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참된 자녀가 가야 할 길 (사랑이야기 - 제 4 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4장 참부모님과 나)

철장왕 | 20180829073005
6. 참된 자녀가 가야 할 길
     
     
인류의 최고의 소망
     
오늘날 역사가 찾아 나온 중심, 혹은 세계가 찾고 있는 중심, 현 시대가 요구하고 미래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가정입니다. 참된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요, 시대적인 소원의 중심이요, 미래적인 소원의 출발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가정은 역사적인 결실, 즉 역사적인 부활체요, 온 세계 앞에는 세계적인 중심이요, 미래 앞에는 원칙적인 출발의 기점입니다. 참된 사람과 이 참된 사람을 중심삼은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이 이루어져야 나타납니다.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가정의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이 신랑입니다. 그 다음엔 신부와 신랑이 합해져서 참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이 나와 참된 가정을 이룸으로써 무엇이 벌어지느냐? 참된 가정이 나왔으니 그 다음엔 참된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참된 부모가 나오면 참된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사람의 목적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찬양받을 수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했다는 사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인간을 악이 주관함으로써 방향을 갖추지 못하고 사망권의 세계에 참된 부모의 인연이 성립된 것은 오늘날 한국 강토를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역사 17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6천년의 역사적인 수고의 공적의 열매로서 나타났습니다. 또한 많은 인간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이 시대 앞에 갈 곳을 찾아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모델로서 나타난 것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나옴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 에덴 동산에서 출발되어야 했던 영원한 미래의 천국이 출발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이 땅 위에 현현된 참부모라는 이름은 우주의 중심을 결정하는 중심입니다.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열매 맺히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수습되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여기에서 열매 맺히기 때문에 과거가 여기에서 부활되는 것이요, 세계가 여기에서 하나의 세계로 수습되는 것이요, 하나의 세계가 기원이 되어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인류의 소망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 소망은 미래에 있었습니다. 인류는 소망을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면 인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간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두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인류 가운데에서 참된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인류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은 참된 부모를 맞는 것입니다. (44-132, 71.05.06)
     
     
참부모의 현현은 소원성사의 출발점
     
참된 부모는 인간의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현현하면 역사적 전통은 미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가 현현한 현실권내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나타나면 참부모가 나타난 거기가 역사의 완성 출발점이지 완성을 바라는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원이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소원성사가 출발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참된 부모의 전통이 나오게 되면, 참부모를 중심삼고 살던 생활권은 영원토록 역사시대에 현실적인 전통의 기준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년을 걸어가게 되면 인간이 소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천년 전의 이때를 본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은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여 나왔지만, 하나의 세계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참부모가 나오게 되면, 만민은 그 참부모의 전통을 고이고이 본받아 그 중심을 받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면 갈수록 판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전통적 역사와 소망적 역사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의 시대적 중심 역사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 가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6천년 역사는 무엇 때문에 있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무엇 때문에 허덕이고 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또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은 무엇 때문에 있느냐?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참부모의 나라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참부모의 세계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나라와 세계는 참부모가 나오면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나라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우리의 이상시대입니다. 
그때는 이미 하늘땅이 부모의 권한에 의해 치리받습니다. 그때엔 평민의 이름을 가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엮어진 그 전통은 역사적인 전통으로 억천만세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전통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사연은 영원토록 남아집니다. 또한 참부모와 더불어 인연되었던 사연과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실도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억천만세에 길이길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44-133, 71.05.06)
     
     
사탄세계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타락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서 뚝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떨어지고, 가정적으로 떨어지고, 종족적으로 떨어지고, 또한 그것이 퍼져서 민족적으로 떨어지고,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세계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떨어져 내려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왔느냐?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가정의 수가 많아져 세계가 됩니다. 결국은 전통적 가정 하나를 중심삼고 그 가정이 모델이 되어서 세계가 엉클어진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와 사망의 세계를 보면, 사망의 기원은 사탄이요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의 세계는 반대되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의 가정은 불화한 가정입니다. 불화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불화한 가정으로 시작하여 불화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하늘세계가 아닙니다. 가정이 문제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아내와 집안에서 싸우고 난 후에 남편이 직장에 가게 된다면, 그 남편은 직장에서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분풀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장이 집에서 자기 아내와 싸우고 회사에 나갔다면, 그가 사원들이나 부장들을 보게 될 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기분이 나빴던 것은 반드시 사회에 번식이 되는 것입니다.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한이 맺히는 일입니다. 이것 이상 참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아담 가정의 거짓 부모로부터 불화의 씨가 뿌려짐으로써 시작되었기 때문에, 악한 가정에 불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 가정은 사탄세계의 가정이요, 평화가 깃들어 있고 화합이 깃들어 있는 가정은 하늘세계의 가정입니다. 이렇게 반대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중심삼고 등장하느냐?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불화 덩어리 가정이 사탄세계의 중심입니다.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하면 악한 것입니다. 불화 덩어리는 뭐냐 하면 매일같이 싸움하는 것입니다. (44-135, 71.05.06)
     
     
역사적 전통과 소망의 기준이 되는 참부모 가정
     
우리는 참부모가 아닌 타락한 부모로부터 태어나서, 나면서부터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목적과 방향을 모르는 가운데 매일매일 변하는 자리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인간들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변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이랬다가 저녁에는 저랬다 할 수 없습니다.
'참부모의 가는 길이 내 길이요, 참부모가 사는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가 서 있는 자리가 내 자리요, 참부모의 세계가 내 세계다' 하는 사상을 공고히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해야 됩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가는 길에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이것을 행복한 것으로 소화하고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가서는 세계복귀니 무슨 하나의 세계니 하는 것을 꿈꿀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의 역사적 전통과 소망의 기준이 될 참부모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적인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에는 발전이 없습니다. 그 원칙이 되는 가정이 참부모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 완성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집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은 전통은 어떤 민족에게도 남아집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적 제도는 몇만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인연된 것을 버리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인연을 맺는 데는 제일 나쁜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는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어야 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이 뭡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성립되면 아들딸이 생겨납니다. 아들딸이 없어서는 사랑이 성립 안 됩니다. 또 사랑이 성립되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없어서는 사랑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자녀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결국 사랑은 자녀와 부모, 즉 부자의 관계에서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44-136, 71.05.06)
     
     
참부모의 생활기점
     
가정 중에서 최고로 승리한 가정을 소망하며 최고로 승리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입니다. 장가를 가려면 멋지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발견을 잘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이름을 지을 것이냐? 그분을 부를 수 있는 제일 적절한 이름이 무엇일 것이냐? 그 이름을 통일교회 선생님이 '참부모'라 붙였습니다. 이 말은 쉽고도 간단한 말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위대한 말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생활기점은 어디냐? 가정을 중심삼은 곳이 아닙니다. 들락날락하는 기점은 천지를 중심삼은 곳입니다. 그분이 가는 곳은 천지가 아닙니다. 그분이 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은 하나에서부터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어떤 것보다 존귀한 가치로 영원히 남습니다. 그분이 쓰던 종이조각 하나라도 역사적인 유산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종자가 달라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일대에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하여 나가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 1대에 못 가게 되면 2대, 3대, 10대를 거쳐서라도 가겠다 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천운은 사람을 통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지남철 옆에 크고 강한 쇳덩어리가 있으면 그 지남철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끌려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우리의 선조를 두고 볼 때, 대관절 선한 선조가 어떤 선조냐? 자기 자식들만 알고, 자기 마누라만 알고, 자기 남편만 알고, 자기 부모만 알고 살다 갔던 선조가 선한 선조이겠느냐? 아닙니다. 선한 선조는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그 동네를 위하고, 그 동네를 중심삼고 면을 위하고, 그 면을 중심삼고 군을 위하고, 그 군을 중심삼고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죽으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가정이 망하면 삼천만 민족의 가정이 망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천만 민족이 다 죽더라도 여러분의 가정만은 남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삼천만 민족이 겪지 않았던 어려움을 당해서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 됩니다. (27-15, 69.11.15)
     
     
참부모의 참아들딸이 가는 길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의 전통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또 참부모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손자의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이럴 수 있는 전통이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팔 하나를 잘라서 팔자고 하면 잘라서 팔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제일 좋은 것까지도 부모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참된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은 버릴 수 있고 아내는 버릴 수 있지만 부모는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부모를 따라가는 길은 남편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이요, 아내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입니다. 그것이 효의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부가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아서 아내는 '당신은 뜻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남편 역시 '당신은 뜻을 위하고 부모님을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들은 '참부모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는 참부모의 전통을 잘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가져야 이것이 앞으로 하늘나라의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눈물 흘렸던 역사가 있으면 그 눈물은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요, 후손들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입니다. 참부모의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는 우리들의 원수요, 우리 후손들의 원수가 됩니다. (44-138, 71.05.06)
     
     
참부모의 길을 따라가는 정상적인 방법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거쳐야 합니다. 참부모를 거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참부모가 나왔으면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이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프리섹스라 해서 성 개방 문제에 대해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그런 풍조가 퍼져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길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것은 보통입니다. 특히 미국 같은 나라에 가면 공원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풍조권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 세계의 사조입니다. 
음란으로 뿌렸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때입니다. 사망의 동기를 음란으로 심었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침범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것에 물들지 말아야 됩니다. 앞으로 이러한 권내의 세계를 갈라 뒤집어 놓지 않으면 통일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뭐냐? 참부모의 전통이 남아질 수 있는 역사적인 길, 하나님이 지금까지 탕감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던 길, 즉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님, 선생님시대에까지 내려오는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길을 따라가는 데 제일 필요한 방법이요, 정상적인 방법이 무엇이냐? 세상과 반대로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쁘게 살면 우리는 슬프게 사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이 기쁘게 지내면 우리는 슬프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죽이겠다고 하더라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이 죽더라도 세상 사람들같이 울어서는 안 됩니다. 다 법도를 세워야 됩니다.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최후에 가서는 나를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걸고 나왔습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몸을 이기기가 힘들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이기기가 힘듭니다. (44-140, 71.05.06)
     
     
참부모를 모심으로써 구원받는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계시느냐? 영광의 자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고통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죽어도 못 할 일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 됐습니까? 고통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이냐? 우리 인간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통의 인간이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탕감해야 합니다.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고는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탕감의 심정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눈물을 흘렸으니 우리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야야, 이젠 그만둬라' 하면서 우리를 달래 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효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인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귀의 심정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나중에는 개인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뜻 앞에 선 다음에는 무엇이 문제냐 하면 결혼이 문제입니다. 그 개인이 문제 될 때는 개인이 뜻을 따라서 가야 됩니다. '나는 죽더라도 부모의 뜻대로 가겠다' 하는 자리에서 극복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부모의 뜻을 가정이 따라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맨 마지막에 참부모 앞에 나가서 자녀가 됐다 할 때는, 참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나고, 그 다음에는 말을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밥을 먹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되고, 행동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것 외의 행동하는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참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참부모의 말과 참부모의 행동과 참부모의 가정의 가법과 생활방법을 배워야 됩니다. 그 외의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부모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부모와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를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생활도 부모를 모시고 해야 됩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참 좋습니다󰡑라고 부모에게 설명해 주는 효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이것 잡수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언제나 부모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혈육을 받아 태어난 자식이 일생 동안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이상세계로 제정하였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내가 있음은 부모 때문입니다. (44-142, 71.05.06)
     
     
모심의 생활은 정성으로 참부모와 하나되는 것
     
그러면 모심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지성을 다하는 생활입니다. 옛날에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해 정성을 들였지만 오늘날에는 실체적인 부모 앞에 효성을 해야 됩니다. 그 효성을 지성껏 하는 길이 나라를 대해서 충성을 하는 시초요, 이것이 만민을 대해서 만국을 대표한 성현들이 하던 놀음입니다. 
이 지상의 평면적인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고 효성을 한다는 것은, 나라의 충신의 도리를 이어받을 수 있고, 세계의 성인의 도리를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혹은 참부모 앞에 효자의 이름을 갖고, 효자의 공인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위대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예수님도 부러워할 것이요,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어떠한 도주도 부러워할 것입니다.이제 참부모와의 관계는 이 우주의 어떠한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고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자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해서 설명을 통해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논리가 있느냐? 힘을 가지고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 천하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도 못 하고 그 누구도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성들이며 참부모와 하나되면 그 누구도 그 관계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정성스러운 기반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를 통해 가지고 자신에게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섬으로써 비로소 우리 자체는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는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아담 해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자기의 자체 앞에 사랑이 머물고, 그럼으로써 사위기대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모심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은 원리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담과 해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이 완전히 하나되면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주체 대상 관계가 되기 때문에 제2의 주체가 됩니다. 그럼으로써 실체를 쓴 하나님의 사랑의 기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관을 중심삼고 옛날에 예수님을 믿던 이상, 도를 대해 정성들이던 이상 지성을 다해 효성의 도리를 한다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더욱 고마운 것은 옛날에는 아무리 영적으로 정성을 들여도 그 정성에 대한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주체가 못 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체 부모가 있어 그 부모에게 정성을 들이게 되면 그 부모가 영적으로도 반응해 주지만, 실체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그 부모가 아무리 처음 만났더라도 옆에 있는 걸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인 사람은 봐도 봐도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모습은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그 본성이 하늘 앞에 정성을 들이면 사랑의 주체 앞에 대상적인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 완전한 대상과 완전한 주체 사이에 하나님의 사랑이 자연적으로 우러나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하나가 됩니다. 없으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재미있는 말이 부모님의 말, 부모님이 하는 얘기입니다. 또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게 무엇이냐 하면, 아들딸들이 지금 뭘 하고 있다 하는 얘기, 자랑하는 얘기, 잘되어 간다는 얘기, 그것이 부모의 낙이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공중에서 뚝 떨어져 오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어버이와 자식간에 주고받는 생활적인 무대가 크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을 우리의 생활로 이용하고, 우리의 이상의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미, 그 재미를 백 퍼센트 누릴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해도 부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얼마나 좋으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안다구요. 또 내가 아무리 수고를 하더라도 부모의 명령을 따라 천도(天道)를 밝힐 수 있고, 만민을 해방할 수 있는 놀랍도록 가치 있는 일을 하니,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복된 것이냐? 그러니 어렵더라도 감사하고, 쉽더라도 감사하며 불평불만을 가질 수 없는 생활이 벌어지게 될 때, 그는 천국 사람입니다. 그 자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연한 자리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내 피부에 부딪혀 오고 내 정신에 부딪혀 옵니다. 그래서 감동의 폭발로써 나를 자극하는 것을 느끼면, 그는 이미 천국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되면, 벌써 척 사람을 대하면 압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하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차원 높은 직접주관권 내에 들어 온 것을 발견하리라 보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나가면 나갈수록 일이 잘되고, 영적 세계가 밝아지게 됩니다. 결국은 정성입니다. 눈을 들어 거울을 보며 '이 눈이 얼마나 부모를 보고파 눈물을 흘렸느뇨. 이 입이 부모님의 해원성사를 얼마나 외쳐 봤느뇨. 이 귀가 부모님의 기쁜 소식을 듣기를 얼마나 고대했느뇨. 이 손이 얼마나 부모님의 땅에서 피를 흘리고 일해 봤느뇨. 내 몸의 뼈가 우그러지도록 부모님이 원하는 터전 위에서 내 일신을 바쳐 일해 왔느뇨. 그걸 못한 게 한이다' 이런 마음을 느끼면서 그 길을 찾아 가는 것이 행복이요, 그 길에서 하늘과 더불어 인연을 맺는 것이 행복한 길이라고 알고 가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누가 지배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움직일 사람은 부모밖에 없고, 그 사람을 감동시킬 사람도 부모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부모밖에 없습니다. 또 부모도 그렇습니다. 부모를 행복하게 할 사람은 그 아들밖에 없습니다. 부모를 참 기쁘게 해줄 사람도 그 아들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소망이 있다면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부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그 부모의 대(代)를 대신 이어 하늘나라의 계대(繼代)를 억천만대에 상속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78-35, 75.05.01)
     
     
참부모를 중심한 생활전통을 세워야
     
북한 공산당을 보면, 김일성이 아버지라고 해서 밥을 먹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에, 옷을 입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일체의 모든 주체사상은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어야 합니다.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부모를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애기는 어떻소' 할 것이 아니라, '당신, 부모님 소식을 알아요?'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우리 애기들에게 줘야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의 아들딸들이 효도하는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가 먼저 먹고 부모님께 드려야지'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아래만 있고 위를 잘라 버리는 것이 되니, 위가 없는 아래는 없기 때문에 천도에 어긋납니다.
아들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는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대번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 부모님 앞에 우리가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생활을 해야 자식들도 '부모님께 먼저 드려야지.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하며 부모 앞에 효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입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빼놓고는 교육도 없어야 되고, 생활 터전도 없어야 합니다.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돼야 합니다. 하나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님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내 이념이요, 참부모의 일이 내 일이요, 참부모의 사랑권이 내 사랑 권이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44-143, 71.05.06)
그래서 참된 사랑을 전수받아 고향에 돌아가 참된 부모님의 전통을 심어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같이하고, 하나님의 모든 상속권이, 만민의 축복이 있게 되고 만복이 횡적으로 스며들 수 있는 복된 한국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176-280, 8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