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의 공식 섭리노정
신과 인간이 합하여 역사를 엮어 나온다
일반 사람들은 역사(歷史)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활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생활이라 하면 개인의 생활도 있겠고, 국가의 생활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지도하는 주권자의 생활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한 나라의 역사라 하면 그 역사는 주권자와 그 나라를 중심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통치권내에서 개인이 움직이는 것이 국가적 사건과 동반하게 될 때 그 나라의 역사로 남는 것이라고 일반 사람은 보고 있습니다.
신(神)이 계시다면 신이 보는 역사는 어떨 것이냐? 물론 인간들이 보는 그 역사관에 신의 섭리사가 들어갑니다. 신의 섭리사는 종교 배경을 중심삼은 역사입니다. 종교는 시대 양상에 따라 역사시대를 거쳐오는데,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시대로 발전해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갑니다.
세계의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보면 동서남북에 위치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종교권이 있는데, 역사는 반드시 종교라는 배후를 중심삼고 인류를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를 성사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책임이요, 신이 있다면 신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신과 인간이 합해서 역사를 엮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때, 일반 사람이 보는 역사관보다도 역시 종교를 배경으로 한 신의 섭리관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과 일반 주권자는 신의 섭리관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종교권내에 있는 사람들도 신의 섭리관을 확실히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근본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왜 태어났고, 어떻게 돼 가지고 이와 같은 역사시대를 거치고, 또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떠한 원칙을 통해서 방향이 설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방향이 확실하게 설정되지 않은 입장에서 역사를 따라가는 인간들은 그 결정적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인간은 그런 입장에 있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 역사관은 섭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의 문화권을 수습해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절대적인 신의 이상, 곧 신의 뜻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신의 뜻, 신이 지향하는 목적은 인류를 파탄의 와중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해방과 평화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종착점을 향해서, 통일된 세계를 향해서 역사는 움직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73-78, 88.2.7)
하나님이 이끌어 온 6천년 섭리역사
인간이 타락한 그 날부터 이 땅 위에는 고통과 슬픔과 비참이 가득 찬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계획한 본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런 세상을 원치 않았고, 인간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비참한 역사, 슬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본래 소망하였던 평화의 세계,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 선의 세계를 되찾기 위하여 이 타락한 세상을 수습해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곧 복귀의 길이요, 구원섭리의 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섭리하는 하나님은 이 땅에 대한 모든 고통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입장에서는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없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그 고통권내에 들어가 책임을 지고 대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대응의 노정 위에 하나님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에 인류의 슬픈 역사에 동반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구하는 데는 어떠한 기준에서 구할 것이냐? 전체적인 기준에서 온 세계를 한꺼번에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앞에 설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있기 때문에, 터를 닦고 택한 사람을 세워서 하나의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로 복귀의 순서를 거쳐가면서 섭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기준에서 섭리할 수 있는 환경과 시대적인 배경을 만들어 놓고, 전체적으로 구원함으로써 복귀섭리 완성의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요, 구원섭리입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에 있어서 노아시대, 혹은 아브라함․이삭․야곱시대는 어떠한 시대였는가?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은 섭리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개인과 가정의 섭리시대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과 인연맺은 전통과 심정적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전통과 가법을 세운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민족적인 절개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절개를 세우지도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시대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4백년 애급고역 기간을 통한 이스라엘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약속했던 민족 복귀의 뜻을 성취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이루려던 뜻을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서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 당대에 민족적인 복귀를 완결 짓지 못하고, 환경을 갖추지 못하여 하나님은 다시 각 시대 시대마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민족을 이끌어 나오셨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서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시대를 거친 다음 남북조 분립시대를 거치고 바빌론 포로 귀환시대 210년을 거쳐 메시아 강림 준비기간까지 민족적인 복귀의 기준을 완결 짓기 위한 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기 전까지 역사와 더불어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적 기반 위에 주권 국가를 세워 놓고, 민족 정신과 내적 사상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유대교는 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고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합하여 민족적인 복귀의 기준을 완결지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올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해야 할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민족적인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터전이 무너짐으로써 예수님은 세계적인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유대교와 일치단결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복귀섭리, 구원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민족적인 터전을 갖추어서 오시는 메시아 앞에 고스란히 바쳐드렸다면, 그리하여 예수님이 민족 전체를 지배하고 주관하는 입장에 설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복귀노정을 출발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낼 때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아의 목적과 그를 보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소원이 일치되어 메시아와 연결되었다면,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원이 성사되었을 것이요, 민족적인 소원이 성사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새 시대에 하나님이 축복한 제사장의 이념을 갖춘 선민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보낸 하나님의 소망을 알지 못하고, 메시아와 일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복귀의 터전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민족기준을 중심삼고 국가의 기반을 거친 후 오늘날 기독교를 통하여 전세계로 연결시켜 나왔습니다. 이것이 2천년 기독교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해 나온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전체적인 기준을 세워 이 천지를 하나님이 이상한 창조목적의 세계로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이끌어 나온 섭리입니다. (14-47, 64.5.3)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에 치밀한 분이기 때문에 맹목적인 섭리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원칙에 따라서 새로운 세계까지 섭리의 결과를 바라보면서 역사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무리 봐도 선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한 세계이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은 이 악한 세계를 그냥 둘 수 없어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사탄, 즉 선한 신(神)과 악한 신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그 절대자 앞에 반대되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그 반대되는 존재를 일시에 제거시켜 버리면 될 텐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만일 사탄이 본래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면 이원론(二元論)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한 하나님이 아무리 인간을 구해서 선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악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남아질 것이고, 또 악은 언제나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운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이라는 것은 옆에서 들어온 것이지, 하나님이 사탄, 즉 악을 지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원수까지도 용서하라는 분이지만, 사탄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은 사탄을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탄편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결국 구원섭리, 즉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이냐 하면, 사람에게서 사탄을 추방하기 위한 섭리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사탄주권 세계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3-26, 72.2.6)
원죄를 어떻게 뿌리뽑을 것인가
우리에게 들어 있는 원죄를 어떻게 뿌리뽑느냐? 하나님은 본래 인간에게 원죄가 있게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원죄가 옆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게 원죄를 심어 놓은 존재는 누구냐? 그 존재가 원죄를 개인에게 심고 가정에 심어 번성케 해 가지고 세계에 퍼뜨려 놓은 주인, 즉 원죄를 심어 놓은 주인이기 때문에 그가 세상의 임금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심어 놓은 원흉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느냐, 그 존재는 지상에 있었던 존재냐, 영적인 세계에 있었던 존재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2장에 '큰 용이 하늘에서 내어쫓기니 옛 뱀이요,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니, 이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결국 큰 용은 옛 뱀이고, 옛 뱀은 마귀요, 마귀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우리 인간 시조가 뱀에게 꼬임을 당해서 타락을 했다고 비사(比辭)로 말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뱀이라는 존재는 땅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했으니 하늘에 있던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뱀이 인간을 꼬였다고 한 말은 결국 사탄이 된 마귀가 인간을 꼬였다는 말이요, 그 마귀는 큰 용으로서 쫓겨난 뱀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탄은 영물(靈物)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담이 말하는 내용을 다 알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뱀은 세상에서 기어다니는 뱀이 아닙니다. 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문제가 되어 가지고 인류가 타락되었으니,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탄이 지은 죄가 어떠 어떠한 것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때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참소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살인강도도 자기가 죄를 지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어디 가서든지 당당하게 행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인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 해도 그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의 백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탄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잡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끌고 가 참소해서 감옥에 처넣든가 추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유다서 1장 6절을 보면, '간음한 천사를 흑암에 가두어 심판날까지 기다리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가 범죄한 사실과 아담 해와가 범죄한 사실이 서로 관련성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손으로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가린 데는 하체였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손이요 입인데, 왜 손과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렸느냐? 욥기에 보면 '내가 언제 아담처럼 부끄러운 곳을 가렸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가린 곳이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불신하는 자들을 대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악신인 사탄 마귀와 인간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53-27, 72.2.6)
혈통복귀가 안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다
성경을 보면 이상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둘째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빼내기 위해서 애급 민족을 칠 때에도 전부 장자를 쳤습니다.
또 성경에 할례라는 이상한 법이 나와 있습니다. 사내 아이의 양부(陽部) 끝에서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탕감하는 법이었습니다. 구약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섭리의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제물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쪼개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피를 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릇된 피가 우리 인간에게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빼내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예고한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와와 천사, 천사 중에서도 천사장과 불륜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해와는 자기와 관계맺은 천사가 자기의 남편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남편은 아담이라는 것을 알고는 철모르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강요해서 또다시 아담과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구원섭리를 그렇게 오랜 시대를 거치면서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사탄의 피가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피가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피를 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기 위해 언제나 이 몸을 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본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아들딸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아들딸의 자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자리까지 바라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던 것과 같이 창조의 위업과 창조할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인간이 아들딸을 낳게끔 지었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이 아담 속에 들어가시고 해와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도 구원의 자리에 나가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데,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 해와는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몸에 들어가서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인간인 아담 해와는 외적인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은 아담 해와의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그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서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인간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내 몸에 악이 침범하고 악이 들어올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가 되었더라면 여기가 곧 지상천국이요, 여기에서 살다가 천상천국에 갈 때는 개인․ 가정․종족․민족․국가 전체가 가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구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양자밖에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핏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인간이 이렇게 되었느냐? 사탄과 더불어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그릇된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아 돌아가더라도 양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53-29, 72.2.6)
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개관
사탄과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관계인가를 알아봅시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가정을 파탄시킨 사랑의 원수입니다. 이러한 사탄을 하나님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용서하는 날에는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전부가 파탄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이어받은 개인이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어 이렇게 혈통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사탄이 세계 만민의 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 이치입니다. 본래 주인의 아들이 되어야 할 인간이 종의 아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길러 가지고 장래에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려고 하던 것을 사탄이 가로챘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 인간의 본래 이상을 빼앗아간 원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을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신음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그 길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품에 품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의 종들을 사탄에게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종과 같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양자와 같은 자리에 세워 가지고 점점점 끌어올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종의 종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양자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리는 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양자권을 만들어 놓자는 것입니다. 그 양자권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세계에서 골라낸 하늘편의 종과 양자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돌감람나무 밭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종에서부터 종으로, 양자로 끌어올려 가지고 아들이 올 때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터 위에 메시아를 참감람나무로 보내 돌감람나무 밭과 같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에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선주권의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역사를 해 나온 개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양자밖에 못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직계 아들이 와서 접붙여주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준다고 약속하시고 2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냈지만,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님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과 이스라엘이 일체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은 유대교의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이요, 유대 나라의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53-31, 72.2.6)
하나님의 공식적인 섭리노정
아담 해와가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래는 영원히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할 자신의 아들딸이요, 자신의 혈육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기에, 악한 사탄의 피를 받고 불법의 사랑으로 더럽혀진 몸들이 되어 하나님이 같이 있을 수 없기에 쫓아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와 더불어 천사장도 쫓아낸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노정의 공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지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루려 하던 성전인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3대 요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부가 사탄편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편에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으니 문제가 컸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빼앗아가고 훔쳐갔으니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장과 같은 종을 잃어버렸으니, 그의 후손 가운데에서 천사장이 충성하지 못한 것 이상으로 충성을 하는 종을 찾겠다고 탄식하며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종을 찾은 다음에 아들딸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에 사랑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신앙하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절대적으로 믿는 무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했던 천사 이상으로 신임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탄세계에 있는 몸을 빼내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사탄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종을 가졌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종에서부터 양자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 가운데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을 저버리고, 사탄을 부모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기 위해 사탄세계로부터 빠져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를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접을 붙여줄 메시아가 와야 됩니다. 즉 원죄를 뽑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원죄가 숨어 있기 때문에 원죄를 뽑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지 않고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원죄를 뽑아줄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죄를 뽑기 위한 싸움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 가정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갈라놓고 섭리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사랑해서 아벨한테 제물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데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됩니다. 사탄이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아벨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뜻 맞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그 아벨은 타락한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그 아벨은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탄과는 영영 관계가 없는,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악한 주권내에서 해방을 받아 선주권내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가정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민족이 가야 할 전통을 세워야 되고, 나라가 가야 할 전통을 세워 대표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리에 세워진 아벨이 가인한테 맞아 죽었습니다. 아벨의 후손을 통해 하늘의 계대(繼代)를 이어 가지고 하늘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세우려 하던 하나님의 뜻이 깨져 나가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다시 1600년 동안 수고하여 노아를 찾아 세운 것입니다. (53-39, 72.2.6)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은 역사상의 선조들
여러분, 노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라면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겠습니까?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지어야 할 텐데 산꼭대기에 지으라니, 이것은 상식에 벗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타락했기 때문에 그 후손에게 반대의 명령을 했을 때 그것까지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실패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120년은 고사하고 12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면 지을 사람이 있겠어요? 상식에 벗어난 일을 하라면 하겠어요? 그렇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계속 지었습니다.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인들이 와 계시지만, 만약 여러분이 매일같이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 위해 나가는 노아의 아내가 된다면 후원하겠어요? 미국 국민 2억 중에 절반이 여자인데, 1억 가까운 여자들 가운데 120년 동안 그렇게 미친 노릇을 하고 다니는 노아를 남편으로 받들고 정성껏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의 부인이 불평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불평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만 불평하는 날에는 영영 반대라는 것입니다. 영영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동네의 아는 사람들은 '그 노아, 미친 영감!뭐 120년 후에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하며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아들딸들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야 할 길로 알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반대하며 그 길을 막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불신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기준을 세우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되었다는 기준을 세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억척같은 반대의 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를 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탄세계로부터 빨리 격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반대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반대를 받으면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의 아들딸이 노아에 대해 불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고 있는 것을 그의 아들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여 뒷걸음질해서 옷을 갖다가 덮어주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어 40일 홍수심판을 거친 노아의 위업은 깨져 버렸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되지 못한 가정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40일 동안의 홍수심판을 보았으면 자기 아버지의 명령이 얼마나 훌륭하고, 자기 아버지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알고, 그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고, 또 그 아버지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하늘같이 모셔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습관성을 가지고 아버지를 비판하여 종의 종이 되는 억울한 역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우상 장수의 아들입니다.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야! 아브라함아, 너의 집에서 나오너라' 하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말도 하지 않고, 어디 가면 잘 산다는 보장도 없이 자기가 살고 있던 고향산천인 갈대아 우르를 전부 다 버리고 떠나 국경을 넘는 집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오라면 나오는 것입니다. 나온 후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나온 것을 후회하거나 하나님을 대해서 원망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면 또다시 타락한 아담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담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무리 끌고 다니고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알과 같이 번성하리라'고 축복해 준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받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인간세계에 없는 놀음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란 땅으로 도망가서 있는 정성을 다하고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21년 동안 싸웠던 것입니다. 아무리 반대를 받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랑의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죽음 앞에 가일보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옛날에 자기가 호화롭게 살던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고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 동안 단지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택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도 자기의 사랑하는 집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가정, 세상의 인연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절대시하며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아담 해와보다 더 훌륭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 천사장 이상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기준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내몰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면, 그곳은 석청이 많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언제나 메뚜기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30년 동안 살면서 먹을 것이 없으면 마을에 가서 얻어먹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방네에 미친 녀석이라는 소문이 나서, 그가 골목을 다니면 아이들이 따라다니면서 별의별 흉을 다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던 선지자들을 정상적인 길로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리에 세워야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갖은 수난을 다 겪게 한 것입니다. (53-41, 72.2.6)
왜 메시아가 다시 와야 되는가
오늘날 기독교 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도리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라 부활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게 한,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예수님을 탄식하게 한 죽음의 형틀이지 구원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구원의 길이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하던 것과 꼭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땅 위에 주권을 갖춘 나라를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을 준비해 놓고 메시아를 고대했지만, 오늘날의 기독교는 땅 위에 어떠한 주권국가를 갖추어 놓고 그 기반 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입장에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합하여야 합니다. 내 교파니 네 교파니, 구교니 신교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악주권을 이루고 있는 사탄세계에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선주권의 터전을 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 다음에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신부가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주관하는 악주권을 이 세계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주권을 만들어 가지고 인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이 지구성에서 몰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사탄 마귀는 누구냐? 우리 인류의 참부모가 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가로채 가지고 거짓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원수요, 역사이래 우리 인류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살림살이의 터전인데도 불구하고 악한 마귀가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양자의 입장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양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목사나 신부들 가운데 '나는 예수님을 믿어 가지고 완전구원을 얻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을 잘 믿던 사도 바울이 결혼을 해서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 아들딸이 예수님을 안 믿고도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낳은 아들딸은 또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구세주 없이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메시아, 다시 말하면 재림주가 이 땅에 와야 됩니다. 양자와 같은 입장에서 아들이 되려면 돌감람나무와 같은 우리 신자들이 참감람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으려면 메시아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53-34, 72.2.6)
주님의 출발은 원죄 없는 가정에서부터
여러분은 지금 원죄를 공중에 갖고 있습니까, 몸에 갖고 있습니까? 땅 위에 있는 몸에 갖고 있습니다. 몸에 있는 원죄를 빼내기 위해서는 재림주가 구름을 타고 와서는 안 됩니다. 재림주는 지상에 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과 육이 합한 하나의 주권국가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고 이 지구성에서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인 사탄 마귀를 추방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누구나 다 원죄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종족도 없습니다. 민족도 없습니다. 국가도 없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출발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하나의 신부를 찾는 가정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영육 아울러 원죄를 벗어난 가정을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안 나오는 것이요, 세계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이루려 한 뜻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거기에 선 부모는 참된 부모가 됩니다. 또 그 가정은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입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 가정의 후손입니다. 이러한 뜻을 창세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와서 신랑신부의 이름을 세워 가지고 다시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 신랑은 누구냐? 완전한 참아버지로 오는 분입니다. 그 신부는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어머니로 등장하는 분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해 버렸으니, 그것을 다시 찾아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어린양 잔치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참된 부모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타락한 거짓부모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모델 케이스로 하나의 가정이 이 지상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나타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새로운 이상세계가 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가 출현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님이 지은 타락하지 않은 에덴이요, 이 지구성입니다. (53-36, 7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