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계시는가(사랑 이야기 - 제 1권 하나님 사랑편 - 제 1장 하나님)

무지... | 20180228043700

하나님은 계시는가
 
신의 실존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


이 세계에는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고,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나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나라들이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를 바라고 있지만, 그런 하나의 세계나 평화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시대에 처해 있음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 인간의 지혜, 인간의 문화, 그 무엇 가지고도 진정한 의미의 평화의 세계나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세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확실히 해명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온 인류가 알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고, 그 지향하는 뜻을 알게 되면 그 뜻이 지향하는 세계가 바로 하나의 세계요, 평화의 세계요, 이상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인류는 하나님과 더불어 그 뜻을 따라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확실하게 있다는 것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인간이 철학적으로 규명해온 문제요, 종교가 추구해온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연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실질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안 보이는 것이 원칙


하나님은 과연 있느냐? 누가 꼬집어서 '아야' 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있다고 할 때,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심장에 있느냐?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도 이 세계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게 되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얼굴을 그리려고 하면 잘 그릴 수 없습니다. 화가도 자기 얼굴은 잘 그리지 못합니다. 사진을 보고는 잘 그릴 수 있지만 매일같이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지만 보고 돌아서서 그리려고 하면 그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얼굴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매일 거울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야 할 텐데도 잘 모릅니다. 기분 나쁠 때 보면 제일 못생긴 얼굴 같지만, 기분 좋아 웃는 것을 보면 '아, 이렇게 저렇게 생겼으니 복이 붙었구나' 하면서 잘생겼다고 합니다.


자기 얼굴을 똑똑히 안다면 큰일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못생긴 사람은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못생긴 얼굴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른거리게 되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잘 모르기를 잘했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찾아다니니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수평에 놓여지게 됩니다.


포화상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포화상태라는 것은 경계선에서 내려가면 내려갔지 그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는 절정상태를 말합니다. 절정상태에서 내려가면 포화상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화도 아니요, 절정도 아니요, 내려가는 것도 아닌 두루뭉수리한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혼자 가만히 있을 때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마음이 있는지, 몸이 있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전부 두루뭉수리입니다. 그것은 제일 가깝기 때문입니다. 왜냐? 같은 감정권내에서 하나되면 될수록 안 보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은 그 자체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눈은 자기 자체를 보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안 보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미인으로 맵시 있게 생겼지만, 매일 똑같은 얼굴이라면 지겨울 것입니다. 남자로서 일생동안 매일 똑같은 얼굴만 대하고 살겠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얼굴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합니다. 웃을 때는 웃는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성날 때는 얄궂은 표정으로 장단 맞추고, 감정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넙적해졌다 길어졌다 하는 표정으로 바뀝니다. 이렇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잘 모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동네 어느 처녀의 얼굴보다 더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내와 재미있는 생활을 못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권에서는 서로 하나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백을 백으로 보는 자리냐, 아니면 백을 십으로, 또는 백을 천으로 보는 자리냐? 취했다고 하는 자리는 백을 열로도 볼 수 있고 천으로도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취하게 되면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천하의 미남이요, 천하의 미녀로 보입니다. 그저 기둥에 못을 박아 얽어매어 놓은 것처럼 얼굴에 변화가 없다면 지겨워서 못 삽니다.


여자가 시집가서 처음에는 신랑이 못생겼다고 타박을 하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남편이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못생길수록 더 맛이 납니다. 팥밥과 쌀밥이 있을 때 보기에는 쌀밥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팥밥이 오히려 더 구수하고 맛이 있습니다. 거기에 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


가까울수록 모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안에 안 계시는 곳이 없는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가 있는데도 공기가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숨이 막혀야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맥박이 1분에 칠십 번 정도 뛰고 있는데, 이것도 평소에는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걸어갈 때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고, 눈을 깜박거릴 때도 맥박이 뛰는 것에 보조를 맞춰 깜박거리며 산다면 신경이 쇠약해져서 사흘도 못 가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것들을 모르기를 잘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온 천하를 요리하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에베레스트산도 날려 버리고 지구도 구멍 낼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겠느냐? 그런 전지전능한 분을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는 신경이 쓰여서 마음놓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보였다면 우리는 신경이 쇠약해져서 한 시간도 못 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용은 모두 선생님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겪었던 것들입니다. 남이 했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지금까지 더듬어온 경험담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받고 살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릅니다. 그게 고맙다고 해서 󰡐태양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큰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만일 이 세계에 공기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짓궂은 분이라면 세계통일은 문제없습니다. 아마 5분 이내에 통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몽땅 끌어가면서 󰡐너희들 통일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합창으로 󰡐통일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에 통일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를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이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는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기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4분의 3이 물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몸을 물주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느냐? 오뉴월 복더위에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면 심한 갈증이 납니다. 대개 언덕배기에는 과수원이 있는데, 거기에서 냉수 한 그릇을 얻어먹는다면 그 맛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물을 먹고 나서도 물을 떠다준 그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하지만 물한테는 고맙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님, 고맙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태양빛은 아주 귀중합니다. 만일 태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얼어 죽게 됩니다. 햇빛은 생명을 지탱시키는 데 절대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제일 귀중한 것을 공짜로 받고 있으면서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물과 공기와 태양빛이 제일 귀중합니다. 밥은 일주일 동안 먹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사람은 21일 금식도 하고, 40일 금식도 합니다. 그래도 안 죽습니다. 밥 없이는 정신력으로 살 수 있지만 물과 공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태양이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태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얼어 버리기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는 크나큰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마음


그러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가 있는지 없는지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공기로 숨을 쉬고 살기 때문입니다. 공기가 무슨 맛이 있어요? 맛이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압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참 신기합니다. 형제끼리 재미있게 노는데, 어머니가 시장에서 과자를 사다가 형과 동생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형은 다 먹었고 동생은 일부만 먹고 일부는 남겨두었다 나중에 먹겠다고 과자를 살짝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 잠이 들었습니다. 형이 새벽에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가 소변을 보고 나서 자려고 하는데, 동생이 숨겨 둔 과자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먹으려고 하면 마음이 어떻게 하느냐? '이놈! 먹으면 안 돼!' 합니다. 아무리 밤중이라도 살짝 먹으려고 하면 마음은 감독관 중에서도 지극히 엄격한 감독관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몸이 잠에서 깨면 마음도 눈을 뜨고, 어디 가더라도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몸의 행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마음은 '네 이놈!' 합니다. 그런 것을 다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보이는 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그게 믿어지느냐? 우리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곧 양심작용의 주체


우리 인간에게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그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피조물과 창조주가 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그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의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작용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니 절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 접촉할 수 있는 제1의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그 목적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끔 우리 인간 가운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존속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바라는 제3의 목적 기준 앞에 도달해서 하나님도 기쁘고 인간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인간을 창조하던 창조목적의 기준과 지음받은 우리 인간으로서 가야 할 목적의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되어야만 하나님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을 찾아올라갈 수 있는 무슨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작용이 없게 되면 도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바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자극시켜서 끌어내어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양심입니다.


양심은 어떻게 작용하느냐? 높아지기를 바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져라, 나아져라 하고 재촉합니다. 이 작용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양심은 현재의 자기보다도 높아지라고 촉구하지 낮아지라고 촉구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보다도 모레, 금년보다도 내년, 혹은 10대 때보다도 20대 때, 20대 때보다도 30대 때, 가면 갈수록 더 높고 더 가치적인 자기를 형성하라고 촉구하는 그 힘이 양심작용입니다.
 
양심작용으로 본 하나님의 실존성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작용이 있어야 하며, 작용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존재를 위한 하나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 양심은 틀림없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일생 동안 작용합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전기를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데, 그것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결코 작용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그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려면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와 대상 관계를 우리는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양심이 있는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어서는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양심 자체를 두고 그 양심이 주체냐 대상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양심은 어디까지나 대상적인 존재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용의 원칙을 따라 찾아가게 되면, 반드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주체가 있습니다. 그 주체와 대상은 서로가 손해 나는 것을 바라고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이익이 될 수 있는, 보다 나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작용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양심은 보다 나을 수 있는, 보다 큰, 보다 가치적인, 보다 세계적인 것을 향해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다 이익 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양심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양심작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하나의 목적을 바라고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우리의 양심 가운데서 작용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양심작용이라는 것은 주체가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는, 고차적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고차적인 주체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의 주체 되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없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양심작용을 부정해야 합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신비로운 인체를 보아서도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곳이 얼굴입니다. 그 얼굴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곳이 눈입니다. 이 눈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눈은 어디서부터 왔느냐? 부모로부터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눈은 어디서 왔느냐? 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 해와까지 가서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 최초의 그 눈이 태어날 때, 태양이 있는 것을 알았겠느냐?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눈 자체는 복사열에 의해서 수분이 증발될 수 있는 이 지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눈썹은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있는데, 눈썹 자체도 생겨날 때, 공기 가운데 있는 먼지가 눈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물질로 된 우리 사람의 눈 자체가 갖춘 내용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천문학적 지식 기반 위에 나타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눈이 생겨나기 전에 태양이 있었고, 눈이 생겨나기 전에 공기가 있었고, 눈이 생겨나기 전에 증발작용이 있었다는 것을 그 눈 자체는 몰랐지만 그 누군가가 이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박물학적인 지식 기반 위에서 눈 자체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물질로 구성된 그 눈 자체는 몰랐지만 그 눈 자체가 존재하기 전에 태양이 있고, 공기 중에 먼지가 있으며, 이 수분이 증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군가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눈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안과 의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과 의사들도 아직까지 신비스런 눈의 세계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눈은 무궁무진한 신비의 궁(宮)이 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눈 자체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태양이 있고 공기중에 먼지가 있으며 수분이 증발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여기에 맞게끔 탄생시킨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탄생시킨 주체가 누구냐?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도 생겨날 때 공기가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귀도 필요없습니다. 공기가 있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이닥치게 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귓바퀴에 산맥 같은 것을 크고 작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큰 산맥, 작은 산맥 같은 것이 있어 화음이 되게 해서 들어가게끔 했습니다. 그 태어난 귀 자체는 몰랐지만 그 배후에는 이렇게 될 수 있게 한 무슨 동기가 있어서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또 혀도 기기묘묘합니다. 입속에서 끌어당기고 밀고 하면서 작두 같은 이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도 충돌 없이 박자를 잘 맞춥니다. 조화통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말을 참 빨리 합니다. 이렇게 빨리 하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박자를 맞추어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정이 들 수 있게끔 말하는지 정말 기기묘묘한 조화통입니다. 만약 손가락이 혀와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큰일납니다.


입술도 보면, 고무 중의 최고의 고무입니다. 벌릴 때는 한껏 벌릴 수 있고, 오므릴 때는 아주 작게 오므릴 수도 있습니다. 자유자재입니다. 가죽보다 낫고 생고무보다 낫습니다. 말을 할 때나 먹을 때나 한 울안에서 입술과 이와 혀의 박자가 어쩌면 그렇게도 잘 맞는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또 코를 보면 콧속에 털이 있습니다. 그 털은 공기 가운데 먼지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있습니다. 공기 가운데 먼지가 있는 것을 알고 다 걸러내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코를 중심으로 얼굴에 양쪽으로 골이 파여 있는데 왜 그렇게 돼 있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도랑이 있느냐? 그 도랑을 보면 흉합니다. 그러나 그게 없으면 빗물 같은 것이 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보기에는 흉하지만 도랑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땀이 나서 흐르게 되면 입안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입안으로 땀이 흘러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흉하지만 도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코가 왜 이렇게 아래가 넓으냐? 입을 방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코가 만약 뒤집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소나기라도 오면 큰일납니다. 코가 선장의 담배 파이프처럼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비나 눈이 오면 그대로 콧속으로 들어가게 되니 심각합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이미 서서 다닐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눈썹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썹은 이마 위에서 땀이 흘러내려 눈속으로 들어갈 것을 미리 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생겨났습니다. 눈을 자세히 보면, 그것도 미덥지가 못해서 눈꺼풀로 둘러 놓았습니다. 눈꺼풀로 둘러서 눈을 보호하게끔 해 놨습니다. 눈물은 음푹한 곳을 통하여 옆으로 흘러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안전보장이 잘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모르지만 어떤 과학자가 연구해도 다 알지 못할 만큼 완전무결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우주의 신비의 왕궁입니다. 수많은 의학박사가 연구해도 다 못 할만큼 무궁무진한 연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갖추어진 터전 위에서 우리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결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그것을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는 몰랐지만 알고 있는 분을 동기로 해서 결과적인 존재가 태어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안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든 절대자든 이름은 아무거나 붙여도 좋습니다. 주체 되는 그분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면 됩니다. 그분을 영어로는 갓(God)이라 하고 한국말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 누구도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자기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의 부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부모 이렇게 해서 우리의 종지조상인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되면 아담 해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인류의 시초가 되는 조상도 자기들이 원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가, 그 어떠한 분이 동기가 돼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하게 되면, 남자 여자를 말합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없으면 안 되고, 여자에게도 남자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자가 원해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 남자에게 필요한 여자도 자기가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고 보니 남자가 되었고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자로서 남자로서 자라고 보니 비로소 부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나가는 길이 우리 인생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근본 원인 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었다면 우리의 존재세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남자 여자가 서로 만나 생활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인류가 되었습니다. 그 인류는 수많은 국가에 연결되어 있고, 수많은 국가는 수많은 종족,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도 그 개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그 가정의 일원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로 맺어진 그 가정, 혹은 친족은 자기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나 가정의 일원이 됐고, 친척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4천만명이 넘는 대한민국의 국민도 자기들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 대한민국을 형성하였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우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제지인연이나 부자지인연을 논하는데 그 인연도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결과의 세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나 우주도 결국 하나님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말씀출처(말씀선집 권-쪽) : 38-222, 39-149, 56-131, 67-276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pQM/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