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 제 4장 참부모님 사랑편 - 제 3장 참부모님 사랑

참사랑 | 20180217150043
사랑이야기 

제 4장 참부모님 사랑편 

제 3장 참부모님 사랑

소목차

1. 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

2. 기독교의 영적 기반 상속과 성혼식

3.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

4. 선생님의 뜻과 신념

5. 참사랑의 길을 걸어오신 참부모

6. 애절한 뜻길

7. 하나님 해방과 참부모 선포


     
1. 하늘의 소명과 재림역사
     
     
선생님 일생은 섭리적 내용을 수습하기 위한 투쟁사
     
태어난 북한 땅에서부터 남한을 거쳐 지금까지 세계적인 모든 순방노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나온 선생님의 일생은 한마디로 세계적인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섭리사적인 내용을 수습하기 위한 투쟁 역사였습니다. 
과거 우리 나라는 아시아의 작은 반도의 한 나라로서 일본 압제하에서 비참한 실정에 있는 나라였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시절을 대한민국의 자주적 국가권 내에서 자라지 못하고 일본의 압제권 내에서 자랐습니다. 25세까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점차 세상을 알게 되고 젊은이로서 지낼 수 있는, 어려운 모든 사정을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자란 것입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어려운 국가적 사정, 다른 나라의 압제하에서 민족이 당하는 비참상을 어려서부터 마음 깊이 느끼고, 이러한 환경적 여건을 타개해 나갈 길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철이 나게 되면서 글방에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안에서 외지에 나가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 객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섭리적으로, 뜻적으로 볼 때도 둘째 번으로 태어난 아들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중에서 공부를 시키면 죽는다는 소문 때문에 학교 같은 데는 못 가게 하고 글방(서당)을 중심삼고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란 선생님의 일생은 전부 개척, 개혁이었습니다. 글방에 다니면서 선생님이 가야 할 길을 생각했습니다. 비행기가 날고 기차가 달리는 이런 과학문명의 시대가 점점점 확장되어 앞날을 이끌어가게 될 것을 완연히 느끼는 자리에서 󰡐이런 글방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해서 거기서부터 혁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해 그때로 말하면 보통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옛날에도 학교 가기 위한 학원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공부해 정주 사립오산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시험을 쳐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일년 동안 결사적으로 공부했고, 성적이 좋아 5학년으로 월반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산보통학교―지금으로 보면 초등학교입니다―에서는 일본말을 못 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일제에 투쟁한 대표적인 사람인 이승훈씨가 세운 학교고, 그런 학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일본말을 못 하게 했습니다.
선생님이 판단해보니 문제는 우리가 적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에 대해 세밀히 몰라서는 적과 싸우더라도 대비책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주 공립보통학교에 편입시험을 쳐서 4학년에 들어갔습니다. 거기 들어가서는 일본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돼 졸업했습니다. (211-132, 90.12.30)
     
     
선생님 소년시대의 기질과 추억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정주보통학교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많은 학부형들과 전체 선생님들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정주읍의 유지들이 축하하기 위해 전부 모였습니다. 그 졸업식에서 교장의 훈시가 있었고 그 다음에 손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그 다음에 내가 자원해 단상에 나서서 일본에 대해 반박하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앞에서 그랬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소년시절의 기질이 보통 기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산하에 있는 모든 것, 보이는 산이면 산 그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알지 않고서는 못 견뎠습니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무슨 새가 살고 무슨 동물이 사는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래서 이 산에는 무슨 나무가 있고 무슨 풀이 있고 다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나물 같은 것도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바구니 들고 가게 되면, 모든 종류의 산나물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누나하고 혹은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산나물 캐러 가더라도 언제든지 앞장서서 가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산에 있는 모든 식물에서부터 조류, 벌레들까지 모두 탐사하는 취미가 컸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그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철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철새가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래 그 철새의 생김새라든지 어떻게 사는 모양이라든지 하는 것이 연구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새가 있던 곳의 샘물이라든가―새를 찾으려면 샘물을 찾아야 됩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새들은 반드시 샘물에 와서 물을 먹습니다―그런 것을 알아 샘물이 있는 곳에서 일주일, 몇 주일씩 지키면서 그 새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새가 샘물에 와서 물을 먹고 날아가는 방향을 찾아냈습니다. 새들은 대개 물을 먹고 나서는 자기 집 가까운 데나 자기 집에 찾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그 새의 둥지를 찾아내 새끼들이 자라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것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 등등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노심초사하던 일과 학생시절에 주일학교 일을 하면서 학교를 짓던 모든 일들이 전부 생각납니다. 
과거지사를 돌아볼 때, 지금에는 그것들이 추억의 한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참 심각했습니다. 자기의 미래를 걸어놓고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담판하는 시기였습니다. 이것이 인간만의 결정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인간의 생각을 넘어 결정적 노정을 취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고심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11-134, 90.12.30)
     
     
16세 때 하늘로부터 소명받은 선생님
     
고심해 나오다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이 16세 때부터였습니다. 선생님이 16세 때인 1935년도는 한국의 기독교 역사의 대부흥 기간이었습니다. 새로운 교파, 새로운 출발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도 새로운 수난길에서 개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223-211, 91.11.10) 

선생님은 예수님을 만나 깊은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계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오랜 시간 눈물어린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오늘이 진짜 부활한 날이라고 하면서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었습니다. 심오하고도 놀라운 것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지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134-144, 85.02)

예수님과 특별한 만남이 있은 이후 지금까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포함한 영계의 모든 성현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 나왔습니다. 그 내용은 말로써는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87-285, 76.06)

선생님은 소년시대부터 인생의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죽은 후에 우리의 생명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전능한 분인가 아니면 무력한 분인가?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하나님은 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가? 이 지구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들에 관해 고민했습니다. 
여하튼 그후부터 9년 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전능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영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점차적으로 하나님은 놀랄 만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진리 안에서 선생님은 영광스러운 새로운 문화의 서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특별한 계시는 신약성서에 기초를 둔 계시로 유대교의 가르침보다 훨씬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 계시는 모든 종교를 포섭하여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받은 계시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원리󰡑라고 불리고 있고, 선생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원리를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102-286, 79.01)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오시기까지의 과정
     
25세 전후에는 전국에 있는 신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름 있는 목사, 스님, 역술가 등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그들이 알고 있는 신앙관과 선생님이 알고 있는 신앙관을 비교하면서 이론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목사들을 대해 󰡐타락이 뭐냐?󰡑고 질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타락의 근원을 몰랐습니다. 근본이 희미한 이런 기반에서 출발한 것은 아무리 과정이 놀랍고 결과가 세계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완성의 종착점에 기착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타락의 근원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타락이 어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부 아는 관점에서 수많은 신령한 사람을 만나 봐도 그들은 그것을 다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때가 되지 않았는데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당시는 일제의 탄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가로서 열렬하게 되면 투옥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 교회를 중심삼고 답습하던 한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감옥으로 가고 만주로 도망가고 시베리아로 도망가는 등 각자 신앙의 길을 찾아 자기 고향을 떠나던 시대였습니다. 선생님이 국내에서 신령한 단체들을 찾아다니던 모든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여년의 역사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에 해방되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25세였습니다. 해방되니까 세계로 퍼졌던 애국지사라는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른바 일본 계열, 중국 계열, 미국 계열, 소련 계열이 들어온 것입니다. 남들은 모두 해방됐다고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좋아하지 못했습니다. 손을 들어 만세를 부르고 싶어도 손이 안 올라갔습니다. 입에서 만세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갈 길이 굉장히 어려울 것을 알고 여기에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된 과정을 거치면서 남북이 교차된 싸움판에서 한국의 자주 독립의 한 날을 바라면서 몸부림쳤습니다. 이 한반도가 새로운 총아로 태어나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겪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남북이 교차하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선진기지가 되는 양분된 비참한 국가 운명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그것은 한국 백성이 책임져야 됩니다. 책임지는 데는 장래 한국이 갈 길을 모르는 사람이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역사를 통해 이루어 놓은 한국의 이런 비참상을 수습하는 길이 과거에 있었다면 책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습하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 혹은 애국자가 많았지만 수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반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의(天意)에 의한 섭리사적인 한반도가 어떻다는 걸 아는 선생님으로서는 개척의 일로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집단들의 연합운동이 벌어집니다. 해방 전에 재건파가 나와 교회가 새로 설립되고, 그 다음에 한상동 목사를 중심삼은 고려파가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엔 신령한 집단으로 박동희라는 구약적 에덴복귀파와 김백문이라는 신약적 에덴복귀파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를 중심삼고도 신령한 집단이 나와야 됩니다. 남자가 그러한 입장에 서는 것과 동시에 여자들을 중심삼고 3대 여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대비하고 그것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해와가 하나님 앞에 먼저 불려져서 여자로서 앞으로 주님이 어떻게 온다는 걸 알고, 이것을 3대에 거쳐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섭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혼란기에서 여성을 대표한 김성도로부터 허호빈, 박을룡,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그 배후에 상대되는 백남주 목사로부터 이용도 목사, 김백문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남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난 동시에 여성적 새로운 교파가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기성 기독교와 기성 국가가 배후가 돼 새로이 나타나는 신령한 모든 단체를 포괄해야 되는데 포괄하지 못했습니다.
평양에서 발행된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보면 김인서 장로를 중심삼고 이용도 목사를 핍박했고, 그 가운데 길선주 목사가 나타나 새로운 기독교 부흥을 일으키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거치는 와중에서 모든 것을 직시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 분야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정리(正理)를 갖추었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에 대처하고 극복하면서 주장하는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금 돌이켜볼 때 꿈같이 되살아납니다. (211-135, 90.12.30)
     
     
인간 타락의 기원을 밝혀낸 선생님
     
신앙길은 나라가 도움이 못 됩니다. 통일교회가 길을 가려나오는 데 있어서 누구도 도움이 못 되었습니다. 기독교도 도움이 못 되었고, 또 신령한 집단들도 도움이 못 되었습니다. 남자를 대표한 3대와 여자를 대표한 3대가 영계의 가르침을 받고 나갔지만,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95퍼센트를 다 해주지만 그들이 해야 할 5퍼센트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줄 것 같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가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 단계에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원리로 말하면 원리결과주관권 내와 직접주관권 내까지 거쳐가기 위해서는 천사의 보호를 받으면서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 스스로 자연히 자라게 돼 있습니다. 만물이 성숙할 때에 이런 원칙에 따라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영장의 이름을 갖추기 위해서는 만물들이 자라는 모든 자연적인 법을 통해서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주관하지 않고 자연법에 의해 자라 나오는 과정에서 타락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자라는 과정에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악과라는 것이 밝혀진 사실이지만, 성경을 보면 사탄 악마는 음란의 신으로 규명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와가 그의 사랑으로 선과를 맺을 수도, 악과를 맺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와가 그의 사랑으로 악과를 맺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혈통적으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구원섭리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난 이후 인간 타락의 기원을 몰랐던 것을 비로소 선생님이 나타나서 밝혀냈습니다.
성경은 거룩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성경의 내용을 보면 용납하지 못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이 리브가와 하나되어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여 축복받은 놀음이 왜 일어났으며, 또 다말이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져 태어난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삼은 유다지파가 왜 축복을 받게 됐느냐 하는 문제와 인륜 도덕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용들이 왜 성경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4대 음녀가 나옵니다. 다말이 나오고 라합이 나오고 룻이 나오고 밧세바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창세기와 맞먹는데 첫 페이지에 이런 거룩하지 못한 오점을 지닌 여자들이 왜 나왔느냐? 이런 모든 문제는 타락의 기원을 모르고서는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수수께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로소 선생님이 와서 그걸 다 밝혔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세 하나님이 필요하냐 하는 문제, 묻혀져 있던 모든 성서의 비밀 내용을 밝혀야 합니다. 밝혀서 그 근본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근본을 중심삼고 어디로 가야 된다는 방향성이 확실해야만 바라는 목적지에 귀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근본이 희미하고 방향성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선생님이 소년시대를 거치고 청년시대를 거쳐 철이 나면서부터 성경의 내용을 중심삼고 깊이 탐구하다 보니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다는 것을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5세에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발족을 하게 되었습니다. (211-137, 90.12.30)
     
     
먼저 지하교회를 편답해 신령한 사람들을 모은 이유
     
선생님의 생애를 중심삼고 볼 때, 해방 이후 스물 다섯 살부터 30대까지―예수님이 30세에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섭리의 과정을 갖추어 나아가기 위해 모두 답사했습니다. 지하교회로부터 새로 생겨난 교파까지 모두 답사했습니다.
선생님은 먼저 지하교회를 편답했습니다. 일본에 신사참배한 더럽혀진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해방 3년 전부터 그러니까 스물 세 살 때부터 무엇을 시작했느냐 하면, 지하교회 편답을 시작했습니다. '신령한 사람들이 어떠한 길을 가느냐?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이렇게 가야 할 텐데, 이런 준비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될 텐데' 하면서 지하교회를 답사하며 유명하다는 신령한 사람들을 다 만나 보았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의 방향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있는 정성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교회를 찾아가게 되면 신령한 사람들, 그 교회의 책임자는 모르지만 그 교회 신도 가운데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다 선생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거쳐가게 되면, 일주일만 지나면 거기에 있던 신령한 사람들이 선생님 뒤를 따라오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그런 과정을 통해 신령한 교회를 편성하려는 뜻 있는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가르쳐야 할 내용이 뭐냐? 주님은 구름 타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한 10년쯤 덮어뒀다가 발표했으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선생님을 따라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없고 정면에서 투쟁해야 됩니다. 사탄과 하나님과 서로 대치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 선생님이 보이는 기관이 되어 보이지 않는 사탄세계를 대치해서 극복해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211-142, 90.12.30)
     
     
새주파를 중심한 하늘의 섭리
     
지금부터 한 70여년 전에 특별한 은사를 받아 신령역사를 한 집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철산(평안북도 소재)의 새주파입니다. 새 주(主)란 새 주인을 말하는데, 이는 부인을 보고 주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부부, 즉 신랑 신부는 일체입니다. 창조이념으로 볼 때, 부부는 한 몸이 되게 지었기 때문에 일체이념을 중심삼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자리는 창조이념이 이루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그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라고 가르쳐 주고, 주의 아내라고 가르쳐 줍니다. 한 몸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너자 나요, 나자 너라󰡑고, 󰡐네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한 몸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은 종적이고 땅은 횡적입니다. 종적인 존재가 땅 위에 내려와 있으면 주님은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인 주님은 곧 하늘이요 땅은 부인인데, 부부는 한 몸이니 땅에서 주님이라 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인데도 주님이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그의 아들딸이 잘 받들어 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런 천적인 책임을 지고 사명을 하는 부인을 그 직계의 아들딸이 받들지 않으면 며느리가 받들어야 됩니다. 그 어머니가 죽으라면 죽고 벌거벗고 춤추라면 춰야 됩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중심삼고 셋이 하나되어 하늘의 명령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며느리든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가 하나되어 하늘 뜻을 받든다면 꺾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산의 새주파를 이끌던 이의 아들이 여기 있는 정석천(鄭錫天) 장로입니다. 그리고 그 딸은 정석온(鄭錫溫)씨입니다. 뜻은 직계로 흘러나오기 때문에 아들을 중심삼고 며느리에게 뜻이 있습니다. 그런 걸 어머니가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천적인 흐름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들과 며느리가 지성을 다해서 어머니보다 더 충성했다면 절대 안 꺾이는데, 꺾인 것을 보면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 며느리나 아들을 칩니다. 하나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면 며느리가 먼저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먼저 죽고 그 다음엔 어머니까지 죽었습니다. 하늘은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래도 정 장로가 살아 남은 것은 아담을 복귀해야 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아 있습니다. 아담은 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책임하지 못하면 그들의 사명은 그들을 지성으로 모시던 신도에게로 넘어갑니다. 정씨 가문의 천적(天的)인 공적이 크기에 하늘은 그들을 사랑하고 은사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딸들이 그 뜻을 받들지 못하면 그를 따르던 신도가 인계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몽땅 넘어가게 됩니다. 정씨네 집은 문서장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대(一代)에서 안 되면 삼대(三代)까지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인계받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를 지성껏 모시던 한 부인이었습니다. 그가 허씨(허호빈) 부인입니다. 
그 부인은 생활의 전부를 주님을 중심삼고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맨 처음에 죄를 벗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엔 생활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고, 주님이 오신 뒤에 자녀를 기르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그 허씨 부인은 주님을 모시고 생활할 수 있는 법도와 전체적인 규례를 세워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해방되기 7년 전부터 준비가 됐어야 합니다. 원래는 해방되기 7년 전부터 그러한 준비를 해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해방을 중심삼고 재림이념이 출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 전부터 준비하면서 역사해 내려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계받아 새로운 역사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때는 한 단계 떨어집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부라 하며 주님을 낳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중을 통하여 주님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마리아적 사명입니다. 첫번(김성도)은 해와적 사명이요, 그 다음(허호빈)은 마리아적 사명입니다.
마리아적 사명이니 허씨 부인은 예수님을 낳아 기르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지내던 모든 것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30여년을 지내시다가 이 땅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으니 그 모든 한을 풀기 위한 일체의 준비, 탕감적인 일체의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씨 부인은 주님이 입을 옷도 만들고 다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한국에 오실 것이고, 어린 아기로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전부 가르쳐 주었습니다. (8-221, 60.01.06)
     
     
재림역사의 시작과 그 준비
     
허씨 부인은 주님이 오시면 모실 생활적인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33년 동안 살다가 뜻을 못 이루고 원치 않는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한국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키는 얼마나 크고 체격은 어떠하다는 것까지 계시받아 옷가지에서부터 침구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준비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을 다 준비해야 됩니다. 그것을 준비한 자가 땅 위에 없을진대 주님을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이 누우실 방 한 칸 준비 못하여 예수님은 말구유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한을 가진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은 택한 사람을 세워 생활적인 모든 것, 즉 입으실 옷이라든지 계실 방이라든지 가정 기물 일체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문화생활을 하는 동서양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최고의 수준으로 모든 것을 다 준비시키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 120문도가 그것을 못한 한을 남겼으니 세계적인 사명을 지고 오실 주님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천2백명 이상의 교인들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파를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이 아담형의 국가로 복귀되어야 합니다. 일본은 해와 국가요, 한국은 아담 국가입니다. 아담이 해와에게 주관받았으므로 아담 국가가 되어야 하는 한국은 그 방식대로 일본에게 36년간 압제당했습니다. 원래는 40년 고난 기간입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40년만에 나왔다는 말입니다. 일제하 36년에다가 군정시대 4년을 합한 40년 고난 기간을 거쳐 한국은 해방과 더불어 복귀된 아담형의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해방되자마자 재림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적으로 볼 때, 한 부인이 소생역사의 사명을 했고 또 한 부인이 중간적인 책임을 했으니 새로운 것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낼 때 제1차, 2차는 같은 비둘기였지만 3차에는 다른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1차 대전, 2차 대전은 나라를 중심삼고 벌어졌지만 3차 대전은 다른 것을 중심삼고 벌어집니다. 이것은 곧 직계가 책임 못하면 그것 대신 반드시 일시적으로 탕감조건을 세워 한꺼번에 넘어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런 사명을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3대에 걸쳐서 해야 합니다. 그러니 허씨 부인 외에 그러한 사명을 한 부인이 또 한 사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옵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이러한 천적인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해방 직후부터 그 일을 책임지고 나섰습니다. 그 전에는 친구들도 선생님이 뭘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신앙생활 잘하는 한 청년으로 알았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있던 동생들도 몰랐습니다. 부모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자 편에서도 그러하지만 남자 편에서도 그러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그 여자들과 대비하여 신령역사를 해야 합니다. 남자는 동쪽이고 여자는 서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쪽인 철산에서는 여자들이 신령역사를 했고, 동쪽인 원산을 중심삼고는 남자들의 신령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황국주, 이용도, 백남주 등이 신령역사를 했습니다. 그때 이러한 외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신령역사를 책임지고 나온 사람이 이용도 목사입니다. 그는 한국 교계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서른 세 살에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의 대(代)를 이은 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8-224, 60.01.06)
     
     
재림기의 세례 요한 사명자와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나는 주님의 일등 신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더 나아가서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런 신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선(救援船)이라고 하는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타락문제에 들어가 원칙적인 것은 모르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사람은 세례 요한적 사명을 띤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사탄을 막아주어야 할 자입니다. 세례 요한이란 존재는 타락한 아담이 되살아난 존재, 즉 사탄의 지배를 받아 떨어졌던 것이 다시 부활한 형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아담형입니다. 세례 요한이 사탄을 이긴 것을 상속받은 예수님은 사탄의 침범,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축복을 받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감당치 못하니, 세례 요한이 꺾어지니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예수님은 세례 요한 대신 옛날 아담을 꺾은 그 사탄과 역사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 나섰는데, 그것이 40일 금식기간의 싸움입니다.
선생님은 스무 살을 넘으면서부터 그런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장에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축복해 준 것처럼 그 사람들도 선생님에게 축복을 다 해주었습니다. 자기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말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식구 모양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의 모든 기반을 그대로 인계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봉사자로서 인정받는 수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6개월 동안 했습니다. 6개월 있는 동안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수제자 전부를 선생님에게 인계해야 할 천적인 사명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적으로 모모한 인사들 앞에 그런 말을 했고, 또 선생님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하늘이 그들에게 문선생을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선생이 이러이러한 분인데 하늘이 우리의 선생을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저 문선생을 따라가라니 웬말이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간을 두고 역사하였으나 그래도 그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8-226, 60.01.06)

선생님은 또 한 사람의 세례 요한 사명자인 김백문을 1945년 10월에 만났으며, 그 교회에서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봉사하는 동안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김백문보다 문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으나 그들은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김백문은 선생님을 만난 후 6개월만에 계시를 받고 선생님을 󰡐솔로몬 왕과 같은 사명을 받은 분󰡑이라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정한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자진해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상봉 후 21개월만에 선생님은 김백문 집단을 나왔습니다.
당시 김백문은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례 요한 입장에 세우고 뜻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원산의 백남주 목사는 스웨덴보르그를 연구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 주님이 한국으로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 주님의 역사를 하였고, 그 고난을 탕감하기 위하여 철산의 김성도씨를 맨발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김성도 집단을 성주교라는 이름으로 총독부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세례 요한 사명자였습니다. 그 뒤로 그 뜻이 이용도, 김백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1월 18일은 선생님 생애에 있어서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날입니다. 그(김백문)가 받건 받지 아니하건 선생님으로서는 충고하여 청산하지 않고는 심정적인 재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에게 열 여덟 장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을 다 찢어버린 날이었습니다. 이것을 찢은 후, 선생님은 책임 다한 입장에서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이 날이 없이는 평양에 갈 수 없었습니다. (19-262, 68.02.08)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분을 지성껏 모신 선생님 
     
선생님은 '이젠 축복을 받았으니 그 기준을 가지고 신령한 역사를 하는 부인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부인이다. 누구든지 나한테 굴복해야 구원받는다' 하는 부인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부활한 해와이자 타락 직후의 해와를 대신한 역사를 하기 때문에 두 쪽의 역사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때는 하나님도 들어와 역사하고, 또 한때는 사탄도 들어와 역사하는 완충형(緩衝形)의 실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인을 만나 실체로 대결하여 꺾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이 있는가 하고 각방(各方)으로 수소문하여 찾아 만날 수 있는 길을 터서 그런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이 믿지 않고 남이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부인을 찾다가 만나니 참 기뻤습니다. 그 부인은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으로 가서 그분을 만나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프로가 어떻게 돌아 어떻게 귀결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던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삼척동자처럼 그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속옷까지 다 빨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모신 그 할머니는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모두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게 돼 있습니다. 탕감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물복귀를 흉내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하나님같이 모셨습니다. 그곳에 모이는 식구들은 그 할머니가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선생님을 보고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지성껏 모셨습니다. 왜 모셨느냐? 하늘 것은 하늘 것으로, 사탄 것은 사탄 것으로 갈라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갈라놓지 않으면 복귀의 기준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절대복종하고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잡기 위해 지금까지 어떻게 해 나왔느냐? 사탄에게 복종하면서 잡아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21개월 이상 기간을 정해 놓고 순종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에게는 두 가지가 역사하는데, 반드시 사탄이 먼저 와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갔을 때, 선생님을 원수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벌써 그럴 줄 알고 있었기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머리를 숙였습니다. 밟고 책망하더라도 세 번 이상 순종하면 사탄이 밟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때 빼앗는 것입니다. 천대를 받으면서도 순종하고 모시면 하늘의 끄트머리 천사장으로 축복해 줍니다. 그러면 '옳지 되는구나' 하고 올라갑니다. 탕감복귀 원칙대로 무엇 무엇해 가지고 단계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 사람은 천상천하의 누구라고 증거하게 돼 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섬겨라!' 할 수 있습니다. (8-227, 60.01.06)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하신 선생님
     
그 할머니는 앞으로 하나님이 축복할 자녀가 자기 아들딸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아들딸이 많았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10대형의 아들딸이 있었습니다. 원래 가정적인 출발을 하려면 그 10대형을 갖추어야 됩니다. 열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할머니는 하나님이 자기의 열 아들딸을 제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은 그 아들딸까지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축복해줄 때까지 그 할머니와 아들딸까지도 모셨습니다. 참고 어머니같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말씀하시는 것이 옳고 말고요.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딸이고 말고요' 하며 모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할머니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누구고, 그대는 누구니 복귀의 한을 풀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하시오'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부인인데' 하는 판국에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던 젊은 청년이 그러고 나서니 어땠겠습니까? 거기에서 그 할머니가 순종했다면 선생님도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해야 되는데 그것이 제일 힘듭니다. 거기서 천명이면 천명 다 꺾여 나갑니다. 굴복하지 않고 반대한 그 시간부터 그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버렸습니다. 하늘의 복을 다 빼앗고 사탄은 사탄대로 갈라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선생님에게는 하늘의 강도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팎의 축복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서도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준이 되기까지 안팎의 영적인 시험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시험까지 있었느냐 하면, 40일의 시험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계의 모든 영인들이 전부 그 할머니편이 되어 선생님을 몰아쳤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선생님한테 와서 빌면서 󰡐그 할머니는 여호와의 부인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니 제발 모셔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수많은 영계의 도인들, 예수님과 하나님까지 동원된 전 영계와 40일간 싸웠습니다. 싸움판의 천지로 만들 수 없기에 하나님은 40일의 기간이 차면 비로소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천리의 원칙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선생님이 찾아 나온 이 길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최후의 판가리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이하 수많은 영인들이 역적으로 몰고 반대하던 문(文)이라는 사람의 주장이 복귀의 한을 푸는 원칙이요, 천륜의 비결 중의 비결이란 판결을 받아 승리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판결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과도 싸웠고 하나님과도 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기준하에서 역사적인 귀결을 지어 천지의 모든 기준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었던 연고로 선생님은 이런 내용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한테도 이야기 못했고 식구들한테도 이야기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또 이것을 전개시키기 위한 복잡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스물 일곱 살에 평양에 가서 지금 말한 이런 역사를 거쳐 이 길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적인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보기엔 선생님이 편안한 것 같아 보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자기들 사정을 다 하늘 앞에 고할 수 있지만, 선생님은 이러고 저러고 할 수 없는 비밀의 내용을 갖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8-229, 60.01.06)


2. 기독교의 영적 기반 상속과 성혼식
     
     
복귀섭리는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을 찾기 위한 역사
     
인간 시조인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세워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가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그 타락한 가정에서 타락한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은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악의 권내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 맺을 수 있는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찾는 데는 나라를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을 찾아 세우기 전에 하나의 남자와 여자부터 찾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중심인 사탄을 자연굴복시키고 그에게 종을 부리듯이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사탄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 명령과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을 갖춘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자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아들과 딸이 되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로 원한이 남아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킨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남자의 원수는 여자로 되어 있고, 여자의 원수는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남자로서 주체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적 입장에 있는 해와가 제아무리 간교한 행동으로 유인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의 말을 들음으로써 타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안 들어야 할 입장에 서야 할 주체되는 아담이 상대인 해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아담이 해와의 원수 입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대일의 입장에서 받게 되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한 남자가 아니요, 여자는 여자를 위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팎이 되어 그 누구도 분리할 수 없는 일체된 심정적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참된 가정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간격이 완전히 좁혀지지 않습니다. 사탄과 인간과의 간격을 벌여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인간끼리의 간격을 좁혀야 합니다. 그 다음에 타락된 인간으로 복귀된 일남일녀의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 인간이 역사과정을 통하여 범죄한 내용들로 인해 벌어졌던 하나님과의 간격을 좁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승리적 사랑권을 만들 수 없습니다. (44-278, 71.05.24)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담당했던 사명
     
오늘날 기독교가 해 온 사명은 참된 아들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와서 󰡐모두 나에게 접붙임을 받아라󰡑 할 때, 일시에 이 세계가 접붙임을 받게 되면 완성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일시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것이 제2 이스라엘권입니다. 
제2 이스라엘권은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권입니다. 왜 그것이 천사세계에 해당하느냐? 아담이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을 중심삼고 일은 벌어졌지만, 그래도 천사장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전체적인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즉 천사장의 위치를 중심삼고 거기에 해당하는 완성적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권이 지금까지의 천사장권입니다. 
완성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그 권은 상대이상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리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예수님은 물론이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간 사람들도 이와 같이 개인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천사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들은 상대적 인연을 결정짓지 않고 홀로 있는 존재입니다. 
누가복음 20장 35절을 보면,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와서 일곱 남편을 가졌던 여인을 가리켜 󰡐저가 영계에 가게 되면 누구의 아내가 되오리까?󰡑 하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영계에서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 구원이라는 것은 타락한 천사장권에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권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 해와를 완성권으로 인도해야 될 책임과 사명이 천사장에게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 이하 천사 전체가 합동하여 예수님이 지상에서 아담 해와가 세워야 할 완성기준을 세우는 데 협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재창조 역사에 협조하는 사명을 계승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천사장의 사명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남일녀가 나타나서 상대적 사랑권을 성립시키는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사장 세계가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들을 해원성사하고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원성사되지 않고는, 다시 말하면 천사장권이 옹위할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담 해와가 완성한 아담 해와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44-282, 71.05.24)
     
     
오시는 주님이 먼저 해야 할 책임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천사장 승리권, 예수님을 위시하여 지금까지 영계에서 승리해 왔던 승리권을 그대로 상속받아 나와야 됩니다. 천사장 심정권을 중심삼고 천사장 세계, 곧 영계 전체를 중심삼고 천사장이 사랑받던 기준의 사랑을 받았다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장의 사명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 옛날 천사장이 사랑받던 것 이상 사랑 받는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내용적으로 보게 되면 아들이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서는 천사장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사명 터전이 거두어지기 위해서는 천사세계 전체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 역사는 아들 하나를 세우기 위한 역사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 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내적인 인연을 통하여 땅 위의 아들도 사랑할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영계에서 천사장 이상 사랑 받았던 것과 같은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에 탄생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사랑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일체를 정복해야 됩니다. 전체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예수님을 중심삼고 완성하지 못했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외적으로는 천사장 입장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하다가 갔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가인적인 사명이요, 가인적인 사명은 천사장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외적으로는 가인적인 사명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을 안팎으로 상속받고 나타나야 합니다. 
재림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천사장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천사장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조건을 성립시키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참아들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영계의 예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천사세계와 예수님과 온 영계가 합동하여 사랑의 내연을 갖춘 승리의 발판을 가지고 지상에 현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 동산을 복귀할 수 있는 전체적인 사명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재림주님 한사람은 내적인 아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 기준을 대신하고, 천사세계의 사랑을 완전히 대신해야 됩니다. 오시는 주님은 영계의 천사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총합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 양자의 역사, 아들의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아들의 역사를 거쳐 승리한 후에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승리한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나서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난 다음에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44-283, 71.05.24)
     
     
재림주님은 천상세계의 영적인 권한 일체를 전수받아야
     
재림시대에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는 목적은 사랑이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재림주는 하나님이 제일 이상적 표준으로 세웠던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참된 사랑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옵니다. 그러니  재림주가 이 땅 위에 나타나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구원섭리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는 영계에 들어가서 실체구원권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부모의 중심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권이 그 당시의 영육을 중심삼은 교주를 모셨다 하더라도 그건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적인 부모를 중심삼고 일체된 기준만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그 중심기준이 영적 구원섭리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자리에 있는 모든 영계는 예수님이 실체권에 못 섬으로써 영계 전체가 실체구원이 못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권의 사람도 예수님을 높은 표준으로 해서 그 아래에 전부 다 영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영적 구원섭리권이 지상의 실체섭리권과 더불어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재림주가 천상의 영적 구원섭리의 모두를 이어받아 와야 합니다. 섭리노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영적 세계의 모든 것을 상속해서 주체성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적 패권을 받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인(御印)을 받아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장자권(長子權)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원리를 찾아 나왔지만 결국 맨 나중에는 영계의 이 모든 것을 패스해야 됩니다. 영계를 패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영계를 잃어버리게 한 장본인이 해와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영계와 이 실체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가 주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도 어머니가 모자협조했고, 또 베레스와 다말을 보더라도 다말이 생사를 걸고 하늘의 혈족을 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자협조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이 이 원리의 길을 알고 나서 계속적으로 해야 할 것은 천상세계의 영적인 모든 권한을 전수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영계를 통하는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준비하기 위한 영적인 신령집단이 있었습니다. (212-72, 91.01.02)
     
     
재림이상의 중심 내용은 신랑 신부
     
영계와 육계를 볼 때, 영계는 가인형(型)이요, 육계는 아벨 형입니다. 그것은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은 영적이요, 실체를 가진 아담 해와는 육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아들에게 영적인 천사장이 순종 굴복해야 되고, 그 아들을 천사장이 사랑해야 됩니다. 천사장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전세계 60억 인류의 운명은 이 땅 위에 오시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60억 세계 인류를 대표한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이상이요, 또 그러한 가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이상입니다. 
그 재림이상의 중심 내용은 신랑 신부입니다. 신랑 신부의 사랑이 지상에 현현하는 때가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때입니다. 신랑 신부가, 새로운 부부가 현현하는 때가 이상이 출발하는 때입니다. 재림이상은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되지 않고는 횡적인 연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혼자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이 해온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걸 인계 받아야 된다󰡑 해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소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며 하늘만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이루고, 상대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부가 현현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발판이 지상에 결정됩니다. 그와 더불어 역사에 없었던 심정적인 횡적 터전, 다시 말하면 지상섭리의 기반이 마련되어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기도할 때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제목도 부부가 의논해서 정하고, 기도를 드려도 부부가 함께 드려야 합니다. 타락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 씨를 뿌린 것도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둘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사랑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해야 합니다. (44-285, 71.05.24)
     
     
메시아는 참부모로 와야 된다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아담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종횡의 부모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 보았으면 하는 열망을 우리는 다 갖고 있습니다. 종교니 무엇이니 하는 것도 전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면에서 하나되어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이 땅 위에 있었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명을 대행하는 하나의 명사를 씌워 부르는 존재가 구주입니다. 메시아라는 존재입니다. 구해 주는 데는 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려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참된 부모로 와야 됩니다. 참부모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로 나와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남자 중에서도 생활을 잘하는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고, 영계를 위주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독생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생자가 나왔는데, 독생자 혼자서는 안 됩니다. 독생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독생녀를 찾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서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됩니다. 결혼해서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로서 기뻐하고 독생자 독생녀는 횡적인 부모로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되어 지상에서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종자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유대교를 저버리더라도 제일 필요로 했던, 다시 찾아야 하는 주체적 동기가 여자입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2천년 동안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독교 신자들이 신부되겠다고 허덕이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메시아입니다. 참된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천년 전 인간이 횡적인 부모로서 하나님을 종적인 부모로 모심으로써 종횡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의 출발을 볼 수 있었던 기원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빼서 접붙여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받아 접붙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사상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의 혼인 잔치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58-218, 72.06.11)
     
     
1960년도에 있었던 선생님 성혼식의 의의
     
역사적인 기점을 통일교회에서 선포했습니다. 그때가 1960년도입니다. 완성단계는 혼자 못 올라갑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야 올라갑니다. 그 다음에 세 아들이 합해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예수님 때에는 세 제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혼자 외톨이가 되어서는 못 올라갑니다. 아담이 가정적으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정을 갖지 않고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결국 세 제자도 상대를 맞아 가정을 만든 다음 예수님의 가정과 더불어 여덟 식구를 만들지 않고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여덟 식구로 떨어져 출발했기 때문에 여덟 식구를 만들어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노아 때의 심판도 여덟 식구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노정이기 때문에 통일교인들도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이념을 인계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이것을 복귀해 놓지 않으면 예수님 바라던 가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의 바라던 민족이 안 나오고, 나라가 안 나오고, 세계가 안 나옵니다. 아담이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떨어졌기 때문에 노아 심판 때에 여덟 식구를 남겨 가지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58-220, 72.06.11)
1960년에 선생님은 성혼식을 올리기 전에 36가정 중 세 가정을 먼저 약혼시켰으며, 선생님이 성혼식을 올린 후에 이 세 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 자녀가 하나님의 이상권에 섰다고 하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완전히 갈라질 수 없다는 승리적 기반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국가로부터 쫓기고, 교회로부터 쫓기고, 모두로부터 쫓기는 환경권에 서지 않으면 복귀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국민이 총동원하여 박해했습니다. 통일교회에 대해 수십 명이 선생님을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투서를 하였습니다. 거국적, 거족적으로 통일교회를 쓰러뜨리고 통일교회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 성혼식 전날까지도 선생님을 해치려는 투서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효원 협회장과 협력하면서 승패를 다투는 환경에서 성혼식을 올려습니다. 그 성혼식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마음 편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싸움이었습니다. 문 밖에서는 반대하는 소리, 그런 중에서 성혼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통일교회는 승리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성혼식 전에 세 가정을 세운 것은 예수님의 세 제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신랑 신부의 이상(理想)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죽어서 남긴 기준을 승리한 평면적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은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 세 가정은 역사 전체의 모든 것을 탕감하는 중심 가정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대에는 제1 아담과 제2 아담의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 모든 과거를 탕감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명이었습니다. (55-164, 72.05.07)
우리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원한의 터전을 메워 나가야 되겠기 때문에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세상 전부가 동원되어 아우성치는 판국에서도 그와 같은 자리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그것을 탕감복귀한 것이 1960년도의 선생님 성혼식입니다. (58-220, 72.06.11)
     
     
1960년도에 성혼식을 이룰 수 있었던 기준
     
1960년도에 성혼식을 중심삼고 출발한 기준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받들었더라면 양자의 기준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오신 주님은 종의 종살이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맨 밑창에서부터, 감옥 중의 감옥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그것이 21년을 중심삼고 출발한 7년노정이었습니다. 이 노정은 3단계 복귀노정을 통해서 야곱이 하란에서 종살이하면서 21년을 걸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되풀이해 나온 것입니다. 
해방 이후 14년이 지나서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소생․장성․완성시대에서 소생시대를 7년으로 잡으면 장성시대까지는 14년이기 때문에 해방 이후 14년이 지나서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성급 아담으로 왔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실패한 것을 대한민국의 판도에서 소생․장성의 양차 7년노정을 거쳐 통일교회의 환경을 에워싸고 반대하는 모든 여건들을 억누르고 싸우는 전쟁 마당에서 성혼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써 영육의 부활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부활은 가져왔지만 육적 부활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영적 구원섭리의 도리는 세웠지만 육적 구원섭리의 도리를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절반을 갈라놓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실패한 모든 것을 수습하려면 영적인 세계의 모든 판도를 하늘로부터 인수받아 지상에서 사탄세계와 대결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진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대 격전을 하면서 성혼식을 가졌습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장성기 완성급 14년 기준을 중심삼고 영적 기반을 인수하고 실체기반 확대를 위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196-213, 90.01.01)
1960년도에 40수를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성혼식은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자의 자리를 상속받고 영적인 아들로부터 실체적인 아들의 권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천사장과 영적인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천사장과 예수님이 하나되어 지상에 오는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 예수님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땅 위에 완성권을 인계받아 가지고 오시는 재림주님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접붙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상속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고 상속을 받는데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시에 남자가 접붙임을 받고 여자가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배후에는 억천만의 사건이 달려 있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여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와 남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가지고 참소하고 있습니다. (44-287, 71.05.24)
     
     
가장 비참한 입장에 처해야 하는 재림주 가정
     
죄의 뿌리는 거짓 사랑입니다. 거짓된 정적문제(情的問題)입니다. 그러기에 죄의 뿌리를 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 사랑의 기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선과 악은 서로 방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구주 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악한 사람의 맨 밑창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악한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합니다. 악의 맨 복판에 들어가야 악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44-287, 71.05.24)
지금까지 이 지상에는 진정한 부모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영적인 부모인 예수님과 성신이 영적 자녀를 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 판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기준을 세계 판도까지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둘이 맞아 떨어져서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세계적인 모든 핍박권을 능가하는 시대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까지의 과정에는 언제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성혼식을 하고 난 이후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냐? 이 지상에 하나님을 중심한 참부모가 태어난 것입니다. 역사 이래 악한 부모는 태어난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한 부모의 기준이 이 지상에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설정되는 날 사탄은 역사이래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 나오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평면도상에서 이것이 침식당함으로써 사탄세력은 갖은 힘을 다해 반기를 들고 핍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213, 90.01.01)
오시는 주님의 가정은 비참하다면 그 이상 비참한 가정이 없을 만큼 비참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가정에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모든 남녀들이 저질러 놓은 비참사가 잠깐이라도 스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이 안 됩니다.
오시는 주님이 일등 신랑이라고 해서 그 신부 되는 여자가 태평 왕궁의 왕녀와 같은 호화찬란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시는 주님의 자리는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었던 모든 고통을 언제나 느껴야 하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탕감법도가 그렇습니다. 󰡐아이고,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 둘 사이는 그저 만나면 천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 하나는 주체고 하나는 대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천사장과 예수님 사이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말없는 싸움입니다. 여자로서 재료를 수집하여 남자를 평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뜻이 아니라 재림주님의 가정은 일시에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뜻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싶은 그러한 자리입니다. 
역사를 두고 볼 때, 천국을 바라고 혹은 큰 것을 바라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오기는 쉬운 일이지만,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그것이 힘듭니다. 또 그런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나라도 나올 수 없고, 민족도 나올 수 없으며, 씨족도 나올 수 없습니다. (44-287, 71.05.24)
     
     
심정의 십자가를 져야 할 재림주 가정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가기는 쉬웠지만, 감정을 곧추세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하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해와가 할 수 없습니다.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남자인 아담이 조절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정상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하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습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떼어버리기 위해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즉 의사가 아픈 사람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심각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서는 역사시대에 비참했던 남녀관계의 비운의 역사가 스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부에게 눈물을 흘릴 일이 있다면 그 눈물은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을 대표한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참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심정세계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며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이 있을 것이요, 또 분하고 원통하게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도 있을 것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 길을 못 가겠다고 했던 남자도 있을 것인데, 그들의 그러한 운명길을 책임지고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상에 엉클어진 악의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중심삼고 걸려든다면 용서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아 가며 조롱하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난비소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44-288, 71.05.24)
     
     
3.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아버지다󰡑라고 하는데, 어떤 아버지입니까? 지금까지 기독교는 모르면서 그냥 아버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설명을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하는 것은 현실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아버지 자리, 참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종적인 축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원불변입니다.
그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한 참부모 앞에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입니다. 이와 같이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부모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몰랐습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이것을 확실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냐?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생각 가지고는 안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실험을 해서 틀림없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이 그렇다 하면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일반 지도자와 다른 점입니다. 일반 지도자와 같이 응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제를 가지고 실천하면서 사는 동시에 실제의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를 증명하는 하나의 표본상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는 왜 했느냐? 종적인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 하나님의 발판이 없고 발판이 없으니 활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활동하기 위해서는 횡적 발판이 필요합니다. 종적인 것이 횡적 발판을 중심삼고 주고받으면 운동이 벌어집니다. (184-250, 89.01.01)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 조상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종적인 주체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자가 됨으로써 90도를 맞추어 중앙선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내적 사랑, 외적 사랑이 하나됨으로써 종적 기준 앞에 횡적 사랑의 판도가 확장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횡적 사랑판도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시조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184-258, 89.01.01)
     
     
참된 부모가 찾아오는 사랑의 길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종적인 주체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자가 되어 90도를 맞추어 가지고 중앙선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길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길입니다. 사랑은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도 직격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적인 저 높은 곳에 있으면 수직, 제일 직단거리를 통해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수직밖에 없기 때문에 직단거리입니다.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수직으로 결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론적으로 심각했습니다. 이론적 근거가 사상적 체제를 중심삼고 개인적 인생관,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관과 우주관에 일치돼야 합니다. 방향성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을 무엇으로 찾을 것이냐? 민족 정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민족 전통적 지식이라든가 문화배경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랑의  전통 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의 전통은 하나이고, 직선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직선의 역사를 거쳐오는 직행적 전통, 사랑의 노정은 사탄세계에는 없습니다. 사탄세계에는 곡선적이고 혼선적인 것으로 사랑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다가 다 떨어져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부모가 찾아오는 길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184-258, 89.01.01)
     
     
우주의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
     
남자 여자가 동서에 있는데, 그들이 참된 사랑의 길을 찾아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최단거리의 직선이라면, 남자가 동쪽으로부터 중앙선에 와서 닿고 여자가 서쪽으로부터 중앙선에 와서 닿으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맞느냐? 오목 볼록이기 때문에 맞는 것입니다.
여자가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찾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를 찾으면 하나님은 참사랑 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은 천지의 대도를 통하고, 천지의 모든 권한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상속권(相續權)이 있고, 언제나 동거(同居)할 수 있고, 언제나 동참(同參)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가는 데는 아내가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자는 데 들어갈 때 아내가 인사하고 들어갑니까? 남편은 여편네가 궁둥이를 잡아뜯더라도 󰡐이거 왜 이래󰡑 하면서도 들어오라고 이불을 들추게 돼 있지 내쫓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동거권이 있는 것입니다. (184-259, 89.01.01)
사랑은 직단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어디에 가서 만나느냐? 둘이 중앙선으로 가야 됩니다. 남자가 조금만 더 가도 󰡐왜 더 가󰡑 하고, 여자가 조금 더 가도 󰡐왜 더 가, 똑같이 가야지󰡑 이러는 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앙선에 와서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만나게 되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90도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은 직선,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이 수직 앞에 절대적으로 90도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이요, 원형(原型)적인 모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로서 종적인 자리에 있지만 남자와 여자는 횡적인 부모로 성숙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과 마음이 공명하게 됩니다. (184-261, 89.01.01)
     
     
선생님에게 미친 초창기 통일교회 식구들
     
오시는 주님, 메시아는 무엇을 가지고 오느냐? 참사랑을 갖고 옵니다. 참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참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까지 올라가 봐도 필요합니다. 우리 조상인 아담 해와도 참사랑이 필요했고, 하나님마저도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237-284, 92.11.17)
인간세계, 타락의 세계에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참사랑은 좀 다릅니다. 우리 통일교회 초창기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나 전부 미쳤습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했느냐? 이 세상의 여자 남자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상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식구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종횡을 중심한 참사랑은 종적으로 나오는 힘이 횡적으로 통하고 횡적으로 나오는 힘이 90도를 통하면 주변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바람이 불게 되면, 봄바람이 불게 되면 사람이란 존재는 전부 꽃이 피게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에 통일교회에는 심정적 봄동산이 열렸습니다. 그러니 70이 된 노인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이고, 언제 보나󰡑 하며 그리워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모하는 첫사랑 이상의 사랑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나이를 초월해 남자나 여자나 한 방향으로 집중했습니다. 그 사랑의 움직임이, 90도를 맞추어야 할 위치가 다르더라도 그 수직이 같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연 가운데서 전부가 그런 방향으로 선생님을 중심삼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그때 통일교회 여자들 세계에서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하고, 아주머니도 과부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으며, 처녀들까지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혼자 사니까 󰡐내가 선생님 아내 돼야 되겠다󰡑 하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소용돌이를 치는데, 80대 소용돌이로부터 70대 소용돌이, 60대 소용돌이, 50대 소용돌이, 40대 소용돌이, 30대 소용돌이, 20대 소용돌이, 10대 소용돌이까지 쳤습니다. 그 바람이 불어 10대로부터 70대, 80대까지 묶어놓아야 여자가 타락한 세계의 모든 곡절을 풀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풀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선생님 대해서 그렇게 야단이니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돌멩이로 치고, 몽둥이로 치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뭐 안 한 짓이 없습니다. 별의별 놀음 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꼴을 다 봤습니다. 선생님이 자기 여편네를 빼앗아 데리고 산다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그 많은 여자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살겠습니까?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욕이라는 욕을 다 퍼붓고, 할 짓 못할 짓 다 했습니다. 옥에 가두고, 발길로 차고, 모둠매를 치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담의 주관성이 전도됐기 때문에, 여자를 잘못 가르침으로써 이 수욕의 길이 생겼으니 여자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남자 대표되는 선생님을 치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 배후의 역사를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 현실에 적용돼서 실천장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전통으로 알고 그 역사를 대할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고, 자세를 갖추어 하늘땅 앞에 수욕의 모습을 해방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184-262, 89.01.01)
     
     
초창기 통일교회에 불었던 봄바람
     
끝날의 탕감복귀는 아담 해와 때 벌어졌던 모든 일이 그냥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남자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아버지고 여자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어머니입니다. 그러니 남자는 전부 아버지의 분신이고,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땅 위의 여자는 역사 이래 참된 남편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남성을 맞을 수 있게끔,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를 중심삼고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 아버지는 온 세계의 아버지 입장인 동시에 복귀를 위해서는 남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하늘이 공인하고 부모가 공인하는 이상적 남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전부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미국 여자든, 호랑이 같은 여자든, 미치광이 같은 여자든, 그저 말 궁둥이같이 생긴 여자든 선생님만 보게 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설명 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동네에 남자가 있으면 그저 그 남자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좋고, 웃음소리를 들어도 좋고, 욕하는 소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택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전부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팔십 난 할머니도 󰡐내 남편은 문선생이다󰡑 했습니다. 열 두살 난 여자까지도 󰡐내 이상상대는 선생님이다. 다른 데 시집 안 간다󰡑 그랬습니다. (1166-265, 87.06.07)
6천년의 봄은 한 번 오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춘기라는 것은 한 번입니다. 혼인 결정을 할 때까지 봄바람이 부는데, 그것이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수천 년, 수만 년의 역사를 거쳐 비로소 한국 땅에서 그 봄바람이 분 것입니다.
이화여대 사건도 그런 것입니다. 380명의 여자 대학생들에게 바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80여명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왔습니다. 목욕 간다고 해서 뛰쳐나오고….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못 나오게 하려면 나를 죽여주시오󰡑 하면서까지 나왔습니다. 죽어도 학교는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곁에서 똥 냄새가 나고 발구린 냄새가 나도 그것이 구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163-258, 87.05.01)
     
     
구세주란 곧 사랑의 구세주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차려야 됩니다. 바로 가야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선생님을 내 아버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희생시켜 아들의 길을 닦았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만물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신약시대는 부모님이 올 길을 위해서 자식들이 제물 되는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에서 사랑을 갖고 만물을 주관하고, 사랑의 자녀를 품고, 사랑의 아내와 남편을 품고 부모의 자리를 설정하는 것이 창조이상이었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으로 유인받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끝에서부터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서 만물이 피를 흘렸습니다. 거짓된 사랑의 피를 탕감해야 합니다. 죽음을 걸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을 부르기 위한 역사였고, 신약시대는 자식을 희생시켜 부모님을 이 땅에 부르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데, 그 주가 누구냐? 참아버지입니다. 거짓 아버지의 뿌리를 가진 것이 인간의 탄식이었기 때문에 󰡐참아버지 되는 뿌리가 오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메시아 사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말로 메시아는 밥장사를 의미합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뭐냐? 사랑의 구세주입니다. 사랑의 전통을 중심삼고 종횡의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권을 갖다 줄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그 전통적 중심이 사랑입니다. 구세주는 사랑의 구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희생시켜 사랑의 아들딸을 찾았습니다. 이 땅 위의 사랑의 아들딸들의 한이 뭐냐? 부모를 못 모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못 모셨습니다. 부모를 못 모셨으니 자녀들은 피를 흘려서라도 부모님이 올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입니다. (184-266, 89.01.01)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이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님 오실 날을 바라던 것이 기독교 사상입니다. 주님이 뭐냐? 아버지입니다. 신부를 빼앗아 갔으니 주님이 아버지로 와서 사탄세계에서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강제로 찾는 것이 아니라 만국이 환영하는 가운데, 󰡐어서 오십시오! 이 땅 위에서 모셔 가십시오!󰡑 하는 후원 가운데서 찾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후원하는 후원부대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떨어집니다. (184-268, 89.01.01)
부모님이 오시면 그때는 만국 전체가 하나의 나라가 됩니다. 땅도 기독교 품에, 만민도 기독교 품에 있으니 외적 만물과 내적 인간이 하나되면 가인 아벨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사랑으로 통일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기독교 나라들이 부모 되는 분을 만국의 조상으로 모시고 역사 이래 없던 귀한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재산과 자기 자식과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이 왔지만, 기독교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부모가 왔지만, 천지의 기원이 시작되게 하는 그 주인이 왔지만 반대했습니다. (184-267, 89.01.01)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씨를 갖고 오시는 주님
     
예수님은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세계, 무형세계와 실체세계를 맺어 줄 수 있는 주체적 자리에 있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과 이상의 표상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긍정한 오른편 강도와 부정한 왼편 강도는 선악의 씨가 되어서 뿌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림주가 참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찾아 올 때는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 때에 벌어졌던 것과 반대입니다. 그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싸웠습니다. 오시는 주님 때에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하나돼야 합니다.
그런 일을 전부 맞기 위해서 2차대전 때 영국․미국․불란서가 연합국으로 하나되었습니다. 영국은 여자고, 미국은 영국의 아들입니다. 미국은 남자고, 불란서는 천사장격입니다. 하늘편 아담 국가, 하늘편 해와 국가, 하늘편 장자 국가, 하늘편 천사장 국가가  하나되어 오시는 아버지를 모셔야 됩니다. 아버지는 누구냐? 재림주입니다. 재림주를 모시면 천사장은 자연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와 상대해서 추축국이 등장합니다. 일본이 해와고, 독일은 악마세계에서 제일 악한 차자권입니다. 이태리는 장자권입니다. 독일을 주축으로 해서 세 나라가 하나되고, 미국을 주축으로 해서 영국 불란서가 하나되고, 이렇게 하늘편 장자와 사탄편 장자가 부딪쳐 사탄편을 때려잡음으로써 통일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해와 품에서 장자권 차자권이 연합해서 오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야 됩니다. 신랑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신랑을 찾아가야 되느냐? 사랑의 동기가 그릇되어 있고, 핏줄을 이어받은 것이 그릇되었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은 참사랑을 가지고 옵니다.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씨를 가지고 옵니다. 타락 이전 아담은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아기씨가 하나돼 하나님의 사랑의 결혼식을 전수해야 할 텐데, 이게 끊겨 버렸습니다. 그 한스러운 역사시대를 탕감해야 합니다.
수많은 피를 흘려 가지고 둘로 가려야 돼요. 제물을 둘로 갈라야 됩니다. 탕감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탕감해서 두 세계의 존재권을 2차대전 때에는 반드시 하나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시는 주님 앞에 하나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추축국이 망하고 세계 통일권이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하나만 되었으면, 영국․미국․불란서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지도 받았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화여대 사건과 직결됩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중심삼고 복귀되었으면 기독교 6대 종파의 모든 아들딸들이 와서 순식간에 완전히 2세를 점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229-301, 92.04.13)
     
     
핍박의 길을 걸어온 이유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만국의 해방을 갖추는 것이 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졌고 동서가 분립됐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선생님 말을 들었습니까? 󰡐쫓겨나고 할 수 없어서 저런 말하지, 거짓말을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뼈다귀도 없는 갈비처럼 하누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갔습니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아래서부터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만국의 기독교가 협조하고 국가가 협조하는 가운데 선생님이 어머니를 만나 축복결혼식을 했더라면 만국이 통일되었습니다. 그랬으면 선생님에게 핍박이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모가 땅 위에 임할 수 있게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제물과 아들을 통해 준비했던 터전 위에 부모가 왔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만국에 왕권을 세우지 못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쫓겨나는 입장에서 다시 찾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협조해서는 안 되게 돼 있었습니다. 협조하는 날에는 기독교를 손대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다시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을 치면서 기독교를 보호해 나왔고,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왔습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만일 선생님이 자신을 보호하고 기독교를 치는 날에는 기독교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핍박받으면서 극복해서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민족․국가․세계적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이 총동원해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감옥이 개인기반을 닦는 종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종적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지옥 위에 하나님의 종적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볼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입니다. 이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몸 마음을 중심삼고 고통을 부정하는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몸과 마음이 여기에서 90도,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권인 횡적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종적 기준에 맞추고, 몸을 횡적 기준 90도에 맞춘 생활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 환경의 모든 것을 자기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일원과 같이 옥중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옥중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형님이요, 누나요, 동생이요, 아버지요, 언니요, 아내요, 어머니요, 할아버지같이 모실 수 있는 심정이 우러나야 됩니다. 이것이 안 돼 가지고는 개인해방이 안 됩니다. (184-271, 89.01.01)
     
     
밑창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복귀섭리
     
복귀의 길을 가려면 종의 종의 길을 가고, 종의 길을 가고, 양자의 길, 서자의 길, 직계 자녀의 길, 그 다음에 어머니의 길과 아버지의 길을 걸어서 하나님에게 가는 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8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이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영광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망국지종(亡國之種)이 돼 이 원수의 세계에서 감옥에 처박히고, 노동판에 처박히고, 포로와 같이 취급받는 것입니다. 등에는 죄수의 이름이 붙고, 포로의 이름이 붙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이름이 있고, 농민의 이름이 있고, 모든 비참한 사람의 사정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탕감을,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그 일을 누가 하느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역사를 망쳤으니 아버지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책임 못함으로써 어머니가 그 꼴 되어 망했으니 아버지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종의 종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종적 기준을 닦으면 사탄이 아무리 치려야 칠 수 없습니다. 안 꺾여 나갑니다. 종적으로 가는 길, 종으로부터 양자, 서자, 쭉 해서 하나님의 심정으로까지 올라가는 길에서 전부 쳤지만 선생님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84-279, 89.01.01)
감옥에서 구세주가 못 되고 평화시대에 구세주라고 한다면 그는 가짜 구세주입니다. 감옥에서 평화의 구세주의 권위를 갖추게 되면 평화세계에서는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왕이 됩니다. 왕권을 중심삼고 만국을 지휘할 수 있는 영원한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러한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그 증거로 흥남감옥에서 선생님과 같이 옥중생활을 한 사람이 󰡐옥중의 성자󰡑라고 선생님에 대해서 책을 썼습니다. 감옥이 선생님에게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채찍이 제아무리 무섭고, 그 환경이 제아무리 모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위하는 향심을 꺾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흠모하는 사랑과 힘에 꺾어졌습니다. 그 힘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종적인 단계를 해방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히 닦았습니다. 개인․가정․종족․국가․세계적 기준까지  전부 닦으며 올라왔습니다. (184-282, 89.01.01)
     
     
심정의 십자가를 지셔야 할 재림주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가기는 쉬웠지만, 감정을 곧추세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하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해와가 할 수는 없습니다.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남자인 아담이 조절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어느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정상의 길을 개척해 나온 분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하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지고 그것을 떼어 버리기 위해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의사가 아픈 사람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심각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병을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는 역사시대의 비참했던 남녀 관계의 비운의 역사가 스쳐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부가 흘려야 될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을 대표한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참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로서 해야 할 것은, 심정세계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면서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이 있을 것이요, 분하고 원통하게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도 있을 것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 길을 못 가겠다고 하던 남자도 있을 것인데, 그들의 그러한 운명길을 책임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상에 엉클어졌던 악의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입장입니다. 이제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난 비소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아 가며 조롱하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엉클어지고 찌그러진 것들을 모두 얽어모아 완전한 하나님편 가정으로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44-289, 71.05.24)
     
     
인류의 부모로서 걸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
     
선생님은 이제 죽더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사람이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학자세계에서도 그렇고, 정치가도 그렇고,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노동자도 그렇고, 농민도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는 세계의 운세가 한국으로 몰려드는 판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5천년 전통적 역사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피어린 희생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많은 나라 가운데 이 나라를 수습해서 선생님을 보냈습니다. 그 수습대책을 경륜하기를 벌써 몇 세기 전부터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민족은 무릎이 닳도록 꿇고 합장하여 천상세계에 감사해야 될 것인데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를 선생님이 분하게 생각했으면 이 민족은 옥살박살 되었을 것입니다. 몰라서 반대하니 선생님이 찾아가서 흉금을 터놓고 가르쳐 준 후에도 반대하거든 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구약시대 신약시대에 그랬으니 선생님이 지금까지 부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만민 앞에 나눠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하니 인류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모르니까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른다고 해서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돼서 부모가 되고, 어떻게 돼서 자식이 된 것을 모르고 반대하기 때문에 칠 수 없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알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다 보니 80세가 되었습니다. (184-290, 89.01.01)
한 50년 지내고 보니 요즘 한국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문 아무개󰡑 하더니 󰡐문선생󰡑 하다가 요즘에는 󰡐문총재님󰡑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세계 대통령이지󰡑 하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 이후 5천년 역사에 처음 나타난 위인󰡑이라고 한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138-196, 86.01.21)
이제는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교회 후세들에게는 순교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순교한 사람이 여러 사람 있습니다. 그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순교한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기억할지언정 순교한 사람의 이름은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 나라를 위해서 보냈으면 그 나라를 구하고 죽어야 할 텐데 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책임을 다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교한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해방될 때까지 선생님 책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앞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욕을 먹고도 잊어버리려고 하고, 매를 맞고도 잊어버리려고 하고, 분한 것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섭리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 부모로 책임하러 와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개인한테 차이고, 가정들한테 차이고, 종족들한테 차였습니다. 공산당이 하는 심판, 인민재판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인민재판을 받듯이 천대받았고, 가정적으로도 선생님 가정이 미국에 가서 고통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까지도 학교에서 애들한테 󰡐무니 무니󰡑 하는 천대를 받았습니다. (184-291, 89.01.01)
     
     
통일교회 역사는 선생님의 피어린 투쟁사
     
선생님의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선생님 개인의 십자가는 물론이지만, 어머니도 개인적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3차 7년노정 동안 선생님이 가정을 이끌고 세계 십자가 무대에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날부터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 참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피어린 투쟁사의 기록입니다. 자녀의 날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자식들을 고생시켜야 됩니다. 만물의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모든 소유가 없어야 됩니다. 선생님 집안에는 내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이 땅 위에서 나라의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넘어선 날이 1968년 정월 초하루입니다. 7년노정 이후에야 벌어졌습니다. 그 기간에 사탄이 갖은 흉악한 궤계(詭計)를 선생님 가정과 통일교회를 대해서 꾸몄습니다. 
선생님이 참부모가정을 완성하기 위한 21년노정에서 1960년 만 14년만에 선생님이 성혼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소생, 장성입니다. 이 장성인 2차 7년노정에 남성기준에서 책임분담, 여성기준에서 책임분담을 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됩니다. 국가, 세계의 어떤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그 본질적 기준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전통을 지닌 사나이가 되지 않고는 해와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담을 짓고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데려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훌륭한 여자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나, 석사 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나, 무슨 한다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모셔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해와가 아담을 통해서 지은 거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모르는 데서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친척이 많아서도 안 됩니다. 3대가 뒤에 따라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에서는, 정상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어머니가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오빠도 없거니와 아버지도 없고, 혼자였습니다. 모녀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는 한국의 대표였습니다.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고 하는 복중교에서부터 따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그런 모든 해와적 책임을 한, 한국의 역사를 대표한 할머니들한테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3년 동안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하고 밖에 따로 집을 구해 살게 했습니다. 이 껄렁껄렁한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울고불고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자리잡게 해주기 위해 어머니를 뒷방살이 시키면서 가인 여자들을 어머니 이상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랑이 아닙니다. 하늘적 사랑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리잡을 때까지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어머니 자리는 거짓이니 어머니 자리를 내가 가져야 되겠다. 어머니 자리를 내놓아라������ 하면서 어머니 방에 와서 떼쓰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이게 세상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영적으로 선생님을 보면 미남이였던 모양입니다. (184-292, 89.01.01)
지금에 와서 보니 어머니를 잘 모셨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애기 열 넷을 낳았습니다. 애기를 낳는 데도 어머니가 챔피언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닐니리동동으로 낳았는데도 아이들을 보면 팔삭둥이가 아니라 다 잘생겼습니다. (184-294, 89.01.01)
     

4. 선생님의 뜻과 신념
     
     
부모 형제를 사랑해보지 못한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까지 격동하는 세계적인 사조권내에서 많은 핍박을 받고 사탄과 혈투전을 하면서 하늘의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핍박의 길을 넘어서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원래 선생님이 먼저 말씀을 선포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 부모와 종족에 대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와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사돈의 팔촌까지 합하면 상당히 큰 문중이었습니다. 더욱이나 우리 형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계와 통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것도 알았고, 다년간 고생한 병도 약 한번 안 쓰고 영적으로 치료받은 분입니다. 
그 형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깊이는 알지 못했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 중에서 우리 동생이 제일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내 말을 듣고 안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또 선생님이 말하지 않는 한 물어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님은 선생님의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무엇을 자기에게 얘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문중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장래에 면이면 면에서, 도면 도에서 잘 된다, 못된다는 것 등 하여튼 말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 어머님은 선생님을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어머님께 손수건 한 장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는 베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8남매 중에 누이가 여섯입니다. 어머니는 이 여섯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갔다 돌아오면 어머님께서 베를 짜고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때 어머님과 함께 얘기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보통 마흔 자 한 필을 짜는데 5일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여덟 자 내지 아홉 자 정도를 짰습니다. 그런데도 그 베의 표면은 참 고왔습니다. 하루종일 베를 짜고 나면 얼마나 눈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런 일을 선생님 어머님은 수십 년씩이나 하셨습니다. (22-117, 69.02.02)
     
     
선생님을 위해 고생하고 희생한 가족들
     
선생님 어머님은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선생님은 자식노릇을 한 번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기도 한 번 안 해봤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요구하면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보내 줄 수 있는 형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형님에 대해 선생님이 누구라는 이야기나 무슨 사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가지 그분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라면서 동네에서 누군가가 자기가 잘산다고 해서 못사는 사람들을 천대하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든 간에 못 참았습니다. 그러니 동네사람들도 선생님을 무서워했습니다. 
어머님은 선생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엿을 사다 놓든지 떡을 하든지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생님이 그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다 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하신 부모님께도, 형님에게도 선생님은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또 선생님 동생들 중에는 나 때문에 희생된 동생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가기 때문에 죽은 동생도 있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제하에서 감옥에 들어가 고문받고 있을 때 누이동생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선생님 때문에, 탕감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의 역사는 반드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에는 풍파가 많았습니다. 한 7년 동안 재앙과 풍파가 많았습니다. 열 세 식구 중에서 다섯 식구가 죽어 여덟 식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개가 죽고, 소가 죽고, 형님과 누나가 미쳤습니다. 사탄의 활동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치렀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이 섭리적으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배후의 사연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선생님이 어떠한 마음을 품고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형님에게도 얘기 안 하고, 부모에게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해방될 때까지 참고 나왔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선생님은 한국에서 󰡐한다󰡑 하는 신령한 사람은 다 찾아가서 만나 봤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영계의 사정을 물어보았는데, 그 사람들의 대답이 미흡했습니다. 미흡한 사람은 완전한 시대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나가다가 전부 중도에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타파해 나가고, 새로운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학생 때부터 생각해 나왔습니다. (22-119, 69.02.02)
     
     
선생님의 일본 유학시절
     
일본 유학시절에 선생님은 빈민굴에서부터 사창굴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창굴에 있는 아가씨들의 과거를 캐보니 보통 사람의 과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회 환경에 몰리고 그 흐름에 따라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쌍한 처지가 되기도 했고, 혹은 부모와 형제를 위하여 자기 일신을 제물로 삼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비록 자기 몸이 버린 바 되어 거리에서 밟히는 여인이 될지라도, 쓸쓸히 사라지는 불쌍한 아낙네가 되더라도 자기 부모와 형제를 살리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고 나섰다고 할 때, 그들의 손을 붙들고 통곡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도 순수하고 솔직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런 비참한 인류의 해방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의별 인간들이 다 거쳐나가는 그런 유(類)의 생활 이면을 알지 못하고서는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빈민굴 생활로부터 밥을 얻어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길이길이 세우고 싶었던 사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방될 때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은 해방의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1941년도에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해 부산을 향해 서울역을 떠나면서 서울 장안을 바라보고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도 한강변에 가면 불쌍한 이 민족이 해방되는 한 날을 위해 눈물 흘리며 붙들고 기도하던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되었지만 이 민족은 아직도 불쌍한 민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하실에서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로서 하나님에게 호소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천지 앞에 하늘의 사연을 폭로하고 피를 토해서라도 호소해야 할 때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서울 흑석동의 고갯길은 선생님이 많이 걸어다닌 길입니다.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전차를 안 타고 다녔습니다. 전차를 타고도 꽤 오래 걸리는 먼 곳이었지만 걸어갔다가 걸어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흑석동 고개를 넘어갈 때 보면 길가에서 적선(積善)을 바라며 행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차를 타지 않고 남겨 두었던 그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들을 붙들고 한없이 울어도 봤습니다. 부모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고, 형제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는 그들을 선생님이 그의 부모 형제를 대신해서 위로해 주지 못하는 것을 놓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22-120, 69.02.02)
     
     
잊어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선생님은 이 나라 이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에게 안길 수 있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심정을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말을 안 해도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선생님이 학생시절에 기도할 때는 목이 메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그렇게 기도를 하는지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20세를 전후한 청년이 목이 메어서 기도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 청년은 왜 저렇게 기도할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겠지만, 거기에는 남모르는 내적 심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 흘리며 기도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음식까지도 선생님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번 만번 이 몸이 으스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온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은 선생님이 어떠한 자리에 가 있든지 함께하셨고, 선생님을 위해서 그렇게도 수고하셨다는 것은 선생님 자신에게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갈 때는 보통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8시간 걸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기차를 타면서부터 외투를 뒤집어쓰고 통곡했습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부르트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사연, 이 민족에게 심어 주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 하소연이 이 민족 앞에 기필코 남아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걸어온 길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 눈물의 쌍곡선을 그으며 그 길을 개척해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무턱대고 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 선생님이 흘린 한의 눈물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하나님만이 압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아는 그런 사연이 한국 삼천리 반도 위에 엮어졌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선생님은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남아질, 그 무엇보다도 귀한 이 사연을 죽어가면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연을 펼쳐서 만민 앞에 통고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나서 그 승리의 보좌에 아버님을 모시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하며 한을 품고 사는 사나이가 통일교회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을 위해 그 어느 애국자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주마󰡑고 약속했습니다. (22-121, 69.02.02)
     
     
하나님만이 아시는 눈물의 사연
     
일본에 가서도 굶주린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선생님은 굶더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굶주린 고학생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부두 노동을 했고, 석탄 짐을  운반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젊은 동지들을 사랑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친한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친구중의 친구라면서 자기의 비밀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너한테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고 직고하는 동지들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의 궁성을 지나게 될 때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린 한을 품은 외로운 사나이로서 그 궁성을 응시하면서,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하늘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깃발을 꽂을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네가 우리 민족을 핍박하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내가 명령만 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를 향하여, 이 궁성을 향하여 화살을 쏠 날이 올 것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던 것이 25년만인 1965년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여자들만 눈물 흘린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일반 사회 사람들은 선생님을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 다 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던 친구들은 전부 영계에서 데려갔습니다.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을 전부 데려갔습니다. 왜 그들을 영계에서 데려갔는가 하면,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私情)을 나눌까봐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을 나눌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사랑하던 누이동생도 데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이 세상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데려갔습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려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통일교회 선생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선생님은 생각을 했어도 그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더 했습니다. 인류를 그리워하며 인류를 위해서 일주일 이상 눈물을 흘렸고, 너무 많이 울어서 입고 있던 솜바지까지 모두 적셔 버린 적도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껄렁껄렁한 곳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는 이념과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22-123, 69.02.02)
     
     
부모 처자에게 사정을 말하지 못한 이유
     
어째서 선생님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뜻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를 붙들고, 형님 누나를 붙들고, 처자를 붙들고 사정을 나누지 못했느냐?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혈육만을, 자기의 가정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처자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천법에 위배됩니다. 하나님도 자기만을 사랑하는 무리들만 사랑했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만에 비로소 이 지상에 둘도 없는 사랑의 실체로서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악당의 무리와 원수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민족은 지금까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쫓기고 몰리고 밟히면서도 세계의 문화권을 창설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외적인 물질적 기준과 내적인 정신적 기준에서 세계적인 기준 위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인격자가 아닙니다. 자기편의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못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자식을 자기 직계의 자식보다도 더 사랑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도 그 앞에서는 머리 숙여야 합니다. 사탄도 자기 자식들을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해 주니 그 사랑 앞에 머리 숙여야 할 기준이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의 내용을 안 예수님은 죽으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님이 천정의 인연과 천정의 전통을 이어받고, 천정의 핏줄을 통해 태어난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슬펐던 역사적인 사연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런 운명의 자리로 내보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떻게 하늘 뜻 앞에 드려질까를 생각했습니다. 
민족과 세계로부터 조롱받고 몰리면서도 원수의 무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 앞으로 돌이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랑할 뿐만 아니라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선생님의 아들과 딸에게 원수들을 위해 선생님 대신 축복해 주고 선생님 대신 사랑해 달라고 유언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요, 그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나온 것이 선생님의 길이었습니다. (22-131, 69.02.02)
     
     
심정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늘의 초석이 놓여진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겉으로 나타난 통일교회를 보고 믿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외부로만 발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서로 심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여 동감 동정할 수 있는 일체가 되어야 그것을 중심삼고 하늘의 초석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초석이 세워지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렇게 몰아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1960년까지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잊어버리고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선생님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 놓은 영계의 모든 비밀과 모든 내용은 보화중의 보화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나눌 수 없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어머니를 뒤에 두고 나설 때,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어머님, 이제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길로 가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과 헤어졌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께 위로의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께 󰡐졸장부 아들을 낳은 어머니가 되지 말고 대장부를 낳은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청천벽력 같은 호령을 하여 눈물을 그치게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의 가치를 천배 만배 더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일대 혈육의 인연을 중심삼고 눈물지음으로 인하여 그 권위와 가치가 상실될 것을 염려하여 선생님은 무자비하게 어머님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처자식에 대해서도 심중에 품은 말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나이였습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배낭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북한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오냐, 6천년 섭리역사가 이렇듯 슬픔의 역사로 남아져 온 것을 알았으니, 그 해원을 위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리하여 다 싫다는 북한 땅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며 절규하던 그 사나이가 해방된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 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남아 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했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도 죽지 말고, 하나도 망하지 말고, 하나도 배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동지들과 신도들에게 부탁했지만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 모두 선생님을 원망했고, 떠나갔습니다. 남한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한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명주바지가 누더기가 되어 선생님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거지 중의 상거지 모습이었습니다. (22-125, 69.02.02)
     
     
배반당하고 몰림받은 지난날
     
북한 땅에 가기 전에 인연되었던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 찾아 왔구만󰡑 하면서 서로 눈짓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맞이했더라면 선생님이 북한에 가서 한 일들을 얘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어떤 사람을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때도 틀림없이 󰡐넌 이렇게 대할 것이다󰡑 예상하고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갈 때 아예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 위해 오후 늦게 상거지 모습으로 찾아갔는데, 그가 없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진 다음에 저녁밥을 먹고 기다렸는데,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동지 앞에서 몰리고 쫓겨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앞에도 몰렸고 민족 앞에도 몰렸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는 󰡐그동안 염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그저 도의적인 입장에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내복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에 이불 한 채를 내주면서 어쨌거나 왔으니 덮고 자라고 했지만, 이불을 덮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 옷을 입고 잤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거기에서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을 박대하면 그가 7개월 이내에 어떻게 될 것인지 선생님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집을 기쁜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가 기쁜 표정을 하고 나왔지만 배후의 하나님은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 역시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면서 먼저 인연되었던 동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습니다. 가까운 동지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북한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지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내 처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았지만 동지들을 모두 찾기 전에는 편지조차 할 수 없는 천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서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은 악대로 처리하면서도 그 처량한 신세는 동정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천정입니다. (22-127, 69.02.02)
     
     
수난 가운데서도 보호해 준 하나님
     
선생님은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나오면서도 이러한 심각한 내용을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부모에게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형님 누나 동생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처자한테도, 친척들한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우리 동지들에게도 때가 되기 전에는 이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누구에게 먼저 전했느냐? 해방되고 난 다음 원수들이 우글대는 북한 땅에서부터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전파가 출발함과 동시에 원수의 총끝이 선생님을 겨누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길부터 출발했습니다. 원수에게 또 몰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산치하에서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죽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평양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어떠어떠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 때는 영계에서 무지몽매한 강도, 절도, 살인범 등 수많은 죄수들에게 󰡐아무 감방에 번호가 몇 호인 사람이 있으니 그분에게 어떤 것을 갖다 드려라󰡑 하고 시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선생님이 입을 옷이 없을 때에는 그들을 시켜서 옷을 갖다 주기도 했으며, 또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플 때에는 난데없는 사람을 통해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평양 감옥에 들어가면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1948년 5월 20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때 감방의 창가를 스치던 버들잎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만남으로써 원수의 땅,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하늘의 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몰리고 쫓겼으니 감옥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해서 남한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유엔군이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흥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쁘게 구해야 할 한 아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그 전전날 한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준다고 꼬여서 전부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줄 모르고 밥을 준다고 하니까 그것을 얻어먹겠다고 서로 먼저 가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너희들은 마지막 길을 가는구나! 그렇지만 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들은 다 죽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참사의 비운이 거쳐가는 자리에서도, 총살을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10월 12일 형기가 7년 이상인 죄수 70명 정도를 30리쯤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형기는 5년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끌려갈 차례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13일 밤거리를 내다보니 벌써 사태가 달라졌습니다. 유엔군이 흥남에 상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산군들은 보따리 싸기가 바빴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10월 14일 공산군이 물러가자 우리는 감옥에서 빠져 나와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지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이단의 괴수라는 팻말이 붙어 원수들로부터 몰리고 쫓기고 비난받으며 나왔습니다. 
이화여대 사건 때 김활란과 박마리아가 주동이 되어 경무대에 가서 거짓 증거로 4개 부처장관을 움직여서 통일교회를 없애고 선생님을 완전히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어떠한 일이 부닥쳐 오더라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1955년도에 7․4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원숭이띠라서 감옥살이를 많이 하는지 모르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대뜸 󰡐네가 문 아무갠가? 한 달간 구류다,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삼아 한마디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지󰡑 하면서 비리를 이야기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는 그렇게 못되게 굴던 형무관들을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듣게 만들었습니다. 물을 갖다 달라 하면 떠 올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때려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2-129, 69.02.02)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동기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까지 반대했지만,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탄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점과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저 아들이 악한 자식이 아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핍박을 받으며 살더라도 죄를 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남다른 사상과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지, 절대 나쁜 마음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가 그러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형님이 그러했고, 철모르는 누이동생들도 우리 오빠는 훌륭한 오빠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 반대했지만 가정적 전통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선생님을 원수와 같이 취급했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신세였지만 배후에 부모 형님 누이동생의 심정적 사위기대의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모가 그렇게 해 주지를 못했고, 동생이 그렇게 대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통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하는 일에 대해 오해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저는 예수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반대하는 민족에 대한 마음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고 선조가 있기에 이 배달민족과 삼천리 강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마음을 갖고 소망의 민족, 소망의 나라를 꿈꾸면서 지금까지 참아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수십 성상의 복귀노정을 걸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이 먼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처자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아들인 성진이는 스물 세 살이 되도록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선생님이 누구만큼 못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적 인연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3년 전 그 어린 핏덩이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북한으로 가기 위해 문을 닫고 나설 때, 그 어머니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믿고 떠났던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기독교가 환영하였더라면 아버지 어머니는 슬픈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사조가 한국에 상륙하여 맞부딪치는 정세 하에서 피폐한 이 민족으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는 데 있어서는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각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천륜의 사명과 천도가 어떻다고 제시할 수 있는 세계적 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를 놓침으로써 원수의 세계에 가서 다시 찾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는 데 21년 걸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민족과 나라를 배후에 두고 원수의 땅을 먼저 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함으로써 원수의 나라인 애급땅을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러한 비운의 발걸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2-133, 69.02.02)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 있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를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탕감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북한 땅을 거쳐 남한 땅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처음에 기독교에게 배척받아 북한 땅으로 간 것도 원통한데 남한 땅에 와서 남한 백성 앞에 또다시 짓밟혔습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기반을 닦아 온 기독교 역사는 다 무너졌고, 수천 년 배달민족으로서 쌓아 온 공적도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토록 슬픈 사연을 품고 통일교회는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충성하여 나왔습니다. 피폐한 황무지, 삼천리 반도에 통곡의 제단을 쌓아 나왔습니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맹세하며 나섰던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사조의 기틀을 마련하여,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증거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는 수고한 실적과 더불어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애국애족하는 단체로 국가가 시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또한 통일교회는 살아 있는 종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공운동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단체라는 실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단이 선생님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홀로 통일교단을 신설하여 2천년의 기독교 기반을 능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제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주먹이 세어서, 통일교회가 총칼을 가져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이 무서운 것입니다. 내적 신념과 외적 신념이 서로 결합하여 있고, 실천하는 면에서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강력한 단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한 번 몸부림치면 이 세계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빼놓고 박사를 비롯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머리도 큽니다. 학창시절에 일본에 가서 보니 나보다 큰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무엇을 한 번 시작하더라도 망한 적이 없습니다. 네가 죽든가 내가 살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지었습니다. 또 망할 것 같으면 손도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뒤에서 밀어 주고 온 우주가 앞에서 환영해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철창 안에 들어가 있더라도 절대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한 사나이였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이 󰡐야, 물 좀 가져와!󰡑 하면 살인강도라도 󰡐예󰡑 하며 물을 떠왔습니다. 선생님 말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듣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손찌검을 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말없이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고 말없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선생님 대신 통일교회 식구들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 대신 영광받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뿌리기 때문에 뿌리가 드러나면 망합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식구는 잎사귀입니다. 잎사귀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 뿌리를 알지 못합니다. 박사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연구해도 모릅니다. 결론을 못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밖에는 결론을 짓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아니고서는 일할 자가 없습니다. 해나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22-135, 69.02.02)
     
     
전통적인 심정사상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물삼아 나왔고,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심정사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본받은 예수님도 그러해야 하고, 기독교도 그러해야 하고, 또 그런 사상을 결실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누구를 사랑했느냐? 처자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려면 민족과 종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민족은 대한민국 국민이요, 그 종족은 통일교회 식구입니다.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를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종족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가정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가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세계 만민을 위해서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공인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애국자들도 선생님한테 머리 숙이고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종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통일교단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종족입니다. 통일교단이 나온 것은 사랑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단 가운데 통일가족이 있으니 그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그 가족 가운데는 개인이 있으니 그 개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나왔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랑의 역사, 심정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한다는 입장이니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세계적인 하나님이기에 세계를 제일 사랑하시니 하나님의 아들 된 저도 세계를 사랑하겠습니다󰡑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저를 사랑하시니 나의 엄마, 아빠, 누나, 형님, 사돈의 팔촌, 그 다음엔 우리나라만 사랑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미국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소련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일본, 한국 등 모든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몇백 분은 계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하나의 사랑권내에 품으려는 분이기 때문에 설령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대한민국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대한민국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버리고 세계를 취하느냐, 세계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취하느냐 할 때 어떤 것을 취하겠습니까? 세계를 위하여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은 자기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나라를 다시 부활시켜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시아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기반이 없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21세기 혹은 수백 세기 후에도 필요한 사상만 가지고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의 사상으로 등장할 것이요,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이 수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과 세계 인류에게 절대 필요한 사람입니다. (22-137, 69.02.02)
     
     
사랑의 전통과 역사를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통일교회 선생님으로서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사명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버지여, 저는 저 깊은 시궁창에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의 참아들이 되겠습니다. 사탄도 공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어떤 악당의 무리들도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인류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세계의 모든 민족이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을 선생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할머니들은 좀 나은데 젊은 아주머니들이 말씀을 듣겠다며 가까이 와서 갑자기 옷을 만지려고 하고 발을 만지려고 했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입장이 곤란했겠습니까? 그 일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어머니면 어머니에게, 자식이면 자식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로서 자기 중심한 사탄적인 그런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천리 만리 순례의 길을 떠나도 섭섭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전에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사랑해 달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사람이기에 사랑의 전통과 역사를 세우고, 하늘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자리에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손가락질합니다. 3대를 못 가서 절단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리는 무서운 자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화약을 맡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한 가지를 말할 때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없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은 못 속이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공의의 법도 앞에서 감당할 수 있는 권위와 그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약속을 못하는 것이 천륜의 이치요, 인륜 도덕의 이치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계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밥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다 잊어버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선생님보다 더 미쳐야 합니다. 󰡐우리 엄마 통일교회 가더니 귀가 먹었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들이 󰡐엄마󰡑 하고 불러도 대답을 못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에 귀가 먹었고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 󰡐미치고 미치고 미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망한다 해도 그 충성은 영원히 남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과 통일교회를 위해 나왔기 때문에 통일교인이 선생님을 대하려면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심정을 건드리기만 하면 십 년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을 가진 사나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미칠 듯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지치고 생명이 위협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없는 죽음의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천번 만번 죽겠다고 해야 거기에서 부활의 권능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22-147, 69.02.02)
     
     
누구나 가야하고 죽어서도 가야 할 참된 이념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눈물지을 때, 하나님도 눈물지으며 󰡐오냐 오냐, 그럴 수 있는 날을 이루어 주마. 네 소원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맨 나중에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역사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심사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세계를 사랑했고 인류를 사랑했습니다. 해방 직후에 선생님을 죄수로 몰아 총살하려 했던 원수들까지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자식이 굶고 있을 때 선생님은 양복에서부터 속옷까지 다 팔아 그들에게 주고 아무 것도 없이 2주일 동안 살아본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입을 것이 없어서 이불을 쓰고 방에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참된 이념의 길은 누구나 가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죄인도 가야 합니다. 때문에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도 해방시켜 이 길을 가게 해야 합니다. 이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통일의 무리에게 있습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사명을 진 책임자로서 이를 망각하지 않고 책임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신임했다면 그것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통일교인을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눈을 뜨면 선생님의 아들딸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눈물어린 기도를 해본 일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려도 통일교인들을 위해서 흘렸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그렇게 눈물 흘리며 살아 온 기반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에 있어서 중요한 싸움의 경계선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에 부풀어올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심정과 공적의 터전을 닦으며 나간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발전됩니다. 세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활동을 안 해도 영계에서 통일교회를 증거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에 널려 있는 영통인들이 통일교회 선생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활동하다 죽었으면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통일교인들도 그것을 본받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을 누구보다도,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누나 형님보다도, 동생보다도 더 사랑하고 귀한 것을 주려고 했습니다. (22-149, 69.02.02)
     
     
5. 참사랑의 길을 걸어오신 참부모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
     
우리는 태어나기를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하나님의 혈통을 통해 영원불변한 참다운 사랑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몸 마음이 두 갈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가지고 자기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도를 닦지 않아도 갈 길을 스스로 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이 땅 위에 나침반도 남북으로 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고, 쥐도 태풍을 만나 파손될 배를 미리 알고 줄을 타고 육지에 내리는 지각을 가졌건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느냐?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목적을 알지 못하는 처참한 군상이 되었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생명줄은 영원과 통하기 때문에 미래의 자기 일생의 길을 뚜렷이 알고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왜 정성을 들이고 지성을 들여 영계와 통하려고 하느냐? 석가모니 같은 사람이 신비경에 들어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어떻게 했느냐? 이 사랑의 흐름의 골수에 몸을 담고 보니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느냐?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위대한 역사적인 사랑의 뿌리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원천이 되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가지는 뿌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여자,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남자는 찬양해야 됩니다. 얼굴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소녀의 마음이 불타고 있는 정열은, 사랑은 진정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그리워할 때는 무한히 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미녀가 갖추지 못한 위대한 아내로서, 위대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못생긴 사람이 사랑의 마음이 두텁습니다. 미인은 얄팍합니다. 못생긴 사람은 둥글둥글합니다.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못생겨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인박복이라고 합니다. 왜 박복이냐? 사랑이 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21-115, 82.10.24)
     
     
생명을 각오하지 않은 사람은 참사랑의 길을 갈 수 없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인 동시에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은 그 상대와 아들딸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낫기를 바라는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도 낫기를 하나님은 바랍니다. 그러한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이 만들게 될 때, 백만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이 백만한 힘을 투입하게 되면 백만한 가치의 존재밖에 안 됩니다. 백 이상, 천 이상, 만 이상 만들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백만한 것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잊어버리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더 많이 투입하는 데서만이 자기 사랑의 상대가 더 큰 상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이요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천만 배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주인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투입함으로써 그분 앞에 가까운 상대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은 무한한 한계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참사랑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데에는 절대 참사랑이 없습니다. 
참사랑의 근원지가 어디냐? 열번 태어났으면 자기의 생명까지   열 번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자기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길에서 비로소 참사랑이 나옵니다. 오늘날 세상은 참사랑을 모릅니다. 참사랑이 어디 있느냐? 참사랑은 자기 생명선 이상을 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그 이하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남자는 자기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고 또 희생하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남자는 하나님이 󰡐내게 제일 가까운 참남자!󰡑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죽고…󰡑라고 했는데, 이것이 뭐냐? 역설적 논리를 가르쳐 준 것은 참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사람은 참사랑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죽음을 몇 번씩 각오했고, 감옥을 여섯 번씩이나 드나들었고, 모든 세계 사람들이 총공격하는  자리에서도 늠름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선생님만 남았습니다. 참을 찾아가는 데는 하나님이 옹호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것을 누가 점령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만든 그 기반은 누구도 점령 못 합니다. 세계에서 선생님이 받은 이상 핍박을 받으면서 이 이상의 기반을 이룬 사람 외에는 점령할 자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만든 기반을 통일교인들 앞에 무조건 넘겨주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인들을 선생님보다 훌륭한 사랑의 대상,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참스승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는 것은 핍박하는 사람들의 모든 소유물을 상속받는 제2 선의 세계의 작전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핍박이 나쁜 게 아닙니다. 핍박은 좋은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 이기게 되면 핍박하는 사람들의 모든 전부를 하늘이 뒤로 갖다가 나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까닭없이 쳤으면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노동자면 노동자급의 손해를 받아야 되고, 그 사람이 어떤 국장이면 국장급, 왕이면 왕, 참부모권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반대했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222-20, 91.10.27)
     
     
하나님과 메시아의 전법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
     
오늘날 인류 역사가 전쟁 역사로 엮어져 온 것은 악마의 주관권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든지 청산해야 합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변경할 것이냐? 어떻게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만드느냐?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는 수많은 종단, 수많은 주의, 수많은 개인들이 지금에 와서는 다 무너져 나갔습니다. 공산주의도 무너지고, 민주주의도 무너지고, 수많은 종교들도 다 무너졌습니다. 기독교라든가 유대교 같은 모든 종교가 지금 수평 아래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사탄은 뭘 하느냐? 피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피를 더럽혀 나왔습니다. 그러한 예가 바로 프리섹스입니다. 프리섹스는 피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우주의 근원적인 것을 자기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막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재림주는 뭘 해야 되느냐? 그런 모든 주의를 평등화하고, 더럽힌 핏줄을 맑혀야 됩니다. 싸움하는 파당, 우익과 좌익의 모든 것을 평화로 수습해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떻게 이것을 승리해 나오느냐? 메시아의 전법과 하나님의 전법이 뭐냐?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팔십이 됐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맞고 나왔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까? 선생님은 댄버리에 들어가서도 미국을 살려 주려고 했습니다. 또 고르바초프와 김일성이 선생님을 암살하기 위해 1987년에 적군파 25명을 미국에 파송했는데, 그 중에서 몇 명이 잡혀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 문제가 아직 법정에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과 북한을 구해 주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과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사상적인 면에서 구해 주어야 합니다. 악마의 사상에서 하나님의 사상으로 전환시켜야 되고, 악마의 핏줄에서 하나님의 핏줄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사탄은 전부 죽이거나 희생시켜 자기가 잘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대입니다. 
참된 부모는 자기 아들딸을 위해 생명을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려고 하고, 참된 아내와 참된 남편은 자기 생명까지 투입하여 상대를 더 위하려고 합니다. 참사랑은 거기에 있습니다. (225-16, 92.01.01)
     
     
선생님이 걸어온 참사랑의 길
     
선생님은 참으로 좋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도 망했고, 가정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도 망했습니다. 또 반대한 단체도 망했으며, 반대한 정권도 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도 이렇게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과 하나되지 않으면 망합니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이며 고독의 왕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도 고독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친구도 없는 지극히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봄날이 오면 꽃이 피고, 꽃이 피어 향기가 나면, 나비가 날아오기 마련입니다. 천지 조화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서, 세상이 다 반대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반대해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어도 선생님의 마음과 이념은 가두지 못합니다. 선생님을 치라는 것입니다. 치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걸어 나온 길과 하나님이 닦아 나온 길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감정하라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아! 잘 맞았다. 역사적인 모든 원한의 인류를 대신해 맞았다. 내가 맞고 잊어버리고, 내가 이것을 기억하지 않겠다󰡑 하면서 󰡐하나님이여! 이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를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죽이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왜정 때, 선생님은 12시간 가까이 고문을 받고 피를 토하며 기절한 적이 있었고, 15분 동안에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런 고문을 12시간 받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들을 원수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가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엇을 보고 복을 빌어 줄 것인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것을 감방에서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나오다 보면 사람은 양심이 있으니, 아침에 사람들이 다 나간 뒤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선생님에게 와서 사과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같습니다. 양심은 속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7-73, 69.11.23)
     
     
참사랑의 길
     
선생님이 가르치는 도리가 뭐냐? 사랑을 중심삼고 몸 마음을 통일하는 도리입니다. 몸 마음을 통일하지 못하면 선생님과는 관계없습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은 어디에 연결하고 살아야 되느냐? 참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자기의 몸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완전히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결혼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아들딸도 자기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사랑의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종횡의 사랑의 상대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낫기를 바라느냐?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마음이 하나된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자기 생명보다도 더 투입하고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00을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니까 150이 되고, 150을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니까 200이 되고, 200을 집어넣고 또 넣고 잊어버리니까 300이 되고…. 이렇게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무한히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생명, 몸 마음이 하나된 하나님 자신 이상의 것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참사랑의 이상적 권(圈)이 존속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몸 마음이 하나되어 자기 생명 이상 투입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나님이 100퍼센트 투입하는 자리에는 미치기 어렵습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자기 이상 투입하겠다는 거기에는 미칠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에게는 끌어 주는 구세주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렸던 본연적 마음에 연결됩니다. 그래야 하늘을 붙들고 가는 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타락하지 않은, 사탄과 관계없는 통일된 나 자신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위하여 투입하겠다는 입장에서 참사랑의 길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딸보다도 가인적인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가인적 아들딸들이, 믿음의 아들딸이 󰡐제발 저 대신 당신의 아들딸을 더 사랑하십시오!󰡑 하는 자리에 서야 사탄과 관계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탄의 자리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길은 외로운 길로 떠나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위하는 길입니다. 전체를 위해 봉사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자기 아들딸만 사랑하고 자기 아내, 남편만 붙들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본연적인 세계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걸 부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끝날에는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206-131, 90.10.03)
     
     
참된 사랑의 길에는 영생의 논리가 개재된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가는 길은 위함을 받기 위한 길이 아니고 위해 주기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상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자신이 위하는 입장에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100퍼센트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본연의 중심존재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위하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1000퍼센트 위해서 다 주고 나서, 진공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공기로 말하면 절대 저기압이 생기게 되면 고기압은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위하려고 하는 곳에는 무한한 힘이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렇게 인간을 위하려고 합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므로 더 주고 또 더 주려고 하는 본성의 작용이 자꾸 계속됨으로써 하나님은 영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길에는 영생의 논리가 개재됩니다. 참사랑의 기원인 하나님과의 참사랑의 파트너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숙해서 절대불변인 참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았던들 우리 인간세계에는 근본적인 통일의 역사가 전개되어 전쟁이라든가, 피흘리는 서러운 역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때려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어도 하나님은 왜 벌을 못 주느냐? 그를 사랑하는 부모와 아내, 아들딸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눈물의 골짜기를 넘은 분이기 때문에 그 원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의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의 심정을 체휼할 때 채찍을 내려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면 원수를 갚을 수 없습니다. 그걸 알고 나면 도리어 사람을 시켜서 원수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리의 대도(大道),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로 품으려는 그 대도 앞에 내가 가까이 서게 되고, 거기에 천지가 진동하여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너, 나를 닮았구나! 아이구 좋아!󰡑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201-349, 90.04.30)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원칙
     
선생님이 60년대 전에는 7년간을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평균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 잤습니다. 식구들을 중심삼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분해서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하며 기른 때가 있어야 됩니다. 어린아이를 일곱 살쯤까지 정성들여 키워 놓아야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에게 7년노정이 있어야 됩니다. 가인을 기르려면 7년은 걸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10대 때에 서울을 대신해서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전차도 안 타고 다녔습니다. 그때 노량진에서 살았는데 시내에 나올 때 반드시 걸어다녔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전차가 있으면 뭘 하느냐? 그 전차가 누구의 전차냐? 우리 나라의 전차가 아니다. 일본 전차가 아니냐? 그들에게 왜 한푼의 돈이라도 주어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걸어다녔습니다. 그때에 전차비가 5전이었습니다. 그 비용을 대신 거리에서 󰡐적선이요󰡑 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줬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훈련해 왔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상도동에서 흑석동 중앙대학교로 넘어가는 산마루가 있었습니다. 거기는 무인촌이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꽃을 재배했습니다. 어느 날은 그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쓰러져서 신음하면서 앓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일으켜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그는 천안에서 사는 사람인데, 친척집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주소를 잘못 알아 가지고 찾다가 길에서 병이 나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업고 거기서부터 노량진까지 가던 일이 엊그제 일같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입니다. 바로 그때가 신학기, 3월말쯤이었는데 그 사람에게 차표를 끊어주고 선생님 학비까지 전부 털어 그 사람에게 줘 보냈습니다. 
그렇게 다 주었으니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문배달 같은 것을 해서 생활하고 학비도 마련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난데없이 그 몇 배의 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친척이 선생님을 찾아와서는 그 몇 배의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온 게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선생님 자녀 중에 흥진군이 있습니다. 한번은 흥진군이 고열이 나는 아주 지독한 독감에 걸려 열이 41도까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는데 원리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입장에 가인의 아기와 내 자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가인의  아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아기는 틀림없이 나을 것입니다. 그게 원리원칙입니다. 원리원칙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 독감에 앓고 있는 흥진군을 안고 을지로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그때에는 겨울이라 추워서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고 길을 죽 걸어가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는 어떤 가게 앞에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아기를 붙안고 조그마한 밤알들을 몇 개 놓고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를 보니 얼마나 안됐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갑을 몽땅 털어서 그 아주머니에게 주고 왔습니다. 그때는 돈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돈을 다 털어서 주었으니 병원에 갈 비용이 없게 되어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가인을 사랑하는 동정의 마음을 베풀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아버지여, 사랑의 원칙이 이러이러합니다󰡑 하는 마음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와 보니 그 시간에 병이 나았습니다. 이렇듯 자기 아기도 아프고 가인 아기도 아프다면 자기 아기보다도 먼저 가인 아기를 생각해야 됩니다.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60-216, 72.08.17)
     
     
참부모님은 참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대표자
     
아담 해와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입니다. 왕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이 저절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왕족의 심정권을 중심삼고 효성을 다하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성인의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의 아들딸인 성자의 도리를 다하고 나서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이론적으로 맞습니다. (232-89, 92.07.03)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마를 중심삼고 결혼했기 때문에 천지 부모를 못 모셨습니다. 그러면 따먹지 않고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나님권 내에서 결혼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생명권, 혈통을 이어받아 직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수양이 필요 없습니다. 직계는 마음이 다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세포가 생명체에 전부 다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가 되어서 다 통합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몸 마음이 싸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 안 되면 여러분들이 천상세계에 가서도 억만 년을 두고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무엇 가지고 하나 만드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참사랑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참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그 대표자가 참부모입니다. 그걸 알아야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적인 죄, 병균을 뽑아 버릴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비로소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32-89, 92.07.03)
인간세계에 하나님이 원리결과주관권과 직접주관권을 전부 다 완성할 수 있는 남성적 대표, 하늘나라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탄의 뜻을 알고 아담이 알지 못했던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을 알고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권을 대표해서 인간세계에 대표로 보낸 사람이 곧 메시아입니다. 구세주가 무슨 구세주냐? 사랑의 전통과 도리를 세우기 위한 주인입니다. (220-55, 91.10.14) 
선생님은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사랑의 길을 개척하자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통일교회가 되었고, 통일교회와 선생님이 하나된 것이 통일교회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의 일생과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걸음이 참사랑의 길을 찾아나온 걸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고, 하늘땅과 인류가 역사를 두고 기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7-194, 80.05.01)
     
     
6. 애절한 뜻길
     
     
애절한 뜻길이란 슬픈 하나님의 뜻길 
     
󰡐애절󰡑 하면, 일반적으로 󰡐사랑 애(愛)󰡑 자와 󰡐끊을 절(絶)󰡑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사랑 애(愛)󰡑 자가 아니고 󰡐슬플 애(哀)󰡑 자입니다. 그래서 󰡐애절한 뜻길󰡑이란 슬픈 하나님의 뜻길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뜻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 외적인 세계의 사람들은 뜻길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뜻길 하게 되면 그것이 무슨 길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가 많습니다. 신을 섬기는 종교들이 많지만, 거기에는 그 종주(宗主)를 중심삼은 뜻길이 있습니다. 그 뜻길 가운데서 특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적이며 내적 인연을 연결시켜 나오는 종교가 있는데, 유대교, 기독교가 그런 전통을 지녀 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주들 가운데서, 물론 일반적으로 신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이 종교이지만 그 종교 가운데서 그래도 중심적 종교의 입장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전통적 길은 예수님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나온 길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일반 종주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불교나 유교, 이런 종교들은 하나님의 애절한 것을 확실히 모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뜻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은 뜻의 길, 혹은 선생님을 중심삼은 뜻의 길을 넘어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길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의 길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가 가야 할 창조본연의 길입니다. 존재 세계나 어떤 물건이나 이 뜻길에 속해 있어야 되고 뜻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뜻길과 배치될 때, 그것은 뜻의 세계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175-231, 88.04.24)
     
     
모든 존재는 하나님을 중심한 뜻의 길을 가야
     
우리는 각자 생애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각자가 가는 생애의 길은 다방면의 형태를 가지고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보면 여러 부처가 있고 부처에 속한 국이 있고 무슨 과가 있지만, 거기에 처하여 있는 입장 그 자체에서 차이는 있을망정 그들이 가야 할 길은 전부 뜻을 위하는 길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쭉 널려 있다면, 사방에 널려 있는 사람들이 뜻의 길을 가는 데는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한 뜻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의 길이 하나의 중심이라면, 그 중심점을 연장시키며 종적으로 모든 역사시대를 거쳐 이어받아 나오면서 그 길을 맞춰 가야 합니다. 내가 동쪽에 있으면 동쪽에서 보는 뜻길은 중앙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중앙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방향에 처할 수 있는 생활환경의 뜻길을 가려 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디로 가야 되느냐? 뜻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가야 할 뜻길이 있고, 세계가 가야 할 뜻길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주가 가야 할 뜻길이 있습니다. (175-232, 88.04.24)
     
     
인생이 가야 할 뜻길
     
오늘날 인간 세상에 왜 뜻의 길이 필요하냐? 왜 뜻길을 가야 하느냐? 하나의 표준을 중심삼고 방향감각과 상하의 질서 기준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종횡의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개념을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뜻의 길에서 종적인 뜻의 길, 횡적인 뜻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 자체를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의 중심자리에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 남자나 여자로 태어난 우리 인생이 가야 할 뜻길입니다. 
본래 인간은 뜻의 중앙선에서 태어났습니다. 뜻의 중앙선에서 횡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태어났으니 오른쪽을 알아야 하고 왼쪽을 알아야 합니다. 철이 듦에 따라서, 성숙함에 따라서 점점점 원형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자 여자는 나라를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사람을 먼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천사를 짓고 만물을 지었습니다. 해와 달을 중심삼고 물이라든가 공기 같은 환경을 지어 놓고 우리 생명체가 기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환경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여건 앞에 대상이 되고 싶으냐, 주체가 되고 싶으냐?󰡑 하고 남자나 여자에게 묻게 될 때, 󰡐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체가 되고 싶어합니다.
중앙선을 중심삼은 개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본심의 작용에 의해 어디 가든지 중심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종횡을 중심삼은 핵심자리에 내가 서게 되면, 모든 전부는 위도 나를 통해야 되고, 아래도 나를 통해야 되고, 오른쪽도 왼쪽도 나를 통해야 되고, 전후도 나를 통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본래 그래야 될 입장입니다. 
참된 여자나 남자는 본래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본연의 기준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써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했을망정 본연의 기준은 남아 있기 때문에, 본연의 양심작용이 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런 개념이 우리 생활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걸 떼어버릴 수 없습니다. 
나침반의 본성을 떼어버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살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백 살, 천 살까지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본심의 작용은 영원히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175-235, 88.04.24)
     
     
종횡의 핵의 자리에 영원히 정착시킬 수 있는 힘이란
     
영원히 종적인 핵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힘, 핵을 이동 안 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핵이 왔다갔다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우주의 핵이 왔다갔다하면 우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일납니다. 그러니 꽉 잡아매 요지부동하게 할 수 있는 작용이 있어야 될 텐데,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175-238, 88.04.24)
핵의 자리를 영원히 정착시킬 수 있는 힘은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175-240, 88.04.24) 
역사는 종적으로 흘러갑니다. 역사적 전통은 종적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면 종적으로 흘러가는 사랑을 어떻게 횡적으로 연결시키느냐? 그렇게 만드는 것이 남자 여자가 서로를 위하는 사랑의 힘입니다. 가정에 있어서 부부의 사랑의 힘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연장하면 가정에 대한 사랑과 그 다음엔 나라에 대한 사랑인 애국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사랑, 우주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그 사랑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횡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적으로 연결되어 그 연결된 길이만큼 횡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횡적 기반이 되게 될 때는, 그 횡적 기반만큼 구형권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구형권 내의 국가와 민족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심을 통한 승리의 판도를 얼마만큼 영향권으로 확대시켜 나가느냐의 여하에 따라 종적인 전통역사와 횡적인 현실의 시대적 역사성이 생활무대에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어디를 중심삼고 나가느냐? 횡적인 누구를 중심삼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 아버지를 믿고 내가 출발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횡적인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초월해 종적 기준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지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불교는 법(法)의 종교입니다. 모든 만물에는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교는 인격적 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다󰡑라고 공자님이 말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을 인격적 신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인데 어떤 아버지냐? 중앙에 있을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175-242, 88.04.24)
     
     
사랑을 중심삼은 수수작용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대하기 위해서는 천년 만년 종적 기준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십니다. 이성성상의 주체이니만큼, 그 사랑은 남자에게도 가서 붙을 수 있고 여자에게도 가서 붙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랑을 가지고 세계를 향하여 가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어서 그래라󰡑 하겠습니까, 󰡐아니야󰡑 하겠습니까? 어서 그러라고 밀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 내 것 만들고 나서 󰡐자, 이제 돌아가고 싶소󰡑 하면 하나님이 쑥 당겨 준다는 것입니다. 밀어 주고 당겨 줄 수 있는 이 작용이 사랑을 중심삼은 수수작용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수수작용을 할 때, 종적 기준이 밀어 주기 시작하겠습니까, 횡적 기준이 밀어 주기 시작하겠습니까? 종적 기준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밀어 주러 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내려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평선상에 있지만, 있는 것 같지 않고 없는 것 같지도 않는 자리에서 󰡐이마를 맞대고 너희들이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폭발되어라󰡑 하는 것입니다. 폭발될 때, 비로소 아담 해와의 사랑이 폭발됨과 동시에 하나님도 폭발하는 것입니다. 󰡐꽝󰡑 터져 핑 돌아가게 될 때, 남자도 여자도 다 사방으로 다 뻗어 나가지만 하나님은 틀림없이 중앙에 자리를 딱 잡고 잡아당겨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고 나면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합니다. 그러면서 큽니다. 그러면서 종적인 사랑의 힘을 본받아 남자 여자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정 사랑으로 품고, 민족 사랑으로 품고, 세계 사랑으로 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이라면 하나님과 같은 동참권과 동위권을 가질 수 있음과 동시에 상속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합니다. 
이러한 이상적 기준이었는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렸습니다. 이걸 다시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되찾으려면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느냐? 자기를 생각해서는 되찾을 길이 없습니다. 남자가 남자만을 중심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하나님도 찾을 수 없고 여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수작용의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수수작용에서 󰡐받을 수(受)󰡑 자가 먼저입니까, 󰡐줄 수(授)󰡑 자가 먼저입니까? 󰡐줄 수(授)󰡑 자가 먼저입니다.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수수작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 주체인데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주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주체니만큼 영원히 주려고 하고, 영원히 주려고 하니 영원한 주체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남자로서 이상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됩니다. 수수작용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더라도 드리려고 하게 되면 그 힘은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수수작용이 󰡐줄 수(授)󰡑자가 아니고 󰡐받을 수(受)󰡑 자가 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타락이 뭐냐? 받고 싶어하는 패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의 길을 가는 우리는 받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받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꾸 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75-249, 88.04.24)
     
     
애절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
     
종적 사랑의 기준이 최초로 이 우주간에 확정되는 시간이요, 남자 여자들이 비로소 이 땅 위에 종적 사랑과 횡적 사랑으로 상봉할 수 있는 시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뜻길 완성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할 때, 사위기대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사위기대란 무엇을 말하느냐? 완전한 남자와 완전한 여자가 하나되어 완전한 아들딸을 키워서 하나님 앞에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75-248, 88.04.24)
그런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애절한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슬픈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애절하다는 것은 마디마디에 슬픔이 잠겨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마디가 뭐냐? 하루라면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그게 한 마디입니다. 참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디마디에 슬픔이 잠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복귀의 길을 걸어오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모셔 드려야 되느냐? 무한히, 영원히 나를 위해 주려고 하던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주든 말든 나는 하나님 앞에 무한히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분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분입니다. 세계적인 주체, 우주의 중심입니다. 영원한 중심입니다. 인간은 40년 혹은 1백년 살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사는 주체입니다. 그러니 일생 기준은 영원히 사는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됩니다. 거기에 연결시켜야 1백년 이상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그렇게 안 되었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밀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종(縱)을 중심삼고 원형이 되고, 사방으로 쭉 퍼져 하나의 구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것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반대로 하나님을 밀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 아버지를 밀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밀려니까 효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라를 밀어야 되고, 세계를 밀어야 됩니다. 세계를 밀어야 하나님을 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세계에 효자가 있는 것이고, 충신이 있는 것이고, 성인이 있는 것이고, 성자가 있는 것입니다. 성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나라에 돌아가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늘나라 왕궁법까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오늘의 복귀과정입니다. 만일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래 왕자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왕궁법을 중심삼고 치리하는 그 법이 국가의 법이 됐을 것이고, 국가의 법이 세계의 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하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랑을 위해서 밀어 줘야 됩니다. 사랑을 위해 밀어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세계를 극복해야 됩니다. 타락한 세계를 극복한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위가 퍼져 나가기 때문에 거꾸로 갖다 붙이는 놀음을 하려니, 그것을 모르는 인간을 거기까지 끌어올리려니 하나님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복귀섭리 도상에 왔다갔던 우리 조상들을 보게 되면, 뜻의 길을 가겠다 하던 모든 시대의 지도자를 보게 되면, 그들 가운데 자기를 위해 산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은 중심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보다도 민족을 위하든가 국가를 위했습니다. 그래서 애국자와 위인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많지 않습니다. 성인은 세계를 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세계를 위하지만 성자는 하나님을 위한 사람입니다. 
종교의 종주들 가운데 세계적인 대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나는 독생자라고 한 말이 참 놀라운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고 나는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만민을 대해 남편의 자리에 섰습니다. 남자로 왔으니 참된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남녀를 중심삼고, 이상적 가정을 중심삼고 이상적인 천국이 현현합니다. 이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를 지도하는 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75-251, 88.04.24)
     
     
통일교회의 목적은 인류의 해방과 하나님의 해방
     
통일교회는 종교 전체를 합한 종교입니다. 전체를 합한 종교의 목적이 뭐냐? 인류의 해방과 하나님의 해방입니다. 인류와 하나님을 해방해서 하나님을 모셔들이고 인류를 전부 한 자리에 모아 핵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종횡의 기점을 마련해야 됩니다. 역사 이래에 비로소 핵의 자리에서 상으로 가는 길, 하로 가는 길, 수직으로 통할 수 있는 길, 횡으로 90도에 통할 수 있는 남자 여자의 길, 그 다음에 전후를 중심삼고 자기 형제와 나라와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을 꽁꽁 묶어 놓을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다 깨져 나갑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종적인 부모가 하나님이라 할 때, 횡적인 90도를 갖출 수 있는 지상에, 본연의 핵의 자리에, 사랑을 중심삼고 엉클어질 수 있는 기점에 서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 참된 부모, 참된 사랑의 논리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뜻이 뭐냐? 인류를 사랑으로 다시 품어 낳아 줘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사탄의 자식이 되어 버렸으니 이걸 품어서 다시 해산해야 됩니다. 그러니 내 복중에 그 사람이 안기게 하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하고, 낳아 가지고 잘 자라게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이 3시대의 수난길을 거치면서 가야 할 것이 부모의 길이니만큼, 선생님이 참부모의 자리에 섰다면 그런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세계를 대표한 통일교회를 품고, 국가 이상의 자리에서 해산할 수 있는 나라를 품고 보호하면서 가는 길이 부모가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 나왔느냐? 이 통일교회의 못난 누더기 짜박지들을 품고 보호해 나왔습니다. 어려운 것이 있으면 선생님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가면서 보호해 나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배할 수 있는 아들딸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아들딸로 해산해 나왔습니다. (175-255, 88.04.24)
     
     
선생님의 가는 길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역사시대에 개인적으로 외로운 자리에서 비통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곳을 저주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빌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 했습니다. 선생님은 개인적인 시련 때문에 후퇴할 사나이가 아닙니다. 세계의 시련을 넘고 하나님을 해방하고 죽겠다는 사나이가 개인적인 과정에서 항서를 쓸 수 없습니다. 비겁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반대하고 자식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해도 잘라 버리고 나라가 반대하는 길을 간 사람입니다. (175-257, 88.04.24)
그렇게 외로운 길을 가면서 선생님은 감옥에도 여러 번 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감옥에 갔다 나올 적마다 도약했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선생님을 감옥살이 시켰지만 망하지 않았고, 남한에서도 이화여대 연세대 학생들이 통일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퇴학시킨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때 5대 장관이 협력해 선생님의 모가지를 자르려고 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도 탈세라는 명분으로 미국의 2억4천만의 함성과 더불어 댄버리에 보내 거기서 꺼져 갈 줄 알았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망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해방하고 인류를 해방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원천적인 핵의 입장을 설정해 하나님을 해방하려고 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참된 부모의 해방과 인류의 참된 가정의 해방을 위해 참된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의 기지를 만들어 만국에 적용하고 만세에 적용했습니다. 해방의 만년 왕국 기지를 향하여 전진하는 선생님의 가는 길을 누구도 막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에게서 사랑이라는 걸 떼버리면 모르지만, 그것이 남아 있는 한 그 종착점까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선생님을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통일교회는 핍박받으면서 후퇴한 것이 아니라 발전했습니다. 왜 발전했느냐? 통일교회가 나온 길이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역사시대에 그 누구도 몰랐던 하나님의 깊은 심정의 골짜기에 묻혀 있는 사랑을 자극시켰기 때문에 그 힘의 보호를 받아 발전한 것입니다. (175-259, 88.04.24)
     
     
 원리의 길은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길
     
우리는 어떠한 핍박의 자리에서도 살아 남아야 합니다. 살아 남지 못하면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애절한 뜻길을 가고 있는 하나님을 해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대에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든 영계에 가서라도 󰡐나는 땅에 다시 가서 후손을 통하여 이 일을 종결짓겠다󰡑는 신념에 사무쳐야 합니다. 그러니 바쁩니다. 영계에 갔다가 다시 올 수 없습니다. 영계에 가서 하나님을 모시고 효자 효녀 충신의 도리를 해야 할 터인데, 땅에 와서 다시 싸우는 사람을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죽음길을 개의치 않고, 수욕을 개의치 않고 뜻길을 직행할 수 있는 무리를 원합니다. (175-267, 88.04.24)
우리는 누구나 다 원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원리의 길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타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무서운 길입니다.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버지가 그래야 되고, 아버지가 그랬듯이 또 수천 만대 후손이 그래야 됩니다. 원리의 길은 밟아 가야 됩니다. 타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타고 못 넘어갑니다. 밟아 가야 됩니다. 수난길을 밟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175-284, 88.04.24)
하나님이 지금까지 선생님을 믿고 나온 것은 개인시대의 극복과 가정시대의 극복과 종족시대의 극복, 나아가 세계시대의 극복에 있어서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입니다.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문을 받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그 일념은 변함없었습니다. 󰡐하나님 걱정 마십시오. 저 살아 있습니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미국 댄버리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일생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도 선생님을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저 대신 대한민국을, 남북에 사는 6천만을 보호하시고 아시아인 40억을 보호하시고 60억 인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남북통일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을 위해서는 한마디의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슬펐던 하나님의 뜻이 환희로, 󰡐슬플 애(哀)󰡑 자가 아닌 󰡐사랑 애(愛)󰡑 자의 애절한 뜻으로 되어 온 하늘땅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안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류는 자동적인 해방권에서 만국을 넘나들면서 살 수 있는 본연의 인간성의 세계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종적인 하나님을 모시고 참된 횡적인 참부모를 모시어 종횡(縱橫)을 연결하는 사랑의 승리적 자녀권을 중심삼은 가정이 완성되면 그 가정은 우주적이 되는 것입니다. (175-268, 88.04.24)
통일교회에는 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봄이 조금 멀 뿐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고개를 넘고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향해서 구도의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세계적 판도를 무난히 넘고 저 영계의 지옥세계도 무난히 넘어 하나님을 해방하겠다고, 끝까지 최후의 전선을 수호할 수 있는 길을 닦아 죽음길을 스스로 택해 하나님을 보호하고 총탄을 막을 방패가 되겠다고 자진해 나가면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175-261, 88.04.24)
     
     
7. 하나님 해방과 참부모 선포
     
     
천도를 세우는 길은 뜻만을 위하는 외로운 길
     
천명(天命)을 따라 외길을 달려온 선생님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천도(天道)를 세우는 길은 타협이 없는 곧은 길입니다. 인간적인 체면이나  위신을 내세울 수 없는 길이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위하는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개인에게 운이 있듯이 가정이나 국가에도 가운(家運)과 국운(國運)이 있으며, 나아가 세계의 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땅 전체에는 천운(天運)이 있습니다. 아무리 운을 잘 타고난 사람도 가정의 운이 기울 때는 함께 어려움을 겪는 것이며, 개인운 가정운이 좋은 사람도 더 큰 국운이 기울면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천운의 방향과 진행에 따라서 국운이나 세계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세상에서 천도를 세운다는 것은 곧 개인이나 국가의 가는 길을 천운에 맞추도록 하는 일입니다. (232-219, 92.07.06)
선생님은 천리의 대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거지가 되더라도 왕자와 같이, 죽을 지경이 되어 나자빠졌더라도 네 활개를 펴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제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을 도둑맞은 하나님입니다. 아들의 인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격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탄식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아들딸이 책임지지 못합니다. 부모가 책임져야 합니다. 참부모가 책임져야 됩니다. (238-169, 92.11.22)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원상을 회복하는 복귀섭리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즉 불신의 죄를 짓고 타락했다고 가르칩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귀한 아들딸, 즉 하나님의 왕자 왕녀로서 하나님의 혈통을 전수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 즉 만유(萬有)를 상속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장, 완성하여 이상적인 사랑의 부부를 이루고, 나아가 완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혈통을 일탈(逸脫)하고, 하나님의 소유를 빼앗겼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나중 출발한 선편 상징인 차자를 세워, 먼저 출발한 악편 상징인 장자를 굴복시킴으로써 사탄을 분립하는 조건을 세우면서 진행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원상을 회복하는 복귀섭리인 고로 인간은 혈통복귀, 소유권 복귀, 심정권 전환의 사명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귀섭리의 근본은 혈통과 소유와 심정을 전환할 복귀한 아담, 즉 메시아를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본연의 아들의 심정적인 자리를 한꺼번에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점점 복귀해야  합니다.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에서 선편 아벨이 종의 종의 자리에서 참사랑으로 가인을 위해 줌으로써 사탄이 참소 못하고 오히려 칭찬하고 공인할 수밖에 없는 종의 종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 다음 종의 사명, 양자의 사명, 서자의 사명, 직계 자녀의 사명으로 사랑과 정(情)의 질서를 따라 복귀되어 올라옵니다. 모든 단계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없도록 참사랑으로 가인 편을 위해 주어야 복귀가 됩니다. 
직계 자녀의 입장에서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고 하나되면 그 기대 위에 어머니 해와가 설 수 있고, 그 해와가 책임을 다했을 때 아담이 설 수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이 그 기대 위에 임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 8단계의 종적인 필연적 복귀섭리의 과정이 있습니다. (232-222, 92.07.06)
복귀의 단계를 횡적으로 보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 그리고 하나님까지 모두 8단계가 있습니다. 곧 개인 탕감, 가정 탕감, 종족 탕감, 민족 탕감, 국가 탕감, 세계 탕감, 천주 탕감, 하나님의 심정적 탕감까지 8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 천주복귀, 하나님 복귀까지 8단계입니다. 
그래서 종적인 탕감노정과 횡적인 탕감노정을 사랑을 중심삼고 상하로 전부 무사통과할 수 있는 종횡의 수직적인 연결을 이룸으로써 구형을 이루게 되고, 이 구형 자체는 사랑권 소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성에는 사탄의 소유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은 자동적으로 추방됩니다. (199-188, 90.02.16)
     
     
8단계 복귀와 3대 주체사상
     
선생님이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영계에 대한 체험을 많이 해야 됩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승리해야 됩니다. 종의 종의 자리에서부터 8단계, 종적 횡적 8단계 기준을 중심삼고 영적 세계 승리권을 가지고 지상에 나타나서 개인적인 승리권,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적 승리권까지 이루어 영적 기준의 승리 기반과 횡적 승리 기반을 일체화시킬 때는, 90도로 딱 하나될 때는 동서남북 전후 좌우가 완전히 포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사랑했다는 것에 대해 사탄세계가 󰡐옳습니다󰡑 하고, 천상세계 우리 조상들도 󰡐옳습니다󰡑 하고, 지상세계 후손들도 󰡐옳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옳습니다. 당신이 승리했습니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러느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중심삼고 사탄세계가 강제 굴복이 아니라 자연굴복입니다. 강제 굴복하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략전술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소화해서 세계적 기준을 넘어 장자권을 복귀하고, 그 다음에는 부모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부모는 개인의 부모가 아닙니다. 인류의 부모입니다. 그 다음에는 왕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수만 민족을 중심삼고 갈라진 왕권을 통일적 왕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장자권, 하늘나라의 가정 부모권, 하늘나라의 왕권기준이 한 자리에 착지되는 세계가 나오지 않고는 지상천국의 출발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왕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왕권을 찾아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그 나라의 헌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에 절대 보호받고 절대 순종해서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희망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러면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우리의 소망의 세계로 나가게 하는 게 뭐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입니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하나님같이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천년 만년 위해 살겠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부모가 되고, 또 그렇게 아들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상속해야 합니다. 부모 스승 주인, 이것이 3대 주체사상입니다. 낳고 길러서 설 수 있도록 해줘야 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드느냐? 낳는 데는 사탄이 낳았으니 하나님이 다시 낳아야 됩니다. 이게 중생 논리입니다. 다시 낳아서 길러야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권을 통해 길러 나왔습니다. 3대 주체사상에서 그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이나 스승의 사랑이나 주인의 사랑인데.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206-250, 90.10.14)
     
     
복귀섭리의 종착점은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
     
하나님은 누구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곧다고 합니다. 수직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은 수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하나님 대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몸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몸 앞에 유린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몸의 세계로부터 지금까지 유린당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유린당한 것을 내가 알아주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해방이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통은 개인복귀․가정복귀․종족복귀․민족복귀․국가복귀․세계복귀․천주복귀, 심정적 기준에서 방향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구하려고 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 세계를 희생시켜서 하늘땅, 하늘땅을 희생시켜서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복귀섭리의 종착점은 하나님 해방입니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의 해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원수인 악마의 아들딸들을 원수 새끼로 취급해서는 하나님 노릇을 못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악마의 자식을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본연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악마가 󰡐나는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고, 내 혈족은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만은 천리의 도리를 지켜야 할 하나님이 아니오?󰡑 이렇게 제창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딱 걸려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심장에 창을 꽂는 로마 병정을 보고도 오히려 저들이 자기 행위를 알지 못해서 저러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우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과 같은 자녀를 이끌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있게 될 때, 그 사인을 누가 해주느냐 하면 사탄이 해줍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고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검사가 해방을 선포해야 옥중에서 나올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수까지 사랑했다는 악마의 증명서를 받아야 합니다. (208-291, 90.11.20)
핍박은 뭐냐? 원수의 소유권을 상속해 주는 제2의 방법입니다. 그러니 맞으라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맞고 참아야 합니다. 참게 되면 지하의 친구가 나를 받들어 원수 위에 올려 세우는 것입니다. 천지는 그런 입장에서 보호하여 줍니다. 내가 그런 천리의 도리를 가지고 갈 때, 상대가 없으면 천하를 동원해서라도 상대를 만들어 친 녀석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208-292, 90.11.20)
     
     
참부모가 되는 길
     
선생님은 지금까지 맞고 빼앗아 나왔습니다.  참부모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정의의 길에서 책임을 지고 사탄세계와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패를 가를 때는 한꺼번에 할 수 없습니다. 일대일로 해야 합니다. 일대일로 나라와 싸우는 것입니다. 북한 김일성하고도 싸웠고, 미국 대통령하고도 싸웠으며, 영국 여왕하고도 싸웠습니다. 나라와 쟁탈전을 했습니다. 최후의 결정전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가정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통일교회에 다니는 자기 아들딸을 납치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는 통일교회에서만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자기 아들딸을 납치하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개인적 싸움에서 미국 개인, 독일 개인을 비롯한 전대표들이 전부  싸움에서 선생님 앞에 졌습니다. 개인 싸움에서 이겼으니까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 가정을 중심삼은 가정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가정으로 나갔으니 전세계 가정들이 전부 공격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게 되면 가정을 양보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종족을 중심삼고 전부 다 공격하게 됩니다. 또 거기서도 지게 되면 종족을 양보해야 됩니다. 그리고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8단계입니다.
미국에서도 미국 사람이 미국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레버런 문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미국의 뉴욕 같은 데 가서 아시아 사람들이 차를 타게 되면 󰡐아시아 어디서 온 사람이오? 레버런 문을 아시오?󰡑 하고 물어 본다는 것입니다. 모른다면 󰡐이거, 촌놈이구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선생님이 유명합니다. 겉으로는 유명해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유명합니다. 
그런 싸움을 해서 선생님이 모든 해방권을 갖추어 패권을 쥐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과 싸워서 나라라든가 세계가 이익 될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손해본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탕감의 내용을 선생님이 다 청산했습니다. 세계 전체가 반대하던 것이 이제는 환영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왔습니다. 반대하던 사람이 180도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세계를 살려주고 세계를 구하겠다고 정진한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주가 사람으로 온다면 틀림없이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하는 결론입니다. (233-342, 92.08.02)
     
     
태평양 문명권 시대 도래와 참부모 선포
     
이제는 선생님이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세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선생님과 통일교회 교인 외에는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역사의 방향에 대해 세계의 학자들, 경제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은 태평양 문명권 시대가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문명권의 기지를 선생님이 만들어서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에 새벽이 찾아와 태양이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떠오르는 태양이 누구냐? 참부모, 구주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영원히 하나밖에 없습니다. 참부모는 둘이 아닙니다. 지상세계나 영계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1992년 7월 초에 한국의 5대 도시에서 개최된 세계평화여성연합 지도자대회에서 선생님과 내자인 한학자 총재가 인류의 참부모요, 구세주요, 재림주요, 메시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또 공식적으로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에서 참부모를 선포했습니다. 이렇게 세계문화체육대전에서 세계의 거성(巨星)들을 모아 놓고 발표하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군소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참부모고, 구세주다!󰡑라고 선포해도 어느 한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때 휴거(携據)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선생님이 재림주를 선포하고 참부모를 선포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러니 휴거라는 말이 맞았습니다. 휴거일이 1992년 10월 28일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그해 7월 3일부터 8월 24일까지 재림주를 선포하고 참부모를 선포한 다음이니까, 선생님을 찾아와서 경배하면 그것이 휴거일입니다.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몰랐습니다. (239-274, 92.12.6)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이루어 낸 놀라운 기반
     
그동안 선생님은 한국 역대 정권들의 몰이해와 박해로 인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기독교인들의 편견과 악의에 찬 반대는 선생님의 행로를 참으로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우(保佑)하심으로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기적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유사 이래 전례가 없는 놀라운 기반입니다. 
특히 전세계 기독교를 대표한 나라로 예비된 미국에서는 일찍이 어느 유색인종이 가져 보지 못한 기록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종교적 편견에 의해 많은 고난을 받았으며,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뿌리째 흔들린 기독교 기반을 재건하고, 마약과 불륜으로 중병을 앓는 청소년들을 교육 훈련시켜 미국의 희망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미국 조야(朝野)에서 그 누구도 선생님의 기반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세계 160개국의 선교부는 각각 신앙운동과 더불어 윤리와 도덕 재건운동의 표상(表象)이 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1980년대 초반부터 소련 제국(帝國)의 멸망을 주제로 세계적인 학술 회의를 하도록 종용했습니다. 그리하여 1985년에 발간된 학술연구지는 소련 공산제국의 멸망을 최초로 예언한 세계적인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반 위에서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를 만났으며, 지금은 소련의 15개 공화국 가운데 3개 공화국이 통일교회를 국교로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선생님의 사상을 공부하였으며, 7백여 대학교에 󰡐원리연구회󰡑라는 통일교회 대학생회가 조직되었고, 고등학교 선생들과 학생들 수만 명이 수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인간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한 산 증거입니다. 철저한 무신론자들이 4박5일의 수련교육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인생관, 우주관을 가진 인격자로 바뀌는 기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한 선생님의 정성은 하나님만이 아는 내용입니다. 남북통일은 가시적인 남북한만의 통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된 섭리적인 통일입니다. 남북통일은 선생님의 기반을 통하지 않고는 성사되지 않습니다. 
섭리가 요구하는 통일은 통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통일의 기반 위에 영원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이상을 꽃피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힘에 의한 통일이나 상대를 불행하게 하는 통일일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하여 베풀고 또 베풀어주는 참사랑에 의한 통일이라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어느 개인이나 당, 또는 정권의 이익에 이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사랑의 마음과 실천이 북녘 땅 우리 동포들   마음에 가 닿을 때 진정한 통일이 올 것입니다.(232-220, 92.07.07)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창설한 세계평화종교연합
     
선생님은 위하는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그동안 초교파, 초종파화합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종단(宗團)간의 화해와 교류가 없는데, 어떻게 세계 평화가 오겠습니까? 지금도 중동, 아일랜드, 인도 등지에서는 처참한 종교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991년 8월 27일 세계 모든 종교의 최고 지도자들을 모아 세계평화종교연합을 창설하고, 종교인들이 화합과 협력으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도록 뜻을 모았습니다. 참으로 귀한 조직입니다. 
종교는 각각의 개별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공통점이 많고, 절대자를 추구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하나님이 그 전체 섭리의 목적 아래 세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화합하여야 합니다. (232-222, 92.07.07)
통일교회 원리가 위대한 것이 무엇이냐? 창조성이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창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타락했느냐 하는 실질적인 논리가, 역사관이 있습니다. 역사시대를 통해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방치해 두지 않고 재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였는가 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목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쳤습니다. 
또 성경이 무엇이고,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되고, 구세주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확실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관념적 하나님이 아니라 생활적 내심(內心)과 외신(外身)이 하나될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동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사상 이상권을 결성해야만 21세기에 통일의 세계가 현현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종교의 이상권과 철학 이상권이 화합해 사랑이상권을 증거해야 합니다. 종교는 종적이고 철학은 횡적입니다. 종교는 하나님을 증명하고 철학은 참부모를 증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사랑의 이상권을 증거하게 되면 21세기의 지도 이념은 참종적 부모인 하나님의 사랑과 참횡적 부모인 참부모의 참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21세기의 세계는 이 종횡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엮어진 사랑 이상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208-298, 90.11.20)
세계 오색인종이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남자 여자가 전부 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참사랑의 길, 본연적 기준의 길을 통하면 모든 숙제가 풀리게 됩니다. 플러스 마이너스의 상대적 기준을 중심삼고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원리를 중심삼고 개성이 다르고, 남자 여자가 다르고, 동양 서양이 다르고, 혹은 인종이 다르고, 국가나 문화 배경, 습관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화합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납니다. (238-168, 92.11.22)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한 오늘의 현상
     
예수님은 제2의 아담인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민 이스라엘이 그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와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재림주님은 어떻게 오시느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공중에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로 가신 주님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렇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십자가를 중심삼고 세 유형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죄인이지만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증거한 오른편 강도가 그 첫째 유형입니다. 둘째 유형은 죄인이면서 죄를 뉘우칠 줄 모르고 예수님을 비방한 왼편 강도입니다. 셋째 유형은 바라바입니다. 응당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할 죄수였으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돌아가시게 하고 대신 살려 준, 혜택받은 죄수였습니다. 
재림 때 이 세 유형의 인류가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납니다. 서구 기독교권은 제1유형인 오른편 강도의 입장입니다. 원죄는 있지만 주를 믿는 선한 입장입니다. 무신(無神) 유물사상의 공산권은 제2 유형인 왼편 강도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회교권이 제3 유형인 바라바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이 세 유형의 세계적 결실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자리에 오시는 재림주님께서 다 수습하여야 합니다. 
서구 기독교권의 수습을 위해 새로운 종교 개혁운동을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공산 무신사상을 극복하고 전체 공산권을 하나님 편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좌․우익을 극복하고 통일․조화시키는 사상이 곧 선생님이 제창한 두익사상(頭翼思想)과 하나님주의입니다. 
두익사상은 완성한 아담주의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써 완성한 아담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담을 키워내기 위해 사탄편 아들 하늘편 아들을 키워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좌우가 서로 주인 되겠다고 싸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두익사상에 의하여 좌․우익 세계를 수습하고 있습니다. 또한 편협하고 독단적인 회교와도 유사이래 처음으로 화해 협력을 이룩하였으며, 지난 1992년 4월에는 중동 8개국 대표들이 󰡐통일교회 합동축복식󰡑에도 참가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타락 인간의 죄악을 청산하는 축복식을 주관하고, 좌우 양대 진영을 수습하여 역사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회교권과 화해를 이룩한 기적을 세웠습니다. (232-224, 92.07.07)
     
     
재림주요, 구세주요, 참부모임을 천명함
     
오늘까지 이룩한 업적은 인간의 능력이나 계획만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메시아로 세우고 그동안 구세의 역사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선생님은 재림주요, 구세주요, 참부모로서 그 사명을 다해 왔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재림주요, 구세주요, 참부모임을 천주 앞에 천명합니다.
이것을 듣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민족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위정자들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듣고 안 듣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지만, 결국 만민이 다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가 옵니다. 
흔히 구세주를 심판의 권능을 갖고 있는 영광의 주님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세계를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순간에 심판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항상 염려합니다. 
선생님은 타락한 인간 편에서는 구세주지만,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태초에 잃어버린 참사랑의 창조이상을 이룰 참아들이요, 참부모입니다. 선생님은 타락으로 초래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생애를 바쳐 희생의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영광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통곡하고,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노심초사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사무치고 애타했습니다. (232-225, 92.07.07)
     
     
참부모를 중심한 창조이상적 가정을 복귀하자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성한 아담을 길러내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참아버지가 생겼습니다. 참된 하늘의 남자가 태어났습니다. 사탄세계는 이 남자가 참신랑이요, 참주인이요, 지상․천상천국의 왕으로 오시는 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세계의 남자들은 세계를 대표하여 개인․가정․국가․세계․천주를 합하여 그분을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탄이 퍼붓는 핍박, 모략, 중상을 역사적으로 당하는 자리에서 개인․가정․국가․세계․천주적 승리를 거두어 하나님과 일체가 되셨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자가 되어 사탄세계의 개인․가정․국가․세계․천주를 찾게 되었습니다. 
참아버지의 뒤를 따라오는 입장이었던 참어머니가 역사시대에 처음으로 대등한 자리에 세워져서 여성해방을 세계적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럼으로 참아버지 참어머니가 자녀를 거느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늘의 전체 전권 전능의 상속을 받아 본연의 가정을 출발하고, 종족과 민족․국가․세계․천주를 되찾아 뜻의 완성세계를 재편성하는 것입니다. 
모든 남성은 천사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을 돌려주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완성한 해와인 참어머니의 분신의 자리에 선 여성은 분신적 해와의 입장에서 참어머니와 일체된 조건으로 참아버지와 일체된 조건을 찾아 돌아섬으로써 아들딸을 참부모사상으로 교육하여야 합니다. 
이 교육을 통하여 아들딸이 참아들딸 격에서 모자 모녀가 일체가 되어 세상 아버지를 재교육하고, 다시 참부모의 축복을 받아 접붙이는 자리에서 참부모의 가정적 도리를 체득하게 해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가정에서 타락하였기 때문에 복귀도 가정에서 성취해야 됩니다. 참부모님은 개인의 고개, 국가의 고개, 세계의 고개, 천주의 고개를 승리하여 넘고 다시 우리 가정을 구하기 위해 천주에서 세계․국가․가정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참부모님 가정과 일체가 됨으로써 가정복귀가 가능하고, 완성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종족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미 참부모님께서 종족적 메시아를 전국과 세계에 배치하였으니 그들에 의해 교육을 받아 일체가 되면 국가복귀도 자연스럽게 성사됩니다. 이렇게 하여 남북통일은 물론 세계통일과 지상․천상통일을 이룩하여 하나님도 해방받고,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한 태평성대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 신랑으로 오신 참아버지와 참어머니와 전세계 여성들이 합하여 신부의 자리에서 창조이상적 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232-227, 9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