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생님의 뜻과 신념 (사랑이야기 - 제 4 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3 장 참부모님 사랑)

무지... | 20180811173558

4. 선생님의 뜻과 신념
         
부모 형제를 사랑해보지 못한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까지 격동하는 세계적인 사조권내에서 많은 핍박을 받고 사탄과 혈투전을 하면서 하늘의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회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핍박의 길을 넘어서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원래 선생님이 먼저 말씀을 선포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 부모와 종족에 대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와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사돈의 팔촌까지 합하면 상당히 큰 문중이었습니다. 더욱이나 우리 형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계와 통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것도 알았고, 다년간 고생한 병도 약 한번 안 쓰고 영적으로 치료받은 분입니다. 
그 형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깊이는 알지 못했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 중에서 우리 동생이 제일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내 말을 듣고 안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또 선생님이 말하지 않는 한 물어 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님은 선생님의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무엇을 자기에게 얘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문중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장래에 면이면 면에서, 도면 도에서 잘 된다, 못된다는 것 등 하여튼 말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 어머님은 선생님을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어머님께 손수건 한 장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는 베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8남매 중에 누이가 여섯입니다. 어머니는 이 여섯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갔다 돌아오면 어머님께서 베를 짜고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때 어머님과 함께 얘기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보통 마흔 자 한 필을 짜는데 5일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여덟 자 내지 아홉 자 정도를 짰습니다. 그런데도 그 베의 표면은 참 고왔습니다. 하루종일 베를 짜고 나면 얼마나 눈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런 일을 선생님 어머님은 수십 년씩이나 하셨습니다. (22-117, 69.02.02)
     
     
선생님을 위해 고생하고 희생한 가족들
     
선생님 어머님은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선생님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 선생님은 자식노릇을 한 번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기도 한 번 안 해봤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요구하면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보내 줄 수 있는 형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형님에 대해 선생님이 누구라는 이야기나 무슨 사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가지 그분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라면서 동네에서 누군가가 자기가 잘산다고 해서 못사는 사람들을 천대하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든 간에 못 참았습니다. 그러니 동네사람들도 선생님을 무서워했습니다. 
어머님은 선생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엿을 사다 놓든지 떡을 하든지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아서 선생님이 그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다 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사랑하신 부모님께도, 형님에게도 선생님은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또 선생님 동생들 중에는 나 때문에 희생된 동생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가기 때문에 죽은 동생도 있습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일제하에서 감옥에 들어가 고문받고 있을 때 누이동생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선생님 때문에, 탕감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의 역사는 반드시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가정에는 풍파가 많았습니다. 한 7년 동안 재앙과 풍파가 많았습니다. 열 세 식구 중에서 다섯 식구가 죽어 여덟 식구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개가 죽고, 소가 죽고, 형님과 누나가 미쳤습니다. 사탄의 활동 때문에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치렀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이 섭리적으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배후의 사연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선생님이 어떠한 마음을 품고 다니는지 몰랐습니다. 형님에게도 얘기 안 하고, 부모에게도 안 했습니다. 
그렇게 해방될 때까지 참고 나왔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선생님은 한국에서 󰡐한다󰡑 하는 신령한 사람은 다 찾아가서 만나 봤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영계의 사정을 물어보았는데, 그 사람들의 대답이 미흡했습니다. 미흡한 사람은 완전한 시대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나가다가 전부 중도에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타파해 나가고, 새로운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학생 때부터 생각해 나왔습니다. (22-119, 69.02.02)
     
     
선생님의 일본 유학시절
     
일본 유학시절에 선생님은 빈민굴에서부터 사창굴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창굴에 있는 아가씨들의 과거를 캐보니 보통 사람의 과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회 환경에 몰리고 그 흐름에 따라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쌍한 처지가 되기도 했고, 혹은 부모와 형제를 위하여 자기 일신을 제물로 삼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비록 자기 몸이 버린 바 되어 거리에서 밟히는 여인이 될지라도, 쓸쓸히 사라지는 불쌍한 아낙네가 되더라도 자기 부모와 형제를 살리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고 나섰다고 할 때, 그들의 손을 붙들고 통곡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도 순수하고 솔직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런 비참한 인류의 해방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의별 인간들이 다 거쳐나가는 그런 유(類)의 생활 이면을 알지 못하고서는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빈민굴 생활로부터 밥을 얻어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길이길이 세우고 싶었던 사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방될 때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선생님은 해방의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1941년도에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해 부산을 향해 서울역을 떠나면서 서울 장안을 바라보고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지금도 한강변에 가면 불쌍한 이 민족이 해방되는 한 날을 위해 눈물 흘리며 붙들고 기도하던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되었지만 이 민족은 아직도 불쌍한 민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하실에서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로서 하나님에게 호소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천지 앞에 하늘의 사연을 폭로하고 피를 토해서라도 호소해야 할 때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서울 흑석동의 고갯길은 선생님이 많이 걸어다닌 길입니다.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전차를 안 타고 다녔습니다. 전차를 타고도 꽤 오래 걸리는 먼 곳이었지만 걸어갔다가 걸어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흑석동 고개를 넘어갈 때 보면 길가에서 적선(積善)을 바라며 행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차를 타지 않고 남겨 두었던 그 돈을 주곤 했습니다. 그들을 붙들고 한없이 울어도 봤습니다. 부모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고, 형제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까 없다고 하는 그들을 선생님이 그의 부모 형제를 대신해서 위로해 주지 못하는 것을 놓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22-120, 69.02.02)
     
     
잊어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
     
선생님은 이 나라 이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에게 안길 수 있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심정을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말을 안 해도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선생님이 학생시절에 기도할 때는 목이 메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그렇게 기도를 하는지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20세를 전후한 청년이 목이 메어서 기도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 청년은 왜 저렇게 기도할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겠지만, 거기에는 남모르는 내적 심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 흘리며 기도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음식까지도 선생님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번 만번 이 몸이 으스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온 역사과정에서 하나님은 선생님이 어떠한 자리에 가 있든지 함께하셨고, 선생님을 위해서 그렇게도 수고하셨다는 것은 선생님 자신에게서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갈 때는 보통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8시간 걸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기차를 타면서부터 외투를 뒤집어쓰고 통곡했습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아 눈이 붓고 코와 입술이 부르트도록 울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그 사연, 이 민족에게 심어 주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 하소연이 이 민족 앞에 기필코 남아질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걸어온 길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 눈물의 쌍곡선을 그으며 그 길을 개척해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사정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무턱대고 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배후에 선생님이 흘린 한의 눈물이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하나님만이 압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만이 아는 그런 사연이 한국 삼천리 반도 위에 엮어졌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선생님은 역사시대에 길이길이 남아질, 그 무엇보다도 귀한 이 사연을 죽어가면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연을 펼쳐서 만민 앞에 통고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고 나서 그 승리의 보좌에 아버님을 모시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못할까봐 염려하며 한을 품고 사는 사나이가 통일교회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을 위해 그 어느 애국자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던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에 부산 부두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비록 떠나지만 너를 더욱더 사랑하고, 너를 위하여 더 많은 눈물을 흘려주마󰡑고 약속했습니다. (22-121, 69.02.02)
     
     
하나님만이 아시는 눈물의 사연
     
일본에 가서도 굶주린 친구를 만나게 되면 선생님은 굶더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굶주린 고학생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학생복을 벗어 던지고 부두 노동을 했고, 석탄 짐을  운반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젊은 동지들을 사랑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선생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친한 친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친구중의 친구라면서 자기의 비밀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너한테만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고 직고하는 동지들을 남겼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의 궁성을 지나게 될 때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을 잃어버린 한을 품은 외로운 사나이로서 그 궁성을 응시하면서, 이제부터 20년 후에는 하늘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깃발을 꽂을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네가 우리 민족을 핍박하지만 앞으로는 반대로 내가 명령만 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를 향하여, 이 궁성을 향하여 화살을 쏠 날이 올 것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던 것이 25년만인 1965년도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여자들만 눈물 흘린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일반 사회 사람들은 선생님을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 다 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던 친구들은 전부 영계에서 데려갔습니다.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을 전부 데려갔습니다. 왜 그들을 영계에서 데려갔는가 하면,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私情)을 나눌까봐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책임지고 나가는 선생님이 그들과 사정을 나눌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사랑하던 누이동생도 데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선생님이 세상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모두 데려갔습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려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통일교회 선생님에 대해서 모릅니다. 선생님은 생각을 했어도 그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더 했습니다. 인류를 그리워하며 인류를 위해서 일주일 이상 눈물을 흘렸고, 너무 많이 울어서 입고 있던 솜바지까지 모두 적셔 버린 적도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껄렁껄렁한 곳이 아닙니다. 그럴 수 없는 이념과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22-123, 69.02.02)
     
     
부모 처자에게 사정을 말하지 못한 이유
     
어째서 선생님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뜻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를 붙들고, 형님 누나를 붙들고, 처자를 붙들고 사정을 나누지 못했느냐?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혈육만을, 자기의 가정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을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섭리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처자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천법에 위배됩니다. 하나님도 자기만을 사랑하는 무리들만 사랑했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4천년만에 비로소 이 지상에 둘도 없는 사랑의 실체로서 보내진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악당의 무리와 원수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자기의 아들을 희생시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리입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민족은 지금까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에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쫓기고 몰리고 밟히면서도 세계의 문화권을 창설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외적인 물질적 기준과 내적인 정신적 기준에서 세계적인 기준 위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인격자가 아닙니다. 자기편의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못 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자식을 자기 직계의 자식보다도 더 사랑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도 그 앞에서는 머리 숙여야 합니다. 사탄도 자기 자식들을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해 주니 그 사랑 앞에 머리 숙여야 할 기준이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의 내용을 안 예수님은 죽으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님이 천정의 인연과 천정의 전통을 이어받고, 천정의 핏줄을 통해 태어난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슬펐던 역사적인 사연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런 운명의 자리로 내보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떻게 하늘 뜻 앞에 드려질까를 생각했습니다. 
민족과 세계로부터 조롱받고 몰리면서도 원수의 무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 앞으로 돌이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랑할 뿐만 아니라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선생님의 아들과 딸에게 원수들을 위해 선생님 대신 축복해 주고 선생님 대신 사랑해 달라고 유언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요, 그럴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나온 것이 선생님의 길이었습니다. (22-131, 69.02.02)
     
     
심정적으로 일체가 되어야 하늘의 초석이 놓여진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겉으로 나타난 통일교회를 보고 믿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가 외부로만 발전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서로 심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여 동감 동정할 수 있는 일체가 되어야 그것을 중심삼고 하늘의 초석이 놓여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초석이 세워지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렇게 몰아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1960년까지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잊어버리고 온갖 정성을 들였습니다.
선생님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 놓은 영계의 모든 비밀과 모든 내용은 보화중의 보화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나눌 수 없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어머니를 뒤에 두고 나설 때,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어머님, 이제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길로 가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과 헤어졌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께 위로의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니께 󰡐졸장부 아들을 낳은 어머니가 되지 말고 대장부를 낳은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청천벽력 같은 호령을 하여 눈물을 그치게 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선생님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선한 영인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어머니의 가치를 천배 만배 더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일대 혈육의 인연을 중심삼고 눈물지음으로 인하여 그 권위와 가치가 상실될 것을 염려하여 선생님은 무자비하게 어머님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처자식에 대해서도 심중에 품은 말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나이였습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배낭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북한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오냐, 6천년 섭리역사가 이렇듯 슬픔의 역사로 남아져 온 것을 알았으니, 그 해원을 위해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리하여 다 싫다는 북한 땅을 향하여 떠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방을 그리워하면서 통곡하며 절규하던 그 사나이가 해방된 이 땅 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 땅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디 남아 달라󰡑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삼팔선을 넘어설 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했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하나도 죽지 말고, 하나도 망하지 말고, 하나도 배반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동지들과 신도들에게 부탁했지만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 모두 선생님을 원망했고, 떠나갔습니다. 남한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선생님을 원망하고 배반한 그 무리들에게 아직도 하늘의 슬픈 역사의 사연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연을 나누고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명주바지가 누더기가 되어 선생님이 보기에도 형편없는 거지 중의 상거지 모습이었습니다. (22-125, 69.02.02)
     
     
배반당하고 몰림받은 지난날
     
북한 땅에 가기 전에 인연되었던 어떤 집을 찾아 들어가니 세 모녀가 선생님 면전에서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가더니 결국은 거지 모양이 되어 찾아 왔구만󰡑 하면서 서로 눈짓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집을 찾아간 것은 밥이 그리워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같이 눈물을 흘렸고 같이 사연을 나누었던 하늘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인연을 거룩하게 심었으니 심은 것을 거룩하게 거두어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맞이했더라면 선생님이 북한에 가서 한 일들을 얘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그들과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설립했는데, 장안에서 이름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씻지 않고 이도 닦지 않은 상거지의 모습을 해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나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선생님을 배신했습니다. 선생님은 대개 어떤 사람을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갑니다. 그때도 틀림없이 󰡐넌 이렇게 대할 것이다󰡑 예상하고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갈 때 아예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 위해 오후 늦게 상거지 모습으로 찾아갔는데, 그가 없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저녁 7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진 다음에 저녁밥을 먹고 기다렸는데,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언짢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나이는 동지 앞에서 몰리고 쫓겨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부모 앞에도 몰렸고 민족 앞에도 몰렸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몰다가는 걸려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는 󰡐그동안 염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그저 도의적인 입장에서 얘기했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때 내복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방에 이불 한 채를 내주면서 어쨌거나 왔으니 덮고 자라고 했지만, 이불을 덮지 않고 그냥 그대로 그 옷을 입고 잤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거기에서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을 박대하면 그가 7개월 이내에 어떻게 될 것인지 선생님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염려하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집을 기쁜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가 기쁜 표정을 하고 나왔지만 배후의 하나님은 슬펐던 모양입니다. 그 역시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별의별 곡절의 노정을 거치면서 먼저 인연되었던 동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남들 같으면 다시 남한 땅을 찾아 왔으면 처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선생님은 동지부터 찾아갔습니다. 가까운 동지부터 찾기 시작해서 먼 동지까지, 또 북한에서 선생님을 따르던 식구들을 비롯해 선생님과 인연된 동지들을 찾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지승도 할머니는 그것을 압니다. 내 처자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았지만 동지들을 모두 찾기 전에는 편지조차 할 수 없는 천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다 찾은 후에야, 찾고 찾아 그들을 다 만난 후에야 집으로 연락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목석 같은 사나이가 아닙니다. 정적인 사람이요, 눈물 많은 사람이요, 동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짓궂은 친구와 싸우다가도 그 친구의 옷이 찢어지면 선생님의 옷을 벗어 입히고서야 돌아서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은 악대로 처리하면서도 그 처량한 신세는 동정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천정입니다. (22-127, 69.02.02)
     
     
수난 가운데서도 보호해 준 하나님
     
선생님은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나오면서도 이러한 심각한 내용을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부모에게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형님 누나 동생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처자한테도, 친척들한테도 얘기 못 했습니다. 우리 동지들에게도 때가 되기 전에는 이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누구에게 먼저 전했느냐? 해방되고 난 다음 원수들이 우글대는 북한 땅에서부터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전파가 출발함과 동시에 원수의 총끝이 선생님을 겨누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길부터 출발했습니다. 원수에게 또 몰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산치하에서 3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죽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평양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어떠어떠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 때는 영계에서 무지몽매한 강도, 절도, 살인범 등 수많은 죄수들에게 󰡐아무 감방에 번호가 몇 호인 사람이 있으니 그분에게 어떤 것을 갖다 드려라󰡑 하고 시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선생님이 입을 옷이 없을 때에는 그들을 시켜서 옷을 갖다 주기도 했으며, 또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플 때에는 난데없는 사람을 통해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평양 감옥에 들어가면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1948년 5월 20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때 감방의 창가를 스치던 버들잎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만남으로써 원수의 땅,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하늘의 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몰리고 쫓겼으니 감옥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해서 남한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유엔군이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흥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쁘게 구해야 할 한 아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그 전전날 한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준다고 꼬여서 전부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줄 모르고 밥을 준다고 하니까 그것을 얻어먹겠다고 서로 먼저 가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너희들은 마지막 길을 가는구나! 그렇지만 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들은 다 죽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참사의 비운이 거쳐가는 자리에서도, 총살을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10월 12일 형기가 7년 이상인 죄수 70명 정도를 30리쯤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형기는 5년이었기 때문에 다음날 끌려갈 차례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13일 밤거리를 내다보니 벌써 사태가 달라졌습니다. 유엔군이 흥남에 상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산군들은 보따리 싸기가 바빴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10월 14일 공산군이 물러가자 우리는 감옥에서 빠져 나와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지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이단의 괴수라는 팻말이 붙어 원수들로부터 몰리고 쫓기고 비난받으며 나왔습니다. 
이화여대 사건 때 김활란과 박마리아가 주동이 되어 경무대에 가서 거짓 증거로 4개 부처장관을 움직여서 통일교회를 없애고 선생님을 완전히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죽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어떠한 일이 부닥쳐 오더라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1955년도에 7․4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원숭이띠라서 감옥살이를 많이 하는지 모르지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독교인이었는데, 대뜸 󰡐네가 문 아무갠가? 한 달간 구류다,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삼아 한마디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지󰡑 하면서 비리를 이야기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는 그렇게 못되게 굴던 형무관들을 선생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듣게 만들었습니다. 물을 갖다 달라 하면 떠 올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때려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22-129, 69.02.02)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동기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까지 반대했지만,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탄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점과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저 아들이 악한 자식이 아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핍박을 받으며 살더라도 죄를 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남다른 사상과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지, 절대 나쁜 마음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가 그러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형님이 그러했고, 철모르는 누이동생들도 우리 오빠는 훌륭한 오빠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전부 반대했지만 가정적 전통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선생님을 원수와 같이 취급했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신세였지만 배후에 부모 형님 누이동생의 심정적 사위기대의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에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예수님보다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모가 그렇게 해 주지를 못했고, 동생이 그렇게 대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통고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하는 일에 대해 오해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저는 예수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반대하는 민족에 대한 마음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고 선조가 있기에 이 배달민족과 삼천리 강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마음을 갖고 소망의 민족, 소망의 나라를 꿈꾸면서 지금까지 참아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수십 성상의 복귀노정을 걸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이 먼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처자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아들인 성진이는 스물 세 살이 되도록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선생님이 누구만큼 못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적 인연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3년 전 그 어린 핏덩이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북한으로 가기 위해 문을 닫고 나설 때, 그 어머니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믿고 떠났던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기독교가 환영하였더라면 아버지 어머니는 슬픈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받들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사조가 한국에 상륙하여 맞부딪치는 정세 하에서 피폐한 이 민족으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놓는 데 있어서는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고 각국의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천륜의 사명과 천도가 어떻다고 제시할 수 있는 세계적 발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를 놓침으로써 원수의 세계에 가서 다시 찾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는 데 21년 걸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민족과 나라를 배후에 두고 원수의 땅을 먼저 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함으로써 원수의 나라인 애급땅을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러한 비운의 발걸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2-133, 69.02.02)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 있었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를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탕감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북한 땅을 거쳐 남한 땅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처음에 기독교에게 배척받아 북한 땅으로 간 것도 원통한데 남한 땅에 와서 남한 백성 앞에 또다시 짓밟혔습니다. 그래서 2천년 동안 기반을 닦아 온 기독교 역사는 다 무너졌고, 수천 년 배달민족으로서 쌓아 온 공적도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토록 슬픈 사연을 품고 통일교회는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충성하여 나왔습니다. 피폐한 황무지, 삼천리 반도에 통곡의 제단을 쌓아 나왔습니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맹세하며 나섰던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이 따라올 수 있는 사조의 기틀을 마련하여,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증거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는 수고한 실적과 더불어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애국애족하는 단체로 국가가 시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또한 통일교회는 살아 있는 종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공운동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단체라는 실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단이 선생님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홀로 통일교단을 신설하여 2천년의 기독교 기반을 능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제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주먹이 세어서, 통일교회가 총칼을 가져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이 무서운 것입니다. 내적 신념과 외적 신념이 서로 결합하여 있고, 실천하는 면에서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강력한 단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한 번 몸부림치면 이 세계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빼놓고 박사를 비롯하여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머리도 큽니다. 학창시절에 일본에 가서 보니 나보다 큰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무엇을 한 번 시작하더라도 망한 적이 없습니다. 네가 죽든가 내가 살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지었습니다. 또 망할 것 같으면 손도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뒤에서 밀어 주고 온 우주가 앞에서 환영해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철창 안에 들어가 있더라도 절대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한 사나이였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이 󰡐야, 물 좀 가져와!󰡑 하면 살인강도라도 󰡐예󰡑 하며 물을 떠왔습니다. 선생님 말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듣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손찌검을 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말없이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고 말없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선생님 대신 통일교회 식구들을 내보내는 것입니다. 선생님 대신 영광받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뿌리기 때문에 뿌리가 드러나면 망합니다. 그리고 통일교회 식구는 잎사귀입니다. 잎사귀는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 뿌리를 알지 못합니다. 박사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연구해도 모릅니다. 결론을 못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선생님밖에는 결론을 짓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아니고서는 일할 자가 없습니다. 해나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22-135, 69.02.02)
     
     
전통적인 심정사상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물삼아 나왔고,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을 희생시켜 세계를 구하기 위한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심정사상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본받은 예수님도 그러해야 하고, 기독교도 그러해야 하고, 또 그런 사상을 결실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할 통일교회 선생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누구를 사랑했느냐? 처자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려면 민족과 종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 민족은 대한민국 국민이요, 그 종족은 통일교회 식구입니다.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를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종족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되겠고, 하늘이 사랑하고 싶었던 가정을 이 땅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가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세계 만민을 위해서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공인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애국자들도 선생님한테 머리 숙이고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고 종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통일교단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종족입니다. 통일교단이 나온 것은 사랑의 다리를 놓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단 가운데 통일가족이 있으니 그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그 가족 가운데는 개인이 있으니 그 개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띠고 나왔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사랑의 역사, 심정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한다는 입장이니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세계적인 하나님이기에 세계를 제일 사랑하시니 하나님의 아들 된 저도 세계를 사랑하겠습니다󰡑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지,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저를 사랑하시니 나의 엄마, 아빠, 누나, 형님, 사돈의 팔촌, 그 다음엔 우리나라만 사랑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미국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소련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일본, 한국 등 모든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몇백 분은 계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하나의 사랑권내에 품으려는 분이기 때문에 설령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대한민국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대한민국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버리고 세계를 취하느냐, 세계를 버리고 대한민국을 취하느냐 할 때 어떤 것을 취하겠습니까? 세계를 위하여 세계를 사랑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은 자기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나라를 다시 부활시켜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시아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기반이 없다고 해서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21세기 혹은 수백 세기 후에도 필요한 사상만 가지고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의 사상으로 등장할 것이요,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 선생님이 수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과 세계 인류에게 절대 필요한 사람입니다. (22-137, 69.02.02)
     
     
사랑의 전통과 역사를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통일교회 선생님으로서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사명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버지여, 저는 저 깊은 시궁창에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의 참아들이 되겠습니다. 사탄도 공인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어떤 악당의 무리들도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인류가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세계의 모든 민족이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을 선생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의 통일교회 식구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할머니들은 좀 나은데 젊은 아주머니들이 말씀을 듣겠다며 가까이 와서 갑자기 옷을 만지려고 하고 발을 만지려고 했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입장이 곤란했겠습니까? 그 일 때문에 선생님이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것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어머니면 어머니에게, 자식이면 자식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자로서 자기 중심한 사탄적인 그런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천리 만리 순례의 길을 떠나도 섭섭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선생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세계 인류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전에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사랑해 달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사람이기에 사랑의 전통과 역사를 세우고, 하늘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친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자리에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손가락질합니다. 3대를 못 가서 절단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리는 무서운 자리입니다. 어린아이에게 화약을 맡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한 가지를 말할 때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없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은 못 속이는 것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공의의 법도 앞에서 감당할 수 있는 권위와 그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약속을 못하는 것이 천륜의 이치요, 인륜 도덕의 이치입니다. 
선생님은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계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밥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다 잊어버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인들은 선생님보다 더 미쳐야 합니다. 󰡐우리 엄마 통일교회 가더니 귀가 먹었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들이 󰡐엄마󰡑 하고 불러도 대답을 못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에 귀가 먹었고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 󰡐미치고 미치고 미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망한다 해도 그 충성은 영원히 남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위하고 이 세계를 위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과 통일교회를 위해 나왔기 때문에 통일교인이 선생님을 대하려면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심정을 건드리기만 하면 십 년  이상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을 가진 사나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라, 미칠 듯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지치고 생명이 위협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없는 죽음의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천번 만번 죽겠다고 해야 거기에서 부활의 권능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22-147, 69.02.02)
     
     
누구나 가야 하고 죽어서도 가야 할 참된 이념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눈물지을 때, 하나님도 눈물지으며 󰡐오냐 오냐, 그럴 수 있는 날을 이루어 주마. 네 소원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맨 나중에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역사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심사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세계를 사랑했고 인류를 사랑했습니다. 해방 직후에 선생님을 죄수로 몰아 총살하려 했던 원수들까지도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자식이 굶고 있을 때 선생님은 양복에서부터 속옷까지 다 팔아 그들에게 주고 아무 것도 없이 2주일 동안 살아본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입을 것이 없어서 이불을 쓰고 방에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참된 이념의 길은 누구나 가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죄인도 가야 합니다. 때문에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도 해방시켜 이 길을 가게 해야 합니다. 이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통일의 무리에게 있습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사명을 진 책임자로서 이를 망각하지 않고 책임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신임했다면 그것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통일교인을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눈을 뜨면 선생님의 아들딸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을 위해서 눈물어린 기도를 해본 일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려도 통일교인들을 위해서 흘렸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그렇게 눈물 흘리며 살아 온 기반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에 있어서 중요한 싸움의 경계선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통일교회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에 부풀어올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심정과 공적의 터전을 닦으며 나간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발전됩니다. 세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활동을 안 해도 영계에서 통일교회를 증거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에 널려 있는 영통인들이 통일교회 선생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활동하다 죽었으면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통일교인들도 그것을 본받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을 누구보다도,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누나 형님보다도, 동생보다도 더 사랑하고 귀한 것을 주려고 했습니다. (22-149, 69.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