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역사편 - 제 3장 메시아를 통한 구원섭리

참사랑 | 20180226085417


사랑이야기  

제 5권 구원역사편 

제 3장 메시아를 통한 구원섭리

소목차

1.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
2. 승리적 이스라엘권
3.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
4.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5. 한국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

  
1.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
  
  
메시아란 몸과 마음이 하나된 인류의 참된 조상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면 타락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면 그야말로 개인적인 지상천국을 이루고, 그 개인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이루어지고,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국가, 세계가 이루어져 지상천국, 즉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본래 하나님이 의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삼은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던 세계와 반대가 되었기 때문에 반대의 중심존재인 사탄이 생겨났고, 사탄이 주관하는 개인과 가정과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세상을 그냥 둔다면 이 사람들을 사탄이 놔 둘 리 만무하고,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돌이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세계는 사탄을 중심삼은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이 되었고, 민족이 되었고, 국가가 되었고, 세계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이 위에 계셔야 하고 사탄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반대가 되어 사탄이 위에 있고 하나님이 아래에 계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늘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반대로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개인이 되었기 때문에 가정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몸과 마음의 싸움이 없는 개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된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런 개인이 안 나왔기 때문에 그런 가정이 나올 수 없고, 그런 종족이 나올 수 없고, 그런 민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은 결국 전체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가정도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고, 종족도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고, 민족도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고, 전세계가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탄이 주관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이 세상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중 권세, 하늘의 보좌 밑까지 전부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할 수 있는 대표자가 있어야 됩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님편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완성할 수 있는 대표적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나와 그 한 사람만 붙들고 완전히 하나되면, 개인도 완성할 수 있고, 국가도 완성할 수 있고, 세계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 한 사람만 붙들고 완전히 하나되면, 개인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가정과 국가와 세계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고, 하늘 전체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아담이 인류의 선한 조상이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완성했다면 가정도 완성하고, 종족도 완성하고, 다 완성했을 것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전부 완성할 것이었는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사탄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님이 조상으로 와야 됩니다. 거짓 조상으로 말미암아 사탄권이 생겼으니 참된 조상이 와서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개인을 길러 나가고 가정을 길러 나가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종교요, 그것을 대표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대표적 중심국가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 사탄세계권내에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즉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을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세계까지 확대된 것이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72-74, 74.5.19)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참감람나무로 오신 예수님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 사탄세계는 사탄이 주관하는 돌감람나무요, 종교는 하나님이 주관하는 돌감람나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다릅니다. 종교라는 것은 참감람나무가 아니라 돌감람나무는 돌감람나무인데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입니다. 세계는 사탄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감람나무를 한꺼번에 자르고 전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없는 권이 종교권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이리 오라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하나님 마음대로 오라 하면 오고, 가라면 갈 수 있는 종교권의 패가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밭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사탄의 밭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사탄이 죽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밭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 돌감람나무밭이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참감람나무를 하나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개인이 참감람나무로 오신 예수님에게 접붙이면 개인으로서 하나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개인을 중심삼고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걸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국가기준까지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의 말만 완전히 들으면 개인이 완성되고, 가정이 완성됩니다. 접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려면 완전히 잘라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하고 접붙여야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생활이 하나되고, 마음이 하나되고, 행동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었더라면 틀림없이 나라를 이루고 세계까지도 하나 만들어 복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어떤 개인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개인으로 섭리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하나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개인 입장에서 하나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개인으로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가정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될 수 있는 개인이 없으니 하나된 가정이 나올 수 없고, 하나된 가정이 없으니 하나된 종족이 나올 수 없고, 하나된 종족이 없으니 하나된 민족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참감람나무로 왔지만, 영과 육을 접붙여 나라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본연의 세계,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를 이루려고 하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나님이 준비하셨던 이스라엘 나라를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다시 이루어야 합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텐데 육을 사탄에게 내주었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발전시켜 나온 것이 세계적 기독교입니다. 
영육으로 타락한 사탄세계에서는 아무리 영적인 세계의 기준이 되었다 하더라도 영육으로 타락한 사탄세계가 남아 있는 한, 육적인 기준이 아직까지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이 땅에 와서 육적인 기준을 세워 이 세계 형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72-77, 74.5.19)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함으로써 그 민족 앞에 몰리고 쫓김받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정으로 가게 된 예수님은 그의 소망을, 그의 사정을, 그의 심정을 이 땅의 어느 누구에게도 상속하지 못했습니다. 땅 위에서 이루려던 소원이요, 땅 위에 세우려던 심정이었으나 그냥 그대로 십자가와 더불어 지고 갔다는 것을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종말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은 2천년 전 예수님 당시를 다시 한번 회고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책임을 다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종교의 이념을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책임을 못 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영적 복귀, 즉 영적 구원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민족적인 발판을 연결시켜서 세계 형으로 끌고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천년 전 하나님이 슬픈 자리에 세우고자 땅 위에 예수님을 보냈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음 가운데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새로운 한 날을 준비하였습니다. 새로운 시대적․민족적․국가적인 지도자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구세주를 보내기 위하여 긴 역사노정을 통하여 선지자를 보내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수많은 환난노정을 거치면서도 택해 놓은 이스라엘 민족, 야곱을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해 나왔고, 한 날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을 끌고 몰면서 나오신 것이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역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슬픈 자리에 세우기 위해 예수님을 보냈겠습니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으며, 어떠한 생활을 했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의 조수로 생활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날 분이 아닙니다.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로 갔길래 오신 메시아를 그토록 천대해야 했느냐? 그토록 몰라보고 박대해야만 했느냐?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그토록 처량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했느냐? 그렇게 하는 것이 4천년 동안 준비하여 예수님을 보낸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그 나라의 왕궁에 모시고, 제사장들과 교법사들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교직자들이 자기들 이상의 영광의 자리에서 왕으로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자리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던 메시아가 머물러야 할 자리요,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에게 메시아 탄생을 예고한 하나님이 메시아가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서 태어나기를 원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은 다 인간들이 책임 못 한 연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은, 만민의 구세주가 되기 위하여는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영광의 자리까지 터를 닦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법사들을 다스리고 제사장들과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 나라의 군왕을 대신해서 만민에게 명령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이요, 이 땅 위에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지고 온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최고로 권위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세계적인 발판을 잡고 악한 세계를 무찌르는 심판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습니다. (14-49, 64.5.3)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어떻게 살았느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욕을 먹으며 쫓겨다녔습니다. 이 마을에서 몰아내면 저 마을로 피하고, 저 마을에서 몰아내면 이 마을로 피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생활은 4천년 동안 준비한 터 위에 오신 메시아가 해야 할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 와서 그렇게 생활하기를 원하셔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런 자리로 보내셨겠습니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메시아로서 이 땅에서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자신을 메시아로 보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7족을 전부 쳐부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모세의 심정보다도 더 간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전세계의 사탄 국가들을 쳐서 하나님편으로 복귀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를 갚고, 만민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온 예수님의 본래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활무대는 비참했습니다. 유대민족의 어떤 대제사장이나 교직자, 혹은 그 시대의 어떠한 사람만도 못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있을 곳이 없어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태복음 8장 2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 부모가 누구뇨? 내 형제와 내 누이가 누구뇨?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뜻대로 하는 부모를 찾고, 아버지 뜻대로 하는 형을 찾고, 아버지 뜻대로 하는 동생을 찾기 위해 헤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있었느냐? 그런 종족과 민족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있을 때 동생들로부터 반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마리아에게도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복음 2장 4절)󰡓 하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심상치 않은 말씀입니다. 
요셉 가정에 태어난 예수님은 그렇듯 불쌍한 신세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천사를 보내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해주던 그때의 심정과는 판이하게 변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가만히 보니, 성신으로 잉태되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긴 들었지만, 의붓아들이란 말입니다. 요셉의 마음이 그렇게 변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어느 때나 뜻을 위하는 충절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의 30여 평생의 노정에서 예수님을 모셔 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입장에 서야 했지만, 그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예수님을 구박했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의 명절이 되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의 동생들에게는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주고 싶어했으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이 택해 세운 아들이라 하여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유난히 후하게 주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서글프고 분한 생애 노정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까뀌가 웬말이며, 톱이 웬말이며, 대패가 웬말입니까? 메시아가 목수의 조수라니, 하나님과 더불어 만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개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할 준비 기간에 목수 생활이 웬말입니까? (14-51, 64.5.3)
  
  
유대민족이 고난의 길을 걸은 이유
  
암흑 천지가 되어서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민족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메시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 멋대로 틀어진 방향으로 나가니, 그들을 수습해야 할 예수님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달팠겠습니까?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 위에 메시아를 보냈으니 예수님은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하는데, 설 발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기에 면목없어하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일국의 사신으로서 나라의 특명을 받고 나간 사람이 해야 할 책임과 임무를 모두 실패하고 국왕 앞에 다시 돌아갈 면목이 있겠습니까? 일국의 사신도 그렇거늘, 하물며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님은 어떠했겠습니까? 
4천년 동안이나 피땀 흘리며 수고해서 천신만고 끝에 준비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되어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생활은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밥을 굶어서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벌거벗어서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온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으니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피눈물 어린 역사적인 제단을 연결시켜 예수님 앞에 상속해주고, 예수님이 그것을 수습하여 하나님이 세워 놓은 민족을 위주로 주권국가를 세워서 만왕의 왕의 권한을 갖고 만민을 통치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위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주권자의 입장에 서 보지도 못했습니다. 내적으로는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분한 입장에 있었고, 역적과 간신에게서 쫓기는 이상의 슬픔을 당한 예수님의 사정을 오늘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황태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4천년 동안 고대해 온 메시아를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은 벌을 받았습니다. 어찌하여 그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주권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유랑하는 민족이 되었겠습니까? 어찌하여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겠습니까?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죄값입니다. 
예수님을 유랑하게 만들었으니 유랑하는 민족이 되어 보고, 예수님을 고아의 신세로 만들었으니 고아와 같은 생활을 해 보고, 예수님을 쫓기고 몰리는 신세로 만들었으니 쫓기고 몰려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몰림받고 쫓김받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중심국가가 책임을 못 한 것은 한 국가에 국한된 평면권내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절대로 평면적이고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를 대표한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으니, 그 한이 이 땅에서 모두 탕감되고 이 땅에 다시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수 있는 때가 뜻으로 보면 말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이 되어 보지 못했지만, 천지가 생겨난 이후 이 땅에 왔던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가장의 인격을 갖추고 오신 분이요, 족장의 책임은 못 해 보았지만 이 땅의 어느 족장보다도 훌륭한 책임자로 오신 분이요, 군왕이나 제왕의 자리에 앉아 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군왕이나 제왕보다 크나큰 책임을 짊어지고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책임을 이 땅에서 완수하여 소원하던 나라, 하나님의 창조 당시에 세우려 한 나라, 사랑의 나라, 희망의 나라, 자유와 해방의 나라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 나라를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죽여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를 믿게 하여 세상을 수습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서 비록 30여년의 생애노정을 걸어갔지만, 하나님이 4천년 역사노정에서 느끼신 슬픈 심정을 체휼했고, 이 땅에서의 패배의 쓴잔을 다 마셔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가 헐벗고 굶주렸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얼마나 모함하고 배반하였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자신보다도 자기가 그렇게 해서 죽으면 후대의 신약 신자들 앞에 엄청난 고난의 길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더 슬퍼하였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면케 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 26장 39절)󰡓 하는 3차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이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아버지가 가는 길을 그 아들딸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가니 그 자식들도 그 나라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 나라까지 순종하면서 가다가 도중에 쓰러지면서도 죽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사적인 최후의 전장(戰場)을 향하여 한 분 메시아를 세웠습니다. 
메시아를 세운 하나님의 소원은 선한 이스라엘의 건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1 이스라엘이 멸망했지만 제2 이스라엘로 기독교를 세워서 전세계 이스라엘 국가 형을 형성하였는데,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에서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14-53, 64.5.3)
  
  
예수님의 소원과 기독교의 사명
  
2천년 전 유대 땅에 오셨던 주님, 민족적인 메시아를 맞이하여 국가적인 주권을 세움으로써 세계적인 출발을 하려 했던 역사는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중단될 수 없습니다. 하늘적인 기준에서 외형적으로라도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서 그것을 제2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민주진영과 제2 유대교로서의 기독교에 상속해서 일으켜 나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기독교는 통일되어야 합니다. 통일되지 않으면 망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려 한 책임,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기독교가 하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과 책임을 하기 위하여 통일교회가 나왔습니다. 
2천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당대에 세계적인 복귀를 완성해서 만왕의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을 품고 돌아가셨으니 다시 제2 이스라엘을 세워서 민족적인 기반을 연결하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만나야 합니다. 또 세계적으로 제2 유대교를 세워서 민족적인 출발을 하는 지점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와 민주주의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예수님 당대에 못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책임에 대해서 한마디 말도 못 해 보았지만, 그 예수님이 마음으로 󰡐내가 그런 나라에서 같이 살고 싶고 그 나라에서 거느리고 싶은 참된 효자는 어디 갔느뇨?󰡑 하고 찾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소망이 완성되는 날, 예수님을 중심삼고 온 천지를 거느리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참된 자녀를 고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을 가지고 온 예수님이었지만 한 번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말도 한번 못 해 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라 하였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원수고, 내가 사는 나라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내 자체에서는 이 몸이 원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원수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이 세계가 원수입니다. 
예수님은 혈혈단신 고아와 같은 신세로 이 땅에 와서 언제 자신의 소원을 말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라고 했습니다. 불을 던졌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의 답답함이 오죽했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중을 바라보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장 37절)󰡓 하시던 예수님의 그 서글펐던 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분한 마음에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판국은 그때 비틀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9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던 예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30여 평생 고이고이 지녔던 마음, 그 내적인 소신을 예수님은 전혀 피력하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에 철석같은 결의는 갖고 있었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 멍텅구리 같은 제자들이 사도요, 불리하면 내빼는 녀석들이 사도였습니다. 
그들은 한 나라만을 대표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 앞에 부름 받았던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만을 대표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만민을 대표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명으로 만민을 대표해 나타난 특전대였습니다. 그런데 칼이 무서워 도망을 가요? 목이 달아날까봐 도망을 가요? 그런데도 사도라고요?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 동안 다시 찾아가서 수습했기 때문에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이 다 죽더라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철석같이 맹세한 자들이 뒷걸음을 쳐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 처참한 자리에서 죽어 간 예수님이 사흘 후에 다시 그들을 찾아갈 때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이구, 내가 부활해서 왔다󰡑 하며 기뻐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낙원엔 누가 먼저 들어갔습니까? 강도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14-55, 64.5.3)
  
  
말 못 할 예수님의 사정
  
끝날에 처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당하신 억울함을 알아야 합니다. 억울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억울하고 분했으며, 땅 위에서 자기의 소원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하지 못했으니 억울하고 분했던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하여 사탄세계로부터 몰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가?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눈물 흘리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신답게, 하나님의 효자답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를 맞고 쫓기더라도 원통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답게 늠름하게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책임을 못 하고 간 예수님의 사정, 이 땅 위에 책임과 소원을 품고 와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의 사정, 당대에 세계의 만민을 구원해서 복귀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4천년 역사와 함께 죽어 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눈물을 흘려도 천주사적인 입장에서 흘렸고, 천주사적인 비참한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고도 절망하지 않고 늠름하게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땅의 역사적인 모든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을 저주하면 인류 구원섭리는 다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하나님, 제 원수를 갚아주시옵소서!󰡑 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지옥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유린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유린했으니 심판하려면 모두 다 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여 세우신 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대하고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하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망하면 수습하여 다시 세우고 몇천만 번 수고하여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소망을 가지시고 나를 이스라엘 땅에 보내셨고, 나는 30여 년 동안 이들을 위해 살았고 이들을 위해 싸웠다. 이들을 위해 싸운 목적은 이들을 구하려는 것이었지 벌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이들을 저주하면 이들은 물론 이들의 후손들까지도 전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 세워 나온 복귀역사가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차 기도를 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피맺힌 호소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던가? 오늘날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서 신부 되겠다는 사람들이 아는가? 신부, 말이야 좋습니다. 그 명사야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그 명사를 성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공의 노정과 고난과 슬픔과 비참의 과정은 어떻게 합니까?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빚진 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4-57, 64.5.3)
  
  
십자가를 지고 간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할 우리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없었고, 땅을 바라볼 때는 배반의 아우성 때문에 귀를 막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그들을 붙들고 가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여,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를 죽이는 한이 있을지라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애원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죄과에 대한 사죄를 호소한 것이요, 자신에게 한을 맺히게 한 원수들을 용서한 것이요, 미래의 후손들이 맞이할 탄식권을 놓고 해방시키기 위해 갈구한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책임지고 꿋꿋이 넘어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승리권을 세울 수 있었고, 시대적인 주도권을 세울 수 있었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전개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부활한 예수님을 다시 따라오면 부활할 수 있다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반한 자를 용서했다는 조건이라도 세워서 세계적인 결판을 지은 기준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사탄의 공인을 받은 터 위에서 사도들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습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늘의 주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지고 간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처량한 사나이입니까? 여러분, 역사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권한을 갖춘 예수님을 마주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당시의 예수님을 볼 면목이 있겠어요? 구약성서를 믿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쫓겨다니고 유대교인들에게 쫓겨다니고 몰림받는 몰림뱅이, 바알세불이 들린 미치광이라고 놀림받던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더벅머리 총각이 과부를 데리고 다니니 별의별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향유를 발에 부어서 머리카락으로 씻어주고…. 여러분, 이런 예수님을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무슨 신학박사들, 󰡐아,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다󰡑 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런 예수님을 믿겠어요? 아마도 돌을 던지는 선봉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예수님이 훌륭하다고 인정받게 되고, 또 예수님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믿는 것입니다. 
고아와 같은 예수님, 방랑자 예수님,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던 예수님, 십자가를 지고 처량하고 비참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억울하고 분한 예수님, 남모르는 분함을 품고 속죄의 제물로 가셨던 예수님, 󰡐내 피가 죽지 않는 한 내 기도가 죽지 않을 것이요, 내 기도가 죽지 않는 한 내 소원이 죽지 않을 것이요, 내 소원이 죽지 않는 한 내 사정이 죽지 않을 것이요, 내 사정이 죽지 않는 한 내 심정이 죽지 않을 것이요, 내 심정이 죽지 않는 한 다시 찾아올 날이 있으리라󰡑 다짐하면서 재림을 약속하고 가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 먹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야 뭐 하나님이 다 주셨겠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소변도 안 보고 뒤도 안 보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물도 안 마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겠습니까? 󰡐오! 능치 못함이 없는 예수님󰡑 하는데, 그렇습니까?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권세를 굴복시키는 데 있어서 전능하신 예수님이에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4-59, 64.5.3)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이유
  
예수님은 30여 평생 동안 어떤 기도를 하였느냐? 󰡐하나님이여, 제가 이렇게 살더라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왕궁에서 사는 것보다도 더 좋습니다. 이렇게 까뀌질하고 대패질하고 사는 것이 왕궁에서 호강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소원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낙망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고 하나님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앞에 부모가 자기의 위업 등 모든 것을 상속해주었는데, 그것을 상속받은 아들이 자기는 하나도 갖지 않고 자기 형제에게 나누어주었다면, 부모가 그것을 보고 상속해준 자식을 불러다가 󰡐이 자식아, 내가 너에게 다 주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비참하게 살고 형제들에게 전부 나누어주었느냐?󰡑 하며 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당신의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고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당신의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행복을 노래하며 살아야 할 환경에서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 살더라도 선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 반대적인 가치로 하늘 앞에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낮은 자리에 들어갈수록 그 가치는 커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먹고 잘살아야 할 입장에서 못먹고 비참하게 살았던 것은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만민이 그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0여년의 생애 동안 그런 조건을 세워 나오면서도 슬퍼하는 하나님을 위로하던 예수님! 한 때를 바라보고, 말할 수 없이 혼란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로마의 압제 하에서 성전을 유린할 대로 유린하는 세력 앞에 안 나서려야 안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30년 동안 메시아로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만민이여, 나를 따라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 길을 출발할 당시에는 죽더라도 싸워야 되겠다고 몇백 번이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쫓아내니 그들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며 하류층의 사람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어부와 세리와 창기와 같은, 그 시대의 쓰레기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꼴이었으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원통했습니다. 또 답답하고 불쌍한 그들을 모아 놓고 세계를 수습하고 책임지라는 명령을 하고 분부를 해야 했던 예수님의 가슴이 얼마나 탔겠으며,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렇게 왔다 간 예수님은 지금까지 이 땅을 위해서 구원섭리를 해 나오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기도한다고 했는데, 편안하면 기도할까요? 만사가 형통한데 기도할까요? 예수님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4-60, 64.5.3)
  
  
예수님은 왜 재림해야 하나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목적은 전세계를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영육 안팎으로 완전복귀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냈고, 그것을 완결짓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복을 달라고 합니다. 가진 복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예수님은 복을 줄 수 없습니다. 세계 앞에 복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역사로 복을 준다면 모를까. 예수님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기에 동참시켜서 성과를 거두게 되면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축복의 기반은 닦아 나올 수 있지만, 그 민족이 축복받는 민족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축복받는 사도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도요, 수제자요, 세 제자라 해도 그들은 신부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사도는 종입니다. 신부의 자리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복귀의 한을 남기고 갔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 앞에, 이스라엘 앞에 역사적으로 책임 못 한 모든 것을 다시 수습해 나오면서, 한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한 가정이 고통을 받으면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대신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불쌍하신 분입니다. 역사 이래 제일 불쌍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천만 가지 고통과 비통한 사연을 예수님과 인연맺어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땅 위의 모든 성도들은 고통을 받게 될 때 반드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조건을 세워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수습하여 실패하기 전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복귀하기 위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깨져 버렸기 때문에, 영육이 아니라, 영적으로만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수습해야 했던 것입니다. 
4천년 준비하여 메시아를 맞았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영육 아울러 메시아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죄악에서 해방을 받아 지상에서 죄 없는 아들딸들을 번식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적으로만 이루어 놓았으니 오늘날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교생활이 무엇입니까? 육신을 치는 생활입니다.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금식하고 몸을 치는 것입니다. 몸을 사탄으로부터 갈라놓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날은 잔칫날인데 잔칫날엔 그냥 먹고 노는 것입니다. 슬프게 살기 위해서 신랑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랑을 죽였으니 슬프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사명으로 보아 불쌍하신 분이고, 시대적인 한을 품고 갔으니 불쌍하신 분입니다. 그는 또 역사적인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으니 불쌍하신 분입니다. 아직까지도 그는 한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육 아울러 주님과 상봉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이 아직까지 지상에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땅은 평면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대적인 환경은 종교의 자유를 주고 또 국가적으로 국교화를 실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낙원세계와 맞먹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적인 외적 기준이 영적인 기반에 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기준에 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이스라엘권을 다시 세우고 세계적인 유대교회를 세워, 오실 주님이 만민과 상봉할 수 있는 환경적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하나의 주권국가를 중심으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 입장에서 영육 아우른 통치의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의 날입니다. (14-62, 64.5.3)
  
  
예수님을 해방해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입장에서 책임과 사명을 해야 할 예수님, 이 땅에 왔다 간 이후 지금까지 2천년사를 짊어지고 속죄의 사명을 하고 있는 예수님은 불쌍한 분입니다. 언제 한 번 하나님과 함께 살아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산다고 나와 있어요? 기도하고 있다고 했지요. 언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여! 이제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옵고, 만국이 있사옵고, 만민이 있사옵고, 천하가 있사옵니다. 이는 본래의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선의 세계와 같사오니, 아담 해와의 승리의 기반 위에서 받아야 했던 영광을 나로 말미암아 받으시옵소서󰡑 해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 예수님은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를 보내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이 목적의 한 날을 맞지 못하고 슬픔의 한 날을 맞이했으니 불쌍하시구나! 이스라엘이 불쌍한 민족이 되었구나! 제1 이스라엘이 망하여 하나님의 축복권내로 다시 부활해야 하니 불쌍하구나!󰡑 하고 느꼈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 기도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느냐?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 가면 이스라엘 후손들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육 아울러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예수님이 원한을 품고 가니 후손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 후손들의 원한을 지상에서 탕감복귀해야 할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 위의 골고다 산정에 하나님의 한이 맺혀 있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이 맺혀 있고, 그 후손과 인류의 한이 맺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리적인 골고다의 길이 기독교에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가 개인적인 골고다, 가정적인 골고다, 종족적인 골고다의 길을 거쳐서 이제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2천년사를 바라보시며 우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 예수님은 역사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님이요, 시대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님이요, 미래적인 슬픔을 품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억울한 심정을 품고 간 예수님이었습니다. 골고다 산상에서 십자가를 때려부수고 원수들을 심판하고 총진격해야 할 예수님이 억울한 심정을 품고 죽어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서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여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시 몰리는 골고다를 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을 감당치 않으면 안 됩니다. 
신랑이 굶고 통곡하는 자리에 있는데 신부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신랑이 하늘 앞에 무릎을 꿇고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데 신부가 편안히 먹고 잘 수 있습니까? 오늘날 기독교는 어떠한 입장에 있습니까? 어느 한 날 편안한 날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민족적인 기준에서 한이 맺혔기 때문에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갈 때까지 기독교 역사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2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세계적인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출발할 때 3대 시험을 받아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3대 시험에서 승리의 조건을 세워 놓고 나가야 합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렇듯 불쌍하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슬퍼하신 것보다도 더 슬퍼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실 때는 4천년 역사의 한을 풀기 위해서였지만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하나님에게는 4천년의 한에다가 예수님이 죽은 이후 2천년의 한까지 플러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보다 더 슬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영계에 있는 천사들과 영계에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편안한 자리에 계신 줄 압니까?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주님, 천국 보내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쌍하신 예수님을 해방해드리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불쌍하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선조들로부터 󰡐너 하나만은 우리의 후손으로서 당당하구나. 전체 역사를 네가 일으켰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시대적인 사명과 민족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 효자와 충신의 사명을 다했구나󰡑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14-64, 64.5.3)
  
  
참된 신부로서의 자격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내가 40년 동안이나 믿고 기도하였는데…󰡑 하며 자신들이 신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신부가 되는 특정 기준은 무엇이냐? 첫째는 예수님의 개인적인 한을 품고 몸부림쳐 개인적인 승리의 증명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가정적인 한을 품고 세계사적인 시련노정에서 승리한 가정으로 등장하여야 하며, 종족적, 민족적인 기준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국가․세계․하늘땅․사탄까지도 󰡐옳소이다. 그는 천지의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한 아들입니다󰡑. 혹은 󰡐딸입니다󰡑 하며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알고 있는 신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며느리가 되겠다고요? 하나님의 사위가 되겠다고요? 황태자의 신부가 되겠다고요? 세상에서는 대통령의 아들딸만 되어도 으스댑니다. 돈 몇 푼에 사람이 팔려다니는 세상입니다. 몇백 원만 주어도 사탄의 심부름을 하는 세상입니다. 얼마나 더럽습니까? 돈을 몇백만 원, 몇천만 원, 몇억 원만 가지고 있으면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하며 따라다니는 판국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개인을 수습하여 만민을 호령할 수 있고, 가정을 수습하여 수많은 가정을 호령할 수 있고, 흩어진 종족을 수습하여 수많은 종족을 호령할 수 있고, 수많은 국가와 세계 인류를 호령할 수 있는 승리적인 권한을 갖고 하나님 앞에 공인받고 사탄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인 모든 인연을 거치는 자리에서 하나님 입회하에 사탄으로부터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부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처해 있으되, 하나님께서 섭리해 오신 6천년 눈물의 역사를 청산하고 그 방향을 바꾸려는 사람이요, 6천년 역사의 십자가의 기대를 연결시켜 밟아 나오려는 사람이요, 6천년간 인류를 농락한 사탄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만 예수님의 참된 제자입니다. (14-67, 64.5.3) 
  
  
2. 승리적 이스라엘권
  
  
선민사상이 나오게 된 이유
  
오늘날까지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희생과 부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승리의 한 날을 찾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면서 희생해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부 총합 계승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수천년 역사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희생하여 온 총체적인 가치를 어떻게 오늘날 내 일신에서 총합해 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역사를 책임진 우리들의 과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개인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가정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혹은 종족․민족․국가․세계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개인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수많은 가정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고, 수많은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종족이 수많은 종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 되고 수많은 민족․국가․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라볼 때 그 민족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민족, 수많은 나라들이 이런 민족을 바라 나왔다고 하며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은 이런 관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개인의 승리는 물론이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그것을 바라보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가 보게 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승리적인 개인, 승리적인 가정, 승리적인 종족, 승리적인 민족, 승리적인 국가를 표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선민권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 이 선민의 가치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역사적 동기의 중심이 되고, 과정의 중심이 되고, 결과의 중심이 되는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기서 그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느냐 못 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못 해서 역사노정에서 거듭되는 숱한 탕감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 이스라엘이 제2 이스라엘로, 제2 이스라엘이 제3 이스라엘로 그 사상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목적 기점을 향하여 발전해 나온 것이 복귀사(復歸史)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3 이스라엘임을 표방하고 나가는 우리는 역사상 어떠한 국가보다도, 세계의 어떠한 무리보다도 새로운 선민사상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참된 길은 유일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35-328, 70.11.1)
  
  
야곱을 중심한 이스라엘권의 출발
  
이스라엘! 그것은 이겼다는 말인데 누구를 이겼다는 말이냐? 사람이라면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이겼다는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를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남녀가 가정이라든가 환경을 이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야곱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이 21년 동안 하란 땅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도중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한 그 날부터 이스라엘권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천사는 타락한 천사장 대신 존재입니다. 타락은 뭐냐? 인간이 천사장한테 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요 복귀라는 말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간이 천사장을 대신한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의 본질적인 포부가 무엇이었던가? 에서의 장자 직분을 사 가지고 도망간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한 것을 알고 그 하나님편에 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자 했고, 또 누구보다도 그런 가정을 사모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보면 비인륜적인 내용이 엮어져 있지만, 섭리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야곱은 21년 동안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하란으로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게 된 심적 요인이 무엇이었느냐? 새로운 가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가정은 자기 혼자의 가정이 아닙니다. 에서의 가정과 아브라함 일족을 중심삼은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한 족속을 중심으로, 그 일족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판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갖고 돌아오는 길에 천사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얻게 된 요인은 야곱의 일가가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축복해준 일족이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면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서 그 일족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탄세계는 일족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러면 일국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일국을 빼앗기게 되면 세계가 문제 되고, 하늘땅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은 일족의 승리 기반을 위해 야곱은 싸웠습니다. 그런 야곱에게는 자기의 재산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의 종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일족이 잘살고,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가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의 뜻을 이어받아 승리한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민족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창성할 것을 축복했기 때문에, 야곱은 그 뜻을 받아 세계 만민이 하나님의 권속이 될 것을 바라면서 싸움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야곱은 먼저 사탄을 대해 이겼습니다. 그 다음 야곱은 자기 일가, 즉 야곱을 비롯한 열두 아들딸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야곱 가정은 물론이지만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의 승리적 발판을 요구하는 데서 이스라엘의 축복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대하게 되면, 앞으로 크나큰 하나의 세계, 하나님의 이상을 향하는 하나의 승리적 민족으로서, 하나의 이상세계로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민족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했던 본의입니다.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소명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둘이 합해 이스라엘권은 출발을 본 것입니다. (168-301, 87.10.1)
  
  
이스라엘을 택한 하나님의 뜻은 세계와 전인류를 위한 것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키워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회-유대교-를 형성했습니다.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거쳐서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주마. 너희들이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더라도 메시아를 맞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약속한 메시아사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잡혀가서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중 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복귀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후 민족을 재정비해서 성전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말라기 선지자 때에는 그를 중심삼고 내적으로 이스라엘 교단을 정비하고 외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정비하기 위한 놀음을 했습니다. 400년에 걸쳐 메시아를 맞게끔 하나님이 그렇게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맞도록 한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민족에만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메시아는 지상세계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영계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성은 사탄이 지배하게 되었고, 영계에는 지옥이 생기게 되어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판도는 지상지옥 세계와 천상지옥 세계까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지상지옥도 천상지옥도 생겨나지 않고 하나의 이상적 천국으로서만 귀착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두 세계에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걸 넘어가야 됩니다.
그 길을 넘어가려면 이스라엘 사람과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길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그러면 택해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단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그것은 우주적인 길입니다. 사명이 우주적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민족이 택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특정 민족만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가 있고, 유교가 있고, 힌두교가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가 많다 하더라도, 이 종교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로 가야 된다, 전세계의 인류가 전부 다 갈라져서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된다, 종교와 종교가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상이 있음과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이면 그 민족에게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을 규합해 가지고 하나로 만들어 끌고 갈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실현은 세계적이요 인류적이기 때문에, 그 창조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 내용을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갖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168-303, 87.10.1)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 제1 이스라엘의 특권민족사상
  
그때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서 식민지와 같은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은 택한 민족이기 때문에 메시아만 오면 일시에 로마를 타파해 버리고 세계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전부 굴복시켜 밟고 마음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오시는 메시아는 권능을 가지고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특권적 세계기반을 갖춰 모든 주체적 행사를 할 수 있겠다 하는 소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건 세계 전체를 자기들 앞으로 결속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전부 희생시키더라도 자기들이 중심이 되어 높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조그마한 나라요, 이스라엘 교단은 작은 교단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단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 만들려고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로 끌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세계로 향하는 길을 가지 않고는 세계를 연결시킬 수 없고, 이스라엘 교단이 세계 종교에게 주는 길을 취하지 않고는 세계의 교단을 묶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선택받았다는 유대교는 인류를 하나로 포섭하고 종교를 포섭해 가지고, 내적 상징인 종교와 외적 상징인 나라가 하나되어 전세계를 하나로 묶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오시는 메시아는 이스라엘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이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아시아의 인도와 불교, 유교와 중국 등 외적인 환경을 수습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동방에 있는 세계적인 큰 종교권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하나님도 느끼고, 예수님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원수인 로마 제국까지도 구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교단은 로마나 동방이나 전부가 궁극에는 자기들의 종과 같이 되어서 자기들을 받들어 섬길 수 있게 만들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권이 승리하고 나서는, 세계적 판도에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전체 종교적 판도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는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종단을 희생시켜서라도 동방의 수많은 종교권, 헬레니즘을 중심삼은 로마권까지도 포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모든 교법사들이나 제사장들의 생각이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주님만 오게 되면, 자기들을 최고의 자리에 내세우고, 자기들이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마음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세계적인 섭리입니다. 구원섭리는 만민을 위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특정 종교권내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고 만국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입니다.
만국을 해방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만종교를 규합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뜻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종교에 결속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에 메시아가 왔는데 어찌하여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가 메시아와 하나 못 되었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간곡한 마음으로 이적기사를 행하면서, 그 환경 전부를 움직여 안 따라가려야 안 따라갈 수 없는 환경적 여건으로 몰아넣어서라도 그들을 이끌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잡아죽였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그때까지 신앙을 하던 교회, 이스라엘 나라를 지도하는 유대교 자체가 특정 민족을 중심삼은 종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특정 민족이라 해도 그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은 특정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특정 세계가 뭐냐?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권에 언제나 화합할 수 있는 국가가 편성되고 민족이 편성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본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단을 희생시켜서 유대나라를 바로 지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와 유대교단을 희생시켜 세계를 바로 인도해야 됩니다. 세계적 국가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국가이기 때문에 자기 일족,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민족을 초월해서 세계 민족을 포괄할 수 있는 사상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1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지 못한 원인은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은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을 생각하고 이스라엘 교단만을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교단, 자기 민족이 제일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과 자기 교단이 󰡐제일󰡑이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보고 있는 󰡐제일󰡑과 일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을 제일로 보고 있고, 이스라엘 교단을 희생시켜 수많은 종단을 하나 만드는 것을 제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종단과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종단을 하나로 만드는 세계적 기준에서 하나되어, 영계에 있는 지옥까지 해방하려는 움직임이 지상세계에 있기를 하나님과 메시아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신앙의 중심으로 준비한 메시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세의 율법 이외에는 몰라. 이것이 제일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갈라진 북조 10지파와 남조 2지파의 싸움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알았지만, 구약성경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성경 가운데 파묻혀 그 밖을 바라보지 못하는 교단이 되었고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1 이스라엘이 실패한 요인입니다. (168-304, 87.10.1)
  
  
세계를 구하기 위해 특정국가를 선택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잘 압니다. 여기서 세상은 세계입니다. 세상이라고 해서 할아버지 시대에 살 수 있는 세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대 전의 할아버지나 수십 대 후의 후손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를 합해서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교파를 믿으면󰡑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상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세계 구원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세운 목적도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 주류국가로서 이스라엘 나라가 있으면 이스라엘 나라는 더더욱이나 선두에 서서 세계 구원에 앞장서고, 하나님의 이상에 부합될 수 있는 상대적 기반을 세계에 펼쳐야 될 텐데 전부 이스라엘권만을 중심삼고 뒤넘이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마 교황청이 세계를 수습해야 하는데, 이태리 반도를 중심삼고 이태리 민족을 넘어서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이루어진 법이 사방으로 통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을 닦았지만 세계를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해야 할 일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상을 중세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가졌으면 그때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영국에 다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국에 해질 날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세계적 판도를 맡긴 것도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구도의 길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민족이 되기를 바라고 앵글로 색슨민족에게 세계를 전부 맡겼지만 그들도 역시 영국이라는 나라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백인을 위주한 나라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교와 신교의 싸움이 벌어지니, 구라파에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민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새로운 나라를 이루자고 해서 세운 국가가 미국입니다. 그것은 벌써 민족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신교 독립국가입니다. 영국을 위주로 해서 불란서, 독일 등 인접 국가들이 과거에는 전부 원수들이었지만 이때부터 비로소 신교를 중심삼고 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들이 미국 땅의 필그림 파더들(청교도)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바라던 것은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2백년 기간 내에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종교를 세운 목적이 세계를 구하는 것인데, 미국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미국에 와서 자기들의 문화를 창조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니 하나님의 뜻, 즉 전세계를 구하는 사명적 책임을 망각해 버리고 미국제일주의로 흘러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희생시키더라도 미국이 살아 남아야 되겠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비로소 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하나의 판도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때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기독교를 통해 형성된 미국 문화를 중심삼고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때 미국 국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냈던 본의를 깨닫고, 미국 나라와 미국 교회가 희생하더라도 세계를 구도해야 되겠다는 자리에 섰더라면 오늘날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 저와 같은 비참상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되었느냐? 미국은 제2 이스라엘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미국이 제2 이스라엘권에 살아 남으려면 미국을 위주한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미국을 위주한 미국 국민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제2 이스라엘권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서 모든 종교를 규합해야 합니다. (168-308, 87.10.1)
  
  
제2 이스라엘인 미국이 망해가는 연유도 미국제일주의 때문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 하는데 누가 그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포괄하고 모든 종교를 포괄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배타적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지상세계는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은데, 하나님이 볼 때 꼴사나운 것들은 전부 태평양 바다나 지옥에 집어넣고 싶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여러분의 조상이 한 사람이나 남았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종교가 필요한 것은 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니 복귀니 하는 말은 종교를 중심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렇게 가면 망합니다. 왜 망하느냐? 하나님의 뜻은 세계 시대가 오면 세계를 포섭할 수 있는 이상권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메시아적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도 세계와 만종교를 포괄하고 만민을 포괄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배타적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배타적이 아니라 포용적입니다. 환영적이고 관용적입니다.
오늘날 제2 이스라엘권인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은 받았지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를 다 상실하고 망해 들어가는 자리에 선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미국 국민 제일주의, 기독교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제일주의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중심삼고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데는 세계를 구도하고 나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이 세계 만민을 해방시켜 놓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 나라의 권속으로 만들어 놓고 제일주의라고 해야 됩니다. 세계를 다 버리고, 수많은 종교를 다 희생시켜 버리고 󰡐기독교 제일주의! 미국 제일주의!󰡑 하는 것은 안 통합니다. 하나님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하나돼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불교, 유교, 힌두교, 그 다음에 조로아스터교 같은 종교를 전부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을 중동권내에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님이 종교권을 수습해서 동양을 중심으로 한 판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몸뚱이를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거꾸로 갔습니다. 로마로 들어가서 세계를 일주하고 다시 동방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영국을 거치고 미국을 거쳐 2천년 걸려서 이제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돌아 들어오는 데는 그냥 들어오지 않습니다. 탕감복귀 원칙에 따라 그와 반대의 경로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영국 같은 나라에 해당하고, 영국으로 가기 전의 로마와 같은 반도가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여건을 중심삼고 그 시대에 책임 못 했던 것을, 세계 판도에서 실수했던 것을 대신 탕감해서 청산지었다 할 수 있는 기반을 거치지 않고는 사탄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겠기에 탕감이라는 원칙을 중심삼고 그러한 노정을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168-310, 87.10. 1)
  
  
제3 이스라엘로 선택받은 한반도의 섭리적인 입장
  
앞으로 세계는 아시아를 중심삼고 움직일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의 몸과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되었더라면 아시아 판도를 중심삼고 힌두교를 흡수하고, 불교를 흡수하고, 유교를 흡수하고 중동에 있는 종교들을 전부 흡수해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종교문화권을 만들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로마를 흡수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종교 기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의 몸뚱이를 가져갔습니다. 로마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걸 찾으려니 거꾸로 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희망과 이상권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라와 교단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입장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의 발판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발판도 잃어버리고 비참한 무리가 되어 로마로 찾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4백년 간 피의 대가를 치러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한 바퀴 돌아 섬 나라를 거쳐 로마와 같은 반도의 나라로 이동해 온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영국과 같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래서 일본 문화는 영국 문화가 이동해 온 것입니다. 
한반도는 로마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역사시대에 모든 종교와 인류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수습해 가지고 통일적인 세계와 통일적인 천국을 건설하는 책임을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반도를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이던 교황권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종착점 시대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배경을 중심삼고 남북이 통일돼 가지고 자리를 잡고 들어설 때에는 세계의 종교를 움직이고 세계 만민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종교권이 현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민족권, 국가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타락은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북쪽은 유물론으로 물질 위주이고, 남쪽은 유심론으로 마음 위주입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몸과 마음을 뿌려 놓은 것이 전세계적으로 결실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공산세계와 민주세계 둘 다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제3 이스라엘권 형성을 위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제3 이스라엘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민족을 가만히 보면, 5천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내 왔지만 이 민족은 특수한 민족입니다. 누구한테 지배받기를 싫어합니다. 어디든지 가서 자기가 대장 노릇 하려고 하지 누구를 섬기고는 못 삽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조그만 나라가 무슨 미국놈, 일본놈, 중국놈, 소련놈, 전부 다 놈입니다. 남을 놈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양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민족이 가져야 할, 자랑해야 할, 남들을 놈이라고 할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이냐? 특권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사상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상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상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내세웠으니 종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8-312, 87.10.1)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세계를 해방해야 할 통일교회
  
제2 이스라엘권은 기독교문화권이 기반이 되었지만 제3 이스라엘의 전통적 기반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이 다른 것은 제2 이스라엘권의 미국이 실패한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제3 이스라엘권의 통일교회 패들은 하나님의 생각과 메시아의 생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세상을 사랑해서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를 해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종교와 싸우면 안 됩니다. 지금 불교는 불교대로 담을 치고, 유교는 유교대로 담을 치고,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담을 치고, 기독교는 그 안에서 수백 교파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종교를 통해 그것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불교든 유교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 말씀을 듣게 되면 그냥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영계를 통하는 자라면 대번에 깨닫게 됩니다.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이 통일교회 사상을 통해 제3 이스라엘을 편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문선생이라는 사람, 문총재라는 사람은 세계 만민을 규합해서 제3 이스라엘권을 편성하려는 천의(天意)에 따라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는 단일민족을 중심삼은 교회가 아닙니다. 세계민족,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권속을 중요시하는 것이지 백의민족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의민족을 택했으니 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만민을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승리적 이스라엘권󰡑이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대해 승리하고 세상의 모든 종교를 대해 승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려면 제3 이스라엘권은 누가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이상 노력해 가지고 이것을 소화해야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강제가 아니라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8-314, 87.10.1)
  

3.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 
  
예수님이 이단자(異端者)의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는 사명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어 4천년 동안 믿음과 고난으로 길러 오셨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그런 사명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을 잡아죽이기 위해서 4천년 동안 유대교를 준비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잡아죽이는 악한을 만들려고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맏아들의 권세(權勢)를 갖지 못하고 아벨적인 자리를 가졌던 분입니다. 맏아들의 권세, 즉 장자의 권위를 부인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벨적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외적인 가인권(이스라엘 민족)이 아벨권(예수님)을 물고늘어지게 되면 아벨권도 할 수 없이 끌려들 수밖에 없게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운의 역사가 연출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함으로써 아벨적인 소외된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서조차 󰡐여인이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뼈아픈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압니까? 아무도 그런 내용을 밝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인편이 되었으므로 아벨적인 예수님은 유대교의 원수가 되고, 유대교인들과 백성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로마에 대해서는 혁명가의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인권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뜻을 다 이뤘다면 이런 기도를 했겠어요? 예수님은 뜻을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기를 얼마나 갈구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와 하나된 민족의 형성을 간절히 바란 예수님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제1 이스라엘은 망하고 기독교가 제2 이스라엘로서 그 상속권을 인수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국가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하나님은 제2 이스라엘인 전세계 기독교 신자를 통해 2천년 동안의 섭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110-226, 80.11.18)
  
  
예수님의 사명과 유대민족의 책임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유대교를 하나로 통일하고, 유대의 종족과 민족을 통일하고, 그와 동시에 옛날 가나안 복지에서 편성된 12지파의 후손들이 살던 아랍권을 통일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갈 길은 통일된 하나의 종교를 중심삼고 종족과 민족,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사명인데도 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3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33세에 죽어야 할 분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인간을 구하고 세계를 구해서 만왕의 왕이 되어야 하는 분이었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다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당시 유대민족이 예수님과 하나만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뜻은 그때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주변정세를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대국가인 로마 제국은 피폐되어 내적으로 점차 붕괴해 가고 있었으며,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정세였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또 당시의 동양에는 불교를 중심한 인도문명권이 있었고, 중국에는 유교를 기반으로 한 중화문화권(中華文化圈)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유대교를 하나로 통일했다면 그 이후에는 불교문화권과 유교문화권으로 갔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이스라엘에서 환영했다면 예수님의 사상이 손쉽게 중동지역과 인도지역을 거쳐 극동에까지 전파되고, 한편으로 로마제국과 전유럽을 장악하여 예수님 당대에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갈 길은 종교를 따라가야 하는 길이었으므로 그때 예수님을 중심으로 12개 지파가 단결만 할 수 있었으면, 유대교와 유대민족을 중심으로 아랍권이 손쉽게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 통일된 아랍권을 기반으로 해서 로마제국을 수중에 넣고, 서구 유럽과 아시아의 전역을 소화해서 명실공히 예수님을 중심한 새로운 종교문화권을 정립하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될 수 있었던 시대가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설사 로마제국이 반대해서 로마제국과 대적하게 됐다 하더라도 인도 중국 등의 불교와 유교의 종교문화권을 중심한 동양의 강국으로부터의 협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 당대에 세계 통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죽였기 때문에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110-228, 80.11.18)
  
  
하나님과 메시아의 뜻을 몰랐던 유대민족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왔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메시아를 몰라봤습니다. 왜 메시아를 못 섬겼느냐? 간단합니다. 메시아의 뜻은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구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세운 것은 이스라엘 민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통일교회를 택하신 것도 통일교회를 위해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세계를 위해서 택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독교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독교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해서 온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독교만의 메시아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민의 메시아인 것을 모르고 있는 기독교는 망합니다. 예수님한테 발길로 차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메시아가 자기 일국의 왕으로 나타나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동양을 제패해 자기 일국이 영광 가운데 천하의 복을 받을 줄 알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 민족을 제물삼고, 메시아 자체도 인류를 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심어 전부 동화시킨 후에야, 인류를 위하고 난 후에야 영광의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소원과 하나님과 메시아의 소원은 방향이 엇갈렸습니다. 하나님과 메시아의 뜻은 세계를 구하고, 인류를 구하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나라를 위하고, 선민을 위하고, 선민 역사를 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상충이 벌어졌습니다. 메시아를 보니까 꼴이 안됐거든요. 그러니 유대교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반대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지지를 받고, 로마를 통치해야 할 터인데 몰골을 아무리 봐도 자기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메시아의 목적관에 상충됨으로 말미암아 뜻을 받들고 목적을 이어받아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여기서 탈락되어 세계에 없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리고객이 되었습니다. (81-236, 75.12.28) 
  
  
이태리 반도로 옮겨진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유대교를 애써 만들고, 동양에 불교와 유교를 만들었겠습니까? 메시아가 강림한 뒤에 방계적인 입장에서 메시아를 협조할 수 있는 간접적인 기반을 이뤄 놓기 위해 세계 전역에다 종교문화권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가 그런 시대적인 배려까지 한 하나님의 섭리를 외면하고 예수님을 불신했기 때문에 유대민족은 역사상 유례없이 2천년 동안 피 흘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4백년 동안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탕감역사를 통하여 로마제국을 중심한 기독교문명권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이스라엘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축복은 이태리 반도로 옮겨갔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예수님의 몸과 마음이 갈라졌습니다. 그렇게 되어 그 이후의 문화권도 육신의 문화권인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헬레니즘과 마음의 문화권인 신본주의(神本主義)의 헤브라이즘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을 사탄이 취하게 되고 문화의 발전이 거꾸로 출발하게 됨으로써, 당시에 예수님의 몸과 같은 역할을 한 로마가 먼저 헬레니즘을 받아들여 사탄주관권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4백년 동안 박해를 받게 됩니다. 4백년 동안 이태리 반도를 중심삼고 기독교문화권을 형성해서 여기서부터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길을 닦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그러나 기독교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하나의 기독교문화권으로 묶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로마에서 4백년 동안 박해와 순교의 피를 흘리는 대가를 치르게 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로마인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는 터 위에 비로소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을 받게 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 기독교의 봉건사회(封建社會)가 오게 되는데, 그 당시 교구장(敎區長)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기독교의 사명은 세계를 구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교파주의와 교권주의(敎權主義)에 머물러서 민족과 국가조차 초월하지 못했습니다. (110-229, 80.11.18) 
  
  
유대교와 로마 교황청이 멸망한 이유
  
유대교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못한 것은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당장에 로마를 정복해 버리고 이스라엘이 세계를 재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과 그 주변의 제국을 전부 때려부숴 이스라엘의 발 아래 두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세워 그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로마와 그 주변국가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국가 안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국가를 넘은 하나님의 뜻이요, 교파 안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교파를 넘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은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비운의 역사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뜻은 사탄에게 빼앗긴 입장이 되었고, 외적인 문화권은 반대로 흘러가 서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사명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넘어 세계를 구하는 것이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교파주의, 교권주의 이하로 전부 휩쓸려 인본주의 사상권에 접촉할 수 있게끔 돼 버렸습니다.
그때 만약 로마제국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세계를 구하려고 나섰다면, 로마는 일시에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로마제국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은 교권주의 세계 제패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개인을 사랑하사󰡑가 아니고, 󰡐기독교를 사랑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그 세상에는 로마도 들어가고 다 들어갑니다. 
메시아를 맞아 세계를 구한 후에야 후세 만민이 찬양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세계 제패의 중심국가로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오자마자 세계적인 국가로 등장시켜주기를 요구하면서 세계를 다 자르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죽인 동기가 나옵니다. 로마 교황청이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아 로마를 중심삼고 세계를 통일하지 못하고,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세계를 기독교문화권에 완전히 묶지 못한 것은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110-230, 80.11.18)
  
  
이태리에서 영국으로 옮겨진 하나님의 축복 
  
로마의 교황청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은 필연적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이 축복을 거두어 감으로써 중세의 암흑시대가 초래되고 기세당당한 교황청의 권위와 위신은 인본주의 사조(人本主義思潮)에 휩쓸려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판국에 하나님은 신교운동을 일으켜 다시 세계 구원의 길을 닦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교에 반기를 들고 의회를 움직여 법을 개정함으로써 마침내 성공회를 세우게 된 영국의 헨리 8세를 통한 영국 신교운동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로마를 떠나 영국으로 옮겨져 영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구원의 섭리를 전개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가 해양정책을 강화하여 급진적으로 그 판도를 넓혀 󰡐오대양 육대주에 해지는 날이 없다󰡑고 할 만큼 세계적인 강국의 판도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영국으로 하여금 이처럼 문명의 극치를 누리며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린 것은 영국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려는 깊은 뜻에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영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영국의 세계적 기반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하나님 앞으로 구원하시고자 했던 축복이었습니다. 만일 영국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이상적 국가를 꿈꾸고 나선 청교도들과 신교운동자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뭉쳐 명실공히 세계 구원의 초석을 이루고, 밖으로는 수많은 식민지 기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펼쳤더라면, 영국은 틀림없이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세계를 하나님의 뜻 앞으로 구원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영국은 그러한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영국 자체만의 이익을 위해서 식민지를 착취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세계를 구하려는 영국이 되지 못하고 영국만을 위해 세계를 이용하는 한편, 영국의 교회도 세계 구원을 하려고 하지 않고 교권주의에 물들어 국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신앙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고 청교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로써 영국을 중심삼고 세계를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벽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왕권의 전제주의와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는 감독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고, 신앙의 순결을 주장하던 퓨리턴들이 영국과 싸우다가 생명을 내걸고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갑니다. 종파와 국가 이념을 초월한 이들 퓨리턴은 하나님주의의 신교(新敎)를 중심으로 미국을 개척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상국가를 추구했습니다. 신앙조차 억압받고 구속받는 조국에서의 삶보다, 마음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나아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이상국가를 만들려는 입장에서, 유럽 곳곳에서 신교운동을 부르짖던 이들이 힘을 합해 미국을 개척하고, 영국 못지않은 종교적인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신교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아벨권을 규합함으로 말미암아 세계 기독교 가인권(舊敎)을 대항해서 세계 기독교 아벨권(新敎)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아벨적인 신교를 통해 장자인 천주교를 복귀해야 하는 섭리가 펼쳐지게 됩니다. (110-231, 80.11.18)
  
  
영국의 성공회와 청교도운동 
  
여러분은 헨리 8세를 중심삼고 일어난 앤 블린(Anne Boleyn)사건을 알 것입니다. 헨리 8세가 아들이 없기 때문에 아들을 낳기 위해 이혼을 하려는데 거기에 별의별 반대가 벌어진 것입니다. 구교에서 반대하니까 이혼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 법적 조치를 했고, 구교에서 탈퇴해 앵글리칸 처치(Anglican Church;성공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신교 풍조 가운데 영국이 새로운 무대가 되어 국가적인 기반 위에서 신교를 포섭할 수 있는 좋은 찬스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신교 지지자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조약 33개 조에 의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칼빈주의 사상을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해양권 제패라는 정책을 세우고 스페인이 해양권에 개입할 수 없도록 기반을 닦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국은 일대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모든 복을 인계받은 것입니다.
그때 헨리 8세를 중심삼고 3대에 걸쳐 서구라파에 있는 신교를 전부 포섭했더라면, 신앙의 자유의 왕국으로서 형님 나라가 되고 어머니 나라가 되어 신앙의 자유를 찾는 구라파인들을 전부 소화 포섭했더라면, 그야말로 영국이 유나이티드 킹덤, 통일왕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초민족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은 왕국을 이루어 세계제패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수백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에 해지는 날이 없는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섬나라 영국, 해적단 괴수들이 되었던 그 민족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전통적인 사상의 행로를 바로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영국 민족을 세워 축복해줬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하나됐다면, 미국은 안 나옵니다. 영국이 인도 같은 나라를 3백년 동안 착취하고 자기 예속국가로 저렇게 만든 것은 하나님 뜻과는 배치(背馳)된 것입니다. 당시 아시아 제국까지 전부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판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국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교와 합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세계를 구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독교사상을 받들면서 만국 구원을 위하여 총진군하였다면, 영국은 세계적인 문화를 창건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교도, 청교도들이 의회를 개조해 놓고 헨리 8세의 불순한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앵글리칸 처치를 반대해서 확청운동을 일으켜, 하나님이 이상 하는 새로운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그 분회를 깨치고 이상적인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 일으킨 운동이 청교도운동입니다.
청교도들이 탄압을 받아 갈 길이 없으니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자유의 천지를 찾아 나선 곳이 미 대륙입니다. 청교도운동을 반대하니, 서구에 있는 모든 신앙의 자유를 찾으려는 프로테스탄트, 즉 신교운동자들은 전부 반발하여 결속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결속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천지 미 대륙에서 결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1-239, 75.12.28) 
  
  
기독교의 2천년 역사를 탕감하기 위해 축복받은 미국
  
하나님의 역사적인 대운세를 몰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무리가 미국을 향해 이동해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 인디언들이 그 무리를 반대하니 하나님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인디언 땅을 제패하고 새로운 천지를 만들기 위한 축복을 하나님이 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 7족과 같은 인디언들이 그들을 환영하였다면, 그 인디언들은 시대적인 영광과 복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반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멸족을 당했습니다. 씨알머리도 없는 멸종 상태가 됐습니다. 학살도 당했지만 많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섭리사적으로 보면 그렇게 풀이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찌하여 이 인디언을 학살한 서구의 이민족을 축복해서 세계에 없는 부국으로 만들었느냐? 그건 역사가가 아무리 연구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들어야 압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선의에 입각한 퓨리턴, 필그림 파더들을 중심삼고 결속됐습니다. 신대륙을 중심삼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민족이 결속됐습니다. 그래서 초민족적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는 구라파 제국의 국경을 중심삼은 민족 감정을 해소해야 된다󰡑 하며 초민족적인 결속을 하여 하나님이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한 나라,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는 무리가 결국 독립군을 일으켜 영국을 대항해 싸웠습니다. 
지금부터 2백년 전의 영국 세력은 천하무적이었습니다. 그 대영제국이 큰소리치면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무기도 없는 독립군 일당이 대영제국과 대항해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꿈같은 일입니다. 조지 워싱턴이 잘나서 이긴 게 아닙니다. 초민족적으로 결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는 뜻이 있으니, 새로운 세계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선택한 자리에 섰으니 그 미국이 2백년 동안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2백년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가 실수한 것을 재차 정비하는 기간입니다.
성경을 보면󰡐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돈과는 상관없었습니다. 전부 버리고 도망다니면서 발전했는데, 그 미국이란 나라에 왜 물질적인 축복을 해줬느냐? 보십시오.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입니다. 몸뚱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을 위주해서 발전해야 되는데, 로마를 통해서 세계 제패를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영적 기준을 중심삼고 외적인 국가와 단합해 세계를 제패해야 하는데 못 했고, 영국을 중심삼고도 못 했으니, 3차까지 와서 미국에서 성사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3차 만에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 기독교문화권을 이어받아 가지고, 로마가 실패했고 영국이 실패했으니 이제 미국이 3단계 만에 성사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 예수님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육적 분야에 해당하는 동양문명권을 포섭하지 못한 것을 세계를 일주해 다시 포섭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일주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기독교가 서구 로마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책임을 못 해서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나라의 복을 빼앗아 갔으니, 로마에 들어가 싸워서 그걸 다시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반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서구문명, 기독교문명은 영적 문명권을 중심삼고 미국에 가서 일대 세계적인 축복을 다 흡수했습니다. 2백년 전 초민족적인 국가로, 하나의 자유적인 신앙이념을 중심삼은 신교 독립국가로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혼합민족으로는 나라가 형성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용케도 나라가 형성됐고, 망할 수밖에 없는 민족적인 속성인데도 불구하고 용케도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건 미국 사람들이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서구라파의 구교라든가 기독교문명권내에 잘난 사람이 있으면 미국은 이를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흡수합니다. 이것이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특이한 성격입니다. 세계적인 성격, 초민족적인 민족성을 포괄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기독교사상을 부활시켰기 때문에, 신교 독립국가로서 세계 최후의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미국이 등장한 것입니다. (81-240, 75.12.28)
  
  
미국은 서구문명을 결실해 동양으로 연결해야
  
미국은 그 축복을 언제 이룰 것이냐? 사탄한테 잃어버린 것을 찾아와야 된다 이겁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실패했고, 그 다음에 영국에서 실패했습니다. 이제 미국에서 영적 기독교는 세계적 영적 이스라엘 나라, 제2 이스라엘 나라나 유대교와 마찬가지 형태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유대교는 영육을 중심삼은 국가로서 그 가운데서 메시아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영적 세계인 기독교왕국의 형태를 갖춘 것이 지금의 미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백년 동안에 기독교가 잃어버린 것을 전부 재창조해야 됩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지요? 2천년간 잘못한 것을 2백년에 탕감하든가 20년에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나 2년에는 안 됩니다. 소생․장성․완성, 3단계 원칙입니다.
미국은 서구라파의 문명을 결실시키는 하나의 결실지로서 기독교의 총합적인 결실체요,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제2 이스라엘권으로 세계의 축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육적인 축복,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야 되느냐? 이것은 반대입니다.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구는 물질적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서구가 갈망하는 것은 지금까지 정신적인 면에서 물질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 기독교문명인데, 예수님이 승리하려면 죽지 않고 몸과 같은 문명권인 동양 제국을 흡수하여 통일적인 형상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문화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문화권의 출발은 육적인 문화권의 축복을 겸해야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서구문명이 추구한 것입니다. 동양문명은 반대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물질적인 것을 버렸습니다. 정신을 위주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물질을 버려야 됩니다. 동양 제국은 서구문명의 지배를 받습니다. 지배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사탄편에 가서는 안 되겠으니까 하나님의 영적 주관권내, 기독교문명권내에서 전부 인계시키는 것입니다. 서구문명의 결실의 종착점은 미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아시아에 연결됩니다. 아시아에 연결돼야 합니다.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81-243, 75.12.28)
  
  
4.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섭리노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온 수많은 지도자, 선각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치러 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이 이상 하는 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중심적인 사명을 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언제나 그 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온 역사상의 우리 모든 조상들은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선 용사들이었습니다. 자기 가정, 고향산천 그 무엇도 다 버리고 하나님만을 남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대표하는 그런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을 대표하는 그런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느냐? 한 개인을 구하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뜻이 되겠지만, 그 개인이 개인만을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되 세계를 위해서 구원받겠다는 그런 개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대표자를 원하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가정의 대표자로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민족의 대표자를 세우되 그 단일민족만을 위하는 민족의 대표자가 아니라, 세계의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세우고 싶을 것입니다. 국가의 대표자를 세우되 세계 국가를 구해줄 수 있는 사명을 가진 대표자를 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 신자들은 메시아가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올 줄 알고 있다가 메시아를 못 맞았습니다. 메시아가 유대교인들을 완전히 하나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온다는 사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이 상치(相馳)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야곱 같은 사람은 가정적 대표자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은 민족적 대표자입니다. 국가와 세계의 대표자로 와서 세계를 구하는 중심적인 사명을 이어받은 분이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교파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파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예수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관과 일치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모르고 󰡐우리 가정만 구원받으면 돼. 우리 민족만 구원받으면 돼. 우리 나라만 구원받으면 돼󰡑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이상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자리에서 보게 되면, 내가 개인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원받아야 되고, 가정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종족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위해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나라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기독교인을 한 5억으로 잡는다면 세계 인구가 35억쯤 되니까 세계 인구의 7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도 데데한 사람들을 다 걸러내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십만도, 몇만도 안 된다고 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믿는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구해주고 나머지 30억 인류를 다 죽이겠어요? 그런 허황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세운 것은 그 교회를 구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 교회를 넘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제2차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습니다. (69-100, 73.10.21)
  
  
미국의 선조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신대륙에 건너온 동기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미국의 조상들이 걸어간 전통적인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그때에는 부패하고 교권과 교조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세계는 다 집어치우고 자기들 권력, 자기들이 닦아 놓은 기반이 무너질까봐 눈이 뚱그래 가지고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족과 함께 백 퍼센트 희생해야 할 텐데 자기의 위치를, 자기들만이 영광을 취하는 그 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걸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 것도 안 되겠으니 공격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깨뜨려 버리든가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교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터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너희들이 믿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믿고 더 사랑하겠다. 너희들이 교인을 지도하는 이상 우리는 세계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스러운 자리에서 교인을 지도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서둘러서 협조하실 것입니다. 
영국에서 청교도운동을 중심삼고 의회까지 변경시켜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나라까지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전부 모가지 자르고 추방했습니다. 전제주의적 교권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추방하고 압제하니까 할 수 없이 자유의 신앙을 추구하는 무리는 구라파 전역에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유로이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세계적인 뜻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의 신앙을 추구하는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황청을 넘어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보다 큰 세계로 갈 수 있는 교회를 꿈꾸던 무리들이 신교운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 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유의 나라, 신앙의 자유세계를 꿈꾸며 구라파의 교조적이고 전제주의적인 교단보다도 더 훌륭한 신앙의 세계를 꿈꾸며 찾아 나선 것이 이 미국 대륙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자유스러운 대륙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의 천국을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를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다 가치 있는 교회를 만들고, 거기에서 보다 자유스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며 나선 무리들이 퓨리턴(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 때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은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한 행동입니다. 자유스런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와도 이별해야 되고, 사랑하는 고향을 버려야 되고, 가정을 버려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까지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해노정을 거칠 때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출발시켜 놓고 이렇게 춥고 고생시키며 못 살게 한다고 원망했을 리가 없습니다.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자유의 천국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적인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의 신앙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 믿고 나섰던 무리들이었습니다. 배를 탄 일당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고,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두 그러한 수난길을 극복하면서 투철하게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위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결심 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와 같이 나를 위해 모험한 사람은 너희가 처음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나섰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너희들이 버린 것보다 더 좋은 나라와 종족과 가정과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메이플라워 호가 겨울에 뉴잉글랜드 지방에 도착한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11월이면 추운 겨울입니다. 도착해 가지고는 날씨는 춥고 먹을 식량은 떨어져서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훌륭했던 것은, 먹을 것이 떨어져 죽어갔지만 명년을 위하여 씨앗을, 종자를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래에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갈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나라요 소망하던 자유 신앙의 천국을 이루어주실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후손을 위하여 그 종자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먹지 않고 죽음길도 기꺼이 갔다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자처해 가면서 후대(後代)를 생각하고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들 중 남은 41명이 협정서를 쓸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부 선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떠날 때도 하나님 이름이요,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 이름이요,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국 땅에 임했다는 것은 놀라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신앙으로 일관한 출발이 아니었다면, 3분의 2가 다 죽어갈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떠나면서 먹으나 굶으나, 자나 깨나 어디에 가 머무나 일체의 생활을 하나님을 모시고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9-102, 73.10.21)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하나님이 볼 때 세계에서 이런 무리는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로마 교황청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하나님은 이러한 무리를 찾고 있었는데, 잘 만났다고 축복을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선조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나라와 자유 신앙의 조국을 추구하면서 고향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 사상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줄 수 없습니다.
메이플라워 호에 남은 41명을 인디언이 죽이지 않고 환영했습니다. 인디언이 전체를 휩쓸어서 공격했다면 하나도 안 남았을 것인데 어떻게 이들을 환영했느냐? 이러한 사실은 기적입니다. 그때 만일 인디언들이 그들을 죽여 버렸으면 필그림 파더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이들을 종자로 삼아 세계적인 기반을 이 나라에 세우고 싶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후 점점 이민이 불어나게 되어 인디언 지역을 침입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미국 역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말입니다. 인디언이 잘살고 있는 지역, 남의 지역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침략인데 하나님은 왜 인디언들을 전부 학살시켜 없애 버리고 이 침략자들을 수호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집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세계적인 자유의 천국을 꿈꾸고 나와 수난길을 가는 이들에게 몇백 배 몇천 배의 축복을 해주려고 하는 입장인데, 인디언들이 그 길을 막으니 그냥 두었다가는 뜻을 못 이루겠기에 인디언들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때 청교도들은 인디언과 싸우면서 그저 총대를 붙들고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개척하면서도 나무를 붙들고 기도하고,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아기를 재우나, 여편네를 두고 나가나,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 언제나 하나님 앞에 맡기고 전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부처끼리 농사를 짓고 지낸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거기에서 잘살고 재미있게 지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개척하면서 산다 생각하고 그렇게 맹세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자기 아들딸을 거느리고 재미있게 살겠다고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추수하여 큰 수확이 있어도 그들은 자기들이 수고해서 거두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전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몽땅 들여 교회 짓기에 열심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자나 깨나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 기울인 것입니다. 구라파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왔기 때문에 기필코 구교가 지배하는 구라파 이상의 마을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고생이 막심하면 막심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구라파 이상의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를 짓는 일을 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구라파를 능가하는 아들딸로 기르겠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자기 집을 지었어도 자기가 살 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친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학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직장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잘 때에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일체 하나님을 위주한 생활을 했다고 봅니다. (69-105, 73.10.21)
  
  
자유 신앙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미국을 건국하신 하나님
  
미국이 독립한 지 2백년이 넘었습니다. 1776년 당시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그때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영국에서 보면 반역자입니다.
이 반역자들이 어떻게 이 큰 나라를 독립시켜 세계의 일등국을 만들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 반역자를 축복하셨느냐? 독립전쟁을 주도했던 조지 워싱턴 장군은 처처(處處)에서 패전했습니다. 최후로 포지 계곡 전투에서 결전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틀림없이 워싱턴 장군은 이렇게 기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자유의 신앙을 위하여 미국까지 데려다 놓은 이 백성들을 다시 영국의 손아귀에, 구교와 마찬가지인 그런 전제주의 교권주의 하에 집어넣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유의 나라, 신앙의 자유의 나라, 당신이 원하시는 이상의 세계를 건국할 수 있게끔 축복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승리하는 날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구교를 중심삼은 입장을 떠나 새로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고 세계의 어느 길과도 일치될 수 있는 대표자는 당시 독립운동 지도자들밖에 없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국권(國權)을 자랑하면서 󰡐우리 영국은 세계 일등국인데 뭐야!󰡑 하며 조지 워싱턴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군력(軍力)을 자랑했습니다. 국권과 군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조지 워싱턴은 아무 것도 없지만 군력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었고, 국권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마치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선 다윗이 돌팔매질한 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깔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워싱턴의 모든 언행(言行)은 하나님을 위주해서 했을 것이요, 전투에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했을 것입니다. 군기(軍器)를 나르는 일도 기도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싸우는 데도 총을 들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선두에 선 그들과 더불어 후방의 국민도 전부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을 것입니다.
신앙세계의 선조들은 자기의 고향에서 뜻을 이룬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와 축복받은 것이 전통이기 때문에, 떠나온 이들을 축복해줘야 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보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활이 자유의 신앙 국가를 바라던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독립군을 세워서 미국을 창건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키워야 되겠고 남겨야 되겠으니 협조해주셨고, 하나님이 이들을 협조해주셨으니 이들은 틀림없이 승리해 미국을 건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은 국왕과 국민이 합해 싸웠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합해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이라는 신앙의 자유 국가, 새로운 기독교국가가 성립된 것입니다.
국회의 상․하원으로부터 저 말단 국민들까지 하나님을 존중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하나님 때문에 이겼다고 하며 하나님을 붙들었으니 하나님을 위주한 국가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하나님이 섭리해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9-107, 73.10.21)
  
  
미국은 기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열매 국가
  
미국 국민들이 잘나서 이렇게 잘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국민들을 잘먹고 잘살라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축복했다는 본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미국이 하나님 앞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공산주의 세계로 가겠습니까, 저개발 민족한테 가겠습니까? 그래도 기독교를 위하고 하나님을 믿는 세계적인 나라 미국을 중심하고 일하고 싶을 것입니다. 만약 미국의 조상들이 자기 아들딸 복받기 위해서, 자기들이 잘살기 위해서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면 하나님이 절대 이런 축복을 안 해줬을 것입니다. 
북미(北美)에 이민 온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자유의 신앙길만을 찾아서 상륙한 사람들입니다. 자유의 신앙, 하나님과 자유의 신앙을 바라서 왔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자유도 찾은 후에 돈도 찾았습니다.
남미(南美)로 간 사람들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돈, 돈, 돈 때문에 간 것입니다. 같은 시대 같은 이민이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환경도 북미보다는 나았다는데 어찌하여 그들은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자유도 잃어버리고, 돈도 없이 저개발국가가 되었느냐 이겁니다. 남미는 후진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2백년 동안에 이렇게 세계적인 일등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 하나님이 가호해주고 축복해주신 것은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한 때를 방어하고 한 때를 수호하고, 뜻을 이룰 수 있는 대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자각해야 됩니다. 복 받기를 바라 나온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죽음의 고개를 넘었는데, 복받고 사는 미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는 데 등한시하게 되면 벌받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인 열매 국가입니다.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입장을 이루어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69-109, 73.10.21)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자 대표가 되는 나라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기필코 이 지상에 이루셔야 합니다.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 세계 만민을 구하고 그들을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섭리의 뜻입니다. 뜻이 이루어진 세계는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혹은 교회적으로 보나, 종족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전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는 세계적인 중심이요, 세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탄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강력한 나라가 성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교를 대표한 기독교를 대표해서 그런 국가이념을 가진 나라가 이 세계에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백년 전에 건국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자 한 데 있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종족들이 구라파에서 여기로 모여 이 나라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나라의 건국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여러분이 자랑하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그 하나의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개인적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교회적으로 보나, 민족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세계의 중심이요 대표인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중심이요 세계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교를 이어받아 명실공히 세계를 움직이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수많은 나라로부터 모여들어 형성된 국가는 단 하나 미국밖에 없습니다. (73-319, 74.10.8)
  
  
미국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것
  
미국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각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를 스스로 갖게끔 하늘은 섭리하신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미국 자체를 위해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인류를 대표한 국가로서 등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나라 국민은 전세계 인류를 옹호해 가지고 하나님의 형제로서 그들을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 나라의 경제력도 미국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를 돕도록 하기 위해 하늘이 축복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센트에서부터 달러까지 여러분이 쓰고 있는 어떠한 돈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이 나라를 축복했고, 과연 이 나라는 하나님이 택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나라를 택하여서 축복하신 것은 세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구라파나 아시아나 전세계를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갈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그러한 나라로서 책임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때부터였느냐? 2차대전 이후부터 그러한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구라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시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하는 입장이었을 때는 하나님이 기대를 가지신 때였습니다. 그러던 미국이 구라파에서 손을 떼고, 아시아에서 손을 떼고, 월남에서 손을 떼고 자기를 중심삼고 쪼그라 들어가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의 본래의 뜻인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에 일치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73-320, 74.10.8)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할 미국
  
예수님은 진리의 본체(本體)입니다. 진리의 씨입니다. 이 진리의 씨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심었습니다. 그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을 사람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아난 사람,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이 바라바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갈 때 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갔으니 십자가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환경이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열매가 맺힐 때가 되면 주님이 올 때가 된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반면 민주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민주세계를 우익이라고 하고 공산세계를 좌익이라고 하느냐? 그건 누가 붙였느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를 심었으니 주님이 올 때가 되어서는 그걸 그냥 그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왼편 강도가 예수님을 대해서 󰡐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를 구하고 우리들을 구해 달라󰡑고 얼마나 참소했습니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뭐고, 하나님의 아들일 게 뭐냐고 그랬는데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편 강도가 나타나서 󰡐야 이놈아, 우리는 죽을 죄를 지었지만 이분은 아무 죄도 없는데 우리를 위해 죽으니 의인이 아니냐󰡑고 옹호했습니다. 왼편 강도와 싸웠습니다. 역사 이래 생명이 죽어 가면서도 예수님편이 되었던 사람은 오른편 강도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그가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이르러 천국을 개문하는데 선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공산세계는 좌익입니다. 왼쪽편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님 때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우익입니다. 오른편 강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오른편을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해야 된다 이겁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른편 강도와 같은 민주세계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위주해서 생명을 다 바쳐 싸워야 합니다.
미국 국민들은 자각해야 됩니다. 민주세계를 버리고 미국 자기 나라가 망하면 안 되겠다고, 자기 나라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세계를 지도해야 할 입장인데 다 버리고 자기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몰라봐서는 안 됩니다. (69-110, 73.10.21)
  
  
미국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은 떠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외국을 원조하고 민주세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때가 전성시대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라든가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이 비참하게 꺾여 나간 것은 우연지사가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내려갑니다. 이건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지금 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가지 않으면 들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라바와 같은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회교 국가입니다. 성경을 이용해 코란경을 만들어 가지고 칼을 들고서 믿으면 놔두고 안 믿으면 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공산주의와 안팎입니다. 공산주의와 안팎이 되어서 합합니다. 그렇게 되거든 끝날이 된 것입니다.
만일 민주세계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기독교가 나타나 공산당과 대결해서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주도적 역할을 해야 됩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 기독교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파를 붙들고 있으니 세계는 망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아랍권과 공산당이 하나되면 기독교와 오시는 주님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한 세계적인 발판이 되는 국가는 어느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미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병들었습니다. 
나는 뉴욕에 도착해 5번가에 서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트레이드 센터(무역회관)를 짓고 야단하지만 그거 지어서 뭘 합니까? 거기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날에는 사고입니다. 하나님이 이 미국을 2백년 동안 축복한 것은 그러한 고층건물도 짓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고 도리어 반대의 경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썩어가고 있습니다. 
러시 아워가 되어 즐비하게 길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가운데 젊은이들은 전부 윤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라고 이 나라를 축복해주셨겠습니까? 고층 건물에서는 하나님이 계셔서 지도하고, 이 젊은 청년들은 새로운 퓨리턴 운동을 하면서 세계를 구하자고 각오를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안 되니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없더라도 젊은 청년들이 벌판에 모여 미래의 세계를 구하는 제단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호소한다면 하나님은 행복하실 것입니다.
지금 뉴욕에서 하나님이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뉴욕은 악마의 도성이라고 세계에 소문나 있습니다. 백주에 살인이 빈번하고 강간이 성행하는 이 도시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망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윤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마약 투여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흑백문제도 문제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건 왜 그렇게 되느냐? 하나님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이 있어야 할 텐데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곳에서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도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회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정부도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주동이 되어 원조하는 법을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69-112, 73.10.21)
  
  
누가 미국을 책임질 것인가
  
미국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것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 이겁니다. 교회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늙은이들만 모이고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교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자유 행동을 한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주의적인 사상을 타파해 버려야 합니다. 그걸 누가 하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이 하겠습니까? 미국의 재벌들이 하겠습니까?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하겠습니까? 지금 다 실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있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찾아온 하나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으로 가겠습니까, 저개발국가로 가겠습니까, 모스크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미국에 와서 반대받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거국적인 입장에서 청년들을 모아 세계로 가는 퓨리턴 운동을 제기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곡하는 한국의 교인들을 남겨두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에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가지고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까? 미국이 아니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고향산천을 버리고 조국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가기 때문에 울지 말라고 권고하고 왔습니다. 내가 만일 미국에서 죽거든 내 사상을 이어받아 세계로 가는 미국 후손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69-114, 73.10.21)
  
  
미국에서 떠나가는 하나님을 다시 모셔 와야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우리 집에서 떠난 하나님을 어디에 가서든지 찾아와야 되겠습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요, 차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주고도, 무엇을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을 안 찾아오면 큰일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사회에서, 여러분의 학교에서, 여러분의 교회에서, 여러분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미국에 와서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별의별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고 선생님이 뭣하러 왔느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쓸 돈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여기서 내 돈을 갖다 쓰고 있습니다. 내 재산을 투입하고 내 가정을 투입하더라도, 일족 이 망하더라도 미국을 살리고 세계를 구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울면서 떠나고 있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무리 많으면 뭘 합니까?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계실 수 있게끔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뭘 합니까? 
그런 사람이 없는 이 땅에서 우리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떠나는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라도 돌아다볼 수 있게끔, 머뭇거리게 해서라도 그러한 무리를 빨리 만들어 머물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미국이 하나님이 세웠던 본연의 길을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교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가정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미국을 위하여 존재하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미국을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아들을 가진 것을 기뻐한다면 미국은 살 수 있습니다. (69-115, 73.10.21)
  
  
새로운 청교도운동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인도한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들이 염치불구하고, 체면불구하고 한 번 찾아가고 두 번 찾아가고 세 번 찾아간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장래를 위하여, 미국을 살리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면이고 망신이고 위신이고 개의치 않았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젊은 식구들은 85퍼센트가 대학 졸업자입니다. 학사 출신이 표를 팔러 다니고 있습니다. 밥이 그리워서 그러겠습니까?
이 일을 하는 목적은 슬픈 하나님을 위로할 길을 개척하고 망해가는 민주세계와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청교도와 마찬가지로, 거국적인 운동으로 공산세계나 아프리카 어떤 곳이라도 떠나는 청년들을 이 워싱턴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장관까지 환송하는 미국이 되어 보십시오. 망하지 않습니다. 섭리역사를 볼 때 그러한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나라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청교도 운동, 필그림 파더와 같은 운동이 벌어져 세계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이 운동이 대학교면 대학교 총장으로부터 교수까지 환영받는 가운데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된다면, 미국은 영원히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을 합해 그런 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산당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모셔들이면 가정문제가 해결되고, 윤리문제가 해결됩니다. 청소년문제도 해결됩니다. 흑백문제도 해결됩니다. 공산당문제도 해결됩니다. 경제적인 파탄도 하나님의 축복이 가중되기 때문에 해결됩니다. 이것만이 미국이 살 수 있는 길이요, 이것만이 미국을 위하는 하나님이 이 미국에 바라는 소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9-116, 73.10.21) 
  
  
5. 한국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
  
  
열매맺힌 미 대륙 문화가 정착할 곳은 아시아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중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이태리 반도를 지나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 미국이 망하고 있는 실정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느 땅에 희망을 두시겠느냐? 아시아 민족에게 희망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미국이 망하는 날에는 기독교가 최후로 정착할 희망의 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시아에 소망을 거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역사적 귀결로 봐서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미국에서 하나님의 뜻이 열매맺힌 이 문화를 세계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아시아와 연결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아시아 민족을 중심삼고 미국이 대이동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미국은 2차대전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됐습니다. 2차대전에서의 승리는 영국이 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이기게 했습니다. 미국이 독일을 깨뜨리고 일본을 깨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국이 했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미국에게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미국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에 세계를 품에 품게 되었는데도 이 세계를 다 깨뜨려 버리고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 아시아에 원조한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그래서 불쌍한 아시아 민족을 키우고 서로서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생과 같이, 형님과 같이 하나로 품고, 밖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초민족적인 결합을 했다면, 아시아를 내 나라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이런 민족운동을 했다면, 이 미국은 아시아를 지배했을 것입니다. 영국과 같은 그런 정책 수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미국이 잘사는 것은 미국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이 대륙에 널려 있는 고속도로라든가 미국의 모든 재산은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하나님을 빼놓고 영국과 같이 󰡐우리가 세계를 지배한다. 미국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떠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몰라서 잘못한 것을 무조건 칠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 같은 사람을 보내서 예고하십니다. 󰡐역사가 이랬고 세계가 이랬기 때문에 들어라󰡑 하는 예고입니다.
열매맺힌 미 대륙의 문명이 어디에서 정착할 것이냐? 이것이 미국에서 정착하면 안 됩니다. 아시아를 통하고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한 바퀴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국 땅을 축복하셨지만, 만일에 미국이 실수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시아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80-12, 75.10.1)
  
  
인류문명 발달의 순환 원리 
  
이제 미국을 녹여내고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가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미국의 구라파 제일주의 정책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틀리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문화는 돌기 때문에 대륙에서부터 반도, 도서 또 대륙으로 이동하는데, 미국 대륙을 중심삼고 볼 때 문화가 옮겨갈 수 있는 도서는 일본입니다. 어찌하여 이 세계 도상에서 일본 민족이 이렇게 급진적인 발전을 하느냐 하면, 실패한 영국의 반대적인 입장에서 아시아에 영국 대신 세운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이 서구문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영국과 마찬가지 입장인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에 아시아를 키우고 아시아를 위해서 존재하는 일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일본이 못 되고 자기 나라를 위하는 아시아를 만들려는 사탄 국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영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 문명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영국 문명을 미국에서 이어받음과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영국 문명을 일본이 그냥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일본은 하나님의 이름을 빼놓고 자기 나라의 민족주의적 여신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御神)를 섬깁니다. 중심이 여자입니다. 이것은 사탄편입니다. 사탄편이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이 아시아를 하나 만들려는 것을 알고 아시아를 미리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중요한 국가는 한국입니다. 태평양문명권을 싣고 일본을 거쳐 대륙에 상륙하는 데는 반도를 거쳐가야 합니다. 이것이 문명 발달의 원리입니다.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국과 같은 곳이 일본이요, 이태리 반도와 같은 곳이 한국입니다. 어찌하여 한국이 지금까지 세계 속에서 제일 문제가 되느냐? 유엔에서도 한국하고 미국, 유대 나라 이 세 나라가 문제 되어 지금 고립 상태에 몰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미국은 반드시 일본을 거치고 한국을 거치고 중국 대륙을 거치고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일주해야 됩니다. 일주해서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서구문명, 아시아 문명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중동도 아프리카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일주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시아는 정신문명을 추구해 왔고, 서구의 기독교는 정신문명보다는 물질문명을 추구해 왔습니다. 이것이 반대입니다.
종교를 숭상하면 할수록 땅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정신문명인데 몸뚱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뚱이를 찾으려니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물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육으로 하나되었다면 중동을 통일하고 로마를 통해서 아시아를 통일했을 것입니다. 서구로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바뀌었습니다. 사실은 해적 패들이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아시아를 손댄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지 미국이 한 것이 아닙니다. (80-14, 75.10.1)
  
  
1, 2차대전에 승리한 터 위에 세계를 위한 정책을 폈어야 할 미국
  
그래서 1960년대는 미국을 중심삼고 전세계를 그 품에 품는 시기입니다. 미국이 1차대전, 2차대전을 통해서 이미 실질적인 세계 지도의 패권을 들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3국이 싸웠습니다. 타락할 때 천사장, 아담, 해와 세 사람이 뿌렸으니 거두어들이는 데도 세 사람이 거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가 거두게 되었습니다.
타락은 어떻게 했느냐? 해와가 먼저 타락했고, 그 다음에는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해와가 천사장을 중심삼고 하나됐고, 그 다음에 아담을 타락시켰습니다. 그 복귀과정을 보면 영국은 여자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또 여왕 시대가 말기입니다. 뜻을 받들지 못해서 여왕으로 시작하여 여왕으로 연결되어 여왕으로 망합니다. 그렇게 벌어졌습니다.
영국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나라입니다. 대륙은 남성을 상징하고 섬나라는 여성을 상징합니다. 왜? 언제나 섬나라 사람은 대륙을 사모합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여자 나라입니다. 그 여자 나라를 통해 아담 국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인 해와를 통해 가지고 아담을 망하게 한 것과 반대로 여자인 영국을 통해 아담 국가가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게 미국입니다. 그렇기에 영국은 아들에게 지배받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지배를 받아야지요? 그런 입장에서 기독교 문명을 전부 이어받아 결실된 것이 미국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전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판도를 만들었습니다. 민주세계의 판도는 미국이 관리해야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 독일, 이태리 등이 각각 사탄편, 즉 타락한 해와, 타락한 천사, 타락한 아담이 됐으니 그편도 열매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 독일, 이태리의 사탄편인 추축국과 영․미․불 연합군의 대결은 성경의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그래서 1차대전은 영국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미국 때문에 이겼습니다. 2차대전도 미국 때문에 이겼습니다. 그런데 1차대전, 2차대전에서 승리한 판도를 미국은 몰랐습니다. 절대 미국이 관리 주관해야 됩니다. 
그와 같이 했다면 각국이 전부 미합중국에 흡수됩니다. 그러려면 유엔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엔 국가가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기독교를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것과 같이 하나돼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을 코치하는 일원으로서 기독교 국가를 단합하는 것이 유엔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공산당을 거기에 가입시켜서는 절대 안 됩니다. 
미국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미국의 젊은 청년들이 피를 흘려 1차 대전, 2차대전에서 승리한 판도를 완전히 공산당 원수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일본이 제패했던 동양제국과 인도, 중국을 관리하고, 한국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판도를 따라 공산세계를 제압하여 독일이 점령했던 동구 위성국가까지 전부 미국이 관리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소련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연합국의 협조를 받아서 살아났는데 소련에 양보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트루먼이 배짱 있게 나갔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물질적인 축복을 받은 미국이 세계애를 발휘하여 하나님 대신 하나의 나라를,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국력을 희생시키더라도 해외 진출을 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1960년에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이 왜 죽었는지 알아요? 공산당을 유엔에 가입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천벌을 받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 뜻 가운데서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케네디가 왜 암살을 당했는지 알아요? 케네디 때 외국 원조를 삭감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범미주의로 향했고, 아시아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아시아를 포기하고 구라파 위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외국 경제원조 삭감을 제창하고 나선 것이 케네디 대통령입니다. 케네디 일가가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케네디 일가에 흉살이 뻗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2 이스라엘 기독교권인 미국과 제3 이스라엘권인 한국이 1975년 유엔 총회에서 대결을 벌였습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유엔이 살길은 이스라엘 민족과 미국과 한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누가 하나되게 만드느냐?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힘, 종교의 힘을 가지고. 기독교를 중심삼고 유대교를 소화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밖에 없습니다. (81-245, 75.12.28)
  
  
서양 3국이 못 한 책임을 동양 3국을 통해 탕감복귀하는 섭리
  
미국에 대한 축복은 미국만을 위한 축복이 아닙니다. 만국을 위한 축복이요, 만민을 위한 축복인데 그 축복을 자국만을 위해 소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졸아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가야 할 곳은 구라파가 아닙니다. 그런 축복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영적인 문화권을 중심삼고 결실을 맺어 아시아에 와서 결속해야 할 텐데, 아시아에 돌아오려면 탕감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누가 잘못했느냐? 로마제국이 잘못했고, 영국이 잘못했습니다. 아시아로 돌아오는 데는 사탄권내의 두 나라가 실수한 것을 사탄편과 대결하여 찾아오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 싸움이 2차대전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였느냐 하면, 영국과 같은 섬나라, 즉 동양문명권을 대표한 섬나라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 사탄권의 해와 국가입니다.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가 해와입니다.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80년부터 1백20년 내에 세계의 경제권을 제패하고, 아시아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 통일세계의 깃발을 들고 세계 천지를 밟고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각성시키고 구라파를 단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싸우게 해서 역사시대에 영국이 잘못한 것을 복귀하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영국 같은 나라로 돌아와야 됩니다. 동양에 들어오려니 영국 같은 섬나라가 동양 제국을 제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같은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는 권한을 사탄이 가져갔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삼고 아시아를 제패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하나님편으로 찾아오는 탕감조건을 세우려니, 일본이란 나라를 세워 아시아의 판도를 단시간에 맡겼다가 그것을 미국을 통해서 전부 흡수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2차대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편의 해와 국가는 일본이요, 사탄편의 아담 국가는 독일입니다. 독일의 히틀러를 태양이라고 했지요? 이태리는 사탄편 천사장 국가입니다. 왔다갔다하고 절개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하늘편 해와 국가이고, 미국은 하늘편 아담 국가입니다. 프랑스는 하늘편 천사장 국가입니다. 왔다갔다하고 절개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강국권에다 자기의 꼬리를 붙이고 다닙니다. 천사장은 언제든지 한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프랑스와 이태리가 지금 그렇습니다. 벌써 망했을 텐데 왜 안 망했느냐? 천사장 꼬리를 물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아담을 품고 타락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해와 국가는 어느 나라냐? 일본입니다. 아담 국가는 어느 나라냐? 한국입니다. 그 다음 천사장 국가는 어느 나라냐? 중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제패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아담도 망했고 천사장도 망했습니다. 해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판도가 벌어져 동양 3국을 이루고, 일본이 동양 천지를 휩쓴 것은 사탄세계 앞에 역사적인 탕감 제물이 된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냥 그대로 재현시켜 탕감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늘편이 망했으니 다시 그와 같은 세계를 만들어 거기서 승리해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인과법칙의 적용이 이 타락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나선형으로 무한한 세계를 향해 발전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관을 역사가들은 다 모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배워 가야 됩니다. (81-248, 75.12.28)
  
  
주님이 오시는 한국에서 하늘편 3국과 사탄편 3국이 결속해야
  
미국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면, 일본을 점령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하늘편 해와가 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안겼던 나라는 아담 국가가 됩니다. 그 나라가 한국입니다. 여기에서 영국과 같은 섬나라를 탕감한 후에 이태리 반도, 로마와 같은 나라를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아시아에서 이태리와 같은 반도의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 나라는 사탄편의 지배를 받는 나라여야 됩니다. 그것이 한국입니다. 필리핀을 통한 인도차이나 반도도 있고, 또 인도네시아를 통한 말레이 반도도 있지만 그것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밖에 없습니다. 저쪽은 서구문명권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극동 3국이 사탄을 중심삼은 승패의 결정전 이후 태평양문명 시대에 서구문명을 맞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문호가 됩니다. 
일본이 세계에서 영국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로 부흥했다면 앞으로 한반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반도는 이태리 문명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독교가 영육을 중심삼고 갈라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통일돼야 합니다. 남북을 통일하려면 이 민족이 영적인 기독교문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권(이승만 정권)이 기독교문명을 흡수한 정권입니다. 그때 이정권과 손잡고 새로운 차원에서 예수님의 몸적인 실체부활 역사, 실체구원에 실패한 것을 재탕감하기 위해서 나타난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는 어디로 와야 되느냐? 영적인 교황청이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통일왕국 세계를 꿈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육을 중심한 접촉지가 되는 로마 교황청 형인 아시아의 한반도, 바로 여기에 재림주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정도령사상 같은 것은 잘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관이 여기서 귀결됐기 때문에, 한국은 역사적인 생사의 결판지(決判地)입니다. 지금 그렇게 됐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잃어버린 대로 재현시켜 탕감하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을 중심삼고 어떤 형태가 벌어지느냐? 3국을 연결해 3국의 재차 대결 권으로 들어갑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를 중심삼은 대결 시대와 일본, 독일, 이태리를 중심삼은 대결 시대에 그것이 완성되었다면 거기서 끝났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더 차원 높은 사상, 더 차원 높은 분야에서 공산권과 민주세계를 중심삼은 최후의 대결지로 정해진 곳이 한국입니다. 여기서 남북 분열과 더불어 공산권 결속과 민주세계 결속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편에서도 3국이 결속해야 되고, 사탄편에서도 3국이 결속해야 됩니다.
그때 한국은 독립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받아들였으면 영육의 기반이 재현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됐기 때문에 영적 기준으로 남아져 통일교회를 쫓아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이북으로 쫓아 버리니 공산당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맞았습니다. 남북의 비운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기독교에 책임이 있습니다.
천사장 국가가 미국이고 해와 국가가 일본이고, 아담 국가는 한국인데, 이 3국이 결속하여 누구와 합해야 되느냐? 새로운 하나의 뜻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이 한국에 나타나시기 때문에,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는 사상체계를 갖추어 나오는 재림주와 하나돼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기독교문화권의 결실을 육적 문화권의 결실 위에 맺어, 예수님 시대에 아랍권을 중심삼은 영적 기준과 아시아권을 중심삼은 육적 기준을 통일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다시 돌아와서 여기서 결속함으로써 아시아 제국을 통일하고, 중동, 즉 아랍권까지 통일해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마쳐야 이 땅 위에 평화의 천국이 실현됩니다. 통일세계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관입니다. (81-250, 75.12.28)
  
  
일본이 물질적 축복을 받은 이유
  
서구문명이 아시아문명을 찾아오는데, 이것이 어디에 연결되느냐? 타락하여 몸과 마음이 갈라져 싸우는 것과 같이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싸우고 전부 싸우고 있는 여기에 외적인 것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종교권을 만들어, 버리는 물질을 전부 다 수습해서 돌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외적 천사장 입장에 있는 서구에서는 물질을 버리는데, 물질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서구문명권이 모든 경제권을 찾아 가지고 돌아 들어온 것입니다. 이때 미국을 천사장 국가로 책정했고, 일본을 해와 국가로, 한국을 아담 국가로 세웠습니다. 
돌아 들어오는 데는 다리를 놓아야 됩니다. 천사장이 바친 물건은 그대로 하늘의 물건이 될 수 없습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해와와 하나되어 바쳐야 합니다. 하늘 것을 사탄 것으로 만들었으니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하늘편 천사장이 모든 물질을 끌고 와서 해와와 하나돼야 합니다. 해와인 일본에 갖다 접붙여야 됩니다. 일본이 근세에 와서 왜 경제왕국이 되었느냐? 섭리시대에는 다리를 놓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모든 것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치유신 이후 120년간, 1988년까지 연결됩니다. 명년까지 120년간에 미국의 모든 것을 인계받는 것입니다. 
미국을 중심삼고 섭리를 펼치시려던 하나님의 뜻은 미국에서 어디로 이동해 가느냐 하면, 일본열도로 옮겨 갑니다. 통일원리를 보게 되면 󰡐역사의 동시성(同時性)󰡑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인류역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관한 공식적인 섭리에 의하여 엮어져 왔는데, 그러한 천륜의 섭리가 동시성을 띠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는 반복의 형태, 곧 반대의 형태로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 대륙을 중심삼았던 하나님의 섭리가 영국과 같은 도서국가를 거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본이라는 섬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서국가인 일본에 축복을 내리시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일본은 근세에 와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영국의 축복을 탕감하기 위해 일본에 축복을 내리는 것이니만큼 일본은 영국이 실패한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일본을 명치유신 이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켰던 것은 영국의 입장을 탕감해서 세계를 구하라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추호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1988년만 지나가게 되면 일본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한국시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한국시대로 이어받기 위해서. 한국에서는 지금 서로가 잘났다고, 서로가 대통령 해먹겠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내놓고 그 나라가 자기들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을 다리 놓는데 그냥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놓아주느냐? 선생님을 통해서 일본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인연지어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일본이 자주적인 입장에서 갔다가는 영원히 남편을 못 만납니다. 미국도 자주적인 입장에서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했댔자 천사장은 상대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서구사회가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서구사회가 가야 할 곳은 아시아입니다.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섬나라는 언제나 대륙을 흠모합니다. 그러므로 섬나라는 부인격이요, 대륙은 남편격입니다. 그 섬나라와 반도의 관계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문명은 반도에서 열매맺혔습니다. 
반도문화권인 이태리 문명권이 지금까지 세계문명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태리 반도를 중심삼은 반도문화권이었습니다. 고대 희랍도 역시 반도문명권이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라든가 포르투갈에도 반도 문명권이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166-292, 87.6.14)
  
  
한반도로 옮겨진 하나님의 섭리 
  
일본은 세계를 구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 반도문명권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태리 반도문명과 같은 한반도 문명시대로, 예수님이 몸을 잃지 않았으면 이뤘을 세계적인 아시아 문화권시대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 메시아가 재림한다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어떤 나라냐 하면, 로마와 비슷한 나라입니다. 같은 반도형 국가이고 기후나 환경이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로마교황청을 대신한 국가 형입니다. 로마는 영적인 교황청만 형성했으나, 한국은 영육(靈肉) 아우른 교황청을 형성해야 합니다. 
근대 유럽문명의 기초가 되었던 로마와 똑같은 조건에서 대륙을 중심한 새로운 문화권이 출발하기 때문에 사탄주권을 대표한 공산권이 인도로부터 중국까지 모두 다 감아쥐었지만, 한반도에 와서는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몇 살에 수상이 된 줄 압니까? 서른 네 살 때였습니다. 김일성과 같은 서른 네 살에 예수님이 유대나라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왜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어버이󰡑라고 부르는 줄 압니까? 세상에서는 󰡐통일교회에서 문 아무개를 중심삼고 참부모님 모시고 어쩌고 저쩌고 한다󰡑 하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실인즉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김일성이 반대로 앞질러 거짓부모를 자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해도 좋습니다. (110-243, 80.11.18)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에서 어디가 중심이냐? 한국이 중심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제일 문제의 민족이 한민족입니다. 한국 민족은 요리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머리가 좋고 조직적인 정보사업에 아주 예리합니다.
그리고 근세에 들어와 아시아에서의 싸움은 거의 한국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러일 전쟁도, 청일 전쟁도, 대동아전쟁, 즉 일본과 미국과의 전쟁도 전부 한국을 놓고 싸운 것입니다. 
왜 근세에 아시아에서 제일 문제의 나라로 한국을 치느냐? 현재 공산당하고 접한 나라 중 최후로 남은 한 기점이 한국입니다. 맨 처음부터 끝까지 남은 나라입니다. 지느냐 이기느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서느냐, 안 갖고 나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한국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사탄은 한국 백성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에서의 모든 문명의 집약지가 한국으로 돼 있습니다. 중국문명의 기원이 어디냐? 세계 사람들은 전부 중국이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능가했다는 것을 역사가 증거합니다. 요즘에 와서 학자들 가운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 민족이 핍박받고 어려움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한반도에 기지를 만들었구나!󰡑 하게 됩니다. 섭리 전체의 역사관을 두고 볼 때 그것이 일치되는 것을 보면, 󰡐아, 한민족은 하늘이 택한 민족이요, 지혜 있는 민족이다!󰡑 하고 나는 결정하고 판단합니다. 그러한 곳이 이 선생님이 태어난 곳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인 사명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런 관점의 이론적 체계를 통해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역사적 귀결로 돼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한국 민족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섭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지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셨다는 결론은 타당한 것입니다. (80-15, 75.10.1)
  
  
하나님이 한민족에게 부여한 세계사적인 사명 
  
우리 나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한(恨)을 마지막으로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부여해준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 역사시대의 모든 응어리를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위한 분립의 역사가 대표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마치 아담 가정에서 한 형제인 가인과 아벨이 싸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 핏줄인 남북한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휴전선은 아무런 의미 없이 공산의 북과 민주의 남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귀결지을 수 있는 뜻깊은 천륜의 사연이 담겨 있는 휴전선입니다. 
북쪽은 가인권을 대표한 가인 형이요, 남쪽은 아벨권을 대표한 아벨 형입니다. 따라서 아벨 형인 통일교회와 기성교회 교인들이 하나되는 날에는, 그리하여 남한이 가인 형인 북한을 무력으로 지배하지 않고 이상적인 사랑과 사상으로써 자연굴복시키고 지배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과 기반을 닦아 놓는 날에는 휴전선을 철폐해도 상관없습니다.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게 돼 있습니다. 
휴전선을 놓고 볼 때, 한반도의 북쪽은 붉은 용이, 남쪽은 백룡이 물고 있는 형국입니다. 판문점(板門店)이 뭔지 압니까? 하늘나라의 금문(金門), 열두 진주문을 상징하는 곳이 판문점입니다. 그래서 휴전선은 사탄의 제일선(第一線)이자 하나님의 최일선(最一線)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도 사탄도 참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동시에 참소할 수 있는 자리는 세계에서 이곳 한국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휴전선이 이렇게 돼 있느냐? 한반도가 하늘의 비운의 역사를 마지막으로 종결지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이곳 한반도에서는 기를 쓰고 버티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남한이 북한의 김일성을 완전히 소화하고도 남을 수 있는 사상적인 주체세력을 갖추게 되는 날에는, 한국은 공산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전세계를 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부여한 세계사적인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로 통일해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맡기신 세계사적인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10-238, 80.11.18) 
  
  
아담 문화권의 신기원을 이루어야 할 한국 
  
5천년의 역사적 비운(悲運)을 지녀 온 한민족, 국론을 중심삼고 중상모략으로 엮어져 온 한민족이었는데, 왜 그런지 압니까? 가인 아벨이라는 세계사적인 투쟁의 피로 연결지어 나온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어느 한 때도 아벨적 기준에서 선한 사람이 악한 간신들을 소화시켜 하나의 군왕을 세워 가지고 주권을 형성하지 못한 이 민족은 비참한 민족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역사적인 사조가 이렇게 찾아오는, 대천운이 우리 목전에 다가온 이때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놓은 것이 비운의 역사인 줄 알았더니 하늘이 복을 이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족의 분열에 반하여 민족 단합이 남한 땅에서 벌어질 때, 이것이 핵심의 주체가 되어 북한 땅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세계 통일을 꿈꾸는 하나님의 뜻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성교회와 한민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내가 일선에 서서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고, 한국의 기독교를 위해 싸우고, 한국의 전백성을 위해 싸웠습니다. 거기에 내 모든 생명을 투입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뜻이 제3 이스라엘권인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아담 문화권이 재현되어 하나님의 뜻이 완성됨으로써 종족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권 세계가 형성되고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본래 하나님이 뜻하신 세계가 종결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인이 다하지 못한 섭리적 사명을 인수받은 제3 이스라엘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완결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의 모든 문명이 한반도에서 결실을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데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 문화권의 신기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나의 세계 구현은 아담 문화권이 재현되는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는 것을 말하는데, 한반도에서 아벨과 가인이 하나되는 기준을 본으로 하여 민족을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의 세계를 회복할 때만 하나의 세계는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래의 뜻 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되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가정과 교회에서 있는 정성을 다해 내 개인과 가정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날에는 공산주의는 자동적으로 망합니다. 내가 여의도 구국세계대회에서 60개국의 통일교회 청년신도들에게 한국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한 바 있지만,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열심으로 기도한다면, 이 민족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아담 문화권을 이 땅 위에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 민족으로 하여금 수난과 비운 속에서 당신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게 했던 것이며,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 민족이 그런 비운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 성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110-246, 8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