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의 사랑(사랑 이야기 - 제 1권 하나님 사랑편 - 제 1장 하나님)|

무지... | 20180318082519

7.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우리 인간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보더라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면 예술가면 예술가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모두 이익을 보기 위해서 야단합니다. 그것은 중심존재를 의지하여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을 때는 만물이 와서 붙으려고 합니다. 어디로 도망가려고 해도 따라다니고, 무엇을 하려고 해도 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못 받으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만사가 형통이요, 만사가 희망차고 영원합니다. 거기에서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통일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생명의 기원이요, 우리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 기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권을 통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냐? 봄날 향기나는 동산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며 향기란 향기를 다 맡아 취한 기분과 같습니다. 또한 봄철 잔디밭에 앉아 솜 같은 뭉게구름을 보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무엇을 느끼는 기분과 같습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의 모든 세포가 춤을 춥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력을 지닌 모든 존재의 힘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또 희락이나 평화, 인간이 소망하는 것의 절대적 요건이요, 신앙의 절대적 요소입니다. 영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행복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 그것은 마치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개미들도 세상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기어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의 새 노래를 부르고, 벌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그런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들 것 같은데 들지 않고, 기분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그런 맛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이상상대를 대해 느끼는 기분은 벌 나비가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아가씨들이 시집가서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사랑해준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아예 남편 옆에 딱 붙어 살려고 합니다. 여자는 남자가 소 앞발 같은 손으로 자기 손을 꽉 잡아주면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당신 손은 참으로 곱소.󰡑하면 기분 나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하나로 만듭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면 딱 맞붙어 버립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만 그 이상의 심정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전부 다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세계에서 살려고 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언제나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한다고 협박을 하고 핍박을 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와 정신이 들게 해주는 것밖에 안 됩니다. 밥을 굶는 자리에 있어도 그 고통이 나를 정복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이냐? 전후 좌우 상하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관할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리가 행복한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자리라고 해서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습니다. 고통스런 자리라 해서 비참한 자리가 아닙니다.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자기의 자세를 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발굴지는 어디냐
 
참된 사랑의 기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발굴지는 어디냐?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느냐? 아닙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자관계의 사랑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통으로 남기고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는 피와 살이 연결되어야 하고, 종적인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이 종적인 관계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성립되기 때문에 부자간의 사랑 외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랑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이 종적인 관계에서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심은 제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파탄되게 되어 있습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은 전부 하나의 중심을 보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흡수하든가 흡수되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두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존재의 필연적인 환경이 성립합니다.


피와 살이 연결되는 중심은 종적입니다. 자기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종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쭉 올라가면 결국 수천의 사람들이 하나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발전이고 변화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가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물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직계로 연결되는 자리는 그 자리뿐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주면서도 좋아하는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우주는 실체세계요, 절대자의 상대적 세계입니다. 물질세계의 중심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표면화되고, 그 내정적 실상이 부자의 관계에 그냥 그대로 표면화되는 가정이 있다면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데에 계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해주어야지 별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동기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때는 천태만상으로 돌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본받아서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일원화된 가정은 가정애가 꽃핍니다. 이것이 또 사회애가 되고, 더 나아가 민족애가 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세계애가 됩니다.
 
사랑의 본질과 하나님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왜 귀하냐? 부모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지만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사랑이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귀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그릇될까봐 생활을 통해서 자녀의 길잡이가 되는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종적인 사랑은 반드시 횡적인 사랑을 창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종횡으로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종횡의 요소를 책임진 것이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의 귀한 것을 그냥 그대로 자식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냥 그대로 주어서 횡적으로 넓히려고 합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왜 그러하냐? 상대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간에는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원형을 그립니다. 주체는 종적이요 대상은 횡적인고로 이것이 90도를 이루어 원형을 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반드시 종횡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횡 가운데 무엇이 먼저 출발하느냐? 종이 먼저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이 흘러 나옵니다. 사랑의 내심을 분석해 보면 종횡의 사랑의 본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내용을 갖췄기 때문에 횡적인 아들딸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종적으로 넓힐 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넓혀 나감으로써 거기에서 만유의 존재가 종적인 환경을 중심으로 횡적인 환경으로 퍼지고, 세계와 천주까지 확산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마음이 동기가 되어 세계를 지배하겠다, 무엇을 갖겠다, 무엇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종횡의 사랑의 인연이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의 바탕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적인 욕구에 따라 우리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이것은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형태를 대신해서 반응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받으면 반드시 반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횡적으로 뻗어나갑니다.


하나님의 사랑-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어하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이만큼이면 됐다 하는 한계를 두고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안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주느냐?󰡑 이럴 수 있느냐?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인간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입장일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다 줬으니 이제는 너희가 가져와라󰡑 하는 하나님이라면 필요없습니다.


무한히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이 오늘날 악한 세계에 있는 인류를 바라보며 사랑을 주려야 줄 수 없어서 느끼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이냐?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나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하나님인데, 아무리 주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못 가진 하나님은 얼마나 원통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홀아비나 독신자가 행복합니까? 나라를 다 갖고 세계를 다 가졌다 하더라도 혼자 산다면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눈물을 흘려준다면 최고의 눈물을 흘려줄 수 있고, 정의 인연을 완전히 맺을 수 있는 그런 분이 하나님이 아니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 품에서 죽는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입니다. 여자들도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죽으면 한이 없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선전하고 싶어합니다. 선전하고 싶다는 것은 뭐냐? 관계를 맺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선전이나 자랑은 왜 하느냐? 󰡐너도 이와 같은 관계를 맺어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부모가 제일 좋고, 그다음은 나이며, 그다음에는 자식입니다. 이것으로 역사가 계승됩니다. 이러한 내용이 집약된 것이 무엇이냐? 즉 우리의 생명을 연결시키고, 생명에 연결된 그 환경을 중심으로 사랑의 이념을 꽃 피울 수 있는 그런 환경의 터전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자식은 󰡐어머니는 영원히 내 것이다󰡑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피살을 나누어주면서 좋아합니다. 이것을 볼 때, 좋은 것이 뭐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테 주면서도 좋아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을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합니다. 주고 나서 그것을 돌려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 적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식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주면서도 더 좋은 것을 못 주어서 한이지만, 자식은 󰡐나는 효자다󰡑 하면서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은 다릅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엄마 아빠는 뭘했어요?󰡑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라는 한계선을 못 넘습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기라는 한계선을 넘습니다.


이런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이 인간 앞에 나타난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부모보다 나은 분입니다. 우리 부모는 자식만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세계 인류를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합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는 나만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만민을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자리에서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천년 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냥 몇전이다󰡑 하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인간이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느냐? 하나님은 천년 만년 모든 것을 주고 또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면서, 오늘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함께 있으면 비록 못먹고 못살더라도 행복합니다. 못먹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미래의 소망의 자극이 현실권에서 충격적으로 느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이 󰡐엄마󰡑 하고 끌어안게 되면 몸만 끌어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같이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가 맞부딪쳐서 격려할 수 있는 폭발이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참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자극을 끌어들여 현실에서 가치를 찬양할 수 있으니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권에서 사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의 바탕
 
사랑이 없으면 영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데, 사랑 없이 영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생이 어떻게 가능하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힘이 소모됩니다. 하면 할수록 힘이 소모됩니다. 다시 말하면 작용을 하면 힘이 소모된다는 것입니다. 작용을 했는데 오히려 힘이 솟아나는 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현상세계, 자연세계의 공식입니다. 그런데 이 공식에 어긋나고 상충되는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힘이라는 것은 어떠냐?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에 들어가는 힘과 나오는 힘을 보면 들어가는 힘이 나오는 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는 힘은 언제나 작습니다. 다시 말하면 운동을 하는 가운데 힘이 소모되기 때문에 나오는 힘은 들어가는 힘보다 언제나 작습니다. 이것이 힘의 원칙입니다. 들어가는 힘보다 나오는 힘이 작기 때문에 그 힘을 같게 해주기 위해서 휘발유를 태우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작용이 영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진실로 사랑했다 할 때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보다 작게 돌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받았다면 돌려줄 때는 더 보태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부모는 천번 만번 희생하면서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되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은 아들딸은 더 보태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은데 못 주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런 사랑입니다. 주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낍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랑의 인연과 사랑의 도리에서만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벗어나면 전부 망합니다. 사랑을 벗어나서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망합니다.


순전한, 완전한 사랑은 주면 줄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면 줄수록 플러스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작용하면 할수록 들어가는 힘보다 나오는 힘이 더 큽니다. 작용하고 나면 더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갖지 않고서는 영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태주는 힘의 작용이 없으면 영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존할 수 있는 바탕이요 동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면 할수록 더 큰 힘이 내재할 수 있으므로 그런 존재는 영생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 가운데서 살고 싶어하고, 사랑 가운데서 죽고 싶어합니다. 사람은 이것을 이상의 요소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무리 소망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망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영생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영원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여기에 비로소 소망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99-193, 37-7, 34-215, 36-44, 36-273, 38-222, 115-169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