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사랑의 길을 걸어오신 참부모 (사랑이야기 - 제 4 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3 장 참부모님 사랑)

무지... | 20180813202912

5. 참사랑의 길을 걸어오신 참부모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
     
우리는 태어나기를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하나님의 혈통을 통해 영원불변한 참다운 사랑의 길을 가야 합니다. 몸 마음이 두 갈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가지고 자기 인생길을 가야 됩니다. 도를 닦지 않아도 갈 길을 스스로 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이 땅 위에 나침반도 남북으로 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고, 쥐도 태풍을 만나 파손될 배를 미리 알고 줄을 타고 육지에 내리는 지각을 가졌건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느냐?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목적을 알지 못하는 처참한 군상이 되었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생명줄은 영원과 통하기 때문에 미래의 자기 일생의 길을 뚜렷이 알고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왜 정성을 들이고 지성을 들여 영계와 통하려고 하느냐? 석가모니 같은 사람이 신비경에 들어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어떻게 했느냐? 이 사랑의 흐름의 골수에 몸을 담고 보니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느냐?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위대한 역사적인 사랑의 뿌리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원천이 되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가지는 뿌리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사랑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여자,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남자는 찬양해야 됩니다. 얼굴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소녀의 마음이 불타고 있는 정열은, 사랑은 진정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그리워할 때는 무한히 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미녀가 갖추지 못한 위대한 아내로서, 위대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못생긴 사람이 사랑의 마음이 두텁습니다. 미인은 얄팍합니다. 못생긴 사람은 둥글둥글합니다.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못생겨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인박복이라고 합니다. 왜 박복이냐? 사랑이 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21-115, 82.10.24)
     
     
생명을 각오하지 않은 사람은 참사랑의 길을 갈 수 없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인 동시에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은 그 상대와 아들딸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낫기를 바라는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도 낫기를 하나님은 바랍니다. 그러한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이 만들게 될 때, 백만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이 백만한 힘을 투입하게 되면 백만한 가치의 존재밖에 안 됩니다. 백 이상, 천 이상, 만 이상 만들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백만한 것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잊어버리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더 많이 투입하는 데서만이 자기 사랑의 상대가 더 큰 상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이요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천만 배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주인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투입함으로써 그분 앞에 가까운 상대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망은 무한한 한계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참사랑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데에는 절대 참사랑이 없습니다. 
참사랑의 근원지가 어디냐? 열번 태어났으면 자기의 생명까지   열 번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자기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길에서 비로소 참사랑이 나옵니다. 오늘날 세상은 참사랑을 모릅니다. 참사랑이 어디 있느냐? 참사랑은 자기 생명선 이상을 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그 이하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남자는 자기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고 또 희생하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남자는 하나님이 '내게 제일 가까운 참남자!'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죽고…'라고 했는데, 이것이 뭐냐? 역설적 논리를 가르쳐 준 것은 참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사람은 참사랑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죽음을 몇 번씩 각오했고, 감옥을 여섯 번씩이나 드나들었고, 모든 세계 사람들이 총공격하는  자리에서도 늠름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은 다 쓰러지고 선생님만 남았습니다. 참을 찾아가는 데는 하나님이 옹호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것을 누가 점령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만든 그 기반은 누구도 점령 못 합니다. 세계에서 선생님이 받은 이상 핍박을 받으면서 이 이상의 기반을 이룬 사람 외에는 점령할 자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만든 기반을 통일교인들 앞에 무조건 넘겨주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통일교인들을 선생님보다 훌륭한 사랑의 대상, 아들딸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참스승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는 것은 핍박하는 사람들의 모든 소유물을 상속받는 제2 선의 세계의 작전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핍박이 나쁜 게 아닙니다. 핍박은 좋은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 이기게 되면 핍박하는 사람들의 모든 전부를 하늘이 뒤로 갖다가 나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까닭없이 쳤으면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노동자면 노동자급의 손해를 받아야 되고, 그 사람이 어떤 국장이면 국장급, 왕이면 왕, 참부모권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반대했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222-20, 91.10.27)
     
     
하나님과 메시아의 전법은 맞고 빼앗아 오는 것
     
오늘날 인류 역사가 전쟁 역사로 엮어져 온 것은 악마의 주관권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든지 청산해야 합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변경할 것이냐? 어떻게 이 세계를 평화의 세계로 만드느냐?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는 수많은 종단, 수많은 주의, 수많은 개인들이 지금에 와서는 다 무너져 나갔습니다. 공산주의도 무너지고, 민주주의도 무너지고, 수많은 종교들도 다 무너졌습니다. 기독교라든가 유대교 같은 모든 종교가 지금 수평 아래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사탄은 뭘 하느냐? 피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피를 더럽혀 나왔습니다. 그러한 예가 바로 프리섹스입니다. 프리섹스는 피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우주의 근원적인 것을 자기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막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재림주는 뭘 해야 되느냐? 그런 모든 주의를 평등화하고, 더럽힌 핏줄을 맑혀야 됩니다. 싸움하는 파당, 우익과 좌익의 모든 것을 평화로 수습해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떻게 이것을 승리해 나오느냐? 메시아의 전법과 하나님의 전법이 뭐냐?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팔십이 됐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맞고 나왔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선생님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까? 선생님은 댄버리에 들어가서도 미국을 살려 주려고 했습니다. 또 고르바초프와 김일성이 선생님을 암살하기 위해 1987년에 적군파 25명을 미국에 파송했는데, 그 중에서 몇 명이 잡혀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 문제가 아직 법정에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련과 북한을 구해 주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과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사상적인 면에서 구해 주어야 합니다. 악마의 사상에서 하나님의 사상으로 전환시켜야 되고, 악마의 핏줄에서 하나님의 핏줄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사탄은 전부 죽이거나 희생시켜 자기가 잘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대입니다. 
참된 부모는 자기 아들딸을 위해 생명을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려고 하고, 참된 아내와 참된 남편은 자기 생명까지 투입하여 상대를 더 위하려고 합니다. 참사랑은 거기에 있습니다. (225-16, 92.01.01)
     
     
선생님이 걸어온 참사랑의 길
     
선생님은 참으로 좋기도 하지만 무서운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도 망했고, 가정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도 망했습니다. 또 반대한 단체도 망했으며, 반대한 정권도 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도 이렇게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과 하나되지 않으면 망합니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이며 고독의 왕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도 고독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친구도 없는 지극히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봄날이 오면 꽃이 피고, 꽃이 피어 향기가 나면, 나비가 날아오기 마련입니다. 천지 조화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서, 세상이 다 반대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반대해도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어도 선생님의 마음과 이념은 가두지 못합니다. 선생님을 치라는 것입니다. 치면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걸어 나온 길과 하나님이 닦아 나온 길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감정하라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아! 잘 맞았다. 역사적인 모든 원한의 인류를 대신해 맞았다. 내가 맞고 잊어버리고, 내가 이것을 기억하지 않겠다󰡑 하면서 󰡐하나님이여! 이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를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죽이는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왜정 때, 선생님은 12시간 가까이 고문을 받고 피를 토하며 기절한 적이 있었고, 15분 동안에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런 고문을 12시간 받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들을 원수같이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고 가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엇을 보고 복을 빌어 줄 것인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것을 감방에서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나오다 보면 사람은 양심이 있으니, 아침에 사람들이 다 나간 뒤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선생님에게 와서 사과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같습니다. 양심은 속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7-73, 69.11.23)
     
     
참사랑의 길
     
선생님이 가르치는 도리가 뭐냐? 사랑을 중심삼고 몸 마음을 통일하는 도리입니다. 몸 마음을 통일하지 못하면 선생님과는 관계없습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은 어디에 연결하고 살아야 되느냐? 참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을 찾기 위해서 자기의 몸 마음이 하나된 가운데 완전히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결혼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아들딸도 자기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사랑의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종횡의 사랑의 상대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사랑의 상대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고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낫기를 바라느냐?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마음이 하나된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자기 생명보다도 더 투입하고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100을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니까 150이 되고, 150을 집어넣고 또 집어넣으니까 200이 되고, 200을 집어넣고 또 넣고 잊어버리니까 300이 되고…. 이렇게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무한히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생명, 몸 마음이 하나된 하나님 자신 이상의 것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참사랑의 이상적 권(圈)이 존속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몸 마음이 하나되어 자기 생명 이상 투입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나님이 100퍼센트 투입하는 자리에는 미치기 어렵습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자기 이상 투입하겠다는 거기에는 미칠 수 없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에게는 끌어 주는 구세주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렸던 본연적 마음에 연결됩니다. 그래야 하늘을 붙들고 가는 길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타락하지 않은, 사탄과 관계없는 통일된 나 자신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위하여 투입하겠다는 입장에서 참사랑의 길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딸보다도 가인적인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가인적 아들딸들이, 믿음의 아들딸이 '제발 저 대신 당신의 아들딸을 더 사랑하십시오!' 하는 자리에 서야 사탄과 관계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탄의 자리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길은 외로운 길로 떠나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위하는 길입니다. 전체를 위해 봉사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자기 아들딸만 사랑하고 자기 아내, 남편만 붙들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본연적인 세계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걸 부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끝날에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끝날에는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206-131, 90.10.03)
     
     
참된 사랑의 길에는 영생의 논리가 개재된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가는 길은 위함을 받기 위한 길이 아니고 위해 주기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상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자신이 위하는 입장에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100퍼센트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본연의 중심존재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은 위하는 데 있어서도 100퍼센트, 1000퍼센트 위해서 다 주고 나서, 진공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공기로 말하면 절대 저기압이 생기게 되면 고기압은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위하려고 하는 곳에는 무한한 힘이 연결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렇게 인간을 위하려고 합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므로 더 주고 또 더 주려고 하는 본성의 작용이 자꾸 계속됨으로써 하나님은 영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길에는 영생의 논리가 개재됩니다. 참사랑의 기원인 하나님과의 참사랑의 파트너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숙해서 절대불변인 참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았던들 우리 인간세계에는 근본적인 통일의 역사가 전개되어 전쟁이라든가, 피흘리는 서러운 역사가 없었을 것입니다. 
때려죽이고 싶은 원수가 있어도 하나님은 왜 벌을 못 주느냐? 그를 사랑하는 부모와 아내, 아들딸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눈물의 골짜기를 넘은 분이기 때문에 그 원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그의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의 심정을 체휼할 때 채찍을 내려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면 원수를 갚을 수 없습니다. 그걸 알고 나면 도리어 사람을 시켜서 원수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리의 대도(大道),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로 품으려는 그 대도 앞에 내가 가까이 서게 되고, 거기에 천지가 진동하여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너, 나를 닮았구나! 아이구 좋아!󰡑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201-349, 90.04.30)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사랑의 원칙
     
선생님이 60년대 전에는 7년간을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평균 두 시간, 세 시간밖에 안 잤습니다. 식구들을 중심삼고 민족을 사랑해야 할 입장에서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분해서 밤을 새워 가며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날 닮아라, 날 닮아라󰡑 하며 기른 때가 있어야 됩니다. 어린아이를 일곱 살쯤까지 정성들여 키워 놓아야 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에게 7년노정이 있어야 됩니다. 가인을 기르려면 7년은 걸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10대 때에 서울을 대신해서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전차도 안 타고 다녔습니다. 그때 노량진에서 살았는데 시내에 나올 때 반드시 걸어다녔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전차가 있으면 뭘 하느냐? 그 전차가 누구의 전차냐? 우리 나라의 전차가 아니다. 일본 전차가 아니냐? 그들에게 왜 한푼의 돈이라도 주어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걸어다녔습니다. 그때에 전차비가 5전이었습니다. 그 비용을 대신 거리에서 󰡐적선이요󰡑 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줬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훈련해 왔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상도동에서 흑석동 중앙대학교로 넘어가는 산마루가 있었습니다. 거기는 무인촌이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꽃을 재배했습니다. 어느 날은 그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쓰러져서 신음하면서 앓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일으켜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그는 천안에서 사는 사람인데, 친척집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주소를 잘못 알아 가지고 찾다가 길에서 병이 나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을 업고 거기서부터 노량진까지 가던 일이 엊그제 일같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입니다. 바로 그때가 신학기, 3월말쯤이었는데 그 사람에게 차표를 끊어주고 선생님 학비까지 전부 털어 그 사람에게 줘 보냈습니다. 
그렇게 다 주었으니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문배달 같은 것을 해서 생활하고 학비도 마련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난데없이 그 몇 배의 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친척이 선생님을 찾아와서는 그 몇 배의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온 게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선생님 자녀 중에 흥진군이 있습니다. 한번은 흥진군이 고열이 나는 아주 지독한 독감에 걸려 열이 41도까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기를 사랑해야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는데 원리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입장에 가인의 아기와 내 자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가인의  아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아기는 틀림없이 나을 것입니다. 그게 원리원칙입니다. 원리원칙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 독감에 앓고 있는 흥진군을 안고 을지로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그때에는 겨울이라 추워서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고 길을 죽 걸어가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는 어떤 가게 앞에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아기를 붙안고 조그마한 밤알들을 몇 개 놓고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를 보니 얼마나 안됐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갑을 몽땅 털어서 그 아주머니에게 주고 왔습니다. 그때는 돈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돈을 다 털어서 주었으니 병원에 갈 비용이 없게 되어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가인을 사랑하는 동정의 마음을 베풀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고 '아버지여, 사랑의 원칙이 이러이러합니다' 하는 마음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와 보니 그 시간에 병이 나았습니다. 이렇듯 자기 아기도 아프고 가인 아기도 아프다면 자기 아기보다도 먼저 가인 아기를 생각해야 됩니다. 먼저 가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원칙입니다. (60-216, 72.08.17)
     
     
참부모님은 참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대표자
     
아담 해와는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입니다. 왕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이 저절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왕족의 심정권을 중심삼고 효성을 다하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성인의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의 아들딸인 성자의 도리를 다하고 나서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이론적으로 맞습니다. (232-89, 92.07.03)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마를 중심삼고 결혼했기 때문에 천지 부모를 못 모셨습니다. 그러면 따먹지 않고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나님권 내에서 결혼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생명권, 혈통을 이어받아 직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세주가 필요 없습니다. 수양이 필요 없습니다. 직계는 마음이 다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세포가 생명체에 전부 다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가 되어서 다 통합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몸 마음이 싸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 안 되면 여러분들이 천상세계에 가서도 억만 년을 두고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무엇 가지고 하나 만드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참사랑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참사랑의 도리를 가르치는 그 대표자가 참부모입니다. 그걸 알아야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적인 죄, 병균을 뽑아 버릴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비로소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32-89, 92.07.03)
인간세계에 하나님이 원리결과주관권과 직접주관권을 전부 다 완성할 수 있는 남성적 대표, 하늘나라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탄의 뜻을 알고 아담이 알지 못했던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을 알고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권을 대표해서 인간세계에 대표로 보낸 사람이 곧 메시아입니다. 구세주가 무슨 구세주냐? 사랑의 전통과 도리를 세우기 위한 주인입니다. (220-55, 91.10.14) 
선생님은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사랑의 길을 개척하자는 것입니다. 그 기반이 통일교회가 되었고, 통일교회와 선생님이 하나된 것이 통일교회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의 일생과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걸음이 참사랑의 길을 찾아나온 걸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고, 하늘땅과 인류가 역사를 두고 기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7-194, 8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