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대 주체사상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적 신
인간 조상이 길을 잘못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적인 신(神)입니다. 인격적인 신이기 때문에 지(知)․정(情)․의(意)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와 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웃으면 하나님도 웃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도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눈물을 흘립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신학체계는 사상적 근거가 그릇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없다고 보는 논리적 근거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요, 법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번 작정했으면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헌법을 갈아치우고 그러는데, 하나님은 낡은 신발짝 집어치우듯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슬퍼하고, 기뻐합니다.
기독교 신학논리가 뭐냐? 하나님은,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과 속된 우리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학논리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생명을 버리겠다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분이라고 할 때, 그분의 상대로 지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을 때의 그 슬픔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슬픔에 산천초목이 움츠러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그저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이름 난 대학의 박사학위 하나 받는데도 몇 년을 노력해서 받는데, 성경 찬송가 책 하나 들고 예배보고 헌금이나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딸 됩니까?
기독교의 전통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없어야 되겠습니까?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가 누구입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 그 상대도 전지전능해야 됩니다. 그 전지전능한 데는 무엇에 전지전능해야 되느냐? 원칙에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아무 데나 전지전능한 게 아닙니다. 원칙을 떠난 전지전능은 파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이 역사시대에 새로운 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신학계에서 위대한 용사로서 추대할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언한 것이 뭐냐?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봉사하고 굴복하고 살고 싶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그런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상대 될 수 있는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로서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것이 도대체 뭐냐?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 사랑.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어떻게 사십니까?'라고 물으면, '허어! 하나님이야 하늘나라의 보좌에 앉아 공의의 심판주가 되어 나쁜 놈은 지옥 보내고 잘난 놈은 천국 보내고 그렇게 사시지' 합니다. 하나님이 지옥 보내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 말 같지 않은 말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여 무엇이든지 하니까 그 능력만 믿고 있습니다.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사랑에는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입니다. 그러면 창조목적이 뭐냐? 무엇 때문에 지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사랑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 해서 창조한 것처럼 돼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203-221, 90.06.26.)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
하나님이 창조를 왜 했느냐?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왜 태어났고,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창조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대에 참된 사랑을 위해서, 여자를 위해서, 남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데, 그 근원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결혼하게 될 때,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데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전부 똑같습니다. 결혼할 때 색시가 자기보다 잘났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자기 얼굴은 쭈굴쭈굴하고 팔삭둥이라 하더라도 색시는 자기보다 잘나서 문중을 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렸으면 좋겠다는 게 인간의 욕망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랍니다. 자기는 못났어도 '하늘이 보호하사 제발 우리 아들딸은 잘났으면 좋겠다' 합니다. 부모라면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진리입니다. 그게 어디서 왔습니까? 그 근원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생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숨쉬면 우주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입니다. 천하가 다 선생님 손아귀에서 놀아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는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희로애락을 같이할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근본이니까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203-223, 90.06.26.)
하나님은 참된 부모, 참된 스승, 참된 주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역사이래 한 분밖에 없는 절대적인 부모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게 첫째입니다.
둘째 번은 뭐냐? 이 한 세상을 살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습니까? 우리는 공포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 공포의 환경과 혼란 가운데 있는 나를 가르쳐 줄 스승이 누구냐? 스승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문제 때문에 통곡하며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스승 노릇을 못 하느냐? 사랑을 원칙으로 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걸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스승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인류 조상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었으면 천지의 대도를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 지상세계에서 배우지 않고도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알고 일생동안 영생할 수 있는 생활과 모든 준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영원한 부모!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영원한 스승!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영원한 주인! 이런 분이 인간이 찾아 모셔야 할 분입니다. 참된 스승이 누구냐? 참된 부모의 사랑을 가진 하나님을 닮은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의 자리, 참사랑을 중심삼은 스승의 자리, 참사랑을 중심삼은 주인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 3대의 원칙을 자유자재로 융합하고, 조화 통일을 하고 살 수 있는 이상적인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3대 주체입니다. 부모를 가져야 되고, 스승을 가져야 되고, 주인을 가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요구할 것이 천하에 제일 가는, 천지를 창조한 부모 중의 왕부모입니다. 스승 중에서도 천국과 인간, 피조세계의 모든 것을 지은 스승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주인을 가져야 됩니다. 그 주인은 만년 주인입니다. 누가 빼앗아 갈 수 없는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이 3대 원칙을 갖춘 대왕입니다. (203-228, 90.06.26.)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자리가 곧 참사랑의 기원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요, 참된 스승이요,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같이 모시고, 스승같이 모시고, 부모같이 모셔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고 들여도 부족한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도대체 뭐냐? 오늘날과 같이 막돼먹은 세상에서 아내와 남편이 사랑하는 게 참사랑입니까? 그건 타락한 사랑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병이 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평화스럽고 당당해야 합니다. 주체사상을 지녀 가지고 어디 가더라도 모순된 내용 없이 당당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 논리적 이치에서 하나님이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만들려고 할 때 백을 가졌다고 백을 투입하게 되면 자기만한 상대밖에 안 됩니다. 2백 퍼센트, 천 퍼센트 투입하고도 부족하여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할 때 자동적인 순환운동이 벌어집니다. 참사랑에는 소모되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시대의 사랑을 가지고 산 충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일대에, 그 시대에 배척받고 죽임을 당하고 인종지말의 길을 갔지만 왜 역사시대에 점점 확대되느냐? 그 이치가 무엇이냐? 참사랑을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 사랑을 가지고 큰소리했다면 다 망했습니다. 참사랑의 길을 가다 보니 아무리 두들겨 패도 망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무한한 이 우주에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의 상대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요소, 보이지 않는 무형요소를 백 퍼센트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려고 했습니다. 그 말은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어머니면 어머니가 자기 아들딸을 키우면서 뭘 사주었다고 수첩에다 기록해 놓습니까? 또 명절이 다가와 사랑하는 아들한테 옷을 사 주려고 백화점에 가 보니까 옷이 좋은 게 많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제일 가는 훌륭한 옷을 사 주고 싶은데, 그것을 못 사주고 형편에 맞는 옷을 만지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 옷을 사 주면서 '다음에는 더 좋은 것 사 주마, 미안하다' 이러는 것입니다. 의붓어머니 같으면 누가 뭐라도 '그 옷 내가 정성껏 사 왔는데 그게 뭐냐?' 이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식일 때에는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사주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더 좋은 것을 위해 더 투입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자는 일생동안 부모를 위해서 투입하고 투입하고, 생명을 바치고 뼈가 녹더라도 다 잊어버리고 '더 해야지., 더 해야지' 이럽니다. 자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의 사랑하는 나라를 망국지종으로 만들면서도 더 투입하고 더 투입하려고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더 투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203-231, 90.06.26)
타락한 인간의 3대 소원
인간의 소원이 뭐냐? 타락한 인간의 소원이 뭐냐? 아들딸을 낳되 그 아들딸이 사탄세계로부터 핍박받지 않고 하늘나라로 직행하도록 키울 수 있는 참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참아들딸을 낳아서 하늘나라로 직행시킬 수 있는 참부모의 대신자가 되는 것이 타락인간의 소원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아들딸인 아담 해와를 기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딸을 길러 하나님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교육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전부 선생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누구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합니다. 출세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주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3대 소원입니다. 참된 부모, 참된 스승, 참된 주인이 되는 것이 우리 타락인간의 3대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참된 부모가 되어야 하고, 참된 스승이 되어야 하고, 참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3대 주체사상입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의 뿌리가 뭐냐? 참사랑입니다. 이 참사랑은 자기의 백 퍼센트 이상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부모요, 스승이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뿌리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 할 때는 반드시 그 오른쪽에 참스승이 오고 왼쪽에는 참주인이 와야 됩니다.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들딸을 낳는다고 참부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낳아 길러야 됩니다. 아들딸이 어머니 아버지를 타고 다녀야 됩니다.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면서 싸우면 안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면서 나라를 대표해서 보여 주고, 그 다음엔 하늘땅을 대신해서 보여 주고, 자기 친척을 대신해서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늘땅을 사랑하는 표본, 세계를 사랑하는 표본, 나라를 사랑하는 표본이 되어야 합니다. 장래에 보여 줄 수 있는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혼란되어 있지만 참부모, 참스승, 참주인 이 셋 중에서 하나만 찾아도 망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그러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기 전체를 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식구들을 낳아 기르던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인들도 밤낮 원리를 공부해서 자기의 아들딸을 길러야 됩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잘 가르치기 위해 사탄세계에 나가서 훈련을 하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205-20, 90.07.15)
참부모를 찾고 참스승을 찾고 참주인을 찾아야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된 주인입니다. 거기엔 착취가 없습니다. 참사랑은 위하고 위하고 또 위하는 사랑입니다. 천년 위하고 그만두는 사람보다도 만년 위하겠다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투입하고 또 투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죽게 될 때는 '하나님, 나 살려 주십시오. 당신밖에 믿을 수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될 때 참부모가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설 때 그 어머니의 교시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을 볼 때, 이 나라에 참부모가 있느냐? 없습니다. 참사랑을 가지고 뼈살을 깎아 가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겠다는 애국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참된 스승이 있느냐? 참된 스승이 있다면 오늘날 대학교가 저렇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참된 주인이 없습니다.
지식이라든가 학문이라든가 돈은 일시적입니다. 일시적인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사랑은 영원히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고 주고 또 줌으로써 자연적 힘이 영원히 계속하기 때문에 위하는 참사랑에는 영생의 논리가 성립됩니다. 그러기에 참사랑은 아무리 투입해도 부족합니다. 아무리 열렬히 하고 말을 열두 시간 하더라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참부모를 찾고, 참스승을 찾고, 참주인을 찾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참부모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참부모입니까?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선생님만큼 위해 살겠다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빚을 지면서까지 대한민국 살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203-237, 90.06.26.)
우리가 정착할 본향 땅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선생님은 섭리를 따라 온갖 정성과 모든 충성의 결실적인 내용을 오로지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해 투입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했습니다. 세계를 이처럼 사랑한 것입니다. 교회를 이처럼 사랑한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교파가 없습니다. 장로교도 아니요 감리교도 아닙니다. 교파주의는 멸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파주의는 현대 신학사에서 다 깨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모든 중요한 말씀 중에 대표적인 한 구절을 통해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독생자를 준 것입니다.
독생자는 세상을 사랑해야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나서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 전통적 역사를 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서구사회를 사랑하사, 대한민국을 사랑하사 교파를 희생시키고 통일교회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인에게 집 장만해서 잘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출동 명령에 움직일 수 있게끔 행랑보따리 싸놓고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정착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정착해야 할 본향 땅은 한국보다도 미국이요, 미국보다도 소련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은 아벨이요 소련은 가인입니다. 그러니 아벨인 미국을 사랑하는 것 이상 소련을 사랑해야 합니다. 장자권을 복귀할 때까지는 소련이 가인이기 때문에 아벨권인 미국은 피를 팔아서라도 소련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못하니 선생님이 선두에 섰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투입해서 소련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빚을 지면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 아들딸을 위해 빚져 가면서 학교에 보내고 야단들 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제일 귀한 조업전까지 팔아서라도 그들을 살려 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215-78, 91.02.06)
참부모․참스승․참주인이 3대 주체사상의 골자
3대 주체사상의 골자는 참부모와 참스승과 참주인입니다. 이 3대 주체사상을 지니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까지도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지도해 주십시오! 하게 돼 있습니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하던 세계 정치가들, 이 가짜 주인들이 선생님과 전부 인연돼 있습니다. 그 3대 주체사상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바로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스승의 자리에만 서는 것이 아니요, 주인의 자리에만 서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교의 총장도 저녁이 되면 부모로서 집으로 돌아가고, 대통령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조백관을 거느리더라도 잘 때는 집에 들어가서 잡니다. 아버지,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볼 때 부모가 중심입니다. 부모적 스승이요, 부모적 주인입니다. 다 나갔다가도 부모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가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란 부모를 모신 곳입니다. 그것이 모두 참사랑을 중심삼고 그렇게 돼 있습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도 거기서 성립됩니다. 선생님이 지금 참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승 중에서 대왕 스승이요, 주권자 중에서 사랑을 중심삼은 주권자가 선생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인류가 몸 마음의 방향을 선생님에게 맞추어 천년만년 살고 싶어해야 합니다. 진짜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인간의 근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생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부모의 심정권, 스승의 심정권, 주인의 심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통하면 부모의 자리에도 갈 수 있고, 주인의 자리에도 갈 수 있고, 스승의 자리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은 부모의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상속받습니다. 선생님이 세계적으로 승리한 기반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완성되면 종족에 연결되고, 종족이 완성되면 국가에 연결되고, 국가가 완성되면 세계에 연결되고, 세계가 완성되면 우주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우주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종족을 대표하고, 모든 것을 대표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상에 반대가 없습니다. 자유입니다.
그래서 원리 말씀을 모르면 안 됩니다. 원리 말씀대로 실천해서 원리원칙대로 밟아 가지고 그 실적이 개인적 승리, 가정적 승리, 종족적 승리를 달성하여 종족적 메시아권이 돼 있으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국가적 승리와 세계적 승리, 천주적 승리를 상속받아 전권 대행 행사를 할 수 있는 그 나라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215-80, 9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