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이 피조만물을 창조하신 뜻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주인이요, 인간의 아버지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신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 하나의 뜻의 세계를 바라며 나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이냐? 신학자들은 그것을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모든 피조세계를 지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존재요, 피조세계의 주인이요,우리 인간의 아버지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책상 같은 물건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상한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존재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어떤 중심존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집을 보면, 그 집안에는 가정 집물(家庭什物)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의 주인인 가장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마련했느냐? 살림하기 위해, 살기 좋게 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장인 자기만을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과 아내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마련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건을 사는 데도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우주는 누구를 위해 지었는가
우리 자체를 두고 볼 때, 자기 자신이 보고 좋아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느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더라도 자기가 누구에게 보여줘서그가 좋아한다면 더 열심히, 더 정성껏 그리게 됩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결과적 존재입니다.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닮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다는 것은 곧 그 원인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결국 그 원인이 되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지을 때,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하나님이 자기 능력이나 자기 자체를 위해 지었느냐,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지었느냐?하나님 자신보다도 자녀를 위해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 되겠다는 것보다 사랑하는 자기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임을 우리는 여기서 추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물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은 것도 되지만 결국 사람을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중심으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만물의 주인이요, 우리 인간의 아버지다 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 모든 하늘땅이 '나를 위한 것,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성을 다해 지으신 것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지을 때,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이 '아! 만물아, 생겨나라' 해서 그냥 생겨났겠느냐? 그렇다면 사랑의 가치가 없습니다.사랑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어렵게 짓고, 정성껏 지으면 지을수록 사랑하는 사람의 깊은 심정과 유대가 맺어지게 됩니다. 남편이나 사랑하는 부모가 어디 가서 물건을 사더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고, 찾고 찾는 정성을 다해서 사다준 것하고, 아무 정성 없이 싸구려를 사다준 것하고는 가치가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우주에 있는 어떤 하찮은 존재도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두뇌가 좋고, 세계를 소화하고도 남을 수 있는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의 물건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래 한 알을 설명한다고 할 때, 대체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어도 내면의 깊은 내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모래를 연구하는 박사가 몇 백만 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면의 깊은 내용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듯 모래 하나도 그 내면의 깊은 내용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우주는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장난거리나 놀음거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정성들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면 과연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그러니 우리는 이 우주를 바라볼 때,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는 지극히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동산을 거닐고, 초목과 꽃을 바라보고, 새를 바라보고,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이런 모든 것을 보면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최고의 걸작품
자연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길가에 값없이 서 있는 나무 하나도 유명한 화가가 그린 어떤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비교할 수 있느냐? 아무리 유명한 화가가 최고의 걸작품으로 꽃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 그린 화폭에서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향기도 나지 않습니다. 또 씨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값없이 길가에 서 있는 나무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씨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씨를 심으면 그 나무보다도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볼 때, 자연의 어떤 하나라도 영원을 기약합니다. '영원히 나는 인류와 더불어 살아 남아야 된다' 하는 그런 기약 밑에서 꾸준히 우리 인류를 위하여, 피조세계를 위하여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하루 종일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짓고, 지을 때 하나님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떤 풀 한 포기라도 세계의 어떤 명화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만지기에, 보기에 놀랄 만합니다. 그런 그림 한 폭만 있어도 벽에 걸어놓고 '햐-' 하면서 감상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 한 폭뿐 아니라 온 우주에 꽉 차고, 내 주위에 차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 가운데서도 오래 될수록 명화가 되고,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먼저 그린 것이 더 가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무나 풀의 역사를 말한다면, 나무나 풀이 '우리 종족은 창조역사 이래 세계 어느 곳이나 없는 곳이 없고, 천하에 없는 곳이 없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바람이 안 불어서 가만히 있지만 나는 언제나 춤을 추고 있다. 나는 지금 조금 쉬고 있지만 온 세계의 우리 친구들은 다 춤을 추고 있다' 할 것입니다.
또 나무들은 누가 봐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을 누가 봐주느냐? 날아가는 새가 보고, 지나가던 동물이 보고, 기어다니는 개미가 보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봐줍니다. 땅에 기어다니는 조그마한, 잘 보이지 않는 벌레도 바람이 불면 나무가 춤추는 것을 보고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것이 다 어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들이 춤추고 자연이 전부 다 춤추게 되니 그 춤추는 세계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춤을 추면서 구경하게 됩니다.
자연 가운데는 멋진 춤이 있고, 멋진 음악이 있다
사람은 벌보다는 나비를 좋아합니다. 왜 나비를 좋아하느냐? 나비가 춤을 추며 날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는 것은 박자에, 가락에 맞추어서 납니다. 빨리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날고, 느리게 나는 놈도 박자에 맞추어서 납니다. 나는 형은 여러 가지지만 어쨌든 전부 박자에 맞춰서 납니다.
또 산에서 사슴이 뛰어다니고 토끼가 노는 것도 음악적입니다.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하나의 리듬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는 것도 음악적입니다.사람도 무엇을 먹을 때 아주 음악적입니다. 그게 다 음악의 상징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런 이 우주를 영원히 나를 위해서 만들고, 나를 위해서 장치했다면 그분에 대해서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경꾼처럼, 이웃 동네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산도 높은 산이 있고 낮은 산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산이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으냐, 밋밋하고 평평한 것이 좋으냐?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것이 좋습니다. 그거 왜 그러느냐? 그 모양이 춤추려고 하는 어떤 형을 갖기 때문입니다. 별의별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가지각색의 형태를 나타내면서 형성되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바로 춤입니다.
자연 가운데는 멋진 춤이 있고, 멋진 음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멋진 예술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 가운데는 참 많습니다. 세계에서 아무리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하더라도 자연의 오케스트라보다는 못합니다. 맑은 가을날 해가 잘 드는 숲속에 가서 가만히 들어보면, 벌레 소리 등 온갖 소리들이 그야말로 어떤 오케스트라의 합주곡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또 바람이 쑤욱 불고, 햇빛이 비치고, 나비가 훨훨 날고,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어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전부 다 음악적이고 예술적입니다.
노래하고 춤을 춘다 할 때 혼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으냐, 아니면 둘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으냐? 둘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합니다. 여자가 여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여자에게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라고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남자는 어떠냐? 남자도 남자에 대한 노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자 필요없어. 내가 이만한 남자니 어디에 가든지 부족한 게 없다. 머리가 좋고 실력이 있는데 여자가 왜 필요해. 나 혼자 살지' 그런 남자가 없습니다.
노래와 춤이라는 것은 상대가 없으면 재미 없습니다. 새들이 짹짹짹 하는 데도 혼자서 그냥 짹짹짹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친구를 찾든가, 함께 살 대상을 찾든가, 그다음에 밥을 먹으러 가자든가, 날이 밝았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의 의사소통입니다.
우리 눈은 보기를 좋아하고, 귀는 듣기를 좋아하고, 코는 냄새 맡기를 좋아하고, 손은 만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여자를 만지는 것이 좋으냐,남자를 만지는 것이 좋으냐? 남자를 만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은 왜 하느냐? 자기 보기에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 보기에 좋으라고 합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가진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를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기 때문에 혼자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상대적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박물관
우리가 하는 말은 왜 생겨났느냐?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만 위하려면 말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말 중에 좋은 말은 무슨 말이냐?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이 제일 좋은 말입니다. 세상이 반대하고, 세상이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는 통일교회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느냐? 사랑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가 환영하고 하나님이 환영합니다. 세상은, 사탄세계는 선생님을 반대하지만 그 반대하는 사람은 이 우주와 하나님이 자체력을 통해서 추방합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우주의 힘과 하나님의 힘은 선생님을 환영합니다. 미국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우주의 힘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야! 광물세계도 사랑의 노래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도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노래를 한다'고 하면 얼마나 멋지냐? 사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바위가 얘기를 하고 노래를 합니다. 땅이 얘기를 하고 노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냐? 하나님이 지은 사랑의 이상을 찾아가기 위해서, 사랑 이상의 완성을 위해서입니다. 낮은 급이지만 사랑이 그리워서 노래하고, 사랑을 찾아서 영원히 운동합니다.
이렇게 볼 때, 자연은 인간에게 이상적 사랑을 가르쳐주는 사랑의 표본물들이요, 사랑을 교시하는 교재입니다. 그러한 자연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한 박물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은 사람을 완성시키 위한 교재입니다. 사람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광물계도 '어서 사랑을 완성하소' 하고, 식물계도'사랑을 완성하소' 하고, 동물계도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랑을 중심으로 주인 된 사람이 완성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충만한 가운데서 사랑을 갖고 살고, 하나될 수 있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걸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완성과 동시에 인간의 사랑 완성, 우주의 사랑 완성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모두가 '아, 행복하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전부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곤충도 쌍쌍으로 되어 있는데, 소리를 내고 노래를 합니다. 무엇 때문에 하느냐? 노래를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짝을 위해서 합니다. 짝을 위해서 전부가 노래합니다. 새들도 쌍쌍입니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도 배가 고파서 먹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으로 합니다.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빼면, 짝을 빼면 노래도 없어지고 춤도 없어집니다. 예술이 없어집니다. 미술같은 것이나 문학은 전부 자연에서 배운 것입니다. 전부 그렇습니다.
우주는 사랑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조화의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데, 깨져 나갔으므로 우주도 슬퍼하고 하나님도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벌레도 쌍쌍으로 되어 있어서 서로 말도 하고 노래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들은 자기들이 희생되어서, 자기들이 잡아먹혀서 더 높은 존재의 세포가 되어 사랑의 감촉을 전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물로 발전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사랑에는 죽음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라'고 합니다.
봄이 되어 새가 노래를 하면, 그 새의 노래를 듣자마자 자기 아내를 생각하고 자기 자식을 생각하고 자기 나라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고 하나님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새는 새들끼리만 생각하지만 인간은 관계성을 갖습니다. 동물세계, 식물세계, 천상세계의 중간 매개체로서의 관계성을 가진 것이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전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의 특권입니다.
만물의 소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장식품이 되는 것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왜 하느냐? 변치 않는 사랑의 왕좌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의 왕자가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인간 세계에서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하고, 또한 모든 존재세계의 어느것도 가보지 못한 단 하나의 길인데, 그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멋집니다. 모든 존재의 바람은 하나님이 그 길을 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인간의 조상이 그 길을 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간다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에게 '야, 따라와라'고 해서 같이 갑니다. 사랑의 왕좌를 향해서 나아갈 때 하나님 뒤를 사람이 따라가고, 그다음에는 사람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만물아, 따라와라'고 해서 만물도 같이 따라갑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그 왕좌에 앉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앉게 되고, 만물은 아담 해와를 둘러쌉니다. 그렇게 되어서 하나님이 아들딸을 사랑하게 될 때, 모든 만물도 그 아들딸의 사랑을 받고 귀여움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사랑할 수 있는 첫날은 봄철이 되겠느냐, 여름철이 되겠느냐, 가을철이 되겠느냐, 겨울철이 되겠느냐? 그 첫날은 봄철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봄철은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고, 피어나고, 아름다움이 번성하고, 향기를 풍기는 때입니다. 모든 장식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때가 봄철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첫날이 봄철입니다.
그런 왕좌에 하나님이 군림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아담 해와가 받는 순간 만물은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아담 해와가 첫사랑의 키스를 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 자리를 우리 조상들이 구경했고, 만물이 구경했으며, 하나님이 구경했느냐? 못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아담 해와가 사랑했다면, 그때에 있었던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만물에 대해서 '야, 너는 어떠한 역사를 가졌느냐?' 하고 물어보면, '나는 하나님이 부모로서 아들딸을 사랑할 때, 그 사랑 가운데 향기를 품은 장식품이었다'고 한다면, 그 만물이 얼마나 영광스럽겠느냐? 그렇게 되었다면 이 세계 만물은 하나님이 사랑했던 옛날의 박물품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자연박물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장식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비록 길가의 밟히는 풀 포기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장식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어준 하나님 동산의 산 박물관
이 우주는 인간인 '나'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나를 위해서 이 우주를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뭐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하나님에게 '이 우주는 누구를 위해 지었소?' 하고 물으면, '레버런 문 너를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도 선생님 하나님이요, 우주도 선생님 것입니다. 말뿐이 아닙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어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꽃동산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비가 날아들고, 벌이 찾아옵니다. 그 꽃동산은 우주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고귀함과 천사세계가 화동하는 모든 것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전부가 나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조그만 새가 짹짹거리는 것도 나를 보고 그러고, 전부 나와 인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나비가 쌍쌍이 나는 것보다도 더 아름답게 살아야 되고, 새들이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아름답게 살아야 되고, 모든 동물들이 사는 것 이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이 되어 참새가 짹짹거리면 '참새야, 금년 봄에는 네가 나보다 짹짹거리고 좋아하지만, 내년 봄에는 내가 너보다 더 즐거워할 것이다'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노래하고 향취를 풍기는 것은 누구 때문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따라와 자극받고 즐길 수 있도록, 내가 동물이나 만물을 통해 느끼는 거와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비록 입을 것이 없고 나그네 신세가 되었더라도 뜰에 척 누우면 하늘이 내 이불이요, 옆에 흐르는 물이 내 식수요, 동산에 피어 있는 모든 만물이 내 음식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한 방울의 물을 보고도 '너는 대해(大海)의 물과 인연을 가진 그런 위대한 물이구나' 그렇게 찬양해야 합니다. 조그만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그렇게 찬양해야 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으면 그 그림을 박물관에 보관하고 세계에 자랑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그린 그림밖에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만든 조그만 풀 포기에도 비할 것이 못 됩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어준 산 박물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주인이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임을 알기 때문에 전부 그 주인한테 관심을 갖고 따라다니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없고, 어떤 벽도 없습니다.
인간은 전부 다 자연 가운데서 배워야
태풍이 불어오는데, 태풍에게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힘이 있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여기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되어 있다. 태풍 너도 못 들어온다'고 해서 그게 통하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조그만 개미도 마음대로 넘나들고, 벌레도 마음대로 넘나듭니다. 전부 다 이러는데 인간은 왜 마음대로 못 넘나드느냐?
또 멕시코에 있던 참새가 미국으로 넘어와서 미국에 있던 참새하고 쌍쌍이 되어 마음대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릅니다. 모든 동물들이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살고 있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연을 바라볼 때, 참 신기합니다.
미국에 있는 물과 한국에 있는 물의 맛이 다릅니다. 공기의 맛도 미국 공기와 한국 공기가 다릅니다. 태양빛도 한국 태양빛과 미국 태양빛이 다릅니다.다르지만 서로 통합니다. 사람도 그렇게 다 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느냐? 얼마나 풍류적이고, 얼마나 시적이겠습니까? 만사에 다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밑창에서부터 저 꼭대기까지, 하나님까지 통할 수 있는 길이 환하게 열려 있습니다.
바이올린은 줄이 네 줄입니다. 네 줄이지만, 한 줄이 '띵' 하고 울리면 다른 줄도 따라서 울립니다. 소리는 안 나지만 울립니다. 전부 화동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한 가지가 '땡' 하게 되면, 우주 전부가 울립니다. 내가 바이올린 줄을 퉁기면 우주가 그 곡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공기입니다. 공기에 의해서 울립니다. 이렇게 공기가 매개작용을 하는 것처럼 영계에서도 매개작용을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줄을 치면 '우- 하고 영계 전체가 울립니다. 그런 세계에 앉아서 사랑의 줄을 치면 천사가 와서 춤을 추는 그런 황홀경이 벌어집니다. 거기에서 내가 시를 읊으면 천사들이 그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기분 좋아서 '아, 내 아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면서, 학교에 가서 공부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은 모든 자연의 묘미를 깊이 알아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멋지냐? 하나님을 앎으로써 더 깊은 사랑을 하고, 더 높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내게 엄격한 교육을 하더라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자연의 사랑을 흡수하게 하고, 나를 사랑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사회에 나가 일하는 데 모진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사랑을 펴기 위해서, 사랑의 진가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물을 지었는데, 사람이 모든 만물들에게 폭행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배우려고 하고, 만물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입장에 있어야 할 텐데, 도리어 무식하고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도리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니 만물이 기가 막힌 입장입니다.
위대한 화가나 위대한 음악가, 즉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깊은 곳에 들어가 자연에 도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으로부터 자극을 강하게 받을수록 예술분야에서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이렇듯 인간은 전부 자연 가운데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책상 다리 같은 것을 보면, 닭 다리나 개 다리처럼 생겼습니다. 전부 유선형입니다. 또 비행기 같은 것을 보더라도 유선형입니다. 전부 잘 흘러갈 수 있게끔 자연에서 배워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냇가에 있는 돌도 유선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자연을 산 박물관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니 만큼 나도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연에 부끄럼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땅 앞에 그 도수를 맞춰 춘하추동을 음미하면서 나날을 행복하게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간인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87-316, 131-102, 104-231, 106-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