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모복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창조와 타락
천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엿새 동안 지은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 하나를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의 대상으로 세우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 한 사람이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하고, 행복을 노래하는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서 함께 살기를 하나님이 얼마나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창조해 놓고 기뻐했지만, 타락한 연고로 애절한 심정과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하나의 승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그때를 소망해 나왔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해 지어 놓은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좋거니와, 만물을 주관할 아담 해와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더 좋아한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소망과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였고, 만유세계에 있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될 중심존재인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픈 날이 있어서도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나 한 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명사가 붙었고, 이로 인해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하나님이 소망하던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흑암의 권세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원통하고 비통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인류가 슬픔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나, 인류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나오던 하나님이 이들로 인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슬퍼하는 자리에 떨어짐으로써 하나님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늘땅에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일이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사건이 인간 타락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하나님의 전체 소망을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모든 것을 완비하고 완성된 자리에서, 전부 다 깨달은 자리에서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이념, 즉 하나님의 창조위업은 완성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전체 내용을 다 상속받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던 성장과정에서 타락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아담 해와가 성인이 되어 모든 천지이치를 다 알고, 하나님의 심정과 창조위업을 모두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춘 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타락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바라고 나아가던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만일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하였다면 우리가 완성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가서도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때는 미완성 단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념 속에서 살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성된 세계가 오늘날까지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세계요, 이것으로 인해 이 세계가 악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바랐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슬픔도 크게 되고, 그 하나님의 소망이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내적인 고충이 크게 초래되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이 슬프신 분인 줄을 몰랐고, 인간 지음을 탄식한 하나님인 줄을 절실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천지를 지은 창조주가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을 몰랐습니다. (15-321, 65.12.7)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천국은 누구를 위해 지은 것이냐? 천국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천국이념을 세웠으나 인간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천국이념은 이념대로 남아졌고, 천국은 내용이 없는 천국, 즉 천국이라는 명사만 남게 되어 하나님은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까지 비어 있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 인해 이 땅이 사탄권내로 들어감으로써, 사탄권세는 천국 문까지 밀어제치고 하나님의 보좌 단상까지 휩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본연의 소망을 어떻게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복귀의 한 날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나온 하나님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물에 빠지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요, 병이 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이 나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구주가 된 후에는 형님도 될 수 있고, 오빠도 될 수 있고, 우리의 그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상하는 본연의 세계가 되었다면 구주로서의 예수님이 필요가 없을 것인데, 아직도 이 땅이 죄악에 빠져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주로서가 아니라, 형이요 오빠로서 환영받을 수 있는 세계가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우고자 하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냐? 타락 전 본연의 세계요, 하나님이 이상 가운데서 추구하고 그리시던 세계, 완성의 뜻을 이루어 천하를 그 품에 품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독생자요 공주로 태어났던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져 나갔으니, 다시 이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하늘땅이 내 것이다' 하면서 다시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본연의 욕망입니다. 그 얼마나 근사합니까?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의 천국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인류에게 소망의 천국을 찾아주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수고해 나왔으며, 인류는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면서 소망의 천국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중에 사모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두 죽은 자식이 되어 버렸고, 사탄의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 인간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랑하며 붙들고 살 혈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를 복귀하기 위하여 섭리해 나왔습니다.
복귀하는 데는 어디까지 복귀해야 되느냐? 직계 아들딸의 자리까지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종의 종의 자리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종의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이 있으나 종의 종은 주인이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사탄세계에서 종의 종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해 있는 종의 종을 빼앗아다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하늘편 종의 종으로 만들어서 복귀하는 것입니다. (15-323, 65.12.7)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한 섭리역사
하나님이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은 누구 때문이냐? 본래 하나님은 참된 인류의 조상을 중심으로 승리적 주관권을 가지고 천지를 주관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주관의 위치를 잃은 것은 누구 때문이냐? 아담 해와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 해와 때문에 일이 이렇게 저끄러진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참된 인류의 조상,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참부모의 혈족으로 우리 인류는 태어나야 했습니다. 역사의 출발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 그 참부모는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로서, 인류 앞에는 승리적인 영원한 실체로서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승리적인 실체로서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슬픈 역사를 이루어 나온 원한의 터전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늘의 법도를 떠났고, 자기의 실체를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한 우리 인간은 말씀에 따라서 실체를 찾고, 심정의 세계를 찾는 복귀의 노정을 더듬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만물보다도 더 악한 자리에 서게 되었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할 수 없는 슬픈 입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스스로는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일깨워 재창조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치고, 아들의 자리를 거치게 해서 승리적인 주관권을 갖추게 하여 참부모의 자리까지 복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소생시대요, 신약시대는 장성시대요, 성약시대는 완성시대인데,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였습니다. 이 양자의 시대를 거쳐서 실체 자녀의 시대를 완결짓고 나서야 부모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이러한 복귀역사 노정을 두고 볼 때,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실체 자녀의 시대로서 승리적인 기준을 세운 다음에,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종이 되어, 여기서부터는 종의 세계이니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고 하는 승리의 팻말을 꽂고 종으로서의 전체적인 조건을 세운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또 종의 승리적인 터전을 상속받아 하늘편 전체의 종을 통할하고, 하나님 앞에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양자가 되어 하나님이 찾고 하나님이 바라는 양자로서의 승리적인 결정권을 세운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 하나를 놓고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워 놓으면 번번이 사탄이 침범하여 망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뒤넘이치는 이 역사가 6천년이나 흘러왔지만 어느 한 때 종으로서 사탄을 쳐부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고, 어느 한 때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을 쳐부수고 하나님의 권한을 세울 수 있는 양자를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스런 복귀역사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하나님이 직접 책임지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사명자를 세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갈라 세워 역사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한 기반 위에 한 사람을 불러 세워서 명령을 실천하게끔 역사하였는데도 명령을 받은 사람이 번번이 실패한 연고로 수많은 사람을 동원시켜서 연이어 나갈 수 있는 후보자를 세워 나왔습니다.
종의 역사, 양자의 역사, 자녀의 역사, 부모의 역사, 이러한 종적인 역사가 오늘날 횡적으로 세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종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양자의 도리를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 하면 '내 아들딸아!'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책임은 어떠한 것인가? 통일교회는 종의 시대를 지나고, 양자의 시대를 지나고, 자녀의 시대를 지나서 부모의 시대로 넘어가는 때에 처해 있습니다. 승리적인 주관자는 개체로서만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패의 원인이 개체인 아담 해와로부터 가인과 아벨, 셋의 세 아들에까지 미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가정을 중심으로 시작한 복귀의 노정은 노아 가정을 거치고, 아브라함․이삭․야곱을 거치고, 모세를 거치고,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에 이어 세례 요한, 예수님 때에 와서 세계를 중심삼고 완결지으려 했으나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제1차적인 이스라엘의 섭리노정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재차 이것을 탕감복귀해 나왔던 것입니다. (14-239, 65.1.1)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
구약시대는 무슨 시대였느냐? 종의 시대였습니다.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종의 자리로 복귀시켜 나온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도 종이었지 아들은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종을 세워 충성의 도리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세계인류를 끌어다가 규합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악한 무대를 하늘편으로 점령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종의 입장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시키고, 종의 위치에서 양자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섭리해 온 것입니다. (15-325, 65.12.7)
복귀섭리를 하는 하나님은 대번에 하늘땅을 복귀해낼 수 없기 때문에 개인부터 복귀해 나왔습니다. 하나의 개인을 찾아 세우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 야곱을 택하여 종의 종의 시대에서 종의 시대로 옮겨놓기 위한 역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었던 야곱 이전의 시대를 청산하고 종의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해 역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의 종의 시대를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분부한 명령에 순종하여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야 종 된 개인으로부터 종 된 가정, 종 된 민족으로 거쳐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 4천년의 역사는 무엇을 하기 위한 역사였느냐? 종의 개인으로부터 종의 가정으로 넓힌 후 종의 민족을 건설하여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투쟁을 했던 역사였습니다. 그러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종의 시대를 복귀하기 위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 야곱은 개인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쳐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어머니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는 것을 안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그 후 야곱 가정은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적인 싸움터로 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운명에 놓여 있었던 연고로 야곱의 70식구는 애급 땅을 찾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13-177, 64.3.15)
신약시대는 양자로 복귀하는 시대
신약시대는 종을 양자로 복귀하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을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양자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혈통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양자의 자리에 세운 다음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와서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듯이 접을 붙여서, 양자의 인연을 해방시켜 직계 자녀의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소망이었습니다.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로, 양자에서 직계 아들로 복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동시에 천상천국을 완성시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심정적인 발판을 세우고 그것을 천상에까지 닦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본래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지상천국의 이념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다 가르쳐주지 못하고, 영적 구원만을 성사시킴으로써 예수님은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독생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뜻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2천년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소원의 한 날을 찾아왔고, 지상에서부터 천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상의 행로를 개척해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낙원에 갔습니다. 낙원은 어떤 곳이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대합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이 왜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를 하느냐? 그것은 책임완수를 못 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만민의 참부모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만민에 대해서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재림을 해야 됩니다. 천상재림이 아닌 지상재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오셨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입장에 세워 가지고, 양자의 자리와 직계 자녀의 자리를 찾아 세워 예수님과 하나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여, '이제 너희가 낳은 아들딸들은 타락한 세계와 상관없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세우려 했으나 그것을 못 하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본연의 아담 해와,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의 모든 소망을 걸고 지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할 존재로 누구를 보냈느냐? 예수님입니다. 본연의 아담을 대신할 후아담격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타락과 상관없이 복귀된 아담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이고, 재림주님은 3차 아담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오셔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이루고 천상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노정에서 섭리해 나온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찾아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악한 후손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고 타락 이전의 자리로 올라가기를 소망하며 내일을 희망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고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15-325, 65.12.7)
구주란 참부모로서의 구주가 되어야
하나님은 4천년간의 수고를 통해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소망의 아담 형인 예수님을 찾아 세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들에게 누구인가? 참된 조상입니다. 만약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다라면 그들이 인류의 참조상이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서 세우고자 하였던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천하를 호령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너나할것없이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원통한 사실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인류는 지옥으로 맹주(猛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표준을 세워 놓고, 참자녀를 품어줄 수 있는 본연의 부모를 찾아 헤매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4천년간의 복귀노정을 통해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본연의 자리를 찾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란 무엇이냐? 메시아는 어디에서부터 구주가 되어야 하느냐? 인류가 타락으로써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으니, 먼저 참부모로서의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가 무엇입니까? 본래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주려던 '너희는 선남선녀요, 천지 대주재의 직계 아들딸로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핏줄이 이 땅에 생겨나니 기쁘도다' 하며 주는 축복을 받는 것, 즉 하나님의 모든 대유업을 상속받고 성혼의 축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해서 나타나야 할 것이 타락 전의 아담 해와였는데, 이들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전부 깨지고 말았습니다. 6천년 전 이들을 중심삼고 소망의 천국을 이룩해야 할 것이 타락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인간을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를 거쳐 직계의 아들딸로 복귀시켜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늘의 승리권을 찾아 승리의 왕자로서 하나님의 성혼 축복을 받는 것이 어린양 잔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인류가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참부모를 구원완성하여 복귀시키는 날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날이 있어야 만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인간은 선한 부모 밑에서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올바른 가정이 형성되는 것이고, 올바른 가정이 생겨나야 올바른 종족․민족․국가․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과정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가졌던 소망은 아담 해와가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혈족으로서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천국세계를 이루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인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부모가 깨져 나가고, 자녀가 깨져 나가니 결국 오늘날과 같은 세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입장에서 오시느냐? 마태복음 24장에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아담은 타락을 하였고 2차 아담은 땅 위에서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3차 아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나같이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세의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러면 6천년 역사는 어떤 역사였느냐? 잃어버린 참부모, 즉 아담 해와의 완성한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5-327, 65.12.7)
구약․신약․성약시대는 참부모 복귀시대
메시아사상은 무엇인가 하면, 부모가 오시어 자기 자식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번 메시아, 재림주는 셋째 번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가 바로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잃어버린 것을 세계를 통해서 복귀해야 합니다.
구원섭리를 하는 데는 하나의 부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까지의 역사를 종적으로 보면 소생․장성․완성이 되지만, 횡적으로 보면 소생시대․장성시대․완성시대, 구약시대․신약시대․성약시대의 3대로 넓혀져 가니까 구약시대의 아담 부모, 신약시대의 예수 부모, 성약시대의 참부모가 있습니다. 그 3대(三代) 부모가 한 부모로 되지 않으면 이 3시대가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둘째 번 부모로 오셨습니다. 오셔서 세계를 구원하려 했으나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래서 세 번째로 재림주가 오시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참부모가 오시어서 40년간 재차 탕감복귀를 하여 승리의 기반을 세움으로써 장자권 복귀와 함께 예수님이 실패한 모든 것을 복귀하고 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을 복귀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에 의해서 아담 가정 복귀, 예수님 가정 복귀, 세계 각국의 장래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을 중심삼고, 조국을 중심삼고 복귀를 하는 것입니다. 그 조국은 세계적 중심국가가 됩니다.
그러니까 재림주,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세계적 부모, 국가적 부모, 종족적 부모, 가정적 부모가 세워지면 자동적으로 국가는 없어지게 됩니다. 국가를 보려고 해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없어지니까 가정적 메시아, 종족적 메시아인 축복가정이 나라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3-87, 89.8.31)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독교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 틀리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구약시대도 결국은 복귀를 위한 것인데, 아담 해와, 참부모 복귀를 위한 것입니다. 신약시대도 참부모 복귀를 위한 것이고, 성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부모 복귀라는 그 내용은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그런 개념을 가져야 됩니다. 메시아가 뭐냐 하면 곧 참부모입니다. 또 지금 우리 통일교회로 말하자면 참부모로서의 실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독교나 유대교나 통일교회나 그 내용이나 목적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이 뭐냐? 유대교는 국가적 차원에서 메시아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참부모를 맞아 가지고 세계로 확대시키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왔다 간 후에 세계적인 기반에서 메시아, 참부모를 맞기 위한 것입니다. 성약시대는 천주적 기반에서, 영계까지 참부모를 맞자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그걸 확실히 구별해야 됩니다. (131-131, 84.4.29)
성약시대란 책임분담을 완성한 부모권
구약시대는 부모복귀시대고, 신약시대는 부모복귀 연장시대입니다. 그래서 재림이라는 것은 신랑 신부가 부모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아직까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약시대는 지상에 있어서 가정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세계, 즉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는 과정입니다. 성약시대는 원리적으로 보면 책임분담을 완성한 부모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이 뭐냐 하면 책임분담입니다. 책임분담의 약속을 미완성한 것이 타락입니다. 구약은 옛날 약속입니다.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고, 성약은 약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루는 것은 세계 만민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의 책임분담이 남아진 것입니다. 책임분담을 못 함으로써 사탄이 생겨났으니 이 책임분담을 다 해야 됩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한꺼번에 책임분담을 다하게 돼 있는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이 생겨났으니 참부모는 타락한 이 후손들 앞에 세계적인 기준에서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탕감기준을 세워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분담권을 세움으로써 한꺼번에 탕감기준을 세워 가지고 간접주관권내에서 직접주관권내로 비약해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것이 참부모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참부모하고 같이 살아야 됩니다. 참부모는 할아버지 입장이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입장이고, 자기들은 장자의 입장입니다. 3대에 걸쳐 같이 산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고, 참부모가 나와 같이하고, 자기 부모가 같이하는 걸 느끼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죽었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131-97, 84.4.16)
성약시대는 부모님이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때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주의 주인공으로 계시고, 만국의 대왕으로 계시고, 모든 것의 주인공 자리에 계시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 모든 전부가 인간과 더불어 사탄세계로 갔습니다. 만물은 인간을 위해 지어졌고 만물의 중심이 인간이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원리적 원칙에 속하였던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사탄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인간과 만물의 소유권을 누가 가졌느냐 하면 사탄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 발전과정에 있어서 무슨 쟁탈전이 벌어졌느냐 하면, 소유권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물질을 중심삼고 쟁탈전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물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지 못한다'고 한 것은 둘을 갈라놓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아, 터치하지 말라. 사탄에게 끌려간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소유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내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생리적인, 생산적인 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게 되면 반드시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소유가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남자가 여기에 개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사랑을 중심삼고 소유권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됩니다. 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쳐 가지고 아들을 찾기 위한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쳐 가지고 부모를 찾기 위한 역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성약시대에는 부모를 쳐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시대에 와서는 물질과 자녀와 가정을 찾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생님은 참부모라는 이름을 받아 세계적으로 맞고 있습니다. 참부모의 입장에서 맞으면서 잃어버린 만물과 자식과 가정과 하늘나라를 찾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들이 피를 흘려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도 피를 흘리게끔 하나님이 내놓은 것입니다. 성약시대는 어떤 때냐 하면, 부모가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때입니다. 오늘날 인간세계의 누구도 몰랐던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인류가 갖지 않은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가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부모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뭘 하자는 거냐? 잃어버린 자식과 잃어버린 만물과 잃어버린 하늘을 찾아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심정적 터전을 연결시켜 가지고,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늘나라의 소유권을 결정할 수 있는 심정적 주인의 자리에 서서, 그런 남자 그런 여자를 부모와 더불어 가인 아벨권 가정을 중심하고 하늘로 묶어 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늘 앞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벨권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없었습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아들딸이 태어남으로써 횡적인 기반 위에 가정적 축복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 자녀를 결혼해줌으로써 가정적 축복권이 형성됐습니다. 가정적 아벨권, 가정적 가인권이 횡적으로 연결되어 나갑니다. 그 기반 위에 부모님이 설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선생님의 아들딸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든지 희생시키려고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120-206, 8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