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 책임분담과 완성의 길
하나님의 뜻 성사는 인간의 책임분담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의 일생 가운데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요한 일에는 자기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고, 또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개인을 미루어 볼 때, 한 나라도 그러할 것이고, 나라를 미루어 보아 복귀섭리를 담당한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뜻 성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뜻을 이루는 것, 다시 말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이상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이상, 즉 뜻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 자신의 일로만 남아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뜻 성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떠난 상대적 입장에서 그 성패가 문제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기 전에 천지 만물을 지어놓고, 그다음에 아담 해와를 지어 중심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 존재가 승리의 결실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위업이 인간에게 상속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은 이미 하나님이 이루어 놓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못 한다면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게 되고, 감당하게 되면 전체의 목적이 성사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이상인데, 그것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슬픈 입장이 된 것도 하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상대 때문이었습니다. 즉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슬프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도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말미암아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좋고 나쁜 모든 것은 하나님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습니다. 타락이란 그러한 입장에서 되어진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중요한 책임을 짊어진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은 언제 끝나느냐? 완성의 때가 언제냐? 천사세계를 지었다고 해서, 만물세계를 지었다고 해서, 인간을 지었다고 해서 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과정에 있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완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일치되고, 사람과 만물, 천사세계가 일치돼야 합니다.
인간에게 책임을 주신 이유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왜 줬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창조하고 인간이 하나님이 계획한 창조원칙에 협조해 1백퍼센트의 가치 기준을 찾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데 인간도 동참했다는 가치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1백퍼센트 완성하지 않고 95퍼센트만 완성한 의도가 뭐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므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요, 무슨 돈이나 권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협조받아야 할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짓고 인간이 5퍼센트 가담해서 완성할 수 있도록 한 그 내용이 뭐냐? 그것이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인간에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같이 하나님과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주었느냐? 하나님은 인간에게 온 천하가 굴복할 수 있는, 온 천하가 고개 숙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책임을 주었습니다. 전지전능한 분이니 그 전지전능한 창조성까지 부여하고, 또 영원불변한 사랑의 주체니 그 사랑의 주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책임분담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복의 조건이요,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와 같은 것이기에 이것을 안 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위업에 인간을 가담시키기 위해서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게 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부여하였습니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책임분담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인간의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도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미완성일 뿐만 아니라 파괴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위업에 가담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95퍼센트 창조이상적 형태를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5퍼센트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인간 자체의 완성은 하나님이 다 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거기에 보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분담 기간을 준 것은 성숙하기를 기다리기 위한 것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기간을 왜 두었느냐?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로서 인간이 나면서부터 하나되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책임분담이라는 과정을 두고 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 때문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책임분담 기간이 없으면 나면서부터, 어린애 때부터 결혼해야 됩니다. 그때는 결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습니다. 성숙기라는 기간을 두고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자면 여자의 모든 기관이 다 성숙하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성숙해야 합니다. 메뚜기도 전부 성숙해서 짝짓기를 하는데, 왜 사람이 모르겠느냐? 사람도 성숙하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상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 둘만이 재미있게 한 동산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와 놀겠느냐? 성숙해서 아담이 해와 손을 만지면 보들보들하고, 해와가 아담 손을 만지면 억센 게 맛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성숙하지 못하고 떨어졌으니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맹이 없는 밤송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추석 무렵이 되면 밤알이 영그는데 그때 따면 밤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양은 같지만 까보면 껍질만 있고 알맹이가 없습니다. 아담 해와도 완전히 영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본질적인 요소와 관계를 못 맺었기 때문에, 본질적인 사랑과 인연을 못 맺었기 때문에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임분담 기간을 둔 것은 성숙하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성숙했을 때 사랑의 힘은 더 커집니다. 여자와 남자가 합하게 될 때는 더 커집니다. 둘이 합하면 둘 다 커집니다. 커짐으로써 더 큰 주체, 더 큰 대상의 길을 찾아갑니다. 최고 본연의 씨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찾아가게 돼 있습니다. 꽃이 피어 향기를 풍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분담이라는 것이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타락이 뭐냐? 책임분담 수행에 미달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 해와는 청소년시대를 지나 사춘기를 맞이해서 자연히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하나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되는데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되느냐? 아담도 아니요 해와도 아닙니다. 사랑의 뿌리 되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됩니다. 꽃이 필 때에 그 꽃 자체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통해 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서 인간과 더불어 완전히 상대적 이상을 이루어 사랑을 완성했더라면 모든 것이 공인되었을 것입니다. 즉각 거기서부터 천국생활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성한 자리에 선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하나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95퍼센트 창조했지만, 인간이 1백퍼센트 완성한 창조물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인간 완성이자 하나님 창조 위업의 완성입니다. 창조 위업의 완성이자 뜻의 완성입니다.
인간 책임분담은 사랑이상 완성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타락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던 이상의 사랑 완성기준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에게 책임분담이라는 기준을 세워준 것은 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고, 하나님이 창조과정에서 인간에게 책임분담 5퍼센트를 필요로 한 것은 그 대상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그 대상 없이는 사랑이 현현될 수 없습니다.
10대 소년소녀들이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나타나면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이 운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책임분담이라는 과정을 중심으로 인간 자체가 스스로 성숙기를 맞이해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때가 됐더라면, 하나님의 영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가 인류의 내적인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해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가정뿐만 아니라 종족․국가․세계로 발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전체는 하나님의 직계 혈족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있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내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입니다. 집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닮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해 하나되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의 일체성이 이루어집니다. 생명이 동화됩니다. 남자 여자가 부부를 이룬다는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일체, 동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힘은 하나님과 동화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나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나 권력,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상의 창조 위업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을 창조 위업에 가담시키기 위해 책임분담을 주었느냐? 하나님도 상대를 갖지 않고는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과부나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하느냐? 사랑이 있지만 발동할 무엇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분이라 해도 상대가 없으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천주를 지은 하나님은 누구를 중심으로 상대하고 싶어하느냐? 아담 해와를 중심으로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려면
아담 해와는 도대체 누구냐?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입니다. 그 조상이 뿌리가 되어 줄기가 뻗고 가지가 뻗고 잎이 나와 오늘날 인류가 형성되었습니다. 한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인간이 기뻐서 '오,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천지 합덕이 이루어지는 기준이 벌어지면 거기에서부터 줄기가 뻗어나고 가지가 뻗어 잎이 무성해집니다. 인류는 그런 하나의 나무와 같은 사랑이상을 중심으로 연관성을 가진 공동생명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과 화합합니다. 그의 행동도 사랑을 추구한 행동이고, 그가 하는 말도 사랑을 추구한 말입니다. 웃고 즐기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일체가 사랑을 승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통일교회에서 이상하는 유토피아의 지상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세계에서 종교를 세워 찾아나온 것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권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이 서지 않을 때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그런 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을 통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시 같은 문학작품이 필요한 것은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이상적인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자극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한 사랑이어야 하겠느냐? 오늘날 인간세계의 그릇된 사랑은 천사장급 이하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사탄이 침입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권에서 태어나 살면서 사랑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면서 야단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이 돌고 도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에는 더러운 것만 전부 모입니다. 소용돌이가 치면 강물에 뜬 더러운 것들이 전부 모입니다.
오늘날 사된 사랑을 가지고도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 야단인데,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느냐? 지남철의 플러스(N극)와 마이너스(S극)가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이너스가 '아이구! 난 플러스 싫어. 떨어질래' 하더라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플러스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코도 달라붙고, 눈도 달라붙고, 귀도 달라붙고, 마음도 달라붙고, 전부 달라붙습니다. 발을 움직이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리로 갑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과 관계맺으면 그 사랑의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갑니다. 까마귀 새끼도 자기 어미를 따라다닙니다. 자기 어미보다 예쁜 꾀꼬리가 와서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또 참새와 멧새를 한 새장에 집어넣으면 참새는 참새끼리 좋아하고 멧새는 멧새끼리 좋아하지, 멧새하고 참새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끼리끼리 합니다.
사람은 언제 완성되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상 완성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최고의 사랑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념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은 언제 완성되느냐? 사랑이 이루어져야 완성됩니다. 남자가 '아, 훌륭한 남자다. 완성했다'고 아무리 해도 사랑을 모르는 남자는 완성된 게 아닙니다. 여자도 아무리 미인이고, 천하가 우러러보게끔 잘 단장해서 '아! 행복하다.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모르면 완성되지 않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랑의 가치를 아는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남자 여자가 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남자가 '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소' 하고, 또 여자도 '남자 저리 가라. 나는 얌체니까 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주소' 하는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서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겠다는데, 서로 사랑한다는데 누구를 나쁘다고 하겠느냐? 그렇게 곤란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남자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고, 여자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고, 그 새빨간 사랑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으므로 셋이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도 불평할 수 없고, 남자도 여자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사랑이 새빨갛게 익어 '아, 사랑이여 오소!' 할 때 여자를 먼저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또 여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남자에게 먼저 오겠느냐, 여자에게 먼저 오겠느냐? 남자와 여자에게 한꺼번에 옵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한꺼번에 오는데, 사람 자체는 영과 육 이중으로 돼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가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면 안 됩니다. 균형은 여자의 마음과 여자의 몸이 하나되고, 남자의 몸과 남자의 마음이 하나되어 일직선에 서면 이루어집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옵니다. 그게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남자와 여자, 하나님까지도 완전히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책임분담을 아담 혼자 완수할 수 있느냐? 먼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기 전에는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원리, 즉 하나님이 세운 법도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라!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귀의해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완전히 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제1조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이것이 신앙의 제1조입니다. 그다음에 둘째는 원리, 하나님이 세운 법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독재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라는 것과 원리와 하나되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독재자' 하면, 자기 개인을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국민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고, 국민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독재라는 것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히 주관하더라도 그를 더 훌륭하게 만들고 더 빛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그것은 독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꼼짝못하게 하고 아침이나 저녁이나 모든 생활을 간섭하고, 공부 안 하면 공부하라고 채찍을 들고 강제로 시키더라도 그것은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한 것입니다. 그때는 자녀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성공하였을 때,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독재자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나를 위해서 그러셨구나!'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리의 주관권을 정해놓고 바랐던 것은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알아서 나설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원리결과주관권을 거쳐온 아담 해와와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하라고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서 그 이상까지도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온 인류의 아버지로서 복귀섭리 전체를 책임진 하나님의 비밀을 상속할 수 있는 기반이 땅 위에 세워집니다.
상속할 수 있는 동기는 누가 마련해야 되느냐? 상속의 터전을 닦을 때까지는 부모가 하지만 상속받는 순간에는 자기가 해야 합니다. 이것이 5퍼센트의 책임입니다. 원수를 갚고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은 하나님이 마련해주더라도 승리는 내가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나를 길러주신 부모의 심정을 깨달아 그 심정과 일치된 가운데서 그분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요, 그분의 싸움은 나의 싸움이요, 그분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가 뜻을 위해 수고한 인연을 가지고 찾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 이상의 자리를 이룩하고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먼저 이루고 죽겠다고 작심하고 나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비로소 상속의 인연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을 통해서 완성된다
본래 하나님은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한 다음 인간을 지어놓고 모든 것을 이 인간을 통해서 완성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위신과 인간의 위신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완성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도 자동적으로 완성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은 만우주의 중심 권위를 갖추고 인간은 그의 아들딸로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의 세계가 이 지상에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되고,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인간의 권위를 1백퍼센트 찬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찬양하는 것을 본받아 인간도 역시 하나님을 높이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아담을 세워서 자랑할 때는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이고, 해와를 세워서 자랑할 때도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 개인의 완성은 하나님의 완성이니, 이 우주 전체의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되었다면 아담 해와의 가정은 하나님의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요, 전체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인간 타락으로 갈라졌던 이 영계와 육계가 하나됩니다.
그랬다면 아담 해와의 후손들은 몇만 년을 가더라도, 자녀가 부모인 아담 해와를 대하던 그때의 권위를 똑같이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되었다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 마음과 몸이 일생 동안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러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가정은 우주의 핵심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으로 종족, 그런 종족을 중심으로 나라, 그런 나라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랬으면 이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입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130-17, 128-130, 87-120, 133-86, 20-196, 115-64, 65-164, 29-80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