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인간의 타락과 구원섭리 1
1. 인간 책임분담과 완성의 길
하나님의 뜻 성사는 인간의 책임분담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의 일생 가운데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요한 일에는 자기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고, 또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개인을 미루어 볼 때, 한 나라도 그러할 것이고, 나라를 미루어 보아 복귀섭리를 담당한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뜻 성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뜻을 이루는 것, 다시 말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이상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이상, 즉 뜻을 이루는 일은 하나님 자신의 일로만 남아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뜻 성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떠난 상대적 입장에서 그 성패가 문제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기 전에 천지 만물을 지어놓고, 그다음에 아담 해와를 지어 중심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 존재가 승리의 결실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위업이 인간에게 상속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완성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은 이미 하나님이 이루어 놓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못 한다면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게 되고, 감당하게 되면 전체의 목적이 성사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이상인데, 그것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슬픈 입장이 된 것도 하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상대 때문이었습니다. 즉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슬프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도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말미암아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좋고 나쁜 모든 것은 하나님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습니다. 타락이란 그러한 입장에서 되어진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중요한 책임을 짊어진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은 언제 끝나느냐? 완성의 때가 언제냐? 천사세계를 지었다고 해서, 만물세계를 지었다고 해서, 인간을 지었다고 해서 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과정에 있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완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일치되고, 사람과 만물, 천사세계가 일치돼야 합니다.
인간에게 책임을 주신 이유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왜 줬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창조하고 인간이 하나님이 계획한 창조원칙에 협조해 1백퍼센트의 가치 기준을 찾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데 인간도 동참했다는 가치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1백퍼센트 완성하지 않고 95퍼센트만 완성한 의도가 뭐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므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요, 무슨 돈이나 권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협조받아야 할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짓고 인간이 5퍼센트 가담해서 완성할 수 있도록 한 그 내용이 뭐냐? 그것이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인간에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같이 하나님과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주었느냐? 하나님은 인간에게 온 천하가 굴복할 수 있는, 온 천하가 고개 숙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책임을 주었습니다. 전지전능한 분이니 그 전지전능한 창조성까지 부여하고, 또 영원불변한 사랑의 주체니 그 사랑의 주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책임분담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복의 조건이요,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와 같은 것이기에 이것을 안 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위업에 인간을 가담시키기 위해서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게 하여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부여하였습니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책임분담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뜻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인간의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도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미완성일 뿐만 아니라 파괴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위업에 가담해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95퍼센트 창조이상적 형태를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5퍼센트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인간 자체의 완성은 하나님이 다 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거기에 보태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분담 기간을 준 것은 성숙하기를 기다리기 위한 것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기간을 왜 두었느냐?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로서 인간이 나면서부터 하나되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책임분담이라는 과정을 두고 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 때문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책임분담 기간이 없으면 나면서부터, 어린애 때부터 결혼해야 됩니다. 그때는 결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습니다. 성숙기라는 기간을 두고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자면 여자의 모든 기관이 다 성숙하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성숙해야 합니다. 메뚜기도 전부 성숙해서 짝짓기를 하는데, 왜 사람이 모르겠느냐? 사람도 성숙하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상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 둘만이 재미있게 한 동산에서 자라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와 놀겠느냐? 성숙해서 아담이 해와 손을 만지면 보들보들하고, 해와가 아담 손을 만지면 억센 게 맛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성숙하지 못하고 떨어졌으니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맹이 없는 밤송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추석 무렵이 되면 밤알이 영그는데 그때 따면 밤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양은 같지만 까보면 껍질만 있고 알맹이가 없습니다. 아담 해와도 완전히 영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본질적인 요소와 관계를 못 맺었기 때문에, 본질적인 사랑과 인연을 못 맺었기 때문에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임분담 기간을 둔 것은 성숙하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성숙했을 때 사랑의 힘은 더 커집니다. 여자와 남자가 합하게 될 때는 더 커집니다. 둘이 합하면 둘 다 커집니다. 커짐으로써 더 큰 주체, 더 큰 대상의 길을 찾아갑니다. 최고 본연의 씨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찾아가게 돼 있습니다. 꽃이 피어 향기를 풍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분담이라는 것이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타락이 뭐냐? 책임분담 수행에 미달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 해와는 청소년시대를 지나 사춘기를 맞이해서 자연히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하나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되는데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되느냐? 아담도 아니요 해와도 아닙니다. 사랑의 뿌리 되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됩니다. 꽃이 필 때에 그 꽃 자체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통해 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서 인간과 더불어 완전히 상대적 이상을 이루어 사랑을 완성했더라면 모든 것이 공인되었을 것입니다. 즉각 거기서부터 천국생활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성한 자리에 선 인간은 어떤 인간이냐? 하나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95퍼센트 창조했지만, 인간이 1백퍼센트 완성한 창조물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인간 완성이자 하나님 창조 위업의 완성입니다. 창조 위업의 완성이자 뜻의 완성입니다.
인간 책임분담은 사랑이상 완성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타락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던 이상의 사랑 완성기준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에게 책임분담이라는 기준을 세워준 것은 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고, 하나님이 창조과정에서 인간에게 책임분담 5퍼센트를 필요로 한 것은 그 대상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그 대상 없이는 사랑이 현현될 수 없습니다.
10대 소년소녀들이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나타나면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이 운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책임분담이라는 과정을 중심으로 인간 자체가 스스로 성숙기를 맞이해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때가 됐더라면, 하나님의 영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가 인류의 내적인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해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가정뿐만 아니라 종족․국가․세계로 발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전체는 하나님의 직계 혈족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있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내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입니다. 집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닮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해 하나되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의 일체성이 이루어집니다. 생명이 동화됩니다. 남자 여자가 부부를 이룬다는 것은 사랑을 중심으로 일체, 동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힘은 하나님과 동화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나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나 권력,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상의 창조 위업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을 창조 위업에 가담시키기 위해 책임분담을 주었느냐? 하나님도 상대를 갖지 않고는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과부나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하느냐? 사랑이 있지만 발동할 무엇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분이라 해도 상대가 없으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천주를 지은 하나님은 누구를 중심으로 상대하고 싶어하느냐? 아담 해와를 중심으로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려면
아담 해와는 도대체 누구냐?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입니다. 그 조상이 뿌리가 되어 줄기가 뻗고 가지가 뻗고 잎이 나와 오늘날 인류가 형성되었습니다. 한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인간이 기뻐서 오,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천지 합덕이 이루어지는 기준이 벌어지면 거기에서부터 줄기가 뻗어나고 가지가 뻗어 잎이 무성해집니다. 인류는 그런 하나의 나무와 같은 사랑이상을 중심으로 연관성을 가진 공동생명체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사랑과 화합합니다. 그의 행동도 사랑을 추구한 행동이고, 그가 하는 말도 사랑을 추구한 말입니다. 웃고 즐기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일체가 사랑을 승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통일교회에서 이상하는 유토피아의 지상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세계에서 종교를 세워 찾아나온 것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과 연결될 수 있을 때 권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이 서지 않을 때는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그런 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을 통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시 같은 문학작품이 필요한 것은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이상적인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자극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강한 사랑이어야 하겠느냐? 오늘날 인간세계의 그릇된 사랑은 천사장급 이하의 사랑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사랑은 사탄이 침입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권에서 태어나 살면서 사랑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면서 야단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질서도 없고 방향도 없이 돌고 도는 소용돌이입니다. 소용돌이에는 더러운 것만 전부 모입니다. 소용돌이가 치면 강물에 뜬 더러운 것들이 전부 모입니다.
오늘날 사된 사랑을 가지고도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 야단인데,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겠느냐? 지남철의 플러스(N극)와 마이너스(S극)가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이너스가 아이구! 난 플러스 싫어. 떨어질래 하더라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플러스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코도 달라붙고, 눈도 달라붙고, 귀도 달라붙고, 마음도 달라붙고, 전부 달라붙습니다. 발을 움직이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리로 갑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과 관계맺으면 그 사랑의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갑니다. 까마귀 새끼도 자기 어미를 따라다닙니다. 자기 어미보다 예쁜 꾀꼬리가 와서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또 참새와 멧새를 한 새장에 집어넣으면 참새는 참새끼리 좋아하고 멧새는 멧새끼리 좋아하지, 멧새하고 참새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끼리끼리 합니다.
사람은 언제 완성되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상 완성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최고의 사랑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념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은 언제 완성되느냐? 사랑이 이루어져야 완성됩니다. 남자가 아, 훌륭한 남자다. 완성했다고 아무리 해도 사랑을 모르는 남자는 완성된 게 아닙니다. 여자도 아무리 미인이고, 천하가 우러러보게끔 잘 단장해서 아! 행복하다.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모르면 완성되지 않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부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랑의 가치를 아는 자리에 나아가야 비로소 남자 여자가 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남자가 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소 하고, 또 여자도 남자 저리 가라. 나는 얌체니까 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주소 하는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서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겠다는데, 서로 사랑한다는데 누구를 나쁘다고 하겠느냐? 그렇게 곤란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남자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고, 여자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고, 그 새빨간 사랑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랑도 새빨갛게 익었으므로 셋이 사랑으로 하나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도 불평할 수 없고, 남자도 여자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사랑이 새빨갛게 익어 아, 사랑이여 오소! 할 때 여자를 먼저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또 여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남자에게 먼저 오겠느냐, 여자에게 먼저 오겠느냐? 남자와 여자에게 한꺼번에 옵니다. 남자와 여자에게 한꺼번에 오는데, 사람 자체는 영과 육 이중으로 돼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가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면 안 됩니다. 균형은 여자의 마음과 여자의 몸이 하나되고, 남자의 몸과 남자의 마음이 하나되어 일직선에 서면 이루어집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옵니다. 그게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남자와 여자, 하나님까지도 완전히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책임분담을 아담 혼자 완수할 수 있느냐? 먼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기 전에는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원리, 즉 하나님이 세운 법도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라!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 귀의해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완전히 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제1조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이것이 신앙의 제1조입니다. 그다음에 둘째는 원리, 하나님이 세운 법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독재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라는 것과 원리와 하나되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독재자 하면, 자기 개인을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국민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고, 국민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독재라는 것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히 주관하더라도 그를 더 훌륭하게 만들고 더 빛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그것은 독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꼼짝못하게 하고 아침이나 저녁이나 모든 생활을 간섭하고, 공부 안 하면 공부하라고 채찍을 들고 강제로 시키더라도 그것은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한 것입니다. 그때는 자녀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성공하였을 때, 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독재자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나를 위해서 그러셨구나!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리의 주관권을 정해놓고 바랐던 것은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알아서 나설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바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원리결과주관권을 거쳐온 아담 해와와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하라고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서 그 이상까지도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온 인류의 아버지로서 복귀섭리 전체를 책임진 하나님의 비밀을 상속할 수 있는 기반이 땅 위에 세워집니다.
상속할 수 있는 동기는 누가 마련해야 되느냐? 상속의 터전을 닦을 때까지는 부모가 하지만 상속받는 순간에는 자기가 해야 합니다. 이것이 5퍼센트의 책임입니다. 원수를 갚고 승리할 수 있는 터전은 하나님이 마련해주더라도 승리는 내가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나를 길러주신 부모의 심정을 깨달아 그 심정과 일치된 가운데서 그분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요, 그분의 싸움은 나의 싸움이요, 그분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가 뜻을 위해 수고한 인연을 가지고 찾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 이상의 자리를 이룩하고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먼저 이루고 죽겠다고 작심하고 나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비로소 상속의 인연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을 통해서 완성된다
본래 하나님은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한 다음 인간을 지어놓고 모든 것을 이 인간을 통해서 완성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위신과 인간의 위신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완성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도 자동적으로 완성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은 만우주의 중심 권위를 갖추고 인간은 그의 아들딸로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의 세계가 이 지상에 실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시작되고,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인간의 권위를 1백퍼센트 찬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찬양하는 것을 본받아 인간도 역시 하나님을 높이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하나님이 아담을 세워서 자랑할 때는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이고, 해와를 세워서 자랑할 때도 하나님과 같이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 개인의 완성은 하나님의 완성이니, 이 우주 전체의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되었다면 아담 해와의 가정은 하나님의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요, 전체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인간 타락으로 갈라졌던 이 영계와 육계가 하나됩니다.
그랬다면 아담 해와의 후손들은 몇만 년을 가더라도, 자녀가 부모인 아담 해와를 대하던 그때의 권위를 똑같이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되었다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 마음과 몸이 일생 동안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러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 가정은 우주의 핵심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으로 종족, 그런 종족을 중심으로 나라, 그런 나라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랬으면 이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과 아담 해와입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130-17, 128-130, 87-120, 133-86, 20-196, 115-64, 65-164, 29-80
2.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 해와의 생활
하나님은 어떠한 한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했던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짓던 그 순간은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지어지는 만물도 새로운 만물이었습니다. 짓는 순간도 그러하거니와 지어진 물건도 새로운 것인 동시에 새 것을 대하고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새로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 지어놓은 그 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으로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던 하나님에게는,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거동하는 그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순간이요, 말할 수 없이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습니다.
자라나고 있는 아담 해와는 날이 감에 따라 이지와 지능이 밝아져 하나님의 본성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새로운 세계를 대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자격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움직임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이 되고, 또한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관계와 인연권에 있는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심중으로 그리던, 하나님의 전체를 대신한 존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하여 지은 만물을 품고 있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어떠한 한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하였느냐? 여섯째 날까지 천지창조를 필하였으나, 아담 해와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은 데에는 아담 해와와 하나님 사이에는 필시 무엇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지어놓은 상태의 아담 해와도 아니요,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요, 아담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려고 했던 축복의 한날이었습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는 그 순간 하나님도 기뻐하고, 아담 해와도 기뻐하고, 만물도 기뻐할 것이기에 만물도 그날을 고대하고, 인간도 그날을 고대하고, 하나님도 그날을 고대했습니다.
그날이야말로 만상(萬象)이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요, 그날이야말로 하나님이 창조역사를 끝내놓고 기뻐할 수 있고 최고의 웃음을 웃을 수 있는 날이요, 최고의 춤을 출 수 있는 날이요, 천지가 생겨난 이래 비로소 최고의 자유와 행복에 잠겨 만상이 화동(和動)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날, 그러한 한 시간, 그러한 한 순간은 하나님의 심중에 소망의 날과 소망의 시간과 소원의 순간으로 묻힌 채 오늘날까지 미완(未完)의 이상(理想)으로 남아져 있습니다. (8-267)
천지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한 것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내외간에 하나되어 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 아담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거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제일 좋아합니다.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생명을 걸고 좋아합니다. 그러면 갈라져 있으면서 좋아하겠다는 것이냐? 딱 붙어서 좋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어디까지 딱 붙느냐? 사랑하는 아담 마음속에까지 파고들어가서 같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속에도 들어갈 수 있고, 해와 속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대관절 아담 해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뭘 하려고 지었습니까? 그냥 바라보려고 지었습니까? 바라만 보면 재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주를 지은 것은 결국 무엇이냐? 보고 놀겠다는 것이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처녀 총각이 시집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고 사는 것을 살림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살림살이를 시작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자기의 족속을 중심으로 사랑의 동산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하나님이 살림살이할 이용물로서 정원이고 비품입니다. 이것을 사탄에게 주기 위해서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어떻게 만들었겠습니까? 정성에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었는데, 그 걸작품을 전부 깨뜨려 버리기 위하여 만들었겠습니까? 정성을 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행여나 다칠세라, 흠이 갈세라 염려했습니다.
정말 예쁜 아기를 보면 만지고 싶습니다. 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목석입니다. 아기가 예쁘면 만지고 싶습니다. 또 예쁜 아기를 보면 뽀뽀해주고 싶습니다. 예쁜 아기에게 뽀뽀해봤을 것입니다. 뽀뽀를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좋으냐? 전부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도 아담 해와를 보고 쓰다듬어주었을 것입니다. 쓰다듬어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뽀뽀도 했을 것입니다. (48-200)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보고 얼마나 좋고 기뻤는가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 둘만 있는데, 해와는 누굴 따라다녔겠느냐? 틀림없이 아담 궁둥이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또 그 둔한 아담은 누구를 따라다녔겠느냐? 털석털석 하면서 해와를 따라다녔습니다. 해와가 아담, 여기 와요 하면, 그래, 갈게 하게 되어 있지 다른 데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둘이 졸졸 붙어다녔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했겠느냐?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아래에서 보고 사방으로 보면서 빨리 클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빨리 크기를 간절히 바랐겠느냐? 어린 아담 해와를 보는 하나님은 속에서 사랑이 폭발되었습니다. 야! 이렇게 자식이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완성한 기준을 알고 모든 것을 창조했지만 사랑의 체휼이 그렇게 아기자기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살 두살 자라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말려들어가고, 몸이 말려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신이 있다면 그 정신까지도 전부 말려들어갔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서로를 대하면서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는 서로를 대해 야, 나하고 아무관계 없는 줄 알았더니 그 무엇인가 있구나 하면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두서너 살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들은 걸을 때도 살살살 걷고, 눈만 깜박거리면서 땅만 보고 다녔습니다. 더벅머리 총각, 멀쑥한 녀석이 지나가면 안 본 것같이 하면서 언제 봤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감지가 빠릅니다. 그거 누가 가르쳐줬느냐?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그런 청소년시대의 아담 해와를 보고 하나님은 굉장히 좋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자꾸 커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들어놓고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130-25)
태초에 아담 해와의 얼굴은 어떠했을까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얼굴은 어떠했을까요? 요즘처럼 머리를 깨끗이 하고 색깔을 맞춰 옷을 입고 그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수염이 났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수염이 났습니다. 또 머리는 여자같이 길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늘날 면도를 하고 화장을 하고 나서는 우리가 외면적으로는 그들보다 더 낫습니다. 옷을 입고 치장을 하면 근사합니다. 그때 치약으로 이를 닦았겠습니까?
집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외모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주인이 없으면 그 모든 외적인 물건들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는 아무리 못났어도 그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그들의 웃는 얼굴에는 악기(惡氣)가 없었고, 사람을 사기하기 위한 저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순수한 하나님의 기쁨을 표상할 수 있는 얼굴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또 그들은 보는 것도 자기들의 눈을 통해 보기보다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봤을 것이고, 그들이 듣는 것, 느끼는 것, 말하는 것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인류 시조가 노래를 했다면 무슨 노래를 했겠느냐? 하나님과 통할 수 있었던 그 아담 해와 시대에는 하나님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노래를 했을 것입니다.
또 웃기 시작했다면 그 웃는 것은 누구로 인해 시작됐을까요? 누구를 대해서 웃기 시작했을까요? 아담이 해와 대해서? 해와가 아담 대해서? 아닙니다. 틀림없이 그 웃는 것도 아버지 되는 하나님을 대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춤을 추었다면 그 춤도 하나님을 위해서 추었고, 일을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실과(實果)를 먹고 물을 마시는 것도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싶어했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잠을 잘 때도 아버지와 더불어 자고, 깰 때도 아버지와 더불어 깨고 싶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95-246)
본연의 남자와 여자의 자리
만약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었다면 그때부터 개인이라도 그 개인은 개인이 아니고 우주를 대표한 개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직접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그 가정과 피조세계가 연결되어 하나님의 통치권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와 육계에 하나님의 사랑의 축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축을 중심으로 센터가 생기는데, 하나님은 이 센터에 계십니다. 이 축을 중심으로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나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돕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체로 해서 하나됨과 동시에 모든 존재들을 연결시키는 대표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서 둘이 하나되어 붙들고 돌아가는데, 하나님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갑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들은 주체와 대상이 전부 이상상대가 됩니다.
남자는 뭐냐? 우주의 사랑은 한계가 있을 수 없는데, 그런 사랑의 중심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남자입니다. 남자는 그 사랑과 연결되는 주체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뭐냐?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남자 여자의 소망은 뭐냐? 이들의 소망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축에 서는 것이 이들의 소망입니다. 그것이 완전히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134-193)
자연은 아담 해와를 교육할 수 있는 산 교과서
모든 만물은 서로 사랑을 합니다. 동물을 보나, 곤충을 보나, 식물을 보나, 광물세계를 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중심으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날고, 기고 합니다. 아담과 해와는 이런 만물세계를 바라보면서 저들이 뭘하나? 하고 배웁니다. 그래서 자연은 아담 해와를 교육할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아담 해와를 교육할 수 있는 산 교과서입니다.
아담 해와는 자연과 벗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남자이기 때문에 해와보다 활동 범위가 넓습니다.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동물들이 사는 것을 보고 재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암컷 수컷이 서로 하나되고, 하나가 배가 불러서 새끼를 낳는 것 등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교육의 재료였습니다. 동산에서 갖가지 동물들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제각기 소리치는데, 그것은 상대와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음악, 창조이상적인 오케스트라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철없이 그것을 보고 좋아만 했는데, 철이 들면서 알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큼으로써 달라진 환경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그때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랄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동산의 동물들은 전부 아담이 가면 아담을 따릅니다. 사람이 중앙이 되어서 모든 걸 연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조직에 연결된 체를 만들려니 사람을 중심하고 따르게 돼 있습니다. 이런 동산이었습니다.
해와는 아담을 따라다니다가 나이가 열 살이 넘으니까 가슴이 커지는데, 그걸 아담한테 아담, 이거 이상하다. 내 가슴이 이렇게 볼록 나온다고 얘기했겠습니까? 해와는 동물들이 젖을 먹이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에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커가면 남자 여자가 서로 인력이 강해집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자꾸 갖다 대고 싶고, 갖다 대면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아담 해와는 인력이 강한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동물의 수놈 암놈이 만나서 둘이 입맞추는 것을 다 봤습니다. 전부 동물세계를 보고 배웁니다. 자연이 교육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조세계는 아담 해와가 이상적 자극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재입니다. 이건 굉장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담 해와는 중앙입니다. 아담 해와의 소질을 보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여자하고 남자는 다릅니다. 사람은 같은 뱃속에서 나왔더라도 남자하고 여자가 다릅니다. 여자는 나면서부터 고운 것, 귀고리 목걸이 같은 것을 생각하는데, 남자는 기관총 같은 소리가 나고 요란스러운 것을 생각합니다. 성격이 반대입니다. 이런 이들을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 힘, 그들을 하나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와는 아담을 졸졸졸 따라다니다가 놀랄 장면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깜짝깜짝 놀라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해와는 아담의 행동이 자기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만 아담이 참 재미있고, 아담과 떨어질 수 없었습니다. 해와는 놀랄 적마다 아이쿠! 하면서 아담을 붙들었습니다. 그럴 때 전기가 통합니다. 그게 이상하게 싫지 않습니다. 가서 부딪치고 붙들어도 싫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여자들이 놀라는 순간에는 붙들고 숨습니다. 그런 행동을 누가 했느냐?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했습니다. (134-194)
아담 해와의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을 표시하는 것
그렇게 자라던 아담 해와가 성숙해서 결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그때까지 아담 해와가 해왔던 생활의 모든 전통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어졌는데, 결혼해서 제2의 전통이 되는 부부생활로 들어가는 것은 새로운 일입니다.
그럴 때 아담 해와 마음대로 했겠느냐, 하나님 아버지한테 문의하고 했겠느냐? 하나님 아버지가 승낙을 안 하는데도 우리 마음대로 해야 되겠다 그랬을 것이냐? 그때 아담 해와가 결혼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곤충이나 새, 이런 모든 동물들이 짝을 이뤄 사는 걸 보고 틀림없이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때까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은 알았을지 몰라도 사랑의 맛은 몰랐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로운 상대를 맺어주지 않고서는 참된 그 원칙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출발을 보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관해서도 결국 하나님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된다는 교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아담 해와를 결혼시켜주는 석상에서 무슨 교시를 했을 것이냐? 너희들 이렇게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랬을까요? 무슨 교시를 했겠느냐? 그때는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 교육하려면 교과서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표준으로 삼아 서로 사랑하라고 했을 것이냐? 그때 틀림없이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나를 사랑하던 이상 해와를 사랑해라, 또 해와야, 네가 나를 사랑하던 이상 아담을 사랑해라 했을 것입니다. 이건 딱 떨어지는 말입니다.
아담 해와에게 사랑하라고 할 때, 너희들 서로 사랑할 때 나를 사랑하던 것보다 조금 덜 사랑해라 그랬을까요, 더 사랑해라 그랬을까요?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자기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때부터 자기보다 해와를 더 사랑하고 아담을 더 사랑한다면 섭섭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있는데, 아담과 해와가 둘이 하나되면 하나님은 마음이 어떻겠느냐?
예를 들어 말하면, 혼자 사는 아줌마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 사랑하는 아들을 남편보다 더 사랑해서 쭈욱 키워 가지고 장가를 보냈습니다. 장가를 보냈는데 첫날밤에 색시방에 들어가는 아들을 보고 그 어머니 마음은 물론 좋기야 좋겠지만 섭섭할까요, 안 섭섭할까요? 섭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물론 섭섭하지 않습니다. 왜 섭섭하지 않느냐?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 둘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나님은 자꾸 거기에 흡수되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영원히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은 해와를 사랑할 때 하나님 대신 사랑하고, 해와는 아담을 사랑하되 하나님 대신 사랑한다는 개념이 여기서 형성됩니다. 따라서 아담 해와의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을 표시하는 것이 됩니다. 아담 해와가 좋아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좋아하고, 아담 해와가 슬퍼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그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러냐? 사랑은 하나님 것이요, 아담 것이요, 해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95-248)
가정을 통한 사랑의 완성
우리는 모두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에게도 형제가 있고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게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해와까지 갑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부모는 누구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부모라면 자녀인 아담 해와는 그 부모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살아 있는 한 유년시대,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면 부부를 이루어 횡적인 부부의 사랑을 하게 마련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아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류 시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서 부부가 되는데, 2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가 없으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대상인 자녀가 있어야만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끼리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자라지만, 성장해서 결혼하여 자녀를 가지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 시작해서 한바퀴 돌아 부모로 돌아가봐야 그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낳아봐야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하고 완성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부모 자신이 성숙한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부모가 횡적으로 종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완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숙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횡적으로 하나되면, 즉 이성관계에서 서로 상대로서 하나되면 하나님이 목적으로 했던 사랑의 완성이 실현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되면 하나의 형(型)이 갖추어집니다. 그러나 평면적인 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이 평면적인 형은 횡적 관계는 되지만 종적 관계는 될 수 없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횡적으로 하나이며, 부모의 사랑은 종적으로 둘 이상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중요하냐? 부부의 사랑은 상대적인 관계를 가졌지만 하나이기 때문에 종적인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종적 관계는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입니다. 즉 부모․부부․자녀가 종적 관계의 원칙입니다. 그것이 완전히 합하면 하나의 가정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넓히면 부모의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부부의 관계를 거쳐 부모가 되면 자녀들도 부모의 사랑과 크기도 같고 길이도 같습니다. 그러면 자녀, 즉 형제의 사랑은 어떠해야 하느냐?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해야 하느냐?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하듯이 형제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배워야 하느냐?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가정에 왜 파탄이 벌어지느냐?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계속하려면 부모를 중심으로 부부의 사랑을 밟아야 하고, 그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랑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는 형제를 통해서입니다. 여동생이 있다면 그 동생 사랑하기를 자기 어머니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또 여동생은 오빠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는 서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즉 형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남동생을 사랑하고, 언니는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듯이 여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형제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상대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가 있기 때문에 서로 위하는 실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형제는 아버지 어머니의 몸을 통해서 나왔으므로 아버지 어머니 대신입니다. 우리 각자는 아버지 어머니의 반쪽씩을 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묶어야 하느냐? 사랑으로 묶어야 합니다. (66-119)
3. 아담과 해와의 사랑
사춘기를 맞은 아담 해와는 어떠했을까
아담 해와가 자라 사춘기가 되었을 때 해와가 오빠 되는 아담 옆에 앉으려 하면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아담도 누이동생이 옆에 있으면 이상한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옛날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들이 그런 감정을 가질 때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예끼 고얀놈 하겠습니까, 아니면 가만두겠습니까? 아담 해와가 사춘기를 맞았는데, 하나님은 이들이 그저 싸움이나 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서로 좋아해야 합니다. 서로 좋아해야 부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담을 키울 때, 아담이 어서 빨리 커서 사춘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제 너만을 생각하지 마라. 너만 생각하면 미욱한 녀석이다. 상대를 생각해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커서 완전히 성숙한 후에는 그냥 있지 말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하며 그 길을 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둘이 결혼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은 하나님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이냐? 아담 해와가 16~18세의 사춘기가 되면 자연히 해와는 아담을 들여다보고, 아담은 해와를 들여다보면서 야! 내가 찾아보고 구하다 보니 너로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때는 사춘기니까 이들의 몸과 마음이 하나되었을 것이냐, 하나 안 되었을 것이냐? 눈을 들여다보니 신비로운 눈이고, 코를 대하니 전기가 오고 그랬습니다. 그때 아담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었겠느냐, 안 되었겠느냐? 하나되었습니다.
남자 여자가 우주에 선을 내세워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꽃이 완전히 피어서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는 우주의 향기이기 때문에 우주 만물은 그 향기를 흐흠─ 하고 맡습니다. 땅이나 어디나 전부 코가 길어지고 몸이 늘어져서 그 향취를 맡느라고 야단입니다. 하나님은 흠─ 야! 이거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러면서 끌려들어갑니다. 자연히 끌려들어가서 이제 출동시대가 됐구나. 행차하자 합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자기들끼리 번개가 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이 맞출 줄 모르니까 갖다 대면 푸다닥 하고 사그라듭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하나되면, 셋이 하나되면 번개가 칩니다. 그렇게 되면 우주에 핵이 생겨 사랑으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그런 본 궤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탈선해 버렸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가 탈선하지 않았으면 오늘과 같은 세계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담 해와가 완전히 하나되어 핵이 되었다면 하나님도 여기에 목을 매고 떠날 수 없습니다. 떠난다면 몸만 떠나지 발은 붙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 붙어 있지 어디로 떠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확산해서 가정으로부터 종족․민족․국가․세계가 되었습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되어 후손들이 태어나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세계는 지상천국이고 참세계입니다. (41-195)
아담 해와의 사랑
인류 조상인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본연의 사랑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서로 하나님이 가는 데 나도 데려가소.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살아요 하면서 웃을 때도 입만 빵긋 웃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크게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까지 허우적거리면서, 세포 하나하나까지 몽땅 웃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좋지 입만 웃고 몸은 가만히 있으면 좋지 않습니다.
사랑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둘이 부딪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세계에서 제일 큰 소리가 무슨 소리냐? 벼락치는 소리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밝은 것이 무엇이냐? 번갯불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소리요, 사랑의 빛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눈을 감아야 되고, 귀를 막아야 되고,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신경이 마비돼야 합니다. 보고 들었다가는 큰일납니다. 사랑에 도취하면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보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런 사랑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24시간 그 기분을 빼 버리려야 빼 버릴 수 없습니다. 눈에, 피부에, 어디에나 잠재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거기에 취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보지 않아도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보면 얼마나 좋겠느냐? 입을 벌리고, 춤을 추고 이럴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런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이상이 아니겠느냐? 그런 부부가 있다면 둘이 사랑할 때 비둘기가 사랑하는 이상, 닭이 사랑하는 이상 소리를 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이 넋을 잃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한 묶음이 되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되었다면 여한이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그 이상 원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었다면 그 이상 원할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이 우주가 동화됩니다. 누가 거기에서 끌어내릴 수 있겠습니까? 타락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세계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입니다. 그 세계는 시작임과 동시에 영원입니다. 그것은 갈라질 수 없고 언제나 통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과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최고봉은 어떤 것이냐?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랑 이상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할 때도 1백퍼센트 사랑을 해야 되고, 웃을 때도 1백퍼센트 웃어야 됩니다. 남자가 1백퍼센트 웃는데 여자는 살짝 웃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웃을 때 몸 마음 다해서 웃으면 여자도 그렇게 웃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다 웃으면서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인간 세상과 사랑세계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초대하자는 것입니다. (32-251)
우주가 진동하는 아담 해와의 사랑의 접선
그러면 아담 해와의 사랑의 접선은 어디서부터 이루어지느냐? 눈이냐, 손이냐, 입이냐?
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언제, 어느 곳, 어떤 자리, 어떤 환경에서 합하느냐?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신경기관이, 육체의 모든 감각기관의 신경계가 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모든 정서적인 면이, 이상적인 모든 것이 폭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인체와 육신의 세포나 모든 감정이 완전히 1백퍼센트 합해질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 완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이 골고루 완성해서 성숙한 다음에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가 뭐냐? 뭐가 제일 높은 안테나냐? 그것은 사랑의 안테나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의 안테나가 뭐냐? 그것은 남자 여자의 생식기관입니다. 전파는 오로지 안테나를 통해서 흐르는데, 그 안테나를 통해서 원형을 이룹니다. 인간세계의 안테나에 하나님의 수직 사랑이 접선되는 날에는 세계를 포괄하고, 온 우주를 포괄하고 남을 수 있는 권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세계와 영계에 우레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게 됩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시간에는 이 우주 전체가 충격을 받습니다. 벼락치는 것과 같은 그런 힘의 충격을 받습니다. 왜 그러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과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아담 해와가 사는 동네 문전에 모입니다. 큰 놈 작은 놈 할것없이 전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어요? 그때는 우레 소리가 나니까 하나님이 눈을 뜨고는 아, 때가 되었구나! 이거 벼락을 쳐야 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사랑이 종적인 사랑에 접근할 때는 우르릉, 우르릉! 하고 벼락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남자 여자가 서로 만질 때는 진동이 생깁니다. 전기가 옵니다. 여자 남자가 조금만 툭 닿아도 그 여운이 좋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돌아섰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 자리에는 폭풍과 번개가 생깁니다. 모든 세포가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큰 소리가 나게끔 하는 그런 힘의 작용이 뭐냐? 사랑입니다. 그 힘은 아담 해와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폭발시킵니다. 완전히 꽉찹니다. 이젠 마음 놓겠다. 이젠 됐다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우주가 전부 따라 움직이니 이 우주는 미치광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을 잃고 움직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주가 하나님! 당신은 맨 가운데 들어가서 앉아 있으소 하고 항의해서 하나님을 맨 가운데에 있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리 움직이더라도 좋고, 어떻게 운동하더라도 좋은 고착된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상대와 영원히 주고받으면서 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음,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그럽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딱 하나된 그 가운데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원천입니다. 모든 씨는 이것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아들딸을 낳고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완성을 해야 합니다. (134-197)
우주 가운데 기적이 있다면 무엇이 기적이냐
남자의 생식기와 여자의 생식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극입니다. 플러스극 마이너스극입니다. 전지 충전점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충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기관을 통해서 매일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일년에 한 번씩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의 생식기와 여자의 생식기는 누구 것이며 뭘하는 곳이냐?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직결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결혼해서 사랑을 할 때, 동산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성스러운 사랑의 공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라. 나는 성스러운 공연의 하나의 금자탑이다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주인은 누구냐? 하나님과 인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왜 남자 여자로 갈랐느냐? 우주의 대표로서 우주를 평면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 아담 해와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종적인 선을 연결할 수 있는 평면적 중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힘은 얼마나 세냐? 사랑은 우주와도 바꿀 수 없고, 내 재산을 팔고, 내 전부를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은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어마어마한 내용을 알자마자 완전히 포로가 되고 맙니다. 생명을 다하고 모든 것을 다한 것과도 바꾸고 남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사랑의 자리입니다.
이 우주에 기적이 있다면 그건 무엇이냐? 남자 앞에 여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또 여자 앞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 이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기적입니다.
남자에게 있는 기관은 남자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서로 바뀌어 있습니다. 남자에게 있는 기관의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여자에게 있는 기관의 주인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주인이 바뀌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인간에게 임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내려오는 수직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의 종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90각도의 사랑이 나타나는 곳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이 사랑의 90각도를 맞출 수 있는 지상의 기반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능력 많은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도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계를 갖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춘기에는 떨어지는 나뭇잎만 보아도 웃습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파장이 작용합니다. 무슨 말이냐? 종적인 것을 끌어 횡적인 것을 맞추려는 작용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가 비로소 완성해서 이 수평선과 90각도로 맞는 자리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하나님은 자연히 따라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134-200)
해와는 아담 부인인 동시에 하나님 부인
그러면 하나님에게 아담 해와는 무엇이냐? 아담은 자기 중의 자기요, 미래의 이상적인 사랑 중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또한 해와는 하나님의 부인이요, 하나님의 몸입니다. 이런 말은 처음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의 몸에 상대 되는 영적 상대요, 해와는 육적 상대입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가 부부가 되어 사랑하는 것은 누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냐? 하나님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지극히 신성한 것입니다. 세상 천지에 신성의 최고 왕궁과 같은 것이 사랑이요 결혼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는 아들은 누구의 아들이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몸이니 거기서 태어나는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결혼식은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 같습니까, 여자 같습니까? 횡적으로 보면 여자 같고 종적으로 보면 남자 같습니다. 하나님은 안팎을 갖춘 분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뭐냐? 해와는 아담 부인인 동시에 하나님 부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 사람은 마음과 몸이 있습니다. 아내라면 몸의 아내요 마음의 아내입니다. 몸 마음이 맞아야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끼리 당신 나를 사랑하오? 하는 얘기를 곧잘 합니다. 얌전하게 생긴 사내일수록 더 잘합니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부인도 그렇습니다. 시집가서 한 반년만 지나면 남편에게 당신 나를 진짜 사랑하오? 하고 묻습니다. 남편이 사랑하고 말고 하면 마음은 딴 데 두고 말로만 사랑하지요? 하고 확인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니야, 아니야 하고 자신있게 하지 않고 아니야 하고 작은 소리로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절대로 아니야 해야 합니다. 진짜 마음을 몽땅 다 바쳐 사랑해? 천년 만년 사랑해?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몸 마음이 일체가 되어서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는 아담의 부인도 될 수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부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해와가 아담이여, 당신의 몸은 나를 사랑하고 마음은 거룩한 하나님을 동참시켜서는 안 돼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니까 한꺼번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되면 이 아담과 해와를 가를 자가 없습니다.
세상의 젊은 남녀들도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 산다 야단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사랑도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되어 인연맺으면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 옮겨지지 않습니다. 절대적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아담 해와의 자녀인 동시에, 참부모의 자녀입니다. 여기에서 참부모가 나옵니다. 참부모는 하나님을 빼놓고는 안 나옵니다. (48-230)
하나님․인간․만물이 제일 기쁜 날
그러면 우리 인간 조상 아담 해와에게 제일 기쁜 날은 어떤 날이겠느냐? 물론 해마다 돌아오는 태어난 날이 기쁜 날이겠지만, 그보다 더욱 기쁜 날은 결혼하는 날입니다. 주체적 입장에서 전체 앞에 기뻐할 수 있는 날이 결혼하는 날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기뻐하겠지만, 아담 해와가 기뻐하는 날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녀 총각들에게 희망의 날이 있다면 무슨 날이겠느냐?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 날이 아니라 결혼하는 날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를 보면,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를 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별의별 난장판을 다 벌이다가 그다음에 결혼을 합니다. 본래의 아담 해와에게는 이런 현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남자는 이 여자, 이 여자는 이 남자,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을 상대해보고 거기서 좋은 사람을 고르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엔 딱 한 남자와 한 여자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 조상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은 일대일의 사랑입니다, 일대일의 사랑.
그런데 아담 해와가 자라면서 장래에 우리 결혼하자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모르고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이 자라서 이 다음에 이렇게 결혼한다 하고 설명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 성숙하면 자연히 알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어떻다고 교육을 안 해도 자연히 알게 돼 있습니다.
모든 동물이나 곤충도 성숙해서 번식해야 될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 상대를 찾아서 서로 사랑관계를 맺어 번식하는 것과 같이 인간도 그렇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아담 해와가 성숙하여 자연히 서로 상대적 관계를 알게 되면 그때서야 하나님도 기뻐하면서 결혼식을 해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기뻐했을까요, 어땠을까요? 기뻐했을 것입니다.
이 아들딸이 하나되는 날에는 앞으로 하나님의 가정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후손이 생겨나서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한 희망의 첫출발이 아담 해와의 이 결혼식부터라고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의 결혼식 날 그들이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합니다. 그날 아담 해와가 진짜 하나되어서 기쁨을 느낀다면 하나님도 같은 입장에서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 가운데 제일 기쁜 날이 어떤 날이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아담 해와가 사랑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결혼식 날이다 하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러면 이 결혼식 날이 천사에게는 어떤 날이겠느냐? 천사에게도 좋은 날이요, 이 피조만물에게도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재미있게 생활해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시기하겠습니까, 더 기뻐하겠습니까? 기뻐합니다. 그 아담 해와가 부처끼리 일생 동안, 청춘시대로부터 중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기간은 하나님도 같이 즐거운 기간이요 기쁜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랬으면 피조세계의 주인인 아담 해와가 기뻐하니 모든 만물도 기뻐하고, 아담 해와가 기뻐하니 하나님도 기뻐하고, 또 전체의 주인인 하나님이 기뻐하니 온 피조세계의 만물도 전부 다 기쁨의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80-327)
우주완성의 본거지는 참사랑을 중심한 남자와 여자
세상에서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은 누구냐? 제일 가깝고 제일 높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나와 제일 가까운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거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니 내가 제일 높고, 내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높은 것을 싫어하고, 더 깊은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는 누가 가까우냐? 여기에서 상대세계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나는 종적으로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횡적으로도 관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횡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횡적으로 넓히느냐? 상대의 사랑으로 넓힙니다. 남자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여자를 찾아갑니다. 여자도 하나님과 하나되어 남자를 찾아갑니다. 그때가 21세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갖다 붙여야 금이 안 가고 완전히 1백퍼센트 하나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 안 됩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중심이 굵어집니다. 거기서부터 활동 범위, 운동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다음에는 아들딸과 하나됩니다. 아들딸과 하나되면 사위기대가 넓어지니까 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 이렇게 점점 넓어집니다. 내 활동 무대가 그렇게 넓어집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이냐? 무엇이 동기냐? 남편과 아내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남자도 우주의 절반을 완성시키고, 여자도 우주의 절반을 완성시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반입니다. 하나님의 절반 성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고 인간도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무엇으로 당기느냐? 지남철로 당깁니다. 그 지남철이 사랑의 힘, 참사랑의 힘입니다.
남자 여자가 자라서 사랑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결혼하여 둘이 사랑하면 번개처럼 불꽃이 튑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사랑의 불빛은 번갯불보다 더 밝을 것이고, 여기서 나온 소리는 우레소리보다 더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사랑하는 그날은 하나님의 오관이 완전히 열리는 날이요, 우주가 완전히 놀라 떨어지는 날입니다. 이것은 사건 중에 제일 큰 사건입니다. 소리 중에 제일 크고, 밝은 것 중에 제일 밝고, 좋은 것 중에 제일 좋고, 무엇이든 제일입니다. 춤을 춘다면 그 이상의 춤이 없습니다.
비둘기들은 사랑할 때 구구구 합니다. 비둘기가 왜 평화를 상징하는지 압니까? 동물 중에 암수가 사랑하면서 제일 큰 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물을 많이 흘려도 좋고,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해도 좋고, 있는 기운을 다 써도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지극히 거룩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남자 여자들이 하는 사랑이 거룩한 것입니까? 제일 나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최고 거룩한 사랑은 하나입니다. 이 여자 저 남자, 이 남자 저 여자, 상대를 바꿔가면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한번 정했으면 그 거룩한 사랑을 두고 내게 맞다, 안 맞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거룩합니다. 일단 바치려고 택한 제물은 거룩합니다. (106-110)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41-165, 48-200, 128-76, 92-185, 32-237, 128-130, 80-326, 66-119, 106-98, 92-145
4. 인간의 타락
아담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내가 생겨나려면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만 있으면 되느냐?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없으면 영영 마지막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닮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있는 동시에 상대가 있어야 하고, 상대가 있는 동시에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 앞에는 어머니 아버지, 남편, 오빠가 있어야 됩니다. 아담을 해와보다 먼저 지었으니 아담이 오빠입니다. 그리고 남자 앞에는 누가 있어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하고, 아내가 있어야 하고, 누이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에게 누나는 없습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신랑 신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로 태어나서 사랑의 교육을 받습니다.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아들딸에게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고,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봐도, 아담 해와를 중심으로 봐도 사위기대입니다. 전부 사위기대입니다.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모두 사위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도 하나님에게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교육은 인간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의 가치기준의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있느냐? 사랑 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 해와에게 사랑의 교육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교육기준이 무엇이냐? 우리는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는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받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 교육을 받지 못하면 큰일납니다.
아담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므로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굴속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합니다.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합니다. 뭐 하나님이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51-171)
종적인 사랑이 횡적인 사랑으로 출발되는 자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 생명의 모체입니다. 부모는 아이 생명의 모체입니다.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주고, 키워주고,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보호권이 성립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됩니다.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느냐? 안 되는 것입니다. 보호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누가 보호해야 하느냐?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보호해야 합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인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아 사랑의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의 교육을 다 받았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겠느냐?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끼리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하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둘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그들이 성숙하여 서로를 사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보다 자신들끼리 더 사랑해야 하느냐? 서로가 더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더 사랑함으로써 그 집안이 잘되고, 더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주체적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너희가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도 너희들끼리 더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준 것이 신랑 신부의 사랑입니다. 결국 그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못지않은 사랑입니다.
거기에서 종적인 사랑이 비로소 횡적인 사랑으로 출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적인 사랑이 약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縱)은 주체요, 횡(橫)은 상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적 가치가 보다 가치있게 되면 그 주체는 보다 큰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 자체가 서로 성숙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상대가 멋진 사랑의 실체로 화하면 주체는 보다 큰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서로 최고로 사랑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한 몸입니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 내에서 생각으로는 남성적 주체의 자리다. 여성적 대상이다 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자극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 되는 하나님은 나빠하지 않고 좋아합니다. 그 둘이 하나된 자리를 상대로 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사랑의 제일 법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51-173)
아담 해와의 생활과 호기심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 둘만 있는데 아담이 해와를 따라다녔겠느냐, 아니면 해와가 아담을 따라다녔겠느냐? 여자인 해와보다 남자인 아담이 더 큽니다. 보편적으로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어울리지, 큰 사람이 조그마한 사람을 따라가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해와가 아담을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사과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를 딴다면 아담 해와 중에서 누가 땄겠느냐? 해와가 땄겠느냐, 아담이 땄겠느냐? 아담이 땄을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뭘 했겠느냐? 따라다니면서 얻어먹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과를 따서 먹게 될 때에, 해와가 자기는 따지도 않았으면서 맛있는 것을 먼저 골라 먹고 그러면 아담은 너는 따지도 않고 좋은 것만 골라 먹느냐?고 하면서 싸웠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해와가 아담하고 싸움하면서 욕을 했다고 봅니다. 그걸 본 천사장이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타락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담과 해와 둘만 있었기 때문에 아담이 어디 가더라도 해와는 외로우니까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변소에 가더라도 아담을 따라가고,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만 따라다니니 아담은 해와가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해와를 대해서 아담은 아이구 귀찮아, 저리 가 하면서 구박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서는 외로워서 살 수 없으니까 인간과 천지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닮은 인간도 외로우면 못 삽니다. 그러면 남자가 더 외로워하겠느냐, 여자가 더 외로워하겠느냐? 여자가 더 외로워합니다. 남자는 혼자서도 외로워하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산짐승들도 사냥하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토끼가 뛰어가면 따라가서 잡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를 잡기도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여자는 토끼를 보면 나한테 오면 좋겠다 하고, 날아가는 새를 보더라도 야, 나한테 오면 좋겠다 이럽니다. 따라가서 잡아보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서도 아담은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사냥도 하고 그랬으므로 외롭지 않았지만 해와는 지극히 외로운 처지였습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박받으면서도 아담을 따라다녔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해와를 지은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또 그런 아담을 대해서 해와도 저 녀석, 나는 돌보지도 않고 자기만 생각하고 저렇게 뛰어다니기만 한다. 음- 제까짓 게 뭐야 그랬습니다.
여자는 열 살이 넘게 되면 가슴이 볼록해집니다. 그 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별로 다르지 않지만 열 살이 넘게 되면 신체적으로 많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되니까 해와는 자기 몸이 아담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이상하다고 만져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만져봤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궁금해서 다른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은 목소리도 굵고, 수염이 났고, 손도 크고 그러지만 해와는 목소리가 가늘게 앵앵앵 하고 손도 작습니다. 아담이 수염이 났다는 것은 벌써 사춘기임을 암시합니다. 해와는 수염을 만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빠, 이거 이상하다. 난 없어 하면서 만지다 보니까 아담의 수염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원래 자기에게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에게 없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때는 벌거벗고 살았는데, 아담이 보니까 자기에게 없는 것이 해와에게 있고, 해와에게 없는 것이 아담에게 있으니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기와 다른 것이 있어서 호기심이 생기니까 이게 왜 이럴까? 했습니다. 해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 자신이 수염을 쓱쓱 만지면 아무 자극이 없는데 해와가 만지면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 해와도 보들보들한 살을 자기가 만지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담이 꺼끌꺼끌한 손으로 만져주면 자극적이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호기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와가 몇 살쯤부터 가슴이 볼록해졌고, 아담이 몇 살쯤부터 수염이 났겠느냐? 신체 변화를 보고 관심을 갖고 아, 그것 참 이러니까 좋다. 없으면 안 되겠다 하며 필요성을 느끼게 될 때, 귀하게 여기고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러기 전에는 따라다니고 먹을 것 먼저 먹고 하는 것이 그저 귀찮았을 것입니다. 아담도 마찬가지로 해와가 그럴 때 귀찮고 싫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감사를 할 때는 어느 때냐? 남자 여자를 지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완성될 때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떨어져서는 못살고, 어디든지 같이 가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할 때 하나님도 야, 너 잘한다! 하고, 해와도 아담 대해 고맙다고 하고, 아담도 해와 대해 고맙다고 하고, 하나님에게도 고맙다고 합니다.
또한 진정한 감사의 웃음을 언제 웃었겠느냐? 여자는 깔깔깔 웃고 남자는 하하하 웃는데, 진정 기뻐서 웃는 진정한 웃음이 언제 있었겠느냐? 그러면 어떤 웃음이 진정한 웃음이냐? 서로 사랑하는 자리에서 웃는 웃음이 진정한 웃음입니다. 모든 오관이 하나되어 진정 감사하고, 진정 축하하고, 진정 사랑하는 자리에서 웃는 웃음이 진정한 웃음입니다. 그 자리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축하하고, 하나님도 인간을 대해 축하하고 싶은 것입니다. (110-278)
아담 해와가 타락한 때는 미완성 단계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을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의 대상으로 세우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었습니다. 그렇게 지은 인간이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하고, 행복을 노래하는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서 함께 살기를 하나님은 바랐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해 지어놓은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만물을 주관할 아담 해와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더 좋아했던 것이 아버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소망과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였고, 모든 존재가 그들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될 중심존재가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픈 날이 있어서도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나 한날의 실수로 타락이라는 명사가 붙여졌고, 이로 인해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됐으며, 하나님이 소망하던 세계에 흑암의 권세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원통하고 비통합니다.
인류 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인류가 슬픔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나, 인류 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나오던 하나님은 이들로 인해 슬픔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슬퍼하는 자리에 떨어짐으로써 하나님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늘땅에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인류 시조의 실수로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하나님의 전체 소망을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만일 모든 것을 완비하고 완성된 자리에서, 전부 깨달은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이상, 즉 하나님의 창조 위업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상속받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던 성장과정에서 타락하였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아담 해와가 성인이 되어 모든 천지 이치를 다 알고,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 위업을 모두 상속받은 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타락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내용을 알지 못한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바라고 나가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하였다면 우리가 완성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가서도 타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때는 미완성 단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 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념 속에서 살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성된 세계가 오늘날까지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이 세계가 악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놓고 바랐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졌습니다.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슬픔도 크고, 하나님의 소망이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내적인 고충이 크게 초래되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이 슬픈 분이라는 것을 몰랐고, 인간 지음을 탄식한 하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천지를 지은 창조주가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15-321)
선악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타락이 뭐냐? 기독교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해석은 유물론적입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했다면 물질 가운데서 정신이 나온다고 하는 유물론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이제 낱낱이 밝혀질 때가 왔습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할 수 있느냐? 영혼으로 말미암아 물질이 타락되었다면 말이 되지만, 물질로 인하여 영혼이 타락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물질 가운데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유물론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기독교 자체 내에서 모순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목사들은 자기가 잘났고 정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선악과라는 물질을 따먹은 것이 무슨 죄가 되기에 수천 년 동안 그것이 고질이 되었느냐? 아담 해와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어떤 동네의 명문 집에 외동딸이 있는데, 그 외동딸이 끼고 있던 반지를 가졌다고 해서 너는 내 것이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딸이 어떤 깡패 왕초에게 걸려들어 그 왕초와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꼼짝 못하고 주관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딸에게 큰소리를 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막무가내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법도는 절대 주관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주관을 받으면 누구도 끌어 갈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도리가 없습니다. 한번 사랑에 걸려들면 걸려든 자는 그의 소유가 됩니다. 이론적으로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죄는 먹는 것으로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혈통적 관계가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을 미워하느냐? 하나님은 음란을 미워합니다. 인간이 불법으로 사랑하여 천지를 뒤엎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악의 피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래서 도(道)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주장합니다. 만일 남자가 신령한 기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여자가 나타나서 시험을 합니다. 반드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도의 길을 막고 나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그런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을 따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주고 나서 따먹도록 내버려두었겠느냐? 아닙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도둑질을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줘서 인간이 안 것이 아닙니다. 안 가르쳐주어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고의 동기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로부터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악과라는 과일을 손으로 따먹은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다른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과일을 따먹고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랑 문제가 아니고서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목사들은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고 인간이 타락하여 원죄가 생겼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원죄가 뭐냐? 하나님을 중심으로 출발해야 할 사랑의 법도가, 사랑의 인륜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수습해야 합니다. 인간의 출발이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비법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으로부터 국가․세계가 이루어졌습니다. (41-292)
참사랑의 열매로 주신 선악과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어째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했느냐?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태어나고 보니 남자의 길, 여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본래 이렇게 가는 길이 사랑의 길이라면, 왜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못 갖고 태어났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이 그런 사랑을 필요로 해서 남자 여자를 만들었다면, 그것을 꼭 붙들고 누가 끌어내더라도 이렇게 안 되게끔 해야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
우리는 정상적인 남자 여자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정상적인 하나님의 자리에 아직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 여자가 사춘기까지 정상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가지 못하고 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면 사춘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한꺼번에 남자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기다려야 되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때, 즉 사춘기까지의 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오기까지 필요한 어떠한 과정적인 요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자라기 전에 사랑으로 고장났을 때는 하나님도 물러서고, 여자 남자도 싫어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런 한때가 있다면 이런 의문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이 우주에는 신도 없고, 그 의문을 영원히 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잘못된 원인은 사랑의 사고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문제가 되고, 인간에게 문제가 되고, 우주의 대사건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신이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왜 따먹지 말라고 했느냐? 그것이 처음부터 어느 때까지냐, 아니면 영원히냐? 따먹지 말라는 말은 과정적인 내용을 중심한 사랑의 경고입니다. 사춘기라는 성장기간이 있기 때문에 준 말입니다. 영원히 따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느냐? 인간과 하나님을 파탄시킬 수 있는 그런 동기가 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문제시했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타락은 사랑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역사 배경을 통한 이론 체제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이고 이론적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이 타락이라는 말은 위대한 복음입니다. 고통받고 있는 이 시대에 타락이라는 경고는 지극히 위대한 복음입니다.
이 선악과가 열매라면 타락의 내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열매가 아닙니다. 열매 때문에 이 억천만세의 인류가 신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파탄이 일어나고 투쟁하는 노정에서 신음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는 열매를 하나님이 왜 만들었느냐? 이것은 사랑의 내용을 중심한 열매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선의 사랑과 악의 사랑이 생겨났습니다. 선의 사랑과 악의 사랑의 열매가 선악과입니다. 그러니 성숙한 사람은 누구냐? 참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참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아는 사람과 사탄세계에서 참사랑을 모르는 사람, 이렇게 둘로 갈라집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되어야 할 그들이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되지 못하게 방해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제3의 불법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제3의 불법적인 사랑으로 인해 타락했습니다. (128-86)
천사장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에게 더 큰 사랑, 더 자극적인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올 때 인간이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절대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건드렸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아담은 더벅머리 총각이었습니다. 아담이 총각 때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저 오빠 해와야 하고, 굴러다니는 자갈이 반갑고 풀 포기가 반가웠지, 아담이 해와를 보고 반갑고 해와가 아담을 보고 반가운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성이니 하는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때에 천사장이 정서적으로 접근해왔습니다. 천사장은 하나님이 만물 지은 것을 알기에 해와에게 해와야,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는 이렇게 이렇게 짓고, 산을 지을 때는 요렇게 요렇게 지었고… 하면서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은 나이 많은 종이고 아담 해와는 주인의 나이 어린 아들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천사장이 노련하게 천지창조의 역사를 얘기해 주니 해와는 재미가 쏠쏠 났습니다. 그때는 동화를 좋아하는 때입니다. 열두 살쯤 되는 아이들은 얘기만 해주면 그저 밥도 안 먹고 듣습니다. 그러다가 슬픈 대목이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통해합니다. 그때에는 정서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창조본성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천사장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해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또 그런 것이 자유스러웠습니다. 이래서 나중에는 어디까지 갔느냐? 천사장이 해와를 겁탈했습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좋아한 게 아닙니다. 이러고 보니 결국 천지가 엇갈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을 왜 간섭하지 못했느냐?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지켜야 할 책임분담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 책임분담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인간을 주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도 책임분담이 없었다면 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책임분담이라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고 사탄이 활동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습니다. (87-120)
해와는 첫사랑을 누구하고 했는가
죽자 살자 좋아하는 애인이 있는 여자가 부모의 반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 여자는 일생동안 행복하겠느냐, 불행하겠느냐? 그 여자에게는 자기가 첫사랑을 했던 남자가 설령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병신이라 하더라도 꽃과 같이 멋있고 좋아 보입니다. 부모가 정해준 남자가 외모로 보나 학벌로 보나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첫사랑의 남자가 좋은 것입니다. 첫사랑은 몽땅 점령합니다.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상대도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원래 첫사랑은 하나님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해와가 첫사랑을 누구하고 했느냐? 천사장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면서 사랑해야 되는데, 상을 찡그리고 울면서 사랑했습니다. 타락할 때, 해와가 아이구 좋아라! 선악과 따먹으니 참 맛있다 했겠어요? 해와가 천사장한테 겁탈당할 때, 그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싫어하면서 천사장의 유혹에 끌려들어갔습니다. 해와의 모든 세포가 기뻐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포가 사그라지고 심정이 사그라진 자리에서 찡그리면서 사랑했습니다.
첫사랑은 귀합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첫사랑은 누구하고 했겠느냐? 틀림없이 하나님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해와가 둘이 첫사랑을 하게 되면, 그 첫사랑은 하나님의 첫사랑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첫사랑을 중심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에 그 뿌리가 딱붙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지금 우리같이 몇천 년의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복귀니 가정복귀니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왕창 달라붙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한꺼번에 다 달라붙는 사랑입니다. (33-329)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이란 뭐냐? 앞에서 말한 논리로 탐구해 보면 타락이란 혈통적인 실패를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원수냐? 하나님의 원수 중에 제일의 원수가 누구냐? 6천년 동안 인류의 소망을 이룰 수 없게 한 원수가 누구냐? 물건을 훔쳐간 원수나 장사하다가 자기한테 사기를 친 원수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집에 불을 놓아 파탄시킨 원수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 죽인 원수나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아간 원수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원수는 용서하려고 아무리 결심해도 저절로 이가 갈립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물적 조건으로 말미암은 원수는 해가 지나감에 따라서 다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원수만은 시일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서 크나큰 슬픔의 원인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떻게 했느냐? 사탄은 비법적인 사랑으로 아담 해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사랑은 절대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한번 맺게 되면 영원히 혈통적인 인연에 의해 주관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으로 인류의 조상을 겁탈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랑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중심으로 인류를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데, 비법적으로 사탄이 인류를 자기 것으로 못박아 놓았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사탄은 간부(姦夫)입니다. 무슨 기관 기업체의 간부(幹部)가 아닙니다.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탄은 불륜한 사랑관계로 하나님의 자녀인 아담과 해와를 범한 사랑의 원수입니다. 알고 보니 사탄은 내 어머니를 겁탈하고 아버지를 죽인 사랑의 원수입니다.
한국의 풍습 중에 민며느리라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아들을 장가 보낼 형편이 못 되니, 가난한 집 처녀를 어릴 적부터 데려다 자기 집에서 길러 때가 되면 자기 아들과 짝지어주는 며느리가 민며느리입니다. 그런데 민며느리 감으로 잘 키워서 때가 되어 둘을 맺어주려는데, 그 남자를 버리고 동네의 다른 총각과 눈이 맞아 도망가 버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원수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될 짝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류의 조상이 될 여자는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해와였고, 그 해와는 민며느리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 누시엘이 민며느리인 해와를 빼앗아갔습니다.
이 사탄은 으뜸가는 배반자입니다. 배반자 중에서도 배반자입니다. 이 사탄이 지금까지 세계를 마음대로 했습니다. 타락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변하여 원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관계를 잘못 맺으면 반드시 핏줄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기 전에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의 자식들로 태어났습니다.
민며느리인 해와가 종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의 후손인 우리도 타락한 천사장, 즉 사탄의 피를 받았습니다. (41-301)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의 세계
인간이 타락한 결과 어떻게 됐느냐? 사망권으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죽을 수 있는 사망권으로 떨어졌습니다. 타락한 결과 어떻게 됐느냐? 요한복음 8장 44절에 사탄 마귀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예수님이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야 할 그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사탄 마귀를 아버지로 모시게 됐다는 이 원통한 사실이 타락의 보응입니다.
그런 연고로 사탄의 품에 안겨 자라는 아담과 해와는 서로가 원수의 입장입니다. 해와가 아담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타락한 아담의 입장에서 보면 해와는 원수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의 지배하에서 자라 성혼식을 올렸는데, 그 성혼식이 죄 있는 부부의 기원입니다. 죄 있는 부부의 성립과 더불어 죄 있는 아들딸을 낳음으로써 죄 있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죄 있는 아들딸이 번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원수와 같은 입장에서 싸우는 형제들이 번식하여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들이 번식하여 종족을, 종족들이 번식하여 국가를, 국가들이 번식하여 이루어놓은 세계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입니다.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니 자연히 사탄 마귀가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이 세상 임금이 사탄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할 텐데 어찌하여 사탄 마귀, 하나님의 원수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돼 있느냐? 이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공중 권세까지도 사탄 마귀가 지배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는 하나님이 원하는 뜻의 세계가 아닙니다. 타락함으로써 슬픈 결과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세계에 떨어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원수 사탄 마귀 앞에 지배받는 인간들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는 본연의 뜻의 세계로 돌아갈 길이 있느냐? 돌아갈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사탄이 돌이켜주지 않기 때문에 그걸 뚫고 나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타락함으로써 사탄 마귀가 생겨났다는 것과 사탄이 세계를 지배하는 사탄주권 세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죄를 청산하고, 사탄 마귀의 주권을 타파해 인류를 하늘편으로 빼앗아오고, 사탄을 완전히 매장할 수 있는 계획을 하나님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4-140)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51-149, 110-276, 15-321, 23-7, 38-139, 48-200, 33-308, 27-40, 74-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