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로운 메시아와 섭리역사 (사랑이야기 - 제 5권 구원 역사편 - 제 1장 하나님의 구원섭리 역사)

철장왕 | 20180906075907

3. 새로운 메시아와 섭리역사
  

구원섭리는 아담 하나 찾기 위한 일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많은 외형적인 종교를 세워 나왔지만, 그것은 장래에 이상적인 아담 하나를, 벌려 놓은 그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 하나의 요소를 전부 다 집약해 가지고 아담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나 유교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모든 종교를 규합해 가지고 본래 하늘이 이상 하였던 타락하지 않은 한 사람의 가치를 거기서 뽑아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와 하나님이 단 하나의 타락하지 않은 그 이상적인 인간을 비교해 볼 때,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된 아담 해와와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의 가치를 비교해 보게 되면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느냐? 타락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본연의 아담의 모습이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결국 아담을 재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아담이 메시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메시아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 인류가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오고, 수난 길에 부딪히면서 극복하며 개인에서부터 가정․국가․세계까지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은 단 하나 이상 하였던 재창조의 완결을 표방한 완성된 아담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77-42, 75.3.30)
  
  
사탄이 있는 한 메시아는 와야만 된다
  
메시아라는 말은 곧 구주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류가 자기를 구해줄 수 있는 주인공을 바라게 된 것이 기쁜 사실이 아닙니다.
본래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메시아가 필요 없습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여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기를 희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또 지옥에 간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타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주가 절대 필요합니다. 이 끝날에 있어서 기독교 신자들은 주님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메시아가 와야 되느냐, 안 와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확실히 '그렇다', '안 그렇다' 하는 결정을 해놓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교파 중에는 재림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는 데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심판을 하고 택한 자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야만 되는 것은 결국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 최후의 목적은 악을 굴복시키고 인류를 타락시켜 나온 사탄 마귀를 처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지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은 사탄 마귀를 용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빼내서 구원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사람이 잘못하더라도 끝까지 용서해 가지고 구해 주기 위해서 그러한 말씀을 한 것이지,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류의 원수인 사탄을 용서해주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도 사랑의 중심 존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떻게 되어 사탄 마귀를 용서할 수 없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든지 하여튼 용서해서는 안 될 죄를 지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반대되는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어떤 유명한 한 목사는 사탄 마귀는 본래부터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를 막아 오고, 예수님 이후 2천년 동안 기독교 신자들을 천국에 가지 못하게 막아 온 이 사탄 마귀가 본래부터 있었다면 우리 인간은 구원받을 도리가 없다고 봐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섭리해 온 역사에서 아직까지도 제거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사탄을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의 힘으로 제거하고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이라면 우리는 천국에 가서도 또 사탄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탄과 싸우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싸워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어디서 왔느냐? 사탄 마귀가 없다면 예수님도 올 필요가 없는 것이요, 하나님의 복귀섭리니 구원섭리니 하는 것도 필요 없습니다. 이 모두는 사탄 때문에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있는 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계속되는 것이요, 사탄이 있는 한 구주는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탄이라는 존재는 기필코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 가운데에서 생겨났다고 봐야 됩 니다. (53-192, 72.2.21)
  
  
사탄의 정체
  
타락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장이 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병이 났다는 말입니다. 누가 타락시켰느냐? 사탄 마귀가 동기가 되어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탄 마귀의 정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사탄 마귀가 저지른 정죄의 근본을 파헤쳐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사탄 마귀를 처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범죄한 자가 자기 죄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하게 죄짓지 않은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작은 소년이라도 그 사람이 죄를 범하는 현장을 보았다면서 죄를 지적하게 되면 그 범죄자는 거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를 굴복시키려면 사탄 마귀의 정체를 파헤쳐 가지고 천상과 지상에서 추방운동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탄의 정체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의 거처(居處)는 하늘이었습니다. 지상(地上)이 아닙니다. 그 사탄을 옛 뱀이라고 했습니다.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뱀이기 때문에 옛 뱀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로 그 뱀, 즉 옛 뱀이 마귀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뱀이 사탄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뱀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알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말하는 것을 알았으니 그 뱀은 영물(靈物)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땅에 기어다니는 뱀은 아닙니다. (53-194, 72.2.21)
  
  
인간과 천사의 범죄 내용
  
그러면 옛 뱀, 즉 사탄 마귀가 우리 인류시조를 타락시켰다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문제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을 보게 되면 '간음을 행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사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탄 마귀가 범죄한 죄목은 간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탄 마귀가 인류시조를 타락시킴으로써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이 우주를 지은 주인공이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을 제쳐놓고 어떻게 사탄이 인류를 주관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임금이 됐느냐? 이것은 매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선한 하나님이 주관하는 선주권(善主權)의 세계가 아니고, 악한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惡主權)의 세계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악주권, 사탄 수하(手下)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우리 인간이 원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인류의 조상이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죄이기에 인류가 수천년 동안 그 죄를 계승받아 나와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까지 이 원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원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피의 공로로써 완전구원을 얻었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목사님, 신부님 혹은 어떤 독실한 신자가 있다면 그 아들딸은 예수를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예수님을 잘 믿는 사도 요한 같은 사람이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딸이라 하더라도 역시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우리 인간 가운데 있는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의 뿌리를 심어 놓은 타락의 기원이 무엇이기에 그리도 지독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혈통적인 문제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마귀는 간음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음을 하는 데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과 천사와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천사가 범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범죄는 혼자 할 수 없다고 했으니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해와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하는 데는 사탄을 동기로 하여 해와와 아담에게도 계통적인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그 다음 손으로 따서 입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입이나 손, 눈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얼토당토않은 부분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간음했다는 사실과 해와가 하체를 가린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공통된 내용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부끄러운 것을 깨닫고 아담한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해와는 천사와 불륜의 정조관계를 맺고 보니, 자기의 본남편이 천사가 아니고 아담인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할 자기 자신이 두려우니까 자기가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하여 아담을 유인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 둘이 관계를 맺고는 둘 다 하체를 가리고 숨었습니다. 가렸다는 사실은 결국 부끄러운 곳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없는 허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31장 33절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리었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얼굴에 무슨 흠이 있으면 가리려고 합니다. 그 흠을 가리려고 하는 것은 본성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아담 해와에게 흠이 생긴 곳은 입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눈도 아니요, 하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 성싶다고 하는 관점에서 또다시 성경을 참고해 봅시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이 불신하는 사람을 대해서 책망하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탄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그것은 뱀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요, 뱀은 사탄과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꾸며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아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사탄 마귀에 의해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탄의 피를 받은 후예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에는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이 제일 무서워하는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53-195, 72.2.21)
  
  
사탄의 피를 빼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다
  
이것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문제, 이것을 어떻게 수선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타락 인간만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수천,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도 해결을 못 보고 섭리역사를 연장시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고충을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탄의 피를 빼내지 않고는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사랑보다도 더 높은 사랑의 인연을 발견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가려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나 처자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늘의 생명과 인연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가 찾아온 이유를 간파하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니고데모는 '선생님이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유대인의 선생이면서도 그것을 모르느냐'고 면박을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결국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나오던 하나님의 뜻과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내정(內情)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성경에 보면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차자만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인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할 때, 야곱은 손을 엇갈리게 해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셉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右手)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하자 야곱은 '나도 안다'라고 단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할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구약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써'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죄지은 만큼 탕감하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찌하여 하체에서 피를 빼야 되느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체의 피를 뺐다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주체적인 사명을 다해서 뜻 앞에 섰다면 그런 범죄를 지어 사탄의 피를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인데, 아담이 잘못하여 사탄의 피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남자는 피를 빼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제물은 사람 대신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피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죄악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갈라내지 않고는 거룩하게 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은 맹세를 할 때에 환도뼈에 손을 대고 맹세합니다. 거기에는 허리를 잘못 쓰고 타락한 조상과 같은 무리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밤새껏 씨름해 가지고 축복을 받게 될 때, 천사는 그냥 축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서야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환도뼈를 잘못 써서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을 탕감하게 되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조건으로 야곱의 환도뼈를 친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 문제를 보게 될 때, 선악과 하나를 따먹은 것을 부정하고, 그 동기를 씻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한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불륜한 사랑관계로 사탄의 혈통을 받아들여 가지고 사탄의 핏줄을 이어 온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53-197, 72.2.21)
  
  
메시아가 오셔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을 그냥 버려둘 수 없기 때문에 구원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계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끌어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한테 이긴 사람,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선민권을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나은 돌감람나무 밭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밭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만들어 가지고 그 백성들 앞에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의 참감람나무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천년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했던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메시아가 어디로 올 것이냐? 이것은 인류의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을 때는 사탄과 혈연관계가 절대 없었습니다.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혈통의 인연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서 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자의 배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다 사탄의 종자입니다. 이것을 맑힌 터전을 만들지 않고는 메시아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53-199, 72.2.21)
  
  
혈통복귀섭리
  
그러면 하나님은 이 그릇된 혈통을 맑게 하기 위해 어떠한 역사를 해 나왔느냐? 문제는 타락 때문에 이런 어려운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 시조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위업을 이어받아 가지고 아들딸을 낳고,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마음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아담 해와는 실체를 쓴 외적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아 이루는 것에 대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였는데,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야 더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도 혼자 계셔 가지고는 기쁨이 없으니, 그 사랑의 실체로 만들어 놓은 것이 우리 인류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 속에 들어와 가지고 부부를 이루었다면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처음에 태어난 아들, 즉 장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둘째 번 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물이니 싸움이니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처음에 태어난 아들이 사탄의 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을 가지는 것이 본래의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사랑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설 자리를 사탄이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두 주인을 모시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사탄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 아들딸을 전부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 번 사랑은 사탄과 관계한 사랑이요, 둘째 번 사랑은 타락은 했지만 아담과 관계한 사랑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아담은 본래 하나님이 허락할 수 있는 남편이요, 사랑의 주인입니다. 아들은 사랑의 열매이므로 그 아들을 전부 사탄에게 넘겨주면 구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위업이 파탄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는 섭리를 하기 위해서 둘째 번 사랑의 열매인 둘째 아들을 하나님이 취하고, 첫째 사랑의 열매인 첫째 아들은 사탄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칙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둘째 아들로 하여금 어떻게 장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탄편을 쳤던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을 받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아벨이 피 있는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가인이 절대적으로 아벨을 통하여 일방적으로 돌아갔으면 거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천사를 지배해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가 아담 해와를 지배함으로써 거꾸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편에 있는, 하나님편에 있는 둘째 아들을 통해서 천사장편에 있는, 사탄편에 있는 가인을 굴복시킴으로써 탕감을 하자는 것입니다. 아벨이 그런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기쁘게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쁨을 돌려드리는 아벨을 대해서 가인은 자기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았다고 섭섭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벨을 사랑하고, 그 아벨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거기서 구원섭리의 발판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아벨을 원망하면서 때려죽였습니다. 결국 천사장이 아담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편 천사장의 입장에 선 가인이 하늘편 아담의 입장에 선 아벨을 때려죽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육 죄악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형의 자리에 서고, 형이 동생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입장에 있는 아벨이 앞 자리에 서고 가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아벨을 섬기게 되면 저끄러진 것을 뒤집어 가지고 바로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53-200, 72.2.21)
  
  
장자복귀섭리
  
죄악의 열매를 맺은 뿌리의 터전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바꿔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 아벨을 통하여 바꾸어 놓으려던 것을 실패했기 때문에 점점점 좁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형제의 싸움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형제의 인연을 만들어 가지고 돌이켜 놓자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랑의 씨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두 사랑의 씨가 됨으로써 갈라졌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사랑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몰아넣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때에 했느냐 하면,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시대에 했습니다. 죄악을 심은 근본 중심자는 해와요, 그 열매로 맺힌 자는 가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들의 협조를 통하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을 때, 뱃속에서 그들 형제끼리 싸웠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하늘 앞에 나아가 '하늘이여, 이 아기들이 싸우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하니, 하늘에서 가라사대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느니라. 그 중에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하늘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기업, 다시 말하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계대를 진실로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늘의 축복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데 축복을 해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알아 가지고 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도록 했습니다. 사탄이 해와와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빼앗아 갔으므로 사탄 앞에서 장자를 빼앗아 나오는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양가죽을 쓰고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이삭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자리를 허락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섭리역사가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쌍태에서 태어난 쌍둥이는 동생이나 형님이 슬퍼하거나 하면 감정이 통한다고 합니다. 야곱과 에서를 그렇게 바꿔치기는 했는데, 태어나 가지고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만일에 에서와 야곱이 40대에 바꿔쳤다고 하면 그전, 즉 복중시대에서부터 40대 전까지는 사탄권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복중에서부터 형제의 핏줄을 바꾸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유다 시대에 이뤄졌습니다.
야곱의 아들 가운데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유다의 아들 가운데에서 그 누가 축복의 계대를 이을 줄 알고 기다렸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해 가지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 36장에 나와 있습니다.
다말은 아기를 배기 위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했습니다. 사탄세계에 대해서 생명을 내던질 각오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즉 사탄세계의 생명을 받을 것을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말이 해산을 할 때, 먼저 한 아들이 나오려고 손을 내밀어서 산파가 거기에 빨간 실을 맸습니다. 여기에서 끝날에 공산주의가 출현하는 원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나오려는 형을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즉 세라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베레스가 밀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래서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심어졌던 두 갈래의 줄기를 비로소 어머니 복중에서 바꿔치기한 결정적 터전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53-202, 72.2.21)
  
  
혈통이 복귀된 터전 위에서 태어난 예수님
  
다말의 아들과 같은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은 하늘의 맑은 혈통이 예수님 때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탄세계의 나라가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하늘편에서도 국가기준을 만들 때까지는 메시아가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아가 올 것을 약속해 가지고 국가 형성의 기대(基臺)를 이룰 때까지 기다려 온 것입니다. 
마리아도 다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각오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시기는 약혼시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기에 사탄이 그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어난 예수님에게는 다말을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의 핏줄을 맑힌 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 자기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하더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탄의 핏줄을 전환시킨 깨끗한 내적 혈통의 터전 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시대에 처음 나오신 분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라고 하였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핏줄로 말미암아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를 배후에서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역사상의 그 누구도 안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종교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탄의 더러운 피를 맑혀 가지고, 혈통을 전환시켜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메트도, 그 누구도 이러한 배경을 받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 앞에 희망 중의 희망이요, 생명의 새로운 기원과 부활을 맞을 수 있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53-204, 72.2.21)
  
  
재림주는 육신 쓰고 지상으로 오신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이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그 돌감람나무 밭에 하나의 참감람나무를 심어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적으로 일시에 잘라 가지고 접을 붙여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감람나무 동산을 이루자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접붙인 돌감람나무도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접을 붙이고, 가정적으로 접을 붙이고, 종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민족적으로 접을 붙이고, 국가적으로 접을 붙여 가지고 그 중심의 자리에 서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감람나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상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신부를 택하여 지상에서 안팎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 가정적 기틀을 닦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틀을 준비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과 유대교를 세워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성경의 내용을 보게 될 때, 예수님이 그러한 입장으로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이제는 유대교인들도 믿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런 분이 절대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참감람나무로서 이 땅 위의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고 가셨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온다는 약속으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지상기반, 즉 4천년 동안 수고한 터전을 잃어버리고 기독교는 영적인 천국을 숭상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메시아가 다시 오지 않으면 우리는 참감나무를 접붙일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시는 끝날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공중으로 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사랑하는 베드로에게 천국문 열쇠를 주고 가셨습니다. 천국에 못 가게 한 것은 공중이 아니라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양자밖에 못 됩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양자가 아들을 통해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아들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양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돌감람나무 밭은 영적인 밭입니다. 이스라엘 선민과 같이 하나님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실체의 돌감람나무 밭이 지상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선민권을 이어받은 주권국가가 땅 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는 단체도 없으며, 교단이나 개인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주어서 준비하는 일을 하늘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같은 사람이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류 앞에 새로운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을 보게 되면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 올라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오시는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아를 맞지 않으면 우리는 접붙임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실 때에는 틀림없이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메시아가 지상으로 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53-206, 7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