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랑의 위력
참사랑의 맛과 위력
참사랑에는 모든 것이 꽉찹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에 사랑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사랑에 취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침을 한번 맞으면 아편에 취하듯 취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사랑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도 좋아하고, 아들딸도 좋아하고, 전체가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찌푸리고 있으면 어머니도 할 수 없이 찌푸리게 되고, 아들딸도 찌푸리게 됩니다. 또 어머니가 참사랑에 취해 있으면 아버지도 그 참사랑에 녹아납니다. 그 아들딸도 그 참사랑에 녹아납니다. 그 다음에 아들딸이 참사랑에 취해 있다면 어머니도 녹아나고, 아버지도 녹아납니다.
이렇듯 만민은 전부 사랑의 줄을 달고 다닙니다. 이렇게 줄이 하나씩 있다면 누구한테 불평하지 않습니다. 전부 참된 사랑의 단지를 찾아 빨 수 있는 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줄을 가지고 사랑의 상대자를 찾아 사랑을 빨아먹으면 그 맛이 그 어떤 것보다도 아주 달콤합니다. 그러므로 그 맛을 알게 되면 줄을 끊고 자꾸 파이프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가다가 '아이고, 이젠 됐다'고 취해서 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맛을 감정할 줄 아는 사람은 '아이고, 더 맛있다, 더 맛있다' 하면서 자꾸 잘라 버리고 줄을 따라갈 것입니다. (106-98)
참사랑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참사랑은 만능입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이상을 그리면 이상을 그린 상대가 나타납니다. 남편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사랑하게 되면 못생긴 것이 아니라 잘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 가운데는 못생긴 것도 다 숨겨집니다.
우리는 자기의 얼굴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매일같이 자기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보고 있지만 자기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면서'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지,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볼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못생긴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못생긴 사람 같고 잘생긴 사람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사람 같습니다. 또 길쭉하다고 생각했는데 둥글게도 보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될 때는 자기처럼 잘생긴 사람이 없습니다. 눈 가까이에 무엇을 갖다 대면 보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떼어놓고 초점을 맞추고 봐야 확실하게 보입니다. 너무 가까우면 감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언젠가 어떤 아주머니를 대해 사랑을 가지고 두 시간쯤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 빛이 점점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점점점 환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게 되면 빛을 발하게 됩니다. (106-98)
그러므로 아무리 화가 났던 하나님이라도 조그마한 참사랑의 손자가 아장아장 와서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할 때는 하나님도'오!' 하면서 항복합니다. 그만큼 사랑이 위대합니다. 천하가 다 걸려 있는 그 순간에도 참사랑이란 한마디에는 전부 다 해방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104-139)
사랑은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로 비약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랑이 왜 필요하냐?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머슴살이하는 머슴이라 하더라도 주인의 딸과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는 머슴한테 전부 다 내줘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지극히 높은 자리로 비약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담벽이라도 격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란한 세상에서 인류를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낀 사람은 혼란이 문제가 아니고 비약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시골에 있는 순박하고, 무식하며, 갖추지 못해 부족한 것이 많은 처녀와 사랑관계를 맺게 되면, 그 처녀는 그날부터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렇듯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었더라도 높은 자리에 순식간에 도약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버지고, 내가 아들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랑관계를 맺으면 하나님과 같이 안방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하나님이 소유한 모든 것의 상속권이 그 사랑의 대상 앞에 부여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천국가겠다고 야단하지만 하나님이 살고 있는 그 나라, 하나님이 주관하는 그 나라에 어떻게 갈 수 있느냐? 믿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로지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모셔 올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댄버리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세계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습니다. 미국은 2억4천만이 살고 있는 자유세계의 지도국가 위치에 있으며, 수만 명의 목사를 비롯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안타까워서 하나님이 댄버리 교도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선생님을 찾아와 깨웠겠느냐? 10억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2억4천만의 미국인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대상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감옥에 있는 선생님에게 하나님이 찾아와서 '남미 니카라과 문제를 네가 책임지지 않으면 미국이 큰일난다'고 통보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되겠기 때문에 '미국에 들어가서 사랑의 깊은 얘기를 속삭일 수 있는 자는 너밖에 없지 않느냐?' 하면서 선생님을 찾아와 통보했습니다. 천지의 기밀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의 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풍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비밀 얘기를 할 때, 어머니가 옆에 있으면 나가라고 해놓고 아들하고만 의논합니다. 왜 그러냐? 아내의 사랑은 변할 가능성이 있고 아들의 사랑은 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사스럽게 변하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선생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142-37)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작용의 모체는 사랑
힘의 세계에는 계열이 있습니다. 강한 힘, 작은 힘을 통해서 질서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힘 가지고는 위 아래를 하나로 만들 수 없습니다. 동서남북을 엮을 수 없습니다. 힘은 직선작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혜의 왕이어서 땅 위에 인력이라는 것을 만들어 지구성의 모든 운동하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계열을 동화시킬 수 있느냐? 상하․좌우․전후를 무엇이 연결시킬 수 있느냐? 서로 상대끼리 주고받는 힘으로만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먼저 있어야 하고,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는 힘으로 되어 있다고 막연하게 말하는데, 그 힘보다는 작용이 먼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기가 먼저냐, 전기작용이 먼저냐? 전기작용이 먼저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작용이 먼저입니다. 힘이 먼저가 아닙니다. 힘의 배후에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용은 혼자 할 수 있느냐? 작용 뒤에는 그 작용을 하게 하는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 대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역사를 통해서 이루려는 그 하나의 목적의 세계도 주체 대상으로 된 통일권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하나의 유심세계와 유물세계가 주체 대상관계로 나타나서 싸웠습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만들어야만 본래 하나되어야 하는 우주의 근본된 힘의 작용 원칙에 따라 마이너스극과 플러스극, 남극에 있는 플러스극과 북극에 있는 마이너스극이 하나되어 통일세계가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기 전에 하나의 작용을 먼저 찾아야 되고, 하나의 작용을 찾기 전에 하나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모체를 찾아야 됩니다. 그 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이상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이요, 행복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이요, 모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 가운데 그 분모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상대적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한번 빙 돌아 봤느냐? 돌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몸과 마음이 하나될 것이냐?
사람의 몸은 4백조 개에 달하는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포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사람과 보이는 몸의 사람이 있는데, 이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몸이 '마음은 내 것이다' 하고, 마음이 '몸은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한다'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귀한 사랑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것의 주인은 여자고, 여자 것의 주인은 남자입니다. 주인을 서로 엇바꿔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들이 자기 것인 양 요사스럽게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다 망쳐 놓았습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고, 남편의 주인은 아내입니다. 무엇을 중심한 주인이냐? 사랑을 중심한 주인입니다. 사랑을 왜 좋다고 하느냐? 사랑할 때는 몸 마음의 모든 세포가 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사랑은 작동하면서 떨어져 내려옵니다. 악한 사랑은 같은 자리에서 출발할지라도 작용하면서 자꾸 떨어져 내려오게 됩니다. 작용하면서 행복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고, 분열과 탄식의 요인이 되어 자꾸 파괴와 분열작용을 일으킵니다. 원자분열, 파괴작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랑, 악한 사랑은 다 깨집니다.
그 깨진 사랑의 조각이 우리의 가슴에 다 들이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쪼개져 내려온 사랑이 휘젓고 있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왕초인데' 하는 할아버지도 다 병이 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사스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볼 때 이 세상은 악마의 터전입니다. 세계적 악마, 국가적 악마, 사회적 악마, 가정적 악마, 부부적 악마, 개인적 악마, 전부 다 악마의 세계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 싸우는 것이 선한 편이냐, 악한 편이냐? 싸우는 것은 사망의 경계선과 접하고 있는 것이요, 화평은 생명과 번식과 발전과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적 사랑은 지옥과 통하는 것이요, 선의 사랑은 천국과 통합니다. (140-288)
사랑이란 하나되게 하는 것
몸과 마음이 하나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드는 것은 인간의 그 무슨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냐? 보다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힘밖에는 없습니다. (61-280)
무엇이 우리의 몸 마음을 하나 만드느냐?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 하나되게 하느냐? '하나되게 하긴 무엇이 하나되게 해? 그냥 그대로 하나되지'라고 할지 모르나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영적인 체험을 한 후에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랐다고 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33-24)
내가 나를 찾는 가치의 정착점이 생기는 때는 사랑을 할 때입니다. 남자가 남자로 태어난 그 가치가 정착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것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하지 않으면 사람 축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랑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남자로서의 완성체가 되고, 여자로서의 완성체가 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완성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일반 사회의 도의적 관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5백명이면 5백명의 가는 방향이 제각기 있습니다. 교수든 누구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재산이란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공의의 결실을 갖춘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이것은 돈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돈 가지고 몸 마음을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 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습관성, 고질된 타락성을 벗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역사성을 지니고 세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를 밟아 치울 수 있고,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자각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될 것이냐? 남자 여자가 생리적인 모든 것이 다르고, 모든 구성의 본질 방향이 다르지만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도 일시적이지만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211-264)
참사랑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문을 연다
우리 인간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좋은 것입니다. 욕망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이상경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영원히 꽃을 피우고 싶어합니다. 폭발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끼리 화합하게 되면 폭발을 일으킵니다.전기도 플러스 선과 마이너스 선을 갖다 대면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또 사랑은 광명한 힘으로 모든 것을 점령합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고 그 힘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그런 폭발작용이 있습니다. 사랑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접선할 때 폭발하면서 나오는 빛은 우리 인간은 볼 수 없지만, 그걸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졸다가도 '어!' 하고 놀랄 정도로 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라는 존재는 모두가 사랑 얘기만 하면 입을 벌립니다. 모든 세포가 '햐!' 하고 문을 다 엽니다. 얌전하게 다물고 있던 입도 벌리며 '햐!'하고, 눈도 번쩍 뜨고 귀도 쫑긋 한다는 것입니다. (179-114)
그러면 남자 여자의 4백조나 되는 세포들이 어떻게 조화하느냐? 이것들이 참사랑에 부딪쳐서 춤을 추는 그때가 조화하는 때입니다. 참사랑이 아니고서는 그것들을 진동시키지 못합니다. 영적인 오관과 육적인 오관이 한꺼번에 진동해서 공명권을 이뤄야 합니다.
무엇에 의해 4백조 개나 되는 남자의 세포와 여자의 세포가 한꺼번에 조화할 수 있느냐? 어떻게 남자 여자의 4백조나 되는 세포가 한꺼번에 공명할 수 있느냐? 무엇이 그런 공명을 일으키게 하느냐? 남자의 모든 세포들이 '만세!' 할 때는 여자의 모든 세포도 '만세!'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참사랑만이 그렇게 만듭니다. (207-92)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 것이냐, 박사학위를 붙들 것이냐? 또 돈을 취할 것이냐, 사랑하는 상대를 취할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못합니다. 지식이 아무리 있더라도 몸과 마음, 오관 전체를 한 초점에 모을 수 없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모든 것을 한 초점에 모을 수 없습니다. 권력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서 최고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 영육 오관의 초점이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오관과 육적 오관이 있는데, 이 둘의 초점을 하나 만들어서 폭발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 의해서만 강력한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세포들이 전부 하나될 수 있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참사랑의 힘만이 영적 육적인 세포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못 합니다. 참사랑이 최고봉입니다. (189-194)
첫사랑의 위력
물질적 환경세계는 전부 주체 대상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사랑으로 이성(二性)이 조화된 것은 전부 다 그런 입장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그 나름의 사랑을 중심으로 존재합니다.
하루살이는 8년 동안 수중에서 도를 닦고 밖에 나와서 하루 공중잔치하고, 한 번 만나고는 죽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남편과 첫사랑의 인연을 맺게 된다면 '아이고, 남편 죽으면 나 죽는다' 그럽니다. 첫사랑의 매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연애하지 말고, 딴 짓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인연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타락했을망정 첫사랑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똥구더기 같은 사랑판입니다.
처녀라면 똥구더기한테 시집가고 싶겠습니까, 숫총각한테 시집가고 싶겠습니까? 숫총각한테 시집가려고 합니다. 숫총각은 뭐냐? 여자가 처음으로 만지는 생식기입니다. 숫처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 이야기를 하면 쌍소리 한다고 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쌍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본연의 세계에서는 쌍소리가 아닙니다. (187-47)
남녀는 첫사랑을 가지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의가 없습니다. 첫사랑으로 맺어지면 인종 피부색 등의 문제를 다 초월합니다. 잘나고 못난 것도 다 초월합니다. 사춘기의 사랑은 빙빙 돌아갑니다. 그리고 시적이요 극적이요 문학적입니다.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는 그런 때입니다.
사춘기에는 나뭇잎이 데굴데굴 구르는 것만 봐도 '하하하' 하고 웃습니다. 어디를 가도 통할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는 소질이 풍부한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서 붙기만 하면 다 소화합니다. 다 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은 무엇이든지 몽땅 점령합니다. 첫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겼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전부 좋아합니다. 냄새나는 발을 갖다 대도 냄새가 안 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은 첫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118-308)
첫사랑은 영원히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첫사랑에는 잘나고 못난 것이 없습니다. 첫사랑에 미치면 못생겼어도 보면 볼수록 예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의 인연을 맺은 남자 여자들은 서로 미남 미녀로 보입니다.
첫사랑의 눈은 색맹입니다. 첫사랑의 눈으로 보면 시커먼 것이 하얗게 보이고, 하얀 게 시커멓게 보입니다. 그리고 첫사랑을 맺은 그 상대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214-49)
사랑만이 상대적인 것을 하나 만들 수 있다
남자 여자는 수평입니다. 수평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또 종적으로 볼 때는 상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대권을 중심으로 모든 이상형이 그려지기 때문에 모든 말도 상대적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하면 남자 여자입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는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남자 여자는 각기 반쪽 세계입니다. 60억 인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분모를 따져 보면 남자 여자입니다.거기에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도 있고, 오색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남자 여자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둘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모체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또한 남자들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본질이 뭐냐? 지식 가지고 되느냐? 지식세계는 단어 하나만 더 알아도 '너는 모르니 나를 따르라' 하는 세계입니다. 전부 다 높아지겠다고 하고, 낮아지는 것은 다 싫어합니다. 그러면 돈 가지고 할 수 있느냐? 안 됩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상대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뚱뚱한 사람은 마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반대 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백문제 해결, 동서 격차 문제의 해결 등 모든 역사적 내용의 암적인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사랑밖에 없습니다. (198-72)
통일교회는 앞으로 오색인종이 하나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하나기 때문에 동서남북 방향과 계층이 다르다고 해서 그 축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기 때문에 마음에 피는 꽃은 하나님의 사랑의 꽃입니다. 그러므로 남극에 가서 피나, 북극에 가서 피나, 동극에 가서 피나, 서극에 가서 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초민족적인 결혼관이 가능합니다. (101-74)
그래서 사랑은 남자의 사랑도 귀하고 여자의 사랑도 귀합니다. 천하를 점령한 장군이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라 하더라도 여자의 사랑 앞에는 무릎을 꿇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그렇게 위대합니다.
아무리 가냘픈 여자라고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으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돌아가라면 돌아갑니다. 거기에 사랑이란 뿌리가 철옹성같이 달려 있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174-31)
극과 극을 왕래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의 힘
이렇게 보면 사랑이란 것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합니다. 이 모양은 둘의 자리로 보이지만 이 둘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위가 되면 하나는 아래가 되고, 하나가 동이 되면 하나는 서가 되고, 하나가 남이 되면 하나는 북이 되고, 하나가 앞이 되면 하나는 뒤가 됩니다. 어느 곳, 어느 환경에서나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는 능동성을 지닌 것이 사랑입니다.
선생님은 국제결혼을 많이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시킨 가정들과 언젠가 2주일 정도 같이 생활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여자와 미국 남자가 결혼한 부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서로 원수처럼 생각했는데, 사랑을 가지고 결혼해서 살다보니 국가 감정 같은 것은 자연히 사라지고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은 전부 다릅니다. 키로부터 모양으로부터 말하는 것이 전부 다릅니다. 밥 먹는 것까지 전부 다릅니다. 80퍼센트 이상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사는데, 선생님이 그들에게 어색한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까 '사랑이면 그만입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답이었습니다. 그거 옳은 말입니다.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육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너희들은 하나돼야 한다'고 해서 하나될 수 있느냐? 아무리 교육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랑은 한번 불이 붙게 되면 화(和)해 버리고 동일화시킵니다. 국경을 삼켜 버리고,문화 배경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전통의 복잡한 것도 소화시키고 완전히 하나 만듭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랑이 위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놓고 죽느니 사느니 하고 야단합니다. 사랑을 놓고 생명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에 30년 50년 살던 일생을 한꺼번에 뒤집어박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한마디 함으로써 냉정하게 극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극과 극으로 수시로 왕래할 수 있는 힘의 작동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 사랑은 만민이 좋아하는 사랑이요, 만민이 환영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고 싶고, 살고 싶고, 죽고 싶어합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3-138)
사랑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남자를 짓고 여자를 지었습니다. 지을 때 사랑을 중심으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에서부터 나왔으니, 근본에서 나왔으니 근본에서 나온 결과적 존재가 그러니 하나님도 사랑을 제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볼 때 '참된 사랑은 이웃이 보호해야 되고, 만물이 보호해야 되고, 천운이 보호해야 되고, 하늘땅이 보호해야 된다' 하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모순이 아닙니다. 귀한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생활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귀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서로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참된 사랑이 없는 곳이 사망의 세계, 곧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세계는 살벌한 세계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처끼리 살더라도 사랑이 있다면 냉기가 돌지 않고 훈훈합니다.그렇지 않고 앙상한 뼈만 남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고 할 때는, 누가 들어갔다가 5분도 안 돼서 뛰쳐나오고 싶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둘이 이마를 맞대고 역사를 말하면서 살면, 그 말을 듣고 싶고 알고 싶어합니다.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판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신비스럽다면 무한히 신비스럽습니다. (211-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