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
인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소원은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딸만 찾으면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의 소원은 먼저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을 찾고, 그 아들딸로 이루어지는 참된 가정을 찾고, 참된 나라를 찾고, 참된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출발했다면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가정이 많아지면 하나님의 종족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땅은 하나님의 땅입니다. 또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종족이 점점 많아지면 민족이 됩니다. 민족은 국가를 이룹니다. 국가를 이루면 주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주권은 누구의 주권이냐?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또 백성은 누구의 백성이냐? 또 땅은 누구 땅이냐? 전부 하나님 것입니다. 그렇게 커지면 땅 위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주권을 이루는 하나의 백성이 되어 하나의 주인에게 지배받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그렇게 막연하게 대답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스승 중의 제일 큰 스승입니다. 선생님 중의 대왕 선생님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로 말하면 하나님은 부모 중에서도 첫째 부모입니다. 즉 참된 부모입니다. 왕이라면 만왕의 왕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참부모가 되지 못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마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맨 처음 참부모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빌 때 아버지 이름으로 빕니다. 무엇을 할 때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물에 빠졌을 때 누가 구해주기를 원하느냐? 이웃 동네의 할아버지가 구주가 되어 구해주기를 원하느냐, 자기 동생이 구주가 되어 구해주기를 원하느냐? 자기를 구해주는 구주가 형님이면 좋겠느냐, 동생이면 좋겠느냐? 누가 와서 구해주기를 바라느냐? 자기 부모가 와서 구해주기를 바랍니다. 구주 중에서도 일등 구주인 부모가 와서 구해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자기 뼛골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 되는 구주를 찾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죄를 여자가 지었기 때문에 여자를 대신해서 어머니 신으로서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성신입니다. 아버지는 낳아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신은 예수님을 사모하기를 세상의 남편 이상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고는 예수님을 못 따라갑니다. 하나님의 승인을 못 받습니다. 성신이 어떤 성신인지를 몰라서는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모르고는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승 중의 참스승이요, 부모 중의 참부모요, 대왕 중의 참대왕이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이 결국 나라를 위하는 길입니다. 본래 인간은 부모에게 효도만 하면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부모를 따라 가르침대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천국에 가기 마련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인륜도덕으로 볼 때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군왕에 대하여 충성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본연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해야 합니다. 충신과 효자의 도리를 다하면 천국은 내 것이요, 그 주권도 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충의 사상을 가르치는 동양사상이 위대합니다.
그러면 가르침 중에 누구의 가르침이 제일 위대하냐? 스승의 가르침보다 부모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있고, 부모로서 나랏님을 대신할 수 있는 부모라면 그 부모의 자식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면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자기 것이 됩니다. 이런 부모와 같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한 분으로 계시는 하나님에게 나라가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주권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백성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전부 다 하나님 것이 되었을 텐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민을 세워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상대를 찾아야 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부부를 이루었다면 예수님의 아들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뭐가 되느냐? 손자가 됩니다. 하나님에게 손자가 많으면 좋겠습니까, 적으면 좋겠습니까? 손자가 많으면 하나의 족속을 이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땅에 주권을 세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려다가 못 한 것이 한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소망하는가
하나님은 어떠한 입장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과연 어떠한 입장이냐? 다시 말해서 종의 입장이냐, 양자의 입장이냐, 혹은 아들의 입장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인간을 대해주고 싶을 것이냐?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볼 때 종의 입장으로 대해주면 싫다고 할 것이요, 양자의 입장으로 대해줘도 싫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은 '당신은 내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딸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바랄 자리가 없습니다.
만일 한 나라 대통령의 사위 아니면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는 대통령의 사위가 될래, 아들이 될래?' 하고 물어보면 어느 누구든지 대통령의 아들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세계를 지도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와 관계를 맺어 심정적으로 가까이함으로써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얼마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이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만큼 영광의 자리에 가느냐 하는 것이 좌우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이 우주의 절대적인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느냐? 단 하나의 자리를 소망합니다. 종의 자리도 아니요, 양자의 자리도 아닙니다. 아들딸의 자리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바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인 하나님에게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자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모 앞에 불효를 하고,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아 부모의 책망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효의 도리를 다하여 부모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바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참사랑으로 호흡해야
우리 인간은 숨을 쉬고 사는데, 하나님이 숨을 쉰다면 어디로 쉬겠느냐? 코로 쉬겠느냐, 마음을 통해서 쉬겠느냐? 하나님에게 공기가 필요합니까? 또 물이 필요합니까? 그런 것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다이아몬드냐, 금덩어리냐? 그런 것은 얼마든지 하나님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필요한 게 뭐냐?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통한 눈을 좋아합니다. 또 코는 어떠냐?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으로 한 느낌과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호흡하는 데 필요한 공기처럼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사랑이 틀림없다 하는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냐? 물로 꽉차 있는 세계냐, 공기로 꽉차 있는 세계냐, 생명으로 꽉찬 세계냐? 사랑으로 꽉찬 세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하나님도 편안히 쉴 수 있고, '아, 너무 좋다. 모든 것이 다 찼다. 눈도 차고, 입도 차고, 코도 차고, 오관이 다 찼다!' 하는 세계입니다.
인간은 사랑으로써 모든 것을 호흡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코로 숨을 쉬고 있지만 머리에 숨구멍이 나 있습니다. 갓난아이들은 머리의 정수리가 불룩거립니다.
인간은 아기로 태어났다가 아기로 가는 것입니다. 늙으면 아기가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 아버지는 사랑으로 품어줍니다.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데도 다 질서가 있습니다.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 아기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그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부모가 얼마나 사랑합니까? 또 우리가 제3 세계에 가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겠느냐? 모든 것은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눈도 3단계로 되어 있고,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귀도 3단계입니다. 사랑의 공기로 충만한 그 세계를 향해 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복중에 있을 때 귀가 필요하고, 눈이 필요하고, 입이 필요하며, 코가 필요하냐? 다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그 눈․코․입이 복중시대를 위해서 있습니까, 이 지상시대를 위해서 있습니까? 지상시대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사랑의 세계로 가기 위한 내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눈이 빠져 나가고, 귀가 막혀 버리고, 입이 다 붙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거 죽기 전에 고치고 나와야 할 텐데, 복중에서 저것이 고장이 안 난 상태로 나와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낳은 뒤에 고칠 수 있습니까?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준비가 자동적으로 되었을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그것이 다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해서 망가졌기 때문에 지상에 수술공장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종교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
역사를 거쳐오면서 보다 나은 세계, 보다 가치있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죽어가면서도 몰리는 싸움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온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던 소원의 때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가치있는 것, 보다 빛나는 인생길, 보다 가치있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세계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까지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최고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이 사탄세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 세상에서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간을 보기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 사랑할 수 있고, 만민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의 소원과 일치되어 있습니다. 소원이 일치돼 있다는 것은 곧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뭐냐? 인간의 최후 소원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소원이 인간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사랑이요 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치화될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 인간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이 이미 병들어 있습니다.
고장난 인간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지 못하고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내 한 개체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두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두 목적을 향해서 가는 인간으로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적인 목적으로 하나의 사상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는 존재로 창조했다면, 인간은 두 목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모순된 결과에 처해 있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인간은 좋은 의미에서 정상적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고장난 입장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이 없어서 본래부터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든지 하는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인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고장났다는 것입니다. 고장났으니 고장난 것을 수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역사노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고장난 인간을 수리할 수 있는 수리공장을 세워나왔습니다. 그 수리공장이 종교입니다. 수리공장은 기술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기술자가 바로 종교의 도주들입니다.
인간은 고장난 라디오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도록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리공장을 거쳐나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종교를 세워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세계 문화권은 종교문화권으로 흡수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중심한 기독교 문화권, 극동 아시아를 중심한 유․불․선 문화권, 인도를 중심한 힌두교 문화권, 이슬람의 회회교 문화권 등 문화권이 형성된 것을 두고 볼 때에,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종교문화권으로 몰려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리공장이 세워지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부속 재료들이 수리공장 주변에 모여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완성은 하나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자리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었더라면, 즉 인류 시조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서 출발했더라면, 그 출발은 개인의 출발이자 우주적인 존재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최고의 소원인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장성하여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고 살게 되었다면, 인간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자체는 개인이지만 우주적인 개인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한 절대자의 것이라면 인간은 그분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인간의 것도 됩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 자리에 섰더라면 개인이 완성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완성이자 하나님이 창조한 천지 만물의 완성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면 하나님은 어떠했겠습니까? 인간이 완성된 것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가가 온갖 정성을 들여서 작품을 완성했다면 작가는 그 작품을 귀하게 여기고 후세에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 작품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어합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하나님이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만 사랑해주다가 집어던지고 말겠습니까? 인간이 백년쯤 산다면 백년을 좋아하다가 그 이후에는 필요없다며 집어던지겠어요? 인간도 자기가 정성들여 완성한 작품을 자손만대에 남기고 싶고, 자기와 더불어 같이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나님은 어떠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딸로 지은 인간을 잠깐 사랑하다가 말겠습니까?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대자가 그렇게 기뻐할 수 있으려면 인간도 영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원히 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담 해와의 완성은 물론 하나님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에 대한 소원이 전부 다 완결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기뻐한다면 어느 정도로 기뻐했겠느냐? 6․25동란 때 헤어졌던 부자가 수십년 만에 만나서 '아버지!' '내 아들아!' 하며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그 이상일 것입니다. 비교할 수도 없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점령할 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부완성은 가정완성의 출발입니다. 즉 가정완성은 아들딸완성이자 부부완성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재미있게 잘사는데 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들딸은 울고불고 하면서 못살겠습니까? 잘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완성은 가정완성입니다.
이렇게 완성한 가정에서 또 완성한 가정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이 종족을 이루어 종족완성이 되는 것이요, 그다음엔 민족완성이 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국가완성과 세계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에서 일등이 되기를 바라기보다 완전히 이루어서 소화해야 합니다.
종교는 고장난 인간을 고치는 수리공장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닙니다. 어떤 국가를 보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국가가 아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시정하고 해결해야 할 여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본래 인간 조상이 절대자인 하나님과 하나되었다면 거기서부터 부부완성이자 가정완성, 국가완성, 세계완성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세계완성뿐만 아니라 우주완성까지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잃어버렸으니 인간 본연의 마음은 그것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고장난 라디오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흐르는 전파를 받으면 '삑' 하는 소리라도 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본심이 있어 그 작용으로 인하여 어디론가 가려고 합니다. 틀림없이 그럽니다. 그 자리가 바로 최고의 자리입니다.
우리 인간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고장났습니다. 고장난 우리 인간입니다. 고장난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면 뭘합니까? 분해를 해서 다시 한 번 손질을 해야 합니다. 고장난 기계가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놔둡니까? 수리하려면 전부 다 분해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입장이 그와 같습니다.
이 고장난 인간을 고치는 수리공장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수리공장이 끝날에는 부속품만 갈아끼워 수리하는 공장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종합 수리공장을 만들어서 종합적으로 수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리고 종합 수리공장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종합 수리공장의 기술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기술자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세계의 모든 종교의 사명이 끝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통일교회가 종합 수리공장으로서의 내용을 갖추고 나왔다면 통일종교를 바라는 세계 만민들은 통일교회를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통일교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을 한국 백성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통일교회가 그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그 방향만이라도 제시한다면 이 민족이 좋아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통일교회는 반대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 수리공장에서는 고장난 것을 수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수리공장들은 어디가 고장났는지도 모르고 수리하다가 더 고장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수리공장의 주인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들이 망하게 되었으니 안 망하려고 통일교회를 반대합니다. 나라도 반대하고 세계까지 반대합니다. 그러나 나라와 세계가 반대한다 해도 우리 수리공장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고쳐져야 할 인간
고장난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어느 곳이 고장났는지 아는 사람이 고치면 한 번만 고치면 됩니다. 그러면 방송국에서 보내는 방송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백대라고 해서 내용이 다른 게 아니고 천대라고 해서 다른 게 아닙니다. 억만대가 있다 해도 똑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기뻐하는 그 자체를 비쳐주는 텔레비전이 있다면, 그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게끔 되어 있다면 만민이 모두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면 그 기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슬퍼하면 슬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만민이 전부 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멋진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어 있으니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천천히 수리되기를 바라겠느냐, 아니면 빨리 수리되기를 바라겠느냐?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년 만에 수리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십년 걸려야 수리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수리공장에 들어와서 일생 동안 수리되다가 버려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하나님과 하나되었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개인완성이자 세계완성이며, 개인의 기쁨이자 세계의 기쁨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천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는 자연히 완성됩니다. 가정완성만 되면 자연적으로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된 소나무 씨를 뿌렸다 하면 참된 소나무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영원히 참된 소나무로 남아집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참된 소나무 씨가 되어야 할 텐데 다른 씨가 됐습니다. 그러니 참된 소나무 씨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비사로 말하면 돌감람나무가 되었으니 참감람나무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래 우리 인간이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돌감람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 나무의 열매는 까마귀 밥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접붙여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를 접붙여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 인간은 재생창에 들어가서 접을 붙여야 합니다.
참감람나무가 되지 못한 인간은 이상적인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악이 우세한 나라입니다. 이 세계도 악이 우세한 세계입니다. 선과 악이 얼룩덜룩 섞인 입장에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는 것을 해부하여 잘라 버려야 합니다. 선과 악이 서로 싸우는 입장에 있으면 이상적인 나라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나왔는가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나 이상적인 국가․민족․씨족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왜냐? 완성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수리공장이요 잃어버린 본향길을 찾아가게끔 안내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찾아나왔느냐? 이상적인 한 남자와 이상적인 한 여자를 찾아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은 몽땅 내 사랑이다' 할 수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찾아나왔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신도들은 신부라고 하는 것은 곧 세계를 총망라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와 독생녀를 찾기 위한 내용을 말한 것입니다. 완성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 땅 위에서 만나 혼인잔치를 치러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을 신랑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 신랑이 한 신부를 찾아서 둘이 합하여 어린양잔치를 해야 합니다. 어린양잔치가 뭐냐? 본래 인간 시조는 선한 부모로 출발해야 했는데 악한 부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통한 혈족으로 남아지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아들딸이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래의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잔치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와서 한 신부를 찾아 한 기준 위에 접붙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그 기준을 설정하여 확고한 목적을 세운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운 종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기독교 문화권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이하려면 그렇게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는 무엇을 해왔느냐?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아들 하나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도주들 가운데는 여자가 없고 전부 남자입니다. 이건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연결시켜나왔다는 걸 뜻합니다. 일 단계, 이 단계 …… 백 단계…, 이렇게 올라가 최후의 배턴을 이어받아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 아들을 찾아나왔습니다. 이게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41-260, 41-9, 1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