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의 자랑
우리 인간에게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자기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본성의 마음입니다. 미국 사람이라면 미국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것을 갖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자랑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은 누구나 다 좋아하고 누구나 다 원하는 것입니다. 하늘이면 하늘, 땅이면 땅 어디서나 다 원하는 것을 가져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을 자랑한다는 것은 미국을 자랑하는 것이지 세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미국을 제외한 그 외의 세계에서는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우주 앞에는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미국 자체는 미국 국민만을 위하는 기준에서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을 넘어 세계를 위하는 내용의 자랑이라면 그것은 미국의 자랑도 되지만 세계의 자랑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어느 누구나 갖고 있고, 어디에나 적용되며, 높으나 낮으나 모두 바랄 수 있는 것이지, 자랑할 것은 못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나를 자랑한다' 할 때,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자랑해야 하느냐?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터전이 무엇이냐? 이 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동물의 사지백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영계나 온 우주가 바라보고 기준을 삼으려고 하고 표준 하려고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을 비교할 때 몸이 마음을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느냐, 마음이 몸을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느냐? 아무리 자랑할 것이 있더라도 변하는 것이나 있다가 없어지는 일시적인 것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자랑할 수 있으려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변치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가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무엇인가가 전체의 기준이 돼 있어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전체가 그걸 원할 수 있는 기준이 돼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과 인연이 돼 있어야 자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과 상관관계, 연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런 기준이 되는 것은 몸이겠느냐, 마음이겠느냐? 이것은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에게는 마음, 즉 양심이 있습니다.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 말을 하다가도 양심적이냐를 생각합니다. 이 마음은 어디에나 통합니다. 과거에도 통하고, 현재에도 통하고, 미래에도 통하고 영원합니다.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모든 것의 주체가 되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더 좋은 주체 앞에 대상이 되려고 합니다. 때로는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중심이 되려고 하고, 때로는 절대 중심 앞에 상대가 되려고 합니다. 마음은 그런 관계성을 언제나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혼자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부 나누려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자기 혼자만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어느 나라, 어떠한 역사시대에서도 환영하게 마련입니다. 통하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무엇을 자랑해야 하느냐? 마음을 가진 것을 자랑해야 됩니다. (162-38)
인간의 마음과 몸은 어디로부터 왔느냐
그러면 마음은 어디에서 왔느냐? 자랑할 수 있는 마음의 근원, 마음의 조상은 어디냐? 마음을 자랑하려면 아버지의 마음, 할아버지의 마음을 따라서 맨 근원적인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무엇을 자랑하려고 하느냐? 조상들 중에서 제일 멋진 분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 조상 가운데 제일 위대하고 제일 큰 분은 누구냐? 제일 자랑할 수 있는 근원 되는 분은 누구냐? 물론 우리 조상들이지만 결국 하나님에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원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움직이려고 하는 대상의 위치에 있는 나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맨 근본 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은 어디로 가느냐? 그 근본 된 존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에 연결됩니다. 이렇게 볼 때, 참된 마음이 있는 곳에는 참된 신이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의 마음을 잡아당기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보이지 않는 마음을 중심으로 이 우주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된 대표의 자리에 자기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조상도 하나고, 아무리 넓더라도 반드시 하나의 관계에 의해서 연결된 연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상호관계 속에서 떨어져 나가 자기에 대해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자랑하려고 합니다.
마음은 맨 근본 된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몸은 어디에서 왔느냐? 오관을 가지고 먹고 살고, 생리적 작용이라든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같은데, 이 몸은 어디에서 왔느냐? 이것을 따져 보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들어가게 되고, 맨 나중에는 하나님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보이느냐? 몸은 보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몸은 어머니 아버지, 인류 최초의 조상에게서 나왔습니다. 남자나 여자에게 '당신 어디에서 왔소?' 하고 물으면 '우리 조상에게서 왔소' 합니다. 조상에는 반드시 남자 여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어 있습니다. (162-40)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랑할 수 있는 것
그러면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할 수 있는 공통적인 분모가 무엇이겠느냐? 어떤 사람은 '나는 아버지에게서 왔다' 하겠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관계되어 있는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만 주장하는 여자는 '나는 할머니밖에 필요없다' 하는 사람이고, 남자만 주장하는 남자는 '난 할아버지밖에 필요없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몸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태어나게 되었느냐?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서로가 세계에서 제일 자랑하고 싶을 만큼 제일 좋았던 것은 무엇이냐? 여자에게는 남자요, 남자에게는 여자입니다. 물론 남자는 남자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자랑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하나돼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여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자랑하지 못한다면 아주 불행합니다. 여자가 아무리 잘났더라도 자기보다 남자를 더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변하지 않는 공통성을 갖고 관계맺을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남자 여자가 서로 자랑하는 것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야, 이것 좋구나!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전체가 좋다' 할 수 있고, 변치 않는 공통성을 지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마음은 하늘과 연결되고 몸은 조상까지 연결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이 조상은 무엇으로 연결되느냐?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은 뭐냐? 안팎이 같은 사랑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같고, 현재와 미래가 같습니다. 참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남자도 자랑하고, 여자도 자랑하고, 하나님도 자랑합니다.
사람은 아주 이해타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아이구, 나에게서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으니 좋지 않다' 이럴 수 있습니다. 남자도 '여자에게서 시작하면 난 싫다' 하고, 여자도 '남자에게서 시작하면 난 싫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남자, 여자 모두에게서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동기를 추구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려니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3자회담을 해서 뿌리와 가까운 데다 갖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뿌리와 가까운 데다 사랑을 갖다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더라도 이 사랑을 마음대로 못 가져갑니다. 아무리 여자가 조잘거려도 못 가져갑니다. 남자가 아무리 변덕이 많아도 못 가져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랑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랑 앞에는 하나님도 절대 복종합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아담 해와에게 적용된다고 하지만 수천 대 뒤에 있는 남자 여자에게도 적용되느냐? 수천 대 뒤에 우리가 어떻게 아담 해와 자리에까지 갈 수 있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몸은 불가능하지만 마음은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순식간에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순식간에 미국에 갔다 올 수 있습니다. 전파보다 빠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수신장치입니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전파를 듣거나 볼 수 있는 수신장치인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것이 마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방송국이라면, 그 방송국에서 보내는 것을 수신할 수 있는 수신장치는 마음입니다. (162-41)
자기가 귀하냐, 상대가 귀하냐
우리 인간에게는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무한한 하나님을 대신해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고, 마음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모두가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라면 부부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그 말은 과거에도 하나되어 있어야 하고, 현재도 하나되어 있어야 하고, 미래에도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일 부부가 두 마음을 가졌다면 사탄세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입니다.
아내의 마음은 어떠한 남편을 사랑하려고 하느냐? 우주를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고, 전체를 대표한 남편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돈을 대표하는 남편, 혹은 권력을 대표하는 남편, 지식을 대표하는 남편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식이나 권력, 돈은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네가 지식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권력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돈이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 공통적이 아니고 편파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자들 중에는 돈 잘 버는 남편을 사랑한다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여자는 망합니다. 그런 사랑은 이 세계에 아무 도움도 안 되고 방해만 됩니다. 이 인류세계의 이상적 사랑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하느냐? 먼저는 내가 마음을 가진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음은 가졌지만 몸이 없으면 사랑을 잡아둘 수 없고 사랑을 성립시킬 수 없기 때문에 몸을 가진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 몸을 가졌고 여자는 여자 몸을 가졌는데, 어떤 몸을 자랑할 것이냐? 남자는 남자의 몸을 자랑하려고 하고 여자는 여자의 몸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여자 몸을 아무리 혼자 자랑하더라도 하나님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우주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남자가 남자 몸만을 사랑하고 여자가 여자 몸만을 사랑해서는 사랑의 세계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귀하냐, 상대가 귀하냐? 여자가 아무리 잘나고, 화장을 꽃과 같이 하고, 비단옷과 다이아몬드로 치장했다 하더라도 남자가 없는 데서는 허깨비입니다. 남자도 아무리 똑똑하고 부족한 것 없이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여자가 없는 데서는 허깨비입니다. 그러니 남자가 남자 자기를 아무리 자랑하고 여자가 여자 자기를 아무리 자랑하더라도 그건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자기 상대가 있어서 같이 다니는 것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하나돼 있는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이다. 대상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는 필요없다' 이럴 수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도 자신을 부정하고 아담 해와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 찬양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 하나님의 대상권을 이루어 사랑이 움트면, 우주 앞에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물론이요 보이는 세계까지 자랑하고, 사람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야 하나님도 내 것이고 아담도 내 것이다, 해와도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요, 여자에게는 남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세계의 모든 황금과 지식과 권력을 하늘땅까지 쌓아놓은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여자가 이것으로만 좋아하겠습니까, 이걸 다 타고 넘어 남자를 더 좋아하겠습니까? 그 세 가지를 전부 버리고 남자를 찾아갈 것입니다. 만약 어떤 독재자가 나와서 60억 인류를 남자와 여자 절반으로 갈라 놓고, 여자는 남자를 못 찾아가게 하고 남자는 여자를 못 찾아가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 이상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매일 시위를 하겠습니까, 남자들이 매일 시위를 하겠습니까?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매일 '까악까악' 까마귀 울듯이 시위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세상인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야, 내 앞에 남자 여자가 섞여 있는데, 난 다 필요없다' 하면 안 됩니다. 그 남자가, 그 여자가 정말 귀하다는 것을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저렇게 남자가 귀하구나', '저렇게 여자가 귀하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62-44)
남자와 여자의 완성은 사랑을 찾지 않으면 안 돼
우리 인간은 돈을 갖고 좋아하다가 죽는 것보다도, 권력을 갖고 행사하다가 죽는 것보다도, 지식을 갖고 자랑하다가 죽는 것보다도 못살고 아무렇게나 살더라도 사랑하다가 죽는 것을 원합니다.
왜 그러냐? 사랑을 통해야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을 가지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하나님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귀합니다. 사랑하면 인류와 통하고, 사랑하면 하나님과 통하고, 과거․현재․미래와 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환영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도 역시 사랑 때문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한테 절대 필요한 것은 남자입니다. 그 남자는 잘난 남자입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있으면 좋지 않은 것이 없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못생겨도 멋있습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잘생기고 고운 것은 그 안이 나쁘지만, 못생긴 것은 그 안이 좋습니다. 이렇게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인은 박복하고 변하기를 잘하지만, 호박처럼 못생긴 여자는 내적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양심도 아름답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여자가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여자의 완성은 사랑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가장 귀중한 진리입니다. 진리가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의 안테나가 있습니다. 남자에게도 사랑의 안테나가 있고, 여자에게도 사랑의 안테나가 있습니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 몸의 안테나는 뭐냐? 안테나에는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몸의 안테나가 인간의 생식기입니다. 그건 지성소입니다. 그러니 보호해야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그 안테나를 절대 다른 사람이 만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남자 여자가 결혼을 하는데, 왜 하느냐? 인간은 상대적인 안테나를 가졌기 때문에 상대를 찾아가야 그 안테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자는 남자를 통하지 않으면 그 안테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남자도 역시 여자를 통하지 않으면 그 안테나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높은 것을 상징하고, 여자는 깊은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양적이고 여자는 음적입니다.
그러니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크면 클수록 남자를 찾아가고, 남자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크면 클수록 여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남자 여자 둘이 품으면 돌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돌게 되면 높은 데도 갈 수 있고 낮은 데도 갈 수 있고, 동에도 갈 수 있고 서에도 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고는 평등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색깔이 없이는 평등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162-46)
우주의 근본 진리
그러면 여자는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에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남자도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위하여 존재한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위하는 데에는 하나되고 자기의 소유권을 확대하는 천리의 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여자의 마음을 자꾸 캐 들어가 보면, 그 마음 가운데서 참된 남자가 나옵니다. 그 남자가 자기 남편입니다. 그 참된 남자와 하나된 마음을 캐 보면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남자를 갖지 못한 아내는 참된 하나님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여자라도 참된 남자를 남편으로 삼지 못하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떠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그 남자의 불타는 마음속에는 아내가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왜 사랑을 찾아가느냐? 하나님에, 근본에 접촉하기 위해서 사랑의 길을 찾아갑니다. 내가 근본에서 나왔으니 이 길을 통하지 않으면 근본으로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못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와 연결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에 남자에게 여자가 있고 여자에게 남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체로 하는 사랑의 대상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가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찾아오고, 싸우면 싸울수록 하나님이 떠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 자리는 온 우주가 옹호하고 보호합니다. 잘살려고 하지 않고 잘되려고 하지 않더라도 우주가 보호하고, 전부 다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 진리입니다. (162-48)
사랑 없이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똑바른 마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똑바른 몸을 자랑해야 합니다. 왜 몸을 자랑해야 하느냐? 몸이 없으면 사랑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자랑하고 몸을 자랑하고, 그 다음에는 뭘 자랑해야 하느냐? 자기 상대를 자랑해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자랑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자랑해야 합니다. 자랑하는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첫째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되고, 둘째는 마음을 자랑해야 되고, 셋째는 몸을 자랑해야 되고, 넷째는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가 사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도 사랑 없이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찾으려니 아담 해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 없이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돼야 개인완성이 벌어집니다. 그 다음에 '가정' 하게 되면 아들딸이 나옵니다. 자녀가 나옴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왜 필요하냐? 사랑 때문입니다. 자녀가 왜 필요하냐?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는 위로부터 사랑을 이어받으려니 필요하고, 자식은 사랑을 전달하려니 필요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왜 슬프냐? 사랑을 이어받을 수 없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종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친족, 씨족을 중심으로 국가와 세계로, 점점 더 큰 데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에게 우주가 들어갑니다. 이런 작용을 합니다. 이런 작용을 무엇이 해주느냐?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종횡무진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남자라도 남자 혼자서는 안 됩니다. 여자만 있어도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 여자의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가 돌아갑니다. 남자 여자의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역사가 돌아가고 올라갔다내려갔다 합니다. 사랑의 힘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 집안을 관찰할 때에 세밀한 것까지 전부 다 관찰합니다. 높은 자리, 큰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 중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그래야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으로 화합하게 되면 만사형통(萬事亨通)입니다. (162-50)
이상적인 아내와 이상적인 남편이란 어떤 사람이냐
남자의 보물은 남자 자신이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의 보물은 여자가 갖고 있고, 여자의 보물은 남자가 갖고 있습니다. 엇바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생식기는 여자의 것이 아니라 남자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닙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부 자기가 갖고 있는 생리적 오관이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의 주인이 아니고 단지 관리인일 뿐입니다. 관리인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주인은 남자고, 남자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결혼은 무엇이냐? 남자 여자가 서로 주인을 찾기 위한 것이 결혼입니다. 대기 중에서 음전기와 양전기가 서로 찾아다니다가 만나면 벼락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남자 얼굴보다는 주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자기 주인을 찾기 위해서이므로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상적인 아내, 이상적인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 이상적인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이상적인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것이든 원하는 것을 다 해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편이 좋은 데로 간다면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전부 해줘도 되지만, 나쁜 데로 간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말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 말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하나에서 백까지, 좋은 의미에서 언제든지 거기에 순응하고 협조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개인에서 출발하여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세계 끝까지 가야 합니다. 남자 여자가 그렇게 되었다고 그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종적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귀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에서 가정으로 벌어지고, 종족으로 벌어지고, 민족으로 벌어지고, 세계로 벌어지면서 퍼져 나갑니다. 몇 대에 걸쳐서 점점점 넓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을 많이 갖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많이 가져야 그 종족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은 가정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필요합니다. 가정이 없으면 우주와 박자를 맞출 수 없습니다. 사회와도 박자를 맞출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아내를 자랑하고 아들딸을 자랑하는 사람을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자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남편을 자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아들딸을 자랑해야 됩니다. 그럴 때는 태양님이 '옳소!' 하고, 별님 달님이 '옳소!' 하고, 모든 주변이 '옳소! 그렇고 말고!' 합니다. 아들딸과 남편 아내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 만물들은 '좋습니다' 하고 전부 쾡창쾡창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달 밝은 가을 날 밤에 조용한 동산에 올라가 보십시오. 모든 곤충들이 관현악을 연주합니다. 삑 하면 짹, 찍 하면 짹, 전부 다 박자를 맞춥니다. 이것은 곤충 한 마리가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가 장단을 맞춰 관현악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그렇게 올라갔다내려갔다 합니다. 들어왔다나갔다 합니다. 또 커졌다작아졌다 합니다. 그게 이치입니다. 그러면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한 자리에서 전부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기를 좋아하는데, 거기에 가면 무슨 운동을 좋아하느냐?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면서 돌아가는 운동이나 밀었다젖혔다 하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모든 면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런 운동을 하면서 흥분하는 것입니다. (187-75)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사랑을 통해서 보면, 우리 한 개인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도 갖고 있고, 종족․민족․국가․세계를 갖고 있고, 하늘땅을 전부 갖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내 개인은 사랑을 중심으로 전체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 혹은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를 대표한 자입니다. 그걸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묶어집니다. (162-51)
앞으로는 결혼과 가정을 자랑해야
남자 여자끼리는 횡적 사랑밖에 안 되기 때문에 종적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사랑으로 하나님과 선생님을 중심으로 미래 후손들의 소망이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부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를 통해서 결혼해야 합니다. 부모를 통해서 결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종적 사랑의 관계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 종적 사랑의 관계를 참부모가 나타나서 세계적으로 묶어줘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색인종이 참부모를 찾아 세워야 미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니 결혼도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결혼과 가정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이상 원할 게 없습니다. 누구나 여기에 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1천 쌍이 합하면 1천 가정이 되고, 1만 쌍이 합하면 1만 가정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종족이 되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됩니다. 이 원칙에 의해서 가정에서부터 종족․민족․국가․세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니 첫째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둘째는 마음을 자랑하고, 그 다음에는 몸을 자랑하고, 그 다음에는 사랑을 자랑하고, 또 그 다음에는 가정을 자랑해야 됩니다. 세계에 이 이상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이 필요한 것은 가정에서 종횡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 없으면 안 되고, 부모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원칙입니다. 부모가 필요하고, 자식이 필요하고, 부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입장에 있다면 영계에 가나 어디에 가나 다 통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불합격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가 우는 것도 거기에 불합격되기 때문이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 우는 것도 거기에 불합격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불합격되기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불합격된 것은 우주의 힘이 내몰기 때문에 그 내모는 힘에 의해서 슬픈 것입니다. (162-51)
사랑의 전통을 실천하는 통일교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위해서 살라는 원칙을 세운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남자 여자가 위해서 사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사는 것도 사랑 때문이며,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사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보면 미국 사람은 전부 불합격입니다. 1백 퍼센트 불합격입니다. 미국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까, 불행한 가정입니까? 불행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전부 파괴하는 와중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러한 전통을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전통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정을 중심으로 우리는 첫째 사상적인 면에서 자랑하고, 둘째 전통적인 면에서, 셋째 실천적인 면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사상에는 개인적인 사상과 세계적인 사상이 전부 연결돼야 합니다. 다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뭐냐? 사랑을 중심으로 결합된 전통입니다. 사상적으로 개인과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전부는 그 원칙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깨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게 이상적입니다. 이 사상을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개인도 통하고, 가정도 통하고, 우주도 통하고, 다 통합니다. 과거․현재․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중심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진리에 입각한 사상을 갖게 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상으로 하나님까지 해방해야 합니다. 이 사랑의 사상은 모든 것을 완성시킵니다. 종교 완성, 철학 완성, 이상국가 완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의 전통입니다. 개인의 전통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같은 입장에서 그런 전통을 받아 가정기준부터 세계기준까지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왔다갔다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전통입니다. 원인에서 출발했으면 반드시 결과를 통해서 원인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합니다. 순환하는 전통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전통과 사상을 가지고 뭘 하느냐?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생활권에서 24시간을 전부 희생해야 합니다. 기뻐하면서 그렇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눈을 뜨면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런 사상과 전통을 세우기 위해 봐야 합니다. 손을 놀리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전통과 사상을 완성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을 중심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내가 혼자 가더라도 하나님을 대신한 사상적 대표자요, 하나님의 전통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싫어할 수 없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위해 사는 데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상대를 못 찾으면 사랑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위해야 됩니다. 이상적 기준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상대, 가정 상대, 종족 상대, 국가 상대, 세계 상대가 필요합니다. (16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