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승리적 이스라엘권 (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 역사편 - 제 3장 메시아를 통한 구원섭리)

철장왕 | 20181001080416

2. 승리적 이스라엘권
   
선민사상이 나오게 된 이유
  
오늘날까지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희생과 부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승리의 한 날을 찾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면서 희생해 나온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부 총합 계승되어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로 연결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수천년 역사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희생하여 온 총체적인 가치를 어떻게 오늘날 내 일신에서 총합해 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섭리역사를 책임진 우리들의 과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개인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가정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개인, 혹은 종족․민족․국가․세계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개인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이루어서 수많은 가정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고, 수많은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종족이 수많은 종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 되고 수많은 민족․국가․세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종족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바라볼 때 그 민족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민족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민족, 수많은 나라들이 이런 민족을 바라 나왔다고 하며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은 이런 관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한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의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개인의 승리는 물론이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적인 승리를 거두어서 그것을 바라보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가 보게 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승리적인 개인, 승리적인 가정, 승리적인 종족, 승리적인 민족, 승리적인 국가를 표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선민권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때 이 선민의 가치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역사적 동기의 중심이 되고, 과정의 중심이 되고, 결과의 중심이 되는 메시아 한 분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기서 그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느냐 못 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못 해서 역사노정에서 거듭되는 숱한 탕감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 이스라엘이 제2 이스라엘로, 제2 이스라엘이 제3 이스라엘로 그 사상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목적 기점을 향하여 발전해 나온 것이 복귀사(復歸史)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3 이스라엘임을 표방하고 나가는 우리는 역사상 어떠한 국가보다도, 세계의 어떠한 무리보다도 새로운 선민사상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하는 참된 길은 유일한 길이 되어야 합니다. (35-328, 70.11.1)
  
  
야곱을 중심한 이스라엘권의 출발
  
이스라엘! 그것은 이겼다는 말인데 누구를 이겼다는 말이냐? 사람이라면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이겼다는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를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남녀가 가정이라든가 환경을 이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야곱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이 21년 동안 하란 땅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오는 도중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한 그 날부터 이스라엘권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천사는 타락한 천사장 대신 존재입니다. 타락은 뭐냐? 인간이 천사장한테 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요 복귀라는 말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간이 천사장을 대신한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의 본질적인 포부가 무엇이었던가? 에서의 장자 직분을 사 가지고 도망간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한 것을 알고 그 하나님편에 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자 했고, 또 누구보다도 그런 가정을 사모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보면 비인륜적인 내용이 엮어져 있지만, 섭리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야곱은 21년 동안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하란으로 가서 많은 고생을 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게 된 심적 요인이 무엇이었느냐? 새로운 가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가정은 자기 혼자의 가정이 아닙니다. 에서의 가정과 아브라함 일족을 중심삼은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한 족속을 중심으로, 그 일족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판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갖고 돌아오는 길에 천사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얻게 된 요인은 야곱의 일가가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축복해준 일족이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면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서 그 일족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탄세계는 일족을 빼앗기게 되는데, 그러면 일국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일국을 빼앗기게 되면 세계가 문제 되고, 하늘땅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은 일족의 승리 기반을 위해 야곱은 싸웠습니다. 그런 야곱에게는 자기의 재산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의 종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시키더라도 일족이 잘살고,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가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의 뜻을 이어받아 승리한 이스라엘권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민족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창성할 것을 축복했기 때문에, 야곱은 그 뜻을 받아 세계 만민이 하나님의 권속이 될 것을 바라면서 싸움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야곱은 먼저 사탄을 대해 이겼습니다. 그 다음 야곱은 자기 일가, 즉 야곱을 비롯한 열두 아들딸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야곱 가정은 물론이지만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의 승리적 발판을 요구하는 데서 이스라엘의 축복이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대하게 되면, 앞으로 크나큰 하나의 세계, 하나님의 이상을 향하는 하나의 승리적 민족으로서, 하나의 이상세계로 갈 수 있는 대표적인 민족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했던 본의입니다.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소명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둘이 합해 이스라엘권은 출발을 본 것입니다. (168-301, 87.10.1)
  
  
이스라엘을 택한 하나님의 뜻은 세계와 전인류를 위한 것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키워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회-유대교-를 형성했습니다.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거쳐서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주마. 너희들이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더라도 메시아를 맞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약속한 메시아사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잡혀가서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중 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복귀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후 민족을 재정비해서 성전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말라기 선지자 때에는 그를 중심삼고 내적으로 이스라엘 교단을 정비하고 외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정비하기 위한 놀음을 했습니다. 400년에 걸쳐 메시아를 맞게끔 하나님이 그렇게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맞도록 한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민족에만 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메시아는 지상세계에서만 맞는 것이 아니라 영계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성은 사탄이 지배하게 되었고, 영계에는 지옥이 생기게 되어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판도는 지상지옥 세계와 천상지옥 세계까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지상지옥도 천상지옥도 생겨나지 않고 하나의 이상적 천국으로서만 귀착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두 세계에 사탄이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해소해야 합니다. 이걸 넘어가야 됩니다.
그 길을 넘어가려면 이스라엘 사람과 이스라엘 민족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길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그러면 택해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교단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그것은 우주적인 길입니다. 사명이 우주적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민족이 택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특정 민족만을 위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가 있고, 유교가 있고, 힌두교가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가 많다 하더라도, 이 종교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로 가야 된다, 전세계의 인류가 전부 다 갈라져서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된다, 종교와 종교가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종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사상이 있음과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이면 그 민족에게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을 규합해 가지고 하나로 만들어 끌고 갈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실현은 세계적이요 인류적이기 때문에, 그 창조이상에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 내용을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갖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168-303, 87.10.1)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 제1 이스라엘의 특권민족사상
  
그때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서 식민지와 같은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은 택한 민족이기 때문에 메시아만 오면 일시에 로마를 타파해 버리고 세계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전부 굴복시켜 밟고 마음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오시는 메시아는 권능을 가지고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특권적 세계기반을 갖춰 모든 주체적 행사를 할 수 있겠다 하는 소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건 세계 전체를 자기들 앞으로 결속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전부 희생시키더라도 자기들이 중심이 되어 높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조그마한 나라요, 이스라엘 교단은 작은 교단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단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 만들려고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로 끌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세계로 향하는 길을 가지 않고는 세계를 연결시킬 수 없고, 이스라엘 교단이 세계 종교에게 주는 길을 취하지 않고는 세계의 교단을 묶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선택받았다는 유대교는 인류를 하나로 포섭하고 종교를 포섭해 가지고, 내적 상징인 종교와 외적 상징인 나라가 하나되어 전세계를 하나로 묶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오시는 메시아는 이스라엘 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 이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아시아의 인도와 불교, 유교와 중국 등 외적인 환경을 수습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회를 희생시키더라도 동방에 있는 세계적인 큰 종교권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하나님도 느끼고, 예수님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원수인 로마 제국까지도 구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교단은 로마나 동방이나 전부가 궁극에는 자기들의 종과 같이 되어서 자기들을 받들어 섬길 수 있게 만들고,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권이 승리하고 나서는, 세계적 판도에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전체 종교적 판도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는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종단을 희생시켜서라도 동방의 수많은 종교권, 헬레니즘을 중심삼은 로마권까지도 포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모든 교법사들이나 제사장들의 생각이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주님만 오게 되면, 자기들을 최고의 자리에 내세우고, 자기들이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마음대로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세계적인 섭리입니다. 구원섭리는 만민을 위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특정 종교권내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고 만국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입니다.
만국을 해방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만종교를 규합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뜻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종교에 결속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에 메시아가 왔는데 어찌하여 이스라엘 교단과 이스라엘 나라가 메시아와 하나 못 되었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간곡한 마음으로 이적기사를 행하면서, 그 환경 전부를 움직여 안 따라가려야 안 따라갈 수 없는 환경적 여건으로 몰아넣어서라도 그들을 이끌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잡아죽였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그때까지 신앙을 하던 교회, 이스라엘 나라를 지도하는 유대교 자체가 특정 민족을 중심삼은 종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특정 민족이라 해도 그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은 특정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특정 세계가 뭐냐?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권에 언제나 화합할 수 있는 국가가 편성되고 민족이 편성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본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단을 희생시켜서 유대나라를 바로 지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와 유대교단을 희생시켜 세계를 바로 인도해야 됩니다. 세계적 국가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국가이기 때문에 자기 일족,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민족을 초월해서 세계 민족을 포괄할 수 있는 사상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1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지 못한 원인은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은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을 생각하고 이스라엘 교단만을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교단, 자기 민족이 제일이 아닙니다. 자기 민족과 자기 교단이 '제일'이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보고 있는 '제일'과 일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을 제일로 보고 있고, 이스라엘 교단을 희생시켜 수많은 종단을 하나 만드는 것을 제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종단과 이스라엘 나라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종단을 하나로 만드는 세계적 기준에서 하나되어, 영계에 있는 지옥까지 해방하려는 움직임이 지상세계에 있기를 하나님과 메시아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신앙의 중심으로 준비한 메시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세의 율법 이외에는 몰라. 이것이 제일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갈라진 북조 10지파와 남조 2지파의 싸움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알았지만, 구약성경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성경 가운데 파묻혀 그 밖을 바라보지 못하는 교단이 되었고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제1 이스라엘이 실패한 요인입니다. (168-304, 87.10.1)
  
  
세계를 구하기 위해 특정국가를 선택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잘 압니다. 여기서 세상은 세계입니다. 세상이라고 해서 할아버지 시대에 살 수 있는 세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대 전의 할아버지나 수십 대 후의 후손이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를 합해서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교파를 믿으면'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상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세계 구원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세운 목적도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 주류국가로서 이스라엘 나라가 있으면 이스라엘 나라는 더더욱이나 선두에 서서 세계 구원에 앞장서고, 하나님의 이상에 부합될 수 있는 상대적 기반을 세계에 펼쳐야 될 텐데 전부 이스라엘권만을 중심삼고 뒤넘이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마 교황청이 세계를 수습해야 하는데, 이태리 반도를 중심삼고 이태리 민족을 넘어서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이루어진 법이 사방으로 통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을 닦았지만 세계를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해야 할 일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구하겠다는 사상을 중세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가졌으면 그때 세계를 하나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됨으로 말미암아 천하를 영국에 다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국에 해질 날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세계적 판도를 맡긴 것도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구도의 길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넘어서 세계를 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민족이 되기를 바라고 앵글로 색슨민족에게 세계를 전부 맡겼지만 그들도 역시 영국이라는 나라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백인을 위주한 나라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교와 신교의 싸움이 벌어지니, 구라파에서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민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새로운 나라를 이루자고 해서 세운 국가가 미국입니다. 그것은 벌써 민족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신교 독립국가입니다. 영국을 위주로 해서 불란서, 독일 등 인접 국가들이 과거에는 전부 원수들이었지만 이때부터 비로소 신교를 중심삼고 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들이 미국 땅의 필그림 파더들(청교도)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바라던 것은 국가를 초월한 하나의 이상적인 나라였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2백년 기간 내에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종교를 세운 목적이 세계를 구하는 것인데, 미국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미국에 와서 자기들의 문화를 창조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니 하나님의 뜻, 즉 전세계를 구하는 사명적 책임을 망각해 버리고 미국제일주의로 흘러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희생시키더라도 미국이 살아 남아야 되겠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비로소 종교문화권을 중심삼고 세계를 하나의 판도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때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기독교를 통해 형성된 미국 문화를 중심삼고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때 미국 국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사랑하여 독생자를 보냈던 본의를 깨닫고, 미국 나라와 미국 교회가 희생하더라도 세계를 구도해야 되겠다는 자리에 섰더라면 오늘날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 저와 같은 비참상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되었느냐? 미국은 제2 이스라엘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미국이 제2 이스라엘권에 살아 남으려면 미국을 위주한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미국을 위주한 미국 국민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제2 이스라엘권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서 모든 종교를 규합해야 합니다. (168-308, 87.10.1)
  
  
제2 이스라엘인 미국이 망해가는 연유도 미국제일주의 때문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 하는데 누가 그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포괄하고 모든 종교를 포괄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배타적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지상세계는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은데, 하나님이 볼 때 꼴사나운 것들은 전부 태평양 바다나 지옥에 집어넣고 싶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여러분의 조상이 한 사람이나 남았을 것 같습니까? 그러나 종교가 필요한 것은 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니 복귀니 하는 말은 종교를 중심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기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렇게 가면 망합니다. 왜 망하느냐? 하나님의 뜻은 세계 시대가 오면 세계를 포섭할 수 있는 이상권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대할 수 있는 메시아적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도 세계와 만종교를 포괄하고 만민을 포괄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배타적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배타적이 아니라 포용적입니다. 환영적이고 관용적입니다.
오늘날 제2 이스라엘권인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은 받았지만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를 다 상실하고 망해 들어가는 자리에 선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미국 국민 제일주의, 기독교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제일주의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중심삼고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데는 세계를 구도하고 나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민이 세계 만민을 해방시켜 놓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 나라의 권속으로 만들어 놓고 제일주의라고 해야 됩니다. 세계를 다 버리고, 수많은 종교를 다 희생시켜 버리고 '기독교 제일주의! 미국 제일주의!' 하는 것은 안 통합니다. 하나님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하나돼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불교, 유교, 힌두교, 그 다음에 조로아스터교 같은 종교를 전부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을 중동권내에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님이 종교권을 수습해서 동양을 중심으로 한 판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몸뚱이를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거꾸로 갔습니다. 로마로 들어가서 세계를 일주하고 다시 동방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영국을 거치고 미국을 거쳐 2천년 걸려서 이제 돌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돌아 들어오는 데는 그냥 들어오지 않습니다. 탕감복귀 원칙에 따라 그와 반대의 경로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영국 같은 나라에 해당하고, 영국으로 가기 전의 로마와 같은 반도가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여건을 중심삼고 그 시대에 책임 못 했던 것을, 세계 판도에서 실수했던 것을 대신 탕감해서 청산지었다 할 수 있는 기반을 거치지 않고는 사탄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겠기에 탕감이라는 원칙을 중심삼고 그러한 노정을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168-310, 87.10. 1)
  
  
제3 이스라엘로 선택받은 한반도의 섭리적인 입장
  
앞으로 세계는 아시아를 중심삼고 움직일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의 몸과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되었더라면 아시아 판도를 중심삼고 힌두교를 흡수하고, 불교를 흡수하고, 유교를 흡수하고 중동에 있는 종교들을 전부 흡수해 가지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하나의 종교문화권을 만들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로마를 흡수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종교 기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의 몸뚱이를 가져갔습니다. 로마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걸 찾으려니 거꾸로 가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희망과 이상권내에서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라와 교단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입장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의 발판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발판도 잃어버리고 비참한 무리가 되어 로마로 찾아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4백년 간 피의 대가를 치러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이 한 바퀴 돌아 섬 나라를 거쳐 로마와 같은 반도의 나라로 이동해 온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영국과 같은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래서 일본 문화는 영국 문화가 이동해 온 것입니다. 
한반도는 로마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역사시대에 모든 종교와 인류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수습해 가지고 통일적인 세계와 통일적인 천국을 건설하는 책임을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반도를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이던 교황권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종착점 시대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배경을 중심삼고 남북이 통일돼 가지고 자리를 잡고 들어설 때에는 세계의 종교를 움직이고 세계 만민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종교권이 현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민족권, 국가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타락은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북쪽은 유물론으로 물질 위주이고, 남쪽은 유심론으로 마음 위주입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몸과 마음을 뿌려 놓은 것이 전세계적으로 결실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 공산세계와 민주세계 둘 다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제3 이스라엘권 형성을 위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제3 이스라엘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한민족을 가만히 보면, 5천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내 왔지만 이 민족은 특수한 민족입니다. 누구한테 지배받기를 싫어합니다. 어디든지 가서 자기가 대장 노릇 하려고 하지 누구를 섬기고는 못 삽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조그만 나라가 무슨 미국놈, 일본놈, 중국놈, 소련놈, 전부 다 놈입니다. 남을 놈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양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민족이 가져야 할, 자랑해야 할, 남들을 놈이라고 할 수 있는 특권이 무엇이냐? 특권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사상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상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상은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내세웠으니 종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8-312, 87.10.1)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세계를 해방해야 할 통일교회
  
제2 이스라엘권은 기독교문화권이 기반이 되었지만 제3 이스라엘의 전통적 기반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이 다른 것은 제2 이스라엘권의 미국이 실패한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제3 이스라엘권의 통일교회 패들은 하나님의 생각과 메시아의 생각을 이어받을 수 있는 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세상을 사랑해서 사망권내에 있는 이 세계를 해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종교와 싸우면 안 됩니다. 지금 불교는 불교대로 담을 치고, 유교는 유교대로 담을 치고,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담을 치고, 기독교는 그 안에서 수백 교파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종교를 통해 그것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불교든 유교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 말씀을 듣게 되면 그냥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영계를 통하는 자라면 대번에 깨닫게 됩니다. 그런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이 통일교회 사상을 통해 제3 이스라엘을 편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문선생이라는 사람, 문총재라는 사람은 세계 만민을 규합해서 제3 이스라엘권을 편성하려는 천의(天意)에 따라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는 단일민족을 중심삼은 교회가 아닙니다. 세계민족, 하나님의 이상, 하나님의 권속을 중요시하는 것이지 백의민족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의민족을 택했으니 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만민을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승리적 이스라엘권'이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대해 승리하고 세상의 모든 종교를 대해 승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려면 제3 이스라엘권은 누가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이상 노력해 가지고 이것을 소화해야 됩니다. 그들로 하여금 강제가 아니라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68-314, 87.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