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구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섭리노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온 수많은 지도자, 선각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의 대가를 치러 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이 이상 하는 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중심적인 사명을 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언제나 그 시대에 환영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온 역사상의 우리 모든 조상들은 하나님을 절대시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선 용사들이었습니다. 자기 가정, 고향산천 그 무엇도 다 버리고 하나님만을 남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대표하는 그런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을 대표하는 그런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람을 원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느냐? 한 개인을 구하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뜻이 되겠지만, 그 개인이 개인만을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되 세계를 위해서 구원받겠다는 그런 개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대표자를 원하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가정의 대표자로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민족의 대표자를 세우되 그 단일민족만을 위하는 민족의 대표자가 아니라, 세계의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세우고 싶을 것입니다. 국가의 대표자를 세우되 세계 국가를 구해줄 수 있는 사명을 가진 대표자를 원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 신자들은 메시아가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올 줄 알고 있다가 메시아를 못 맞았습니다. 메시아가 유대교인들을 완전히 하나 만들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온다는 사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스라엘 민족의 생각이 상치(相馳)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야곱 같은 사람은 가정적 대표자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은 민족적 대표자입니다. 국가와 세계의 대표자로 와서 세계를 구하는 중심적인 사명을 이어받은 분이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교파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파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예수님 믿고 천당가겠다는 사람들 중에 '예수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관과 일치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모르고 '우리 가정만 구원받으면 돼. 우리 민족만 구원받으면 돼. 우리 나라만 구원받으면 돼'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이상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자리에서 보게 되면, 내가 개인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원받아야 되고, 가정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종족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구원받되 세계를 위해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나라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기독교인을 한 5억으로 잡는다면 세계 인구가 35억쯤 되니까 세계 인구의 7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도 데데한 사람들을 다 걸러내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십만도, 몇만도 안 된다고 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믿는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구해주고 나머지 30억 인류를 다 죽이겠어요? 그런 허황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세운 것은 그 교회를 구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 교회를 넘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제2차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대교인과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습니다. (69-100, 73.10.21)
미국의 선조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신대륙에 건너온 동기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미국의 조상들이 걸어간 전통적인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세의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그때에는 부패하고 교권과 교조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세계는 다 집어치우고 자기들 권력, 자기들이 닦아 놓은 기반이 무너질까봐 눈이 뚱그래 가지고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족과 함께 백 퍼센트 희생해야 할 텐데 자기의 위치를, 자기들만이 영광을 취하는 그 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걸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 것도 안 되겠으니 공격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깨뜨려 버리든가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교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터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너희들이 믿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믿고 더 사랑하겠다. 너희들이 교인을 지도하는 이상 우리는 세계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스러운 자리에서 교인을 지도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서둘러서 협조하실 것입니다.
영국에서 청교도운동을 중심삼고 의회까지 변경시켜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나라까지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전부 모가지 자르고 추방했습니다. 전제주의적 교권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추방하고 압제하니까 할 수 없이 자유의 신앙을 추구하는 무리는 구라파 전역에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유로이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세계적인 뜻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의 신앙을 추구하는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황청을 넘어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보다 큰 세계로 갈 수 있는 교회를 꿈꾸던 무리들이 신교운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중에 미국 대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유의 나라, 신앙의 자유세계를 꿈꾸며 구라파의 교조적이고 전제주의적인 교단보다도 더 훌륭한 신앙의 세계를 꿈꾸며 찾아 나선 것이 이 미국 대륙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자유스러운 대륙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의 천국을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를 만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다 가치 있는 교회를 만들고, 거기에서 보다 자유스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며 나선 무리들이 퓨리턴(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 때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은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한 행동입니다. 자유스런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와도 이별해야 되고, 사랑하는 고향을 버려야 되고, 가정을 버려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까지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해노정을 거칠 때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출발시켜 놓고 이렇게 춥고 고생시키며 못 살게 한다고 원망했을 리가 없습니다.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자유의 천국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적인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의 신앙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 믿고 나섰던 무리들이었습니다. 배를 탄 일당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고,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한마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두 그러한 수난길을 극복하면서 투철하게 끝까지 참고 하나님을 위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결심 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와 같이 나를 위해 모험한 사람은 너희가 처음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가정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나섰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너희들이 버린 것보다 더 좋은 나라와 종족과 가정과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메이플라워 호가 겨울에 뉴잉글랜드 지방에 도착한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11월이면 추운 겨울입니다. 도착해 가지고는 날씨는 춥고 먹을 식량은 떨어져서 굶어죽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훌륭했던 것은, 먹을 것이 떨어져 죽어갔지만 명년을 위하여 씨앗을, 종자를 남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래에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갈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나라요 소망하던 자유 신앙의 천국을 이루어주실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후손을 위하여 그 종자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먹지 않고 죽음길도 기꺼이 갔다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자처해 가면서 후대(後代)를 생각하고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들 중 남은 41명이 협정서를 쓸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부 선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떠날 때도 하나님 이름이요,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 이름이요,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국 땅에 임했다는 것은 놀라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신앙으로 일관한 출발이 아니었다면, 3분의 2가 다 죽어갈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떠나면서 먹으나 굶으나, 자나 깨나 어디에 가 머무나 일체의 생활을 하나님을 모시고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9-102, 73.10.21)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하나님이 볼 때 세계에서 이런 무리는 처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로마 교황청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하나님은 이러한 무리를 찾고 있었는데, 잘 만났다고 축복을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선조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나라와 자유 신앙의 조국을 추구하면서 고향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는 이 사상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상과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줄 수 없습니다.
메이플라워 호에 남은 41명을 인디언이 죽이지 않고 환영했습니다. 인디언이 전체를 휩쓸어서 공격했다면 하나도 안 남았을 것인데 어떻게 이들을 환영했느냐? 이러한 사실은 기적입니다. 그때 만일 인디언들이 그들을 죽여 버렸으면 필그림 파더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이들을 종자로 삼아 세계적인 기반을 이 나라에 세우고 싶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후 점점 이민이 불어나게 되어 인디언 지역을 침입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미국 역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말입니다. 인디언이 잘살고 있는 지역, 남의 지역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침략인데 하나님은 왜 인디언들을 전부 학살시켜 없애 버리고 이 침략자들을 수호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집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세계적인 자유의 천국을 꿈꾸고 나와 수난길을 가는 이들에게 몇백 배 몇천 배의 축복을 해주려고 하는 입장인데, 인디언들이 그 길을 막으니 그냥 두었다가는 뜻을 못 이루겠기에 인디언들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때 청교도들은 인디언과 싸우면서 그저 총대를 붙들고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개척하면서도 나무를 붙들고 기도하고,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아기를 재우나, 여편네를 두고 나가나, 언제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 언제나 하나님 앞에 맡기고 전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부처끼리 농사를 짓고 지낸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거기에서 잘살고 재미있게 지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개척하면서 산다 생각하고 그렇게 맹세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자기 아들딸을 거느리고 재미있게 살겠다고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추수하여 큰 수확이 있어도 그들은 자기들이 수고해서 거두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전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몽땅 들여 교회 짓기에 열심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자나 깨나 하나님을 위주로 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 기울인 것입니다. 구라파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왔기 때문에 기필코 구교가 지배하는 구라파 이상의 마을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했을 것입니다. 고생이 막심하면 막심할수록 그것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구라파 이상의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를 짓는 일을 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구라파를 능가하는 아들딸로 기르겠다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자기 집을 지었어도 자기가 살 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친 집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학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직장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잘 때에도 하나님 앞에 맡기고 일체 하나님을 위주한 생활을 했다고 봅니다. (69-105, 73.10.21)
자유 신앙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고 미국을 건국하신 하나님
미국이 독립한 지 2백년이 넘었습니다. 1776년 당시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그때 독립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영국에서 보면 반역자입니다.
이 반역자들이 어떻게 이 큰 나라를 독립시켜 세계의 일등국을 만들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 반역자를 축복하셨느냐? 독립전쟁을 주도했던 조지 워싱턴 장군은 처처(處處)에서 패전했습니다. 최후로 포지 계곡 전투에서 결전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틀림없이 워싱턴 장군은 이렇게 기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자유의 신앙을 위하여 미국까지 데려다 놓은 이 백성들을 다시 영국의 손아귀에, 구교와 마찬가지인 그런 전제주의 교권주의 하에 집어넣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유의 나라, 신앙의 자유의 나라, 당신이 원하시는 이상의 세계를 건국할 수 있게끔 축복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승리하는 날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구교를 중심삼은 입장을 떠나 새로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고 세계의 어느 길과도 일치될 수 있는 대표자는 당시 독립운동 지도자들밖에 없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군은 국권(國權)을 자랑하면서 '우리 영국은 세계 일등국인데 뭐야!' 하며 조지 워싱턴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군력(軍力)을 자랑했습니다. 국권과 군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조지 워싱턴은 아무 것도 없지만 군력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었고, 국권보다 강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마치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선 다윗이 돌팔매질한 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깔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워싱턴의 모든 언행(言行)은 하나님을 위주해서 했을 것이요, 전투에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했을 것입니다. 군기(軍器)를 나르는 일도 기도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싸우는 데도 총을 들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선두에 선 그들과 더불어 후방의 국민도 전부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을 것입니다.
신앙세계의 선조들은 자기의 고향에서 뜻을 이룬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와 축복받은 것이 전통이기 때문에, 떠나온 이들을 축복해줘야 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보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생활이 자유의 신앙 국가를 바라던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독립군을 세워서 미국을 창건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키워야 되겠고 남겨야 되겠으니 협조해주셨고, 하나님이 이들을 협조해주셨으니 이들은 틀림없이 승리해 미국을 건국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은 국왕과 국민이 합해 싸웠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합해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이라는 신앙의 자유 국가, 새로운 기독교국가가 성립된 것입니다.
국회의 상․하원으로부터 저 말단 국민들까지 하나님을 존중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하나님 때문에 이겼다고 하며 하나님을 붙들었으니 하나님을 위주한 국가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든지 하나님이 섭리해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9-107, 73.10.21)
미국은 기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열매 국가
미국 국민들이 잘나서 이렇게 잘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 국민들을 잘먹고 잘살라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축복했다는 본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미국이 하나님 앞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공산주의 세계로 가겠습니까, 저개발 민족한테 가겠습니까? 그래도 기독교를 위하고 하나님을 믿는 세계적인 나라 미국을 중심하고 일하고 싶을 것입니다. 만약 미국의 조상들이 자기 아들딸 복받기 위해서, 자기들이 잘살기 위해서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면 하나님이 절대 이런 축복을 안 해줬을 것입니다.
북미(北美)에 이민 온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자유의 신앙길만을 찾아서 상륙한 사람들입니다. 자유의 신앙, 하나님과 자유의 신앙을 바라서 왔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자유도 찾은 후에 돈도 찾았습니다.
남미(南美)로 간 사람들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쳐놓고 돈, 돈, 돈 때문에 간 것입니다. 같은 시대 같은 이민이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환경도 북미보다는 나았다는데 어찌하여 그들은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자유도 잃어버리고, 돈도 없이 저개발국가가 되었느냐 이겁니다. 남미는 후진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2백년 동안에 이렇게 세계적인 일등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 하나님이 가호해주고 축복해주신 것은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한 때를 방어하고 한 때를 수호하고, 뜻을 이룰 수 있는 대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자각해야 됩니다. 복 받기를 바라 나온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죽음의 고개를 넘었는데, 복받고 사는 미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는 데 등한시하게 되면 벌받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인 열매 국가입니다.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입장을 이루어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69-109, 73.10.21)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자 대표가 되는 나라
하나님은 섭리의 뜻을 기필코 이 지상에 이루셔야 합니다.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 세계 만민을 구하고 그들을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섭리의 뜻입니다. 뜻이 이루어진 세계는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혹은 교회적으로 보나, 종족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전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관을 받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는 세계적인 중심이요, 세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탄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강력한 나라가 성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교를 대표한 기독교를 대표해서 그런 국가이념을 가진 나라가 이 세계에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이 지금으로부터 2백년 전에 건국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자 한 데 있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종족들이 구라파에서 여기로 모여 이 나라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 나라의 건국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여러분이 자랑하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그 하나의 나라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개인적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교회적으로 보나, 민족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세계의 중심이요 대표인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중심이요 세계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나라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종교를 이어받아 명실공히 세계를 움직이면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 수많은 나라로부터 모여들어 형성된 국가는 단 하나 미국밖에 없습니다. (73-319, 74.10.8)
미국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것
미국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각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를 스스로 갖게끔 하늘은 섭리하신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미국 자체를 위해서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인류를 대표한 국가로서 등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나라 국민은 전세계 인류를 옹호해 가지고 하나님의 형제로서 그들을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 나라의 경제력도 미국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를 돕도록 하기 위해 하늘이 축복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센트에서부터 달러까지 여러분이 쓰고 있는 어떠한 돈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이 나라를 축복했고, 과연 이 나라는 하나님이 택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나라를 택하여서 축복하신 것은 세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구라파나 아시아나 전세계를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갈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그러한 나라로서 책임할 수 있는 시대는 어느 때부터였느냐? 2차대전 이후부터 그러한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구라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시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하는 입장이었을 때는 하나님이 기대를 가지신 때였습니다. 그러던 미국이 구라파에서 손을 떼고, 아시아에서 손을 떼고, 월남에서 손을 떼고 자기를 중심삼고 쪼그라 들어가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의 본래의 뜻인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에 일치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73-320, 74.10.8)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할 미국
예수님은 진리의 본체(本體)입니다. 진리의 씨입니다. 이 진리의 씨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심었습니다. 그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을 사람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아난 사람,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이 바라바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갈 때 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갔으니 십자가로 내려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환경이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열매가 맺힐 때가 되면 주님이 올 때가 된 것입니다.
공산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반면 민주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민주세계를 우익이라고 하고 공산세계를 좌익이라고 하느냐? 그건 누가 붙였느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를 심었으니 주님이 올 때가 되어서는 그걸 그냥 그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왼편 강도가 예수님을 대해서 '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를 구하고 우리들을 구해 달라'고 얼마나 참소했습니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뭐고, 하나님의 아들일 게 뭐냐고 그랬는데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편 강도가 나타나서 '야 이놈아, 우리는 죽을 죄를 지었지만 이분은 아무 죄도 없는데 우리를 위해 죽으니 의인이 아니냐'고 옹호했습니다. 왼편 강도와 싸웠습니다. 역사 이래 생명이 죽어 가면서도 예수님편이 되었던 사람은 오른편 강도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그가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이르러 천국을 개문하는데 선봉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공산세계는 좌익입니다. 왼쪽편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님 때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우익입니다. 오른편 강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오른편을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해야 된다 이겁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른편 강도와 같은 민주세계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위주해서 생명을 다 바쳐 싸워야 합니다.
미국 국민들은 자각해야 됩니다. 민주세계를 버리고 미국 자기 나라가 망하면 안 되겠다고, 자기 나라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세계를 지도해야 할 입장인데 다 버리고 자기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몰라봐서는 안 됩니다. (69-110, 73.10.21)
미국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은 떠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외국을 원조하고 민주세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때가 전성시대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라든가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이 비참하게 꺾여 나간 것은 우연지사가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내려갑니다. 이건 선생님의 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지금 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가지 않으면 들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라바와 같은 나라는 어떤 나라냐 하면 회교 국가입니다. 성경을 이용해 코란경을 만들어 가지고 칼을 들고서 믿으면 놔두고 안 믿으면 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공산주의와 안팎입니다. 공산주의와 안팎이 되어서 합합니다. 그렇게 되거든 끝날이 된 것입니다.
만일 민주세계가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기독교가 나타나 공산당과 대결해서 오른편 강도의 사명을, 주도적 역할을 해야 됩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 기독교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파를 붙들고 있으니 세계는 망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아랍권과 공산당이 하나되면 기독교와 오시는 주님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한 세계적인 발판이 되는 국가는 어느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미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병들었습니다.
나는 뉴욕에 도착해 5번가에 서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트레이드 센터(무역회관)를 짓고 야단하지만 그거 지어서 뭘 합니까? 거기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날에는 사고입니다. 하나님이 이 미국을 2백년 동안 축복한 것은 그러한 고층건물도 짓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고 도리어 반대의 경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썩어가고 있습니다.
러시 아워가 되어 즐비하게 길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가운데 젊은이들은 전부 윤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라고 이 나라를 축복해주셨겠습니까? 고층 건물에서는 하나님이 계셔서 지도하고, 이 젊은 청년들은 새로운 퓨리턴 운동을 하면서 세계를 구하자고 각오를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안 되니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없더라도 젊은 청년들이 벌판에 모여 미래의 세계를 구하는 제단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호소한다면 하나님은 행복하실 것입니다.
지금 뉴욕에서 하나님이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뉴욕은 악마의 도성이라고 세계에 소문나 있습니다. 백주에 살인이 빈번하고 강간이 성행하는 이 도시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망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윤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마약 투여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흑백문제도 문제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공황이 찾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건 왜 그렇게 되느냐? 하나님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이 있어야 할 텐데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곳에서 하나님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도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회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정부도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주동이 되어 원조하는 법을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69-112, 73.10.21)
누가 미국을 책임질 것인가
미국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것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 이겁니다. 교회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늙은이들만 모이고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교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자유 행동을 한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주의적인 사상을 타파해 버려야 합니다. 그걸 누가 하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이 하겠습니까? 미국의 재벌들이 하겠습니까? 미국의 대학 교수들이 하겠습니까? 지금 다 실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있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찾아온 하나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으로 가겠습니까, 저개발국가로 가겠습니까, 모스크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미국에 와서 반대받고 있습니다. 이제야말로 거국적인 입장에서 청년들을 모아 세계로 가는 퓨리턴 운동을 제기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곡하는 한국의 교인들을 남겨두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한국에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가지고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까? 미국이 아니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고향산천을 버리고 조국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가기 때문에 울지 말라고 권고하고 왔습니다. 내가 만일 미국에서 죽거든 내 사상을 이어받아 세계로 가는 미국 후손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69-114, 73.10.21)
미국에서 떠나가는 하나님을 다시 모셔 와야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우리 집에서 떠난 하나님을 어디에 가서든지 찾아와야 되겠습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요, 차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주고도, 무엇을 희생시켜서라도 하나님을 안 찾아오면 큰일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사회에서, 여러분의 학교에서, 여러분의 교회에서, 여러분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미국에 와서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별의별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고 선생님이 뭣하러 왔느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쓸 돈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여기서 내 돈을 갖다 쓰고 있습니다. 내 재산을 투입하고 내 가정을 투입하더라도, 일족 이 망하더라도 미국을 살리고 세계를 구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울면서 떠나고 있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무리 많으면 뭘 합니까?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계실 수 있게끔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뭘 합니까?
그런 사람이 없는 이 땅에서 우리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떠나는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라도 돌아다볼 수 있게끔, 머뭇거리게 해서라도 그러한 무리를 빨리 만들어 머물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미국이 하나님이 세웠던 본연의 길을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교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가정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미국을 위하여 존재하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미국을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미치광이 소리를 듣는 아들을 가진 것을 기뻐한다면 미국은 살 수 있습니다. (69-115, 73.10.21)
새로운 청교도운동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인도한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들이 염치불구하고, 체면불구하고 한 번 찾아가고 두 번 찾아가고 세 번 찾아간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장래를 위하여, 미국을 살리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면이고 망신이고 위신이고 개의치 않았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젊은 식구들은 85퍼센트가 대학 졸업자입니다. 학사 출신이 표를 팔러 다니고 있습니다. 밥이 그리워서 그러겠습니까?
이 일을 하는 목적은 슬픈 하나님을 위로할 길을 개척하고 망해가는 민주세계와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청교도와 마찬가지로, 거국적인 운동으로 공산세계나 아프리카 어떤 곳이라도 떠나는 청년들을 이 워싱턴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장관까지 환송하는 미국이 되어 보십시오. 망하지 않습니다. 섭리역사를 볼 때 그러한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나라와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청교도 운동, 필그림 파더와 같은 운동이 벌어져 세계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이 운동이 대학교면 대학교 총장으로부터 교수까지 환영받는 가운데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된다면, 미국은 영원히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을 합해 그런 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산당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모셔들이면 가정문제가 해결되고, 윤리문제가 해결됩니다. 청소년문제도 해결됩니다. 흑백문제도 해결됩니다. 공산당문제도 해결됩니다. 경제적인 파탄도 하나님의 축복이 가중되기 때문에 해결됩니다. 이것만이 미국이 살 수 있는 길이요, 이것만이 미국을 위하는 하나님이 이 미국에 바라는 소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9-116, 73.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