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 역사편 - 제 1장 하나님의 구원섭리 역사

참사랑 | 20180224062459

사랑이야기 

제 5권 구원 역사편 

제 1장 하나님의 구원섭리 역사


소목차


1.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다

2. 하나님의 공식 섭리노정

3. 새로운 메시아와 섭리역사

4. 선악의 일선과 섭리역사

5. 참을 찾아 역사하는 하나님

6. 부모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7. 역사적 3시대를 통한 구원섭리



1.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다
  
  
인류역사란 인간 구원을 위한 신의 섭리사 
  
인류의 역사 가운데는 하나님이 개재돼 있다는 사실을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인간 역사의 배후에는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신의 섭리가 있습니다. 즉 신의 섭리사와 더불어 인간 역사가 엮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 역사에 신이 개재해야 되느냐? 사람을 짓고, 이 세계를 존속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제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창조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간을 다시 등장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구원섭리, 하나님이 인간을 구해야 된다는 점에서 볼 때, 구원역사를 하는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재현하기 위해서, 즉 다시 나타내기 위해서 이끌어져 나온 역사입니다. 
모든 종교에서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이상세계로 갈 수 있는, 영원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구원을 모든 종교에서는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이냐? 병이 나지 않았을 때의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말하기를 󰡐구원역사는 복귀역사다. 되돌아가는 것이다. 본연의 기준을 중심삼고 돌아가야 된다󰡑고 합니다. 
구원이라는 말이 필요하고, 복귀라는 말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직접 주관받고, 하나님 앞에 일체이상권에 서 있었으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자의 인연을 가지고 모든 생활을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그 자리는 슬픔이나 고통의 자리가 아니라 행복의 자리요, 기쁨의 자리요, 만족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 동기, 그 근본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요, 인간이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천사장 때문입니다. 인간이 완성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가는 입장에 있었는데 천사장인 사탄이 인류시조를 유인해 가지고 겁탈하여 비운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사탄한테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태어난 모든 후손들은 사탄의 지배권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는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환경을 거쳐 나왔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주관권내에서가 아니라 사탄 주관권내에서 움직여 나왔습니다. 이것은 본래 신의 뜻이 아니요, 인간이 이상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신과 인간은 합해 가지고 이 타락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과정의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민족의 배후에 수많은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동양에는 동양의 종교가 있고 서양에는 서양의 종교가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종교를 엮어 나오면서 세계로, 하나의 종교권으로 넘어가고, 또 역사시대의 사상도 하나의 통일된 사상권을 향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168-299, 87.10.1)
  
  
인간이 가져야 할 확실한 구원관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게 될 때 확실한 대답을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이 뭐냐? 지금까지는 󰡐구원이 이렇다󰡑 하는 확정적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구원은 복귀해 가는 것이다. 복귀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구원의 목적이 복귀의 목적과 일치된다는 것을 우리가 정의 내렸다는 이 사실은 분명 종교계에 위대한 공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복귀의 목적점이 어디냐?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은 타락하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하고, 신앙생활이 필요하고, 종교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 즉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타락했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오늘날 일반 기독교 신자들은 󰡐구주는 본래부터 있었다. 하나님과 같이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계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타락도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서 시킨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원리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주창해 나온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타락시켰다는 논리를 성립시킨다면, 여기에는 우리가 대답 못 할 많은 의문점이 내포됩니다. 즉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 아니고 잔인한 하나님이다, 지옥을 만들어 놓고 인간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인간을 고생시키는 분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또 󰡐모든 것은 예정했다󰡑는 이런 엉터리 같은 예정론의 논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는 용허될 수 없는 말입니다. 만약 본래부터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이 예정되었다면, 왜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느냐 할 때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태어나게 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지금까지 신앙계를 지도해 왔다는 사실, 이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들은 끝날에는 메시아가 오는데 기독교인들만 전부 다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고 일반 사람들은 모두 불살라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그들은 당파적인 하나님이라는 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전부 근본을 밝히지 못한 데서 초래된 결과인데,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 미치는 악영향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거나 인간을 지옥 가게 한다는 등의 문제들을 생각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또 공산당이라는 것이 나와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유물사관을 갖고 세계를 휩쓸게 된 것도 다 종교가 이와 같은 불분명한 근원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믿을 수 없는 신앙관을 총괄하여 우리는 󰡐구원섭리는 복귀섭리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되돌아가야 된다󰡑는 하나의 논리로써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예정 같은 것도 성립되고, 그 과정에서 지옥도 가고, 그 과정에 선악의 싸움도 있고, 그 과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0-89, 75.10.19)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재창조하는 복귀섭리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무엇이냐? 결론적으로 복귀섭리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섭리입니다. 
그러면 복귀는 어떻게 하느냐?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원칙을 통해서 천지 만물을 지었기 때문에 창조원칙에 따라서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역사는 실패한 창조역사를 재차 창조하는 역사이므로 재창조역사입니다, 재창조역사. 
그러면 창조역사가 쉬울까요, 재창조역사가 쉬울까요? 공장에서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사진(블루프린트)을 만들어 모든 기술자들이 종합적인 기술을 투입해 가지고 그 본을 만들어야 됩니다. 먼저 설계도를 그려야 됩니다. 이렇게 해 놓고 거기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해 가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모든 섭리의 주체이고 모든 면에서 왕인 하나님은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주먹구구식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을 찾지만, 하나님은 주먹구구식으로 자기를 찾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다가 번번이 사고가 나고, 번번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는 뭐냐? 구원이 무엇이냐? 병난 사람을 구원하려면 병이 나기 전의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사람을 보고도 󰡐저 사람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가 구원됐다󰡑고 합니다. 병나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복귀입니다. 복귀라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래 상태의 것이 없으니 재차 만들어야 됩니다. 재차 만드는 데 있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청사진에 의해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원칙에 부합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리공장에 가져다가 부숴야 됩니다. 
인류역사에 재창조를 위한 수리공장으로 나타난 것이 무엇이냐? 보기 싫고 마사 많고 모략 중상 잘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가 수리 공장이라는 것입니다. 수리공장이라고 해서 동네에 있는, 고장난 두 바퀴 리어카를 수리하는 공장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정밀한 인류와 하나님의 최고의 이상적 기준이 깨져 나간 것을 수리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관내에서 수리할 수 있는 공장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해봤자 기술이 미치지 못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종합해 가지고 수리할 수 있는 종합적 수리공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수리공장의 규모가 어떠해야 되느냐? 국가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국가기준을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수리공장이 된다면 그 종교가 국가기준을 못 넘어서 가지고는 망하는 것입니다. 미신도 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 망하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국가기준을 못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래, 세계 전체의 최고 수리공장 본부가 생겨야 되고, 전체를 총감독할 수 있는 공장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인류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인간 자체가 고장이 났습니다. 인간 개인이 고장났는데, 그 고장난 개인이 퍼져서 확대되어 가지고 가정도 고장났고, 사회도 고장났고, 국가도 고장났고, 세계도 고장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의 문화권내에 어떠한 이상적 국가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국가는 일시적 형태를 보였다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왜 무너지느냐? 원칙 기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99-208, 78.9.25)
  
  
6천년의 역사는 세계적인 천사장과 아담을 재창조하는 역사
  
지금까지 인류역사 6천년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은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냐? 재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창조를 누구부터 해야 하느냐? 아담부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는 누가 있었느냐?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천사세계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만물을 짓고,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나 모든 것이 왜 떨어졌느냐? 사람 때문입니다. 사람이 책임을 못 하였기 때문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복귀, 참된 사람을 복귀하기 전에 반드시 천사장을 복귀해야 됩니다. 창조원리에서 볼 때 누구를 먼저 지었느냐? 천사를 지은 다음에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결국 천사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전까지는 천사 창조 역사입니다. 이래서 상속받아 가지고 아담세계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개인적 천사세계를 만들어 개인적 아벨에게 상속하고, 가정적 천사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가정적 아벨세계에 상속하고, 그 다음에 민족적 가인세계를 만들어 놓고 민족적 아벨을 세워 탕감복귀하고, 국가적 가인을 만들어 놓고 국가적 아벨을 세워 탕감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이 전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는 뭐냐? 선민이 뭐냐? 실체를 쓴 천사세계입니다. 하나님 앞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지하는 천사세계형 국가기준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중심인 예수님이 오면 예수님을 천사인 이스라엘 나라가 협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천사가 협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 창조, 가정 창조, 종족 창조, 민족 창조를 할 때에 이스라엘 나라가 협조해야 이것들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런데 창조하는 데에는 천사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을 완성하게 해야 되고, 가정을 완성하게 해야 되고, 종족을 완성하게 해야 되고, 민족과 국가를 완성하게 해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천사세계의 창조가 끝나고 아담, 해와, 세계의 창조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하늘의 사람이 사탄세계 앞에 전부 종노릇을 해야 하느냐? 재창조해야 되겠기 때문에 아담이 잘못하여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천사장을 만들고 천사장을 구해주어야 됩니다. 아벨이 지금까지 희생해 가지고 가인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장이 순종해야만 아담의 자리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가인이 완전히 아담을 위하고 아담과 하나되어야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가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교는 세상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천사장과 가인을 복귀하지 못하면 자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천사장을 찾으면 천사장이 협조하기 때문에 아담이 복귀됩니다. 그런데 타락되어 이러한 협조를 못 했습니다. 그러니 협조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80-154, 75.10.21)
  
  
종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재창조역사의 과정을 거쳐서 아담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아담의 승리적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 해와가 완성하고, 해와가 완성한 그 기반 위에 가정의 완성, 자녀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자녀의 완성을 위한 기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족과 민족을 대표한 실체적 종족권이 형성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중심 내용이요, 구원섭리 완성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성현과 현철이 왔다 갔는데, 그들이 하고 간 일들을 간추려 말하면 종교를 세우고 성장시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생겨나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그 종교들을 살펴보면 종의 종교, 양자의 종교, 아들의 종교를 거쳐서 부모의 종교로 복귀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는 인류의 문화가 동서남북의 방향을 따라 그 차이를 나타내는 것처럼 지역적인 환경에 맞춰 그 지방을 복귀시키기 위한 종이나 양자 혹은 아들과 같은 성격의 종교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의 종교라 해도 그 교리나 의식 속에는 아들이 가르쳐주고 부모가 가르쳐줄 섭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종교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즉 창조이상을 완성하고자 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종의 종교가 목적하고 가는 길도 그 길입니다. 양자의 종교도 종의 종교의 기반 위에서 같은 목적을 추구해 갑니다. 여기서 양자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고 환경을 사랑하고 뜻을 받들고 행하는, 아들을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이 양자는 아들이 없게 될 때에 부모의 계대(繼代)를 이을 수 있습니다. 
양자의 종교 다음에는 아들의 종교입니다. 아들의 종교가 나타남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것은 부모를 확실히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심정적 통일권(心情的統一圈)이 형성되게 합니다. 
종의 시대나 양자의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입장에 있다 해도 그 부모의 입장인 하나님 앞에 인류를 대표한 아들의 자격으로 심정의 기준을 형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주체 되는 부모 앞에 땅을 대신해서 하나의 상대적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부모 되는 하나님이 첫 아들을 얻어 처음 사랑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노정(人類歷史路程), 혹은 피조만물이 생겨난 이후에 이상(理想) 하고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복귀섭리역사의 귀결을 놓고 볼 때, 유대교를 거쳐서 오늘의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주류적(主流的)인 역사노정을 거쳐온 기독교가 수많은 종교 가운데 중심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양자의 시대가 됩니다. 또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처음 낳은 아들을 지칭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섭리적인 배경을 가진 종교, 특히 기독교를 중심하고 역사를 이끌어 왔으며, 20세기 문명을 지배하는 민주세계를 형성해 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인류역사의 종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인류역사의 종말, 즉 끝날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것은 메시아적 아들의 사명을 끝내고 부모의 사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신랑이 되고 인류는 신부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신랑 신부는 부모의 종교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은 아들딸의 시대가 끝나고 부모의 시대로 넘어가는 때를 말합니다. 
아들딸의 소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부모, 찾을 수 없었던 부모, 만날 수 없었던 부모를 다시 찾고 만나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믿고 말하는 것처럼 끝날은 땅이 불에 타 없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소원인 부모가 이 땅 위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사정과 심정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가정․ 사회․국가․세계가 형성되는 때를 말합니다. 부모로부터 그러한 것을 교육받고, 교육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된 자리에서 선악의 주권이 교체하는 전환기가 바로 끝날입니다. 이러한 역할과 사명을 위해서 종교가 태동했고 점차 발전하고 성장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와 참자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소멸되어 왔지만, 그들은 모두 어느 한쪽을 말하고 섬겨 왔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종교를 주창하고 있는 것이 그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부모는 남의 부모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류의 근본적인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조상의 자리로 결정된 입장에 있는 부모를 말합니다. 여기서 부모는 흔히 사회에서 통용되는, 한 세대에 한해서 사는 부모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모는 타락한 세계가 완전히 구원될 때까지 죄악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다시 낳고 접붙여서 참자녀의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부모를 말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방계의 종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 모든 종교는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씨앗에서 나온 떡잎이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 떨어지는 것처럼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종의 종교가 사라질 것이고, 양자의 종교가 사라지면서 자녀의 종교 위에 뿌리의 종교인 부모의 종교가 연결되어 새로운 하나의 종교세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113-92, 81.5.1) 
  
  
복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러면 복귀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아는 것처럼 만물부터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제물시대를 거치고 신약의 말씀시대를 거친 후에 실체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물시대로부터 말씀시대를 거쳐 실체시대까지 복귀해 나오는 데 있어서, 우리 인간은 어느 자리에서부터 복귀해 올라가야 하느냐? 
인류의 시조가 사탄의 혈통을 받고 난 그날부터 인간은 사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혈통적 인연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 없는 원수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을 사탄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세워 하늘편으로 끌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늘편으로 이끌기 위해서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로, 그 다음에는 참아들딸의 시대로, 그 다음에는 참부모의 시대를 거쳐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거꾸로 올라가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에게 종이라는 명사가 필요 없고, 양자라는 명사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모습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선의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갔을 것입니다. 종의 신세와 양자의 신세를 벗어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참된 부부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요 복귀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는 하나님과 그 역사를 대해 나왔던 인류의 조상과 현세에 처해 있는 인간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은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해 나오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복귀의 노정을 개척하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고, 그 수고의 노정에서 하나님에게 충성을 맹세하다가도 그 맹세를 저버리고 저버려 하나님에게 슬픔을 가해 내려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단번에 복귀할 수 없는 하늘의 곡절이 있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잘못되어 천지를 뒤집어 놓은 것을 복귀해 가기 위해서는 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참된 시조가 될 수 있는 한 중심을 찾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헤매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중심을 세우기 전에 그 중심을 받들 수 있는 외적인 터전을 준비해 나오면서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기나긴 섭리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사명이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4천년 역사를 통하여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선민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분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인해 역사는 엇갈리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은 사망의 세계로 떨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던 메시아는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제2 이스라엘을 수습하여 제3이스라엘을 세움으로써 이 땅에 새로운 세계적 가나안을 복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또 오늘 우리가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하나님과 선조들과 우리 자신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오늘날 이 시대는 제1 이스라엘 시대가 아니요, 제2 이스라엘 시대도 아니요,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향하여 나아가는 제3 이스라엘 시대,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해 모진 투쟁을 하여 승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하늘의 명령과 더불어 넘어가야 할 중차대한 시기입니다. (13-173, 64.3.15)
  
  
복귀와 복귀섭리의 목적
  
본래 복귀라는 명사는 우리에게 기쁜 명사가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명사가 필요하게 되었고, 구원받아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복귀라는 명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죽음 가운데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서 메시아, 즉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던들 구원이나 복귀, 구주라는 명사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나, 타락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사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소망의 실체로, 당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실체로 지었으나,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소망도 이상도 심정도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사탄세계의 소망과 사탄세계의 심정이 남아졌습니다. 그러기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았으나 원치 않는 원수의 품에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로서 지었지만, 타락함으로써 그 존재는 하나님 앞에 상심(傷心)의 존재가 되었고, 후회와 원망의 상징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원한을 남긴 인간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지 만물을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지었고, 원리 법도를 통하여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기반이 되고 뜻이 남아 있는 한 지었던 만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파괴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만물과 인간을 파괴시켜 버리면 하나님은 뜻을 세웠던 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하고, 심정을 세웠던 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세계와 인류를 다시 본연의 뜻과 심정 앞으로 세워질 수 있는 만물과 사람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 인간 한 개체를 복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타락한 전체 인간을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위치로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품을 떠나 원수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천지 만물을 하나님 앞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복귀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복귀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는 소망도 이상도 영광도 없는 것이요, 당신의 심정으로 지은 만물과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함이요, 당신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행복의 세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광의 터전, 생명과 사랑과 승리의 터전 위에서 온 우주 만물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하면서 영원무궁토록 천국 생활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천국 환경을 만들어야만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목적이 이루어진 입장이 되기에 이것을 목표로 하여 복귀의 역사를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13-175, 64.3.15)
  
 

2. 하나님의 공식 섭리노정
  
신과 인간이 합하여 역사를 엮어 나온다
  
일반 사람들은 역사(歷史)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활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생활이라 하면 개인의 생활도 있겠고, 국가의 생활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지도하는 주권자의 생활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한 나라의 역사라 하면 그 역사는 주권자와 그 나라를 중심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통치권내에서 개인이 움직이는 것이 국가적 사건과 동반하게 될 때 그 나라의 역사로 남는 것이라고 일반 사람은 보고 있습니다.
신(神)이 계시다면 신이 보는 역사는 어떨 것이냐? 물론 인간들이 보는 그 역사관에 신의 섭리사가 들어갑니다. 신의 섭리사는 종교 배경을 중심삼은 역사입니다. 종교는 시대 양상에 따라 역사시대를 거쳐오는데,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시대로 발전해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갑니다. 
세계의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보면 동서남북에 위치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종교권이 있는데, 역사는 반드시 종교라는 배후를 중심삼고 인류를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를 성사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책임이요, 신이 있다면 신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신과 인간이 합해서 역사를 엮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때, 일반 사람이 보는 역사관보다도 역시 종교를 배경으로 한 신의 섭리관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과 일반 주권자는 신의 섭리관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종교권내에 있는 사람들도 신의 섭리관을 확실히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근본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왜 태어났고, 어떻게 돼 가지고 이와 같은 역사시대를 거치고, 또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떠한 원칙을 통해서 방향이 설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방향이 확실하게 설정되지 않은 입장에서 역사를 따라가는 인간들은 그 결정적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인간은 그런 입장에 있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역사관은 섭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문화권을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절대적인 신의 이상, 곧 신의 뜻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신의 뜻, 신이 지향하는 목적은 인류를 파탄의 와중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해방과 평화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종착점을 향해서, 통일된 세계를 향해서 역사는 움직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73-78, 88.2.7)
  
  
하나님이 이끌어 온 6천년 섭리역사
  
인간이 타락한 그 날부터 이 땅 위에는 고통과 슬픔과 비참이 가득 찬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계획한 본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을 원치 않았고, 인간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비참한 역사,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본래 소망하였던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 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하여 이 타락한 세상을 수습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곧 복귀의 길이요, 구원섭리의 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섭리하는 하나님은 이 땅에 대한 모든 고통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입장에서는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그 고통권내에 들어가 책임을 지고 대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대응의 노정 위에 하나님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에 인류의 슬픈 역사에 동반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구하는 데는 어떠한 기준에서 구할 것이냐? 전체적인 기준에서 온 세계를 한꺼번에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앞에 설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있기 때문에, 터를 닦고 택한 사람을 세워서 하나의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복귀의 순서를 거쳐가면서 섭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기준에서 섭리할 수 있는 환경과 시대적인 배경을 만들어 놓고, 전체적으로 구원함으로써 복귀섭리 완성의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입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에 있어서 노아시대, 혹은 아브라함․이삭․야곱시대는 어떠한 시대였는가?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은 섭리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개인과 가정의 섭리시대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과 인연맺은 전통과 심정적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전통과 가법을 세운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민족적인 절개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절개를 세우지도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시대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4백년 애급고역 기간을 통한 이스라엘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약속했던 민족 복귀의 뜻을 성취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이루려던 뜻을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서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 당대에 민족적인 복귀를 완결 짓지 못하고, 환경을 갖추지 못하여 하나님은 다시 각 시대 시대마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민족을 이끌어 나오셨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서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시대를 거친 다음 남북조 분립시대를 거치고 바빌론 포로 귀환시대 210년을 거쳐 메시아 강림 준비기간까지 민족적인 복귀의 기준을 완결 짓기 위한 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기 전까지 역사와 더불어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적 기반 위에 주권 국가를 세워 놓고, 민족 정신과 내적 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유대교는 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고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합하여 민족적인 복귀의 기준을 완결지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올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해야 할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민족적인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이 무너짐으로써 예수님은 세계적인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유대교와 일치단결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섭리, 구원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민족적인 터전을 갖추어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고스란히 바쳐드렸다면, 그리하여 예수님이 민족 전체를 지배하고 주관하는 입장에 설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출발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낼 때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아의 목적과 그를 보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소원이 일치되어 메시아와 연결되었다면,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원이 성사되었을 것이요, 민족적인 소원이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새 시대에 하나님이 축복한 제사장의 이념을 갖춘 선민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망을 알지 못하고, 메시아와 일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복귀의 터전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민족기준을 중심삼고 국가의 기반을 거친 후 오늘날 기독교를 통하여 전세계로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이것이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해 나온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전체적인 기준을 세워 이 천지를 하나님이 이상한 창조목적의 세계로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이끌어 나온 섭리입니다. (14-47, 64.5.3)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에 치밀한 분이기 때문에 맹목적인 섭리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원칙에 따라서 새로운 세계까지 섭리의 결과를 바라보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무리 봐도 선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은 이 악한 세계를 그냥 둘 수 없어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사탄, 즉 선한 신(神)과 악한 신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그 절대자 앞에 반대되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그 반대되는 존재를 일시에 제거시켜 버리면 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사탄이 본래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면 이원론(二元論)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한 하나님이 아무리 인간을 구해서 선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악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남아질 것이고, 또 악은 언제나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이라는 것은 옆에서 들어온 것이지, 하나님이 사탄, 즉 악을 지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원수까지도 용서하라는 분이지만, 사탄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은 사탄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결국 구원섭리, 즉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 하면, 사람에게서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섭리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사탄주권 세계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3-26, 72.2.6)
  
  
원죄를 어떻게 뿌리뽑을 것인가
  
우리에게 들어 있는 원죄를 어떻게 뿌리뽑느냐? 하나님은 본래 인간에게 원죄가 있게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원죄가 옆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원죄를 심어 놓은 존재는 누구냐? 그 존재가 원죄를 개인에게 심고 가정에 심어 번성케 해 가지고 세계에 퍼뜨려 놓은 주인, 즉 원죄를 심어 놓은 주인이기 때문에 그가 세상의 임금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심어 놓은 원흉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느냐, 그 존재는 지상에 있었던 존재냐, 영적인 세계에 있었던 존재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2장에 󰡐큰 용이 하늘에서 내어쫓기니 옛 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니, 이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결국 큰 용은 옛 뱀이고, 옛 뱀은 마귀요, 마귀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우리 인간 시조가 뱀에게 꼬임을 당해서 타락을 했다고 비사(比辭)로 말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뱀이라는 존재는 땅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했으니 하늘에 있던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뱀이 인간을 꼬였다고 한 말은 결국 사탄이 된 마귀가 인간을 꼬였다는 말이요, 그 마귀는 큰 용으로서 쫓겨난 뱀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탄은 영물(靈物)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담이 말하는 내용을 다 알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뱀은 세상에서 기어다니는 뱀이 아닙니다. 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문제가 되어 가지고 인류가 타락되었으니,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탄이 지은 죄가 어떠 어떠한 것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때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살인강도도 자기가 죄를 지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하게 행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인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 해도 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의 백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탄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잡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끌고 가 참소해서 감옥에 처넣든가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간음한 천사를 흑암에 가두어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가 범죄한 사실과 아담 해와가 범죄한 사실이 서로 관련성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손으로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가린 데는 하체였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손이요 입인데, 왜 손과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느냐? 욥기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렸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가린 곳이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불신하는 자들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악신인 사탄 마귀와 인간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53-27, 72.2.6)
  
  
혈통복귀가 안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다
  
성경을 보면 이상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둘째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빼내기 위해서 애급 민족을 칠 때에도 전부 장자를 쳤습니다. 
또 성경에 󰡐할례󰡑라는 이상한 법이 나와 있습니다. 사내 아이의 양부(陽部) 끝에서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탕감하는 법이었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섭리의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제물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쪼개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피를 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릇된 피가 우리 인간에게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빼내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예고한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와와 천사, 천사 중에서도 천사장과 불륜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해와는 자기와 관계맺은 천사가 자기의 남편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남편은 아담이라는 것을 알고는 철모르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해서 또다시 아담과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구원섭리를 그렇게 오랜 시대를 거치면서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사탄의 피가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피가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기 위해 언제나 이 몸을 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본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아들딸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아들딸의 자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 바라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던 것과 같이 창조의 위업과 창조할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인간이 아들딸을 낳게끔 지었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아담 속에 들어가시고 해와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도 구원의 자리에 나가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데,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 해와는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몸에 들어가서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인간인 아담 해와는 외적인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아담 해와의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그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인간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내 몸에 악이 침범하고 악이 들어올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되었더라면 여기가 곧 지상천국이요, 여기에서 살다가 천상천국에 갈 때는 개인․ 가정․종족․민족․국가 전체가 가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구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자밖에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핏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인간이 이렇게 되었느냐? 사탄과 더불어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그릇된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아 돌아가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53-29, 72.2.6)
  
  
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개관
  
사탄과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관계인가를 알아봅시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가정을 파탄시킨 사랑의 원수입니다. 이러한 사탄을 하나님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용서하는 날에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전부가 파탄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이어받은 개인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어 이렇게 혈통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사탄이 세계 만민의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 이치입니다. 본래 주인의 아들이 되어야 할 인간이 종의 아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길러 가지고 장래에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려고 하던 것을 사탄이 가로챘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간의 본래 이상을 빼앗아간 원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을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신음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길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품에 품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의 종들을 사탄에게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종과 같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양자와 같은 자리에 세워 가지고 점점점 끌어올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양자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양자권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그 양자권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세계에서 골라낸 하늘편의 종과 양자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종에서부터 종으로, 양자로 끌어올려 가지고 아들이 올 때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터 위에 메시아를 참감람나무로 보내 돌감람나무 밭과 같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선주권의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역사를 해 나온 개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양자밖에 못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직계 아들이 와서 접붙여주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준다고 약속하시고 2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과 이스라엘이 일체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이요,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53-31, 72.2.6)
  
  
하나님의 공식적인 섭리노정
  
아담 해와가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래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자신의 아들딸이요, 자신의 혈육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기에, 악한 사탄의 피를 받고 불법의 사랑으로 더럽혀진 몸들이 되어 하나님이 같이 있을 수 없기에 쫓아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와 더불어 천사장도 쫓아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노정의 공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지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루려 하던 성전인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3대 요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부가 사탄편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편에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으니 문제가 컸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빼앗아가고 훔쳐갔으니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장과 같은 종을 잃어버렸으니, 그의 후손 가운데에서 천사장이 충성하지 못한 것 이상으로 충성을 하는 종을 찾겠다고 탄식하며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종을 찾은 다음에 아들딸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에 사랑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신앙하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절대적으로 믿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했던 천사 이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탄세계에 있는 몸을 빼내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종을 가졌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종에서부터 양자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 가운데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을 저버리고, 사탄을 부모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기 위해 사탄세계로부터 빠져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를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접을 붙여줄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즉 원죄를 뽑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숨어 있기 때문에 원죄를 뽑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지 않고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원죄를 뽑아줄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기 위한 싸움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갈라놓고 섭리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사랑해서 아벨한테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됩니다. 사탄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아벨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뜻 맞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그 아벨은 타락한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그 아벨은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탄과는 영영 관계가 없는,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악한 주권내에서 해방을 받아 선주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가정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민족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나라가 가야 할 전통을 세워 대표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리에 세워진 아벨이 가인한테 맞아 죽었습니다. 아벨의 후손을 통해 하늘의 계대(繼代)를 이어 가지고 하늘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세우려 하던 하나님의 뜻이 깨져 나가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다시 1600년 동안 수고하여 노아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53-39, 72.2.6)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은 역사상의 선조들
  
여러분, 노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라면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겠습니까?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지어야 할 텐데 산꼭대기에 지으라니, 이것은 상식에 벗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 후손에게 반대의 명령을 했을 때 그것까지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120년은 고사하고 12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면 지을 사람이 있겠어요? 상식에 벗어난 일을 하라면 하겠어요? 그렇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계속 지었습니다.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인들이 와 계시지만, 만약 여러분이 매일같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 위해 나가는 노아의 아내가 된다면 후원하겠어요? 미국 국민 2억 중에 절반이 여자인데, 1억 가까운 여자들 가운데 120년 동안 그렇게 미친 노릇을 하고 다니는 노아를 남편으로 받들고 정성껏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의 부인이 불평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만 불평하는 날에는 영영 반대라는 것입니다. 영영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동네의 아는 사람들은 󰡐그 노아, 미친 영감!뭐 120년 후에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며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아들딸들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야 할 길로 알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반대하며 그 길을 막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불신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기준을 세우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억척같은 반대의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를 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탄세계로부터 빨리 격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반대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반대를 받으면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의 아들딸이 노아에 대해 불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고 있는 것을 그의 아들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여 뒷걸음질해서 옷을 갖다가 덮어주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어 40일 홍수심판을 거친 노아의 위업은 깨져 버렸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되지 못한 가정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40일 동안의 홍수심판을 보았으면 자기 아버지의 명령이 얼마나 훌륭하고, 자기 아버지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알고, 그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고, 또 그 아버지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하늘같이 모셔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습관성을 가지고 아버지를 비판하여 종의 종이 되는 억울한 역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우상 장수의 아들입니다.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야! 아브라함아, 너의 집에서 나오너라󰡑 하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말도 하지 않고, 어디 가면 잘 산다는 보장도 없이 자기가 살고 있던 고향산천인 갈대아 우르를 전부 다 버리고 떠나 국경을 넘는 집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오라면 나오는 것입니다. 나온 후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나온 것을 후회하거나 하나님을 대해서 원망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면 또다시 타락한 아담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담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무리 끌고 다니고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하리라󰡑고 축복해 준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받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인간세계에 없는 놀음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란 땅으로 도망가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21년 동안 싸웠던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를 받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랑의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죽음 앞에 가일보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옛날에 자기가 호화롭게 살던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고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 동안 단지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택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도 자기의 사랑하는 집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가정, 세상의 인연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절대시하며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아담 해와보다 더 훌륭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 천사장 이상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기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내몰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면, 그곳은 석청이 많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언제나 메뚜기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30년 동안 살면서 먹을 것이 없으면 마을에 가서 얻어먹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방네에 미친 녀석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가 골목을 다니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면서 별의별 흉을 다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던 선지자들을 정상적인 길로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세워야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갖은 수난을 다 겪게 한 것입니다. (53-41, 72.2.6)
  
  
왜 메시아가 다시 와야 되는가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도리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게 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예수님을 탄식하게 한 죽음의 형틀이지 구원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구원의 길이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하던 것과 꼭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땅 위에 주권을 갖춘 나라를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해 놓고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오늘날의 기독교는 땅 위에 어떠한 주권국가를 갖추어 놓고 그 기반 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입장에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합하여야 합니다. 내 교파니 네 교파니, 구교니 신교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악주권을 이루고 있는 사탄세계에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선주권의 터전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 다음에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신부가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을 이 세계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주권을 만들어 가지고 인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 지구성에서 몰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사탄 마귀는 누구냐? 우리 인류의 참부모가 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가로채 가지고 거짓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원수요, 역사이래 우리 인류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살림살이의 터전인데도 불구하고 악한 마귀가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양자의 입장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양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목사나 신부들 가운데 󰡐나는 예수님을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잘 믿던 사도 바울이 결혼을 해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 아들딸이 예수님을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낳은 아들딸은 또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구세주 없이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아, 다시 말하면 재림주가 이 땅에 와야 됩니다. 양자와 같은 입장에서 아들이 되려면 돌감람나무와 같은 우리 신자들이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으려면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53-34, 72.2.6)
  
  
주님의 출발은 원죄 없는 가정에서부터
  
여러분은 지금 원죄를 공중에 갖고 있습니까, 몸에 갖고 있습니까? 땅 위에 있는 몸에 갖고 있습니다. 몸에 있는 원죄를 빼내기 위해서는 재림주가 구름을 타고 와서는 안 됩니다. 재림주는 지상에 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과 육이 합한 하나의 주권국가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이 지구성에서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 마귀를 추방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누구나 다 원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종족도 없습니다. 민족도 없습니다. 국가도 없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출발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하나의 신부를 찾는 가정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영육 아울러 원죄를 벗어난 가정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안 나오는 것이요, 세계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이루려 한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거기에 선 부모는 참된 부모가 됩니다. 또 그 가정은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입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 가정의 후손입니다. 이러한 뜻을 창세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와서 신랑신부의 이름을 세워 가지고 다시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 신랑은 누구냐? 완전한 참아버지로 오는 분입니다. 그 신부는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어머니로 등장하는 분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해 버렸으니, 그것을 다시 찾아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어린양 잔치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된 부모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타락한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모델 케이스로 하나의 가정이 이 지상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새로운 이상세계가 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가 출현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지은 타락하지 않은 에덴이요, 이 지구성입니다. (53-36, 72.2.6)
  
  
3. 새로운 메시아와 섭리역사
  

구원섭리는 아담 하나 찾기 위한 일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많은 외형적인 종교를 세워 나왔지만, 그것은 장래에 이상적인 아담 하나를, 벌려 놓은 그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 하나의 요소를 전부 다 집약해 가지고 아담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나 유교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모든 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본래 하늘이 이상 하였던 타락하지 않은 한 사람의 가치를 거기서 뽑아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와 하나님이 단 하나의 타락하지 않은 그 이상적인 인간을 비교해 볼 때,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된 아담 해와와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의 가치를 비교해 보게 되면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느냐? 타락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본연의 아담의 모습이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결국 아담을 재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아담이 메시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메시아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 인류가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오고, 수난 길에 부딪히면서 극복하며 개인에서부터 가정․국가․세계까지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은 단 하나 이상 하였던 재창조의 완결을 표방한 완성된 아담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77-42, 75.3.30)
  
  
사탄이 있는 한 메시아는 와야만 된다
  
메시아라는 말은 곧 구주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류가 자기를 구해줄 수 있는 주인공을 바라게 된 것이 기쁜 사실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메시아가 필요 없습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기를 희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또 지옥에 간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타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주가 절대 필요합니다. 이 끝날에 있어서 기독교 신자들은 주님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메시아가 와야 되느냐, 안 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확실히 󰡐그렇다󰡑, 󰡐안 그렇다󰡑 하는 결정을 해놓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교파 중에는 재림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는 데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심판을 하고 택한 자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야만 되는 것은 결국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 최후의 목적은 악을 굴복시키고 인류를 타락시켜 나온 사탄 마귀를 처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지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사탄 마귀를 용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빼내서 구원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하더라도 끝까지 용서해 가지고 구해 주기 위해서 그러한 말씀을 한 것이지,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류의 원수인 사탄을 용서해주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도 사랑의 중심 존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떻게 되어 사탄 마귀를 용서할 수 없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든지 하여튼 용서해서는 안 될 죄를 지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반대되는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어떤 유명한 한 목사는 사탄 마귀는 본래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막아 오고,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 신자들을 천국에 가지 못하게 막아 온 이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면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도리가 없다고 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섭리해 온 역사에서 아직까지도 제거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사탄을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의 힘으로 제거하고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가서도 또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탄과 싸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싸워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어디서 왔느냐? 사탄 마귀가 없다면 예수님도 올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니 구원섭리니 하는 것도 필요 없습니다. 이 모두는 사탄 때문에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있는 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계속되는 것이요, 사탄이 있는 한 구주는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탄이라는 존재는 기필코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 가운데에서 생겨났다고 봐야 됩 니다. (53-192, 72.2.21)
  
  
사탄의 정체
  
타락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장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병이 났다는 말입니다. 누가 타락시켰느냐? 사탄 마귀가 동기가 되어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탄 마귀의 정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사탄 마귀가 저지른 정죄의 근본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사탄 마귀를 처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범죄한 자가 자기 죄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하게 죄짓지 않은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작은 소년이라도 그 사람이 죄를 범하는 현장을 보았다면서 죄를 지적하게 되면 그 범죄자는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굴복시키려면 사탄 마귀의 정체를 파헤쳐 가지고 천상과 지상에서 추방운동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의 거처(居處)는 하늘이었습니다. 지상(地上)이 아닙니다. 그 사탄을 옛 뱀이라고 했습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뱀이기 때문에 옛 뱀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그 뱀, 즉 옛 뱀이 마귀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뱀이 사탄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뱀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알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말하는 것을 알았으니 그 뱀은 영물(靈物)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땅에 기어다니는 뱀은 아닙니다. (53-194, 72.2.21)
  
  
인간과 천사의 범죄 내용
  
그러면 옛 뱀, 즉 사탄 마귀가 우리 인류시조를 타락시켰다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문제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게 되면 󰡐간음을 행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사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 마귀가 범죄한 죄목은 간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탄 마귀가 인류시조를 타락시킴으로써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이 우주를 지은 주인공이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을 제쳐놓고 어떻게 사탄이 인류를 주관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임금이 됐느냐? 이것은 매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선한 하나님이 주관하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가 아니고, 악한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惡主權)의 세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악주권, 사탄 수하(手下)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우리 인간이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죄이기에 인류가 수천년 동안 그 죄를 계승받아 나와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이 원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원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피의 공로로써 완전구원을 얻었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목사님, 신부님 혹은 어떤 독실한 신자가 있다면 그 아들딸은 예수를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예수님을 잘 믿는 사도 요한 같은 사람이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딸이라 하더라도 역시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인간 가운데 있는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의 뿌리를 심어 놓은 타락의 기원이 무엇이기에 그리도 지독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혈통적인 문제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간음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음을 하는 데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과 천사와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가 범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는 혼자 할 수 없다고 했으니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해와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데는 사탄을 동기로 하여 해와와 아담에게도 계통적인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그 다음 손으로 따서 입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입이나 손, 눈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얼토당토않은 부분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간음했다는 사실과 해와가 하체를 가린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공통된 내용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부끄러운 것을 깨닫고 아담한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해와는 천사와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고 보니, 자기의 본남편이 천사가 아니고 아담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할 자기 자신이 두려우니까 자기가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하여 아담을 유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 둘이 관계를 맺고는 둘 다 하체를 가리고 숨었습니다. 가렸다는 사실은 결국 부끄러운 곳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없는 허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31장 33절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리었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얼굴에 무슨 흠이 있으면 가리려고 합니다. 그 흠을 가리려고 하는 것은 본성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아담 해와에게 흠이 생긴 곳은 입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눈도 아니요, 하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 성싶다고 하는 관점에서 또다시 성경을 참고해 봅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이 불신하는 사람을 대해서 책망하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탄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그것은 뱀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요, 뱀은 사탄과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꾸며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사탄 마귀에 의해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탄의 피를 받은 후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에는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이 제일 무서워하는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53-195, 72.2.21)
  
  
사탄의 피를 빼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문제, 이것을 어떻게 수선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 인간만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수천,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해결을 못 보고 섭리역사를 연장시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고충을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탄의 피를 빼내지 않고는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의 인연을 발견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가려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늘의 생명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간파하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니고데모는 󰡐선생님이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유대인의 선생이면서도 그것을 모르느냐󰡑고 면박을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나오던 하나님의 뜻과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내정(內情)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성경에 보면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차자만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인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할 때,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해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셉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右手)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하자 야곱은 󰡐나도 안다󰡑라고 단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할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구약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써󰡑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죄지은 만큼 탕감하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찌하여 하체에서 피를 빼야 되느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체의 피를 뺐다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서 뜻 앞에 섰다면 그런 범죄를 지어 사탄의 피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인데, 아담이 잘못하여 사탄의 피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남자는 피를 빼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제물은 사람 대신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피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죄악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갈라내지 않고는 거룩하게 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를 할 때에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합니다. 거기에는 허리를 잘못 쓰고 타락한 조상과 같은 무리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껏 씨름해 가지고 축복을 받게 될 때, 천사는 그냥 축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서야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환도뼈를 잘못 써서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을 탕감하게 되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조건으로 야곱의 환도뼈를 친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 문제를 보게 될 때, 선악과 하나를 따먹은 것을 부정하고, 그 동기를 씻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불륜한 사랑관계로 사탄의 혈통을 받아들여 가지고 사탄의 핏줄을 이어 온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53-197, 72.2.21)
  
  
메시아가 오셔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그냥 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구원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계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끌어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한테 이긴 사람,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선민권을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나은 돌감람나무 밭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만들어 가지고 그 백성들 앞에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의 참감람나무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천년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했던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어디로 올 것이냐? 이것은 인류의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을 때는 사탄과 혈연관계가 절대 없었습니다.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혈통의 인연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서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자의 배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다 사탄의 종자입니다. 이것을 맑힌 터전을 만들지 않고는 메시아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53-199, 72.2.21)
  
  
혈통복귀섭리
  
그러면 하나님은 이 그릇된 혈통을 맑게 하기 위해 어떠한 역사를 해 나왔느냐? 문제는 타락 때문에 이런 어려운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이어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고,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마음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아담 해와는 실체를 쓴 외적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아 이루는 것에 대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였는데,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야 더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도 혼자 계셔 가지고는 기쁨이 없으니, 그 사랑의 실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 우리 인류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와 가지고 부부를 이루었다면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처음에 태어난 아들, 즉 장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둘째 번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물이니 싸움이니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처음에 태어난 아들이 사탄의 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을 가지는 것이 본래의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를 사탄이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두 주인을 모시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사탄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 아들딸을 전부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번 사랑은 사탄과 관계한 사랑이요, 둘째 번 사랑은 타락은 했지만 아담과 관계한 사랑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은 본래 하나님이 허락할 수 있는 남편이요, 사랑의 주인입니다. 아들은 사랑의 열매이므로 그 아들을 전부 사탄에게 넘겨주면 구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위업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는 섭리를 하기 위해서 둘째 번 사랑의 열매인 둘째 아들을 하나님이 취하고, 첫째 사랑의 열매인 첫째 아들은 사탄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칙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둘째 아들로 하여금 어떻게 장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편을 쳤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을 받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아벨이 피 있는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인이 절대적으로 아벨을 통하여 일방적으로 돌아갔으면 거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천사를 지배해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가 아담 해와를 지배함으로써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편에 있는, 하나님편에 있는 둘째 아들을 통해서 천사장편에 있는, 사탄편에 있는 가인을 굴복시킴으로써 탕감을 하자는 것입니다. 아벨이 그런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기쁘게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쁨을 돌려드리는 아벨을 대해서 가인은 자기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고 섭섭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벨을 사랑하고, 그 아벨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거기서 구원섭리의 발판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아벨을 원망하면서 때려죽였습니다. 결국 천사장이 아담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편 천사장의 입장에 선 가인이 하늘편 아담의 입장에 선 아벨을 때려죽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육 죄악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형의 자리에 서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입장에 있는 아벨이 앞 자리에 서고 가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아벨을 섬기게 되면 저끄러진 것을 뒤집어 가지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3-200, 72.2.21)
  
  
장자복귀섭리
  
죄악의 열매를 맺은 뿌리의 터전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바꿔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 아벨을 통하여 바꾸어 놓으려던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점점점 좁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형제의 싸움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형제의 인연을 만들어 가지고 돌이켜 놓자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랑의 씨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두 사랑의 씨가 됨으로써 갈라졌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사랑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몰아넣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때에 했느냐 하면,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시대에 했습니다. 죄악을 심은 근본 중심자는 해와요, 그 열매로 맺힌 자는 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의 협조를 통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 뱃속에서 그들 형제끼리 싸웠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하늘 앞에 나아가 󰡐하늘이여, 이 아기들이 싸우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하니, 하늘에서 가라사대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느니라. 그 중에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하늘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기업, 다시 말하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계대를 진실로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늘의 축복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데 축복을 해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알아 가지고 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도록 했습니다. 사탄이 해와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빼앗아 갔으므로 사탄 앞에서 장자를 빼앗아 나오는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양가죽을 쓰고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이삭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자리를 허락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섭리역사가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쌍태에서 태어난 쌍둥이는 동생이나 형님이 슬퍼하거나 하면 감정이 통한다고 합니다. 야곱과 에서를 그렇게 바꿔치기는 했는데, 태어나 가지고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만일에 에서와 야곱이 40대에 바꿔쳤다고 하면 그전, 즉 복중시대에서부터 40대 전까지는 사탄권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복중에서부터 형제의 핏줄을 바꾸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유다 시대에 이뤄졌습니다.
야곱의 아들 가운데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유다의 아들 가운데에서 그 누가 축복의 계대를 이을 줄 알고 기다렸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해 가지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 36장에 나와 있습니다.
다말은 아기를 배기 위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했습니다. 사탄세계에 대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생명을 받을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해산을 할 때, 먼저 한 아들이 나오려고 손을 내밀어서 산파가 거기에 빨간 실을 맸습니다. 여기에서 끝날에 공산주의가 출현하는 원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나오려는 형을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즉 세라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래서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심어졌던 두 갈래의 줄기를 비로소 어머니 복중에서 바꿔치기한 결정적 터전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53-202, 72.2.21)
  
  
혈통이 복귀된 터전 위에서 태어난 예수님
  
다말의 아들과 같은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은 하늘의 맑은 혈통이 예수님 때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탄세계의 나라가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하늘편에서도 국가기준을 만들 때까지는 메시아가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가 올 것을 약속해 가지고 국가 형성의 기대(基臺)를 이룰 때까지 기다려 온 것입니다. 
마리아도 다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시기는 약혼시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기에 사탄이 그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난 예수님에게는 다말을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의 핏줄을 맑힌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 자기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하더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탄의 핏줄을 전환시킨 깨끗한 내적 혈통의 터전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처음 나오신 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라고 하였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핏줄로 말미암아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를 배후에서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역사상의 그 누구도 안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교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탄의 더러운 피를 맑혀 가지고, 혈통을 전환시켜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그 누구도 이러한 배경을 받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 앞에 희망 중의 희망이요, 생명의 새로운 기원과 부활을 맞을 수 있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53-204, 72.2.21)
  
  
재림주는 육신 쓰고 지상으로 오신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그 돌감람나무 밭에 하나의 참감람나무를 심어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적으로 일시에 잘라 가지고 접을 붙여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감람나무 동산을 이루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접붙인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접을 붙이고, 가정적으로 접을 붙이고, 종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민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국가적으로 접을 붙여 가지고 그 중심의 자리에 서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감람나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상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신부를 택하여 지상에서 안팎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가정적 기틀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틀을 준비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과 유대교를 세워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성경의 내용을 보게 될 때, 예수님이 그러한 입장으로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이제는 유대교인들도 믿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 분이 절대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참감람나무로서 이 땅 위의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고 가셨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약속으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지상기반, 즉 4천년 동안 수고한 터전을 잃어버리고 기독교는 영적인 천국을 숭상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메시아가 다시 오지 않으면 우리는 참감나무를 접붙일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시는 끝날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공중으로 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천국문 열쇠를 주고 가셨습니다. 천국에 못 가게 한 것은 공중이 아니라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양자밖에 못 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양자가 아들을 통해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아들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양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돌감람나무 밭은 영적인 밭입니다. 이스라엘 선민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실체의 돌감람나무 밭이 지상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선민권을 이어받은 주권국가가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 단체도 없으며, 교단이나 개인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주어서 준비하는 일을 하늘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같은 사람이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류 앞에 새로운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을 보게 되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오시는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아를 맞지 않으면 우리는 접붙임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실 때에는 틀림없이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메시아가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53-206, 72.2.21)
  
  
4. 선악의 일선과 섭리역사
  
  

인류역사란 선악의 투쟁역사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며 사랑할 수 있는 조국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 지구성은 우리의 조국이 되었을 것이고, 그 조국을 소위 지상천국이라 하겠습니다. 그 조국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모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어서, 만민이 형제지간이 되어 한 가정의 식구와 같은 대가족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이 지상천국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던 인간들이 육신생활을 마치고 영계에 가서 천상천국을 이루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인간들의 본향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지상에 조국인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천상천국도 이루어지지 않아 누구나 육신생활을 마치고 영계에 가지만 천상천국에 들어간 인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졌고, 부부가 하나되지 못했으며, 부부와 자식이 하나되지 못한 가운데 모든 것이 갈라져서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가 사탄 주관권내에 떨어지게 됨으로써 분열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 타락세계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갈라짐으로써 정반대의 입장에서 사탄에게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지구상에 흩어졌고, 기후에 따른 한대․온대․열대 지역으로 확산되어 백인종․황인종․흑인종이 되면서 분열된 세계를 이루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색인종으로 분열된 세계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에 이르기까지 투쟁의 역사를 전개시켜 나왔습니다. 
인류역사는 분열로 인한 전쟁이란 과정을 통해서 점차로 통합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싸움은 반드시 선한 편과 악한 편으로 나뉘어서 했는데, 악한 편은 사탄이 조종해 나왔고, 선한 편은 하나님이 역사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타락한 이후의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이지만, 그 배후에는 사탄과 하나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중심하고 치른 싸움에는 사탄과 하나님뿐만 아니라 영계의 선령과 악령들까지 총동원되어 협조하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선한 편은 선령이 협조하고, 악한 편은 악령이 협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의 싸움은 지상과 영계가 총동원되었고, 그것은 타락한 인간을 빼앗아 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161-12, 87.1.1) 
  
  
선악이 불분명한 이 땅 위에 확실한 원칙이 있어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선악에 대한 것을 확실히 규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이냐? 이것을 확실히 가릴 줄 알아야 내가 현재 선한 편에 있는지 악한 편에 있는지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에는 어떠한 사람을 막론하고 전부 다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에 섞여 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뒤섞인 데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자신은 선한 사람인 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게 되면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면 미국의 헌법이 선과 악을 규정하는 것은 그 나라를 중심삼고 같은 방향에, 같은 결론에 도달해야 됩니다. 󰡐전부 다 이렇게 가야 된다는 길에 반대되면 전부 다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헌법은 누가 세웠느냐? 그 나라의 국회를 통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그 나라 국민의 의사를 대표해 가지고 주권자의 의사와 합해져서 그것이 세워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과 주권자의 두 가지 의사에 의해서 헌법이 결정된 것입니다.주권자와 국민에 의해서 국가의 선악의 기준이 결정된다면, 이 우주의 선악의 기준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느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만일 이 우주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으면 그분은 우주의 주권자요, 우주의 주인공입니다. 가정도 그와 같습니다. 그 다음엔 국민을 대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주권자와 세계 사람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법, 하나의 헌법을 세워야 된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래서 이 우주의 선악을 가리는 헌법이 나와야 된다는 말도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각 나라에는 그러한 법과 모든 것이 그 나라의 주권자와 국민의 의사에 의해서 설정되어 있지만, 이 대우주의 세계인들과 대우주를 주관하는 주권자가 합한 공동의 의사에 의해서 우주의 불변의 헌법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양심이 변하지 않고, 인간의 이상과 희망이 변하지 않는 한 인류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인류가 기뻐할 수 있는 어떠한 헌법이 나와야 됩니다.
우리 양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양심이 변하면 안 됩니다. 양심은 절대적으로 선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몸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이게 수수께끼요, 문제입니다. 
양심은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종이나,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구분 없이 다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그런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것과 반대라는 것이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양심과 육신을 지닌 사람이 문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79-174, 75.7.27)
  
  
선한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어
  
그러면 󰡐나󰡑라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이렇게 몸과 마음을 가진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섞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많스빈까?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갈 수 있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선한 사람이 아니고는, 하얀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데 검고 악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 있어요? 선악이 섞여 있는 인간이 되어 가지고, 마음보다 악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어요? 
이러한 문제를 놓고 볼 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갈 자신이 있다는 그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분 앞에 나타나려면 완전한 것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악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면 하나님 자신이 찾아와서 만날 수 있겠어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못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들은 영원히 지옥 사람이요, 영원히 악한 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면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가르쳐줘야 되겠어요,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을 가르쳐줘야 되겠어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가르쳐줘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서 악한 인간들을 가르쳐 나오는 데는 누구를 통해서 가르쳐 나왔느냐? 아는 사람, 잘난 사람을 통해서 가르쳐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잘난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79-176, 75.7.27)
  
  
인간은 보다 선한, 하나님과 가까운 분을 만나고 싶어해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잘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소원입니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지도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승 같은 남편을 갖고 싶은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또 남자들은 언제든지 자기한테 지배당하고 가르침만 받는 여자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내적으로 지도할 수 있고,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상대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나를 지도했으면 내가 어느 동네의 동장을 만나기를 바라요, 혹은 군수를 만나기를 바라요, 도지사를 만나기를 바라요, 그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기를 바라요? 대통령을 만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뭘 할 것이냐? 여러분이 지방에 가게 되면 지방의 장(長)을 만나 같이 있고 싶고, 지방의 장하고 친구 되고 싶을 것입니다. 가령 군에 가면 군수, 도에 가면 도의 책임자하고 같이 살고 싶고, 친하게 지내고 싶고, 나라면 나라의 대통령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같이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게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까지 가진 모든 권력 기반, 모든 권위 기반이나 그의 모든 생활권을 내가 상대할 수 있고 또 가까우면 하나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면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나라에서 누구를 만나고 싶어해요? 어떤 마을의 이장을 만나고, 군수를 만나고, 도지사를 만나는 것도 좋아하겠지만, 꼭대기에서 밑창까지 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꼭대기에서부터 전부 다 통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하고 친해 가지고 대통령과 같이 마을에 가면 마을의 장과도 하나되고, 군에 가면 군수와도 하나되고, 도에 가면 도의 책임자하고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논리에 의해 진정한 사람, 선한 사람을 바라는 데 있어서 어떠한 사람을 원합니까? 인간세계의 어떠한 대통령, 자기의 노력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가진 그러한 사람을 원하느냐, 이 우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우주의 대통령을 원하느냐? 우주의 대통령을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까? 어떤 선한 사람을 만나고 싶으냐?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면 하나님의 직속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 결론입니다. 그분이 아니면 그분의 특사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 중에 제일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하나님 자신으로 나타나든가 하나님의 특사로 오든가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좋은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선한 사람 중에서 하나님이란 말을 하기 싫어하고 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오는 사람,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 못 된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런 사람 중에 어떤 철학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그 나라에 있어서 한 사람의 지식세계의 지도자는 될 수 있지만, 제일 좋은 하나님 앞에까지 갈 수 있는 지도자는 못 되기 때문입니다. 철학을 가지고는 죄를 알고 나쁜 것은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을 청산할 수는 없습니다. 가르쳐서 죄악을 알 게 할 수는 있지만, 청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청산할 수 있습니까? 철학을 가지고 청산할 수 있습니까? 철학자는 그것을 청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자는 어때요? 세상 사람들은 누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면 그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는 과학에 대해선 알 수 있지만, 인간세계의 악을 알아 가지고 죄를 청산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나의 길을 가르쳐주는 데에 있어서 나에게로 돌아오라고 가르치는 그 길만이 좋은 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앞에 제일 좋은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하나님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79-177, 75.7.27)
  
  
선악을 알고 죄악을 청산짓는 데는 종교 이상 위대한 힘이 없어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지배해 오지 않고, 예언가나 종교가들이 우주를 깨우치고 지도해 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민족이 다르고 풍습이나 습관이 다른 인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은 어떤 힘이냐 하면, 종교의 힘밖에 없습니다. 종교의 힘 이상 위대한 힘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게 최고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치의 힘 가지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싫어해도 강제로 하나된 모양을 만들어 역사적인 습관성을 길러 나가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본심이 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싫어도 󰡐이놈의 자식!󰡑하며 억지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불평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순전(純全)한 종교, 이상적인 종교는 자원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만이 역사시대의 정신문명의 기초를 세워 나왔다는 결론은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지식으로 전부 다 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이론적으로 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서구문명은 기독교문명권입니다. 틀림없이 기독교를 중심한 문명권입니다. 그 다음엔 힌두교문명권, 그 다음엔 회교문명권, 그 다음엔 극동문명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극동문명권은 유․불․선의 3교문명권입니다. 여기에 세계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종교 역사에는 혁명이 없습니다. 역사와 더불어 큰 변천이 없이 그냥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사(政治史)는 시대 시대마다 뒤넘이쳐 나왔습니다. 종교의 역사가 왜 변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원칙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좋아하니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칙에 가까운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79-179, 75.7.27)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 위에 있는 종교가 참된 종교
  
그러면 여러분의 소원이 뭐냐?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될 수 없으니, 선한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 선한 사람 중의 제일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이 아니면 하나님이 보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하고 같이 살고 싶고, 같이 일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나라를 두고 보면, 그 나라에는 대통령도 일하고, 장관들도 일하고, 도지사들도 일합니다. 또 군수도 일하고, 이장도 일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을 했다는 이상의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세계에서도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길이 제일입니다. 하나님 장관 같고, 하나님 도지사 같고, 하나님 군수 같은 사람 이상의 일을 했다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종교 가운데도 도지사 같은 종교가 있고, 장관 종교도 있고, 군수 종교도 있고, 이장 종교도 있고, 백정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일을 보면 이장이 하는 일이나 군수가 하는 일이나 도지사가 하는 일이나 장관이 하는 일이나 대통령이 하는 일이나 다 비슷비슷합니다. 󰡐요게 대통령이 하는 일이다󰡑 하고 알 수 있어요?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먼저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가 있지만,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중심한 종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 종교에도 장관급, 도지사급, 군수급, 이장급의 종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중에서 참된 종교를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는 당면 과제입니다. 심부름꾼이라든가 하는 그런 사람은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중에 참된 종교를 찾는데, 그 종교는 오랜 역사적 종교여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오래된 종교일수록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태초부터 역사과정에서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쭉 계속해 나와야 됩니다. 종교는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보다 긴 미래를 갖고 역사보다도 큰 일을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역사의 시작보다 위에 있고, 역사의 끝보다도 더 미래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79-180, 75.7.27)
  
  
신을 중심한 헤브라이즘이 역사를 지배해 나와
  
종교역사를 보게 되면, 지금까지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의 싸움의 역사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 역사의 싸움인 것입니다. 천사장과 하나님의 소망의 아들이 싸우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에는 헬레니즘이 헤브라이즘을 지배했고, 중세시대에 와 가지고는 이것이 거꾸로 되어 가지고 헤브라이즘이 헬레니즘을 지배했습니다. 그것이 실패했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는 헬레니즘이 헤브라이즘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즉 물질주의가 유심주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엇바꿔져 나왔습니다. (65-192, 72.11.19)
이와 같이 역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교차하면서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헤브라이즘이 등장하게 되었느냐? 또 역사적으로 왜 문제가 되었느냐? 종교 가운데는 하나님, 즉 유일신(唯一神)을 중심한 종교가 제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일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를 이어받은 기독교가 변천해 가지고 통일교회 시대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세상을 개혁하며 하나의 세계를 수습해 나오는 주류적인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또 왜 헬레니즘이 문제 되느냐? 인본주의 사고방식을 중심한 역사의 기원은 희랍의 인본주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제일 오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오랜 역사를 중심삼은 인본주의 사조와 신본주의 사조의 대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것이 지금까지의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헤브라이즘의 특징이 뭐냐 하면, 전통을 중심삼고 일관된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헬레니즘은 시대 시대의 환경에 따라 변천해 나왔습니다. 유대교가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천주교의 영화를 보게 되면, 전통이란 말이 나옵니다. 전통, 그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예수를 중심한 사상이기 때문에 변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주류적인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가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서 현대에까지 와 가지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는 사실로 보아, 하나님이 같이하는 종교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79-182, 75.7.27)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면 역사는 어디로 갈 것이냐? 선과 악의 종착점을 향해 가는데 투쟁하면서, 바꿔치면서 갑니다. 망하고 싶고,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선과 악이 대립하는 입장에 있는데, 대립하는 역사과정에 있는 우리 인간들이 싸우게 될 때 누가 지고 싶겠어요? 누가 망하고 싶겠어요? 누가 후퇴하고 싶겠어요? 우리 본성으로는 절대 원치 않지만 역사과정에는 원치 않는 슬픔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망할 줄 몰랐는데 망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우여곡절이 다리를 놓아 가지고 꼬리를 물어 우리 인생세계를 역사시대를 통하여 휩쓸어 갔고, 지금도 휩쓸고 있고, 앞으로도 휩쓸려 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인간은 어떠한 인간인가? 이것을 뚫고 나갈 수 있고 부딪치더라도 변할 수 없는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지은 어떠한 창조주도 사람 세계에 필요한 사람, 소용 가치가 있는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을 잡아다가 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러면 그 누가 역사를 꾸며 나오느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천하를 하나 만들려고 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사람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천하를 하나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이래서 이런 역사 가운데 서로 교차되고 엇바뀌어 나오는 발전 과정을 통해서 끝에 가서는 세계적인 악한 패, 선한 패로 갈라져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본심으로 말하면 우리가 절대 변치 않는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데, 그 하나의 세계가 오기 전에 세계사적인 악의 세계와 세계사적인 선의 세계가 나타나 가지고 하나 만들기 위한 치열한 전쟁, 투쟁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떠냐? 우리는 이미 세계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위주한 국가시대, 국가 제일주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유럽연합 등을 중심삼고 클럽을 형성한 것과 같이 연합기구 국가관을 형성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소련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련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중심삼고 󰡐우리는 유토피아의 공산주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지󰡑 하며 하나의 목적으로 딱 결속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변증법이라는 사상체계를 중심한 관을 세워서 󰡐개인 생활은 이렇게 해야 된다. 가정도 이렇게 가는 것이다. 종족이나 민족․국가․세계는 모두 이렇게 가는 것이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주창하여 하나의 목적 세계를 제시했다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위대한 제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런 제시를 하지 못한 역사시대에 있어서, 개인을 잡을 수 없는 역사시대에 처했던 모든 식자들은 마음이 바라는 변치 않는 하나의 세계, 가치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본성으로 되어 있고, 마음이 가려고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대중을 포섭하기에 좋은 기반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는 유심세계, 마음의 세계입니다. 즉 그 뿌리를 마음에 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산세계는 뿌리를 물질에 두고 있습니다. 즉 유물세계입니다. 두 세계는 서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선과 악의 싸움이 오늘날 세계적 무대로 확대되었는데, 그 싸움의 시조는 인간입니다. (139-93, 86.1.28)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결장인 한반도
  
여러분, 집안에는 마사 피우는 아들과 효자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마사 피우는 학생과 칭찬받는 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사 피우는 국민과 칭찬받는 애국자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인류의 군상을 지도하기 위해 성인의 도리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마의 도리를 따라 갱스터가 되어 가지고 세계를 파괴시켜 가는 그런 망국지종도 있습니다. 지나온 역사과정을 볼 때,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한 때는 악한 사람이 성하는 듯하지만 나중에는 선한 사람, 선이 승리를 해 나왔습니다. 역사를 두고 볼 때 이것은 공통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서 그렇게 되느냐? 여러분은 잘 모르지만 종교에서 말하는, 불교로 보면 악귀, 기독교로 보면 사탄이라고 하는 악마가 있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있는 반면 악한 악마가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사람들을 악한 데로 끌고 가는 주동적 세력권이 악마를 중심삼은 세력권이요, 선한 편을 중심삼고 선한 세계로 끌고 가는 하나님에 속한 이런 선한 권이 있습니다. 
이것이 투쟁을 계속해 가지고, 개인의 투쟁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의 투쟁을 거치면서 세계적 투쟁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결론이 된다면 최후에는 세계무대를 놓고 악마의 세계적 사상과 선한 하나님의 세계적 사상의 대결시대가 온다는 논리를 추리적으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악한 편이 바로 이 시대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입니다. 이것은 무신론적 물본주의, 즉 유물론입니다. 이것을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되면 유물주의라기보다는 물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것을 설명할 때 물본주의로 고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신본주의 시대가 망하고, 인본주의 혹은 물본주의가 나와 가지고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갈라져 지금까지 투쟁하면서 세계적 대결을 해 나오는데, 최후로 남은 초점지가 북한과 남한입니다. 
계몽사조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본주의를 결합시켜 새로이 유물론이 나왔고, 공산당을 중심한 소련의 유물론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며 유토피아 구상을 해 나오던 유물주의가 북한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유신론의 헤브라이즘은 중세에는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나오면서 영국에서의 산업혁명 이후 청교도를 중심한 유혈혁명, 피를 흘리는 혁명 과정을 통해서 기독교 재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산업부흥시대 이후 가솔린 문명을 중심삼은 시대에 대처한 새로운 종교운동, 제2 종교운동이 일어났는데, 요한 웨슬레와 칼빈을 중심삼은 신교와 구교가 대치되는 두 노선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교가 구교의 반대를 받는 청교도를 중심삼고 세계적 국경을 넘어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구교가 반대함으로써 구라파에 있는 새로운 신교 운동, 혁신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청교도를 중심삼고 국경을 넘어 규합해 가지고 형성한 신교 독립국이 미국입니다. 미국은 그야말로 신이 있다는 유신론적 기독교문명을 배경으로 세계를 지도해 나오는 하나님편에 선 나라입니다. 
통일교회 원리에서는 아벨편과 가인편을 말합니다. 이것이 대치해서 싸워 가지고 결국 지금에 와서는 다 끝났습니다. 미국 자체가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나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세속적 인본주의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제 기독교문화권이 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은 다 실험 필했습니다. 정치사상을 중삼삼고도 실패했고,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고도 다 실패한 형태를 갖추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치된 환경의 싸움이 우익과 좌익의 대결입니다. 이 싸움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란 뭐냐? 또 인류의 소망은 뭐냐?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화의 세계를 무엇을 중심삼고 이룰 것이냐? 공산당은 유물론을 중심삼고, 종교적 문화배경을 지닌 종교권은 유신론,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는데, 이젠 다 실험을 필해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204-16, 90.6.29)
  
  

5. 참을 찾아 역사하는 하나님
  
  
이 땅에 참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섭리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참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참된 연고로 그분의 손을 거쳐 지음받은 모든 것은 참된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참이기에 이 우주가 존재하는 목적도 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존재세계를 창조한 참된 주인인 창조주 앞에 모든 피조물은 참된 것으로서 영원히 존재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는 참된 분으로 남아 있지만, 창조함을 받은 모든 피조물은 참의 가치를 상실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참에서 시작하였으니 영원히 그 참의 가치를 노래하는 천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지가 되었던들, 오늘날 우리 인생의 어느 일면을 들춰보아도 참과 인연맺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그러하지 못하니 이 이상 슬픈 일이 없고 이 이상 근심된 일이 없습니다.
참의 주체 앞에 참의 가치를 중심삼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자기 존재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전체와 개체라고 하는 차이는 있을망정 그 가치에 있어서는 차이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가 되었던들, 오늘날 모든 존재물은 행복한 자리에 머물지 않으려야 머물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참된 분, 지극히 참된 주인이 계신 그 세상은 우리의 소망으로만 남아 있으니, 다시 그러한 세상을 찾아 나아가 지극히 참된 그분 앞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우리의 인생행로입니다. 
그러면 참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참이란 시작한 그날부터 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이란 그것이 존재하는 한 영원무궁토록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가치가 빛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러한 가치를 지닌 참을 만나 본 적도 없고 느껴 본 적도 없습니다.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분은 인간이 생활환경에서 참의 가치와 더불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참된 선의 세계로 다시 돌려놓기 위해 역사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요, 구주를 보내 이 억조창생(億兆蒼生)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0-122, 60.9.18)
  
  
참을 찾아 나온 인간
  
인간은 타락이라는 명사를 남긴 이후 알 수 없는 곡절의 노정을 거쳐왔습니다. 시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는 곡절의 역사과정을 피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이끌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인간들이 해결하려 하고 찾고 있는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념과 심정까지도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로구나󰡑 할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점은 아직까지 찾지 못한 채 살아 나왔습니다.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도 그렇게 나왔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도 참된 그 무엇을 찾고 있는데, 그 참이 무엇인지 해명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의 기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피눈물의 길도 개의치 않고, 죽음의 고개도 개의치 않고, 추방당하고 몰리는 불쌍한 자리도 개의치 않고 허덕이며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바라보는 목적지, 심중으로 찾던 안식처는 아직까지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 그리고 지상을 섭리하는 천륜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심정이 있다 할진대 과거에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 심정이 사무치게 바라는 것은 참의 주체가 되는 실존체가 해명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라는 명사를 빌려 말한다면,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으면 내가 그 하나님을 모시고 내 몸과 내 생활, 내 생명, 혹은 내 심정에 인연되어 있는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 그 중에서도 종교인들이 바라는 최고의 목표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참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 할 때에도 참에 귀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왔다 갔던 사람들도 이 목적을 향하여 움직였고,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고, 미래의 사람들도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움직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진대,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주인공을 대하여 노래할 수 있고, 그 주인공과 더불어 즐거워하면서 살 수 있으며, 그와 더불어 화락(和樂)하면서 심정에 취해서 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런 한 날이 온다 할진대, 같은 마음, 같은 심정, 같은 생명의 움직임을 갖고 있는 그 자체나 그 실체에 대해서 󰡐나는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에 설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 민족과 주의(主義)와 사조(思潮)를 넘어서서 어느 누가 참에 귀의하여 이 참과 더불어 살며, 이 참과 더불어 행하며, 이 참과 더불어 죽음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는 자신을 가졌다 할진대, 그 사람이야말로 인류역사가 바라던 참의 근원적인 실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참된 실체를 찾아 인류는 헤매 나왔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수십억의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참의 실체를 찾아 그와 더불어 산 사람, 그와 더불어 싸운 사람, 그와 더불어 즐긴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막연합니다. 어떠한 철학 논리를 들추어 봐도, 어떠한 종교의 경서를 들추어 봐도 명확한 해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내 몸을 통하고, 마음을 통하고, 심정을 통하고, 모든 이념을 다 동원해 보아도 나를 새로이 일으킬 수 있는 참을 찾아서 거기에 화하였다고 자인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다 공론이냐, 혹은 망상이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인류가 해명해야 할 최후의 문제입니다. 해명되어야 할 참과 해명해 나아가야 할 내 자체와의 관계는 󰡐그가 나요 내가 그다󰡑 할 수 있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참이 하늘이라 할진대, 그 하늘은 나와 같이, 나는 하늘과 같이 화할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이 참이라 할진대 그 예수님과 나, 나와 예수님은 하나로 화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감정적인 모든 것, 인식적인 모든 것까지도 같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참의 감촉이라 할까 촉감이라 할까, 그런 것이 내 개체에서부터 창조적인 존재세계, 즉 만물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의 인간에게까지 느껴져 같이 움직이고 감촉하면 온 우주와 더불어 노래할 수 있는 자체, 그러한 자체가 천국에 살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혹은 하늘이 찾고 있는 참된 아들딸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76, 59.7.19)
  
  
타락인간의 실상과 예수님
  
오늘날 우리가 참을 찾고 있으되 참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타락한 까닭입니다. 타락의 한을 가진 인류, 타락된 혈통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 타락한 선조의 후예인 내 자체요 우리요 인류임을 공인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타락이 무엇이냐? 떨어진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바라는 이념의 요소와 대치되는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 타락입니다. 
싫은 것을 피하고 좋은 것, 슬픈 것을 피하고 기쁜 것, 어려운 것을 피하고 행복스러운 것을 바라는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역사와 더불어 엉클어지고 엉클어져서 오늘의 나까지 얽매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한스러운 처지에 있는 나와 여러분에게 참된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제2의 나의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 모습을 불러 세워 나를 냉정히 비판해야 할 한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이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하여, 미래의 역사에 대하여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넓게 가지라, 네 마음의 바른 목적인 선을 지향하라, 본성의 마음에 응할 수 있는 몸을 가지는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하라고 권고해 왔습니다. 
또 예수님은 말하기를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 마음으로 하늘의 심정을 통해라. 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라. 그리하면 천국의 중심을 대신한 신랑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 뚜렷한 양심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가 없었음을, 천륜(天倫)과 천정(天情)에 동하여 나는 물론 인간의 모든 심정을 주관할 수 있는 용자가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며 천국에 가려면 󰡐먼저 나 예수를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갖고 있는 것을 다 버려라󰡑,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하였습니다. 또 󰡐갖고자 하는 자는 잃어버리고 잃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갖는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내용을 가지고 오셨던 구주는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마음 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몸이 몸 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내 심정이 심정 된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이 한탄스런 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 땅에 와서 양심의 기준을 세워 이 몸, 즉 육신(肉身)을 정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경과하였으나 아직까지 어느 누구 한 사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그 하나의 승리의 기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 한스러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천정에 사무친 심정을 통해 마음이 몸을 지배하고 나설 수 있는 확고한 중심을 갖지 못한 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천륜의 심정을 가진 하늘이 있다 할진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여 영원히 하늘의 심정 앞에 둘 것이냐? 이것이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하였습니다. 신부가 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은 인습에 젖은 땅 위의 양심기준이 아니요, 시대 변천에 따라 변하는 양심기준도 아닙니다. 땅 위의 인륜도덕에 화하고 그것을 입증하는 양심기준도 아닙니다. 또 땅 위의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런 신부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랑이라 하는 이 한 분의 용자 앞에 신부의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모습일 것인가? 신랑의 심정을 사모하고 체휼한 자는 영원한 양심기준을 세울 수 있고, 영원한 몸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방향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신랑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7-78, 59.7.19)
  
  
오늘날 인류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인류 문화는 발전해 왔고, 발전해 나온 그 문화는 20세기의 이 문화세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문제, 우리의 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내적 외적으로 복잡한 환경과 복잡한 조직형태가 나타났으나,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고 심정을 통할 수 있어서, 하나에 전체가 응함과 동시에 전체가 거기에 화할 수 있으며, 하늘땅이 영원히 즐길 수 있는 심적 기준이 되지 못하고 하늘땅이 한데 엉클어질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 심정이 찾고 있는 방향과는 판이한 방향으로 흘러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내 한 자체는 이제 외적으로는 끝에 도달하였고 내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공허한데, 나를 세울 수 있는 중심은 어디 있는가? 이것을 찾아 오늘날의 인류는 허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과 이념이 상통할 수 있는 심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마음을 주관할 수 있는 심정과 외적인 생활을 주관할 수 있는 육과 실제 생활을 조정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인류는 어느 시대에나 허덕이는 입장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7-80, 59.7.19)
그러면 오늘 우리 자신들이 사회 환경에서 참을 찾는다 할진대 어떠한 참을 찾고 있는가? 몸의 참을 찾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마음의 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더 큰 우주적인 이념과 통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참된 인연을 찾고 있습니다. 참된 환경과 참된 우주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참되기 전에는 참된 것을 감정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참된 가치를 지니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참될 수 있는 조그만 본질이라도 갖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을 찾아 나가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세워 인륜과 도덕의 방향과 일치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현실입니다. 
내 마음이 참을 헤아릴 수 있는 참된 입장에 서고 내 몸과 생활환경에서 참을 중심삼고 살 때, 거기에서부터 참은 나와 내 몸이 인연을 맺고, 나를 통하여 환경과 인연을 맺고, 환경을 거쳐 이 땅과 천상까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123, 60.9.18)
진정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하나님이 목표로 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현재 우리가 보는 이러한 문화의 세계가 아니요, 문명의 세계가 아닙니다. 문명을 바른 방향으로 지도할 수 있는 마음의 기준, 심정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하늘이 원하는 중심 되는 뜻이요, 우리 선조들이 후대 만민 앞에 세우고자 했던 기준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7-80, 59.7.19)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내 몸을 통할 수 있는 말씀이 떠나 버렸고, 내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말씀도, 내 심정과 더불어 영원히 지닐 수 있는 말씀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말씀, 즉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진리는 무엇이냐? 진리는 곧 말씀이라 했습니다. 또한 진리는 조직의 원칙이며 천륜의 근거입니다. 
지금까지 세계는 진리를 찾아 나왔으나 이제는 참된 말씀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나 참된 말씀이 나오지 않았으니 참된 생명의 실체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참된 생명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참된 사랑의 실체가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실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참된 우주관이 하늘땅과 더불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9-236, 68.1.15)
  
  
모험과 개척정신에 의해 섭리는 진전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싸워 나오고 계십니다. 개인을 정복하고, 가정을 정복하고, 민족․국가․세계를 정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싸워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 일신을 정복하고 자기 가정을 정복하기 위하여 120년 동안 싸웠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20년 후에 이 땅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노아는 󰡐일년이 지났으니 이제 119년 남았구나󰡑 하며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뜻을 품고 큰 뜻을 대하고 나오는 사람 앞에 한 번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 하나님에 대해 변치 않는 충절의 심정을 가지고 가정의 핍박, 사회의 핍박, 혹은 자신의 육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욕망, 즉 정욕이나 식욕, 또는 탐욕 같은 이런 복잡한 모든 것을 정복하여 승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은 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를 정복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정복이 무엇이냐? 말로 해서 안 되겠으면 때려서라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사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6천년 역사의 종말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전체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고 하나님 뜻 앞에 귀일시켜, 나로부터 전체를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춘 승리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자기 일신을 정복하기 위하여 모험을 하였고, 어떠한 어려운 길이나 어떠한 개척자의 길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는 옛날 선조들이 걸어 나왔던 그 환경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대해 나온 섭리시대였으나, 오늘 이 시대는 세계를 넘어서 천주를 대하여 섭리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떠한 모험이 있다 할진대, 6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나 이상 모험할 사람이 없다󰡑 할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됩 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자신을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가정을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가정을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사회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사회를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국가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국가를 붙들고 우는 자는 하늘 세계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고, 세계를 붙들고 우는 자는 천주를 건설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개인의 심정을 세계로 끌어올려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해명하고 하나의 세계적인 실체를 갖추었다고 장담하고 나설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신비스런 경지에 들어가 보면 그 세계는 모험에 의해서 교체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단계의 범위를 넓혀 가는 데에는 반드시 모험을 해야 됩니다. 목숨을 걸어 놓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리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가정의 기준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몸을 쳤습니다. 몸을 정복하기 위해 몸을 치기를 120년, 별의별 비난과 조소를 당하고 억울한 환경에 처해서도 노아는 하나님이 세워준 심적 기준, 󰡐하나님이 이끌던 그 심정에 사무친 것이 변할소냐?󰡑 하며 그 기준을 중심삼고 120년 동안 몸을 쳐 나왔던 것입니다. 
노아 가정이 끝까지 세상적인 욕구와 모든 조건을 치면서 민족을 흠모하고 나왔던들 하나님은 그 노아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 가정은 수고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모든 곡절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노아가 세운 심적 기준을 붙들고 그의 후손들이 민족을 바라보고 나갔던들, 그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텐데 노아 가정이 가정적인 뜻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 민족을 통하여 이루려던 하나님의 뜻이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뜻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진행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깨졌다고 개인을 붙들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천륜이요, 가정이 깨졌다고 해서 천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은 깨졌어도 천륜은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이 깨져 나가더라도 때는 가정을 세워 섭리하여야 할 때이기에 하나님은 개인과 가정까지 복귀하는 섭리를 하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이 깨졌다고 해서 거기에서 섭리를 지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회를 복귀하기 위한 때로 움직여 나갑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환경을 넓혀 가면서 섭리의 때를 맞추어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19-237, 68.1.15)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안다면
  
개인으로서의 노아와 그 가정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4백년 후에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또한 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다시 4백년 후에 모세를 세워 역사하면서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할 때와 같이 환경적인 조건을 맞춰 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의 법도를 세워서 이방 사람까지 끌어넣는 섭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해, 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옴으로써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애급에 때려 몰아넣고 연단시킨 것입니다. 때려 넣은 것은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 그것은 합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하나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대하고 있는 바로궁중은 원수다. 애급 사람들은 철천지 원수야󰡑 이렇게 연단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살 수 있는 한 곳이 있다 할진대, 전부 다 󰡐옳소이다󰡑 할 수 있는 한 때를 바라보면서 몰아넣었습니다. 몰아넣는 그 시기가 민족적인 섭리 시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민족을 대표하여 모세를 모험의 선봉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는 미지의 가나안 땅을 향하는 정탐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결의를 가진 탐험의 용자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바로 궁중을 반대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미지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조로부터 약속한 가나안 땅, 그 본향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이 어찌 변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바로의 땅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 심정에는 가나안 땅에서 행복을 노래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까지 백절불굴(百折不掘)의 심정을 갖게 하고 전진의 일로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출발하였으나 광야의 40년노정에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모험할 줄 알았던들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어떤 곳인지, 그 땅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어떠한 생활적인 의식과 감정보다도 강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로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구, 배고파 죽겠다. 아이고, 우리는 죽는구나󰡑 하고 아우성쳤던 그들이었기에 광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어떤 위인, 혹은 선각자들은 그 시대에서 즐기고 만족을 느끼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높은 이념의 한 곳을 향하여, 약속된 한 곳을 목적지로 삼아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고 탐험의 길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홍해가 웬말이며, 또한 광야에서의 아말렉 족속의 공격이 웬말입니까? 40년 동안 유리방황하다가 바로의 속박에서 풀려 나온 장정들은 모두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고 그들을 인도했느냐? 12지파를 대신한 열두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자기들 힘으로는 가나안 7족을 당하지 못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람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시대에 있어서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욱박이며 고집쟁이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모험 기질이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반기를 들고 있을 때 당당코 나타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바로의 목을 쳐누르던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 쳐서 탄탄대로 길 만들어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광야에서 굶주림에 허덕일 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라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개척의 복귀노정을 찾아가야 할 이스라엘이었던 연고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19-239, 68.1.15)
  
  
참의 세계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민족시대를 거쳐 국가시대를 맞음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때는 이미 국가적인 섭리시대였기 때문에 국가를 걸어 놓고 싸워야 했습니다. 국가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사회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가정의 형태도 갖추어야 하고, 개인의 형태까지 모두 다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형태는 갖추었으나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는 완전 승리의 발판은 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곡절을 품고 역사해 나온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개인을 찾기 위해 허덕였습니다. 가정을 찾아 헤맸지만 가정도 잃어버렸습니다. 민족을 이끌고 나오던 하나님은 민족도 잃어버렸습니다. 즉 축복하였던 이스라엘 민족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에서 유리방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세계적인 복귀의 원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땅에 대표자로 오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났으나 그가 움직인 지역은 갈릴리 해변가나 예루살렘성 근처의 몇몇 도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한 내용을 가지고 움직인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길에서 허덕이다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의 중심을 세워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하려던 그 뜻을 세계적인 기준으로 맞추기 위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2천년 역사요, 예수님을 중심한 2천년 역사였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끝날입니다. 무슨 끝날이냐? 개인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가정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민족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국가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세계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이요, 더 나아가서 천주 완성을 완결시켜야 할 끝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과업을 이끌어 온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허덕이며 찾아왔던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념권내로 인류를 몰아냈으나 인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이 세계는 세계적인 형(型)은 갖추었으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이 간섭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세계를 향해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찾고 있던 역사적인 사람은 어디 있으며, 애급에서 고역당했던 하나님이 품고 사랑한 그 민족은 어디 갔는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자 했던 그 백성은 어디 갔는가? 살아 생전 손에 손을 붙잡고 마음과 마음을 나누면서 심정에 심정을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이 찾고 있던 하나의 기준이 없어졌으니 이 이상 한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꼭 찾을 것입니다. 참의 하나님이요, 참의 내용을 가진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 하나님은 무엇을 찾겠습니까? 참의 개인, 참의 가정, 참의 사회, 참의 국가, 참의 세계, 그리고 참의 주권을 통하여 천상과 지상에 하나의 심정이 움직일 수 있는 그 세계를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또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민족이면 민족으로서, 국가 세계 전체가 혈통적 인연이라든가 전통적으로 내려온 모든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청산해야 합니다. 그런 심정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세계는 어떤 세계였습니까? 그 세계는 참의 세계, 참의 부모가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타락한 혈통의 부모는 가졌으나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참부모는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소리쳐도 타락한 부모의 종족밖에 될 수 없습니다. 자랑할 아무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부모라고 손을 들어 축복하고 천지 만상이 영원히 노래할 수 있는 본연의 부모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라진 것도 역사과정에 있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시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한을 누가 풀어주어야겠느냐? 
그렇다면 본연의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영원무궁토록 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녀로 살 수 있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런 참부모가 없어졌으니 인류는 그 참부모를 꼭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19-241, 68.1.15)
  
 
참된 심정을 가져야 할 통일교인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이념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와 참부모와의 인연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통일의 심정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입니다. 그 사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참을 찾아 헤매는 양심의 소리가 내 마음에 안 들려 온다 할진대 그 참에 호소하는 내용을 표어로 지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의 부모, 참의 부부, 참의 자녀, 참의 백성, 참의 만물, 참의 주권, 참의 우주가 참의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할 수 있는 그 한 때를 한꺼번에 맞추는 그 날이 앞으로 인간세계에 있어서 끝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이들이 바라고 있는 재림시대는 어떤 시대일 것인가?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서 사람의 몸이 공중에 둥둥 떠 올라가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허무맹랑한 망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과거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내용을 상대로 해서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대는 어떤 때인가? 
엉클어진 곡절의 비운의 역사를 탕감하여 개인으로부터 가정․사회․국가를 거쳐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때입니다. 전체는 개인을 세워서 종적으로 묶어진 전체의 형을 횡적으로 연결시켜서 역사적인 개체, 역사적인 가정, 역사적인 사회, 역사적인 국가, 역사적인 세계를 이루는 때입니다. 거기에서 살 수 있는 날, 그 날을 찾는 것이 우리가 선을 바라고 참을 바라고 나오는 목적입니다. 
그 날은 무슨 날이냐? 하나님과 상봉하는 날이며, 참부모와 상봉하는 날입니다. 참자녀․참부부․참백성․참세계․참하늘땅이 이 땅에 실현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프로를 일시에 맞추어 종결짓고자 섭리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외적인 형은 그럴 듯하게 바탕이 되어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주의나 사상은 그럴 듯하지만 기준이 안 서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끝날에 서 있는 인류는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하여 참을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참을 찾고 찾고 또 찾아 나왔지만, 참된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해 개인적인 입장에서 싸우던 그들은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가정,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 참된 우주가 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한 때를 다시 맞아야 할 운명에 있습니다. 그 한 때는 어떠한 때이냐? 개인과 개인이 통하니 가정이 통하고, 가정이 통하니 사회가 통하고, 사회가 통하니 국가가 통하고, 국가가 통하니 세계가 통하고, 세계가 통하니 하늘땅이 통할 수 있는 그런 때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있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 그것이 개인이 지향하는 최고 목표의 정수라 할 것입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외적으로는 섭리를 대할 수 있는 모양은 갖추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합니다. 6천년의 돌고 도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의 가슴이 답답하고 전기관(全器官)이 답답해진다는 것입니다. 허우대가 잘나고 돈이 많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무엇인지 모르게 허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6천년 전으로 뛰어나가려고 하나 몸이 6천년 후로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장 7절)󰡓라고 했습니다. (19-243, 68.1.15)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참을 찾아 나온 하나님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교인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천 사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삼천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세계 인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진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견본이 될 수 있는 진짜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런 주인을 만나면 천 사람이 만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참을 찾고 있는데 그 참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하나. 하나님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가지고 시대와 시대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민족을 품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오며 󰡐네가 내 심정에 얽어맬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이 되었느냐? 단 하나밖에 없는 백성이 되었느냐?󰡑 하며 택해 나온 것이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이요, 야곱이요,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워도 전부 다 믿을 수 없으니 전세계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한 분을 세우기 위해 수고해 나오는 것입니다. `󰡐민족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가정을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리고, 이 사탄세계를 일시에 버리면 버렸지 넌 못 버린다󰡑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믿을 수 없는 이 땅 위에 세우면 또 쓰러지고, 매어 놓으면 또 풀어 버리고, 인연맺으면 또 끊어 버리기를 일삼는 이 타락의 종족들을 대하여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 전체 대표, 하늘과 땅, 혹은 민족의 대표, 혹은 수많은 선지자 대표, 혹은 4천년의 결실로서 하나님이 세운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의 마음에서부터 얽매여 있고, 몸에서부터, 심정에서부터, 생활에서부터, 이념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얽어맬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보냈던 그분이 구주입니다. 구주는 무슨 구주냐? 우리 생활의 구주요, 우리 이념의 구주요, 우리 마음의 구주요, 우리 생명의 구주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참은 하나입니다. 이 하나를 모방하여 이 땅 위에 예수님, 즉 주님이 와 가지고 참된 사랑의 실체로서의 그 가치를 땅 위의 인간 앞에 공개하고 가야 되었을 터인데 공개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왔다 갔지만 그 이후에는 예수님 같은 그림자도 안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왔던 목적은 이 땅에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 자기와 같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하고 메시아를 대신할 수 있는 신부 한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거지 떼거리 같은 것들은 억천만이라도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하나가 문제입니다. 
사람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고 하나님도 반드시 심정을 갖고 있으니까 이 마음이 자리를 잡고 기쁘려면, 그 한 분을 모신 가운데 더불어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도 편안히 안식할 수 없습니다. 행복을 노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북한에 있는 김일성의 아들이 남한에 왔다고 합시다. 남한 국민들 가운데 김일성 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방송에서 󰡐김일성이 죽었다󰡑 하게 될 때, 남한 국민들은 󰡐`아이쿠, 좋구나󰡑 하고 춤을 추고 다 좋아하더라도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누구냐? 김일성의 아들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도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지켜 가고 있지만, 복 받겠다는 사람은 수두룩해도 하나님의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수고롭게 해서라도 자기만 편안하기를 바라지 하나님이 수고한 것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은 어디서부터 붙들어 매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 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붙들어 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노정에서 슬픔을 당하였으니 그 슬픔의 자리에도 같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게 하려면 편안한 자리에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자리에서 눈물짓고 사랑할 수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슬퍼하는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슬퍼하시는 자리에 나를 빼지 말고 가게 해주십시오󰡑 해야 됩니다. 여기서부터 붙들어 매야 됩니다. `󰡐당신이 눈물 흘리는 자리에 날 빼지 말고 붙들어 매주십시오. 당신이 매맞는 자리에 있으면 나도 거기에서 매를 맞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뼈가 되고 나는 살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붙들어 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 주위에 내 몸을 얽어매 가지고 내가 맞고 당신은 맞지 말게 해주십시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50-188, 61.2.15)
  
  
6. 부모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창조와 타락
  
천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엿새 동안 지은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 하나를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의 대상으로 세우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 한 사람이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하고, 행복을 노래하는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서 함께 살기를 하나님이 얼마나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창조해 놓고 기뻐했지만, 타락한 연고로 애절한 심정과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하나의 승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그때를 소망해 나왔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해 지어 놓은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좋거니와, 만물을 주관할 아담 해와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더 좋아한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소망과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였고, 만유세계에 있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될 중심존재인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픈 날이 있어서도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나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명사가 붙었고, 이로 인해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흑암의 권세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원통하고 비통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인류가 슬픔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나, 인류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나오던 하나님이 이들로 인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슬퍼하는 자리에 떨어짐으로써 하나님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늘땅에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일이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사건이 인간 타락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하나님의 전체 소망을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모든 것을 완비하고 완성된 자리에서, 전부 다 깨달은 자리에서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이념, 즉 하나님의 창조위업은 완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전체 내용을 다 상속받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던 성장과정에서 타락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아담 해와가 성인이 되어 모든 천지이치를 다 알고,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위업을 모두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춘 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타락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바라고 나아가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하였다면 우리가 완성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가서도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때는 미완성 단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념 속에서 살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성된 세계가 오늘날까지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세계요, 이것으로 인해 이 세계가 악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바랐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슬픔도 크게 되고, 그 하나님의 소망이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내적인 고충이 크게 초래되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이 슬프신 분인 줄을 몰랐고, 인간 지음을 탄식한 하나님인 줄을 절실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천지를 지은 창조주가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을 몰랐습니다. (15-321, 65.12.7)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천국은 누구를 위해 지은 것이냐? 천국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천국이념을 세웠으나 인간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천국이념은 이념대로 남아졌고, 천국은 내용이 없는 천국, 즉 천국이라는 명사만 남게 되어 하나님은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까지 비어 있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 인해 이 땅이 사탄권내로 들어감으로써, 사탄권세는 천국 문까지 밀어제치고 하나님의 보좌 단상까지 휩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본연의 소망을 어떻게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복귀의 한 날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나온 하나님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물에 빠지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요, 병이 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이 나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구주가 된 후에는 형님도 될 수 있고, 오빠도 될 수 있고, 우리의 그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상하는 본연의 세계가 되었다면 구주로서의 예수님이 필요가 없을 것인데, 아직도 이 땅이 죄악에 빠져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주로서가 아니라, 형이요 오빠로서 환영받을 수 있는 세계가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우고자 하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냐? 타락 전 본연의 세계요, 하나님이 이상 가운데서 추구하고 그리시던 세계, 완성의 뜻을 이루어 천하를 그 품에 품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독생자요 공주로 태어났던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져 나갔으니, 다시 이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하늘땅이 내 것이다󰡑 하면서 다시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본연의 욕망입니다. 그 얼마나 근사합니까?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의 천국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인류에게 소망의 천국을 찾아주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수고해 나왔으며, 인류는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면서 소망의 천국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중에 사모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두 죽은 자식이 되어 버렸고, 사탄의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 인간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랑하며 붙들고 살 혈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를 복귀하기 위하여 섭리해 나왔습니다. 
복귀하는 데는 어디까지 복귀해야 되느냐? 직계 아들딸의 자리까지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종의 종의 자리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종의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이 있으나 종의 종은 주인이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사탄세계에서 종의 종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해 있는 종의 종을 빼앗아다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하늘편 종의 종으로 만들어서 복귀하는 것입니다. (15-323, 65.12.7)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한 섭리역사
  
하나님이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은 누구 때문이냐? 본래 하나님은 참된 인류의 조상을 중심으로 승리적 주관권을 가지고 천지를 주관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주관의 위치를 잃은 것은 누구 때문이냐? 아담 해와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 해와 때문에 일이 이렇게 저끄러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참된 인류의 조상,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참부모의 혈족으로 우리 인류는 태어나야 했습니다.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 그 참부모는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서, 인류 앞에는 승리적인 영원한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승리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슬픈 역사를 이루어 나온 원한의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늘의 법도를 떠났고, 자기의 실체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한 우리 인간은 말씀에 따라서 실체를 찾고, 심정의 세계를 찾는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만물보다도 더 악한 자리에 서게 되었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할 수 없는 슬픈 입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스스로는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일깨워 재창조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치고, 아들의 자리를 거치게 해서 승리적인 주관권을 갖추게 하여 참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소생시대요, 신약시대는 장성시대요, 성약시대는 완성시대인데,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였습니다. 이 양자의 시대를 거쳐서 실체 자녀의 시대를 완결짓고 나서야 부모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이러한 복귀역사 노정을 두고 볼 때,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실체 자녀의 시대로서 승리적인 기준을 세운 다음에,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종이 되어, 여기서부터는 종의 세계이니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는 승리의 팻말을 꽂고 종으로서의 전체적인 조건을 세운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또 종의 승리적인 터전을 상속받아 하늘편 전체의 종을 통할하고, 하나님 앞에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양자가 되어 하나님이 찾고 하나님이 바라는 양자로서의 승리적인 결정권을 세운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 하나를 놓고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워 놓으면 번번이 사탄이 침범하여 망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뒤넘이치는 이 역사가 6천년이나 흘러왔지만 어느 한 때 종으로서 사탄을 쳐부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고, 어느 한 때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을 쳐부수고 하나님의 권한을 세울 수 있는 양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스런 복귀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하나님이 직접 책임지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사명자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갈라 세워 역사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기반 위에 한 사람을 불러 세워서 명령을 실천하게끔 역사하였는데도 명령을 받은 사람이 번번이 실패한 연고로 수많은 사람을 동원시켜서 연이어 나갈 수 있는 후보자를 세워 나왔습니다. 
종의 역사, 양자의 역사, 자녀의 역사, 부모의 역사, 이러한 종적인 역사가 오늘날 횡적으로 세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종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양자의 도리를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 하면 󰡐내 아들딸아!󰡑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책임은 어떠한 것인가? 통일교회는 종의 시대를 지나고, 양자의 시대를 지나고, 자녀의 시대를 지나서 부모의 시대로 넘어가는 때에 처해 있습니다. 승리적인 주관자는 개체로서만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의 원인이 개체인 아담 해와로부터 가인과 아벨, 셋의 세 아들에까지 미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가정을 중심으로 시작한 복귀의 노정은 노아 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거치고, 모세를 거치고,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에 이어 세례 요한, 예수님 때에 와서 세계를 중심삼고 완결지으려 했으나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제1차적인 이스라엘의 섭리노정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재차 이것을 탕감복귀해 나왔던 것입니다. (14-239, 65.1.1)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
  
구약시대는 무슨 시대였느냐? 종의 시대였습니다.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종의 자리로 복귀시켜 나온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종이었지 아들은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종을 세워 충성의 도리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세계인류를 끌어다가 규합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악한 무대를 하늘편으로 점령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종의 입장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시키고, 종의 위치에서 양자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섭리해 온 것입니다. (15-325, 65.12.7)
복귀섭리를 하는 하나님은 대번에 하늘땅을 복귀해낼 수 없기 때문에 개인부터 복귀해 나왔습니다. 하나의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 야곱을 택하여 종의 종의 시대에서 종의 시대로 옮겨놓기 위한 역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었던 야곱 이전의 시대를 청산하고 종의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해 역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의 종의 시대를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분부한 명령에 순종하여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종 된 개인으로부터 종 된 가정, 종 된 민족으로 거쳐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 4천년의 역사는 무엇을 하기 위한 역사였느냐? 종의 개인으로부터 종의 가정으로 넓힌 후 종의 민족을 건설하여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투쟁을 했던 역사였습니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종의 시대를 복귀하기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야곱은 개인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쳐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어머니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는 것을 안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그 후 야곱 가정은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싸움터로 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운명에 놓여 있었던 연고로 야곱의 70식구는 애급 땅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13-177, 64.3.15)
  
  
신약시대는 양자로 복귀하는 시대
  
신약시대는 종을 양자로 복귀하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을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양자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혈통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양자의 자리에 세운 다음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와서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듯이 접을 붙여서, 양자의 인연을 해방시켜 직계 자녀의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소망이었습니다.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로, 양자에서 직계 아들로 복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동시에 천상천국을 완성시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심정적인 발판을 세우고 그것을 천상에까지 닦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본래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지상천국의 이념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다 가르쳐주지 못하고, 영적 구원만을 성사시킴으로써 예수님은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독생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뜻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2천년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소원의 한 날을 찾아왔고, 지상에서부터 천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상의 행로를 개척해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낙원에 갔습니다. 낙원은 어떤 곳이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대합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이 왜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를 하느냐? 그것은 책임완수를 못 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만민의 참부모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만민에 대해서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재림을 해야 됩니다. 천상재림이 아닌 지상재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오셨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입장에 세워 가지고, 양자의 자리와 직계 자녀의 자리를 찾아 세워 예수님과 하나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여, 󰡐이제 너희가 낳은 아들딸들은 타락한 세계와 상관없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세우려 했으나 그것을 못 하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본연의 아담 해와,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의 모든 소망을 걸고 지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할 존재로 누구를 보냈느냐? 예수님입니다. 본연의 아담을 대신할 후아담격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타락과 상관없이 복귀된 아담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이고, 재림주님은 3차 아담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오셔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이루고 천상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노정에서 섭리해 나온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찾아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악한 후손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고 타락 이전의 자리로 올라가기를 소망하며 내일을 희망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고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15-325, 65.12.7)
  
  
구주란 참부모로서의 구주가 되어야
  
하나님은 4천년간의 수고를 통해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소망의 아담 형인 예수님을 찾아 세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누구인가? 참된 조상입니다. 만약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라면 그들이 인류의 참조상이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서 세우고자 하였던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천하를 호령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너나할것없이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원통한 사실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인류는 지옥으로 맹주(猛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표준을 세워 놓고, 참자녀를 품어줄 수 있는 본연의 부모를 찾아 헤매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4천년간의 복귀노정을 통해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본연의 자리를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란 무엇이냐? 메시아는 어디에서부터 구주가 되어야 하느냐? 인류가 타락으로써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으니, 먼저 참부모로서의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가 무엇입니까? 본래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주려던 󰡐너희는 선남선녀요, 천지 대주재의 직계 아들딸로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핏줄이 이 땅에 생겨나니 기쁘도다󰡑 하며 주는 축복을 받는 것, 즉 하나님의 모든 대유업을 상속받고 성혼의 축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해서 나타나야 할 것이 타락 전의 아담 해와였는데, 이들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전부 깨지고 말았습니다. 6천년 전 이들을 중심삼고 소망의 천국을 이룩해야 할 것이 타락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인간을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를 거쳐 직계의 아들딸로 복귀시켜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늘의 승리권을 찾아 승리의 왕자로서 하나님의 성혼 축복을 받는 것이 어린양 잔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인류가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참부모를 구원완성하여 복귀시키는 날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날이 있어야 만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인간은 선한 부모 밑에서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올바른 가정이 형성되는 것이고, 올바른 가정이 생겨나야 올바른 종족․민족․국가․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과정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가졌던 소망은 아담 해와가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혈족으로서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천국세계를 이루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인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부모가 깨져 나가고, 자녀가 깨져 나가니 결국 오늘날과 같은 세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입장에서 오시느냐? 마태복음 24장에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아담은 타락을 하였고 2차 아담은 땅 위에서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3차 아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나같이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세의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면 6천년 역사는 어떤 역사였느냐? 잃어버린 참부모, 즉 아담 해와의 완성한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5-327, 65.12.7)
  
  
구약․신약․성약시대는 참부모 복귀시대
  
메시아사상은 무엇인가 하면, 부모가 오시어 자기 자식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번 메시아, 재림주는 셋째 번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가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잃어버린 것을 세계를 통해서 복귀해야 합니다.
구원섭리를 하는 데는 하나의 부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까지의 역사를 종적으로 보면 소생․장성․완성이 되지만, 횡적으로 보면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의 3대로 넓혀져 가니까 구약시대의 아담 부모, 신약시대의 예수 부모, 성약시대의 참부모가 있습니다. 그 3대(三代) 부모가 한 부모로 되지 않으면 이 3시대가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둘째 번 부모로 오셨습니다. 오셔서 세계를 구원하려 했으나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래서 세 번째로 재림주가 오시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참부모가 오시어서 40년간 재차 탕감복귀를 하여 승리의 기반을 세움으로써 장자권 복귀와 함께 예수님이 실패한 모든 것을 복귀하고 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을 복귀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에 의해서 아담 가정 복귀, 예수님 가정 복귀, 세계 각국의 장래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중심삼고, 조국을 중심삼고 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 조국은 세계적 중심국가가 됩니다. 
그러니까 재림주,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세계적 부모, 국가적 부모, 종족적 부모, 가정적 부모가 세워지면 자동적으로 국가는 없어지게 됩니다. 국가를 보려고 해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없어지니까 가정적 메시아, 종족적 메시아인 축복가정이 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3-87, 89.8.31)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독교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 틀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구약시대도 결국은 복귀를 위한 것인데, 아담 해와, 참부모 복귀를 위한 것입니다. 신약시대도 참부모 복귀를 위한 것이고, 성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부모 복귀라는 그 내용은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그런 개념을 가져야 됩니다. 메시아가 뭐냐 하면 곧 참부모입니다. 또 지금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자면 참부모로서의 실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나 유대교나 통일교회나 그 내용이나 목적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이 뭐냐? 유대교는 국가적 차원에서 메시아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참부모를 맞아 가지고 세계로 확대시키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왔다 간 후에 세계적인 기반에서 메시아, 참부모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성약시대는 천주적 기반에서, 영계까지 참부모를 맞자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그걸 확실히 구별해야 됩니다. (131-131, 84.4.29)
  
  
성약시대란 책임분담을 완성한 부모권
  
구약시대는 부모복귀시대고, 신약시대는 부모복귀 연장시대입니다. 그래서 재림이라는 것은 신랑 신부가 부모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아직까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약시대는 지상에 있어서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세계, 즉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는 과정입니다. 성약시대는 원리적으로 보면 책임분담을 완성한 부모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이 뭐냐 하면 책임분담입니다. 책임분담의 약속을 미완성한 것이 타락입니다. 구약은 옛날 약속입니다.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고, 성약은 약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루는 것은 세계 만민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책임분담이 남아진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못 함으로써 사탄이 생겨났으니 이 책임분담을 다 해야 됩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한꺼번에 책임분담을 다하게 돼 있는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이 생겨났으니 참부모는 타락한 이 후손들 앞에 세계적인 기준에서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탕감기준을 세워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분담권을 세움으로써 한꺼번에 탕감기준을 세워 가지고 간접주관권내에서 직접주관권내로 비약해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것이 참부모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참부모하고 같이 살아야 됩니다. 참부모는 할아버지 입장이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입장이고, 자기들은 장자의 입장입니다. 3대에 걸쳐 같이 산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고, 참부모가 나와 같이하고, 자기 부모가 같이하는 걸 느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죽었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131-97, 84.4.16)
  
  
성약시대는 부모님이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때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주의 주인공으로 계시고, 만국의 대왕으로 계시고, 모든 것의 주인공 자리에 계시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 모든 전부가 인간과 더불어 사탄세계로 갔습니다. 만물은 인간을 위해 지어졌고 만물의 중심이 인간이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원리적 원칙에 속하였던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사탄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인간과 만물의 소유권을 누가 가졌느냐 하면 사탄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 발전과정에 있어서 무슨 쟁탈전이 벌어졌느냐 하면, 소유권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물질을 중심삼고 쟁탈전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물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지 못한다󰡑고 한 것은 둘을 갈라놓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아, 터치하지 말라. 사탄에게 끌려간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소유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생리적인, 생산적인 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게 되면 반드시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소유가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남자가 여기에 개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권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쳐 가지고 아들을 찾기 위한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쳐 가지고 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쳐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시대에 와서는 물질과 자녀와 가정을 찾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은 참부모라는 이름을 받아 세계적으로 맞고 있습니다. 참부모의 입장에서 맞으면서 잃어버린 만물과 자식과 가정과 하늘나라를 찾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들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피를 흘리게끔 하나님이 내놓은 것입니다. 성약시대는 어떤 때냐 하면, 부모가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때입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의 누구도 몰랐던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가 갖지 않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가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부모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뭘 하자는 거냐? 잃어버린 자식과 잃어버린 만물과 잃어버린 하늘을 찾아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심정적 터전을 연결시켜 가지고,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늘나라의 소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심정적 주인의 자리에 서서, 그런 남자 그런 여자를 부모와 더불어 가인 아벨권 가정을 중심하고 하늘로 묶어 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늘 앞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벨권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없었습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아들딸이 태어남으로써 횡적인 기반 위에 가정적 축복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 자녀를 결혼해줌으로써 가정적 축복권이 형성됐습니다. 가정적 아벨권, 가정적 가인권이 횡적으로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 기반 위에 부모님이 설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선생님의 아들딸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든지 희생시키려고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120-206, 82.10.16)
  
  

7. 역사적 3시대를 통한 구원섭리
  
  

3수를 중심삼고 천지의 이치가 연결되어 있다
  
통일교회에서는 3수가 완성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 하게 되면, 반드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마음과 몸, 그 다음에 그것이 하나된 관념 가운데서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수라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천지의 이치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오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도 역시 3단계의 관념이 박혀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연결되는 데 있어서 오늘이라는 것은 3점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중심삼고 볼 때도 아침이라는 관념이 있고, 저녁이라는 관념이 있고, 그 다음엔 밤이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이렇게 낮이라든가 밤이라든가 하는 관념을 우리는 3수로 연결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을 보더라도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얼굴에 있는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입이 왜 옆으로 갈라져 있느냐? 아래는 땅을 상징하고 위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사 팔은 삼십 이(4×8=32), 서른 두 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만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만물 전체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입으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물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입을 통해서 말하느냐 하면, 하늘과 땅이 조화된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혓바닥은 우주 가운데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혀는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코는 둘이 하나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전체 우주를 상징한다면 그 가운데 제일 높은 것이 사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걷게 될 때 무엇이 우리를 안내하느냐 하면, 팔이 안내하는 것도 아니요, 몸이 안내하는 것도 아니요, 코가 안내를 하는 것입니다, 코가. 그래서 언제나 선두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눈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눈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사방으로 돌면서 감찰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머리가 가장 귀한 것입니다. 머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옆으로 돌고 하는 것은 눈 때문입니다. 눈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은, 귀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귀는 얼굴로 보게 될 때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방을 상징해 가지고 붙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방 가운데 만물과 사람과 하나님이 수직선으로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얼굴 전체를 보면 이마는 하늘을 상징하고, 코는 인간세계를 상징하고, 턱은 땅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마가 넓은 사람은 양심적이고 선한 편에 선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인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번대머리가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은 높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닮기 때문에 둥그래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하나만 보고서도 우주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턱은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턱이 잘생긴 사람은 출세 합니다. 턱이 잘생긴 사람이 돈을 제압합니다. 돈 많은 사람을 보면 턱이 둘입니다. 이 턱이 될 수 있으면 넓게 생겨야 복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하면 땅을 많이 갖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웃을 때 󰡐후후후󰡑 하며 입을 좁혀 가지고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웃는 것이 아니라 원만하게 웃는 사람은 행복하게 삽니다.
귀도 하늘땅을 조화시킨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위도 크고 아래도 큰 귀를 가진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코를 딱 잡고, 눈도 딱 감고, 입도 막아 보십시오. 이게 전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얼굴은 모두 다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3단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눈을 보면 확실히 3단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은 새까매서 모르지만, 서양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더욱 분명합니다. 하얀 바탕에다 새파란 것, 검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전부 다 쌍꺼풀이 졌지만, 동양 사람들의 눈을 보면 쌍꺼풀이 진 사람이 있고 안 진 사람이 있습니다. 서양 사람은 눈이 전부 다 들어갔기 때문에 쌍꺼풀이 진 것 같습니다. 그것은 3단계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3단계. 
인체의 내장을 보면 폐가 있고, 심장이 있고, 간장이 있습니다. 전부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3수라는 것은 우주 창조에 있어서 근본 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물들은 전부 다 기어다니는데 사람은 왜 서서 다니느냐? 그것은 사람은 우주를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는 안테나와 같이 하늘로 향하고, 발은 땅을 딛는 것입니다. 우주가 걸음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86-164, 76.3.28)
  
  
타락한 인간의 복귀역사도 3단계를 통해야
  
타락은 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디서 떨어졌느냐? 높은 데서부터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떨어진 것을 어디서부터 찾아 올라가야 되느냐? 땅에서부터 찾아 올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복귀역사 가운데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 3시대를 거쳐 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도대체 어떠한 과정을 거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통일시키기 위한 역사를 하지 않고는 이 세계를 찾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있어야 되고, 사람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이 있어야 되며, 이 세 가지가 하나되어야 됩니다. 입과 코와 눈이 전부 하나로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으로 하나된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됩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하늘 앞에 설 수 없고, 이 우주 앞에, 혹은 참된 이상적 인간 앞에 서기가 부끄러운 불합격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합격된 타락한 인간은 반드시 참된 만물과 참된 사람과 참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맞춰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늘로 돌아가고, 복귀의 목적의 세계로 돌아가는 참된 사람이 되려면 참된 물건을 세워야 되고, 참된 사람의 부분을 세워야 됩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녀의 가치와 연결시킬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86-164, 76.3.28)
  
  
복귀역사는 만물부터 해야
  
그러면 하나님이 이것을 찾아 올라가는 데는 무엇부터 찾아야 되느냐? 만물부터 다시 찾아야 되기 때문에 만물 부활역사요, 만물 재창조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역사를 전인류를 대해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걸 누가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합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잃어버렸으니 사람이 해야 됩니다, 사람이. 
사람보다도 만물이 높기 때문에 만물 위치에 올라가 붙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물과 하나되는 역사를 해야 되기 때문에 사람이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제물 드리는 역사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물이 생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물에는 물질, 돈이 들어가고, 동물이 들어가고 다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3단계, 식물․동물․광물 이 세 가지를 통해 가지고 3대 제물이 나온 것입니다, 3대 제물. 그러한 3단계 표시를 해 가지고 비둘기와 양과 소를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3대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하고 사람하고 하나돼야 됩니다.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으로 물질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됐다󰡑 할 때가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한 때가 구약시대입니다. 국가적으로 제사하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92-168, 77.4.3)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는 무슨 시대냐? 물건을 통해서 제물을 드리는 시대입니다. 비둘기 양 소, 세 가지 조건입니다. 구약시대는 물건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때요, 신약시대는 아들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때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제사를 지내는 때입니다. 부모가 제물이 되어 제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동물의 수놈 암놈들이 제물 되는 때요, 신약시대는 아들인 예수님과 성신이 제물 되는 시대입니다.
제물은 뭐냐? 쪼개는 표시적 조건이 제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의 소유물을 결정하기 위한 조건물이 제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물건을 통해서,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을 통해서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아들딸입니다. 성약시대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물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냐? 구약시대에는 제물이 사탄을 방위했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이 방위했고, 성약시대에는 부모가 방위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자리에 나서려면 예수님이 한 것을 해야 되지만 그것을 한 다음에는 물질을 찾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땅 위에서 만물을 찾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찾지 않으면 아들딸이 살 수 있는 터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만물을 지어 놓고 사람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지어 놓고 사람을 지었지, 사람을 지어 놓고 만물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놓고 축복받는 자리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혀 없던 놀음입니다. 지금까지는 안 했습니다. 요전까지는 3수만, 셋만 찾으면 됐습니다. 그때는 내가 책임졌습니다. (157-186, 67.4.2) 
  
  
제물은 정성들인 것이 아니면 안 돼
  
그러면 제물이 희생하는 데 있어서 슬퍼해야 되느냐, 기뻐해야 되느냐? 구약시대의 예를 보면,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소나 양이나 비둘기, 혹은 그 외의 만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잡을 때는 반드시 제사장이 잡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잡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친히 피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잡은 제물은 자기와 같은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자기가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자기가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몸과 같은 것이요, 자신의 생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것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외적으로는 죽고 내적으로는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사람과도 같습니다. 우리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몸은 사탄이 주관하고 있고 마음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몸은 언제나 외적 터전으로서 사탄의 발판이 되어 있고,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내가 이 외적 터전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망을 갖고 희생시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생명을 흠모하면서 희생시켰기 때문에, 그 희생시킨 물건은 제물이로되 제물이 아닙니다. 자기 몸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이라는 것은 만물로 말미암아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몸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누가 치느냐? 자진해서 자기를 쳐서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사탄의 피와 사탄의 사랑과 사탄의 생명을 치는 자가 누구냐? 그것은 󰡐나󰡑입니다. 그 󰡐나󰡑가 누구냐? 타락한 아담의 입장입니다. 사탄의 생명과 사탄의 사랑을 이어받아 가지고 내 몸이 생겨났으니, 내 자체를 누가 쳐야 되느냐? 아담이 쳐야 되는데,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나 자신이 치는 입장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물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제물은 정성들인 물건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가장 많은 정성을 들인 물건이어야 되고,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어야 됩니다. 그것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아까워하면 사탄세계의 물건으로 남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미련을 가지고 󰡐이것은 내게 필요한데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것을 지극히 무자비하게 부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것을 일시에 제거시키는 입장에 있지 않고는 하나님의 입증을 받아 가지고 바쳐지는 제물로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47-285, 71.8.30)
그러면 왜 피를 흘리고 이렇게 희생의 과정을 거치느냐? 이것은 탕감법도에 의해서 잘못한 것을 청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과원칙에 의해서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되기 때문에 만물이 희생되어 우리를 구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물을 통해서 사람을 지었기 때문에, 만물을 희생시켜 가지고 사람을 재창조한다는 이치입니다. 만물을 투입하고 희생시켜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86-168, 76.3.28)
  
  
신약시대는 무엇이냐 
  
신약시대는 무엇이냐? 제사는 안 드리지만 내가 모든 것을 대신하여, 몸이 물건을 대신하고 전체를 대표해 가지고, 만물과 사람이 합하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십일조니 뭐니 하는 헌금을 하는데, 그것은 자기의 충성을 드린 데 비해 가지고 만물 조건을 언제나 달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뜻을 이루었으면 제물의 자리에 절대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창조원리를 보게 될 때, 완성한 사람, 즉 뜻을 이룬 사람은 희생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완성하게 되면 찬양의 길, 축복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인간 앞에 부여된 본래의 창조이상이지, 희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이상적 사람인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형태를 맞추기 위해서 유대교를 세워서 유대교 제사장을 중심하고 하나되는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제사장들이 하나가 되었으면 세계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목적은 이 사람들을 중심삼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먼저 유대민족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돌아갔던 것입니다. 본래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만물과 하나되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와 유대 백성이 하나되어 가지고 참된 예수님과 하나되었으면 하나님이 이상 하는 대로 이 셋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만물을 상징하고, 유대교를 믿는 사람은 천사세계를 상징하고, 예수님은 아담을 상징합니다. 이 천사세계는 영(靈)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천지를 창조한 목적은 만물과 천사세계와 인간세계를 하나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찾고, 신약시대에 만물과 인간을 하나 만들면 완전히 복귀가 될 텐데 이것을 하나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천사세계를 찾는 놀음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죽어서 영적 부활을 해야 되느냐? 영과 육이 합하여 가지고 참된 사람의 기준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천사세계의 대표자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편에서 승리한 새로운 천사세계의 출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왜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희생하느냐? 종교인은 천사세계를 상징하는데, 아담을 창조하게 될 때 천사를 투입해 가지고 창조했기 때문에 천사를 희생시켜서라도 아담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참된 만물을 완전히 투입해야 되고, 참된 천사를 완전히 투입해야 됩니다. 이것이 창조원리입니다. 참된 사람은 그래야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하나된 사람입니다. 몸은 만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만물을 상징하고, 마음은 영계, 천상세계를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나󰡑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통일된 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사람이 완성되었다면 이 우주의 만물세계를 지배하고, 천사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중심, 이 우주를 대표한 중심체이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그의 아들이 되려면 그와 같은 상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은 성약시대인데, 우리는 성약시대를 맞이하여 만물과도 천사와도 하나돼야 됩니다. 사람은 만물과도 통하고 천사와도 통합니다. 전부 다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간입니다. 하늘과 만물과 전부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세계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이 세계 사람들을 내가 한번 마음대로 주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몸과 마음, 둘을 통합한 참된 사람, 완전히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면 만물과 천사세계가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몸은 지상세계를 상징하고, 마음은 천사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세계를 지배해야만 참된 사람이 됩니다. (86-168, 76.3.28)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와 그 결과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 가운데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 종의 자격을 세우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는 양자의 자격을 세우는 시대고, 성약시대는 자녀의 자격을 세우는 시대입니다. 이 이스라엘은 영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이겼다는 뜻인데, 무엇에 이겼느냐? 사탄한테 이긴 것입니다. 이 사탄은 종이니 하늘편 나라의 종이 되는 종의 시대의 문을 연 것입니다. 그 종은 참된 종입니다. 하늘편의 천사급이 되는 거예요. 종 중에 세계적인 대표자가 될 수 있어야 양자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참된 아들딸이 되려면, 참된 자녀가 되려면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간 세상은 타락한 부모는 가졌지만, 타락하지 않은 완성된 부모는 못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가 종의 시대에 있어서 양자의 고개와 아들의 고개를 한꺼번에 만들기 위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하나되었으면 아들과 양자가 지상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권이요, 세례 요한은 양자권이요, 예수님은 아들권이기 때문에 천사장편을 양자에게 굴복시키고 양자를 아들에게 굴복시킬 수 있는, 이 타락한 사탄의 침범권을 세계적으로 전체를 대표해서 막을 수 있는 조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양자권을 플러스로 하고 종권은 마이너스가 되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절대 플러스인데, 종권과 양자권이 마이너스가 되어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몇 단계를 넘어가느냐?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단계로 올라가고, 양자의 단계에서 아들의 단계로 올라가는 것은 지금까지 이 4천년 역사를 점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부터 아들의 자리까지 두 단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 못 됐기 때문에 전부 다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전부 없애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자들을 통해서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권이 없기 때문에 이 이스라엘권을 다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탈락한 것입니다. 나라 없는, 하늘이 표준해 서 세웠던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를 유리고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민족이 세운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되었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나라를 중심삼고 예수님의 나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을 대해 싸우더라도 나라에 대한 축복을 하늘이 해주기 때문에, 로마제국을 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없었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은 누구든지 다 침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나라가 없으면 형편없이 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에 미국 국민을 보호해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 기반 위에서 세계로 발전해야 되는데, 그 나라의 기반을 잃어버렸으니 다시 나라를 갖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에 들어가 가지고 싸워야 됩니다. 나라를 찾는 데 있어서 나라가 없는, 주인이 없는 연고로 많은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잃게 된 죄수인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를 유리고객 해 가지고 이 기독교를 복귀해서 나라를 찾아올 때까지는 수난 길을 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역사 이래 비참한 피를 흘린 것은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 고난에 있어서나 이방의 침범을 받을 때에 언제든지 하나님이 이방을 쳐서 승리할 수 있게 해줬는데, 기독교는 왜 하늘이 도와줄 수 없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유대교는 영과 육을 중심삼은 민족이라든가 국가가 바라는 소망이 있었지만, 기독교는 영적만입니다. 유대교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침범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전부 다 사탄이 침범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이상은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는 다 망한 것입니다. 부활에서부터 영적 출발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도리이지 십자가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 부활도 40일간의 영적 기반에서 벌어졌습니다. 영적인 기반에서 40수를 중심삼고 탕감조건을 세우고야 그 부활권이 벌어진 것입니다. 영적 세계로의 출발이 벌어진 것입니다. (92-200, 77.4.10)
  
  
세계적 영육 기반을 닦은 통일교회
  
유대교만도 못한 입장의 영적인 일면만 가진 기독교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해야 됩니다. 재림은 영과 육을 중심삼고 완성하지 못하고 영적 기준만 했기 때문에, 영적 기준만큼 완성한 세계기반 위에 다시 이중으로 갖다 붙여야 됩니다. 이렇게 영적 육적으로 완성해야 되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명사가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와서 영육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어야 세계적 기반 위에 비로소 영적 기반을 닦아 가지고 육적 기반을 갖다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래 메시아의 사명을 세계적으로 완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주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제2 이스라엘권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왕국과 같은 대표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이 미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있지만 실체적으로는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그런 자리에 있지만 실체는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은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가 이 지구성 전체를 지배하고 우주 전체를 지배해야 됩니다. 주님이 올 때 이스라엘 민족이 피폐하고 로마가 피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도 피폐하고, 기독교 나라인 미국도 피폐해 가는데 공산당만 하나 더 생겼어요.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제국보다 공산당이 하나 더 생긴 것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같은 것이 한국이요, 로마와 같은 것이 미국입니다. 이 미국과 한국이 하나되는 날에는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늘편에서 기독교를 옹호할 수 있는 입장이 됩니다. 그래서 공산세계를 흡수해야 됩니다. 그래야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세우는 동시에 하나의 세계적 기반을 중심삼은 영적 기독교 기반과 비로소 하나되어, 영적 기독교세계와 반대되는 공산세계를 흡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상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주의 사명은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재림주가 구름 타고 온다고 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이런 원칙에 의하면 구름 타고 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사, 즉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보게 되면 이것이 전부 끊어져 연결이 안 돼 있습니다. 형태는 남았지만 변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연결시켜야 됩니다. 영적으로 연결시키고 실체적으로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엇으로 연결시킬 수 있느냐? 심정,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고 난 다음에 지상섭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적 역사를 승리해야 횡적 역사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명을 누가 하느냐? 통일교회가 전부 해야 합니다. 그 사명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영적 구원 완성과 실체 구원 완성의 목적을 중심삼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하나님까지 8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 종착지는 하나님입니다. 하늘나라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종착지입니다.
그러면 지금 어느 단계에까지 와 있느냐? 우리는 세계적 기반을 넘어섰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 완성 기반, 가정 완성 기반, 종족 완성 기반, 민족 완성 기반, 국가 완성 기반, 세계 완성 기반을 다 닦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색 인종이 한 식구가 되었고, 새로운 제3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습니다. 세계적 나라 기반 위에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은 하늘나라를 가질 수 있는 민족이 제3 이스라엘입니다. 제2 이스라엘권은 영적으로만 세계형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안 나오면 기독교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제1 이스라엘은 무엇이냐? 영육을 중심삼고 민족적 기준에서 국가의 자리에 나가려고 하는, 하나의 특정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형을 바라던 민족이 제1 이스라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유대교가 가야 할 길을 유대교만 그냥 가서는 안 됩니다. 이제라도 그 유대교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 갈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통일교회를 인정해야 됩니다. 또 기독교도 기독교 자체로는 갈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통해야 갈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미 통일교회가 세계내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기반 위에 국가가 있고, 민족이 있습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미국에서 반대하는 이런 운동이 끝나는 날 세계적 종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형을 찾아서 완전히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92-202, 77.4.10)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의 복귀역사
  
복귀역사는 어떻게 해 나왔느냐? 구약시대에는 거꾸로 내려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람을 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을 먼저 복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장년을 복귀해야 되고, 또 그 다음에는 청년을 복귀해야 됩니다. 거꾸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안나나 시몬 같은 사람들은 늙은이였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묵은 틀거리를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시대는 청년시대입니다. 청년시대에는 구라파만 생각한 것입니다. 세계까지는 생각 못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청년시대에 해당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까지 가정을 중심삼고 뭉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만 구원 얻는다!󰡑 이러면서 나왔습니다. 세계를 다 구원해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자기 종족, 자기 교회 구원받자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은 때가 되면 세계적이 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는 뭐냐? 재림시대는 뭐냐? 청소년을 중심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돼야 되느냐? 청소년 때 타락해 가지고 거꾸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꾸로 되어 있으니 거꾸로 찾아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3단계 제물을 드릴 때 암소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도 지금까지 암소와 같은 여자들이 득세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들의 상대는 이 미국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암소의 소원은 신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와 대등한 최고의 자리니 남자들을 부려먹는 것입니다. 여왕 노릇을 하고 여왕벌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남자대로 버티고, 여자는 여자대로 자기를 주장하며 결혼 안 하겠다고 하는 때가 되면 말세의 때가 된 것입니다. 그때에 재림주가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와 가지고 화해 붙여서 다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이것을 누가 하느냐? 통일교회가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통일교회에 들어올 경우에는 숫처녀 숫총각이 들어올 것입니다. 20대를 중심삼고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고등학교 때에 다 들어와야 됩니다. 그 아담 해와가 그때(청소년기)에 타락했으니 그때 복귀해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숫총각 숫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원래는 세상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쫓겨났기 때문에 원래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통일교회를 믿어도 소용없다는 말이 됩니다. 몸이 죽는 자리에서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몸은 아직까지 죽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가 와 가지고 세계적 기준에 이를 때까지 보류해 놓았습니다. 아직까지 완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보류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죽은 몸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그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세계기준을 넘어갈 때까지는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가 있는데 들어오는 사람들은 여기 완성권에 있습니다. 장성권은 외적 세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생, 장성권에서 갈라서 섭리하는 것은 끝날에 인간을 구하기 위한 섭리라는 결론도 나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통일교회가 완성권이면, 기독교는 장성권이 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소생권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이 기독교는 믿으나 안 믿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이 완성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용서받아 가지고 축복받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92-205, 77.4.10)
  
  
하늘 사랑에 접하기 위한 절대 조건
  
이제 여러분이 한 가지 청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 사랑하던 생각이 꿈에도 나지 않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하느냐? 그것은 거짓사랑이었기 때문에 참사랑의 느낌을 갖지 않고는 지울 길이 없습니다. 또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에 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영적으로, 심정적으로 체휼함으로써 이것을 씻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자가 먼저 해야 된다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어떠한 반대의 길에서도, 어떠한 어려운 길에서도 이 사랑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그러한 것을 넘어섰다는 승리의 조건을 세우지 못합니다. 살아서 6천년 동안 고생하던 것을 조건적으로라도 전부 다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그 일을 세계인을 대표해 가지고 오시는 메시아가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반대하고, 온 세상이 반대할 때는 자진해서 그가 책임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대표적으로 그 길을 준비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만이 죄악권에 있는 사람을, 지옥에 있는 사람을 천국에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조약이 있습니다, 조약이. 󰡐틀림없이 내 물건이나 내 아들이나 나는 당신 것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내 아들보다도, 내 남편보다도, 내 부모보다도, 타락권내의 사랑으로 인연된 정적인 모든 것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래야 됩니다. 이것이 절대 조건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사랑보다 높지 않으면 하늘 사랑에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늘 사랑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어미나 처자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못 된다󰡑고 했는데, 이 말은 공식입니다.
그러면 반대자가 누구냐? 자기를 사랑했던 제일 큰 순서대로, 자기를 더 사랑하던 사람의 순서로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는 말이 이론적이요, 우주적인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종교의 자유는 어디에 있느냐?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종교를 반대하는 싸움을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 사이에 종교를 중심삼고 반대를 못 한다는 말입니다. 아들딸과 부모간에 반대하는 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종교 자유의 원칙입니다.
통일교회를 지금 누가 반대합니까? 역사상에 부모가 자식을 납치해 가는 그런 역사가 있었어요? 이것은 통일교회가 나와서 처음 생긴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유대교와 기독교가 반대하고, 구교와 신교가 반대하더니 이제는 그들이 전부 다 합해 가지고 반대합니다. 거기에 공산당도 합하고 부모도 합하여 이 선생님 하나를 반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 편이 되겠어요? 하나님은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왜 레버런 문을 반대하기 위해서 하나되었어?󰡑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같습니까? 유대교는 근원도 확실하지 않고, 목적도 확실하지 않고, 현재도 확실하지 않고, 기독교도 근원도 원인도 모르고 현재도 희미하고 미래도 희미하지만, 통일교회는 근원이 확실하고,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도 확실하다 할 때, 하나님은 어느 것을 더 좋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통일교회에 속해 있어요, 통일교회가 선생님에 속해 있어요? 선생님하고 통일교회가 있으면 어느 것을 더 사랑하겠어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참부모라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아들딸이 되고, 참부모 것은 내 것이 되고, 나는 참부모의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것은 틀림없이 내 것이다. 내 목을 잘라도 나는 그의 아들딸이 틀림없다󰡑 이래야 됩니다. 만약 어느 나라 대통령이 원자탄을 떨어뜨려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죽인다고 해서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생명이 끊어져도 그걸 변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92-207, 77.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