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참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자(사랑이야기 - 제 1권 하나님 사랑편 - 제 4 장 참된 자녀의 도리)

무지... | 20180501085734

8. 참아버님의 참아들딸이 되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는 최고의 목적은 무엇이냐? 무엇을 원하느냐? 지금까지 기나긴 서러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도 인류를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나오는 내용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해 '너는 내 친아들딸이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싸워왔습니다. 
하나님의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만물이 화동하는 가운데 만물의 주인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앞에 '나의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해야 할 아담이 타락으로 인해 그런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 이후 본연의 아들딸이 나와 '아버지!' 하고 부르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어야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가? 참아버지와 참아들은 혈통의 인연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갈라놓아도 갈라질 수 없는 인연, 자연히 하나될 수 있는 피살을 통한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과 우리는 혈통적인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그 아버지는 죄악의 입장에서 불릴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의 세상에서 벗어나 선의 이상 동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상 동산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동시에 기쁨에 도취하여 살 수 있는 동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동(動)하면 만물이 동하고, 인간이 정(靜)하면 만물이 정하게 되어, 인간과 만물이 동하고 정하는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도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상대적인 관계를 초월하여 일체가 될 수 있는 이상 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와 같이 당신과 하나되기를 바랐고, 하나된 가운데서 놀라운 사랑을 중심으로 기쁨에 취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것이 자기들의 원한이 된 동시에 천륜의 원한이 되었고, 타락 이후 지금까지 그 원한에 원한을 가중시키는 슬픈 역사를 엮어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섭리하는 최대의 희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타락의 부모를 갖고 있는 인류를 다시 하나님편에 세워 놓고 '나는 그대들의 영원한 아버지고, 그대들은 나의 영원한 아들딸이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날을 맞이하는 것이 타락 인간의 소망이요, 천륜을 이끄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과 탄식의 원인
     
오늘 내 한 자체를 반성하고 천륜 앞에 자신을 세워놓고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화동한 일이 없었음을 느낄 것입니다. 또 아버지 앞에 참된 아들딸로서 '아버지여!'라고 할 수 있고 하늘의 주관을 받는 본연의 생활을 해야 했었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 한때, 어느 한 시간이든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시여!'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아버지의 심정을 유발시켜서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새로이 부자의 관계를 맺는 입장에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인간에게 체휼시키고 인간과 부자의 관계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아버지인 것을 마음으로나 생활에서 느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최후 소망으로 남아 있는 것, 즉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우리가 세움받는 것도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이뤄질 것인가? 그것은 창조의 이념인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라는 것을 통해서이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땅 위에서 어느 정도 실천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생활권에서 실천한 정도에 따라 자기들이 찾을 수 있는 가치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서러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땅을 대하여 탄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은 사탄 때문에 서러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밉다고 해서 서러워하고, 죄인들이 많다고 해서 탄식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서러워하고 탄식하는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이 아직까지 인간을 대해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로다'라고 말할 수 없고, 그 아들딸로부터 '내 아버지여'라는 말을 듣지 못한 데 있습니다. 환영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것이 하나님이 서러워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한은 무엇이냐?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믿어주지 않고 인간이 받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이 책임 다하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천륜을 세워드려야 하고, 영광의 하늘나라를 이루어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선의 이상을 이 우주에 실현시켜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혼자서는 아무리 뜻을 이루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또 사탄도 선의 입장에 서려야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구원해주지 않는 한 영원히 악의 입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설 수도 있고, 사탄편에 서서 하나님과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사탄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존재입니다.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사람이 아니면 사탄의 계략도 허사가 됩니다. 이와 같이 뜻의 성취나 죄의 성립이 하나님이나 사탄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놓고 천륜의 뜻과 선의 이상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이념을 무조건 믿고 그것을 이루어야 할 인간이 어떻게 가는가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서러움과 고충이 사무쳐 있습니다. 
     
     
내가 부르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참아버지도 있고, 거짓 아버지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불러야 하는 본연의 참아버지는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요, 이상의 중심이며, 행복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침범해 들어오는 악을 끊어 버리고 마음놓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면 천국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어차피 필연적으로 본연의 참아버지를 찾아나아가야 할 운명길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떤 가치의 내용을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부르고 있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참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아버지는 6천년 동안 쉬지 못하고 싸워나온 아버지요, 섭리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수없이 어려운 고개를 참고 넘으면서 오늘의 나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수고한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살고 있는 어떤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을 느끼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 '아버지'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서러움과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비통함이 그 사람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심정이 교류되고, 천륜의 대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일신을 넘어설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는 생명을 중심으로 영원한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 가운데는 남의 아버지도 있고, 의붓아버지도 있으며, 참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그 아버지가 참아버지가 아니고 남의 아버지나 의붓아버지 입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복귀의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한날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6천년 동안이나 소원해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땅을 대하여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땅을 위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고개를 넘으며 싸워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아버지 앞에 원수 입장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회복해야 할 우리
     
현재의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는 심정적으로, 또 사실적으로 영원한 인연이 맺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을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을 느끼면서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아버지여!'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소망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인간이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인류의 소망이요, 모든 만물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참아들딸로서 복귀의 운명을 타개해나가야 되겠는데, 여기서 우리가 단 하나 바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랄 것이 있다면 오로지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실제 그런 사람이 이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민족은 살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우주적인 역사가 벌어질 것입니다. 왜 그러냐? 불쌍한 민족을 대표하고 우주를 대표하여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정과 서러움이 이 땅에 사무쳐 있고, 하나님의 슬픔이 이 땅에 차고 넘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을 느껴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복귀의 제단을 쌓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입장을 복귀해야 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고, 아버지의 사정을 염려하면서 진정으로 심정이 교류되는 가운데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업을 맡아 언제까지라도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이를 위해 자신을 아버지 앞에 다 내어놓고 새로운 사명을 인계받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라도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음속에 떠올라야 하고, 아버지의 고통과 근심 전체를 다 책임지지는 못할지라도 아버지를 마음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해줄 이 누구인가 
     
오늘 우리는 어떤 곳에 머물러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천적인 인연을 갖고 있으면서 사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계 자녀의 인연을 갖고 있으면서 사탄과도 타락의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책임을 완수하여 영원한 선, 천륜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직계 자녀가 되었던들 어느 누가 침범하여 타락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해주기 위해 이 땅에 오는 분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인간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나타나는 주인공입니다. 이런 인연과 사명을 띠고 이 땅에 강림했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랑을 중심으로 혈통의 인연을 갖고 나타난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역사에 없는 중심으로서 새로운 변천의 역사를 일으키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피와 살은 아버지의 피와 살이요,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런 분이어야 했던가? 타락한 인간은 죄악의 혈통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피살을 대신하여 접붙여줄 수 있는 한 분을 하나님은 이 땅에 보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섭리적인 필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왔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게 되었는데, 그 전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들면서 '너희는 내 피와 살을 먹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이냐? 인간의 마음과 몸, 피와 살은 하나님이 동하고 정하는 대로 함께 동하고 정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야 하고 혈통적인 인연을 맺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매개로 하여 그 일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의 생활권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탄은 여지없이 참소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친구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녔던 피와 살과 뼈, 몸과 마음을 우리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인간이 일체 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것같이 우리도 몸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동하고 정해야 됩니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누가 빼앗아가려야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참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과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말씀을 지녀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는 참부자의 인연을 가져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혈통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악한 세상에 와서 외친 말씀은 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까지 없었던 참진리의 말씀이었고, 땅에 있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이념이었으며, 혁신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참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이 갖고 있는 말씀을 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는 곳곳마다 선의 실적을 나타내고, 부활의 역사,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청산하고,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며, 재창조의 능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말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란 
     
이 땅에는 많은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말 같은 말도 있고 말 같지 않은 말도 있으며, 말씀도 있고 말도 있습니다. 이제 인간들이 가져야 할 최후의 말씀, 천륜의 말씀과 인연을 맺은 우리도 모든 피조만물과 일체 될 수 있는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만물을 주관하려야 주관할 수 없습니다. 
타락은 우리가 알아야 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야 합니다.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인류는 이 말씀을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왔습니다. 인륜을 통하는 동시에 천륜을 대변할 수 있는 그 말씀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생활에서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생활을 대신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생명은 현단계의 환경에서 시작하고 끝나야 하는 생명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생명체들은 역사를 따라 내려온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의 환경과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의 은사를 대신할 수 있고, 과거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으며, 미래의 이념을 입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광과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가면서까지라도 찾고자 했던, 모든 인간들을 대표하는 장자의 유업을 계승시키고자 안타까운 심정을 품고 찾아온 아버지의 심정을 느껴야 땅과 사탄 앞에 하나님의 아들딸로 입증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아들딸로 살려고 해도 이 악한 세상은 우리를 전부 걸고 넘어지려 합니다. 이것은 복잡했던 6천년 복귀역사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종말기인 지금까지 움직여나온 복귀섭리역사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 동반된 생활이념을 최후로 세워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나온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뜻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피조세계를 창조하던 하나님의 심정, 더 깊이 들어가면 풀 한 포기를 짓던 심정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느끼면 하나님이 만물을 대하여 지닌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대하여 품고 있는 심정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느낀 후에는 또 어때야 하느냐?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인간들을 염려해주고 그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서러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인간이 수많은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고난에 시달려왔던 것을 동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책임졌던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생애의 전면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 동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옛날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느낀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서러워한 것과 하늘과 땅을 잃어버리고 서러워한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참아들딸로서 갖춰야 할 승리의 조건
     
아직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이 못 돼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뻗쳐올 수 있도록 해야 아버지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 구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만인류를 대신할 수 있는 참아들딸로서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일이나 혈통적인 일 등 땅 위의 인륜적인 생활이 모두 천륜에 의해 이루어져왔으므로, 우리는 이런 이념을 통하여 모든 것을 비판해낼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를 우리 자체 내에 세워놓고 만민 앞에 그 가치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나님이 지금까지 싸워온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싸움이었는데, 이제는 하늘을 대신하여 땅을 중심으로 사람끼리의 싸움으로 끌어내 그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주인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싸움의 노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승리의 조건으로 세울 것인가? 본연의 하늘에 속해 있는지 땅에 속해 있는지, 혹은 악에 속해 있는지 선에 속해 있는지를 알고 천적인 혈통의 인연을 가진 우리는 실제로 천적인 진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승리의 조건입니다. 
천적인 생활, 진리의 생활을 통한 인격을 가졌다면 자신의 일을 예고할 수 있고, 천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과 화할 수 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하나의 존재를 세워놓으면 그를 거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숭배할 자는 누구냐? 오늘 끝날에 처해 있는 성도들입니다. 또 하나님을 안식시켜드릴 자는 누구냐? 보잘것없는 우리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해원이 우리 두 어깨에, 몸 마음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 역사의 중추적인 조건을 앞에 놓고 놀라운 천지간의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두려야 둘 곳이 없는데도 땅 위의 문제로 허덕이는 입장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아직은 자신을 위한 안일한 생활이념을 세울 수 있는 과정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땅 위에 하늘 법도를 제시하여 승리한 후부터는 안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처해 있는 우리입니다. 
오늘날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선진국가들이 있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민족이 하나님과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민족이다', '나는 하늘의 백성이다', '나는 하늘의 자녀다' 하는 자각을 하고 살면 반드시 싸움의 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이요, 악의 역사를 지닌 사회인 연고로,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고이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과 불같이 하나되기 힘든 것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긍휼의 정, 즉 자기 육신을 움직일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을 갖추고, 진리를 갖추고, 그다음엔 생활환경과 인격을 갖추고, 그리고 이념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을 갖추어서 악의 세상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우주의 끝날에 천륜을 대신한 우주의 심판 조건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책임을 다하고 직계적인 사명을 완수한 내가 되었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할 수 있는 진리, 생활이념을 통할 수 있는 인격, 하나님의 이념을 통한 사랑을 갖추어 만우주에 생명력을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가 동하면 만물도 동하고, 그가 서러워하면 만물도 서러워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갖고 우리가 하늘 앞에 서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시여, 6천년의 원한을 이 한날에 저를 보고 푸시옵소서. 6천년 동안 대적해나온 사탄을 나를 통하여 굴복시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야 할 길
     
우리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만물 앞에 사람을 지어놓고 '만물을 주관하라' 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이뤄진 한날을 아직까지 맞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이뤄지면 모든 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이념을 통한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생활을 통한 새로운 인격, 그리고 새로운 말씀과 진리를 갖고 또 새로운 혈통을 지닌 자녀로 출발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 한 사람을 걸어놓고 소망의 이념이 나에게 찾아들어오고 있고, 역사적인 이념이 나에게 찾아들어 오고 있으며, 현실의 이념이 나에게 찾아들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 한 사람을 세워 하늘과 땅 위의 직계 아들딸의 영광을 증거할 수 있는 한날을 앞에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망각한 채 자기가 처신해야 할 입장을 모르고 자기가 머물러야 할 환경, 자기가 싸워나가야 할 소망의 환경을 지나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 하나님의 전체 이념을 실현하고,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천적인 영광의 터전을 조성하는 동시에, 지상의 모든 싸움을 종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이런 이념을 갖추기 위하여 나아가는 우리는 우주를 대신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또 실천적인 생활이념과 실천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과 실천력을 갖추고 나서게 될 때는 지금까지 하늘을 대적해오던 사탄은 자연히 굴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자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장한 슬픔과 억울함과 분함을 먼저 느껴서 이를 해원해드리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의 한 뜻을 향해 전진할 수 있어야 하겠고,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가던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평탄한 생활환경, 자유로운 생활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은고로 싸우고 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 나가서 불신하는 가나안 7족과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싸움의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을 놓고 역사의 범죄자인가, 신앙의 변절자인가, 기회주의자인가, 혹은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실체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걸어놓고 우리를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늘 앞에 드려질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물은 갈라놓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른 것도 있고 안 가른 것도 있었으나, 안 가른 것은 제물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는 국가적인 제물도 있고 세계적인 제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물의 이념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자기 개인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제물 되는 자리에서 패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갈라지는 자리, 싸움의 자리에서도 '오! 할렐루야! 영광받으시옵소서. 6천년 동안 맺힌 하나님의 원한을 해원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을 이루어 드리겠나이다.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신하여 담대하게 나서야 하겠고,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광야에 나가 신앙의 기준을 잃지 않고 승리하는 하늘의 선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뜻 가운데서 견디어 가나안복지에 들어가, 천륜을 대하고 다시 책임을 다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입장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승리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영원히 모시는 참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3-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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