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나님과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물질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 것은 언제 어디서든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나 금이나 돈은 하나님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지식도 하나님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대왕입니다. 그 다음에 권력도 필요 없습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제일 좋아하는 돈이니 지식이니 권력이니 하는 것은 하나도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게 뭐냐? 선생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남자로서 필요한 게 뭡니까? 남자에게 제일 귀한 것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여자입니다. 남자에게 절대적으로 한 여자가 필요합니다. 왜 여자가 필요하냐? 사랑 때문에 여자가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지만 혼자서는 그 사랑을 못 느낍니다. 상대가 나타나야 자극을 받아 강한 작용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남자가 왜 태어났습니까?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동기가 여자입니다. 그리고 여자도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은 뭘 하자는 것이냐?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 여자 둘이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듯 여자 남자가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고 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없으면 사랑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게 누구를 닮아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혼자서는 사랑을 못 느끼니 사랑의 상대가 필요해서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함으로써 모든 피조세계가 전부 파트너가 되어서 춤추고 노래하고 야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세계는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급의 존재들은 차원 높은 하나님의 사랑에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원소들은 큰 것에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말을 하는데,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흡수돼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칩니다.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늘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내가 먼저 갖게 되면 하나님이 나한테 끌려 다닙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가 왜 사랑이 필요하냐? 이 둘이 완전한 참사랑을 이루면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참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되면 하나님을 점령합니다. 그래 가지고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욕망이 없습니다. (210-158)
생명이 귀하냐, 사랑이 귀하냐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볼때,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제일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이 귀하냐, 사랑이 귀하냐? 어떤 게 귀합니까? 청춘 남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생명을 던지고라도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은 생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 생명을 컨트롤할 수 있지, 생명이 사랑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142-36)
이런 것을 놓고 볼 때,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이것은 근본문제입니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느냐?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기 전에, 내 생명이 싹트기 전에 부모의 사랑의 터전 위에 내 생명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사랑을 함으로써 내 생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치 있다는 것, 내가 귀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부모의 생명을 이어받아서 귀한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에 동참했습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생명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할 때 사랑이 먼저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 조상을 아담 해와라고 합니다. 그 아담 해와는 생명체가 먼저 나왔느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태어났느냐? 우리 인간은 아무리 봐야 제일 원인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결과적 존재입니다.
결과는 원인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우리 인간도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또한 원인 되는 하나님은 누구를 닮았느냐? 결국 결과인 인간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을 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던 보통의 공식적인 창조과정을 통해 지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중심으로 해서 지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왜 창조했겠습니까? 언제나 가질 수 있고, 언제나 만들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분이 만물을 지어서 뭘 하겠습니까?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현대신학은 '하나님은 거룩한 분, 우리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상에서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왜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했느냐 하는 근본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뭐가 필요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했겠습니까? 돈이 필요해서, 다이아몬드가 필요해서 지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다이아몬드나 금 같은 보석을 좋아합니다. 그것들은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다이아몬드는 굳기에 있어서 어떤 것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굳기에 있어서는 절대적입니다.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황금도 빛에 있어서는 역사를 초월합니다. 시대와 환경을 초월해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또 진주의 조화된 빛깔은 어떤 것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갈더라도 그 우아한 조화의 빛깔은 변치 않습니다. 그 빛깔은 무엇이 점령할 수 없습니다. 어떤 힘을 가지고서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보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그런 것을 좋아하느냐? 변치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조석변(朝夕變)입니다. '인심은 조석변'이라 하는데, 왜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느냐?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논리가 가능합니다. (142-105)
하나님이 바라는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냐
그러면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냐?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격자냐?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최고의 인격자냐? 우리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이나 돈, 권력이 아닙니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식도 변합니다.
의사들이 어떤 병에는 무슨 약이 좋다고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약이 나쁘다고 합니다. 자꾸 변합니다. 그러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돈도 믿을 수 없고, 권력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인격자는 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자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는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은 돈이 필요없습니다.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왕, 지혜의 왕이므로 지식이 필요없습니다. 권력도 필요없습니다.
하나님에게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상충되지 않고, 하나의 공통점에 귀결될 때에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나에게도 절대로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는 하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뭣이냐 하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좋아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만들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가질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보급할 수 있고,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아이구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럴지 모릅니다. 이만하면 선생님도 훌륭하다면 훌륭합니다. 돈도 있다면 누구보다도 있고, 지식도 있다면 누구보다도 있고, 권력도 있다면 누구보다도 있습니다. 세계 사람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랑입니다. (142-107)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과 여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
우리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는데, 남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뭐고 여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으나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전지전능하지만, 사랑만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사랑의 본질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있긴 있지만 나 혼자서 '내 사랑, 좋다' 그러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상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녀라도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남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게 뭐냐? 여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몰랐습니다.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돈, 지식이라고 생각했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남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세계에 이름이 난 남자라도 혼자 산다면 그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불쌍하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내가 없으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미인이라도 혼자 살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입니다.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천리(天理)입니다. 천칙(天則)입니다. 남자는 여자라는 가냘픈 존재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었는데, 누구 때문에 지었습니까? 해와 때문에 지었습니다. 또 해와를 지을 때도 아담이 혼자 있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해와를 짓고 나서는 '지극히 선한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담을 지은 것도, 해와를 지은 것도 서로를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여자가 없다면 남자라는 존재는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질서와 사회의 질서, 남자와 여자의 생활질서를 근본에서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본이 틀렸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틀려 나갑니다. 그러니 출발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태어난 것은 절대적으로 여자 때문이고, 여자가 태어난 것도 절대적으로 남자 때문입니다. 여자가 여자 때문에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슴이 두둑한 것은 자녀를 위해서입니다. 궁둥이가 큰 것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잘 낳기 위해서입니다. 여자 때문에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또 남자는 어깨가 크고 넓은데, 왜 그렇게 생겼느냐? 일을 하자면 힘이 세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를 먹여 살리고, 집안의 주인 노릇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자 남자 둘이 앉더라도 사각형으로 딱 맞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어깨가 크고 여자는 궁둥이가 크니 딱 맞습니다. 조화의 법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지었습니다. 이런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말인데, 근본적으로 확실히 몰랐습니다.
남자는 절대적으로 여자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살아야 되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싫든 좋든 남자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서로를 위해 살아야 하느냐? 무엇 때문에 서로를 위해 살아야 하느냐? 남자 여자는 서로를 위해서 태어났는데, 그렇게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틀림없이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남자 여자가 태어나 서로를 위하는 것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남자보다 귀하고 여자보다 귀합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142-109)
하나님과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볼 때, 여자의 사랑 주인은 남자고 남자의 사랑 주인은 여자입니다. 엇바뀌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남자가 갖고 있는 그 유별난 것, 생식기의 주인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것의 주인은 여자입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은 그것의 주인을 모르고 도둑질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은 여자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에 여자가 주인입니다. 또 여자가 갖고 있는 것도 남자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성숙해야 합니다. 17, 18세로 성숙해야만 사랑의 자극이 옵니다. 그때까지는 금물입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주인이 없을 때는 훗날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온갖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결혼은 무엇이냐? 서로 주인을 엇바꿔 만나는 예식이 결혼식입니다.
인간세계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냐?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죽어 가면, 자기가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라든가 전부를 팔아서라도 죽어 가는 남편을 살려야 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은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권력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귀하다는 지식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나라를 주고도,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천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망각한 인간은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절대 필요로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아무리 전지전능한 절대자 하나님이라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이루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상대가 우리 인간입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이 시골의 순박한 처녀와 사랑의 관계를 가졌다면, 다시 말해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면 지식이 있고 없고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면 그 순박한 시골 처녀는 대통령 옆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등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집니다. 이런 사실이 위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절대적인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은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식물계나 동물계를 보면 전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에 대한 교육을 하기 위해 자연계를 박물관과 같이 지었습니다. 그래서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다(만물지중 유인최귀; 萬物之衆 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만이 귀하다는 말은 무엇을 중심하고 하는 말이냐? 이웃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는 것은 천주를 창조한 창조주 앞에 사람만이 오직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주체자 앞에 단 하나의 상대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또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하지, 사람을 통해서 사랑을 찾을 수 없다면 귀하지 않습니다. (142-111)
하나님의 사랑의 축은 하나
아담 해와가 성숙하는 과정을 보면, 그들은 평면적으로는 동과 서의 입장입니다. 동과 서의 입장에서 그들이 점점 자라 철이 들어 가면서 자기들 서로를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만물세계를 보고 '아, 쌍쌍이 저렇게 다 새끼를 치는구나' 하면서 배웁니다. 철이 듦으로써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의 인연을 맺기 전에 누구와 먼저 사랑을 해야 되느냐? 아담 해와 자기 둘이 사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축에 횡적인 남자 여자의 사랑을 90도로 딱 접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축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우주의 축은 어떤 주의도 아니요, 사상도 아닙니다. 권력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사랑의 축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순간에 절대자의 사랑의 축이 하늘로부터 땅 위에 꽂혀야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출발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직계 아버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이 어디에 박혔느냐? 그 사랑의 축이 어긋났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사랑의 일체 기준을 못 가졌습니다. 내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역사시대에 어떤 위인이나 성인도 역사를 대표해 '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통일됐다'고 주장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울도 '내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항상 싸우니 나는 괴로운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접붙였다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그건 하나님의 핏줄에 엉킨 몸이기 때문에 자기 멋대로 살더라도 원리적입니다. 한 나무의 열매는 전부 같습니다. 선한 열매를 맺고 선한 행동을 하니 하나님과 같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타락한 사람과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 안 되어 있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4백조 개의 세포로 되어 있는데, 오관의 모든 세포를 한 골수로 전부 집결시켜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의 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의 힘은 어느 힘보다 자극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다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영(靈)과 육(肉)이,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1백 퍼센트 하나되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마음의 세포와 몸의 세포가 사랑에 의해 완전히 하나되면 공명하게 됩니다. 음차(音叉)는 한쪽을 때리면 다른 한쪽도 같은 소리를 냅니다. 공명체가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공명체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으로 인해 고장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바로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자유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유세계가 망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으면 방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인간은 사랑의 길을 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야 할 길, 가정적으로 가야 할 길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의 길은 같은 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민족이든, 어떤 나라든 그 길은 같은 길입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습니다. 개인이 가는 사랑의 길이나 가정이 가는 사랑의 길이나 수가 많을 뿐이지 같습니다. 초점은 전부 다 똑같은 한 길입니다. 그것이 무슨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길입니다. (142-115)
사랑 때문에 나고 살고 돌아가도록 창조된 인간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되어 태어났습니다. 본연의 부모 사랑을 근거로 해서 우주와 연결될 수 있는 놀라운 사랑의 길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타락했을망정 그 근원은 남아 있습니다. 선을 추구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그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가능합니다. 또한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사람은 왜 태어났느냐? 남자와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서로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서로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은 인간끼리는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한 사람에게는 환란과 핍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40여 년 동안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세계문제를 다 극복하고 나왔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길은 누가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 남녀간의 사랑의 길도 못 막는데, 인간의 근본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가는 그 사랑의 길은 더더욱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을 따라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태어나서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사랑 속에서 자랍니다. 그 다음엔 철이 들어 남자 여자가 만나 부부 사랑의 길을 찾아갑니다. 사랑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자라서 차원 높은 부부의 사랑을 통해 자녀의 사랑을 갖습니다.
자녀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요, 그것을 체휼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녀는 어머니 아버지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류 시조를 지어 놓고 기뻐했던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못 낳은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세상 인간을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왜 슬프냐? 하나님이 세워 놓은 천리의 중심인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는 길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길이 막혔기 때문에 슬픕니다. 이런 모든 것이 원인 없이 작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남자 여자가 왜 같이 살아야 되느냐 하면, 사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길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자가 하나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기 위해서 동과 서에서 중앙점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자나 남자나 다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귀한 사랑이 전부 아담한테 가게 되면 해와가 불평할 것이고, 또 해와한테 하나님의 귀한 사랑이 가게 되면 아담이 불평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기 위해 중앙점을 찾아옵니다. 그러니 수평선을 중심으로 90도 되는 중앙점에서 둘이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해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천지가 다 완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인간이 이와 같은 도탄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혼자서는 못 받습니다. 남자 여자가 생명 이상의 사랑으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생명 이상입니다. 생명보다 앞선 게 사랑입니다. 생명 이상의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우리가 왜 결혼을 하느냐? 왜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결혼을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을 축으로 해서 돌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결혼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142-118)
우리 인간이 가야 할 목적지
이 우주 가운데서, 인생역사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은 멋지게 지어진 예술회관과 같은 집이 아닙니다. 이 지구촌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구촌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사랑의 안식처를 못 가지면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중에서도 참사랑이 가장 귀합니다. 그러면 그 참사랑은 어디 있느냐? 이것이 인간의 고민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역사를 걸고 추구해 나온 길이 무엇이냐 하면, 참사랑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사랑은 참남자와 참여자를 만나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축과 함께 돌면 돌수록 반경이 커지고, 반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밀착됩니다. 아무리 큰 우주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관계된 모든 소유권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된 자리에서만 상속이 가능합니다.
우리 집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보다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보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상속자가 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완성된 사람으로서 완성된 사랑을 갖춘 부부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소유를 내 소유로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권한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면 상속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그곳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부모로부터 사랑에 의해 태어나 사랑의 품에서 성숙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대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늙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세상에서 부모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느끼고,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껴서 하나의 열매가 됩니다. 식물의 열매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나무의 모든 진액을 흡수한 열매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이 태어난 목적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입니다.
그러니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기준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과 하나되는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이 벌어집니다. 그런 곳이 인간이 가야 할 이상세계요 천국입니다. 그런 열매들이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개인이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하고 결실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소유권을 상속받은 대등한 가치에 있는 대상의 자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14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