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의 속성
참사랑은 우주의 핵심이요 수직과 수평의 합착점이다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철퇴를 박아 넣는 착지점이 수직의 핵심입니다. 수직선은 가장 짧은 거리, 직단거리입니다. 그 직단거리가 되는 점은 수직점밖에 없습니다. 90.1도도 안 되고 89.9도도 안 되고 정확히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도 그 수직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수직점에 섰다면, 인간은 참마음을 갖게 되어 절대적인 주체 앞에 몸 마음이 자동적으로 하나됩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받은 경우에도 참사랑은 90각도 외에는 절대 없습니다. 참자녀의 사랑, 참부부의 사랑, 참부모의 사랑도 그 수직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평면적 참사랑도 수직선에 대하여 90각도를 이루고 있으므로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짧은 거리, 수직이 되는 최단거리에 맞출 수 있는 그 길은 90각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90각도로 연결되어야 본연의 심정인 하늘과 땅의 결착점이 생깁니다.
인간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직과 수평을 결착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결착시킴으로써 모든 존재의 위치와 모양, 형태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계를 할 때에는 90각도로 맞추어서 합니다. 모든 것을 수평과 수직을 중심으로 하여 선을 그으며 맞았다 빗나갔다 하는 것을 결정합니다.
'양심적이다' 하는 말은 수직에 맞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양심은 옳습니다. 옳다는 것은 직단의 위치에 서 있는 일점을 점유하는 수직선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거기에 자동적으로 수평의 위치를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핵심점, 공명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체가 될 수 있는 모든 곳에 이르는 결착점은 이 일점밖에 없습니다. 이 일점을 무시하면 상대세계는 붕괴되어 버립니다. 그 일점을 중심으로 보면 구체가 생깁니다. 동물, 광물, 식물, 인간, 우주, 모두가 그런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봐도, 전자 구성을 봐도 다 주체가 있어서 이 주체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러냐? 천지 창조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 사랑이 우주의 핵심이 되고, 그것이 수직과 수평의 합착점이며 모든 존재의 씨가 됩니다. 이것이 기원입니다.
식물에 있어서도 그 방향을 찾는다면 이런 사랑의 이상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동서남북 사방이 수직과 수평의 교차점에서 자기 존재를 중심으로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種)의 기준을, 종의 권한을, 그 원점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우주는 그것을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213-255)
사랑의 상대권이 성립되면 삼자의 개입을 절대 불허해
이런 원칙적인 이론이 있기 때문에 진화론은 말도 안 됩니다. 아메바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했다는 것은 수천 단계의 상대권을 통과한 사랑의 탄생이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수컷 암컷의 사랑 관계를 거치지 않으면 그 이상의 것이 태어나지 않게 돼 있는데, 수컷 암컷, 남자 여자의 사랑 관계를 진화론에서는 빼놓고 있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을 결혼시킨다고 해서 인간 아기가 태어나겠습니까? 절대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에 있는 어떤 존재도 사랑의 상대권이 성립된 곳에는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 앞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남편은 없습니다.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남편 앞에 자기보다 더 예쁘고 훌륭한 여자가 나타나는 것을 원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이건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시집을 가서 첫날밤에 '엄마, 우리 방에 들어와서 같이 자요' 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해서 결혼 첫날밤에 '아버지,우리 방에서 같이 있어요' 하는 아들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 아버지도 미친 사람이고, 어머니도 미친 사람이고, 아들딸도 미친 사람입니다. 사랑이란 단 둘이 하는 것입니다.
동물세계는 어떠냐? 동물의 세계도 같습니다. 상대관계를 맺기 전에는 수컷과 암컷이 서로 흩어져서 살지만, 일단 상대관계를 맺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면 제삼자의 개입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새를 잡아먹어 보기도 하고, 관찰해 보기도 하고,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 것은 곤충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삼자가 개입하면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그런 내용을 생각해 보면 진화론은 거짓말 이론입니다. 진화란 수천 단계의 사랑 관계를 거쳐서 그것을 직선적으로 묶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두 점을 연결한 것이 직선입니다. 직선에서는 증가가 없습니다. 직선 자체는 절대 증가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면 직선상에 또 하나의 점을 누가 충족시켰느냐? 그것은 직선으로 연결된 두 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른 존재가 개입하지 않으면 제3점은 생기지 않습니다. 세 점에서부터 증가가 가능합니다. 세모에서 네모로, 네모에서 원체로 변합니다. 그렇게 해서 수천 점이나 증가합니다. 연장 기반의 방향에 있어서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제3점을 누가 개입시켰느냐? 직선 그 자체로는 못 합니다. 직선 그 자체가 제3점을 개입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학에서는 반드시 입력보다 출력이 작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용해서 나온 결과체가 더 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건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213-256)
참사랑의 관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크다
참사랑의 관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그래서 역사상의 성인들이 그 시대에 박해를 받고 사라졌지만, 그들은 입력보다 출력이 커지는 참사랑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다보니 우주 창조가 가능했습니다. 투입하면 커집니다. 크고, 크고, 크고, 크고,더 크게 된다는 것입니다. 투입하는 심정권이 있으면 생명의 존재기대는 영원히 남습니다. 그것은 참사랑을 하나님 자신이 영원히 투입함으로써 이론적으로 영생할 수 있습니다.
참된 절대적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의 상대는 자신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면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도 자신의 자녀가 자신보다 훌륭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어디에서 유래됐느냐? 하나님에게서 유래됐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한다면 도대체 그 하나님의 상대는 누가 될 것인가? 하나님은 누구에게 '내 상대는 너다!' 할 수 있겠는가? 부모의 욕망을 역사를 통해서 한 번도 완성시킨 예가 없습니다.
자기 사랑의 이상상대는 모든 것을 충족시킵니다. 전체를 완성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욕망은 최고의 존재인 하나님을 점령하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까지, 하나님이 숨기고 있는 비밀의 보석함까지도 점령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기를 원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참사랑의 상대관계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런 하나님의 상대자로 창조된 인간을 인정할 경우 영생의 이론은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너 몇 살까지 살고 싶어?' 하고 물으면 '영원히 살고 싶어' 그럽니다. 눈도 그렇고, 코도 그렇고, 모든 세포가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근본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에 따라서 근본적 결과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을 원합니다. 누구나 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합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아야 하고, 올해보다 내년이 더 좋게 되기를 원합니다. 청년보다 노년이, 이 시대보다 미래가 더욱 좋게 되기를 원합니다. (213-258)
참사랑에는 소모가 없다
참사랑에는 소모가 없습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집니다. 역학의 원칙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되는 것이지만, 참사랑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소모가 안 되고 커 갑니다.
선생님이 세상에서 40년 동안 반대받고 손가락질받으면서 어떻게 커 왔느냐 하면, 사랑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을 뿌리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지었으므로 참사랑이 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따라갑니다. 친구들 가운데서도 정이 통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내는 남편이라는 사랑의 주류 줄기가 있기 때문에 남편을 따라가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류에 서는 것입니다. (219-18)
역학에서는 입력이 출력보다 크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모든 비준이 핵에서 생깁니다. 핵의 자리에서 상대에게 공급하고 남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공급하고 모자라는 자리가 아닙니다. 참사랑은 상대가 되는 그 전체에게 나눠주고도 남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운동을 하면 할수록 커 갑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면서 선물을 갖다 줬다면, 그것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1백원짜리라 해도 거기에는 사랑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은혜를 갚을 때에는 그 이상 것을 사줍니다. '1백원짜리를 사 왔기 때문에 나는 90원짜리를 사서 갖다 주겠다'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백에 플러스해서 주고 싶은 것이 우리 본성의 마음입니다. 참사랑의 근원지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향하는 것에는 마이너스가 되지 않습니다.
성현들이 그 시대에 죽음을 당했지만 어찌하여 역사과정에서 세계 사람들에게 추앙받게 됐느냐? 예수님은 목수의 조수밖에 안 되는 무가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은 뒤에 어떻게 세계를 사랑권으로 품을 수 있었느냐? 참사랑의 씨는 소모가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역사적 사실입니다. (219-22)
사랑은 모든 것을 화합시킬 수 있는 것
처녀가 사대부 가문에 시집을 간다고 합시다.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로부터 시어머니 시아버지, 사돈의 팔촌까지 있는 층층시하의 사대부 집 양반의 세도가 얼마나 큽니까? 또 권위의식이 얼마나 큽니까? 그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도의적인 생활법도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다리 하나도 마음대로 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처녀로서는 '시아버지가 어떻게 보겠나? 시어머니가 어떻게 보겠나? 신랑이 어떻게 보고, 시삼촌이 어떻게 보겠나?' 하고 걱정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솔직하고 단순합니다. 한 가지밖에 생각을 못 합니다. 남자같이 복잡하게 생각했다가는 결혼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신랑이 뭔지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를 다 버리고 신랑을 찾아 결혼합니다. 그런 요사스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조화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이 사랑의 힘입니다.
층층시하의 사대부 가문으로 시집가서 사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이면 그만입니다. 시어머니한테 매를 맞고 궁둥이에 시퍼런 혹이 생겨서 아무리 해도 안 낫는데 남편이 혀로 핥아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천년 사연이 다 녹아납니다. 사랑은 그렇게 위대합니다. 그런 남편을 만나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자 눈이 아무리 독사 눈처럼 생겼더라도 사랑하는 남편을 대할 때는 독사 눈이 되지 않습니다. 비둘기 눈이 됩니다. 아무리 입술이 독사 입같이 생겼더라도 남편 앞에서는 어머니 젖꼭지 같은 입술이 됩니다. 빨고 빨고 빨더라도 좋습니다. 무엇이 그런 조화를 일으키느냐? 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사랑은 없는 것 같지만 미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이 꽃을 피우면 꽃이 다 질 때까지 천하가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꽃을 피우느냐? 여자에게만 핍니까, 남자에게만 핍니까, 남자 여자에게 다 핍니까? 사랑의 꽃은 남자에게도 피기 시작하고 여자에게도 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돈 사람입니다. 꽃이 어쩌면 그렇게 자기가 필요로 하는 그런 배필을 운반해줄 수 있는 벌이나 나비가 좋아하는 향기를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자연히 그렇게 됩니까? 만일 벌이나 나비가 없다면 그 향기는 아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 향기는 무엇에 쓰겠습니까? 남자가 없다면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아무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우주의 옷과 같고, 부처님 상(像) 이마에 박힌 보석과 마찬가지입니다. 꽃과 같은 그런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거기에 걸려 사는 것입니다.
남자가 태어나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뭐냐? 여자가 태어나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로 태어난 것이 남자 여자입니다. 이 말은 밤에 들어도 좋고 낮에 들어도 좋고, 자는 여자한테 주먹을 한 대 질러 놓고도 이 말만 하면 '좋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화합'의 화는 '화할 화(和)' 자입니다. '될 화(化)' 자도 있는데, '될 화(化)' 자하고 '화할 화(和)' 자하고 어떻게 다르냐? '될 화(化)'는 본질이 변하는 화학적인 것을 말합니다. 화학은 실험실에서 약품을 넣어 본질을 변화시켜서 화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할 화(和)'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화합하는 것은 남자면 남자의 본질이 변하지 않고, 여자면 여자의 본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본래의 모든 소질이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전적 소성까지도 변하지 않는 개체 인격 전체를 발굴시켜 나오면서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서 화하는 것입니다. 그런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학문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화합시킬 수 있습니다. (181-25)
사랑이 가지고 있는 특권
그러면 사랑의 속성 가운데는 무슨 권리가 있느냐? 동위권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하나님이 계시는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야, 왜 와?' 그러지 않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인데, 부인이 아주 못생기고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부인이 남편이 있는 자리에 가면 모든 각료들이 남편을 대하듯이 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동참권이 있습니다. 하나가 어디에 가든지 거기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어디에 갈 때 떼어놓고 다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다니고 싶은 것이 남자나 여자의 바람입니다. 여자들은 밥을 지어놓고 나가 돌아다니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같이 먹고 싶어합니다. 자는 것도 같이 자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안 돌아오면 문제가 벌어집니다. 동참권을 치면 절대로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에는 소유권과 상속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누구의 것이 되느냐? 사랑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136-118)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아무리 낮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어떤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휙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하루 저녁에 그 자리에 동참합니다. 아무리 여자가 못나고 배운 것이 없어 무식하다 하더라도, 양가집의 잘난 아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붙들고 늘어지면 할 수 없습니다. 그 남자와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남자가 가진 모든 것은 여자 것이 됩니다.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을 갖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합니다.
사랑에는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일체, 즉 통일권이 벌어질 때에는 대등한 가치의 상속권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시골의 못생긴 여자와 사랑을 했으면 자기가 사랑한 그 여자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여자를 차 버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도 그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미천한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과 사랑하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로 비약합니다. 또 그 사랑과 하나된 후에는 모든 상속권을 내가 인수할 수 있습니다.그러니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것은 많지만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잘났더라도 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절대 대상으로 지은 인간을 백년쯤 살다가 죽게끔 만들었겠습니까? 절대적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의 대상적 가치로 지은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으로 영생한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니 그 사랑을 영원히 바라는 하나님 앞에서 없어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영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써만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왔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랑은 천지의 어느 방향에나 합격입니다. 만사형통입니다.
영생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영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이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더라도 보호해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그 부모가 죽더라도 자식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천리 대도(大道)의 원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랑하는 아들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참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면 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는 자는 하늘나라가 내 나라요, 하늘의 왕궁권을 내 왕궁권으로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영계는 사랑의 공기로 꽉찬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가는 곳에는 나도 언제나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계는 어디나 내 세계입니다. (142-278)
사랑은 영원히 계속해도 싫지 않다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감정이나 감성, 느낌은 영원히 계속해도 싫지 않습니다. 또 사랑으로 찾아와서 바라보는 그 시선은 '나만 봐라'하는 식입니다. 무엇이든지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은 어머니가 학교에 올 때는 어머니가 못생겼더라도 잘 입고 오기를 바랍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게 잘생겼다고 인정하는 어머니라 하더라도 학교에 오는데 아무렇게나 하고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잘 입고 오기를 바랍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또 안팎만이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걷는 모습이 전후 좌우로 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때 흠잡을 수 없어야 아들딸이 좋아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모든 것에서 드러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을 때에는 전부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시집을 잘 갔느냐 못 갔느냐 하는 것은 신랑이 사랑해주느냐 사랑해주지 않느냐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친구들끼리 만나서 얘기할 때'너 시집 잘 갔어?' 하고 묻는 것은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갔어?' 또는 '지식 많은 사람에게 시집갔어?' 하는 뜻이 아닙니다. 시집 잘 갔느냐 하는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신랑이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해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갔다고 시집을 잘 간 것이 아닙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권력도 있다가도 없어집니다. 지식이 있다 해도 지식으로 모든 것이 처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이 너를 지극히 사랑해주느냐?' 하는 것을 중심으로 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도 사랑으로 보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일할 때에는 밤을 새우더라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사랑의 길은 지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힘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 할수록 점점 증가하고 빨라집니다. 점점 빨라져서 어떻게 되느냐? 점점 빨라지면 날아갑니다. 축보다 더 빨리 돌면 휘익 납니다. 빨리 도는 것은 날아가고 싶어서입니다. 허공 가운데 날아가고 싶어서 빨리 돕니다. 고착된 축을 중심으로 빨리 돌 때는 한 자리에서만 도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면서 돕니다. 빨리 돌면 쑥 올라가고 천천히 돌면 내려옵니다. (198-70)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좋고, 노는 것보다 좋고, 잠자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통일교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이들의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볼 때 밤에 잠자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 이상 충격적인 장면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해먹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들으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더라도 그 생각이 언제나 자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미 사랑의 줄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들은 사람은 언젠가는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찾아옵니다.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잘될 것 같은데 안 됩니다. 그래서 지지리 고생하다가 또 찾아옵니다. (144-260)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다
인간은 어머니 사랑도 필요하고 아버지 사랑도 필요합니다. 그 마음은 아이 때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렇습니다. 그건 발전이 없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얼굴을 딱 보고 말은 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먼저 어머니 품에 안기겠다고 궁둥이를 들이밉니다. 사랑의 힘은 끊임없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도 사랑의 힘에 의해 살려고 그러고, 커서도 사랑의 모체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 때에는 부모를 떠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불쌍하냐? 밥이 없어서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좋은 고아원은 오히려 넉넉히 사는 집보다 낫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고아원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입고, 아무리 노래를 매일같이 하고 춤추며 살고, 희희낙락하는 소리가 담을 넘어서 동네의 모든 사람에게 소문났다 하더라도 고아원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아이는 없습니다.사람은 사랑의 품에서, 사랑의 그늘에서 살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사랑은 혁명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과정에서 제도가 변하고 어떻다 해도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그 사랑 속에서 자란 자녀가 사랑하던 그 방식은 역사가 천년 만년 지나더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동물의 어미가 새끼 사랑하는 것을 혁명할 수 있습니까? 위대한 어떤 존재가 새끼를 낳은 한 쌍을 불러다 놓고 '너희들끼리 처음 만나 지금까지 좋아해서 새끼를 낳았지만, 새끼를 낳아 놓은 다음에는 그 새끼를 절대 사랑해서는 안 돼! 그러면 죽인다!' 한다고 해서 그 어미가 사랑하지 않느냐? 거기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억천만년이라도 순환의 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랑에는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습니다. (137-215)
존재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은 사랑
변하는 것 중에는 귀한 것이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굳기에서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보석 취급을 받는 것이요, 황금은 누런 색깔에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진주는 조화된 우아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변치 않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왜 인간은 귀하다는 보물들을 변치 않는 특성을 중심하고 책정했느냐? 그것이 우주의 모든 표현의 방법입니다. 존재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우주 측정에서 전체를 측정할 수 있는 가치기준, 제일 첫째 가는 기준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변치 않는 사랑, 깨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깨질 것 같은데 깨지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 표준을 변경시킬 수 없고, 인간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영원불변이면서 안팎의 보화의 가치를 가지고 땅 끝이나 어디나, 지옥이나 천상세계 어디나, 밤낮을 극복하고 지역을 극복하고 거리를 극복하고, 즉 시공을 초월해서 그 절대적 측정의 기준, 비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지구도 위도 경도에 있어서 영점(零點)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은 아무리 변화시키려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게 변하면 세계에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게 없어도 된다면 질서의 세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생겨날 때에도, 난자와 정자가 합해 영점 기준에서부터 비례적으로 원소가 화합해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르면 절반으로 나눠집니다. 두 쪽으로 나눠지는 금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주에서 측정할 수 있는 영원불변의 모든 존재가 비준을 맞춰서 그 등차 위치를 결정하고 싶은 그 본래의 것, 하나님도 따르고 전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고 황금 덩어리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물론 하나님이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하나님 혼자서는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둘이 소유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사랑을 찾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측정 원기가 뭐냐? 우주만상의 존재세계에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측정 원기가 무엇이겠느냐?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사랑길을 간다면 누구나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랑길을 찾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순정이 뿌리에 달려서 우리 마음 보따리가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랑의 본성이 되어 있느냐?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합니다. 왜 갈대와 같다고 하느냐? 갈대는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면서 소리를 냅니다. 갈대는 유난히 소리가 납니다. 갈밭에 가 보면 바람이 약하게 불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바삭 바삭 바삭' 소란스럽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찾아간다면 내 자체는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성을 갖고 있느냐? 그 소성은 내 본성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사랑입니다.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는 옛말도 있지만,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도 원하지 않습니다. 또 아버지도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어머니의 사랑의 표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같은 표정이라도 순정이 담긴 변함없는 사랑의 표정을 원합니다. 아무리 잘난 아버지라도 그걸 원하지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본래 우주에 절대적으로 설정한 원기의 표준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평형선을 갖추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질서가 생깁니다. (137-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