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제 1장 참사랑의 참부모
소목차
1. 참사랑의 종적 참부모인 하나님
2. 참사랑을 중심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3. 통일교회가 말하는 참부모란 1) 하나님과 참부모 2) 통일교회가 말하는 참부모란 3) 아담 해와와 참부모 4) 예수님과 참부모 5) 재림주와 참부모 6) 어린양 잔치란 7) 인류 역사와 참부모 8) 참부모와 우리 9)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1. 참사랑의 종적 참부모인 하나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모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부모를 갖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식물을 보더라도, 미물인 곤충을 보더라도 태어나게 한 근본이 있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부모를 갖고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생명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60억 인류가 있지만 어느 누구를 보더라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 부모 위에 또 부모가 있고, 이렇게 계속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들 수많은 선조를 거쳐 오늘날 60억 인류가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심정을 두고 볼 때, 동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과 서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모의 심정과 역사시대 최초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만일 다르다면 옛날에 부모를 중심삼고 좋아하던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기준도 달라지고, 선하다는 기준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거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부모의 사랑이나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의 사랑이나 그 사랑은 같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같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 같다 할 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은 어때야 하느냐? 이것은 일반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역사를 초월해서 이 말을 언제나 같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175-144, 88.04.16) 부모라는 말은 사랑의 기반에 생명이 연결된 데서 부모라는 말이 설정된 것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이 연결된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부모가 생겨나고 자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즉 부자지간은 무엇을 매개로 하여 인연되어 있느냐? 생명만이 아닙니다. 사랑과 생명이 매개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왜 사랑이 먼저냐?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랑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나를 놓고 볼 때,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먼저가 아닙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연결되어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으로 연결되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땠는지,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로 해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명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서 들추어 볼 때 뿌리 중의 뿌리가 무엇이겠느냐? 생명이겠느냐, 사랑이겠느냐? 사랑입니다. 이렇게 올라가서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租上)인 아담 해와까지 찾아 들어가게 되는데, 아담 해와가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창조력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175-147, 88.04.16) 존재의 기원은 사랑 절대적인 하나님이 통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무엇을 선택했느냐? 지식이 아닙니다. 진리의 근본이 뭡니까? 진리라고 할 때, 나 이상 진리가 없습니다. 만국의 진리는 남자 이상 없고 여자 이상 없습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몸 자체, 사지백체가 진리입니다. 글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 중의 아버지, 참된 진리의 아버지는 뭐냐? 참된 사랑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부는 참된 사랑을 가진 진리체고, 그들이 합하게 될 때 참된 진리의 전당이 됩니다. 사랑으로 형제와 하나될 수 있고, 부모와 하나될 수 있게 될 때 그게 바로 진리체입니다. 그런 진리체를 만드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생명이 격동하는 남자 아버지와 여자 어머니를 합방시킨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절대시하고 천지가 공인하는 절대적인 사랑 가운데 동참한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뿌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뼛골과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연의 선한 조상,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 참부모는 종적인 사랑을 대표한 부모입니다. (182-81, 88.10.14)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었느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랑의 대상자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은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창조주는 거룩한 것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기 때문에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된 인간과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해 어떻게 아버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었느냐? 창조한 그 출발의 동기가 무엇이냐?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혼자이기 때문에 종적으로 놓으면 하나밖에 안 되니 종적으로 놓아보았자 아무 존재의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횡적으로 펼쳐 놓아야 하는데, 횡적 부모인 참부모를 통해 번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부부가 필요하고, 부부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이 천지에 꽉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 앞에 90도로 설 수 있는, 수평으로 설 수 있는 횡적인 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횡적인 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하나는 동쪽이요 하나는 서쪽의 입장에서 남자로 커 가지고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로 커 가지고 남자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어디서 만나야 되느냐? 동쪽과 서쪽의 중심에서 만나야 됩니다. 사위기대라는 논리를 중심삼고 전부 똑같은 중앙점에서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앙점에서 합방을 했다면 그걸 누구도 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명을 받아 태어나면 천지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랑의 동화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핵이 집약됩니다. 평면적인 집약이 아니라 구형적인 집약체가 되어 거기서부터 새로운 싹이 나와 종적인 것에 연결됩니다. 그 종적인 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참된 사랑의 축은 하나님과 인류의 조상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조상이 하나되어 이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깨졌기 때문에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합니다. 그 참부모는 하나님의 종적 참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인 참사랑의 조상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하나된 자리는 하나님도 내려오고, 천지운세도 내려옵니다. 그리고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뼈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고 참부모의 사랑은 몸과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랑의 조화체를 이루어 하늘도 지배하고 땅도 지배할 수 있는 왕권을 가진 주인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귀한 인생입니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개인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혈통을 타고났으니 하나님을 닮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받고 하나님의 심정권을 이어받았다면 종교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종교는 사랑도 만들 수 없고 사랑의 길도 닦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찾아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배워 가려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세계에서는 종교가 필요 없고,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또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절대적인 참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이상권은 영원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인간의 영생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에서만이 영생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182-82, 88.10.14) 사랑을 뿌리로 해서 태어난 인간 인간시조의 출발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했느냐? 진화론자들은 원숭이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붙들고 '당신 원숭이 새끼요?' 하고 물어 보면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숭이가 당신 조상이다' 하면 주먹으로 내리 갈겨야 마음이 시원하지 가만히 듣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보고 원숭이 새끼라니 그런 끔찍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조상이 출발할 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생겼다. 돈에 의해서 생겼다. 지식에 의해 생겼다' 하는 말들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의 출발은 어디냐? 그 뿌리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후손인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이나 돈이나 지식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면 기분 나빠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 종지조상 되는 아담 해와도 사랑의 뿌리에서 태어났다고 해야 가만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사랑의 뿌리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들 때 한꺼번에 후다닥 만들었겠습니까, 아니면 조각가가 눈 만들고 코 만들듯이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성경 창세기를 보면 도깨비가 요술하듯이 '나타나라!' 하면 후닥닥 나타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왜 했습니까? '힘을 자랑하기 위해서, 전지 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들었지!' 하면 멋집니까? 그럴 때 힘에 의해서 생겨난 물건들이 '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럴 때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내 지혜야?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력한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물건에게 '야! 너 왜 태어났어? 무엇을 자랑할 거야?' 할 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묻는다면, '아, 나야 우리 부모로부터 할 수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주장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아무 것도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주장할 것이 뭐냐? 여성이 '나는 남성 것이니까 멋지다!', 남성이 '나는 여성 것이니까 멋지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남성 여성이 왜 생겨났느냐? 서로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좋아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남성 여성 가운데는 서로 좋아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참된 사랑이 우주 공유의 이상분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주가 공유할 수 있는 이상분모인 참된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175-150, 88.04.16) 모든 존재가 자랑할 수 있는 것 선생님은 어렸을 때 새들을 많이 잡아 봤습니다. 선생님이 살던 동네 주변에 오는 철새라든가 텃새 등 안 잡아 본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컷을 잡으면 암컷이 어떻게 하고, 암컷을 잡으면 수컷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잘 압니다. 하루는 암컷을 잡아 집으로 가지고 왔는데 암컷의 짝인 수컷이 죽겠다고 야단했습니다. 밤에 잠도 안 자고 와서 짹짹짹 울면서 야단했습니다. 다른 새들은 가만히 있는데 암컷의 짝인 수컷만이 야단합니다 또 수컷을 잡으면 수컷의 짝인 암컷이 죽겠다고 야단합니다. 왜 잠도 안 자고 와서 짹짹짹 하며 야단하느냐? 어떤 놈은 밤에 창문에 와서 창문을 막 쪼며 야단합니다. 얼마나 극렬한지 모릅니다. '인간세계에도 저런 사랑이 있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극렬하게 야단하는 것은 전부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무리 미천한 초목이라 해도 여기에는 수그루 암그루가 있어서 서로 좋아하면서 씨를 만들어 후대를 남깁니다. 그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는 생명의 공통법에 있어서 합격자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법을 만들게 되면 '그거 틀렸소' 할 존재가 없습니다. 개미새끼를 보고 물어 봐도 '문선생 말이 맞지' 그러고, 풀을 보고 물어 봐도 '그렇지'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풀에게 '너, 엄마 아빠 있어?' 하고 물어 보면, '있고 말고!' 합니다. 그리고 '너 신랑 각시 있어?' 하면, '있고 말고!', '너, 아들딸 있어?', '있고 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은 힘도 아니요, 조화도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우주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사랑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175-152, 88.04.16) 참사랑의 독재자는 만세가 찬양한다 하나님은 고집스럽고 욕심쟁이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경이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처럼 욕심쟁이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을 닮아서 욕심쟁이입니다. 욕심쟁이 중의 욕심쟁입니다. 욕심쟁이 중의 욕심쟁이의 독재자입니다. 그런데 독재자라도 만세에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랑을 중심삼은 욕심쟁이 독재자는 만세에 통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독재자는 만세가 영원히 보존하고 옹호하며 찬양합니다. 험상궂은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그 집안에서 사랑의 독재자라 할 때는, 할머니도 나빠하지 않습니다. 아들도 좋아하고, 며느리도 좋아합니다. 또한 손자 손녀도 좋아하고, 영원히 같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안 계신 곳이 없으며, 지혜의 왕인 하나님은 인간세계에서 제일 나쁜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찾다 보니 하나님이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하나님에게 제일 맞는 자리입니다. (175-154, 88.04.16) 하나님은 참사랑의 독재자 사랑의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독재자가 뭐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독재입니다.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독재자입니다. 제멋대로 하는 것이 독재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질서, 교통법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사랑의 독재자냐? 나를 위하라는 독재자가 아니고 상대를 위하겠다는 독재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하는 사람과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위하려고 하는 절대적인 주인인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려는 사랑을 본질로서 절대적인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도 더 높을 수 있는 자리의 독재자가 나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만 사람이 모이면 만 사람이 서로를 높이려고 합니다. 서로가 높여 주려고 하다 보니, 서로를 높여 주려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가 위하려고 하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집안이 있다면 잘 되는 집안입니다. 아들 며느리가 아버지 어머니를 위하고, 동생을 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위한다고 매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싸우더라도 그 집안은 발전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참사랑의 독재자입니다. 영원히 위하겠다는, 영원무궁토록 위하려는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와 더불어 사랑권 내에서 내가 치리받기 위해서는 나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주장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상대도 안 해줍니다. (175-156, 88.04.16) 이러한 입장에서 참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된 사람을 모르고는 참된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하나님이 사람같이 생겼다면 사람 중에서도 남자를 닮았겠느냐, 여자를 닮았겠느냐? 올려다보면 남자 닮고, 내려다보면 여자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 같이 닮았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절대적으로 위해 살려고 하는 분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뿌리를 찾고 근본을 파헤쳐야 합니다. 근본을 파헤쳐서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근본을 파헤쳐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 계십니다. 이런 자리에 있다 해도 만유의 존재들이 지금까지의 존재권을 인정하고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고 있습니다. 이럴 수 있는 안전지대라는 것은 위하여 존재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이 가장 안전지대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위해 살겠다는 하나님입니다. 위해 살겠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영원토록 독재자가 되더라도 반대할 자가 없습니다. (175-157, 88.04.16)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소망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로 하는 오직 한 가지는 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 즉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심정의 본체인 하나님은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주를 창조하였고, 특히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은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한 무형의 내적 부모요, 완성한 아담 해와는 영원한 유형의 외적 부모(조상)입니다. 최대의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영원한 사랑을 주고받아 완전히 하나가 될 때 나타나고 결실됩니다. 진정한 사랑 속에서는 자동적인 통일이 벌어지고, 또 생명이 연결되며, 이상이 실현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대상인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와 자녀로서, 주체와 대상으로서, 또 무형의 창조주와 유형의 실체로서 완전 조화 통일된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이상을 이루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흔히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여 왔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창조주 앞에는 사랑이상의 실천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은 자녀인 아담 해와를 유형실체대상으로 세워 영원히 그들과 합일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인간 속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사랑이상이 실체인간을 통하여 실현되는 기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상체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한 인격적 성숙으로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과 생명의 영원한 대상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상적 개체들이 되면 곧 이상적 가정으로 발전하고, 그 다음 이상적 사회, 국가, 세계로 발전해서 절대사랑에 대한 감응으로 얻은 생명의 희열, 행복의 이상, 그리고 조화통일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득한 시원(始原)에서부터 사랑의 우주사적 자극을 충족시킬 대상을 그리워하다가 유형 무형의 완전한 대상체로서 인간과 상봉하는 그 사랑의 자극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상에 지었으니 천국은 지상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지상에서 이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영인체가 천상의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써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특히 자라나는 아담 해와에게서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입니다.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각각 대표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이 허락한 사랑의 교과서인 자연 속에서 사랑을 터득하면서 완전히 자라 횡적으로 일체되는 상대이상을 이루는 것이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 해와 자신들의 횡적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인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 해와와 완전 일체를 이루기 위해 임재하시는 사랑이상의 성취의 순간입니다.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담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35-10, 85.08.20)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참부모 원래 하나님은 종적인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내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종적인 하나님 앞에 백 퍼센트 90도를 갖출 수 있는,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 참부모의 생명, 참부모의 혈통이 합하여 하나되어, 천지합덕(天地合德)이 되어 조화의 열매로 맺히는 것이 나입니다. (198-303, 90.02.05)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의 참사랑은 항상 가장 빠른 속도로 최단거리를 통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오는 참사랑은 최단거리인 수직선으로 내려옵니다. 남녀간의 사랑 역시 최단거리로 통과하여 수평선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참사랑이 수평적인 참사랑과 만나게 될 때, 그 교차점은 절대적으로 90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타 다른 방법으로는 이들 사랑의 선이 교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해진 인류의 조상, 즉 아담과 해와가 참부모로 섰다면 하나님의 수직적인 참사랑과 아담 해와의 수평적인 참사랑이 90도의 교차점을 이루었을 것이고, 우리에게는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 두 쌍의 참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이분들로부터 참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혈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사랑과 완전히 공명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201-212, 90.04.09)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한 횡적인 참부모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해서 체를 입고 나왔습니다. 그 체는 내적인 마음체, 영인체와 외적인 몸체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되느냐? 창조주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입니다. 종적인 참부모인 하나님과 그 창조주의 몸과 같은 횡적인 참부모인 아담 해와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서 하나되느냐?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 자리에서 하나됩니다. 여자도 반쪽이고 남자도 반쪽이니 이것이 서로 완성하려니까 남자는 여자가 절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절대 필요해서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사랑함으로써 동현 서현(東弦西弦), 우현 좌현(右弦左弦)이 하나됩니다. 그 다음에 전현 후현(前弦後弦)이 하나되고 상현 하현(上弦下弦)이 하나됩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동서남북으로 돌게 됩니다. 원심력, 구심력을 중심삼고 돌아갈 수 있는 이상체가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것은 남자도 반쪽이고 여자도 반쪽이니 서로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 중심삼고 완성하느냐? 사랑입니다. 사랑으로만 남자 여자는 완성됩니다. 완성된 남자 여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주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이름 짓는 대로 되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우주문제를 다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삼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첫째, 체를 입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기준입니다. 종은 축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면적이 없으므로 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전개해야 합니다. 종적인 것은 면적이 없지만 횡적인 것은 면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공장이 부부이고, 생산활동이 부부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23-236, 91.11.10) 하나님의 종적인 참사랑은 인간을 통해 세계화된다 참사랑이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참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참된 부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장성해서, 성숙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더라면 횡적인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참부모가 어디서 합하느냐?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참부모가 사랑을 중심삼고 90도 되는 교차점에서 합합니다. 합해서 하나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화시켜야 합니다. (183-104, 88.10.15) 그러면 하나님이 종적인 분인데,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 종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횡적인 부모가 필요합니다. 횡적으로 자꾸 낳아 세계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는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느냐? 수놈 암놈, 남자 여자가 합해야 됩니다. 그게 천지 이치입니다.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사랑이 연결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합하는 것이 남자 여자의 결혼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은 부모가 주례를 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이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아담 해와는 부처(夫妻)가 되어 자녀를 낳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자관계의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하나의 사랑의 구형을 형성해서 이것을 확대시키고, 다시 세계 전체로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183-111, 88.11.09) 만약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여 서로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선한 자손을 번성하였더라면 어떤 세계가 되었겠습니까?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무형의 종적인 부모로 모시고 사랑의 부부를 이루어 횡적인 참부모가 되는 이상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 참가정을 근원으로 하여 번성한 일족, 즉 아담 일족의 민족으로 번창하고 그들이 이룩할 국가,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이 충만한 행복한 문화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가 곧 천국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이 천국은 분명히 지상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190-321, 89.06.23) 2. 참사랑을 중심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절대자요, 유일무이하며, 전지전능한 분이다'라고 합니다. 또 그러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냐라고 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어떤 의미에서 부르는 아버지냐? 그냥 막연한 아버지냐 아니면 정말 아버지의 내용을 가진 아버지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육신(肉身)을 통해 태어난 부모와 하나님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느냐? 이게 막연합니다.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우주의 근본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근본은 무엇이냐? 여기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갑니다. 인간 이상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할 때,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서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상대가 누구냐? 그 상대가 동물 중의, 혹은 만물 중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사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이든지 하늘을 추앙하고 혹은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 형식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의 상대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닻을 어디에 내릴 것이냐,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 자체가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어떤 격위(格位)에서 사랑해야 하느냐? 주종관계(主從關係)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종(從)이라는 입장은 반드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신경이 한 방향을 통해서 투입되고 주입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른 목적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종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흐름에서 그 동기를 같이할 수 없고, 바라는 최고의 상대 여건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외적 여건만을 관계지을 수 있는 자리가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참다운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했느냐? 신약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양자로 두고 사랑하기를 바랐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이상입니다.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입니다. 그 사랑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핵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주종관계의 종이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선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관계로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만일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응당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48-205, 71.09.19) 하나님과 참부모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사랑의 상대로서 둘로 갈라서 지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서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 번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번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영적으로만 번식했다면 종적인 자리에만 있게 됩니다. 종적인 자리에서는 실체적인 번식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길을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참사랑은 종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하나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종적인 아버지로서 하나된 가운데 횡적인 아버지가 왜 필요하냐? 구형을 이루려니까 필요합니다. 구형은 그냥 그대로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또 횡적인 것을 중심삼고 전후 좌우가 연결되어야만 구형이 이루어집니다. 구형이 이루어져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주는 축을 중심삼고 돕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위권(同位圈)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하나님의 창조적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축은 하나여야 합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참부모는 횡적 기준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몇 도 각도에 맞아야 되느냐? 종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 앞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이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만약 15도가 되면 90도 중에서 75도는 전부 다 파괴의 힘이 됩니다. 반대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90도의 교차점을 취하다 보니 완전 수직선 앞에 완전 수평선을 그리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또는 여자가 혼자 가는 길이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남자는 태어나기를 여자를 위해 태어났으니 여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여자도 태어나기를 남자를 위해 태어났으니 남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남자 여자가 수평선에서 하나되려고 하는 때가 사춘기입니다. 수평선은 360도입니다. 사춘기가 수평선이 되는 때이기 때문에 궁둥이를 저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상대를 찾는 방향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찾아가는 그 교차점은 종적인 기준과 수직점입니다. 이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상적 상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종적인 참부모,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사랑 앞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착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착점은 하나님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수평선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합하는데 어디에서 만나 합하느냐? 중앙입니다. 중앙에서 만나는데, 왜 중앙에 가서 만나야 되느냐? 수직선과 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중앙에서 만나 합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러면 결혼이 뭐냐? 종적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는 자리요, 횡적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아 만세 인류의 혈통적 기원을 전수받고 상속하는 자리가 결혼입니다. (182-143, 88.10.16) 종과 횡의 사랑을 연결시키는 인간의 마음과 몸 우리 인간은 종적인 성품과 횡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적인 성품을 이어받은 것이 양심, 마음이고 횡적인 성품을 이어받은 것이 몸입니다. 마음이 종적인 나이고, 몸이 횡적인 나입니다. 나에게 종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종적인 나이기 때문에 종적으로 제일 높은 분인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미끼가 바로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을 통해 인연된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내 것이 되지 그 이외에는 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에서만 소유권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여자라도 훌륭한 남자와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날부터 그 훌륭한 남자와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남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나 사랑 관계를 맺었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칙이 그렇습니다. 천리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주라 하더라도 종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종이 주인이지 공주가 주인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그런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그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여왕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한국에서 제일 낮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동참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관계가 맺어지면 어디에 가든지, 높은 데 가든지 낮은 데 가든지 어디에 가든지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에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니 전부 뜯어고쳐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에서 전부 각도가 찌그러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각도의 차이가 있는 만큼 반대작용이 벌어져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양심은 언제나 90각도로 바르게 살라고 합니다. 양심은 바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르다는 건 수직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종적인 기준에 90도를 이루어야 합니다. 수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종적인 나이고, 몸은 횡적인 나이기 때문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의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183-105, 88.10.15) 남자와 여자가 생겨나게 된 동기 사람이라 하면 남자 여자를 말하는데, 남자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여자들은 '아이구,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느냐?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나기를 잘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든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만 있어서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가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여자 앞에는 남자가 절대 필요하고, 사랑 때문에 남자 앞에는 여자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다' 하면 벌써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요, 또 '남자다' 할 때는 벌써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이다' 할 때는 벌써 왼쪽이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하고, '왼쪽이다' 할 때는 벌써 오른쪽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여자가 있다는 것은 남자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하고, 남자가 있다는 것은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가 태어난 것은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자가 태어나기를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고 상대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겨나게 된 동기가 상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하나님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지었는데,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상대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사랑도 갖고 있고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상대를 위해 지었는데, 상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183-107, 88.10.15)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지성소 하나님은 인간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는데, 어떤 관계로 지었느냐? 하나님이 뼈라면 우리 인간은 살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뼈와 살과 같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게 될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을 위하는 데서는 시작하지 않습니다. 너를 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위해서 내 사랑을 네게 심어 주마. 네 사랑을 이룬 다음에 내 사랑으로 돌려다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감으로써 사랑과 인연된 이 권내에 소유권이 벌어집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감싸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내에 종적 사랑 횡적 사랑이 완전히 하나되어 그 핵과 하나되게 될 때, 모든 것은 자기 소유권 내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리한 분이기 때문에 남자가 주인 될 수 있는 부분을 여자에게 갖다 박아 놓았고, 여자가 주인 될 수 있는 부분을 남자에게 갖다 붙여 놨습니다. 그래서 부처끼리 살게 되면 딴 생각이 없게 됩니다. 자기의 주인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부부의 생활입니다. 그렇게 남자 여자가 서로 엇바꿔 주인 될 수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은 우리 생명의 파이프요, 천지의 생명력을 이을 수 있는 파이프며, 천지를 주관하는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파이프입니다. 그게 바로 남자 여자의 생식기입니다. 그러면 지성소가 뭐냐? 지성소는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시대에 사람이 만든 법궤를 지성소라고 했는데, 그것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가 바로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지성소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인데, 타락으로 인해 지금까지 제일 속된 것으로 취급되어 쌍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것을 중심삼고 뻗어가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지극히 선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183-109, 88.10.15) 남자 여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 왜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하고,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서로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에게 여자가 절대 필요한 것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자 앞에 남자가 절대 필요한 것도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절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 우주와 동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세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아무리 못나고 형편없는 시골뜨기 여자라 하더라도 그 나라의 대통령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결혼하게 되면,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사랑의 힘은 그렇게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랑은 동참권(同參圈)이 있습니다. 영국 왕가의 왕자가 한국의 농촌에 가서 돼지를 키우는 아가씨를 사랑했다면, 그 아가씨는 그 왕자가 있는 자리에 언제든지 가서 동참할 수 있습니다. 때가 묻고 험하게 되어 가더라도 차 버리게 안 돼 있습니다. 반드시 새롭게 단장시키든가 해서 그 환경에 맞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동참권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권위가 있더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은 여자가 그 남자 방을 인사하지 않고 발길로 차고 들어가더라도 '어서 들어오소' 하지 '이거 왜 이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동참권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사랑의 힘은 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의 것이요, 사랑하는 아들딸의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될 때 모든 것이 완성되고 그 사랑을 통해야만 우주 상속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을 부여해 주시겠다는 분인데, 그런 참사랑의 주체되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어떤 관계냐?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고 우리 인간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176-312, 88.05.13)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이 중심이라면 하나님을 중삼삼고 남자는 오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서로 좋아하려면 서로 당겨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당기고 여자는 남자를 당기면 하나님은 거기서 빙빙 돌게 됩니다. 빙빙 도는데, 왔다갔다하면서 도는 게 아니라 한 자리에서 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축이 생겨납니다.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이 돌 수 있는 사랑의 축이 꽂혔다면, 그걸 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도는 것이 아니라 천근 만근 좋은 아담 해와의 사랑의 힘에 의해 돌기 때문에 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50억 인류가 빙빙 돌더라도 그 축이 하나지 둘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축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에 있겠다고 하느냐? 대우주의 핵의 중심이 하나님이요, 대우주의 핵을 싸고 있는 두 쪽이 하나는 아담이고 하나는 해와입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내적인 축의 자리에 있는 부모요, 아담 해와는 참된 사랑의 축을 중심삼은 외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우주의 근본이 뭡니까?' 하고 담판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대답하기를 '부자관계, 부자의 인연이니라'고 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관계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부자관계는 하나님도 뗄 수 없고, 누구도 나눠놓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만민들이 생겨났다면 그 조상의 맨 조상은, 나무로 말하면 뿌리 가운데 곧은 뿌리는 하나님이고, 그 옆 잔뿌리가 우리 인류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종대 순이 누구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뿌리와 수직이 되는, 하나님의 참된 뿌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인 종손입니다. 이 천지간에 하나님의 뿌리와 완전히 수직으로 설 수 있는 종대, 순이 될 수 있는 종손이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순이 거꾸로 되어 있고, 뿌리가 말라 들어가고, 요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구원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구원해서는 뭘 할 것이냐? 본연의 사랑의 핵을 중심삼고 수직 축과 완전히 90도, 평행선을 중심삼은 이상적 사랑의 인격관을 형성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구원섭리를 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고장난 것을 수리하기 위한 수리공장이라는 것입니다. (176-315, 88.05.13) 마음은 종적인 나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참사랑의 주체고, 그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직단거리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 인간이요, 만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부모라고 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이 하나님이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90각도를 맞춘 자연적인 사랑의 직단거리가 되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90각도에 일치되는 자리에 있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90각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에서 연결되느냐?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부딪칠 수 있는 곳에서 연결되는데, 그곳이 종적 중앙선과 횡적 중앙선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직행하기 때문에, 최단 거리로 가기 때문에 이 핵이 참사랑이 만나서 합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한번 합하게 되면 떼어놓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한 본질적 요소, 동기적 요소가 지금까지 핏줄을 통해 연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조상들이 횡적인 면에서 1도, 2도, …, 360도의 환경을 맞추어 나왔지만 중심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왔다간 수많은 조상들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고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전부다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전의 하나님이나 천년 후의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의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종은 하나입니다. 절대입니다. 횡은 무한히 벌어지지만 종은 절대 하나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종적인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라면 참부모는 그 종적인 것에 90각도로 동과 서에 연결시키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게 묶어진 것이 씨가 되어 태어났는데, 개인에게서 종적인 것을 닮아 난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것을 닮아 난 것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언제나 90도로 맞아야 됩니다. 위에 가서 거짓말하고 아래에 가서 거짓말하고 동에 가서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동서남북 전후좌우 어디 가도 맞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천년사가 우리들 앞에 동조하지만 이것이 틀어지게 되면 몰아냅니다. 아파서, 병이 나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우주력이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원칙에 의해 우주가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은 아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187-68, 89.01.06) 종적인 아버지와 횡적인 부모를 완전히 하나로 맞추자 하나님은 종적인 아버지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종적인 수직은 하나밖에 없지만 횡은 360도로 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직이라는 말 가운데는 이미 수평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평선이라는 말 가운데도 이미 수직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수직이라는 말은 수평선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고, 수평선이라는 말은 수직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평선이라는 말을 할 때, 수직이 없게 된다면 수평선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수직이라는 말을 할 때도 수평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횡적인 사랑의 이상적 가정이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딸을 통해 나뭇가지와 같이 뻗는 것입니다. 모든 세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한 나무 뿌리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종적인 우리의 마음과 횡적인 몸은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둘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종적이요, 몸은 횡적입니다. 몸과 마음이 사랑으로 하나되었다면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안 되어 자리가 안 잡혔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것들이 인연이 되어 파괴물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 본성의 욕구인데도, 생존의 기원인데도 자기 위치를 잃어버렸으니 몸 마음이 언제나 균형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잡는 데는, 자기 자신이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근본을 바로잡아야 됩니다. 통일은 어디서 되느냐? 자기 자신으로는 안 됩니다. 근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본연의 하나님을 종적인 아버지로 하고 인류 시조를 횡적인 부모의 자리에 세워 완전히 하나로 딱 맞추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자리에서 우리가 태어나야 하는데, 타락으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에서는 마음을 수직으로 하고 몸을 쳐 나왔습니다. 몸을 수평으로 해서 수직인 마음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희생하라, 자기를 중심삼지 말라, 전체를 중심삼아라 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전체를 위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세계는 독신생활을 중시합니다. 몸을 부정하는 수양을 통해 마음에 대해 90각도 위치에 억지로라도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통일은 어디서부터 해야 하느냐? 내 생명이 통일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수직적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나지 못했으니, 본연의 종적인 것이 다 틀어졌으니 종적인 것부터 먼저 맞춰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에게 절대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나라도 다 버리고 참된 자리로 출가하라는 명령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개인부터 거쳐야 가정이 거쳐지고, 가정이 거쳐야 종족이 거쳐지고, 종족이 거쳐야 민족이 거쳐지고, 민족이 거쳐야 국가가 거쳐지고, 국가가 거쳐야 세계가 거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는 수련장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교인들을 규합해서 통일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지고 통일하느냐?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종적 사랑과 이상적인 횡적 사랑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176-321, 88.05.13) 3. 통일교회가 말하는 참부모란 1) 하나님과 참부모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한 종적인 참부모요,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으로 한 횡적인 참부모입니다. (219-119, 91.08.28)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의 자리에 선 분이요,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의 종적인 기준 앞에 영원히 횡적으로 맞춰질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179-252, 88.08.12) 하나님이 종적인 아버지라면 횡이 있어 가지고 종횡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구성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전부 연결시켜야 합니다. 어떤 식물도 꽃이 피기 위해서는 수술 암술이 만나 종적 횡적으로 교체해야 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집 짓는 것도 '열 십(十)' 자를 닮았습니다. 종횡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구성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상적 구성체 중에서도 최고의 이상적 구성체요, 핵심적 요인을 결속시키기 위한 종횡의 원소입니다. (228-269, 92.07.05)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는 뭐고, 창조주 하나님은 뭐냐?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종적 참사랑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참부모는 참사랑을 중심한 횡적인 부모입니다. (183-332, 88.11.09)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은 종적인 아버지로서 종적인 사랑을 가진 참부모입니다. 종적인 생명을 낳아 줄 수 있는 참부모고, 종적인 혈통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참부모입니다. 곧 하나님은 종적인 참된 사랑과, 종적인 참된 생명과, 종적인 참된 혈통을 이어 줄 수 있는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그 종적인 아버지의 열매로 맺혀진 것이 종적인 자리에 선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종적인 나입니다. (231-78, 92.05.31) 육신의 부모가 우리에게 혈육을 준 부모라면, 창조주는 우리에게 영혼을 준 영원불변의 영적인 참부모입니다. 내 마음의 부모인 동시에 영생을 주는 영의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륜적으로는 혈육의 부모를 숭상하고 또 효도하라고 가르쳐 왔으나 천륜의 부모인 창조주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도가 없었기 때문에 인륜과 천륜이 각기 다른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비로소 인륜을 대표할 수 있고 천륜을 대신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대해 천륜적인 참부모의 도리를 부르짖고 나선 이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4-103, 58.03.16) 참부모는 이상적 세계에 평면적 사랑의 기준을 대표한 분이요, 하나님은 이상적 세계에 종적인 사랑의 기준을 대표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이 일치된 사랑 이상세계의 천지조화를 이루는 것이 창조원리의 이상론입니다. (148-87, 86.10.05)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뭐냐? 참부모의 이름을 통해 지상왕국과 천상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아니고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은 참부모의 완성과 사랑의 기반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집니다. (131-184, 84.05.01) 2) 통일교회가 말하는 참부모란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참부모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은 내적인 아버지고 마음적인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참부모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버지로 내적인 하나님에 90각도를 갖춘 외적인 아버지입니다. (178-204, 88.06.04)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참부모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과 참부모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는 뭐냐? 참사랑의 기원을 밝혀 나오는 분입니다. (213-94, 91.01.14)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란 하나님 앞에,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 앞에 90각도를 갖춘 횡적인 사랑을 가진 분입니다. 한 분은 창조주인 부모고, 한 분은 하나님의 대상으로 이상을 그리면서 지은 몸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고, 참부모는 몸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나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두 부모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182-259, 88.10.23)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종적인 마음이 되고,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뼈와 같고, 아담 해와는 몸과 같습니다. (184-71, 88.11.13) 참부모가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핵으로 한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출발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인간 조상이 참부모였습니다. (135-161, 85.11.12) 참부모는 장손입니다. 참부모는 인류의 조상 중의 조상이요, 참된 왕입니다. 참부모로부터 참된 왕권이 시작됩니다. 참된 왕권이 성립됨으로써 지상에 참된 왕족이 설정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14만4천 무리는 이 왕족권을 말합니다. (229-204, 92.04.12) 부모의 유래를 찾아보게 되면 아담은 첫째 부모고, 예수님은 둘째 부모고, 참부모가 셋째 부모입니다. 그렇게 해서 첫째, 둘째, 셋째 부모입니다. (116-288, 82.01.02) 우리 통일교인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참부모입니다. 그 말은 간단하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역사 이래에 어떤 도서에도 없습니다. 참부모라는 말은 가장 쉬운 말인데, 그 말은 우리 통일교회만이 갖고 있는 말이고, 우리만이 쓰는 말입니다. 과거 역사시대에 참부모라는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 배후가 어떻다는 것을 풀 도리가 없었습니다. 통일교회의 방대한 원리의 전체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그것을 확실하게 풀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간단히 참부모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인류의 본연적인 근원에 대한 사실을 밝혔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란 말은 인류 시조로부터 역사적 모든 인간들이 그릇된 혈통 가운데 사는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본연적인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201-60, 90.03.01) 통일교회는 하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집은 사람끼리 사는 집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살 수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일원은 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닙니다.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란 말이 멋진 말입니다. 참부모란 하늘 부모를 말합니다. '참'이란 언제나 정의의 귀결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아지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거기에 순응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24-294, 69.08.31) 세상 만사 가운데 제일 귀한 게 뭐냐?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란 참사랑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107-137, 80.04.20) 참부모라는 것은 지상에서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의 중심입니다. (112-209, 81.04.12) 참사랑이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했지, 당기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위해서 일생 동안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가겠다는 자리에 서야 참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해야 참남편이 되는 것이고, 참부모가 되는 것이고, 참효자가 되는 것이고, 참군왕이 되는 것이고, 참충신이 되는 것이고, 참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216-205, 91.03.31) 참부모가 뭐냐? 밤이나 낮이나 자식들을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형제가 뭐냐? 형제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참형제입니다. 참형제가 거기에 있고, 참부모가 거기에 있습니다. (204-222, 90.07.11) 참부모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대신입니다. 본래의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참부모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기 아들딸을 할아버지가 원하는 길로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부모가 가는 길입니다. (128-31, 83.05.29) 통일교회는 완전한 사람의 측정기준을 세우자는 곳입니다. 절대 측정기준과 연결될 수 있는 측정기준이 뭐냐?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역사이래 처음으로 참부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 측정기준이 되는 사랑을 중심삼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있으면 절대 측정기준과 연결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집니다. (139-205, 86.01.31)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인과원칙에 의해서 탕감해야 됩니다. 거짓 부모를 부정하는 데는 참된 아들딸이 나와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짓 부모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참된 부모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거짓 부모를 폭로할 수 있습니다. (144-109, 86.04.09) 재림주는 누구냐 하면 기독교만의 재림주가 아닙니다. 그분은 불교의 재림주로 미륵불과 마찬가지고, 회교의 재림주와 마찬가지이고, 유교에 있어서는 진인(眞人)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전부 다 한 사람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아버지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불교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유교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회교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기독교에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습니다. 그 종단들이 최고로 바라는 소망이 아버지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을 가지고 오신 분이 그 모든 종단의 재림 이상의 주인공인데,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233-346, 92.08.02) 3) 아담 해와와 참부모 참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생겼더라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내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그 종적인 하나님 앞에 백 퍼센트 90도를 갖출 수 있었던,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에 횡적인 부모의 사랑, 부모의 생명, 부모의 혈통이 합해져 조화의 열매로 맺힌 것이 나입니다. (198-303, 90.02.05)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결혼했다면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참부모는 지상세계의 왕이요, 천상세계의 왕입니다. 그 왕의 내적인 주인은 하나님이고, 왕의 외적인 주인은 우리 인류의 첫 조상인 완성한 아담 해와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류는 참사랑의 황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자요,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왕녀입니다. 이들이 첫사랑의 열매요, 첫 가정의 부모요, 첫 왕권의 전수자입니다. (218-221, 91.07.29)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무형의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한 종적인 참부모고, 인간 조상 아담과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으로 한 횡적인 참부모로 영원히 인류역사 위에 군림하였을 것입니다. (219-119, 91.08.28) 아담은 누구냐? 하나님은 내적, 종적인 참부모의 입장에 세워졌고,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의 입장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결합돼야 되느냐? 종적 횡적 90각도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입니다. (221-285, 91.10.26)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담 해와라는 체를 입고 나왔습니다. 그 체는 내적인 마음체, 영인체와 외적인 몸체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이 하나가 돼야 됩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한 참부모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입니다. 마음은 종적이요, 몸은 횡적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하나되느냐? 창조주는 종적인 참부모요, 창조주의 몸과 같은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223-237, 91.11.10)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합니다. 그것이 종적으로는 하나님의 결혼식이요, 횡적으로는 우리 인류의 참부모 결혼식입니다. (226-124, 92.02.02) 타락하지 않았다면 본래 남자 여자의 생식기는 사랑의 근본이요, 사랑의 본궁이요, 생명의 본궁이요, 혈통의 본궁입니다. 거기에서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이 합하게 됩니다. 종적인 사랑,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횡적인 인간 아담 해와의 사랑도 직단거리를 통하는 길은 90도의 길밖에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생명 일체, 사랑 일체, 혈통 일체, 이렇게 화합한 기쁨과 더불어 폭발되어 소생하는 데서 태어나야 할 것이 우리 인류입니다. (197-175, 90.01.13)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일체가 된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다면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은 참자녀입니다. 그 참자녀의 피 가운데는 사탄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직계입니다. (157-160, 67.04.02)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부모가 되어 하나님을 중심한 세계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이 주관하는 거짓부모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부모는 없어졌습니다. 참된 인류의 조상이 없어졌습니다. (20-117, 68.05.01) 아담 해와가 성장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을 이어받은 참부부가 생겨서 참가정․참종족․참민족․참국가․참세계로 확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거짓부모가 생겨났고 지옥이 생겨났습니다. 그 거짓부모의 역사를 지워 버리고 참부모의 역사를 다시금 등단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35-9, 92.08.24) 인류시조가 본래 참부모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부모가 되었습니다. 거짓 부모가 뭐냐? 사랑의 전통을 못 세운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본래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과 참다운 딸로 자라 아들딸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형제로서 형제의 전통을 세우고, 그 형제를 중심삼고 커서 부부의 전통을 세우고, 아들딸을 낳아 아들딸을 사랑하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107-157, 80.04.20) 원래 세계의 주인은 악한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참부모로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참아들딸이 그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 종족과 그 나라와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연의 이상이었습니다. (108-21, 80.06.13)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참다운 인류의 조상,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참부모의 혈족으로 우리 인류는 태어나야 했습니다.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는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서 인류 앞에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슬픈 역사를 이루어 나온 원한의 터전입니다. (14-239, 65.01.01)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을 모두 달성했을 것인데, 타락하여 다 꺾여졌습니다. (10-143, 60.09.18)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한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가정의 주인 되는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된 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53-99, 72.02.10) 사위기대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담 해와가 하나되는 자리입니다. 자라 나오던 아담 해와가 하나의 사랑으로 묶여져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이루는 그 자리는 인류의 조상이 갖추어야 할 최초의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 누구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적인 사랑을 이루었더라면 거기서부터 인류의 참부모는 출발했을 것입니다. (25-13, 69.09.21)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인류는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참자녀를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23-180, 69.05.18)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땅 위의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는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참아버지 참어머니입니다. 몸을 쓴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가 사탄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의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운데 선남 선녀로서 성례식을 치르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다면, 만물은 아담 해와와 화동하면서 즐겁게 그 가정에 필요한 물건이 되려고 했을 것입니다. (9-137, 60.05.01) 4) 예수님과 참부모 역사상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모로 등장할 수 있었던 사람이 누구냐? 아담 해와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에 메시아를 보냈는데, 메시아는 누구냐? 아담 해와가 잃어버렸던 참부모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서 오신 분이 메시아요, 그 메시아가 예수님이었습니다. (120-201, 82.10.15)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타락함으로써 그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자리를 찾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이 필요없습니다. (23-161, 69.05.18)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아담이 타락하여 거짓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참아버지로 오셨습니다. 참아버지로 올 때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과 사랑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160-283, 69.05.17) 예수님은 인류의 참부모요, 참아버지의 사명으로 오신 분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인류의 참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해와는 참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준비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참아버지의 사명으로 보내셨습니다. (17-190, 66.12.18) 예수님은 구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주는 구주요, 참부모를 찾아 주는 구주요, 참부부를 찾아 주는 구주요, 참자녀를 찾아 주는 구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생명만 구원해 주는 구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깨뜨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 오신 분이요, 잃어버린 참부모로 오신 분이요, 참부부의 신랑으로 오신 분이요, 하나님 앞에 참다운 효자로 오신 분입니다. (9-144, 60.05.01) 참부모를 잃어버린 인류 앞에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이었는데 가정을 잃어버렸고, 자녀로 세웠던 세 제자까지 잃어버림으로써 해와를 잃어버린 아담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안타까운 사정에 처해 있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4-15, 58.02.16) 5) 재림주와 참부모 재림주님은 어떤 분이냐?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인류의 조상입니다. 세계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역사는 바로 자식의 역사입니다. 한 집안의 법도는 그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 나아가야 할 법도입니다. (12-206, 63.05.15) 아담이 참부모이고, 예수님이 참부모이고, 그 다음에 제3아담 재림주가 참부모입니다. 사탄이 모든 씨를 뿌렸기 때문에 참부모가 와서 모든 사탄의 씨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지옥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189-87, 89.03.19)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남자가 와야 합니다. 그 남자가 누구냐 하면, 재림주님입니다. 그 재림주는 인류의 참된 부모입니다. 타락이란 거짓부모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타락함으로써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인류는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34-202, 70.09.06)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십니다. 1차 아담은 타락하였고, 2차 아담은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3차 아담으로 오십니다. 세상에는 50억 인류가 있지만 저나라에 간 영인들은 물론 전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쳐 태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154-262, 64.10.03) 타락한 세계가 생겨난 이후에 메시아가 온다는 말은 참부모가 재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종교든지 재림을 말해 왔는데, 그 다시 온다고 하는 분은 이 메시아 한 분이요, 그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131-10, 84.02.20) 인류가 희망하고 고대해야 할 것은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이며, 불교로 말하면 미륵불이요, 유교로 말하면 진인입니다. 정감록으로 말하면 정도령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오는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23-165, 69.05.18) 재림주님이 와서 가르쳐야 할 것이 뭐냐? 참부모의 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참부모가 어떤 분이고, 참부모의 사랑이 어떻고,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떻게 하늘땅이 하나되어 가느냐 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226-313, 92.02.09)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희생시켜서 아들의 갈 길을 닦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을 희생시켜서 재림주, 참부모가 올 길을 닦았습니다. 성약시대에는 참부모가 희생함으로써 종적인 하나님을 지상에 모셔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앞에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고, 참부모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 종적인 아버지 앞에 횡적으로 90도를 맞춘 횡적인 부모입니다. (208-340, 90.11.21) 오시는 재림주님이 이 땅에 와서 신부를 찾아온다는 것은 뭐냐? 종적인 하나님을 횡적인 기준에서 90도로 맞추기 위해, 공동적 사랑의 이상 기반의 결정이 없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서 다시 꿰 맞추기 위해 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메시아는 인류의 참부모로서 내적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핏줄의 전통을 심기 위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177-226, 88.05.20) 이 땅 위에 오시는 구세주는 사랑의 구세주입니다. 생명의 구세주입니다. 사랑이 어긋났고, 생명이 어긋났고, 혈통이 어긋났으니 참된 사랑의 구세주요, 참된 생명의 구세주요, 참된 혈통의 구세주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것인데, 그걸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통해 찾아온 것이 참부모의 전통입니다. (191-245, 89.06.25) 마태복음 24장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아담은 타락하였고, 2차 아담은 땅 위에서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3차 아담으로 오십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50억 인류가 하나같이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상태로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6천년 역사는 어떤 역사였느냐? 잃어버린 참부모, 즉 아담 해와의 완성한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였습니다. (15-328, 65.12.07) 재림이라는 말은 참부모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 참부모는 본래 아담 해와로서 에덴동산에서 시작할 것인데, 타락으로 인해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을 통해 재현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에 예수님 대신 이것을 다시 이루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131-192, 84.05.01)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도록 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참부모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인류의 참부모로 예정하였지만, 그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하나님은 또다시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오시는 메시아는 하나님을 중심한 참부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오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상대로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참부모를 모실 때, 우리는 모두가 참형제자매입니다. (91-118, 77.02.03)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라는 말은 이미 세계어가 돼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참부모는 통일교회 레버런 문이다'라고 합니다. '누가 참부모냐?' 할 때, '너는 그것도 몰라, 레버런 문이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44-117, 86.04.09) 선생님이 참부모라는 말을 갖기까지 천신만고(千辛萬苦)가 아니라 만신만고(萬辛萬苦)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은 글이 있습니다. 만고지승자(萬苦之勝者)는 영고지왕자(榮高之王者)라는 글입니다. '만 고생을 이겨낸 사람은 영광의 최고 높은 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선생님은 그 길을 걸어와서 참부모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214-153, 91.02.02) 6) 어린양 잔치란 에덴에서 두 사람이 하나되어 하나님과 통일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종이 되었으니, 두 사람이 완전히 통일되어야 복귀의 기원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어린양 잔치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린양 잔칫날이 있는데, 그 어린양 잔칫날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되는, 즉 하나로 묶어지는 날이고, 또 그날은 만세에 축하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만민은 그날을 고대해 왔습니다. 그래서 섭리의 목적도 그곳, 인류의 역사도 그곳, 종교의 목적도 그곳에서 종결됩니다. (21-45, 68.09.01) 어린양 잔치가 뭐냐? 6천년 전에 하나님이 사랑이요, 생명이요, 이상의 주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다가 축복을 해서 인류의 선한 조상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는 잔치가 어린양 잔치입니다. 그때 인류의 조상으로 못 만들어 놓은 것을 역사이래 끝에 와서 다시 축복해서 하나님이 인류 앞에 선한 조상으로 등극시키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9-91, 73.10.20) 본래 인간 시조는 선한 부모로 출발해야 했는데 악한 부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내 사랑과 같이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통한 혈족으로서 남아진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래의 자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 잔치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오셔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 한 기준 위에 접붙여야 됩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재림주님을 신랑이라고 합니다. 그 신랑이 하나의 신부를 찾아 둘이 합하여 어린양 잔치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41-28, 71.02.12) 인간 조상이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참부모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은 참부모로서 타락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21-191, 68.11.20) 6천년 전에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었어야 할 아담 해와가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을 해서 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끝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신랑 신부를 세워 다시 결혼식을 해주는 잔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잔치가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잔치를 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참부모가 인류 앞에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23-163, 69.05.18) 남자 여자가 갈 수 있는 정당한 길이 있다면, 그 정당한 길의 기준이 뭐냐? 그건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계를 대표한 남성 완성자로 와서 이 땅 위에서 이 세계를 대표한 여성 하나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233-60, 92.07.30) 혼인잔치, 즉 어린양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신부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가 누구냐 하면 해와입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그 해와입니다.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님은 3차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서 타락하기전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해와를 찾아서 어린양잔치를 해야 됩니다.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36-264, 70.12.06)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끝날에 신랑되는 주님이 이 땅에 온다고 했는데, 일등 신부를 찾아 혼례식, 즉 어린양 잔치를 한다고 요한계시록에서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 어린양 잔치란 부모님의 종교가 지구상에 현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내용의 길을 따라서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온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138-108, 86.01.19) 예수님은 세계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전에 가정이 없으면 세계를 구하지도 못하고 나라도 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 하는 신랑 신부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88-70, 76.07.18) 7) 인류 역사와 참부모 인류 문화사가 6천년 역사를 거쳐왔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일은 아담 하나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완성한 아담을 세워 나왔습니다. 아담을 찾은 후에야 아담을 통해 해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랑 신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으신 것을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으로 말미암아 찾아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래야 부모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참부모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류는 거짓 부모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병이 났습니다.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고장났으니 고쳐야 합니다. 고장난 것을 수리하는 일을 지금까지 종교가 해왔습니다. (82-65, 75.12.31) 참부모라고 하는 분은 역사의 희망의 결실체요, 소망의 결실체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탕감한 승리의 결실체입니다. (55-155, 72.05.07) 참부모라는 말이 그리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제일 무서운 말입니다. 이 참부모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역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을 찾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선열들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피의 투쟁을 거치고 몸부림치며 절규하면서 소망을 품고 찾아 세운 이름이 참부모라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33-109, 70.08.09) 참부모는 모든 것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절대적인 소망의 상징입니다. 그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6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 국가권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상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35-237, 70.10.19)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신랑 되시는 주님이 와서 신부를 만나 신랑 신부 종교권 시대가 옵니다. 그것이 참부모 종교입니다. 그건 종교가 아닙니다. 그때는 종교라는 것이 없어집니다. 참부모를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시의(侍義)의 구원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하는 말은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의 근본이 되어야 하고, 참부모의 생리적 모든 감정은 자기의 모든 생리적 감정이 돼야 하고, 참부모의 생활은 자기 가정의 전통적인 문화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50-61, 71.10.31) 참부모란 명사를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습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사랑과 혈통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인격이 시작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언어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생활이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국가형성이 벌어지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28-248, 70.01.22)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아들딸이라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역사이래 최고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참부모의 자리를 최고로 바랐습니다. 참부모가 없으면 참자녀가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참자녀요 하나님에게는 참부모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승리의 자리가 없습니다. (147-113, 86.08.31)
8) 참부모와 우리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찬양받을 수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참된 부모,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했다는 사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44-132, 71.05.06)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뭐냐? 그 길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정을 밀고 가는 길입니다. 참부모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가정도 그렇게 가야 되고, 종족도 그렇게 가야 되고, 민족도 그렇게 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복귀될 때, 그와 같은 방식의 생활 체제가 전 민족적으로 화하게 될 때 그 국가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세계적으로 화하게 될 때 세계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44-169, 71.05.06) 타락이 뭐냐?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악부모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부모의 혈통을 전부 지워 버리고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아 하늘로 돌아가야 합니다. (23-162, 69.05.18) 통일교인들에게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것은 참부모가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죽도록 고생시키더라도 '감사합니다' 해야 합니다. 죽도록 고생하면 몇백 배 몇천 배로 하늘의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감수하고 가는 환경을 만들면 조국이, 하늘나라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02-263, 79.01.01)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찾아오는 것은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을 참부모로, 작은 참부모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대교가 4천년 동안 기다린 것은 참부모, 참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자, 총각을 기다린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왔다 간 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기다린 것도 참아버지 될 사람이 총각으로 다시 오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아버지가 못 되고 참독신자밖에 못 되었습니다. 독신자는 참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125-118, 83.03.14) 우리 모두는 어머니 아버지, 참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위대한 것이 뭐냐? 참부모의 모든 역사와 권한을 만 가정에 상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최고의 권한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107-100, 80.04.06) 9)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어이쿠, 참부모가 뭐야? 뭔데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참부모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천세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조상을 말합니다. (20-269, 68.07.07)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들의 도리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아들과 부모 중에 누가 더 높습니까? 부모가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 단계 앞서갑니다. (21-194, 68.11.20) 통일교인들이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그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 만민을 하나같이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33-143, 70.08.11)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은 인류의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인을 맞이해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자격으로 왔으면 반드시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기독교와는 다릅니다. (41-230, 71.02.16)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외짝이기 때문에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거짓 부모를 가진 것입니다. 인간은 실수한 거짓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참된 부모가 와서 다시 낳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40-347, 71.02.11) 참부모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자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을 직접 부를 수 없으니 참부모를 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마지막에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느끼는 그런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31-77, 7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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