)일 수밖에 없습니다. (137-67)
중심 책임자는 축을 모시고 가는 사람
중심 책임자는 고해 가운데 사는 인간을 본연의 세계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 축을 모시고 가야 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세계 운세의 축을 모신 자리에서 나라 백성을 세계 민족으로 이끌어 가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반대를 받고 있지만 축을 모시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감옥에 가나 어디를 가나, 죽을 자리에 가더라도 축을 따라 살고 축을 따라 행동합니다. 책임자, 지도자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러나 돼먹지 못한 사람들이 축이 되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책임자가 되기를 바라는데, 그냥은 안 됩니다. 보다 위할 수 있는, 360도 구형 전체의 각도에 맞아 핵의 자리에 서서 그것을 지탱시킬 수 있는 축의 자리요, 핵심 자리요, 공통분모의 자리에 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책임자에게는 보호의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자는 잘되고 잘못되고, 좋고 나쁘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절박한 시기를 만난 이때에 축을 가진 사나이로서 횡적인 기준에서 여러 사람 앞에 관계성을 확대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점령 못 하고 파탄시키지 못합니다. 그 어떤 힘으로도 파탄시키지 못합니다. 우주력은 이 힘을 옹호하고 보호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파탄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주는 보다 차원 높은 사랑의 주체를 위해서 존속합니다. 또한 우주력은 관계 세계를 맞아 개인에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기준으로 하여 벌려 나갑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축이 되는 중심 앞에 평형적인 입장이 돼야 합니다. 축과 90각도가 되게끔 해서 평형선으로 이 각도를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부도 역시 이 평형선에 맞추어야 되고, 자녀도 이 평형선에 맞추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가정은 그 360도 권내에, 구형 내에 존재하게 되므로 우주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137-73)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교재
가정에서 부모는 종적인 사랑의 축을 온전히 계승해야 됩니다. 그 축에 맞추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부부는 횡적으로 90각도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 가정은 그 질서가 서지 않았습니다. 국가도 그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축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축을 중심으로 보면 가정은 조그마하고, 종족은 조금 더 크고, 민족은 더 크고, 세계는 더 큽니다. 이렇게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확대됩니다. 이 사랑의 축의 중심으로 인연 관계를 사방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이상권이 이루어집니다.
지금 선생님이 하는 것은 세계를 하나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축을 바로잡아 방향을 설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의 왕 자리를 점령해야 하는데, 강제로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소화해서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니 남자는 여자를 위해, 부모는 자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제자들을 그런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뭐냐 하면 가정입니다.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교재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에 있는 할아버지 연령의 사람을 자기 할아버지와 같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자기 부모 연령과 같은 사람을 자기 부모와 같이 사랑하면 어디를 가도 통합니다. 만국 공통입니다. 영계에 가도 경계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만국의 젊은 사람을 자기 아들딸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는 천국 어디든지, 열두 진주문이 있고 방향이 달라도 어디든지 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천국과 인연 맺게 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교과서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축을 나라에 적용하면 애국자가 되고, 세계에 적용하면 성인이 되고, 하늘땅을 중심으로 적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聖子)가 됩니다. '성자'는 '놈 자(者)' 자가 아니고 '아들 자(子)'입니다. 인간은 다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 잊어도 좋지만, 축이 되는 사람과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않으면 인간세계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철학적인 논리도 필요할 것이고, 종교적인 해명도 필요할 것입니다.
철학은 간단합니다. 철학은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놓쳐 버렸습니다. '사람이 제일이다' 하는 인본주의를 세워 놓고 사람도 바로 못 찾고, '물질이 제일이다' 하는 유물주의를 세웠습니다.
종교는 뭐냐 하면 하나님에게 접붙여져서 생활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권을 말합니다. 오늘날 기성 종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생활권을 마련하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 생활권을 개인 생활권으로부터 우주 생활권으로 확대해서 세계 구도의 완성을 표준합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생활하느냐?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이제 재창조를 하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타락 세상이기 때문에 주체는 재창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상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축을 중심으로 가정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세계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이 천도(天道)라는 명제 하에 24시간 시간을 초월해서 작용하고 있으니, 이것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세계를 품고 노래하며 갈 수 있는 인생행로의 성공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3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