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혈통복귀와 예수님의 탄생 (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 역사편 - 제 2장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철장왕 | 20180927043550

6. 혈통복귀와 예수님의 탄생
  
  
슬픔으로 시작된 인류역사
  
하나님은 선의 세계를 이룰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아담과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창조이상을 이루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중도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 중에 첫째 가는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뜻하지 아니한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실체세계에도 비운의 역사가 출발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비운의 역사를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나 인간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기쁨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시작하였고, 소망과 희망 가운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출발하였습니다. 또한 광명한 새 아침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 아니라 황혼이 짙어가는 가운데 어두운 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청산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어둠의 세계를 기필코 청산짓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광명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에게는 구원이라는 명사를 들어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은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제1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만이 아니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 부부의 인연을 맺고 참된 부모가 되어서 새로운 혈족의 인연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창조목적이요, 또한 인류역사의 새로운 출발의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어떠한 민족이 문제가 아니며, 어떠한 종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떠한 아들딸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 앞에 필시 있어야 할 참부모, 하나님이 실체로 현현할 수 있는 참부모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인류의 최고의 문제이자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 완성은 하나님의 소원 가운데에서 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전한 사위기대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비통하고 비참한 역사를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비참하고 비통한 역사적인 인연을 가졌으니, 이제 이것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5-172, 69.10.4)
  
  
비운의 역사를 청산지으려면
  
이러한 역사의 운명은 개인을 지나고 종족․민족․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뻗어 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 비운의 역사가 접속되어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척결해야 합니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움직이는 힘보다도 강한 힘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어떠한 물체를 자기가 목적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힘 이상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이 그 목적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악의 힘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한 선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갖추어지면 악은 자동적으로 멎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복귀역사는 비참한 인류역사를 타고 나온 현재의 우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이 타락한 그때부터 복귀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랬는데 모든 뜻이 본연의 소망대로 성취되지 않음으로써,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아브라함을 세워 가지고 결사적인 입장에서 소생․장성․완성의 원리 기준을 세우려 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 이런 기준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적 기준이지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전체 세계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브라함 가정이 중심가정으로 세워졌지만 전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굴복시키는 것도 전세계를 한꺼번에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나라면 나라의 대표, 세계면 세계의 대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섭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제물을 드리는 데서 실수한 것이, 즉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님과 사탄이 상반된 입장에서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사탄이 굴복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탄도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에 양분된 그 형태가 이 지구상에 남았습니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그 기준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국가가 못 되었습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재차 슬픔의 조건을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청산하는 데 있어서 제일 기준은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국가 기준은 가정 단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그 목적 또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승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민족 편성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덮치고 덮치는 역사를 거쳐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2천년 역사를 경과해 가지고 예수님 시대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국가적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승리의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을 기반으로 아브라함 가정에서 세우지 못한 승리의 기준을 결정짓고 사탄세계의 외적인 환경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섭리는 또다시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소화시킬 때까지 점진적인 역사에 보조를 맞추면서 국가 형태의 기준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기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입니다.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일을 완수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나라를 형성했다고 해도 복귀섭리가 나라 단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되어 세계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모든 국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비운의 역사가 청산될 수 있는 것입니다. (25-173, 69.10.4)
  
  
하늘나라 형성과 혈통복귀
  
예수님도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를 세워야 됩니다. 사탄 나라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탄 나라의 대표자가 있으니 하나님 나라에도 대표자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탄 나라의 제반 조건 이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나라를 형성했느냐? 사탄은 혈통적으로 나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혈통이 순수해야 하고, '하나님편이다' 하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혈통복귀가 되지 않으면 그 외의 모든 복귀도 힘든 것입니다. 
지금 타락한 인간은 혈통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는 권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탄의 기준을 능가하는 기준으로 사탄에게 혈통적으로 말려들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혈통을 어떻게 성립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볼 때도 그가 타락한 혈통의 후예로 태어났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사탄세계의 저끄러진 열매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는 하늘편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역사상의 성현들, 예를 들면 예수님이나 석가나 공자 같은 사람이 인류역사에 공헌을 했다고 다 똑같은 성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을 놓고 보면 반드시 한 사람이 앞서든가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앞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앞서 있는 한 사람이 선택받도록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 외에는 소망의 분기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었느냐? 사탄세계와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는 부모를 거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분신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사탄의 아들들의 권위보다도 안팎으로 나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출발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태어나기 위해서 4천년 역사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사탄과의 혈통적 관계를 넘어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터전 위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은 형이고 아벨은 동생입니다. 복귀역사는 바꿔치기 역사입니다. 바꿔친다면 무엇을 바꿔치는 것이냐? 옷을 바꾸어 입는 게 아닙니다. 집을 바꾸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라를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바꾸는 데는 외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바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에서부터 바꿔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근본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부터 바꿔친 후에 나를 바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바꿔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부모를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있어서 어느 한 때에도 이러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출발을 못 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어 온 모든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 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광명하고, 희망에 벅찬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5-175, 69.10.4)
  
  
우리가 복귀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
  
오늘날 이 타락의 세계는 슬픔 가운데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슬픔의 역사, 낙망의 역사, 죄의 역사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행로의 연속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나라가 문제입니다. 나라가 협조 안 하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를 중심삼은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보이는 자신이 어떻게 아버지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사탄세계에 있는 아버지와 신념으로 믿고 추구하는 아버지와 감정의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겠습니까? 원칙적인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이것을 발견하고 찾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든 기준을 설파해 가지고 하나님을 실체의 반석으로 모시는 것을 공법으로 하는 사회와 세계를 부모보다도 더 높이 알고, 더 가까이 알고, 더 깊이 인연맺을 수 있는 참된 남자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러한 참된 남자가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관계를 엮지 못하므로 복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 불가침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절대입니다. 또한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백번 천번 때려부수더라도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나된 그 세계는 어떠한 무엇으로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가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사회에 복잡한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됩니까? 우리의 존재 기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들 전체가 하나님 속에 있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자각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귀되는 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분입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됩니다. 언제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성립됩니다. 주체이신 하나님의 상대는 결과세계입니다. 결과의 존재란 주체를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결과적 존재는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를 일치시키는 작용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기때문에 사랑의 결과와 일치하게 되면 사랑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왜 여자는 빼놓고 남자만 중심삼고 했겠습니까? 아직까지 여자의 입장을 나타낼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랑 된 주님이 와야 여자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시집을 가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시집갈 수 없으므로 남자도 장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일치될 때는 절대적이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25-177, 69.10.4)
  
  
하나님의 참아들로 오신 예수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남자가 수고해 나왔지만, 앞으로는 남자만 중심삼고 '아! 남자가 제일이다' 할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여자 대통령도 나오고, 여자 국회의원도 나오고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들끼리만 거들먹거렸지만 이제부터는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옆을 봐라. 우리가 있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탕감복귀의 한도가 이 세계에 점점 차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라톤에서 챔피언이 된 것이 아니요, 밥 잘 먹기로 세계 제일도 아니요, 팔 힘이 세계 제일도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모양이야 절름발이든 애꾸눈이든 무엇이든 국부(國父)의 사랑만 점령하면 국모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지리 못난 남자요, 뼈 위에 가죽만 씌워 놓은 남자라도 사랑만 점령하면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어질 때는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대로 끊다가는 그 사람의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번 맺어진 부부끼리 이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남편, 한 아내에게 전적으로 매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데 있어서 일등이었습니다. 일등 중에서도 최고 일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일등이라는 기록은 내놓았으나 그것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코스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코스에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후대에 가르쳐줄 수 있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서 일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뼛골 속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남자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 전체와 인연맺는 사랑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의 가슴에 꽉 찰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두 사람을 놓고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고 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게는 예수밖에 딴 사람은 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25-186, 69.10.4)
  
  
복귀역사는 가인 아벨 복귀의 역사
  
아들딸이 태어나기 전 부부의 사랑을 거쳐 가지고 뱃속에서부터 떼려야 뗄 수 없고,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문서장을 지니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문서장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출발되었으니 하나님을 모시고 바꿔쳐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4천년 역사 속에서 바꿔치기를 해왔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가인은 오른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른편에 있는 가인을 왼편으로 보내고 왼편에 있는 아벨을 오른편으로 바꿔야 됩니다. 이렇듯 바꿔치는 일은 사탄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의 주역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바꿔치는데 가인은 사탄편이고 아벨은 하늘편입니다. 여기서 하늘편이 사탄편을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어서 아담은 주인이고 사탄은 종이었습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벨은 아담 대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대신 주인된 입장에 선 아벨이 사탄편의 가인을 지배해야 됩니다. 바꿔쳐야 돼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반대로 가인이 아벨을 주관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거꿀잡이로 바꿔쳐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것을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것을 하는 데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서는 안 됩니다. 타락은 여자가 먼저 했기 때문에 탕감복귀하려면 여자는 뒤로 물러서고 남자가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거꾸로 점령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형제끼리 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좁혀 들어감으로써 복귀되어 가고 뜻을 이루는 길이 점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 바꿔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소생․장성․완성의 세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바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에서와 야곱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이 형제가 되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쌍태로서 복중에서부터 싸웠던 것입니다. 복중에 두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지배하려면 어렵습니다. 복중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싸웠지만 태어나기는 에서가 먼저 태어났으므로 에서는 가인편, 즉 사탄편이 되고 야곱은 하늘편이 된 것입니다. 
이 하늘편과 사탄의 싸움은 형제끼리의 싸움이 복중의 싸움으로까지 연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기기 위해 복중에서 시작된 싸움은 태어나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야곱이 팥죽을 가지고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몽땅 빼앗은 조건을 성립시켰습니다. 간교하게 형님을 속여서 장자권을 야곱이 빼앗았습니다. 그것은 빼앗은 것이 아니라 에서가 조건에 걸려서 약속대로 한 것뿐입니다. 형님인 에서가 조건에 딱 걸린 것입니다. 거기서 야곱이 약속대로 한 것은 천지 공약을 수행한 것입니다. 원칙대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굶주린 가운데 팥죽과 떡에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는 가인이 아벨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21년 노정을 거치며 사명을 다 했습니다. 결국은 쌍둥이 형제의 싸움에서 야곱이 이긴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가인과 아벨이 외적으로 바꿔지게 된 것입니다. (25-187, 69.10.4)
  
  
복중복귀와 다말의 공로
  
그러나 외적으로는 바꿔쳤는데 내적으로는 바꿔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외적으로 바꿔친 권내에 선 국민이 이스라엘 선민이요, 그 국가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사탄은 내외 안팎으로 바꿔쳤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외적으로만 바꿔쳤으니 아직도 내적 기준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내적인 기준이 바꿔지지 않았기에 안팎으로 완전히 사탄을 막아 놓고 출발할 수 있는 완전한 이스라엘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야곱 때에 외적인 이스라엘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애급 나라가 세워진 때입니다. 
애급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사실은 어느 때부터 가느냐?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의 아들이 아내를 맞았는데 죽게 됩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의 계대를 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법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역사의 섭리적 내용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담당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동생이 형의 계대를 이어야 했지만 그 동생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이 가만히 보니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죽었고, 셋째 아들은 나이가 어려 가망이 없었습니다. 다말의 생각은 축복받은 이스라엘, 즉 야곱의 계대가 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데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어떠한 규범이나 윤리보다도 하나님의 혈통을 잇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창녀의 옷차림을 하고 시아버지가 가는 길가에 서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어서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그리하여 창녀의 자식과도 같은 이들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유다 지파로 이어지게 된 것은 다말의 공로 때문입니다. 거기서 사위기대를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말의 쌍태 베레스와 세라도 복중에서 싸웠습니다. 세라의 손이 먼저 잠깐 나왔으나 동생인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세라의 손과 같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주의가 공산주의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공산주의를 밀치고 세계를 제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를 넘어뜨리기 위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인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근원이 잘못되었으니, 즉 뿌리가 잘못 심어졌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형님으로 태어나서 전부를 주관했어야 할 하늘편이 동생으로 태어나 처량한 운명이 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것을 교체해야 됩니다. 교체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복중에서부터 싸워서 교체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 이후에는 어느 섭리요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때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복중에서 굴복당한 사탄은 참소조건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탄이 참소조건을 갖는 날에는 파탄됩니다. (25-189, 69.10.4)
  
  
훌륭한 마리아의 신앙심
  
그렇게 해서 다말은 씨족을 복귀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레스가 승리의 간판을 들고 이 땅 위에 탄생함으로써 혈통을 복귀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는 승리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권은 세계적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판도가 안 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주님이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공고한 기반을 갖춘 후에 예수님이 강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마리아에게는 아무런 전통도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다 지파의 여성, 이스라엘 민족의 여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할 것을 얘기할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누가복음 1장 34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다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건 혁명입니다. 당시의 여자에게 있어서 새로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전부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마리아만은 거기에서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악의 후손이 번식된 이 땅 위에서 악의 모든 인륜도덕을 저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자로서의 전부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위해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단 하나의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 이래 하나님의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지상의 여성으로 마리아를 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아버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아버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못 찾았다면 예수님이 영계에 가서 얼굴을 들겠습니까, 못 들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아버지를 찾아줘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도 영계에 있다면 예수님이 그 아버지에게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볼 때, 예수님의 부모가 좋다는 행동을 해서 예수님을 낳았습니까, 나쁘다는 행동을 해서 낳았습니까? 결혼식을 한 후에 예수님을 낳았습니까? 또 예수님의 아버지는 총각이었습니까,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가정을 가진 남자였습니까, 독신이었습니까? 이런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다 알게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아버지는 총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의 계대를 복귀하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다말이 어떻게 해서 베레스를 낳았습니까? 시아버지 품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은 시아버지 품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진짜 이단 괴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사랑의 역사 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멋지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면에서 다말과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밀히 얘기하면 예수님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예수님의 아버지를 직접 가르쳐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 중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잘 믿고 몇 고비만 더 넘어가면 다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교회를 다니면 천당에 가서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역사를 모르고 영계에 가서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잘 알아야 됩니다. (25-191, 69.10.4)
  
  
하늘편 왕자로 태어나신 예수님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고,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지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세 시간 이내에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떠했습니까? 그녀는 수많은 여성 가운데 사랑의 혁명의 기치를 들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늘 뜻을 위해서 제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거리에서 돌멩이로 맞아 죽는 처량한 운명이 되더라도 당당히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셨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하더라도 하늘을 위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괜히 마리아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공연 히 식은 밥 먹고 더운 수작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만큼 얘기했으면 많이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혈통적인 죄를 청산한 기반 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시집간 다말이 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말을 통해 복귀의 길이 완결지어졌습니까, 안 지어졌습니까? 안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처녀인 마리아에 이르러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중 다말은 타락한 해와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한 해와의 상징입니다. 다말은 타락한 인류의 어머니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해야 할 본연의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두고 안팎으로 딱 들어맞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천민(天民)이 못 되었습니다. 선민(選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가지고 비로소 제일 천민의 대표자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입니다. 4천년 만에 비로소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싸움의 역정을 거쳐 사탄이 안팎으로 참소할 수 없는 순수한 자리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천사가 동기가 되어 타락하였으니 반대로 하늘편 천사인 가브리엘 천사가 동기가 되고, 천륜을 배반한 해와가 아니라 천륜을 세우는 데 협조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탄생한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 이 땅 위의 여자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늘편 여자를 통해 낳은 남자가 예수님입니다. 모자협조라는 것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역사상에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혈통적인 면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마리아가 혈통적으로 계대를 이어 가지고 비로소 천주적인 심정을 대표하여 천륜 앞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기반을 결정짓고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에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왕자로서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성경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25-193, 69.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