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을 중심한 조화의 세계
사랑에는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화합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20세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때까지는 사랑에 대한 준비기간입니다. 그 다음에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사랑을 떠나서 부부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부부 사랑의 인연이 두터워지면 두터워질수록 거기에서 또다시 자녀의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돕니다.
우리 일생을 생각할 때, 타락이 없었다면 본연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랄 때까지 키움을 받아 일생을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일생 동안 사랑을 갖추어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모든 사랑의 인연을 어디에 갖다 퍼붓느냐? 종적인 부모로부터 자기가 받은 사랑을 횡적으로 퍼붓습니다. 그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는 횡적인 면에서 하나됩니다.
또 부자의 관계는 뭐냐? 부자의 관계는 종적인 면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관계의 사랑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횡적인 인연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부부의 사랑은 횡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종적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그 사랑의 체험을 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서로 사랑의 인연을 맺어서 가정에서 받은 그 깊고 높은 사랑을 중심하고 가정생활을 합니다. 깊고 높은 사랑의 인연으로 부부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1백 퍼센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부부간에도 1백 퍼센트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은 화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종적인 사랑이 1백이라면 횡적인 사랑도 1백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이 작아질 때는 반드시 섭섭함을 느낍니다.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은 서로 '당신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오?' 하고 묻습니다. 조건을 걸고서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하오?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당신의 형제보다,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오?' 이렇게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랑하는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가 '아니야. 당신을 사랑하는데 우리 어머니만큼은 사랑하지 못해. 우리 아버지만큼은 사랑하지 못해' 하고 대답하면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느냐?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145-274)
화합하고 싶은 것이 사랑세계의 본질
하나님은 종적으로 운동해야 되고, 우리 인류 조상은 횡적으로 운동해야 됩니다. 여기에 또 형제가 운동함으로써 구형을 이룹니다. 우주는 사랑을 표제로 해서 지었기 때문에 주체 대상권을 벗어난 존재가 없고, 구형을 이루지 않는 존재가 없습니다. 이 구형을 이루지 못하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나옵니다. 화(和)해야 됩니다. 화하면 어떻게 되느냐? 둥그래집니다.
원만한 사람을 '둥그렇게 꽉찼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꽉차야 되느냐? 돈으로 꽉차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지식으로 꽉차면 잘났다고 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권력으로 꽉차면 압력이 있기 때문에 어디 가든지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꽉차게 될 때는 어디든지 자유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밤이나 낮이나 좋다고 하지, 싫다고 손을 뿌리치는 법이 없습니다. 남편 손이 차면 녹여주려고 손을 가슴에 가져가고 그럽니다. 거기에서는 화(和)합니다. 안으로도 화하고 겉으로도 화하고, 종으로도 화하고 횡으로도 화하고, 전후로도 화합니다. 남편이 위로 가면 아내도 위로 가고 싶고, 내려가면 내려가고 싶고, 좌로 가면 좌로 가고 싶고, 우로 가면 우로 가고 싶고, 이렇게 같이 화합하고 싶은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가화(家和)는 만사성(萬事成)입니다. 싸움하면 깨져 나가지만 화합하면 하나됩니다. (219-19)
그래서 사랑은 무한히 확대할 수 있습니다. 옆으로 넓히면 무한정 넓어질 수 있습니다. 또 좁히면 무한히 좁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용서도 크지만 말 한마디에 그 사랑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 부부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써 지금까지 사랑했던 전부가 한꺼번에 깨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랑은 무겁다면 태산보다도 무겁고, 가볍다면 공기보다도 가볍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5-275)
정서적인 면을 유발시키는 상대적 여건이 많아야
좋아할 때 좁은 틈바구니에 가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넓은 자리에서 상대적인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흐뭇하고 기쁩니다. 좁은 곳보다는 넓은 곳을 좋아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넓은 광장이 있어서 좋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 제일 좋다는 것 하나를 택정합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은 어떤 것이냐? 집이 작지만 작은 그곳을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내 몸과 마음이 사랑을 중심으로 나를 유치하고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귀합니다. 아무리 푸른 빛이 동산에 꽉찼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빨간 꽃 한 송이가 내 몸과 마음의 정서를 집약시킨다 할 때는, 사랑의 마음을 유발시킨다 할 때는 그 빨간 꽃 한 송이가 푸른 동산의 주체입니다. 그 주체는 반드시 내 마음과 몸의 깊고 넓고 높음을 대표할 수 있는 심정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것은 사랑을 걸고 있는 대상입니다.
꽃은 우리 정서를 1백 퍼센트 집약시킬 수 있고, 또 1백 퍼센트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꽃을 좋아합니다. 꽃에서 향기가 나는 줄 알기 때문에 좋다고 하면서 자연히 얼굴을 갖대 댑니다. 향기를 맡기 위해 자연히 꽃에 얼굴을 갖다 댑니다. 그건 왜 그러냐? 거기에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20대까지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고, 부모의 사랑을 중심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흠뻑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더라도 많은 사람한테 받을수록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한 자녀 갖기를 장려한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대한민국 인구가 1억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처럼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자꾸 애기를 낳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아무리 약을 먹고 아무리 가족계획을 한다 하더라도 가족계획의 그 계수가 맞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식도 많은 것을 좋아하고 돈도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넓고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동산에 나무가 한 그루만 있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나무가 있는 걸 좋아합니다. 나무도 한 종류보다 여러 종류가 있기를 바랍니다.
왜 여러 종류가 필요하냐? 우리 정서를 자극시킬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이 많기 때문입니다. 정서를 자극시키는 상대적 여건이 많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충격, 그러한 문제, 그러한 상대를 통해서 자극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동산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있어야 되고, 꽃도 여러 가지 꽃이 피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많은 종류를 원합니다. 무엇이든 적은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가를 따집니다. 식구가 많은 데서 자랐느냐, 과부 가정에서 자랐느냐 하는 것을 따집니다. 과부 가정에서 자랐다면 '아이고, 모지겠구나!' 생각합니다. 원만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식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층층시하에서 연단을 받고, 좌우 생활을 거치면서 팔방으로 화합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자리잡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145-276)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 화합한다는 것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길을 나섰을 때, 특히 여자들이 처음 양장을 입고 나갔을 때 참 어색할 것입니다.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화되면 자연스러워집니다.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어울린다는 것은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어디에 갖다 주체로 모셔놓더라도 그것이 상대와 상치(相馳)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화합한다는 것입니다.
실내에 장식해 놓는 꽃꽂이도 그렇습니다. 척 봤을 때 중심으로부터 동서남북 사방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대개 보면 앞만 잘 해놓았지 뒤는 딴판입니다. 하나님이 꼭대기에서 볼 때 앞만 치장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얼굴을 보면, 눈이 왜 얼굴 위쪽에 있느냐? 눈이 올려다보는 시간보다 내려다보는 시간이 많습니다. 밑에서 바로 보면 좋을 텐데 왜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어 있느냐? 눈은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면 안 됩니다. 눈이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상하 고저의 환경여건을 반드시 어느 정도까지 측정해 낼 수 있어야 하겠기 때문에 얼굴 위쪽에 있습니다. 적이 있으면 공격하는지 안 하는지도 봐야 합니다.
머리가 옆으로 왔다갔다 하고 위로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데, 그건 무엇 때문이냐? 눈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이 머리 꼭대기에 있으니 얼마나 어지럽겠습니까? 균형이 안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야! 눈도 참 적당히 자리잡고 있구만' 하고 압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조화로워야 합니다. 화합, 화동해야 합니다. (145-278)
조화 속에 천지가 화동한다
산이 좋다는 것은 뭐냐? 산세의 높고 낮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거기에다 푸른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푸른 나무가 갖춰져 있더라도 새가 없으면 안 됩니다. 나무 없는 산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막에 가면 얼마나 삭막합니까?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점수를 준다면 그건 30점도 안 됩니다. 아주 삭막합니다. 보고 또 보아도 정서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산에 나무와 풀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 풀과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없으면 그리워합니다. 또 아무리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나무에 새가 없다면 얼마나 처량하겠습니까? 산에 짐승이 없으면 처량합니다. 거기에 '어흥' 하는 호랑이가 있다면 더욱 멋질 것입니다.
명곡은 어떤 음악이냐? 선생님이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음악의 음계에는 반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반음을 빼놓으면 맛이 없습니다. 반음을 넣어 나가기 때문에 멋진 음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냥 매끈한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매끈하더라도 규칙적으로 변화가 있으면서 매끈해야 더 멋있습니다.
왜 그러냐? 상대가 있어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겨야 됩니다. 그림자 없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똑딱' 하고 정오가 되는 순간만 그림자가 없지 24시간 전부 흑백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잘난 사람만 있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요리 봐도 미인, 저리 봐도 미남,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전부 일등 미남 미녀구만. 아이고, 좋아라!' 이럴지 모르지만, 일등 미남 미녀만 세상에 꽉차 있으면 미남 미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잘난 사람이 있으면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 얼룩덜룩한 가운데서 드러나야 그것이 맵시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종합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성, 비교의 기준이 됩니다. (145-280)
참된 사랑의 힘만이 이상적 통일권을 형성한다
선생님은 여왕벌을 보고 '이야! 여왕벌이 인간세계에 고귀한 이상적 사랑의 핵을 표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왕궁적 기준에 있는 사랑의 핵의 일체가 움직일 때는 전체가 따라갑니다. 바다를 건너면 죽더라도 따라가야 합니다. 그 핵이 지옥으로 들어가면 그 지옥이 왕궁이 됩니다. 동서남북 상하 전후 좌우 어디나 환영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이 이상경입니다.
오색인종이 지구성에 사는데, 흑인은 흑인끼리 좋아하고 백인은 백인끼리 좋아하는 게 이상경이 아닙니다. 전부 혼합되어서 알록달록한 게 좋습니다. 그렇게 알록달록하던 것이 나중에는 두 가지로 결정납니다. 먼저는 알록달록하던 것이 자꾸 빛깔이 더해지면 까매집니다. 자꾸 하면 그것이 까매지는데, 전체를 화합해서 자꾸 더 하면 결국 희어집니다. 알록달록하게 칠한 팽이를 돌리면, 처음에는 까맣다가 아주 빨리 돌리면 희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도대체 뭐냐? 사랑의 힘입니다. 참된 사랑의 힘만이 몸과 마음을 완전히 이상적 통일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돈 가지고 할 수 없습니다.
남자 여자는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오관이 전부 한가운데로 모일 때는 사랑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상대끼리 모이면 밤을 새워도 졸음이 안 옵니다. 눈도 피곤하지 않고, 귀도 피곤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밤새껏 구린내를 맡더라도 구수합니다. 그러니 사랑은 조화무쌍합니다. (221-306)
사랑은 울뚝불뚝한 조화의 극치
만일 사랑이 없다면 일생 동안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사는 남편은 불행할 것입니다. 매일같이 색깔이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꽃이 피어도 관심이 없는 세상인데, 네 가지밖에 없는 그 얼굴을 매일같이 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비참합니다. 얼굴에는 눈, 코, 입, 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얼굴이 얼마나 밋밋하고 단조롭습니까?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난 미인이야' 하면 어떻습니까? 여자가 매일같이 '우리 남편이 내 얼굴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겠나!'하고 생각한다면 정상적인 여자가 아닙니다. 밥도 매일같이 같은 반찬, 같은 밥, 같은 식으로 같은 시간에 먹으면 재미 없습니다. 화장하는 것도 매일 같은 일인데, 그런 얼굴을 하고는 남편 앞에 '나를 좋아하겠지' 하고 버티고 나선다면 그런 여자의 모습은 처량합니다. 그런 여자를 사랑 없이 일생 동안 들여다보고 산다면 비참할 것입니다.
만일 사랑이 누구든지 그릴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형태가 어떻다고 알 수 있게끔 돼 있다면, 그런 사랑은 하루도 못 가서 싫증 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은데 있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하면 좋고, 좋다고 생각하면 나쁜, 천태만상의 기괴한 신기루 같은 내용을 작동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이아몬드 광맥을 찾으려는데 그 광맥이 어디에 있다는 걸 대번에 안다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가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연구나 훈련, 실험이 필요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모르니까 기다려야 되고, 모르니까 만나야 되고, 만나고 또 만나도 모르니까 또 만나야 됩니다. 만나서 다 알면 끝장이 납니다.
모든 것은 서로가 알면 몇 푼짜리 안 됩니다. 훌륭하다는 여자들이 갖고 있는 사랑 밑천이 얼마나 된다고 일생 동안 팔아먹고 살겠다고 합니다.그게 값으로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은 왠지 모르게 조화를 일으킵니다. 본 사람도 없고, 만져 본 사람도 없지만 두루뭉수리면 두루뭉수리고, 모가 났다면 모가 났고, 뾰족하다면 뾰족하고, 납작하다면 납작하고, 천지에 부동자세로 반석같이 박혀 있어서 조화를 부립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필요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감투를 씌워주면 슬픈 것이 자리를 비키고 물러갑니다. 사랑은 조화통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없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은 삭막합니다. 사랑이 떠난 곳에는 언제나 투쟁이 있지만, 사랑이 있는 곳에는 투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눈이고 코고 입이고 모두가 제멋대로 세상에서 제일 흉측망측하게 생긴 남자라 해도, 그 남자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은 생긴 것처럼 그렇게 밉살스럽지 않습니다. 얼굴이 번지르르한 남자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고, 얼굴도 울뚝불뚝하고, 손도 두꺼비 모양으로 큰 남자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이 더 멋집니다.
만물상이 왜 보기 좋으냐? 울뚝불뚝하고 별의별 모양의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될 것이 바로 되고, 바로 될 것이 옆으로 나고, 가로로 갈 것이 세로로 가고, 그것들이 어울려서 미를 갖추게 될 때 만물상이라 합니다. 예쁘장한 남자의 가슴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보다 울뚝불뚝하게 생긴 남자의 가슴에서 불타오르는 사랑은 오색의 빛깔일 것입니다.
동네에서 풍채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미남자와 미모가 뛰어나 아침에 해를 본 듯하고 보름밤에 달을 본 듯한 미녀가 같이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들의 사랑은 둥근달 같고, 아침 태양 같고, 세상 만사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 미남 미녀에게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모양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민들민들해서 자극이 없을 것입니다. (175-197)
사랑에는 신비한 조화의 둥지가 있다
사랑의 힘은 영원히 좋다고 하는 자리에서 영원히 돌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에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4백조 개나 되는 세포가 한꺼번에 달라붙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내밀적(內密的) 신비한 기관이 '내가 있음을 자랑하노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옷을 짜는 아내는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남편이 좋아하는 표정을 한순간 보기 위해서 뜨개바늘로 뜨는 일을 몇년이라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생 동안 독수공방 생활을 하더라도 수절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동시에 영원히 멈출 수 있습니다. 영원히 공격할 수 있는 동시에 영원히 양보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그러한 신비한 조화의 둥지가 있습니다.
그 둥지 가운데 품겨 사는 사나이가, 그 둥지 가운데서 태어나는 아들딸이, 그 둥지 가운데서 사는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구경하고 싶고, 만져주고 싶고, 속삭이고 싶은 우주의 주인공이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러한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163-114)
천지만물의 조화는 사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천지만물의 조화는 오목과 볼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화학 선생이 이것을 안다면 실험실에서 연구할 때도 그 실험물의 상대를 찾아서 작용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상대를 찾아서 작용시키면 아무리 작용하지 말라고 해도 작용합니다. 하나님이 '요놈아, 작용하지 마!' 하더라도 '하나님이 작용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소?' 하면서 작용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작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아무리 남자의 볼록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볼록을 찾아가서 하나되겠다고 하면 미치광이입니다. 남자로서 볼록을 가졌으면 여자의 오목을 찾아가야 됩니다.
여자의 무엇을 찾아가야 되느냐? 젖을 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자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요즘엔 빵집이 많아서 여자가 없어도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화면 24시간 줄을 지어서 먹을 것을 쌓아 놓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명사가 없다면 남자세계에서 여자가 필요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는 아내가 필요없습니다. 오히려 있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찾아가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여자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남자 여자의 조화는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사랑이 있어야만 조화가 이루어지게 돼 있습니다. (184-209)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맺을 것인가
우리 인간은 사랑 때문에 생겨났고, 사랑 때문에 삽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이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딸들에게 부모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자식을 다리 놓아서 세계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걸 몰랐습니다.
그러면 남자는 왜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왜 남자가 필요하냐?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인류와의 횡적인 다리를 놓기 위해서고, 형제가 사랑하는 것은 전후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고, 부모와 자식이 사랑하는 것은 종적인 다리를 놓기 위해서입니다. 종적, 횡적, 상하, 전후, 좌우관계입니다.
인간이 우주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고정된 한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므로 확대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도 세계 제일 가는 아들딸을 갖고 싶어합니다. 형제도 제일 가는 형제, 남편도 제일 가는 남편, 아내도 제일 가는 아내를 원합니다. 그것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쭈그러지지 않은 사랑의 구형을 원만히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구형을 이루면 어디에서도 부딪치지 않고 상충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자던 사람도 움직이고, 놀던 사람도 거기에 박자를 맞춰서 움직입니다. 사랑의 감성을 느끼는 감도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부가 움직입니다. (136-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