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본궁
하나님의 뜻과 인간 완성의 표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동으로 가는 것인지, 서로 가는 것인지, 남으로 가는 것인지, 북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중앙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확실치 않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이 뭐냐?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 완성이 뭐냐? 사랑이상 완성인데, 가정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사랑이상 완성입니다. 그 완성은 나만으로는 안 됩니다. 남자가 완성하려면 남자만으로는 안 되고, 여자가 완성하려면 여자만으로는 안 됩니다. 혼자서 제아무리 '내가 완성했다. 나는 세계 어디에 가도 당당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남자로 태어났고 여자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 자체는 남자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여자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이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데는 어떻게 하나되느냐? 꽁꽁 매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사랑으로 부부로서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 남자 여자는 완성합니다. 그 완성의 내용이 뭐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완성의 표준으로 세웠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완성돼 있느냐? 이렇게 물으면 이상하지만, 하나님은 완성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절대자이므로 완성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분별적 입장에서는, 개체적 입장에서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이상을 두고 말하면 하나님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노릇을 못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러냐? 인간과의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그 관계는 어떤 관계냐? 돈 거래를 중심으로 한 관계도 아니고, 사업을 중심으로 한 관계도 아니고, 지식이라든가 권력구조에 있어서의 주종관계도 아닙니다. 그 관계는 사랑을 중심으로 한 관계입니다. (136-103)
창조의 출발은 기쁨으로부터
인류는 어디서부터 출발되었느냐? 하나님의 기쁜 마음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창조의 출발은 기쁨으로부터입니다. 본래의 발원지가 기쁨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디서 생기느냐? 목적의 성취라든가 소원성취로 인해서 생깁니다. 그것 없이는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영원을 두고 자극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써 영원히 빛날 수 있고, 영원히 품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이냐? 물질도 사람도 아닌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한 세계기 때문에, 기쁨을 목적으로 한 그 결과는 반드시 사랑으로 종결됩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와 창조의 발원은 사랑의 목적을 이루어 펼치는 데 있습니다.
이런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중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본마음의 바탕, 이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그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가치를 논하려면 이 사랑을 붙들고 논해야 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 여건이 갖추어진 가운데서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 현현합니다. 그런 심정을 지닌 인간이 횡적으로 뻗어나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라고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했습니다. (27-28)
창조이상 완성은 인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창조이상 완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창조이상 완성은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이상 완성이기 때문에 창조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물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창조물의 중심이 인간인데, 인간이 어떻게 되는 것이 창조이상 완성이냐? 물론 인간 하면 아담 해와, 남자 여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자의 완성에서부터 창조이상 완성이 시작됩니다. 그 남자 여자가 완성한다는 것은 남자는 동으로 가고 여자는 서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갈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완성은 갈라졌던 사람들이 합하고, 헤어졌던 사람이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것은 언제나 표준으로 남습니다.
그러면 남자 여자 완성의 표준은 뭐냐?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흔히 세상에서는 돈이라고 생각하는데, 돈을 중심으로 하나된다는 말이냐? 남자 여자는 돈을 갖다 놓으면 싸우기가 쉽지 하나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지식을 가지고 논하게 될 때, 지식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역시 싸우기 쉽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라도 더 알면 '나는 당신보다 하나를 더 안다. 내가 높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힘을 놓고 말할 때, 힘도 균형이 잡혀야 싸우지 않지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남자 여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봐도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이상이 인간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완성할 수 있는 그 하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일방향성의 사랑이 아니라 사방성을 갖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음이 있어야 합니다. 품는 데는 아담 해와 둘만으로 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만으로 사랑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동기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된 자리에서 품는 데는 이 인간세계와 우주를 품음과 동시에 하나님까지 품어야 합니다. (149-9)
웃음의 역사가 출발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느냐? 창조이상을 완성해서 뭘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 자신도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통일원리에서는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라고 합니다. 주체적 존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서 '아, 나 혼자 있으니 기쁘다' 이러겠느냐? 아닙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만으로는 기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다가 혼자서 웃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 외의 존재와는 관계없고 나에게만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하하' 하고 웃을 때의 기쁨은 천지가 거기에 박자를 맞춰 웃을 수 있고 동화될 수 있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자기 내에서 혼자 느끼는 기쁨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가씨들이 꿈 생각을 하면서 좋아서 깔깔거리는 것과 같은 그런 기쁨이어서는 안 됩니다. 표현적이요, 능동적이요, 포괄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한된 것이 아니라 무한권까지 미칠 수 있는 기쁨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웃는데, 무엇을 중심으로 웃어야 하느냐? 배고플 때에는 빈대떡 하나 놓고도 웃을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가 웃는 데 있어서 최고의 것은 사랑을 놓고 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웃음은 참된 남자와 여자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웃고 또 웃으면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웃음은 세상 최고의 멜로디로 들립니다. 하나님 귀에 최고의 멜로디로 들리는 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진정으로 좋아서 기뻐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는 최고의 꽃이요 멜로디입니다. (149-11)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 하나님을 꽁꽁 묶어도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고 더 묶으라고 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 그런 비결이 있다면, 사람은 욕심이 많기 때문에 그 비결대로 해서 하나님을 자기 혼자만의 하나님으로 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꽁꽁 묶어 자기 안방에다 갖다 놔도 하나님이 천년 만년 떠나고 싶지 않고 좋다 할 수 있게 만드는 무슨 비법이 있다면, 인간은 그 비법을 다 쓰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꽁꽁 묶는다면 무엇으로 묶어야 하느냐? 참된 사랑의 끈으로 꽁꽁 묶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의 줄로 묶는다면 하나님도 '완전히 꽁꽁 묶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며, 지식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속성권 내에서 무엇이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노?' 하겠지만, 하나님 자신이 사랑만은 마음대로 할 수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사랑만은 하나님 자신도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내 마음이 있고 몸이 있어서 아이구, 좋다! 내 사랑이야' 이러면 미친 녀석입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풀잎 하나라도 보면서 웃고 이야기하면 미친 녀석이 아닙니다. 그런 대상을 놓고 그렇게 하면 미친 녀석이 아니지만, 그런 대상이 없이 그렇게 한다면 미친 녀석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지극히 작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 사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람'과 '사랑'이라는 글자는 비슷합니다. '사람'은 네모고 '사랑'은 동그라미입니다. 동그라미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그라미를 좋아하고, 또 잘 그립니다. (149-13)
하나님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부부가 살면서 아들딸을 많이 낳게 되면 잘생긴 아들딸도 있고, 못생긴 아들딸도 있습니다. 알록달록하게 낳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생긴 아기를 대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쟤는 누굴 닮았소?' 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누구 닮긴 누굴 닮아요? 나 닮았지요'라고 하고, 아버지도 '나 닮았지요'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 인간은 자기를 닮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기 닮은 것을 좋아하느냐? 아들딸이 자기 사랑의 대상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는 분이므로 만물보다도 자기 닮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제일 좋아하니 만물지중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나는 하나님 닮았다' 하더라도 불경스러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아담 해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되어야 하느냐?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참된 사랑으로 하나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을 원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남자가 아무리 '내 사랑, 내 사랑' 해도 대상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천년 만년 그 이상을 아무리 노래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별수없이 사랑의 대상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의 주체인 동시에 영생의 주체기 때문에 그 대상인 인간도 영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영생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느냐? 돈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요, 권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지식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진리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영생이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빠졌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랑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 해야 되는데 사랑이 빠졌습니다. 이것을 앞으로 성경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기독교인들은 '오, 불경스러운지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에게 물어 보면 '그렇고 말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 중에서도 참사랑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완성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 되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대상으로 설 수 있는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 관계를 맺어, 비로소 어느누구도 가할 수 없고 뺄 수 없는 완전한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상실현입니다. (145-15)
우리가 '제일 좋다' 하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이것밖에 없다' 하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인간이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인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제일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절대 원하는 것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혼자서 아무리 '사랑, 사랑, 사랑…' 하고 몇억년을 하더라도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135-153)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신성 자체로서 지고(至高)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고지선(至高至善)한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속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개념으로 볼 때는 하나님과 인간이 인격적으로 같습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사랑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을 갖춘 사람과 하나님의 성품이 같아야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닮는 데는 무엇을 통해 닮느냐? 혈통을 통해서 닮습니다. 그 혈통을 통해 인연되었다는 것은 사랑으로 인연되었다는 말입니다.
통일원리에서는 하나님은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서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이 장성하여 사랑으로 횡적으로 연결될 때 종적인 입장에서 중심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 말은 아담 해와가 성장해서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마음속에 임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인류 앞에 내적인 아버지를 모신 실체 아버지의 자리에 서야 하고, 또 해와는 내적인 어머니를 모신 실체 어머니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 기반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인 아담 해와를 연결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입니다.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등한 상대적인 내용을 갖춘 완성한 사람 둘이 합칠 때는 하나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은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성숙하여 결혼하는 그 순간은 종적인 사랑의 일치와 더불어 외적으로 하나님의 몸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됨과 동시에, 내적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임재해서 사랑으로 안팎이 완전히 하나되는 때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상 하던 핵심내용입니다. 이 사랑의 기점을 중심으로 모든 인류는 태어나고 발전합니다. (138-246)
하나님이 찾는 참사랑의 상대자
그러면 하나님이 참사랑을 찾는다면 어떤 존재를 통해서 찾느냐? 참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사람이냐? 참사랑을 가진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참사람이라고 해서 눈이 하나 더 달리고 코가 하나 더 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기 때문에 그 참사람은 남자도 닮고 여자도 닮았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동쪽 끝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 끝으로 갑니다. 그 끝에서 가운데로 향해 와서 서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만나면 언제 만나느냐? 한 살 된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서로 좋아서 하나되겠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언제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남자 여자가 하나될 수 있느냐? 성장해서 성숙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남자 여자가 사랑하려고 하느냐?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합니다. 남자 여자가 왜 하나되어야 하느냐? 남자 여자가 하나되려고 하는 것은 남자도 하나님의 반을 닮고 여자도 하나님의 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 여자가 떨어진 데서는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뚫고 나와서 남자 등에 타야 되고, 남자는 여자를 뚫고 나와서 여자 등에 타야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초점이 맞습니다. 눈은 둘이기 때문에 초점이 맞아야 하나로 보입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의 눈의 초점이 맞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 내려올 수 있습니다.
의학박사에게 왜 심장이 왼편에 있느냐고 물으면, 답변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남자는 왼편에 서고 여자는 바른편에 서기 때문에, 심장을 연결시키는 것은 남자가 해야 되므로 심장이 왼편에 있다고 원리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남자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바른쪽에 서지만 하나님 쪽에서 보면 왼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안는다면 남자는 왼손으로 안고, 여자는 바른손으로 안습니다. 이렇게 해서 플러스 마이너스 운동이 벌어집니다. 우주가 돌아갑니다. 도는 데도, 남자가 먼저 돌아가게 되고 여자는 따라서 돌아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135-154)
하나님은 어디에 임재할 것이냐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자 남자의 것이자 여자의 것입니다. 여자의 하나님의 것이자 남자의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평면적이기 때문에 평면적인 결합을 절대시하기 위함이요, 종적인 결합을 절대시하기 위함입니다. 남자 여자가 있을 때, 하나님은 누구에게 먼저 오겠느냐? 남자에게 먼저 온다고 하면 여자들이 안 된다고 야단할 것이고, 또 여자에게 먼저 온다고 하면 남자들이 야단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므로 남자 여자 둘이 딱 하나되었을 때 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래의 사랑이상 기준이 출발한다는 이론의 근거를 세울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영원한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을 남자 여자의 사랑 가운데에 두자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남자가 갖는 것도 싫고, 여자가 갖는 것도 싫다는 것입니다. 가운데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을 핵으로 하여남녀의 사랑이 결합하는 곳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본궁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오늘 밤은 이 남자, 내일 밤은 저 남자와 요사스러운 사랑을 찾아서 즐기고 있습니다. 오로지 쾌락을 위해서 그러고 있습니다. 이런 패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칙을 중심으로 사랑의 윤리체제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느냐? 절대적인 남자가 절대적인 여자를 찾아 절대적인 하나의 사랑을 이루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135-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