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 (사랑이야기 - 제 4 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3 장 참부모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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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사랑을 가지고 오신 참부모님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아버지다'라고 하는데, 어떤 아버지입니까? 지금까지 기독교는 모르면서 그냥 아버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설명을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하는 것은 현실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아버지 자리, 참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종적인 축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영원불변입니다. 그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한 참부모 앞에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입니다. 이와 같이 참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부모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몰랐습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이것을 확실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냐?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생각 가지고는 안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실험을 해서 틀림없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의 말이 그렇다 하면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일반 지도자와 다른 점입니다. 일반 지도자와 같이 응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제를 가지고 실천하면서 사는 동시에 실제의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를 증명하는 하나의 표본상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참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는 왜 했느냐? 종적인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 하나님의 발판이 없고 발판이 없으니 활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활동하기 위해서는 횡적 발판이 필요합니다. 종적인 것이 횡적 발판을 중심삼고 주고받으면 운동이 벌어집니다. (184-250, 89.01.01)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 조상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종적인 주체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자가 됨으로써 90도를 맞추어 중앙선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내적 사랑, 외적 사랑이 하나됨으로써 종적 기준 앞에 횡적 사랑의 판도가 확장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횡적 사랑판도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 인류의 시조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184-258, 89.01.01) 참된 부모가 찾아오는 사랑의 길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조상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종적인 주체되는 창조주 앞에 횡적인 주체입니다. 그래서 동과 서를 이어 나갈 수 있는 횡적인 주체자가 되어 90도를 맞추어 가지고 중앙선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사랑의 길은 직단거리를 통하는 길입니다. 사랑은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해도 직격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적인 저 높은 곳에 있으면 수직, 제일 직단거리를 통해야 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수직밖에 없기 때문에 직단거리입니다. 제일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수직으로 결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론적으로 심각했습니다. 이론적 근거가 사상적 체제를 중심삼고 개인적 인생관,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관과 우주관에 일치돼야 합니다. 방향성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일치될 수 있는 방향성을 무엇으로 찾을 것이냐? 민족 정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민족 전통적 지식이라든가 문화배경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랑의 전통 외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의 전통은 하나이고, 직선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직선의 역사를 거쳐오는 직행적 전통, 사랑의 노정은 사탄세계에는 없습니다. 사탄세계에는 곡선적이고 혼선적인 것으로 사랑이 엮어져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다가 다 떨어져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부모가 찾아오는 길은 수직선 외에는 없습니다. (184-258, 89.01.01) 우주의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 남자 여자가 동서에 있는데, 그들이 참된 사랑의 길을 찾아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최단거리의 직선이라면, 남자가 동쪽으로부터 중앙선에 와서 닿고 여자가 서쪽으로부터 중앙선에 와서 닿으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맞느냐? 오목 볼록이기 때문에 맞는 것입니다. 여자가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찾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여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남자 여자를 찾으면 하나님은 참사랑 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사랑은 천지의 대도를 통하고, 천지의 모든 권한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상속권(相續權)이 있고, 언제나 동거(同居)할 수 있고, 언제나 동참(同參)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가는 데는 아내가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자는 데 들어갈 때 아내가 인사하고 들어갑니까? 남편은 여편네가 궁둥이를 잡아뜯더라도 '이거 왜 이래' 하면서도 들어오라고 이불을 들추게 돼 있지 내쫓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동거권이 있는 것입니다. (184-259, 89.01.01) 사랑은 직단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어디에 가서 만나느냐? 둘이 중앙선으로 가야 됩니다. 남자가 조금만 더 가도 왜 더 가 하고, 여자가 조금 더 가도 왜 더 가, 똑같이 가야지 이러는 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앙선에 와서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만나게 되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90도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은 직선,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이 수직 앞에 절대적으로 90도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참사랑이 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길이요, 원형(原型)적인 모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로서 종적인 자리에 있지만 남자와 여자는 횡적인 부모로 성숙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몸과 마음이 공명하게 됩니다. (184-261, 89.01.01) 선생님에게 미친 초창기 통일교회 식구들 오시는 주님, 메시아는 무엇을 가지고 오느냐? 참사랑을 갖고 옵니다. 참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참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까지 올라가 봐도 필요합니다. 우리 조상인 아담 해와도 참사랑이 필요했고, 하나님마저도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237-284, 92.11.17) 인간세계, 타락의 세계에는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꿈같은 얘기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참사랑은 좀 다릅니다. 우리 통일교회 초창기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나 전부 미쳤습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어했느냐? 이 세상의 여자 남자가 서로 그리워하는 이상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통일교회의 식구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종횡을 중심한 참사랑은 종적으로 나오는 힘이 횡적으로 통하고 횡적으로 나오는 힘이 90도를 통하면 주변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바람이 불게 되면, 봄바람이 불게 되면 사람이란 존재는 전부 꽃이 피게 되어 있습니다. 초창기에 통일교회에는 심정적 봄동산이 열렸습니다. 그러니 70이 된 노인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아이고, 언제 보나 하며 그리워했습니다. 남자 여자가 사모하는 첫사랑 이상의 사랑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나이를 초월해 남자나 여자나 한 방향으로 집중했습니다. 그 사랑의 움직임이, 90도를 맞추어야 할 위치가 다르더라도 그 수직이 같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연 가운데서 전부가 그런 방향으로 선생님을 중심삼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를 택했습니다. 그때 통일교회 여자들 세계에서는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하고, 아주머니도 과부도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으며, 처녀들까지 자기가 우주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혼자 사니까 내가 선생님 아내 돼야 되겠다 하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렇게 소용돌이를 치는데, 80대 소용돌이로부터 70대 소용돌이, 60대 소용돌이, 50대 소용돌이, 40대 소용돌이, 30대 소용돌이, 20대 소용돌이, 10대 소용돌이까지 쳤습니다. 그 바람이 불어 10대로부터 70대, 80대까지 묶어놓아야 여자가 타락한 세계의 모든 곡절을 풀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풀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선생님 대해서 그렇게 야단이니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돌멩이로 치고, 몽둥이로 치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뭐 안 한 짓이 없습니다. 별의별 놀음 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꼴을 다 봤습니다. 선생님이 자기 여편네를 빼앗아 데리고 산다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그 많은 여자들을 어떻게 다 데리고 살겠습니까?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욕이라는 욕을 다 퍼붓고, 할 짓 못할 짓 다 했습니다. 옥에 가두고, 발길로 차고, 모둠매를 치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아담의 주관성이 전도됐기 때문에, 여자를 잘못 가르침으로써 이 수욕의 길이 생겼으니 여자에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는 남자 대표되는 선생님을 치라고 했습니다. 통일교회 배후의 역사를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 현실에 적용돼서 실천장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을 전통으로 알고 그 역사를 대할 때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고, 자세를 갖추어 하늘땅 앞에 수욕의 모습을 해방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184-262, 89.01.01) 초창기 통일교회에 불었던 봄바람 끝날의 탕감복귀는 아담 해와 때 벌어졌던 모든 일이 그냥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남자 여자를 두고 볼 때, 남자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아버지고 여자 대표자로 내세운 것이 참어머니입니다. 그러니 남자는 전부 아버지의 분신이고,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땅 위의 여자는 역사 이래 참된 남편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남성을 맞을 수 있게끔,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를 중심삼고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 아버지는 온 세계의 아버지 입장인 동시에 복귀를 위해서는 남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하늘이 공인하고 부모가 공인하는 이상적 남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전부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미국 여자든, 호랑이 같은 여자든, 미치광이 같은 여자든, 그저 말 궁둥이같이 생긴 여자든 선생님만 보게 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설명 없이 좋다는 것입니다. 동네에 남자가 있으면 그저 그 남자의 울음소리를 들어도 좋고, 웃음소리를 들어도 좋고, 욕하는 소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를 택하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전부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팔십 난 할머니도 '내 남편은 문선생이다' 했습니다. 열 두살 난 여자까지도 '내 이상상대는 선생님이다. 다른 데 시집 안 간다' 그랬습니다. (1166-265, 87.06.07) 6천년의 봄은 한 번 오는 것입니다. 어느 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춘기라는 것은 한 번입니다. 혼인 결정을 할 때까지 봄바람이 부는데, 그것이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수천 년, 수만 년의 역사를 거쳐 비로소 한국 땅에서 그 봄바람이 분 것입니다. 이화여대 사건도 그런 것입니다. 380명의 여자 대학생들에게 바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80여명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왔습니다. 목욕 간다고 해서 뛰쳐나오고….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못 나오게 하려면 나를 죽여주시오 하면서까지 나왔습니다. 죽어도 학교는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곁에서 똥 냄새가 나고 발구린 냄새가 나도 그것이 구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163-258, 87.05.01) 구세주란 곧 사랑의 구세주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은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차려야 됩니다. 바로 가야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선생님을 내 아버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을 희생시켜 아들의 길을 닦았습니다.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딸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만물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신약시대는 부모님이 올 길을 위해서 자식들이 제물 되는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에서 사랑을 갖고 만물을 주관하고, 사랑의 자녀를 품고, 사랑의 아내와 남편을 품고 부모의 자리를 설정하는 것이 창조이상이었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으로 유인받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끝에서부터 탕감해야 됩니다. 그래서 만물이 피를 흘렸습니다. 거짓된 사랑의 피를 탕감해야 합니다. 죽음을 걸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 아들을 부르기 위한 역사였고, 신약시대는 자식을 희생시켜 부모님을 이 땅에 부르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데, 그 주가 누구냐? 참아버지입니다. 거짓 아버지의 뿌리를 가진 것이 인간의 탄식이었기 때문에 '참아버지 되는 뿌리가 오소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메시아 사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말로 메시아는 밥장사를 의미합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뭐냐? 사랑의 구세주입니다. 사랑의 전통을 중심삼고 종횡의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권을 갖다 줄 수 있는 구세주입니다. 그 전통적 중심이 사랑입니다. 구세주는 사랑의 구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만물을 희생시켜 사랑의 아들딸을 찾았습니다. 이 땅 위의 사랑의 아들딸들의 한이 뭐냐? 부모를 못 모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못 모셨습니다. 부모를 못 모셨으니 자녀들은 피를 흘려서라도 부모님이 올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입니다. (184-266, 89.01.01) 신약시대에는 아들딸이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님 오실 날을 바라던 것이 기독교 사상입니다. 주님이 뭐냐? 아버지입니다. 신부를 빼앗아 갔으니 주님이 아버지로 와서 사탄세계에서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강제로 찾는 것이 아니라 만국이 환영하는 가운데, 어서 오십시오! 이 땅 위에서 모셔 가십시오! 하는 후원 가운데서 찾아야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후원하는 후원부대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떨어집니다. (184-268, 89.01.01) 부모님이 오시면 그때는 만국 전체가 하나의 나라가 됩니다. 땅도 기독교 품에, 만민도 기독교 품에 있으니 외적 만물과 내적 인간이 하나되면 가인 아벨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이 사랑으로 통일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기독교 나라들이 부모 되는 분을 만국의 조상으로 모시고 역사 이래 없던 귀한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재산과 자기 자식과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이 왔지만, 기독교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세계 전부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부모가 왔지만, 천지의 기원이 시작되게 하는 그 주인이 왔지만 반대했습니다. (184-267, 89.01.01)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씨를 갖고 오시는 주님 예수님은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세계, 무형세계와 실체세계를 맺어 줄 수 있는 주체적 자리에 있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과 이상의 표상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긍정한 오른편 강도와 부정한 왼편 강도는 선악의 씨가 되어서 뿌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림주가 참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찾아 올 때는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 때에 벌어졌던 것과 반대입니다. 그때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싸웠습니다. 오시는 주님 때에는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가 하나돼야 합니다. 그런 일을 전부 맞기 위해서 2차대전 때 영국․미국․불란서가 연합국으로 하나되었습니다. 영국은 여자고, 미국은 영국의 아들입니다. 미국은 남자고, 불란서는 천사장격입니다. 하늘편 아담 국가, 하늘편 해와 국가, 하늘편 장자 국가, 하늘편 천사장 국가가 하나되어 오시는 아버지를 모셔야 됩니다. 아버지는 누구냐? 재림주입니다. 재림주를 모시면 천사장은 자연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와 상대해서 추축국이 등장합니다. 일본이 해와고, 독일은 악마세계에서 제일 악한 차자권입니다. 이태리는 장자권입니다. 독일을 주축으로 해서 세 나라가 하나되고, 미국을 주축으로 해서 영국 불란서가 하나되고, 이렇게 하늘편 장자와 사탄편 장자가 부딪쳐 사탄편을 때려잡음으로써 통일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해와 품에서 장자권 차자권이 연합해서 오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야 됩니다. 신랑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 신랑을 찾아가야 되느냐? 사랑의 동기가 그릇되어 있고, 핏줄을 이어받은 것이 그릇되었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은 참사랑을 가지고 옵니다.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씨를 가지고 옵니다. 타락 이전 아담은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의 아기씨가 하나돼 하나님의 사랑의 결혼식을 전수해야 할 텐데, 이게 끊겨 버렸습니다. 그 한스러운 역사시대를 탕감해야 합니다. 수많은 피를 흘려 가지고 둘로 가려야 돼요. 제물을 둘로 갈라야 됩니다. 탕감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탕감해서 두 세계의 존재권을 2차대전 때에는 반드시 하나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오시는 주님 앞에 하나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추축국이 망하고 세계 통일권이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하나만 되었으면, 영국․미국․불란서가 선생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지도 받았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화여대 사건과 직결됩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중심삼고 복귀되었으면 기독교 6대 종파의 모든 아들딸들이 와서 순식간에 완전히 2세를 점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229-301, 92.04.13) 핍박의 길을 걸어온 이유 참부모를 이 땅 위에 모셔서 만국의 해방을 갖추는 것이 종교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졌고 동서가 분립됐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40년 전에 이런 얘기를 할 때 누가 선생님 말을 들었습니까? '쫓겨나고 할 수 없어서 저런 말하지, 거짓말을 해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뼈다귀도 없는 갈비처럼 하누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올라갔습니다. 기독교가 선생님을 받들었으면 아래서부터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횡적인 기준에서 만국의 기독교가 협조하고 국가가 협조하는 가운데 선생님이 어머니를 만나 축복결혼식을 했더라면 만국이 통일되었습니다. 그랬으면 선생님에게 핍박이 없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모가 땅 위에 임할 수 있게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제물과 아들을 통해 준비했던 터전 위에 부모가 왔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만국에 왕권을 세우지 못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쫓겨나는 입장에서 다시 찾아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가는 길을 하나님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협조해서는 안 되게 돼 있었습니다. 협조하는 날에는 기독교를 손대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다시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자신을 치면서 기독교를 보호해 나왔고, 한국의 기독교를 키워 왔습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만일 선생님이 자신을 보호하고 기독교를 치는 날에는 기독교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핍박받으면서 극복해서 본래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민족․국가․세계적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사탄이 총동원해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생활은 감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감옥이 개인기반을 닦는 종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종적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지상지옥 위에 하나님의 종적 심정권을 남기기 위해서는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볼 때, 제일 가까운 직단거리입니다. 이 자리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승리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몸 마음을 중심삼고 고통을 부정하는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몸과 마음이 여기에서 90도,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세계적 판도권인 횡적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종적 기준에 맞추고, 몸을 횡적 기준 90도에 맞춘 생활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 환경의 모든 것을 자기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이 바라던 소원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일원과 같이 옥중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옥중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형님이요, 누나요, 동생이요, 아버지요, 언니요, 아내요, 어머니요, 할아버지같이 모실 수 있는 심정이 우러나야 됩니다. 이것이 안 돼 가지고는 개인해방이 안 됩니다. (184-271, 89.01.01) 밑창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복귀섭리 복귀의 길을 가려면 종의 종의 길을 가고, 종의 길을 가고, 양자의 길, 서자의 길, 직계 자녀의 길, 그 다음에 어머니의 길과 아버지의 길을 걸어서 하나님에게 가는 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8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것이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영광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망국지종(亡國之種)이 돼 이 원수의 세계에서 감옥에 처박히고, 노동판에 처박히고, 포로와 같이 취급받는 것입니다. 등에는 죄수의 이름이 붙고, 포로의 이름이 붙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이름이 있고, 농민의 이름이 있고, 모든 비참한 사람의 사정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탕감을, 종적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그 일을 누가 하느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역사를 망쳤으니 아버지가 책임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책임 못함으로써 어머니가 그 꼴 되어 망했으니 아버지가 책임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종의 종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종적 기준을 닦으면 사탄이 아무리 치려야 칠 수 없습니다. 안 꺾여 나갑니다. 종적으로 가는 길, 종으로부터 양자, 서자, 쭉 해서 하나님의 심정으로까지 올라가는 길에서 전부 쳤지만 선생님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84-279, 89.01.01) 감옥에서 구세주가 못 되고 평화시대에 구세주라고 한다면 그는 가짜 구세주입니다. 감옥에서 평화의 구세주의 권위를 갖추게 되면 평화세계에서는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왕이 됩니다. 왕권을 중심삼고 만국을 지휘할 수 있는 영원한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러한 권위를 갖추었습니다. 그 증거로 흥남감옥에서 선생님과 같이 옥중생활을 한 사람이 옥중의 성자라고 선생님에 대해서 책을 썼습니다. 감옥이 선생님에게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채찍이 제아무리 무섭고, 그 환경이 제아무리 모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위하는 향심을 꺾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흠모하는 사랑과 힘에 꺾어졌습니다. 그 힘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종적인 단계를 해방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히 닦았습니다. 개인․가정․종족․국가․세계적 기준까지 전부 닦으며 올라왔습니다. (184-282, 89.01.01) 심정의 십자가를 지셔야 할 재림주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가기는 쉬웠지만, 감정을 곧추세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하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해와가 할 수는 없습니다.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남자인 아담이 조절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어느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정상의 길을 개척해 나온 분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하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지고 그것을 떼어 버리기 위해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의사가 아픈 사람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심각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병을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는 역사시대의 비참했던 남녀 관계의 비운의 역사가 스쳐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부가 흘려야 될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을 대표한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참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로서 해야 할 것은, 심정세계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면서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이 있을 것이요, 분하고 원통하게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도 있을 것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 길을 못 가겠다고 하던 남자도 있을 것인데, 그들의 그러한 운명길을 책임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상에 엉클어졌던 악의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입장입니다. 이제는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난 비소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아 가며 조롱하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 엉클어지고 찌그러진 것들을 모두 얽어모아 완전한 하나님편 가정으로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44-289, 71.05.24) 인류의 부모로서 걸은 사랑의 십자가의 길 선생님은 이제 죽더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의 사람이 선생님의 무덤을 찾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학자세계에서도 그렇고, 정치가도 그렇고,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노동자도 그렇고, 농민도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는 세계의 운세가 한국으로 몰려드는 판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5천년 전통적 역사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피어린 희생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많은 나라 가운데 이 나라를 수습해서 선생님을 보냈습니다. 그 수습대책을 경륜하기를 벌써 몇 세기 전부터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민족은 무릎이 닳도록 꿇고 합장하여 천상세계에 감사해야 될 것인데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를 선생님이 분하게 생각했으면 이 민족은 옥살박살 되었을 것입니다. 몰라서 반대하니 선생님이 찾아가서 흉금을 터놓고 가르쳐 준 후에도 반대하거든 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구약시대 신약시대에 그랬으니 선생님이 지금까지 부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만민 앞에 나눠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하니 인류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모르니까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른다고 해서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돼서 부모가 되고, 어떻게 돼서 자식이 된 것을 모르고 반대하기 때문에 칠 수 없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알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기다리다 보니 80세가 되었습니다. (184-290, 89.01.01) 한 50년 지내고 보니 요즘 한국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에는 '문 아무개' 하더니 '문선생' 하다가 요즘에는 '문총재님'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세계 대통령이지' 하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 이후 5천년 역사에 처음 나타난 위인'이라고 한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138-196, 86.01.21) 이제는 그만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교회 후세들에게는 순교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순교한 사람이 여러 사람 있습니다. 그 나라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순교한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기억할지언정 순교한 사람의 이름은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 나라를 위해서 보냈으면 그 나라를 구하고 죽어야 할 텐데 구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책임을 다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교한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해방될 때까지 선생님 책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 앞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욕을 먹고도 잊어버리려고 하고, 매를 맞고도 잊어버리려고 하고, 분한 것을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섭리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 땅 위에 부모로 책임하러 와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개인한테 차이고, 가정들한테 차이고, 종족들한테 차였습니다. 공산당이 하는 심판, 인민재판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인민재판을 받듯이 천대받았고, 가정적으로도 선생님 가정이 미국에 가서 고통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까지도 학교에서 애들한테 '무니 무니' 하는 천대를 받았습니다. (184-291, 89.01.01) 통일교회 역사는 선생님의 피어린 투쟁사 선생님의 가정이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선생님 개인의 십자가는 물론이지만, 어머니도 개인적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또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적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3차 7년노정 동안 선생님이 가정을 이끌고 세계 십자가 무대에 나선 것입니다. 선생님은 21년을 중심삼고 참부모의 날부터 참자녀의 날, 참만물의 날, 참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피어린 투쟁사의 기록입니다. 자녀의 날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자식들을 고생시켜야 됩니다. 만물의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모든 소유가 없어야 됩니다. 선생님 집안에는 내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렸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이 땅 위에서 나라의 기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넘어선 날이 1968년 정월 초하루입니다. 7년노정 이후에야 벌어졌습니다. 그 기간에 사탄이 갖은 흉악한 궤계(詭計)를 선생님 가정과 통일교회를 대해서 꾸몄습니다. 선생님이 참부모가정을 완성하기 위한 21년노정에서 1960년 만 14년만에 선생님이 성혼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소생, 장성입니다. 이 장성인 2차 7년노정에 남성기준에서 책임분담, 여성기준에서 책임분담을 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됩니다. 국가, 세계의 어떤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그 본질적 기준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전통을 지닌 사나이가 되지 않고는 해와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담을 짓고 해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데려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훌륭한 여자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나, 석사 학위를 가진 여자가 없나, 무슨 한다하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를 모셔다가 교육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해와가 아담을 통해서 지은 거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모르는 데서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친척이 많아서도 안 됩니다. 3대가 뒤에 따라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에서는, 정상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어머니가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오빠도 없거니와 아버지도 없고, 혼자였습니다. 모녀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주님을 모시기 위해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는 한국의 대표였습니다.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고 하는 복중교에서부터 따라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그런 모든 해와적 책임을 한, 한국의 역사를 대표한 할머니들한테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3년 동안 어머니와 같이 살지 못하고 밖에 따로 집을 구해 살게 했습니다. 이 껄렁껄렁한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울고불고 다니기 때문에 그들을 자리잡게 해주기 위해 어머니를 뒷방살이 시키면서 가인 여자들을 어머니 이상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랑이 아닙니다. 하늘적 사랑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리잡을 때까지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어머니 자리는 거짓이니 어머니 자리를 내가 가져야 되겠다. 어머니 자리를 내놓아라' 하면서 어머니 방에 와서 떼쓰는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이게 세상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입니까? 그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영적으로 선생님을 보면 미남이였던 모양입니다. (184-292, 89.01.01) 지금에 와서 보니 어머니를 잘 모셨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애기 열 넷을 낳았습니다. 애기를 낳는 데도 어머니가 챔피언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닐니리동동으로 낳았는데도 아이들을 보면 팔삭둥이가 아니라 다 잘생겼습니다. (184-294, 8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