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사랑 이야기 - 제 1권 하나님 사랑편 - 제 1장 하나님)

무지... | 20180403102348


6.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몸이다
 
하나님은 마음도 있고 몸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몸이 있긴 있는데 영적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지만 무형의 하나님으로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무형으로는 선생이 될 수 없고,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실체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체(體)를 입어야 합니다. 체가 필요합니다. 실체의 주인이 되고, 실체의 선생이 되고, 실체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체를 입어야 합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가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더라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완성한 사람을 실체세계의 몸 마음과 같은 하나의 결과로 이루어놓자는 것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한 목적입니다.


결국 실체세계의 마음과 몸을 가진 아담 해와와 같이 영계, 무형세계에서도 마음과 몸을 가진 아담 해와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의 마음이 저나라에서 몸이 되고 하나님이 그 마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마음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 땅 위에서 완성하지 못하고 가면 저나라에서 마음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인간으로 태어난 이 지상에서 본연의 마음을 다시 찾아 영원한 세계에 변화된 몸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영적 마음과 같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못 하면 저나라에 가서 마음 없는 사람과 같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몸입니다. 실체를 가진 몸입니다. 그런 아담 해와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 하나님은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처음 입었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하나됐으면 그 아담 해와는 모든 가정의 중심이요, 종족․민족․국가․세계의 중심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아담이 이름 짓는 대로 되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몸을 통해서, 아담의 육신의 기관인 입을 통해서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떠한 관계로 지었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과 어떠한 관계로 있고 싶었느냐? 인간의 부모의 자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알고 있고, 이 관계는 물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그러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어떠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습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서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은 목적은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하고 기쁘냐? 보고서 기쁜 것이 아니요, 말하고 기쁜 것이 아니요, 만져보고 기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으로 하고 기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을 성사하기 위해서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이라는 말은 무엇이냐? 집입니다. 집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완성했다면 사랑을 가진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하여 아담과 일체 이상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즉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담 해와를 지었다고 했기 때문에 아담적 형상 성상과 해와적 형상 성상을 지닌 분이 사랑을 가지고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게 되면,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이고 아담 해와는 외적 실체를 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피조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통하지 않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느냐? 하나님은 무형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세계에 대한 체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영계에 가면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그 말씀을 현현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몸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형으로는 유형인 인간의 부모로 현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체를 가진 부모의 자리에 현현하기 위해서는 체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하고 외적 형상인 아담 해와의 형상을 입어야 만인류의 조상으로 현현할 수 있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였습니다. 즉 체를 입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사랑을 성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마음에 임하여 사랑을 중심으로 하나됨으로써 그 하나님이 말로만 하나님이 아니라, 말로만 부모가 아니라 내용으로나 외적으로나 완전히 부모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인내천(人乃天)이란 말도 이러한 원리 가운데서 유래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첫째는 체를 입기 위해서고, 그다음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실체를 영계와 연락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아담 해와를 이중구조로 지은 이유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이중구조로 지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형상을 보면 체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무형의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체를 입지 않고는, 체를 갖지 않고는 영계나 지상세계를 치리(治理)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절대자라 하더라도 인간의 부모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체를 입은 대표가 아담 해와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인류의 시조인 동시에 천지를 주재하는 하나님입니다. 실체를 가진 하나님, 즉 영원한 무형세계의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 입고 나타난 부모의 자리에서 세계를 통치할 책임이 아담 해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면 영계와 육계는 무엇이냐? 영계의 대표는 하나님이요 지상의 대표는 아담 해와인데, 이들이 연합해야 합니다. 아담은 지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지상 나라의 왕입니다. 영원한 왕권을 갖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해와는 왕후입니다. 그 영원한 왕권을 대표한 부부가 그냥 그대로 영계에 가면 하나님 대신 역할을 합니다.


하늘나라에 무형의 하나님만 혼자 있어서 뭘 하겠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있어서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부모가 되려면 체를 갖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과 같은 체를 입으려니 부득이 아담 해와를 이중적인 존재로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중구조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느냐? 무형의 하나님과 똑같이 되게 하려니 마음과 몸이 일생을 거쳐 저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 저나라에 가면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합니다. 실체적 왕권을 가진 부모가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영원한 천상세계에 체를 입은 왕권을 현현시키기 위해서 아담 해와를 이중구조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이유는 같은 부모의 자리에 서기 위한 것이요, 체를 입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부모의 자리라는 것은 안팎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부모는 아담 해와요, 내적인 부모는 하나님입니다. 내적인 하나님이 마음과 마찬가지입니다. 몸적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고, 마음적 하나님이 하나님입니다. 그 부모가 여러 명 있는 게 아니라 한 분입니다. 한 분이니까 그 한 분이 들어와 계실 수 있는 아담 해와, 남성 여성의 이성성상을 가진 분성전(分聖殿)과 같이 딱 해 놓고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본래의 기반이 깨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아무리 이 땅 위에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관계 없습니다.


본래 창조이상은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인데, 이것이 실현되지 않았으니 재창조역사, 복귀라는 재창조 과정을 거쳐 실현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어느 정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느냐? 절대자인 그분이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을 지었다면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받고 싶으냐 하고 묻게 될 때, 누구든지 종의 자리에서 받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과 양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어느 자리에서 받겠느냐고 하면 양자의 자리에서 받겠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양자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으냐, 직계 자녀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느냐?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직계 자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보다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두고 볼 때, 남녀노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자리는 종의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양자의 자리도 아닙니다. 아들딸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불가능한 입장에서 추구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인간을 지은 절대자 하나님이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내적인 바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하나님도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을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 최고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바로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또 하나님도 인간을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에게 󰡐사람을 지을 때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지었소?󰡑 하고 물었는데, 󰡐종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지었다󰡑고 대답한다면 그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양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지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아들과 딸의 자리에 세워놓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정(天情)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인정(人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인정과 천정이 서로 합할 수 있는 귀결점은 도대체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도 원하고 인간도 원하는 단 하나의 자리입니다. 즉 한 부모를 중심으로 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분이고, 사랑이 제일 많은 분이며, 인간에게 제일 필요한 분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이러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인간은 그분을 제일 좋은 분으로 모시고 그분과 제일 좋은 관계를 맺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묻기를,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으냐, 아니면 아버지로 모시고 싶으냐고 하면 누구든지 할 수만 있으면 절대자인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장가를 간다면 누구의 사위가 되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통령의 사위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한 여자들에게도 누구의 며느리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그 나라의 대통령의 며느리, 군왕이면 군왕의 며느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대통령이나 군왕이 그 나라의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그러한 최고의 자리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자 합니다.
그러면 인정과 천정이 합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것은 부자의 관계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인정과 천정, 인륜(人倫)과 천륜(天倫)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인간을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인륜과 인정이 성취되고, 천륜과 천정이 완성됩니다.
 
인간 최고의 소망이 무엇이냐
 
인간은 최고 높은 자리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난다면 어떠한 자리에서 만나고자 하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서 만나려고 하느냐? 도대체 그 자리가 어디냐? 어떠한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하느냐? 최고의 자리입니다. 인간으로서도 최고의 자리요, 하나님으로서도 최고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만나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어디냐? 인간의 최고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명의 인연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에 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생명줄이 끊어졌습니다. 생명줄이 끊어졌기 때문에 사랑줄도 끊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최고의 소망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최고의 소망은 우리 인간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보니 아버지의 자리가 자기 자리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욕망을 놓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싶어하느냐? 부자관계는 상하관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으로 만족을 못 합니다. 상하관계도 맺고, 그다음에 좌우관계, 전후관계, 내외관계까지 맺으려고 합니다. 그 자리까지 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내외관계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분 하면 하나님은 마음 하나님이요, 사람은 몸 하나님입니다. 여기까지 나가자는 것입니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두고 볼 때, 내적인 것이 좋고 외적인 것이 못하다 하게 되면 또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상하도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랑으로 엉클어져야 합니다.
안팎이 서로 사랑했다 할 때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또 부모와 아들딸이 하나가 되면 여기에도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횡적인 일체, 종적인 일체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사랑의 핵심이 이루어져 우주로 벌어져 나갑니다.


하나님과 내가 주고받아 하나만 되는 날에는 그도 나요, 나도 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고귀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쓴 몸이기에 인간은 외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특권을 인간에게 부여하려고 합니다. 왜냐? 우리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누구를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합니다. 내 것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관시키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몰래 숨기려고 한다면 거짓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인간에게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일체이상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일체이상이 창조이상입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114-9, 133-86, 39-7, 39-289, 69-71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