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섭리역사와 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역사적인 나
여러분이 알다시피 역사는 시간성을 따라서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과거․현재․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이루어진 역사는 반드시 어느 한 때의 사람들과 인연되어 이루어집니다.
만일 내가 미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나는 한 사람의 미국 국민으로만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의 운명이 나와 관계되어 좌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습니다.
여자들을 두고 보면, 언제 대통령의 부인이 될지 모릅니다. 학교를 안 다녔더라도 어떤 동기로 말미암아 대통령 될 사람이 좋아하면 퍼스트 레이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조금 다릅니다. 남자들은 대통령이 되려면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되지만, 여자는 특정 케이스로 대통령 될 사람이 좋아서 지적만 하면 벌써 역사적 인물로 등장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시시껄렁한 어촌, 농촌의 누구도 돌보지 않는 아가씨였는데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움직이는 대통령의 일생의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 여자를 누구도 귀하게 보지 않았지만, 일단 그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다 할 때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는 천지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과거는 나 혼자 가는 길이었지만 현재부터는 미국이면 미국의 국가 운명, 세계정세면 세계정세를 대표한 대통령이 가는 길과 직결되는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고 할 때,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한번 되어 보자' 하고 꿈을 꿉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4년 임기 동안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 우주의 영원한 주권자라고 생각할 때, 그분의 아들이 된다 하는 것은 문제가 좀 다릅니다. 그분 앞에 내가 진정 그분의 아들이 되었다 할 때는 문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이 되기 전과 됐다 할 때는 아까 말한 그 아가씨의 입장과 비교가 안 됩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할 때는 하나님과 공동운명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그 아들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그 아들의 소망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일은 그 아들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쉬게 될 때는 그 아들도 쉴 수 있습니다. 어떤 산을 말하게 된다면 한 편이 하나님이면 한 편은 아들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서는 데는 하나님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아들과 같이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바른 발로 튼튼한데, 아들의 발이 짧아 절름발이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양 발이 다 같이 완벽해지려면 하나님과 같이 돼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역사시대에 얼마든지 있었고, 섭리과정에 얼마든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어 보면 다 손을 들 것입니다. 안 되고 싶다는 사람은 머리가 부족하든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사람 축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미국 사람, 한국 사람, 까만 사람, 어린 사람, 큰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싶어합니다. (79-284, 75.9.21)
역사적인 사람이 되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수행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는 바랐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대신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 너 아무개야, 너 이 시간부터 나의 아들이 되었다' 할 때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전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했지만, 되고 난 후에는 하나님과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전까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가려면 가고, 안 가려면 안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된 후에는 교회에 안 갈 수 없습니다. 교회에 가야 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동네의 어떤 처녀하고 데이트를 해도 괜찮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그것이 괜찮지 않습니다.
역사시대의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든지 갖고 있지만, 역사시대의 한 사람이 되는 날에는 거기에 책임이 가중되고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은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공부도 안 하고, 말도 할 줄 모르고, 사람 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처녀가 대통령 부인이 되었다 하면, 매일같이 파티하는 데 나가서 대통령 옆에 서야 되고, 또 박자도 맞춰야 되고, 누가 오면 외교도 해야 할 텐데 그거 죽을 지경이어서 '아! 나 그것 못 하겠어' 하면 거기서 끝납니다.
화장도 하기 싫지만 해야 되고, 루즈도 바르고, 매니큐어도 바르고, 제일 예쁜 모던 스타일이 되어 어떠한 손님 앞에서도 부족할 것이 없어야 됩니다. 그런 걸 생각할 때, 지금까지 생각지 않은 귀찮은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배우지도 않은 걸 해야 되니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그것을 다 집어치우고 아침에 늦도록 잠이나 자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뒹굴면 좋겠어요? 대통령의 부인이 좋을 줄만 알았지, 이럴 줄 알았어요? 전부 대통령 부인, 퍼스트 레이디면 좋다고만 생각했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더라도 그 나라 대통령 부인으로서 보아야 되고, 걸음을 걷더라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걸어야 되고, 옷을 입더라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입어야 되고, 말을 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품위를 갖고 해야 됩니다.
대통령의 부인이 되려면 대통령 부인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그 나라의 모든 법도와 규례를 따라 훈련해야 됩니다. 미리 다 한때 훈련을 하고 준비를 해 가지고 '내가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 해서 딱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만사가 다 척척 풀리는 것만 아니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고,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이 좋아하는 시간, 남이 노는 시간, 남이 쉬는 시간에 남다른 길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교단체인데, 통일교회라는 종교단체가 바라는 최고의 표준이 무엇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기성교회나 이단 교회나, 어떤 종교나 다 만민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딸이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공통적인 술어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막연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 부모는 우주의 중심 되는 부모입니다. 그분에게 정의가 있다면 최고를 표준할 것이고, 그분의 모든 것도 최고를 표준하기 때문에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우리를 지배하고 최고의 사람을, 최고의 아들딸을 바랄 것은 틀림없습니다. (79-286, 75.9.21)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이 아들을 찾는데 그저 걸어 다니면서 길가에서 '야! 너 내 아들이 되어라' 그럴 것 같습니까? 싸움이나 하고, 게임이나 하고, 주먹이 세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 같아요? 주먹이 센 복서라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또 미인이 되고, 일등 배우가 되어 세계의 젊은 사람, 세계의 사람들이 '아, 저렇게 예뻤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배우라고 해서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습니까? 눈만 아름답다고 해서, '내 눈이 아름답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 그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서양 사람 가운데서도 눈동자가 새파랗고 너무 아름다워서 '아, 내 눈은 하나님이 바라는 눈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딸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있습니까? '내 얼굴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미스 유니버스도 되니 나는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과 같이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아들딸을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대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잘난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이 좋아하겠느냐, 싫어하겠느냐? 하나님이 '이 녀석 틀렸다' 그러겠습니까?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가 안고 있는 아기가 호박같이 생겼어도 '야! 그 아들 당신보다도 몇 배 잘생겼다' 하면 그 엄마 아빠는 좋아합니다. 그런데 '야 이놈아, 넌 틀렸다' 하며 주먹을 들어 '믿어라!' 하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못나면 지금까지 자기 정도의 기쁨밖에 느낄 수 없지만, 자기보다 잘났으면 기쁨을 더 느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자기보다 노래를 잘하는 아들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 울겠습니까? '너 노래해라' 하고 더 내세웁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내가 한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소' 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선언하고 나섰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국에서 상원의원이 되려면 그 주에서 누구보다도 나아야 됩니다. 그 주에서 출마한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나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출마해 보겠다는 사람이라면 한번 지원해서 보기 좋게 미끄러지면 '난 그만이야' 그래야겠습니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하나님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한다' 그래야겠습니까? 하나님이 죽을 때까지 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끄러지면 '그만 하련다' 이러겠습니까, 하고 또 하고 하나님이 죽을 때까지 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한다면 하나님이 좀 곤란할 것입니다.
실패할 때 작년보다도 금년에는 더 적극적이고, 금년에 실패하면 명년에 더 적극적이고, 명년에 실패하면 그 다음해에 더 적극적이고, 10년 해서 실패하면 10년 후에 더 적극적이고, 1백년 해서 실패하면 1백년 후에 더 적극적이다 할 때는, 하나님도 정신을 차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러나기 전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죽으면 내 아들딸을 시켜서라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아들딸이 죽으면 손자를 시켜서라도 할 것이다' 이래야 됩니다. 그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쉬운 것이 아니라 매우 어렵습니다. (79-288, 75.9.21)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져
하나님도 6천년이 걸리도록 해결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돼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망할 단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조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며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 뜻의 길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기독교의 신앙 태도가 틀렸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전세계의 기독교를 지도했다면 오늘날 이와 같은 교회들을 안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공산당이 골치 아픈 것이겠습니까, 기쁜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머리가 아프겠습니까, 안 아프겠습니까? 누가 공산당이 좋다 하면서 하나님은 없다고 비웃어대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전하는데 그걸 좋다고 '허허허!' 그러겠습니까, '이놈의 자식들!'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또 하나님이 '사탄 좋다' 그러겠습니까? 사탄이 있으니까 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하나님이 좋아하겠습니까? 죄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갖고 왔던 사람이 다 망했고, 또 사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망했고, 예수님까지 죽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좋아하겠습니까? 이놈을 뿌리까지 왕창 뽑아 무자비하게 던져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왜 못 하느냐? 하나님이 그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하나님이 직접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사람이 해야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할 수 있었으면 벌써 6천년 전에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 가정에서 다 해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대들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작전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공동작전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하나님 자신이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만 입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누가 최후의 결정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만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과 공동으로 결정을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담당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대표한 것이 우리들의 조상이요, 우리들과 같은 인간인 것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노아라는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못 나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못 나갑니다. 모세라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못 나갑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지 않고는 못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못 나갑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79-290, 75.9.21)
하나님의 섭리역사란 인간을 통해서 엮어진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님은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세상을 불심판하러 온다'고 하는데 이런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 놓고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이론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잔인한 하나님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 때 심판해 가지고 한두 사람만 남기면 되지 왜 끝날에 한꺼번에 전부 지옥 보냅니까? 그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다 알면서 모르는 인간들을 전부 망하게 만들어 놓고, 죄짓게 내버려두고, 이제 와서 이러고 저러고 한다면 이론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종교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편에 있는 사람들이 망하길 바라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길 바라겠어요? 기독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되기를 바라겠어요? 앞으로 통일교회가 망하길 바라겠느냐 이겁니다. 유대교도 결국 망했습니다. 아무리 랍비 데이비스가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그거 다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무리 반대했댔자 그거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그들은 다 망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왜 이스라엘 민족이 저렇게 되었고, 기독교가 저렇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섭리한다는 사실을, 인간을 통해서 섭리의 역사가 엮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고 막연하게 세상이 전부 도깨비 춤추는 모양으로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도 비참하고 냉혹한 이 현실에서 승리해야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고, 기독교도 냉혹한 현실을 중심삼고 싸워서 승리하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도 없고, 뜻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계의 현실을 주관하여 하나님편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중심적인 유대교가 되고, 세계의 악을 지도해 하나님 앞에 소화시켜 갈 수 있는 중심적인 기독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메시아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수레를 타고 와서 세상을 한꺼번에 때려부수어서 자기들을 좋게 해달라고 한다고 그렇게 되겠습니까? 말도 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이 세상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내가 영계에 들어가서 알아보니까 그렇게 안 되어 있더라 이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이겨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참아서 이기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끝까지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끝까지 참는다는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언제나 일선에서 싸워 이기는 사람입니다.
유대교가 이방인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당한 비참한 사실이 있었고, 기독교가 앞으로 이렇게 나가다가는 공산당 앞에 6천만 이상 학살될 수 있는 위기일발의 현실을 바라볼 때, 현시점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길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을 하나님이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현실 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세계적인 고난과 세계적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딸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그런 아들딸을 예수님도 찾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79-292, 75.9.21)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교회는 통일교회뿐
현재 레버런 문과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담 해와와 다릅니다. 노아와 다르고, 아브라함과 다르고, 야곱과 다르고, 모세와 다르고, 세례 요한과 다르고, 예수님과도 다릅니다. 예수님보다 나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지 못하고 망하는 길을 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제1 이스라엘, 미국은 제2 이스라엘, 한국은 제3 이스라엘입니다. 이 세 나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세계를 구하기 힘듭니다. 극동에서 한국을 잃어버려도, 중동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잃어버려도 미국은 갈 길이 없습니다. 민주세계의 주체 국가인 미국 자체를 잃어버리는 날에는 하나님의 뜻과 미국이 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걸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유대교가 하나되고, 기독교가 하나되고, 통일교회가 하나되라! 그러면 해결됩니다. 그게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해체되어 도망다니면서 닦은 막대한 경제기반을 잘못하면 공산당에게 다 빼앗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은 후 2천년 동안 수고한 모든 결실을 한때 퍼부어 세계의 중심국가로 만들고 막강한 경제력과 막강한 과학의 힘을 준비시켰던 미국이 산산조각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서구문명은 어차피 아시아 문명을 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시아 문명을 접하려면 한국과 접해야 됩니다. 지금 한국이 그러한 주도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공산당과 접한 한국의 정세는 한국만의 정세가 아니라 세계의 운명이 걸린 정세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에 걸려 있는 현세를 책임진 우리에게 하나님이 지금 원하는 것은 전세계의 기독교가 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장로교회에서 책임질 수 있습니까? 미국 정부가 그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전체의 심정이 합해져서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요, 민족을 초월해 기독교를 중심삼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을 카톨릭 자체가 할 수 있습니까? 장로교가 할 수 있습니까? 통일교회는 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에는 카톨릭,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전부 종합되어 있습니다. 똑똑한 젊은 사람이라면 교파를 초월해서 통일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79-315, 75.9.21)
역사를 책임지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돼
우리는 역사를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역사를 책임진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과거를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엔 '세계 인류를 내가 책임질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내일의 우리 후손을 기필코 잘살게 만들어야 되겠다! 우리 대(代)에 다 해 버리자, 우리대에! 만일 미래까지 그래야 한다면 내가 죽어서라도 미래도 책임지겠다!' 그런 남자, 그러한 사람을 만났습니까? 그런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상에 왔다 갔던 모든 사람들은 내 친구입니다.
내가 만일 영계에 가는 날에는 국경을 넘어 수많은 인종의 영인들이 레버런 문을 찬양할 것입니다. 영계는 혼자 가는 것입니다. 친구도 없고 안내자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예수님과 성자들이 환영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면 '영계여! 나를 믿어라. 과거 역사는 내가 책임지마' 이런 결의를 해야 됩니다. 그들이 못 한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영계가 후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한 위대한 일을 생전에 많이 보고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영계가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계하고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현세에도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미래의 후손을 내가 책임질 것이다'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원합니다. 우리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그러한 사명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9-323, 75.9.21)
우리는 '이 세계를 내 손아귀에 넣고 역사를 내가 책임져야 되겠다' 이래야 됩니다. '역사상에 제일 어려운 문제를 통일교회가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맹세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것도 가능합니다. 그 다음에는 현실을 책임진다고 해야 됩니다. 내가 아브라함을 만나면 아브라함을 가르쳐야 되겠고, 모세를 만나면 모세를 가르쳐야 되겠고, 세례 요한을 만나면 세례 요한을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가 이스라엘을 반대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런 작전으로 충고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오늘 이 시대에 내가 할 것이다' 이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망하면 세계가 망하고, 내가 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 세계가 망하고,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실감해야 됩니다. 내 생명을 걸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합니다. 백인이 못 하면 황인이 할 것이고, 황인이 못 하면 흑인이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인이 실패하면 백인을 버리고 흑인을 찾아갈 것이고, 흑인이 실패하면 흑인을 버리고 황인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확실한 답입니다.
현재의 백인 청년들은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고, 흑인 청년들도 역시 그럴 것이고, 황인 청년들도 역시 그러겠다는 결의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손에는 흑인, 한 손에는 황인, 그리고 백인 중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을 품고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하나님은 원합니다. (79-316, 75.9.21)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위해 싸워 승리하는 내가 되자
'내가 살아 있으면 역사가 살고, 내가 죽으면 역사가 죽는다' 이러한 사상을 누구나 다 가져야 합니다. 그 사상은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서 애쓰고, 현세를 바로잡기 위해서 애쓰고,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서 애쓰고 계십니다. 그러한 책임을 하나님이 홀로 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의 사람은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후 3일노정에서 지옥으로 간 것은 역사의 책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어 가면서 시대의 책임을 하려고 했고, 죽어 가면서 다시 오겠다고 하며 미래의 책임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사상이 바로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의 어떠한 성현한테도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의 그 누구한테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래의 후손들한테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원할 것이고, 이 미국에서도 원할 것이고, 세계 도처에서도 원할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합해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 양키 스타디움, 워싱턴 대회를 하는 것은 세계의 통일교회 신도들이 현세의 문제를 책임지고 하나의 소망과 더불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양키 스타디움의 싸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이름으로, 인류의 이름으로, 미래의 후손의 이름으로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는 표어를 설정한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입니다. 선생님이 단에 서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이름으로, 역사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언하고 나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건 역사적인 싸움입니다.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하는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원하여 이걸 책임져야 되겠다고 인식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기에 가담해서 승리하는 날에는 그 승리는 선생님의 승리가 아니고 여러분의 승리요, 여러분 자손들의 승리요, 여러분 친족들의 승리요, 여러분 후손들의 승리와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조상과 여러분의 친족과 여러분 후손들의 승리입니다.
이 싸움은 선생님 생애 최대의 싸움입니다. 선생님의 이름은 점점 유명해질 것입니다. 종교가의 이름으로만이 아니라 학적으로, 철학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유명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조상을 걸고, 여러분의 친족을 걸고, 여러분의 나라를 걸고 하는 이 한 때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가담했다는 하나의 증거물이 현재의 친족을 동원할 수 있고, 그 나라에 선전할 수 있고, 후손을 자극할 수 있는 위대한 자료가 된다고 할 때, 이 싸움은 바로 역사와 내가 관계를 맺는 위대한 싸움임에 틀림없습니다. 실패하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승리를 홍수와 같이 내밀어 거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인 승리를 가져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역사를 지배하는 내가 되자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하는 내가 되자는 것입니다. 역사에 흘러가지 말고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한번 그런 책임을 지고, 그런 데 가담해 용기백배하여 생애를 걸고 싸우고 싶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79-325, 75.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