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주의 존재 원칙(사랑이야기 - 제 2 권 사랑 원론편 - 제 3장 인간과 우주의 사랑)

무지... | 20180519183314

2. 우주의 존재 원칙


 
존재하는 것에는 목적 없는 것이 없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은 왜 필요하냐?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이중목적, 공동목적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부가 이중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도 이런 면에서 나왔습니다. 역사는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가느냐? 목적을 중심으로 해서 가는데, 그 중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원형을 그릴 수 있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기준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주로 해서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존재물이 나왔다 하면 벌써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힘이 작용했다 하면 상대적 여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기 전에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있기 전에 상대적 여건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힘이 생겨나려면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고, 여자에게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복잡하지만 하나의 목적권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상과 인간의 이상은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권에 만우주가 동원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상대적 여건에서 수수작용을 해야 되고, 그렇게 존재함으로써 창조목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존재하는 것은 목적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대립물이 투쟁하여 통합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그들은 목적의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 투쟁 발전을 인정하는 데 변증법을 쓰고 있습니다. (157-271)


 
3단계 존재의 원칙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은 목적 없이 이뤄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플러스가 있으면 반드시 마이너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원리로 볼 때, 어떤 관점으로 봐야 되느냐?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목적관입니다. 우주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적 여건이 있어야 하고, 상대적 여건이 있으면 그것을 연결시켜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을 통하지 않으면 존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려면 힘이 필요하고, 힘이 있으려면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상대적 여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주체와 대상,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맨 처음 창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나오기 위해서는, 즉 존재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체에서 이성성상이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통일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성성상이 왜 필요하냐? 작용하려니까 필요합니다. 작용하면 존재합니다. 존재하면 반드시 목적을 이룹니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성상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성성상이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작용을 합니다. 수수작용이 벌어집니다. 수수작용이 벌어지면, 주고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목적이 나옵니다.
창조목적이 나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아담과 해와가 주고받으면 자녀가 나옵니다. 그래서 3단계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갈라놓으면 마음과 몸으로 나뉘는데, 마음은 내적이요, 몸은 외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중심으로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절대적 기준에서 필요로 합니다. 존재하는 데는 혼자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 존재는 주고받는 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용을 해야 하고, 작용을 하려면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곧 작용입니다. 작용을 하면 반드시 목적이 개재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벌써 목적 성사를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하려면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작용을 해야 됩니다. 작용하지 않으면 해체되기 때문에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157-264)



우주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선생님이 창조원리를 찾아내서 쓰게 될 때, 어떻게 썼느냐? 먼저 존재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썼습니다. 존재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무엇이냐? 작용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작용할 때 나옵니다. 
그러면 작용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작용이 있기 전에 상대적인 여건이 필요합니다. 존재를 이루는 것도 작용의 힘이 있어야 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도 역시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고받는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것도 맹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갑이면 갑, 을이면 을이 같이 주고받을 수 있는 목적권에 들어가서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손해보는 데서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나쁜 데서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빠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주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좋기 위해서 지었기 때문에, 절대로 나빠지게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은 화학작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작용하여 두 목적이 결합함으로써 서로 이익이 되어야 작용을 시작하지, 손해난다면 절대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작용도 그렇고, 모든 존재가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도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인가 보탬이 된다. 더 좋아진다�� 할 수 있어야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아이고, 나는 싫다�� 하면 주고받는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싫은데 주고받으면 결국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존재물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나오려면 작용을 해야 하고, 작용하려면 반드시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이 상대는 왜 나오느냐?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목적을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157-267)

 


병이 나면 아픈 이유
 
하나님은 천지를 좋아하기 위해서 지었는데,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목적을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영생하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영생하므로 그분 앞에 완전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영생을 바라고 이상적인 사랑을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이한 권한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내에 인간이 들어가고, 그 관계내에 영계도 들어가고 지상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몸이 주고받아야 합니다. 마음과 몸이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를 맺어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 길이 막혀 버리면 병이 납니다. 마음과 몸이 상충을 일으키면 병이 납니다. 우리 체내의 기관에 결함이 있어서 병이 나기도 하지만, 정신과 육체의 관계가 상충되어도 병이 난다는 것입니다.
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우주의 공법에 일치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일치되지 않은 만큼 병이 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법은 일치한 물건을 흡수해서 그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법에 배치되면 배치된 만큼 우주의 힘이 몰아내고, 몰아낸 만큼 아픈 것입니다.
병이 나면 아픕니다. 왜 아프냐? 주고받는 것이 그만큼 막혔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공법은 서로 잘 주고받는 것을 보호하고 육성하게 되어 있는데, 병이 나면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막혀니 막힌 부분만큼 우주의 공법에 제거당합니다. 우주의 힘이 몰아내기 때문에 밀어내는 그 작용이 고통으로 느껴집니다. (157-268)


��내 양심이 고통스럽다��할 때, 왜 고통스러우냐? 우주의 공법에 의해 몸과 마음이 이념을 중심으로 일치화되어 잘 주고받으면 기쁜데, 몸과 마음이 어떠한 목적관을 중심으로 잘 주고 잘 받지 못하니까 그 목적관의 이념을 완성하기 위한 우주의 힘에 배치된 만큼 내 마음에 고통이 옵니다.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상대적 여건입니다. 그래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상대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상대적 여건은 왜 필요하냐? 그것은 목적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주고받는 상대적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나 하나만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목적을 요합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몸과 마음의 이중목적을 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주는 전부 이중목적권 내에 귀결되어 있습니다. (157-269)
 

우주의 상응작용과 상충작용

주체와 대상이 하나될 때는 우주가 보호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고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 들어가면 어머니 아버지가 보호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말한 대로 행동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입니다. 이중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종횡이 하나입니다. 이 천리 법도는 사방성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주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주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주체고 몸이 대상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왜 우주가 보호하느냐? 사랑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한다는 공법이 있습니다.
전기는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합하지만 플러스 플러스, 마이너스 마이너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면 이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수억 볼트의 번갯불은 플러스 마이너스 전기가 한꺼번에 수억 볼트가 됐겠습니까, 조그마한 게 하나하나 합해져서 수억 볼트가 됐겠습니까? 조그마한 게 합해져서 수억 볼트가 되었습니다.
전기 이론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된다는 논리입니다. 전기는 플러스끼리나 마이너스끼리는 무조건 반발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틀립니다. 왜 틀리냐? 이것은 학교 선생님한테 물어 보면 모릅니다. 물리 선생님에게 물어 봐도 마이너스 플러스가 어떻게 한꺼번에 수억 볼트가 되는지를 모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릴 때는 남자는 남자끼리 모여서 놀지만, 어느 정도 커서 장가갈 무렵에는 남자보다는 여자와 만나서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플러스 플러스끼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몇십 리 떨어진 곳도 걸어서 찾아다녔습니다. 여자들도 시집가기 전에는 여자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놀지만 시집갈 때가 되면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 친구와 어울립니다.
전기도 플러스 전기는 플러스 전기와 합할 수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끼리끼리 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결정된 순간부터는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 배척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와 통일권을 이룬 다음에는 플러스에 플러스가 오면 반발합니다. 또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오면 반발합니다. 왜 그러냐? 이는 우주의 보호원칙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에는 상응작용과 상충작용이 있어서 두 작용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플러스 전기가 있으면 마이너스 전기는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있기 전에는 플러스 전기끼리 합합니다. 마이너스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끼리끼리 합합니다. 이렇게 따라가다가 상대가 결정되면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하고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는 반발합니다. 사람도 결혼하기 전에는 동성끼리 좋다고 다 합하지만, 상대가 생길 때에는 아무리 가깝던 친구라도 발길로 차는 것입니다. 친구에게 ��우리 방에 들어오지 마라, 들어오지 마라�� 합니다. 결혼하고 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가 ��내가 너를 네 신랑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야, 저리 가!�� 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우주의 원칙이 상대이상을 보호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력이 그 플러스 마이너스 앞에 오는 것을 밀쳐 버립니다. (187-63)

 


우주력이 보호하는 사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고, 상하가 하나되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그리고 전후가 하나되고, 좌우가 하나되면 영원히 보호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전후․좌우․상하의 융화(融和)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상대와 하나되면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가지면 우주가 보호합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중심하고 왜 만나려고 하느냐? 번개 치고 천둥 치는 것은 우주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사랑입니다. 자연의 결혼입니다. 번개 치고 천둥 치고는 비가 옵니다. 자연이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 여자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중심으로 이와 같이 전후 좌우의 중심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영계, 그리고 사람들이 보호합니다. 우주력, 사랑을 중심으로 한 힘이 보호합니다.
우리 인간은 때로는 병이 나서 아픕니다. 왜 아프냐? 이건 의사들도 잘 모릅니다. 의사에게 병이 나면 왜 아프냐고 물어 보면 ��병이 났으니까 아프지�� 그럽니다. 병이 났으니까 아프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그런 답변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아프냐? 우리 몸의 모든 혈관에서는 주고받는 수수작용에 의해서 순환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순환운동을 하면 우주가 보호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는 달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대기로부터 1기압의 압력을 평면적으로 받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서 순환운동을 하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지만, 만일 돌아가는 길이 막히면 막힌 부분이 대기의 압력에 의해서 찌그러져 불편을 느낍니다. 찌그러질 때는 이 우주 존재세계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러니 이것을 시정하지 않으면 추방당하기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꼬집으면 순환운동을 하던 것이 막히기 때문에 아픔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어야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나가 다 좋아합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면 전체가 좋아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족을 밟고 위로 올라가더라도 가족 전체가 ��어서 가라. 어서 밟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올라가면 맨 마지막에는 자기들도 따라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보호하고 협조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자리에까지 올라가면 하나님은 플러스고 나는 마이너스이므로 하나님이 높으니까 내려오는 것입니다. 내가 올라갈 때는 하나님이 내려옵니다. 수직으로 한번 넘는 것이 최고 이상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행복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생명력을 초월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기뻐서 눈물이 나옵니다. 마음이 나자빠질 정도로 기쁩니다. 그런 세계에 들어가면 영계가 보이고 하나님이 꿈속에 나타나서 나하고 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 세계는 참사랑이 주관하는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상세계라고 합니다.
��이상�� 하면 가정적 이상기준을 말하는데, 그런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천리를 업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기준 위에 부부에 의한 가정이 있고, 가정기준 위에 종족이 있고, 종족 위에 민족․국가․세계가 있습니다. 전부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하는 자가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나를 버리고 나라의 충신이 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랏님도 나라를 버리고 세계를 위해서 충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정을 버리고 자기 나라를 버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역사상에 나타난 성인들입니다.
그러나 성인들도 천자(天子)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랑의 도리를 몰랐습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서 사랑의 도리를 중심하고 살다 간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말을 통해 종적인 사랑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을 통해 횡적인 사랑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랑으로 맺어진 주의 사상을 말했고, 천지의 대도를 밝히려고 했기 때문에 그분은 성인 중의 성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7-65)

 


마음은 종적인 나요, 몸은 횡적인 나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와 하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참사랑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가 가진 사랑의 직단거리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한 존재가 인간과 만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부모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으로 종적인 부모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참사랑을 중심으로 본연의 90각도에 일치되는 횡적인 자리에 계시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래서 90각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연결됩니다.
왜 90각도를 중심으로 연결되느냐? 사랑은 직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최단거리로 가기 때문에 참사랑이 만나서 합할 수 있는 자리는 90각도 되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한번 합하게 되면 이것을 떼어놓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핵입니다. 그러한 본질적 요소, 동기적 요소를 통해 지금까지 핏줄로써 연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조상들이 나왔습니다. 조상들이 횡적인 면에서 1도, 2도…, 360도의 환경을 맞추어서 나왔지만 중심은 하나입니다.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고,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도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다르냐? 종적인 것은 하나입니다. 천년 전의 하나님이나 천년 후의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종(縱)은 하나, 절대지만 횡(橫)은 무한히 벌어집니다.
참부모는 뭐냐?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은 종적인 참된 사랑의 부모고, 참부모는 그 종적인 사랑에 90각도로 동과 서에서 연결시키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게 묶어진 것이 씨가 되어 종적인 것을 닮아서 난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것을 닮아 나온 것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언제나 90도로 맞아야 합니다. 위에 가서 거짓말하고 아래에 가서 거짓말하고 동에 가서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동서남북 전후 좌우 어디에 가더라도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우주력이 우리를 동조하지만 틀어지면 몰아냅니다. 우주력이 몰아냅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게 되고, 양심이 고통을 받습니다.
마음은 종적인 나고, 몸은 횡적인 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뼈와 같고 몸은 살과 같습니다. 뼈가 있는 데에 살이 있어야 합니다. 뼈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지만 살은 커졌다 작아졌다 합니다. 그래서 종적인 것이 오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87-68)



마음은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기준

마음은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천지의 도수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이 없으면 내가 그 본성을 만들어서 천지의 도리를 맞춰야 합니다.
이 지구 가운데 존재위치를 알기 위해서도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됩니다. 경도 위도를 그려서 거기서부터 위치를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모든 것은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맞춥니다. 그럴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적 기준, 횡적 기준입니다. 전과 후가 되어 있으면 그것은 언제나 맞추기 쉽습니다. 남북이 되어 있든가 전후가 되어 있든가 상하가 되어 있든가 하면 맞추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다음에는 종횡관계에서 종(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본성의 종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몸은 악마의 편이 되어 선한 것을 대해 싸우는 초소가 되어 있습니다. 각도가 틀어졌습니다.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 내가 생겨나게 된 최초의 동기가 뭐냐? 생명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 생명이 사랑에 의해 연결되어 혈통을 통해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뼈를 받아, 피살이 연결되어 자라서 10개월이 지나 태어납니다. 핏줄을 따라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러니 태어난 나의 근본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근본은 어머니의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하나되게 한 것은 생명에 앞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기원, 창조된 존재의 기원은 사랑입니다. (187-43)



완전히 주고받을 때 구형을 이루고 영생한다
 
우리는 수평을 잘 세워야 되고 수직을 잘 세워야 합니다. 건축물도 그렇습니다. 십자를 그려서 완전히 원형권, 구형권을 이룬 형태를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에 따라서 그 건축물이 오래가느냐 오래가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집을 지으려면 완전한 수평과 수직을 이루어야 합니다. 조금만 찌그러져도 안 됩니다. 이것은 완전 원형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세계는 전부 다 원형을 닮았습니다.
수수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원형을 그립니다. 잘 주고 잘 받을수록 원형을 그립니다. 잘 못 주고 잘 못 받을수록 기울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 여건이 잘 안 될수록 주고받는 거리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완전히 잘 주고 잘 받으면 반드시 완전한 원형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구형을 이룹니다.
그러면 영생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 수직관계와 수평관계를 구형관계로 볼 때, 완전한 구형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몸과 마음이 수평과 수직을 이루어 사방으로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완전히 주고받을 때 완전한 구형이 되므로 영생하게 됩니다. 그래야 이상적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힘이 언제나 사방팔방 평균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오래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만 틀어지면 파괴가 벌어집니다. (157-270)


그러므로 우주의 존재 공법은 완전히 주고받는 데 있습니다. 완전히 주고받는 데서 영원이 벌어집니다. 힘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전기로 말하면, 입력이 있고 출력이 있습니다.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이 같으면 영원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작용의 원칙은 들어오는 힘보다 나가는 힘이 작습니다. 출력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점점점 전기는 감소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존재하려면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주고받는 데서 차이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영원히 갑니다. 돌도 오래 가는 것은 어떤 것이냐? 완전히 주고받은 것은 오래갑니다. 그러나 돌에 불순물이 끼어 있으면 완전히 주고받지 못하므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데 있어서 차이가 크면 클수록 빨리 붕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공법에서 존재의 법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합니다. 잘 주고 잘 받으면 오래 존재하는 것이요, 못 주고 못 받으면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영생을 바랍니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도 변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되면 하나님과 일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습니다. 그러니 영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관찰해야 합니다. (15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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