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녀를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사랑이야기 - 제 1권 하나님 사랑편 - 제 2 장 인간 창조와 하나님의 사랑)

무지... | 20180413052011

7. 자녀를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


무엇이 자랑 가운데 제일 귀한 자랑이냐


하나님은 고독을 좋아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습니까, 능력이 없습니까, 사랑이 없습니까? 하나님은 사랑도 있고, 생명도 있고, 능력도 있고, 지식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왜 만물을 창조했느냐? 무엇 때문에 창조했느냐? 이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구경하기 위해서 창조했겠느냐? 무엇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했겠느냐?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돈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생명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랑을 자랑하기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이거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자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랑 가운데 무슨 자랑이 제일 귀한 자랑이냐? 지식 자랑은 일대(一代)면 끝납니다. 권력 자랑은 어떻습니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지만, 권력은 십년을 못 갑니다. 그건 십년도 못 가서 '아이쿠!'  하게 됩니다. 또 황금덩이 자랑? 그것도 몇 대() 못 갑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자랑하는 것은 억천만 년 갑니다. 진정한 사랑을 한 사람이 '나는 자랑할 것이 있다면 사랑밖에 없다. 내가 자식을 이렇게 사랑했고, 아내를 이렇게 사랑했고,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했고, 만물을 이렇게 사랑했다'  하고 자랑하는 것은 억천만 년 갑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랑하지 않아도 모든 만물이 자랑하고 선전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곳에 참된 주인이 나오기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를 모든 것이 따라가려고 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주인이 여러 명이더라도 자기를 더 사랑하는 주인을 따라다닙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사랑하는 주인에게 소속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얼굴도 비슷하고 모든 것이 비슷한 두 신랑감이 있을 때, 아가씨는 자기를 더 사랑하는 남자를 골라 시집을 갑니다. 영원한 참사랑을 찾아갑니다. 그것은 참사랑에서 주인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독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 인간도 고독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 태어난 인간이 그러니 하나님도 고독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뭘 좋아하느냐?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평화행복이 성립되려면


사랑이나 평화나 행복은 상대적 관계에서만 성립됩니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혼자 사랑한다'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나는 혼자 평화를 이루지'  하거나  '나 혼자 행복하다'  하는 사람도 미친 사람입니다. 혼자서 행복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상대적 여건에서 생깁니다. 사랑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찾으면 행복은 자연히 나타나는 것이요, 사랑을 찾으면 평화도 자연히 생깁니다. 그건 부산물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왜 했느냐? 사랑을 자랑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한번 그 사랑을 자랑하면 그걸 막을 자가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자랑스러운 사랑으로 영원무궁토록 계속할 것입니다.


그랬으면 인간은 얼마나 행복했겠느냐? 이 눈은 술에 취한 것 이상, 아편에 취한 것 이상으로 사랑에 취한 눈이 되었을 것입니다. 몸 전체의 세포는 물론 머리카락까지도 사랑의 젓갈이 되었을 것입니다. 소금에 절여져 삭은 젓갈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잠겨서 사랑의 맛에 저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숨결은 사랑의 박자에 맞춰진 숨결이고, 내 느낌은 그 사랑의 느낌입니다.


그렇게 됐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본래 인간이 하나님이 자랑하는 사랑 앞에 동반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거기에는 권위라든가 상하관계가 없습니다. 평등이요, 일체요, 통일입니다. 통일, 일체, 평등은 사랑 없이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피조만물을 통해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


하나님은 엿새 동안 지은 만물을 바라보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바라볼 때 무한히 기뻤습니다. 그 기쁜 마음을 가지고 거듭 '선한지라' 한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한 말씀이었느냐? 천사장에게 한 말씀이 아닙니다. 만물에게 한 말씀이었습니다. 만물을 대해 그렇듯 간절한 마음을 품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피조물이, 에덴 동산에서  '선한지라'라고 찬양을 받았던 그 피조물이 선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려던 그 뜻이 만물 가운데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서러운 사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선한지라'  한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선한지라'  한 그 말씀이 슬픔의 말씀이 되어 버렸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아주는 참된 본연의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지극한 수고의 손길을 거쳐서 지어진 만물을 바라보며 더욱더 큰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지라'  한 그 말씀의 가치를 알고 그 말씀을 대해준 존재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피조만물을 사랑했던 하나님의 심정에는 서글픔이 잠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선하게 지어진 그 피조만물보다 그 만물을 지은 하나님 자신을 더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놓고 그들이 자라 만물을 주관하고 선의 이념권에서 말씀의 가치를 실현하기를 바랐습니다. 또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온 피조만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이 도래하기를 고대하면서 아담 해와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를 바라보는 하나님은 그들이 완성하여 만물을 주관하고 자신의 대신 존재로 나타나는 그 한날을 그리워하고 고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오랜 기간을 거쳐 만물을 지었던 사실을 자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한 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또한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너희는 나의 내적 성상과 외적 형상을 닮은 실체로서 너희 마음이 곧 내 마음이요, 너희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너희가 응하면 나도 응하는, 둘이 아닌 하나의 모습이다'  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소망하고 고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간 조상이 알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창세 이후 하나님은 인간 조상을 통하여 자랑할 수 있는 사람, 자랑할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는 한날을 고대했었는데, 타락함으로써 이러한 자랑의 조건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랑의 조건이 슬픔의 조건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기울여 본연의 아버지의 내적 성상에 사무쳐 있는 자랑의 심정을 파고들어가 이것을 들추어내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하나님은 자랑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창조까지 한 분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고로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분입니다.


만일 누구에게 자랑하려거든, 자랑하고 싶은 내용을 안팎으로 갖추어 그것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놓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호박처럼 생기고 멍텅구리같이 생겼어도 사람들이 복덩이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은 못난 사람을 제일 잘난 사람 이상으로 만들어서 자랑합니다. 그러니까 자랑을 하려면 아버지를 내세우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괜찮습니다. 자랑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에게 '저 자랑 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도 자신을 자랑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자랑하면 실수를 해도 아버지는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은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심정을 가지면 자연히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크고 넓고 높고 깊은 사랑을 가지면 가질수록 자랑하고 싶은 것이 본연의 심정입니다. 부모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빈민굴의 거지도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저 자기 아들딸이 좋아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흘러나온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이 조금만 잘하면 ', 우리 아들딸 보아라'  하며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가정이 조금만 잘해도 ', 내 사랑하는 가정 보아라'  하며 사탄까지 공인하게 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자랑했다가도 인간이 그대로 못 하면 꽝 하고 무너집니다. 지금까지 개인을 자랑했다가 그대로 못 해서 꽝, 가정을 자랑했다가 꽝, 이스라엘 민족을 자랑했다가 꽝, 또 예수님을 한바탕 자랑했다가 꽝,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이렇듯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같이 하나님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기쁘게 해주고 잘하면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랑거리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랑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자랑거리를 많이 가지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천하의 모든 사람 앞에, 천상세계 앞에 자랑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러한 것을 알고 하나님이 자랑해줄 자랑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만물을 통해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던 하나님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가 있습니다. 어떤 한 민족을 보더라도 민족 자체를 자랑하는 것이 그 민족의 바람일 것입니다. 또한 한 국가를 다스리는 주권자가 있다면 그 주권자는 국가의 위세를 만방에 떨칠 수 있는 자랑스런 주권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한 국가도 그렇지만, 작게는 우리 개인도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 환경을 움직여 국가 세계와 인연맺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본심이 그러하고, 인간의 생활환경이 그러하고, 인류 역사의 흐름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연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느냐? 이렇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천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 자신이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연맺어진 모든 존재는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창조주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한 창조물을 바라보고 기뻐하던 그 시대를 우리가 회상해 볼 때, 하나님도 지어진 모든 만물을 통하여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음받은 어떠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피조세계, 또는 이 자연에는 각양각색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만상(萬象)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창조되었느냐? 창조주의 정성어린 심정의 과정을 통하여 지어졌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존재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음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작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로부터, 크게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우주까지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었던 자랑의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또한 천사세계를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요, 인류 시조인 아담 해와, 다시 말하면 만물의 주인공이 될 사람을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이 땅 위에 남아진 피조만물을 이용하여 살아왔습니다. 즉 싫든 좋든 만물을 사용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었는데, 과연 그것을 알고 그 가치대로 대해주었느냐? 우리의 본심에게 물어볼 때,  '그렇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밖을 바라보면 광명한 아침 햇빛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그 태양 빛이 뜻하는 것은 무엇이냐? 즉 자연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 빛을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은사라고 찬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었느냐? 그렇지 못한 생활을 했다면 그러한 내용으로 지어진 만물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이 하나님의 자랑의 일면을 드러내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지어진 만물을 그렇게 알아주고 자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를 지을 때, 하나님은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었던 만물을 하나님 대신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중심 존재로 세우려던 아담과 해와가 만우주 앞에 중심존재로서 서는 날 하나님은 이 아담 해와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습니까? 지어진 만물의 어떤 부분부분만 자랑하고 싶었겠느냐? 온 피조만물을 내세워 자랑하고 싶은 한날을 바랐습니다.


인간이 찾아가야 할 궁극의 자리


에덴 동산에서 모든 만물을 지어놓은 후 그것들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입장, 다시 말하면 창조주의 입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자랑의 존재물로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동반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이 이 피조세계를 창조한 뒤 느꼈던 기쁨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대해 나를 위해 지어진 자랑의 존재물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마음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성의 마음에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찾고 자랑하고 싶었던 자식의 인연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물은 사랑의 존재요 기쁨의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어진 만물을 보고 지극히 선하다고 했듯이 우리도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 지극히 선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을 당시의 심정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물인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모두 하나님이 우주적인 가치를 자랑하고 싶어서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해나가면서 하나님이 지은 모든 만물에 대해서 그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를 찾아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리를 찾아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비경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해서 모르지만, 하나님이 만물을 대해 주인으로서 기쁨을 표시하면 그 기쁨을 만물이 모르게 돼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면 만물도 기뻐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권에 있으므로 육적인 오관을 통하여 감지할 수 있는 자극밖에는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은 주인이기에 하나님이 상대적 입장에 있는 만물에 대해 기쁨을 표시하면, 그 만물들은 기쁨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 느끼고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본연의 사랑, 본연의 심정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타락했으나 인간의 심성에는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기준, 출발의 기준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출발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공명체(共鳴體)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명된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만물을 짓고 기뻐하던 기준을 회복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 바울은 만물이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막연한 관념을 가지고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자리를 탐구해 들어가보니 만물이 탄식하는 소리가 이 세계 어떤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었습니다.


타락한 세계의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지니고 있는 본연의 심성을 통해 하나님과 일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이 우주만상을 바라보면 피조물은 물론 오늘 이 사회 전부가 탄식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던 본래의 그 기준으로 만물과 일치되어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자리가 우리가 찾아들어가야 할 궁극적인 자리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신비스러운 경지를 찾기 위해 자기의 모든 육정(肉情)을 제압하고 현실의 모든 조건을 포기하면서 깊은 마음의 세계를 더듬어 들어가는 산중수도를 합니다. 이 모두가 그러한 뜻과 기준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 접근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연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자연은 우리와 상관없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즉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본래 인간의 완성을 위해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깨달아 만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목적의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자로 설 수 없습니다. 도의 세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의 심정을 통하여 만유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자리에 서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개인도 없었으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 : 85-9, 5-236, 11-179, 20-240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