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랑을 중심한 본연의 인생길
우리 인간 생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우리 인간은 본연의 인간이 살아야 할 기준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통일원리를 통해서 창조이상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본연의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아담과 해와가 완전히 하나되어 종횡의 사랑이상권을 이루어 그 기준 위에서 생명의 뿌리를 박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 생명의 뿌리는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에게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면서 그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한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한 분에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이치는 상대적 관계를 갖지 않고는 작용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작용이 없으면 존재의 기원이 되는 힘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 성품을 실체로 전개한 표시체입니다. 해와도 하나님의 여성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표시체입니다. 즉 하나님의 내적 성품을 드러낸 존재가 아담과 해와입니다. 드러냈다는 것은 실체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동기를 드러냈다는 말입니다. 그 드러나지 않은 동기는 무엇이냐? 그것을 우리는 무형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뿌리인 하나님에서 남자와 여자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중심으로 다시 합하느냐? 통일원리에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분립되었던 것이 무엇으로 합하느냐? 사랑으로 합합니다.
우리는 숨을 쉬고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작용입니다. 숨을 쉬는 데도 반드시 갈라지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에서부터 뻗어나갔으니 그 동기를 닮아 작용을 연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걷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걸음 걷는 그 동기를 반복해서 먼 길을 갑니다. 우리 인생도 아침에 일어나 먹고 활동하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반복하면서 일년을 거쳐갑니다. 일년 일년을 거쳐 십년이 되고, 또 십년을 연장시켜서 일생의 길을 갑니다.
그러면 분립해서 전개된 아담 해와는 무엇으로 합하게 되느냐? 또 무엇으로 근원적인 존재와 가깝게 될 수 있느냐? 가깝게 할 수 있는 힘의 작용이 무엇이냐? 이것은 다른 힘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분립된 성품을 완전히 조화 통일시킵니다. (140-123)
몸과 마음을 분립시킨 동기가 뭐냐
아담 해와도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안이 되고, 몸이 밖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개체가 안팎으로 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된 남성과 여성이 또다시 주체 대상 관계에서 횡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도 안팎으로 하나되고, 남자도 안팎으로 하나되어 그 남성과 여성이 비로소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데는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본래 타락이 없었다면 몸과 마음이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도의적인 어떤 관념이나 생각으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힘으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과 마음을 분립시킨 동기는 사랑을 구체화(球體化)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구형화시키기 위해서, 사방으로 적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점에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에 활용될 수 있는 환경권을 만들기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부모를 생각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가는, 그 마음 줄기의 방향성이 무엇이냐? 마음은 부모의 사랑, 혹은 형제의 사랑, 나라를 생각하는 사랑, 세계를 생각하는 사랑, 그리고 하늘땅을 생각하는 사랑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전후․좌우․상하관계의 사랑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자리는 북쪽에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또한 남쪽에도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중앙에 가까이 서려고 합니다. 중앙 가까이에 서려고 하는 것은 중앙에 본래의 사랑, 종적인 우주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도 인간이 완성해야 인간과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 사랑의 길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분신화시킨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인간과 중심적 사랑의 길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140-125)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도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상대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못 이룹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 자신이 사랑의 본질을 갖고 있지만 그 사랑이 사랑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플러스가 작용하려면 마이너스가 있어야 합니다. 마이너스가 없으면 아무리 플러스가 작용하려고 해도 절대 작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이너스가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면 자연히 플러스도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자의 생리적 기관도 엇바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리적 주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해서 자기가 주인이 아닙니다. 여자가 갖고 있는 것은 남자가 주인입니다. 또 남자가 갖고 있는 것도 여자가 주인입니다. 그 생리적 기관의 중심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기관을 엇바꿔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우쭐대며 남자라고 자랑하고 다니지만, 그 남자의 중요한 사랑의 기관은 남자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 인간이 모르고 있습니다. 주인은 다른 데 있는데 남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주인같이 행세하니, 그것이 오늘날 인륜 도덕을 파탄시키는 악마의 행동으로 결실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가 왜 결혼하느냐? 요즘 미국에는 동성연애자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 '혼자 살아야 된다. 사랑하는 것은 동물과 같은데 무슨 가치가 있느냐?' 하면서 사랑의 몰가치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은 한때 향락의 표시지, 거기에 무슨 내적인 인연이 있겠느냐? 나와 너와 영원한 관계의 내용이 없다'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남자 여자의 사랑의 기관을 엇바꿔서 맡겼습니다. 남자의 귀한 사랑의 기관은 남자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귀한 사랑의 기관은 여자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 맡겼습니다. 서로 엇바꿔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야 하고,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야 하느냐? 그것은 자기 주인을 찾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못 만나면 안 됩니다. 못 만나면 천지이치에 부합되는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 우주는 주체 대상의 관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플러스 완전한 마이너스가 하나되었을 때는 이 우주가 옹호합니다. 그걸 침범할 때는 반발합니다. 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는 스스로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140-126)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해낸다
우리가 알다시피 플러스와 플러스는 반발합니다. 그러나 플러스 마이너스는 어떻게 되느냐? '이 녀석들아, 절대 합하면 안 돼!'라고 누가 명령하더라도 '너는 근본과 거리가 먼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근본은 그렇지 않아' 하면서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플러스 마이너스야, 하나되면 안 돼!' 한다면 '저를 짓기 전에 벌써 플러스 마이너스는 합한 것으로 있었소. 그런데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되면 안 된다고 하면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명령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걸 듣게끔 파탄시켜 놓는다면 천지가 분산돼 버립니다. 원소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완전한 마이너스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완전한 플러스가 없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완전한 플러스 입장에 있는 하나님 자체도 마이너스가 없게 될 때는 없어져야 된다는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해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해와를 아담의 갈비뼈를 빼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해와는 아담의 본을 떠서 만들었습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연히 생겨나기 때문에 아담이 완전한 플러스라면 완전한 마이너스인 해와는 아담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말이 됩니다. 이게 천지이치입니다. 이렇게 알고 보면 하나님은 참 과학자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남자를 지은 것은 그 완전한 남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플러스는 완전한 플러스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마이너스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인 여자를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근원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자라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대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완전한 플러스인 절대적 주체자라면 완전한 마이너스의 대상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플러스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마이너스를 만들어 냅니다. 완전한 인격자는 가만히 있더라도 그 환경의 모든 양심적인 존재들이 그 주변에 모여서 그를 닮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주체자 앞에 대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든 존재물, 모든 원소세계, 모든 물질세계는 움직입니다.
왜 그러느냐?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올라가서 뭘 할 것이냐? 모든 원소들은 한 단계 올라가면 높은 단계의 보다 원만하고 보다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하게 됩니다. (140-128)
인간은 무엇에 취해서 살아 가야 하느냐
우리는 자극적인 영화를 좋아합니다. 더 재미있고 더 자극적인 것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자꾸 마음이 끌립니다.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에는 모든 것이 모입니다. 그러니 우주의 중심적인 변화무쌍한 자극적인 모체가 있다면 그 모체 앞에는 모든 만물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소들도 전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작용을 하면서 높은 것과 합하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우주 창조가 가능했습니다. 그 높은 데에서의 자극적인 길이 뭐냐? 그것은 주고받음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소면 원소 자체들로서 운동하고 있다는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래서 더 차원 높은 데로 가려고 합니다. 그 자극은 모든 것을 완전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개구리에 전기를 통하게 하면 네 발을 떡 벌리고 눈은 반쯤 감고 쭉 늘어져 죽듯이 하나님도 그런 모양으로 취해서 아뜩하게 할 수 있는 그런 힘입니다. 하나님도 아뜩하길 바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으니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취해서 멍하고,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취합니다. 술에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취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라는 말이 나와서 안됐지만, 그 취한 맛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에 취해서 살아 가야 하느냐? 술에 취하면 자꾸 보급해야 됩니다. 자연적이 아닙니다. 춘하추동은 자연적이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자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보급로를 통해서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급될 수 있는 길만 끊어지면 그만입니다. 슬프게 됩니다. 슬프게 되었다가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히 보급되는 이 춘하추동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봄이 갔더라도 또 찾아옵니다.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히 사랑의 길은 찾아옵니다. 누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옵니다. 그리고 빨리 오라고 해도 빨리 오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의 길이여, 빨리 와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외친다 해도 완전한 사랑의 길은 자기 때가 되어야 옵니다. 오기는 오는데 자기 때에 맞춰서 옵니다. 막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때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때를 맞출 줄 모르고 제멋대로 사랑하는 마구잡이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게 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때를 맞춘 사람이 되면 그때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중앙에 와서 사랑의 주체가 됩니다. (140-130)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의 운동법칙
아담 해와가 성숙하면 보이지 않지만 사랑의 주관을 받습니다. 그리고 종적인 꼭대기에 있는 하나님이 내려와서 횡적인 입장의 양쪽 끝에 있는 아담 해와의 중앙에 와서 섭니다. 그렇게 종적 주체인 하나님이 횡적인 자리의 핵으로 있게 되면 아담 해와는 마이너스이므로 플러스인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종적인 핵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제자리에서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는 작용을 합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게 되면 가만히 있으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붙들고 키스를 할 때에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입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비비고 빙빙 돌면서 요동합니다.
종적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평형적으로 불이 타 몇천 도 되는 핵의 자리가 되어야 하나님이 내려와 부딪칩니다. 몇천 도 되는 힘을 강한 하나님의 사랑이 일시에 잡아당기니 굉장한 속도로 부딪치고, 부딪치면 자연히 '아이쿠머니야!' 하고 번개가 치면서 하나님이 뛰쳐 올라가고, 그 다음에 아담 해와는 달라붙습니다. 붙었다가는 또 '아이쿠, 이거 뜨거워 못 견디겠다' 이러면서 폭발작용을 합니다.
흐린 날 땅과 보이지 않는 공기가 결혼합니다. 먼저 약혼식을 하고, 그 다음에는 결혼식을 하고 '아, 됐다. 좋다!' 그럽니다. 검은 구름이 끌고 다니는 가운데서 조화가 벌어집니다. 무슨 조화가 벌어지느냐? 양전기가 생겨나면 땅에 음전기가 생겨서 만나는 조화입니다. '높은 데 올라가자. 높은 데 올라가자' 하면서 높은 데 올라가서 만나 벼락을 칩니다. 그게 양전기 음전기가 키스하는 소리입니다. 번갯불은 양전기와 음전기의 사랑의 빛입니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와 땅이 그렇듯이 우주 꼭대기에 있는 하나님 플러스와 땅 위에 있는 인간 마이너스가 합하면 '우르릉 꽝!' 합니다.
높고 낮은 상반된 위치에 있지만 돌아야 합니다. 돌기 위해서는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 수평선이 있어야 합니다. 고저를 가늠해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선이 수평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수평선에 선 것이 남자 여자의 사랑입니다. 남자 여자가 끝과 끝에서 중앙으로 모입니다. '아이고, 내 주인이 저기 있구나' 하면서 모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갈 때, 무엇이 꿈틀거리며 찾아가느냐? 사랑의 머리를 꿈틀거리며 찾아갑니다. 그렇게 만나서 하나되면, 그 하나된 사랑의 씨가 뭐냐? 사랑하고 남은 부산물이 뭐냐? 자녀입니다. 사랑하고 남은 부산물이 자녀입니다. 쓰레기 부산물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난 그 부산물이 '나'입니다.
요즘에 난(蘭)을 번식할 때 어떻게 번식하느냐? 난은 본래 뿌리로 번식합니다. 그런데 뿌리로 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난에서 세포를 채취해서 배양하여 번식시킵니다. 세포로 번식시킵니다. 병 같은 데에다 세포를 넣어 세포가 자랄 수 있는 영양소를 주어 배양합니다. 조그만 병 하나에 몇십만 개의 세포를 배양하는데, 그 세포 하나에서 빨간 난이면 빨간 난이 나옵니다. 앞으로 전부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식물도 그렇게 될 것이고, 사람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포 하나에 나 같은 사람 몇만 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세포 하나에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이가 있고, 모든 조화통이 들어가 있습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까? 창조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눈과 코의 위치가 바뀌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냥 그대로 틀림없이 된다는 것입니다. (140-131)
하나님과 나는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은 사랑이 그리워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플러스 사랑을 가지고 완전한 마이너스를 찾아 들어오니 자동적으로 창조원칙에 의해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러스적 하나님이 귀한 동시에 마이너스적 하나님도 귀합니다. 하나님이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주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주인의 자리를 하나님 속에 박아 놓은 것이 아니라 대상 속에 박아 놓았습니다. 왜 대상 속에 박아 놓았느냐? 대상 속에 박아 놓았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 불경스러운 놈들아, 그럴 수 있어?' 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어?' 하다가도 '아, 그렇지 그렇지'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봐서 알 수 있느냐? 자식을 보고 압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계란은 무엇을 닮았습니까? 모양은 둥글지만 어미 닭을 닮았습니다. 둥근 계란 안에 어미의 새끼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미는 그 계란 안의 새끼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닮은 것이 자식이지만, 자식을 닮은 것이 부모입니다. 이 말은 자식은 부모를 닮았고, 부모는 자식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나를 닮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나와 아주 가깝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나와 멀고 먼 하나님이지만, 통일교회 하나님은 아주 가깝습니다. 얼마나 가까우냐? 손이 닿아서 하나님 궁둥이까지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젖가슴도 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깝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하나님이 좋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하고 정성들여 부르면 맨 처음에는 저 천상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중에는 자기 마음에서 대답합니다. '하나님!' 하고 부르면 자기 마음에서 '왜, 이 녀석아!' 하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부르면 자기 속사람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데 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기 위해 인간을 지었으므로 하나님과 인간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플러스인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가 못 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세계와 접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은 누구를 닮았느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이렇게 죽 올라가서 결국 종지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입니다. 그 종지 아버지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면 그 종지 아버지인 하나님을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일주일 금식을 합니다. 일주일째 되는 날 밤 열두 시를 알리는 '땡-' 소리가 들리면 그 이상 기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밤 열두 시를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하면서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 이상 돼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밥을 그리워하는 이상의 간절한 기준에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릴 때 잠 자고 싶은 마음 이상의 간절한 자리에 가야 하나님과 접촉하고 관계맺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의식주 권내에서는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습니다. (140-134)
축복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그러면 본래 축복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서 사랑의 뿌리가 형성됩니다.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이 하나되어 우주 사랑의 핵의 뿌리를 받아 인간인 우리가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뿌리를 내릴 때부터 기쁨입니다. 생명인 사랑의 핵의 뿌리를 내릴 때부터 기쁨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어머니 아버지의 모든 세포는 사랑에 둥실둥실 화해 완전히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여자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전후 관계가 맞아 횡적으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지의 중심 되는 하나님과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연결되고 연결되다 보면, 높이 쌓고 쌓고 쌓다 보면 피라미드와 같이 됩니다. 그리고 연결되고 연결되면 서로서로 운동해야 됩니다.
운동하게 되면 모난 것은 전부 깎이고 둥글둥글하게 됩니다. 운동하기 때문에 둥글둥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주는 전부 둥글둥글하게 생겼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둥글둥글한 하나의 구슬과 마찬가지로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벌의 세계를 살펴보면 일벌이 있고 여왕벌이 있습니다. 남왕벌이라고 하면 좋을 텐데 여왕벌입니다. 모든 일벌들이 먹을 것, 즉 꿀을 준비하는 것은 여왕벌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수펄은 여왕벌이 태어나서 산란 능력을 가질 때 딱 한 번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미가 끝나면 수펄들은 몇 마리만 놔두고 일벌들이 다 죽여 버립니다. 일벌들이 죽여서 물어다가 내버립니다. 여왕벌은 밤낮으로 자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계속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는 게 여왕벌이 하는 일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 인류 조상의 사랑 덩어리가 여왕벌의 핵처럼 되어 있으면 우주는 그것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크냐? 우주 공간은 어디를 이동하더라도, 천년 만년 달려가도 부딪치지 않게끔 하나님이 질서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서로 부딪쳐서 옥살박살 나게끔 안 되어 있습니다. 무한히 달려도 좋습니다.
남극이 있고, 북극이 있고, 동극이 있고, 서극이 있어 동서남북 사방이 북극에 가서 부딪치려고 하면 북극 자체의 힘에 의해서 부딪치기 전에 밀어냅니다. '너 안 돼. 직선으로는 안 돼. 동쪽으로 가, 서쪽으로 가, 남쪽으로 가' 하면서 밀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질서적입니다. 이렇게 해서 보호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년 만년 살고지고입니다. (140-136)
일생노정은 제1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정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가고 싶어합니다.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태어난 고향, 혹은 내가 태어난 고향은 제2의 고향입니다. 제1의 고향이 아니라 제2의 고향입니다. 제1의 고향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듯 제2의 고향에도 가고 싶은데, 제1 고향에는 얼마나 가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제1 고향은 제2의 고향에 가듯이 해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제1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욕심이 큽니다. 우주보다 더 큽니다. 조화의 법칙에 응할 수 있게끔 위대한 최고 사랑의 이상으로 하나되어 천년 만년 살 수 있는 무한한 행복권을 지니는 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그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제1의 고향을 찾아가려면 제2 고향인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제일 큰 사랑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게 자연이치입니다.
욕심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왜 욕심이 그렇게 크게 생겨났느냐? 그냥 그대로 운동하는 이 법칙의 도리를 따른다면 컸다가 더 클 수 있는데, 그렇게 되어서는 존재의 중심에 설 수 없습니다. 컸다가 작을 수 있고, 작았다가 클 수 있어야 중앙의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높고 낮은 데의 중심이 중앙에 있고, 좌우의 중심이 중앙에 있고, 전후의 중심이 중앙에 있습니다. 높기만 해서는 중심을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걷는 데도 다리를 들고만 있으면 걸을 수가 없습니다. 내려와야 합니다. 내려오더라도 크게 내려와야 합니다. 구형의 모든 것이 그렇게 구르면서 운동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욕망이 있다는 것은 무한히 큰 것이 내 자체에 압축되어서 무한히 확대해야 할 본성적인 인연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무한히 큰 것을 품으려고 합니다.
그 무한히 큰 것이 뭐냐 하면 고향입니다. 본연의 고향입니다. 제1 고향에서 떨어져 제2 고향으로 돌아가 제2 고향을 통해 제1 고향에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품겨서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매부 좋고 누이 좋고 그럴 수 있습니다. 매부 나쁘고 누이 나쁜 것은 매부 집이 나쁘고 누이 집이 나쁜 것입니다. 매부 나라까지 나쁘고 누이 나라까지 나빠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핵과 연결될 수 있는데, 이것이 나쁘다 할 때는 우주의 서러움을 동반할 수 있는 막대한 피해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슬픔 중에서 뭣이 제일 슬프냐? 무엇이 제일 깊은 슬픔이냐? 좋다면 무엇이 제일 좋은 기쁨이겠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금덩이나 돈을 가지면 밤잠을 못 잡니다. 강도들이 눈을 부릅뜨고 노리고 있기 때문에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합니다. 황금덩이나 돈을 벌었더라도 그것을 갖다가 보관할 데가 없습니다. 철궤에 갖다 넣어 놓아도 안심이 안 됩니다. 어디에 넣어 놓더라도 안심이 안 됩니다. 자기 몸 가운데 보관할 수만 있다면 자기 몸 가운데 보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이 뭐냐? 누구나 원하는 것, 천년 전에도 원했고, 만년 후에도 원하는 것, 하나님도 눈이 빠지게 원하는 것, 하나님도 놓을 수 없는 것, 그게 뭐겠느냐? 돈이겠느냐, 다이아몬드겠느냐, 금이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하나님 속에다 꼭꼭 다져두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디를 찾아가야 하느냐? 사랑의 고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그립거들랑 고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일생노정은 제2 고향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느냐? 제1 고향을 찾아갑니다. 제1 고향이 큰 플러스니 나는 큰 마이너스가 되어 돌아가서 딱 합해야 됩니다. (140-138)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자극적인 것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욕망을 무엇 때문에 주었느냐? 도둑질하라고 준 게 아닙니다. 독재자가 되라고 준 게 아닙니다. 위대한 사랑 때문에 주었습니다. 그 욕심은 너무나 달고, 맛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 가끔 70세 넘은 할아버지가 재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그 70이 넘은 할아버지가 재취한다고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줄 모릅니다. 늙었는데도 좋아서 어쩔줄 모릅니다. 그런 데서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합니다. 사람은 욕심이 있습니다. 아주 큰 욕심을 우리 가운데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에 퍼져 나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욕심을 압축 공기처럼 폭발되게끔 해놓았습니다.
그 욕심은 사랑에 부딪히면 폭발합니다. 그런데 부딪힐 때는 직선으로 부딪히지 않습니다. 직선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형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부딪히면 하나님이 사랑에 딱 낍니다. 공중에서 하나님이 딱 끼게 되면 '아이고, 야단났구나!' 반발하면서 땅에 돌아와 마이너스와 합하게 됩니다. 땅에서 마이너스와 하나되면, 또 끼어서 '아이쿠, 야단났다' 하면서 올라갑니다.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됩니다. 그렇게 둥둥둥 돌아다니며 우주를 여행합니다.
사랑은 생각으로도 좋고, 모양으로도 좋고, 맛으로도 좋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그렇습니까? 대한민국 땅만한 다이아몬드가 그렇습니까? 생각으로는 대한민국 땅만한 다이아몬드가 좋다고 하더라도 세포는 잠을 잡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이 갈라져서 행동하지만, 사랑이 싹터 올 때는 눈이 기관총이 되어 '빠바바바방' 하고, 세포도 기관총이 되어서 '빠바바방' 합니다. 4백조 개의 세포가 한 방씩만 쏘더라도 4백조 개나 되는 총알이 한꺼번에 나갑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기관총은 아주 멋집니다. 이 사랑의 기관총을 쏘면 우주는 옥살박살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합니다. 사랑에 의해서 부활합니다. 이것은 말만 들어도 근사합니다. 사랑의 춤을 출 때는 그렇습니다. 사랑은 앉아서 똥을 누더라도 좋습니다. 사랑이 개재될 때는 그 냄새가 구수합니다. (140-141)
사랑을 중심으로 평등과 행복이 있어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사랑한다 할 때, 할머니가 '다 늙어서 무슨 사랑을 한다고 해! 어서 죽기나 하지' 그렇게 말합니까? 그걸 보는 늙은 할머니는 옛날에 사랑하던 그 사랑의 맛에 취해 다 잊어버립니다.
늘그막 사랑은 넙적한 사랑입니다. 둥근 사랑이 아니고 넙적한 사랑입니다. 둥글었다가 넙적해지고, 넙적했다가 둥그래져야 합니다. 그래야 저나라에 가서도 박자가 맞습니다. 다 평등입니다.
그래서 사랑에서만 평등할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 평등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빼놓고는 남녀 평등이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수염이 나는데 여자는 안 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주먹으로 한번 치면 나자빠집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쳐도 나자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등입니까? 말하는 것도 여자는 '앵앵앵' 하고, 남자는 '우와와' 합니다. 그게 평등입니까? 웃는 것도 여자는 '헤헤헤' 하고, 남자는 '하하하' 하는데 평등입니까?
평등이란 말은 사랑을 빼놓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평등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으로 하지 않은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은 뭐냐?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대개 '행복이 뭐긴 뭐야? 행복이 행복이지'라고 말합니다. 행복이 뭐냐? 사랑의 저 끄트머리 열매라고 해도 맞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뒤옆이라고 해도 맞고, 사랑의 앞옆, 사랑의 꼭대기라고 해도 맞고, 사랑의 발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사랑은 하나기 때문에, 둥글기 때문에 다 맞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빼놓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혼자 앉아서 거울을 바라보며 '아이고, 나 행복해. 잘생겼구만. 거울님, 나 사랑하지요?' 그럽니까? 거울보고 사랑해 달라고 그럽니까? '거울님, 내게 입 맞춰요' 그럽니까? 아무리 미인이라도 평등적 사랑의 내용을 가진 남자가 있어야 조화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멋진 인간 본연의 길이 있었는데 그 본연의 길에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한꺼번에 엉클어져 있는 본질의 뿌리를 보지 못하고 타락함으로써 인간이 사탄 사랑의 본원지가 됐습니다. 이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느껴야 합니다. (14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