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립섭리와 장자복귀섭리역사 (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 역사편 - 제 2장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철장왕 | 20180917064519

제 2장 예수님의 탄생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1.분립섭리와 장자복귀섭리역사 

    
타락의 결과와 가인 아벨을 중심한 분립섭리 
  
우리는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만약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죄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사탄의 자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에게만 주관(主管)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주관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사탄과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탄이 인간세계의 주관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탄이 타락한 세계에 대하여 그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본래의 주인이므로, 결국 하나님과 사탄은 함께 인간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담을 둘로 갈라서 하나님편과 사탄편으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리적 관점에서 인간을 내적 존재로서의 하나님과 외적 존재로서의 피조물(被造物)로 분립하는 역사(役事)를 하였습니다. 즉 타락한 아담과 해와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을 통하여 분립한 것입니다. 
장자인 가인을 천사장의 입장에 세우고, 차자인 아벨을 타락 전의 죄 없는 아담의 입장에 세운 것입니다. 
장자인 가인은 해와가 비원리적 상대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은 첫째 번 타락의 표시체입니다. 해와와 천사장과의 관계는 비원리적인 관계입니다. 해와와 아담과의 관계는 원리적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번 타락의 표시체인 아벨을 하나님편에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차자인 아벨은 아담과 해와 사이에 맺어진 둘째 번 타락의 표시체입니다. 
본래의 명령 계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담, 천사장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아벨에게로, 아벨로부터 가인에게로 명령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공식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 위치를 복귀함으로써 잃어버린 원리를 되찾으려 하였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류의 혈통이 바뀌었습니다. 사탄의 피가 인류의 혈통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복귀는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차자인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장자권(長子權)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원점이 되는 곳인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 또한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곳이 악의 원점이 되고 출발점이 되었으므로, 복귀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 두 형제에 의하여 장자권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엿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며, 아벨은 가인의 위치, 즉 장남의 위치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행위는 아담과 해와 때의 타락행위를 반복한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복귀된 입장은커녕 다시 천사가 아담을 주관한 입장이 되고 만 것입니다. (55-109, 72.4.1) 
  
  
분립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 
  
아들딸의 소유권을 사탄에게 빼앗기게 된 하나님은 어디에서 어떤 방법을 통해 아들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냥은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분립역사(分立役事)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과의 소유권 결정을 위한 분립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제물(祭物)의 역사입니다. 사탄과 인간의 혈연관계로 소유권을 사탄이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이 소유권을 빼앗아오기 위해 조건물로 제시한 것이 제물입니다. 이것이 창조본연의 아들딸을 찾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연이었고, 하나님은 이제까지 그러한 섭리를 전개해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타락행위로 제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인데, 비록 타락으로 인해서 아담 해와가 사탄의 소유가 되었지만, 원리적인 입장에서 본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이 소유하게 된 아담 해와지만 하나님은 창조주(創造主)의 자격으로서 그들을 소유할 수 있는 부모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탄도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주인 것을 알기 때문에 전적으로 자기의 것이라고만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첫째 아들은 사탄편에 세우는 대신 둘째 아들을 하나님편으로 세워 놓고, 인간 스스로 조건물을 세움으로써 소유권을 결정짓게 하는 분립의 역사, 곧 제물의 역사를 펼쳐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째 아들인 가인을 사탄편으로, 둘째인 아벨은 하나님편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이는 해와의 타락 경로에 의하여 비원리적 상대(非原理的相對)였던 천사장과 원리적 상대였던 아담과의 관계를 구분하는 것으로, 가인은 비원리적인 사랑의 표시체이므로 사탄편에, 아벨은 원리적인 사랑의 표시체이므로 하늘편에 세우고 분립의 섭리를 하였던 것입니다. (110-215, 80.11.18)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느냐? 오늘날의 기독교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분립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에서부터 불확실한 이론 체계를 가지고 출발한 기독교로서는 절대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립역사의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섭리내용과 일치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복귀섭리(復歸攝理)해 온 하나님의 뜻을 성사시켜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물만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던가? 
사탄에게 자식의 소유권을 빼앗겨 아들이 없는 입장에서 아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 아벨을 하나님편에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연히 아벨의 제물은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느냐?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받기는 받겠다. 그러나 너는 아벨을 통해서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을까요? 
본래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종인 천사장의 주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주인인 아담과 종인 천사장의 자리가 전도(顚倒)되고 말았습니다. 거꾸로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아담이 그 본연의 위치와 권위를 되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는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탕감복귀(蕩減復歸)란 술어가 있습니다. 본연의 위치와 상태로 복귀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조건을 세워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탕감(蕩減)이라고 하며, 이처럼 타락한 인간이 탕감조건을 세워서 창조본연의 위치와 상태, 곧 타락하기 전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탕감복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본래 주인이던 아담이 종인 천사장의 종의 자리로 떨어진 것이 타락이었으니, 타락하기 전의 본래 상태와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뜻맞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천사장편에 세웠던 가인이 하나님편에 세웠던 아벨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했던 것이 당시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통해서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시에 가인이 정말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뜻맞게 제물을 드렸다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다시 연장되지 않아도 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비참한 역사가 확대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중심삼고 제물을 드려, 3대(三代) 이내로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나갔더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당시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110-217, 80.11.18) 
  
  
장자의 권위를 회복해야 했던 아벨의 입장 
  
아담 해와가 타락하였기 때문에 부모인 그들 스스로가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하나되어 부모인 아담과 해와를 구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했던 것인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자식들인 장자와 차자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첫째 조건이었습니다.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느냐? 해와의 타락경로에 의해서 볼 때 가인은 비원리적 사랑의 표시체요 아벨은 원리적 사랑의 표시체이므로, 태어날 때부터 장자인 가인은 사탄편이고 차자인 아벨은 하늘편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는 장자가 차자를 주관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서 장자가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가인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벨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주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편에 서 있는 장자를 하늘편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차자를 세워서 장자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 하나된 것을 기반으로 부모인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섭리에서 메시아사상이 발원(發源)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그러한 분립역사를 기본으로 해서 전개되어 나왔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말할 수 없는 곡절과 사연이 뒤엉킨 한(恨)의 길이 되었고, 기독교가 걸어온 길도 애달픈 곡절의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장자의 기업(基業)을 차자가 강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본래의 장자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자리가 성립되지 않고서는 하늘길로 갈 수 없고, 복귀섭리를 완성할 수 없다는 하늘의 숨겨진 비밀을 아직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 가정을 복귀시키기 위해서 하나님편인 아벨을 통해 사탄편인 가인을 자연굴복시켜 사탄에게 빼앗긴 장자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천적인 복귀역사가 연장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아 가정에서는 셈과 함, 이삭 가정에서는 에서와 야곱을 통한 분립역사를 펴 나오게 되었습니다. (110-218, 80.11.18)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야곱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대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펴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 중에서 차자인 이삭이 하나님편에 서게 됩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삭을 중심삼고 분립역사가 전개되는데, 이삭의 부인인 리브가는 해와가 남편과 하늘을 속였던 것처럼 남편인 이삭과 장자인 에서를 속이고 야곱의 편을 들게 됩니다. 리브가가 남편과 에서를 속이고 야곱을 도와주게 된 이 섭리적인 사연 역시 기독교 역사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왜 리브가가 그런 일을 행했을까요? 하나님의 계대(繼代)를 사탄으로부터 빼앗아오기 위해서였습니다. 섭리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한(恨)을 해원성사시켜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계대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대(基臺)를 닦도록 택함받은 자리가 바로 리브가의 자리였습니다. 리브가는 그런 자기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편의 야곱이 사탄편인 에서를 자연굴복시킴으로써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장자로서의 계대를 이어받게 해야 하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알았던 리브가였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배가 고파 돌아왔을 때, 야곱은 형에게 팥죽과 떡을 주면서 장자의 기업(基業)을 인수받게 됩니다.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전통을 이어받고 그것을 천추만대에 상속시켜줘야 할 자리가 바로 장자의 위치요 장자의 기업이었습니다. 그러한 장자의 자리를 에서는 배고프다고 동생에게 팔아먹었지만 야곱은 형과는 달리 장자의 기업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잘 알았고,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 가정의 혈통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생명까지도 내걸어놓고 형으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야곱이 사냥하러 갔다가 돌아온 형에게 팥죽과 떡을 주고는 그 조건으로 장자의 기업을 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내가 형님이 되었다'라는 입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차자의 자리에서 장자의 자리로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타락한 세계를 복귀시킬 수 없다는 필연적인 하늘의 섭리의 요구에 의해서 야곱은 지혜롭게 형 에서를 자연굴복시켰고, 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속여 타락했던 해와의 입장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리브가도 남편과 아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야곱과 리브가의 편을 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왜 형과 아버지를 속인 야곱을 편들고 사랑하고 그를 축복해주었는지 그 까닭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누구도 풀 수 없었던 미지(未知)의 내용을 만든 기반을 통해서 기독교의 이상완성(理想完成)을 추구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였습니다. (110-219, 80.11.18) 
  
  
하나님의 대를 이은 야곱의 21년노정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나서 하나님의 대(代)를 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나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야곱 스스로가 그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을 때, 야곱은 고향을 떠나 하란 땅으로 피신해 가지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1년간 수난의 종살이를 하면서 고역을 치르게 됩니다. 야곱은 21년간의 고난을 극복하면서 축복받은 족속을 편성하게 됩니다. 야곱은 레아를 취하고, 라헬을 취하고, 재물을 취할 때까지 그 모진 수난을 당하면서도 본향 땅을 하나님의 것으로 복귀시키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은 결코 변치 않고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 하는 형님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면서 에서 이상으로 자신의 실력을 길렀고, 기반을 닦기에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왔을 때 야곱은 형 에서에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내게는 여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재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단지 내게 필요한 것은 형님이 나를 환영하여 옛날 장자의 기업을 축복으로써 팔았던 사실을 공인해주는 것뿐이다' 하는 것이 야곱의 기도였고, 야곱의 입장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야곱은 모든 재물을 바치고, 또 에서가 그런 야곱을 환영함으로써 결국 야곱을 중심삼고 형 에서도 축복받은 이스라엘 선민권(選民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이렇게 해서 다시 대를 이을 수 있었고, 복귀의 한 때, 영원한 해원과 해방의 한 날을 소망하며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0-220, 80.11.18) 
  
  
베레스와 세라를 통한 복중 장자복귀섭리 
  
야곱의 아들 유다는 엘, 오난, 셀라 등 3형제를 두었습니다. 유다의 큰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했습니다. 다말이 큰아들에게 시집을 갔는데, 큰아들이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다말은 둘째 아들인 오난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 둘째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유다 가정은 대(代)가 끊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에 걸쳐 하나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축복의 섭리가 유다 때에 와서 무위로 돌아가게 될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농사터에 가는 유다를 창녀의 모양을 해 가지고 유혹해 관계를 맺고 아기를 낳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유다의 하나님으로까지 하나님의 축복의 대를 잇는 것이 다말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초월하는 입장에서 생사화복(生死禍福)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축복의 대를 잇기 위한 모험을 할 수 있었던 다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쌍둥이를 뱄습니다. 이들을 낳을 때 먼저 손 하나가 나오므로 산파가 '이 아이가 먼저 나온 놈이니 형이니라' 하고 붉은 실(紅絲)을 손에 매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손을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새 그의 아우가 나오자 '이 밀치고 나온 놈!' 하고 말하였고, 그래서 그의 이름을 베레스라고 짓게 되었고, 뒤따라 손에 붉은 실을 맨 형이 나오자 그의 이름을 세라라고 지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장자인 세라를 제쳐 두고 차자인 베레스를 먼저 출생시키는 섭리를 하였겠느냐? 리브가가 복중에서 형제가 싸우기에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여, 이 두 애가 복중에서 싸우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대답하길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음이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말의 복중에서도 두 형제가 싸웠습니다. 다말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한 말씀처럼 '네 복중에 두 나라가 있음이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섭리적인 내용을 통해서 복중에서부터 장자의 기업을 차자가 빼앗아 나오는 역사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무슨 곡절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냐?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풀지 못한 역사의 비밀이었습니다. (110-222, 80.11.18) 
  
  
하나님은 왜 복중섭리를 해야 했는가 
  
야곱이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섭리역사는 야곱의 나이 30, 40대의 장년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 복중시절(腹中時節)부터 분립역사(分立役事)를 통해 장자(長子)의 기업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탄의 피가 인간의 핏줄 속에 남아 있다는 조건이 되어 사탄이 참소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복중에 있을 때부터 분립역사를 해 나왔던 것입니다.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복중에서부터 하나님편과 사탄편의 두 세계로 갈라졌던 것이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는 혈통을 통해서 당신의 축복의 계대를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복중에서부터 두 세계의 통일적 기반을 닦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복귀섭리에 있어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섭리를 전개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나라에서는 과부가 아기를 가졌거나 음행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돌에 맞아 죽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다말은 하나님의 한 맺힌 장자의 기업을 복귀시켜드려야 하는 것이 자기의 처지임을 잘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지 않으면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말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면 어떤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여, 당신의 축복권(祝福圈)을 흠모하고 또 당신의 축복의 대를 잇기 위해서 제가 이러는 것이오니, 하나님이여! 용서하십시오. 제가 비록 천만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만 이 불륜의 소행을 터로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기반이 유다가(家)에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저는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하는 기도를 다말은 틀림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절실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다말은 생사를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한 맺힌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그 죽음의 상황까지도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다말의 뜻 대한 충절은 실로 놀라운 것이지만,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만이 섭리역사를 펴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정이었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다말에게 축복을 해주게 되었고, 유다지파의 출발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다말의 혈통을 통해서 비로소 복중에서부터 가인과 아벨이 실패한 노정을 탕감하고, 오랫동안 고대해 온 승리적 기반을 이 땅 위에 다질 수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원하고 예정하였던 본래의 장자권(長子權)을 이 땅 위에서 전환시킴으로써 다말의 혈통에서 만왕의 왕 예수님이 출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 편성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했더라면 예수님이 비록 복중에서 태어나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복중에서부터 승리했다는 승리적 조건을 세워 놓지 못하고는 예수님은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말의 복중에서부터 장자와 차자의 관념을 모두 통합하고 하나님의 장자 차자의 권위를 되찾은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의 출현이 이뤄질 수 있었으며, 또 그런 승리적 기반을 이룬 다말의 혈통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0-221, 80.11.18) 
  
  
메시아는 언제 오실 수 있나 
  
여러분은 혹시 그런 터전 위에서라면 즉각적으로 메시아가 오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세계는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이스라엘은 종족편성권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탄세계는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종족권인 이스라엘이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천년 역사를 연장시켜 가면서, '빨리 크고 자라라' 하는 축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축복을 바탕으로 해서 이스라엘은 국가 편성을 바라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연장돼 온 역사가 2천년이었고, 그 역사 속에 유대교를 중심삼은 이스라엘 국가 형성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메시아는 어떤 분이냐? 메시아는 하나님의 첫아들로 태어나는 분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기독교인은 그런 내용도 모르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독생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첫 번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타락으로 더럽혀진 핏줄을 맑힌 이후에 비로소 독생자의 권위를 갖추어 가지고 오시는 분이며, 사탄이 더럽혀 놓은 것을 탕감조건을 세워 탕감하고 완전히 해방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으니, 이러한 입장에서 독생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기독교 역사 2천년 가운데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근본 문제를 명료하게 해결하는 데서부터 기독교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인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을 바로 알 때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기독교가 인류 앞에 모든 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망적인 종교로 나타나려면 우선 기독교의 근본원칙에서부터 바른 해결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전통입니다. 
메시아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만큼 사탄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피를 맑히는 탕감조건을 통해서만 비로소 사탄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독생자로서 이 땅 위에 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당시의 이스라엘에 올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이스라엘이 민족 편성을 거친 이후에라야 메시아가 올 수 있었습니다. 곧 국가를 대표해서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아벨권(圈)인 동시에 하나님의 장자권(長子權)을 가지고 오신 분이 메시아였습니다. (110-223, 8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