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운과 우주의 공법(사랑이야기 - 제 2 권 사랑 원론편 - 제 3장 인간과 우주의 사랑)

무지... | 20180520062720

3. 천운과 우주의 공법
  

 
모든 존재는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물도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각기 어떠한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의 과정을 거쳐 나갑니다. 그 기간은 하루에서 일년, 십년, 혹은 자기 일생 동안에 걸칩니다. 국가를 예로 들면, 국가는 수백 수천년의 역사를 두고 그 하나의 목적인 선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자기들이 존재하기 위한 목적의 기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소년시대․청년시대․장년시대․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소년시대는 청년시대와 다르고, 청년시대는 장년시대와 다르고, 장년시대는 노년시대와 다릅니다. 또한 그 시대 시대를 살아 가는 자신들에게 맞는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년시대에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청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고, 청년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장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장년시대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노년시대를 힘차게 맞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일생에서도 각 시대 시대에 주어진 그 사명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후대, 다시 말하면 앞으로 다가오는 목적기준을 이루는 데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됩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들과 협조하기 위한 분담된 목적으로서 책임을 지는만큼 대한민국 자체의 목적을 완수함과 더불어 세계의 목적과 보조를 맞춰 나가야 됩니다.
복귀섭리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귀섭리역사 가운데에도 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또 하루에도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저녁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은 아침에 해당하는 준비를 갖추어야 되고, 낮은 낮으로서, 저녁은 저녁으로서, 밤은 밤으로서 그 시간권에 분담된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이 땅을 복귀해 나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복귀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를 거쳐 나갑니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의 전체 분야에서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로 갈라지듯이, 오늘날 우리 생애노정에도 이러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소생기에 있는지 장성기에 있는지 완성기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자기 입장을 몰라서는 자기 목적을 위해 준비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할 주체적인 사명을 완결지을 수 없습니다. (24-211)



개체의 목적은 전체의 목적과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은 각자 천품이 다르니만큼 일생을 살아 가는 각자의 목적도 다릅니다. 개인이 가진 성품에 따라 각자가 바라보는 목적기준이 다릅니다. 이렇게 개인은 개체의 목적이 있는데, 그 개체의 목적은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의 목적과 연결되어야만 그 사람이 전체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때나 운세를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개체의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지금까지 교육이나 도덕이 지향해 나오는 표준입니다. 따라서 개체를 위하기보다 전체를 위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자기보다 공적인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공적인 것은 하나가 아닌 전체를 대표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적인 것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라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없고, 전체가 살고 있는 환경 가운데서 자기가 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체가 전체를 중심으로 보조를 맞추어 수직으로 서서 전체 앞에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45도나 60도로 각도가 벌어지면 그 각도의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 공적인 것에 피해를 줍니다.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야 된다' 혹은 '곧게 살아야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보고 '저 나무는 똑바르다' 하는 것은 자기 입장에서 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는 땅과 환경의 그 터전을 보았을 때 90각도로 자라는 나무라야 똑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기가 아닙니다. 공적인 기준, 자연적인 기준은 순리나 천리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러한 원칙에 의해 '바르다' 혹은 '그르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자체 목적보다 전체 목적을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따라서 언제나 전체 목적 앞에 그 방향을 맞춰 나가야 됩니다. (24-212)

 


천운과 방향을 같이할 때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이 일생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목적을 천지의 방향과 평행선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은 기필코 천운과 더불어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부딪치는 날에는 개체의 운은 천운에 깔립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운세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더욱이 우리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운세와 더불어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입장에 있는 천운이나 대한민국에 대하여 평행선을 그어 나가야 할 중간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이 나라면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시대 현상이나 환경에 일치되는 사회생활을 하는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통일교인들은 천운을 중심하고 대한민국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또한 대한민국도 천운을 중심으로 평행선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또한 통일교인들도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평행선에 서서 가야 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천운에 보조를 맞추지 않고 백성만을 위한 길을 간다면 언젠가는 천운과 부딪칩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릇된 것이 깨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국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설령 그 국가의 목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이 역사적인 운세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민족이나 국가는 반드시 후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어떻게 하면 천운과 평행되게 운행할 수 있느냐? 천지의 운세 앞에 대한민국의 법을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세계 정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국가든지 자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이념만을 향하여 나가게 되면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세워 나온 미국 자체의 정책으로 세계의 운세를 좌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운을 중심으로 평행선을 그리는 민족이 되면 그 민족은 기필코 세계적인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됩니다. 그 민족이 가는 방향이 세계의 운세와 영원히 일치되면 그 민족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의 운세나 지구의 운세, 혹은 하늘의 운세 자체가 대우주의 법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도 지구 자체 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계의 한 행성으로서 모든 힘의 균형을 취하여 공전합니다. 만일 그 궤도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우주 파탄의 요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돌기 위해서는 그 궤도를 따라, 언제나 이 우주의 운동법칙에 해당하는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를 취하여 보조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존재합니다. (24-213)

 


천운의 때를 잘 맞춰 나가자
 
그리고 때를 잘 맞춰 나가야 합니다. 때에는 우주적인 때, 세계적인 때, 국가적인 때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 자체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는 종족․가정․개인이 있으니 개인의 때, 가정의 때, 종족의 때, 민족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 인간은 어떤 때에 맞추어야 하느냐? 이 우주의 때를 우리 가정에 맞추어 종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의 때를 대표할 수 있고, 국가의 때, 세계의 때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침에 해가 정상적으로 떠올랐다가 져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떠오를 때까지의 24시간을 24시간으로서 가치 있게 정상적으로 완전히 천운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24시간과 더불어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때입니다.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쪽에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잘 모릅니다. 노을이 지는 것만 보고서는 아침 해가 뜰 때인지 저녁 해가 질 때인지 잘 모릅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아침인지 저녁인지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상대적으로 엇갈리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이 세계의 운세를 두고 볼 때, 운세가 쇠해 가는지 흥해 가는지 모양이 같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것이나 그 이치는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팎입니다. 하나는 안에서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천운은 반드시 목적을 향해 통합운동을 해 나가기 때문에 내외관계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외 그 자체가 같으냐 하면 같지 않습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손과 손이 마주보게 되면 그 모양은 같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반대입니다. 한 손은 오른쪽이요, 다른 한 손은 왼쪽입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것 같지만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오른쪽 왼쪽을 분별해서 어느 것이 앞에 가는 것이고 어느 것이 따라가는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인들이 그런 운세권에 있습니다. 반드시 전후관계를 중심으로 걸어나가게 됩니다. 통일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통일원리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전후관계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즉 상대방과 비슷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때는 혼동을 가져옵니다. 그 환경에서 자칫 잘못 분석하여 내적인 것을 외적인 것으로,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외․전후․좌우․상하관계를 갖추어 운행하여야 합니다. (24-215)

 


우주의 중심은 무엇이냐
 
우주의 중심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절대적인 실체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 절대적인 중심의 요소와 일치되는 내용을 지닌 존재가 그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에 일치되는 요소를 갖추어서, 심정적으로나 사정적으로나 또는 소망적으로 1백 퍼센트 일치되면 그 중심과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그 방향이 있습니다. 세계가 동서남북을 중심으로 도는 방향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사방을 붙들고만 있으면 돌지 못합니다. 움직이는 세계기 때문에 반드시 정면으로 대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려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지금 때는 신앙세계에서도 비상시입니다. 이때는 어느누구나 자기를 주장하고 나옵니다.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 혹은 그 외 어떠한 종교도 자기네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최후에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인간세계를 볼 때에, 지금까지 자기를 주장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주장한 것들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해결지을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최후에 중심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늘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과 같은 정세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은 인간이 아니요, 세계정세를 수습하려는 어떤 정치세력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들은 천운과 보조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전체의 주체는 누가 될 것이냐? 우주의 전체를 움직이는 실체가 있다면 그 실체가 주체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양심이 작용하여 하나의 선의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도, 이 양심작용 전체가 통합해서 전체를 수습하여 '합했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됩니다. 동양 사람은 '그렇다' 하는데 서양 사람은 '아니다' 하면 안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됐다'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데 현재 사람만 그렇다고 해도 안 됩니다. 현재의 사람은 그렇다고 하는데 미래의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안 됩니다. 동서고금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그들의 양심에서 '그것이다!' 하는 소리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원인과 결과의 초점이 됩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의 중심이란 무엇이냐? 원인적인 존재요, 결과적인 존재요, 전후관계․좌우관계․상하관계를 통합한 하나의 집약적인 기준입니다. 그 중심으로 인해서 전후관계도 있고, 좌우관계도 있고, 상하관계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됩니다.
사람은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의 한계권에 있는 인간은 역사의 전체 섭리 앞에, 전체 운세 앞에 전후관계와 좌우관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시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공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역사적인 전후관계와 좌우관계에서, 세계무대에서 동서고금의 하나의 중심 실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또 현시점에서, 현 생활권에서 과거․현재․미래를 능히 움직일 수 있는 능동적인 입장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러한 최후의 결정적인 시점을 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한때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시운을 움직이는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방향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인류에게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위대한 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입니다. (24-220)
 


슬픔과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사람이 사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업에 있다, 혹은 세계적인 학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인생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심정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큰 사업가가 되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세계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망 높은 존재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이 만족할 수 있는 심정적인 안식을 갖기 전에는 불행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죽든가 아내가 죽든가 하면 왜 눈물을 흘리느냐? 좋고 나쁜 것이 무엇이며, 왜 나빠야 하느냐? 그러한 것들은 자기에게서 규정되어 자기에게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런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언제나 피동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은 왜 좋고, 나쁜 것은 왜 나쁘냐? 자기를 중심으로 '좋다' '나쁘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선의 목적에 플러스되면 좋은 것이고, 마이너스되면 나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좋은 길을 찾아가는 데는 혼자서는 못 갑니다. 상응관계를 중심으로 상대적 관계를 맺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데도 혼자서는 못 갑니다. 길을 걸어갈 때에도 두 발이 방향을 달리해서 간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길을 걸을 때에도 두 발이 한 방향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서로 싸우면서 몇 시간만 맞추어서 가면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디서부터 맞추어야 되느냐? 골짜기 밑창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맞추어야 됩니다. 그 골짜기 밑창이 어디냐? 힘든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직선을 그려 나가서 그 선상을 지탱해 갈 수 있으면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가야 할 공통적인 노정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십자가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희비극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왜 슬프냐? 가슴이 아프게 슬플 때도 있는데, 왜 슬프냐? 무슨 힘이 나에게 작용해서 슬프냐? 그것은 생명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우주 대운세, 우주 공법의 작용 때문입니다. 이 공법에 부합되지 못하고 반대되면 제거당합니다. 우주의 힘은 밀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크면 클수록 슬픔을 느낍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슬퍼서 울음이 나옵니다. 왜 그러냐? 우주의 공법 기준에 불합격되어 우주력이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공법에 불합격 기준이 되면 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울음이 나옵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그러한 우주 공법에 일치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 사람은 그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기 때문에 기쁨이 옵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자기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 공법의 중심입니다. (24-222)



우주 존속의 공식

남자가 혼자 살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홀아비가 되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또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라도 과부가 되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 집이 아무리 훌륭하고 뭐 어떻더라도 혼자 있으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왜 불쌍하다고 하느냐? 사랑의 상대를 못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냐? 사랑의 상대는 온 우주가 보호합니다. 사랑의 상대와 완전히 주고받으면 천운과 모든 운이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이 나면 아픕니다. 의사한테 찾아가서 '의사 선생님, 병이 나면 왜 아픕니까?' 하고 물으면, '아프긴 왜 아파? 병이 났으니 아프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근본문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병이 나면 왜 아프냐?
이 우주의 환경권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환경을 주체와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으면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운이 보호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핵을 중심으로 부체(副體)가 있습니다. 그게 우주 존속의 공식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못 쓰게 되니 우주 전체의 힘, 천운이 냅다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사지백체는 전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느 하나가 없어졌다고 하면 천운이 그 불합격자를 몰아냅니다. 우주 공법에 의해 완전히 하나되어 있는 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해당 안 되니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 밀어내는 힘이 아픔으로 나타납니다. 제3의 힘이 밀어내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왜 가슴이 아프고, 왜 통곡을 하느냐? 그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사랑을 중심하고 주체와 대상으로 완전히 주고받을 때는 우주의 보호를 받지만, 하나가 없어지면 원칙에 불합격자가 되니 자체에서 제거하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통곡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할 때, 둘이 하나되면 흥한다고 합니다. 완전한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흥하게 됩니다. 유교의 도리 가운데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가화(家和)'는 왜 '만사성(萬事成)'이냐?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여덟 식구면 여덟 식구가 완전히 하나되어 있으면 균형을 취함으로써 여덟 식구의 운을 보호할 수 있는 천운이 가해지기 때문에 '가화만사성'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을 원하는데, 사랑의 상대가 하나님보다 더 잘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자기의 상대가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도 없습니다. 그건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근본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하나님 자신도 그렇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입니다. 천도지상(天道之常)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갖고 있는 것을 1백 퍼센트만 투입하면 하나님과 같은 것밖에는 안 됩니다. 천만 배 이상 낫기를 바라기 때문에 1백 퍼센트를 천만 번이라도 투입해서 잊어버리면 그 세계에서는 상대가 자기보다 나은 기준이 영원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239-60)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 참이 성립된다
 
하나님은 주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영생의 논리가 형성됩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다 보면 점점점 더 큰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생의 논리가 이루어집니다.
참사랑이란 무엇이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부모는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부모입니다. 대학에 보내줬으니까 우리가 늙으면 봉양해야 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수첩에 기록해 계산서를 미리 준비하는 부모는 거짓부모입니다. 나라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국자는 나라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 논밭을 다 팔고, 생명까지도 투입하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래서 참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식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형제 중의 참형제도 하나님이 하는 것과 같이 모양을 닮아 가려고 하는 형제입니다. 참남편, 참아내, 참아들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위하고 잊어버리고, 위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는 아들딸이 참아들딸입니다. 여기에서 참이 성립됩니다.
참사랑이 있으면 무한한 가치의 상대가 됩니다.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상대이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대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참사랑은 투입하고 절대 작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공기를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해서 최저의 저기압이 되면 최고의 고기압이 생깁니다. 그러면 고기압이 저기압권을 찾아갑니다. 하늘을 대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찾아오게 되고, 나라를 위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면 나랏님이 찾아옵니다. 최고의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그분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239-62)

 


우주의 공법과 사위기대
 
우주의 공법은 남자와 여자가 맨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일치되어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천운이 가는 길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일치되어, 즉 부부가 일심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죽겠다고 야단법석을 하는 사람들은 빨리 제거당합니다. 공적 법도권에서 불합격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가게 됩니다. 마음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슬픔을 느낍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을 느낍니다. '아들딸이 없어도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리 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되었으면 반드시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우주의 공법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아들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들만 있으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맛은 알지만 딸에 대한 사랑의 맛은 모릅니다. 꿀맛이 어떻다고 누가 설명을 해서 그 맛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설명만으로는 안 됩니다. 직접 입을 벌려 먹여주고 나서 이것이 꿀맛이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없으면 왜 섭섭하고 불행하다고 하느냐? 딸만 가진 사람은 아들을 가진 사람을 보면 아들을 갖는 것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둔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것은 얼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인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선입니다. 사랑의 참된 줄로 연결된 것이 참된 가정이고 참된 국가며 참된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은 가정입니다. (24-224)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주의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어떤 권력 기반을 닦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통일원리는 성경 66권을 풀어서 가정(家庭)에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남아지는 한 통일교회의 사상을 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내세운 사상보다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사실적인 근거의 터전 하에 역사적인 실증을 기반으로 하여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제시해 놓았기 때문에, 이 사상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4-274)
그러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처음부터 목적지점까지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 이 가정은 영생합니다. 그런 가정이라야 영생하지 혼자서는 영생하지 못합니다. 설령 영생을 한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서 고생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영생의 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하나님 나라, 이상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24-225)
세계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부딪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을 중심으로 우주의 운세가 지향해 나가는 그 목적 앞에 소련을 중심한 공산세계와 미국을 중심한 민주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 만드느냐? 민주주의로도 하나 만들 수 없고, 공산주의로도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 만드느냐? 천주주의로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24-215)
아들주의라는 말은 없습니다. 부모도 아들주의, 아들도 아들주의 입장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것은 가정주의 권내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정주의는 가정을 합해서 국가를 형성하려니 필요합니다. 또 국가주의 앞에는 이 가정주의도 흡수됩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는 세계주의 앞에 흡수되고, 세계주의는 천주주의 앞에 흡수되며, 또한 천주주의는 심정주의 앞에 흡수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냐? 심정주의입니다.
'천주주의'의 '주'는 '집 주(宙)' 자입니다. 천대주의(天大主義) 혹은 천왕주의(天王主義)라고 하든지 천주주의(天主主義)라고 하든지 할 것이지, 왜 이 '천주'라는 말에 '집 주(宙)' 자를 썼겠습니까? 이것은 가정을 의미합니다. '집 주(宙)' 자를 쓰는 것은 하늘의 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24-276)
그러면 우리 인간이 바라야 할 것이 뭐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천국창건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사는 것도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주인입니다. (24-226)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