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독교의 영적 기반 상속과 성혼식
복귀섭리는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을 찾기 위한 역사
인간 시조인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인류의 부모가 세워져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가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그 타락한 가정에서 타락한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타락한 가정은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악의 권내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안팎으로 인연 맺을 수 있는 가정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찾는 데는 나라를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을 찾아 세우기 전에 하나의 남자와 여자부터 찾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중심인 사탄을 자연굴복시키고 그에게 종을 부리듯이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사탄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 명령과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기준을 갖춘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자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아들과 딸이 되어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요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로 원한이 남아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 여자가 남자를 타락시킨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남자의 원수는 여자로 되어 있고, 여자의 원수는 남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남자로서 주체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적 입장에 있는 해와가 제아무리 간교한 행동으로 유인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자의 말을 들음으로써 타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안 들어야 할 입장에 서야 할 주체되는 아담이 상대인 해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아담이 해와의 원수 입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대일의 입장에서 받게 되면 참다운 부부의 인연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남성과 여성이 이 땅 위에 나타나서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를 위한 남자가 아니요, 여자는 여자를 위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안팎이 되어 그 누구도 분리할 수 없는 일체된 심정적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참된 가정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이러한 기준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간격이 완전히 좁혀지지 않습니다. 사탄과 인간과의 간격을 벌여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인간끼리의 간격을 좁혀야 합니다. 그 다음에 타락된 인간으로 복귀된 일남일녀의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 인간이 역사과정을 통하여 범죄한 내용들로 인해 벌어졌던 하나님과의 간격을 좁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승리적 사랑권을 만들 수 없습니다. (44-278, 71.05.24)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담당했던 사명
오늘날 기독교가 해 온 사명은 참된 아들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와서 모두 나에게 접붙임을 받아라 할 때, 일시에 이 세계가 접붙임을 받게 되면 완성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일시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세계적으로 확대시켜 놓은 것이 제2 이스라엘권입니다.
제2 이스라엘권은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권입니다. 왜 그것이 천사세계에 해당하느냐? 아담이 아직까지 완성하지 못한 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을 중심삼고 일은 벌어졌지만, 그래도 천사장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전체적인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즉 천사장의 위치를 중심삼고 거기에 해당하는 완성적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권이 지금까지의 천사장권입니다.
완성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그 권은 상대이상을 이룬 자리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리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예수님은 물론이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간 사람들도 이와 같이 개인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천사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천사들은 상대적 인연을 결정짓지 않고 홀로 있는 존재입니다.
누가복음 20장 35절을 보면,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와서 일곱 남편을 가졌던 여인을 가리켜 저가 영계에 가게 되면 누구의 아내가 되오리까? 하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영계에서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영적 구원이라는 것은 타락한 천사장권에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권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 해와를 완성권으로 인도해야 될 책임과 사명이 천사장에게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 이하 천사 전체가 합동하여 예수님이 지상에서 아담 해와가 세워야 할 완성기준을 세우는 데 협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재창조 역사에 협조하는 사명을 계승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천사장의 사명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일남일녀가 나타나서 상대적 사랑권을 성립시키는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사장 세계가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들을 해원성사하고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원성사되지 않고는, 다시 말하면 천사장권이 옹위할 수 있는 아들딸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담 해와가 완성한 아담 해와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44-282, 71.05.24)
오시는 주님이 먼저 해야 할 책임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냐? 천사장 승리권, 예수님을 위시하여 지금까지 영계에서 승리해 왔던 승리권을 그대로 상속받아 나와야 됩니다. 천사장 심정권을 중심삼고 천사장 세계, 곧 영계 전체를 중심삼고 천사장이 사랑받던 기준의 사랑을 받았다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장의 사명을 대신하는 자리에 서 옛날 천사장이 사랑받던 것 이상 사랑 받는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내용적으로 보게 되면 아들이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서는 천사장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사명 터전이 거두어지기 위해서는 천사세계 전체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습니다. 내용적인 면에서 예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 역사는 아들 하나를 세우기 위한 역사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 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내적인 인연을 통하여 땅 위의 아들도 사랑할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영계에서 천사장 이상 사랑 받았던 것과 같은 사랑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상에 탄생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사랑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일체를 정복해야 됩니다. 전체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예수님을 중심삼고 완성하지 못했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외적으로는 천사장 입장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하다가 갔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가인적인 사명이요, 가인적인 사명은 천사장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외적으로는 가인적인 사명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아들의 입장을 안팎으로 상속받고 나타나야 합니다.
재림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천사장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천사장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조건을 성립시키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참아들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영계의 예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천사세계와 예수님과 온 영계가 합동하여 사랑의 내연을 갖춘 승리의 발판을 가지고 지상에 현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 동산을 복귀할 수 있는 전체적인 사명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재림주님 한사람은 내적인 아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 기준을 대신하고, 천사세계의 사랑을 완전히 대신해야 됩니다. 오시는 주님은 영계의 천사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총합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 양자의 역사, 아들의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습니다. 아들의 역사를 거쳐 승리한 후에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으로서 승리한 사랑의 인연을 상속받고 나서 부모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난 다음에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44-283, 71.05.24)
재림주님은 천상세계의 영적인 권한 일체를 전수받아야
재림시대에 재림주가 이 땅 위에 오는 목적은 사랑이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재림주는 하나님이 제일 이상적 표준으로 세웠던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참된 사랑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옵니다. 그러니 재림주가 이 땅 위에 나타나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구원섭리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는 영계에 들어가서 실체구원권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부모의 중심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권이 그 당시의 영육을 중심삼은 교주를 모셨다 하더라도 그건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적인 부모를 중심삼고 일체된 기준만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그 중심기준이 영적 구원섭리권 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자리에 있는 모든 영계는 예수님이 실체권에 못 섬으로써 영계 전체가 실체구원이 못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권의 사람도 예수님을 높은 표준으로 해서 그 아래에 전부 다 영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영적 구원섭리권이 지상의 실체섭리권과 더불어 완성을 보기 위해서는 재림주가 천상의 영적 구원섭리의 모두를 이어받아 와야 합니다. 섭리노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영적 세계의 모든 것을 상속해서 주체성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적 패권을 받아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인(御印)을 받아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장자권(長子權)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원리를 찾아 나왔지만 결국 맨 나중에는 영계의 이 모든 것을 패스해야 됩니다. 영계를 패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영계를 잃어버리게 한 장본인이 해와입니다. 해와로 말미암아 영계와 이 실체세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가 주도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도 어머니가 모자협조했고, 또 베레스와 다말을 보더라도 다말이 생사를 걸고 하늘의 혈족을 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자협조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원칙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이 이 원리의 길을 알고 나서 계속적으로 해야 할 것은 천상세계의 영적인 모든 권한을 전수받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영계를 통하는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준비하기 위한 영적인 신령집단이 있었습니다. (212-72, 91.01.02)
재림이상의 중심 내용은 신랑 신부
영계와 육계를 볼 때, 영계는 가인형(型)이요, 육계는 아벨 형입니다. 그것은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은 영적이요, 실체를 가진 아담 해와는 육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아들에게 영적인 천사장이 순종 굴복해야 되고, 그 아들을 천사장이 사랑해야 됩니다. 천사장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전세계 60억 인류의 운명은 이 땅 위에 오시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60억 세계 인류를 대표한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이상이요, 또 그러한 가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기독교의 재림이상입니다.
그 재림이상의 중심 내용은 신랑 신부입니다. 신랑 신부의 사랑이 지상에 현현하는 때가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때입니다. 신랑 신부가, 새로운 부부가 현현하는 때가 이상이 출발하는 때입니다. 재림이상은 혼자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되지 않고는 횡적인 연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혼자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이 해온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걸 인계 받아야 된다 해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그런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소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며 하늘만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개인적으로 이루고, 상대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부가 현현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발판이 지상에 결정됩니다. 그와 더불어 역사에 없었던 심정적인 횡적 터전, 다시 말하면 지상섭리의 기반이 마련되어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기도할 때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제목도 부부가 의논해서 정하고, 기도를 드려도 부부가 함께 드려야 합니다. 타락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 씨를 뿌린 것도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둘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사랑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해야 합니다. (44-285, 71.05.24)
메시아는 참부모로 와야 된다
우리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은 종적인 부모요 아담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종횡의 부모가 하나되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된 것이 한입니다.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 보았으면 하는 열망을 우리는 다 갖고 있습니다. 종교니 무엇이니 하는 것도 전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면에서 하나되어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이 땅 위에 있었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거짓 부모가 되었습니다. 거짓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역사적 사명을 대행하는 하나의 명사를 씌워 부르는 존재가 구주입니다. 메시아라는 존재입니다. 구해 주는 데는 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랑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려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참된 부모로 와야 됩니다. 참부모로 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참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로 나와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하나의 남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남자 중에서도 생활을 잘하는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고, 영계를 위주한 남자를 찾아 나온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독생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독생자가 나왔는데, 독생자 혼자서는 안 됩니다. 독생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독생녀를 찾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서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결혼해야 됩니다. 결혼해서 하나님이 종적인 부모로서 기뻐하고 독생자 독생녀는 횡적인 부모로서 기뻐할 수 있는 신랑 신부가 되어 지상에서 아들딸을 낳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종자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나라를 저버리더라도, 유대교를 저버리더라도 제일 필요로 했던, 다시 찾아야 하는 주체적 동기가 여자입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 가면서도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2천년 동안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기독교 신자들이 신부되겠다고 허덕이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표준이 메시아입니다. 참된 부모의 자리를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6천년 전 인간이 횡적인 부모로서 하나님을 종적인 부모로 모심으로써 종횡의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기쁨의 출발을 볼 수 있었던 기원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침범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빼서 접붙여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받아 접붙여야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사상입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의 혼인 잔치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58-218, 72.06.11)
1960년도에 있었던 선생님 성혼식의 의의
역사적인 기점을 통일교회에서 선포했습니다. 그때가 1960년도입니다. 완성단계는 혼자 못 올라갑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야 올라갑니다. 그 다음에 세 아들이 합해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예수님 때에는 세 제자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혼자 외톨이가 되어서는 못 올라갑니다. 아담이 가정적으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정을 갖지 않고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결국 세 제자도 상대를 맞아 가정을 만든 다음 예수님의 가정과 더불어 여덟 식구를 만들지 않고는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여덟 식구로 떨어져 출발했기 때문에 여덟 식구를 만들어서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노아 때의 심판도 여덟 식구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공식노정이기 때문에 통일교인들도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이념을 인계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하지 않고는, 이것을 복귀해 놓지 않으면 예수님 바라던 가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의 바라던 민족이 안 나오고, 나라가 안 나오고, 세계가 안 나옵니다. 아담이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떨어졌기 때문에 노아 심판 때에 여덟 식구를 남겨 가지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58-220, 72.06.11)
1960년에 선생님은 성혼식을 올리기 전에 36가정 중 세 가정을 먼저 약혼시켰으며, 선생님이 성혼식을 올린 후에 이 세 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 자녀가 하나님의 이상권에 섰다고 하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완전히 갈라질 수 없다는 승리적 기반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많은 반대를 받았습니다. 국가로부터 쫓기고, 교회로부터 쫓기고, 모두로부터 쫓기는 환경권에 서지 않으면 복귀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국민이 총동원하여 박해했습니다. 통일교회에 대해 수십 명이 선생님을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투서를 하였습니다. 거국적, 거족적으로 통일교회를 쓰러뜨리고 통일교회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 성혼식 전날까지도 선생님을 해치려는 투서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효원 협회장과 협력하면서 승패를 다투는 환경에서 성혼식을 올려습니다. 그 성혼식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마음 편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싸움이었습니다. 문 밖에서는 반대하는 소리, 그런 중에서 성혼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통일교회는 승리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성혼식 전에 세 가정을 세운 것은 예수님의 세 제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신랑 신부의 이상(理想)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죽어서 남긴 기준을 승리한 평면적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은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 세 가정은 역사 전체의 모든 것을 탕감하는 중심 가정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대에는 제1 아담과 제2 아담의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 모든 과거를 탕감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명이었습니다. (55-164, 72.05.07)
우리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원한의 터전을 메워 나가야 되겠기 때문에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고 세상 전부가 동원되어 아우성치는 판국에서도 그와 같은 자리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그것을 탕감복귀한 것이 1960년도의 선생님 성혼식입니다. (58-220, 72.06.11)
1960년도에 성혼식을 이룰 수 있었던 기준
1960년도에 성혼식을 중심삼고 출발한 기준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받들었더라면 양자의 기준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그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오신 주님은 종의 종살이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맨 밑창에서부터, 감옥 중의 감옥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그것이 21년을 중심삼고 출발한 7년노정이었습니다. 이 노정은 3단계 복귀노정을 통해서 야곱이 하란에서 종살이하면서 21년을 걸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되풀이해 나온 것입니다.
해방 이후 14년이 지나서 성혼식을 했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소생․장성․완성시대에서 소생시대를 7년으로 잡으면 장성시대까지는 14년이기 때문에 해방 이후 14년이 지나서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성급 아담으로 왔기 때문에 그 기준에서 실패한 것을 대한민국의 판도에서 소생․장성의 양차 7년노정을 거쳐 통일교회의 환경을 에워싸고 반대하는 모든 여건들을 억누르고 싸우는 전쟁 마당에서 성혼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써 영육의 부활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부활은 가져왔지만 육적 부활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영적 구원섭리의 도리는 세웠지만 육적 구원섭리의 도리를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절반을 갈라놓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실패한 모든 것을 수습하려면 영적인 세계의 모든 판도를 하늘로부터 인수받아 지상에서 사탄세계와 대결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진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대 격전을 하면서 성혼식을 가졌습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장성기 완성급 14년 기준을 중심삼고 영적 기반을 인수하고 실체기반 확대를 위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196-213, 90.01.01)
1960년도에 40수를 중심삼고 성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성혼식은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자의 자리를 상속받고 영적인 아들로부터 실체적인 아들의 권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천사장과 영적인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천사장과 예수님이 하나되어 지상에 오는 아들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 예수님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땅 위에 완성권을 인계받아 가지고 오시는 재림주님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접붙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상속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고 상속을 받는데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시에 남자가 접붙임을 받고 여자가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배후에는 억천만의 사건이 달려 있습니다. 사탄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여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와 남자들이 저지른 모든 죄를 가지고 참소하고 있습니다. (44-287, 71.05.24)
가장 비참한 입장에 처해야 하는 재림주 가정
죄의 뿌리는 거짓 사랑입니다. 거짓된 정적문제(情的問題)입니다. 그러기에 죄의 뿌리를 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을 마련해야 됩니다. 그 사랑의 기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선과 악은 서로 방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구주 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악한 사람의 맨 밑창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악한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합니다. 악의 맨 복판에 들어가야 악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44-287, 71.05.24)
지금까지 이 지상에는 진정한 부모가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면, 영적인 부모인 예수님과 성신이 영적 자녀를 세계적으로 확장시키는 판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기준을 세계 판도까지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둘이 맞아 떨어져서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세계적인 모든 핍박권을 능가하는 시대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까지의 과정에는 언제나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성혼식을 하고 난 이후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냐? 이 지상에 하나님을 중심한 참부모가 태어난 것입니다. 역사 이래 악한 부모는 태어난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한 부모의 기준이 이 지상에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설정되는 날 사탄은 역사이래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 나오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평면도상에서 이것이 침식당함으로써 사탄세력은 갖은 힘을 다해 반기를 들고 핍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213, 90.01.01)
오시는 주님의 가정은 비참하다면 그 이상 비참한 가정이 없을 만큼 비참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가정에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하여 모든 남녀들이 저질러 놓은 비참사가 잠깐이라도 스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이 안 됩니다.
오시는 주님이 일등 신랑이라고 해서 그 신부 되는 여자가 태평 왕궁의 왕녀와 같은 호화찬란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시는 주님의 자리는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었던 모든 고통을 언제나 느껴야 하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탕감법도가 그렇습니다. 아이고,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그 둘 사이는 그저 만나면 천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 하나는 주체고 하나는 대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한 천사장과 예수님 사이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말없는 싸움입니다. 여자로서 재료를 수집하여 남자를 평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뜻이 아니라 재림주님의 가정은 일시에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뜻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싶은 그러한 자리입니다.
역사를 두고 볼 때, 천국을 바라고 혹은 큰 것을 바라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오기는 쉬운 일이지만,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그것이 힘듭니다. 또 그런 가정이 결정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나라도 나올 수 없고, 민족도 나올 수 없으며, 씨족도 나올 수 없습니다. (44-287, 71.05.24)
심정의 십자가를 져야 할 재림주 가정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나가기는 쉬웠지만, 감정을 곧 추세워 싸움을 극복하는 입장에 처하면 그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타락은 해와가 했지만 해와가 할 수 없습니다. 심정적인 모든 문제를 남자인 아담이 조절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남자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정상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러한 분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랑을 제거하고 선한 사랑을 발전시켜 놓을 수 없습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떼어버리기 위해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즉 의사가 아픈 사람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심각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서는 역사시대에 비참했던 남녀관계의 비운의 역사가 스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부에게 눈물을 흘릴 일이 있다면 그 눈물은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을 대표한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참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역사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대표한 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심정세계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며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이 있을 것이요, 또 분하고 원통하게 사랑의 길을 갔던 남자들도 있을 것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 길을 못 가겠다고 했던 남자도 있을 것인데, 그들의 그러한 운명길을 책임지고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역사상에 엉클어진 악의 뿌리를 몽땅 뽑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중심삼고 걸려든다면 용서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아 놓고 침을 뱉아 가며 조롱하던 이스라엘 족속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주님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와 같이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비난비소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44-288, 7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