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타락 인간의 최고의 소망 (사랑이야기 -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2장 재림주님은 인류의 참부모)
무지... | 20180803225956
7. 타락 인간의 최고의 소망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 천지만물을 지은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 하나를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의 대상으로 세우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을 때 자녀로 지었습니다. 인간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신이 사랑의 주인공이라면 사랑의 주인공인 그 신이 절대적인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면, 그 사랑의 대상이 절대자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혼자서는 사랑할 수 있는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명사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사랑을 하는 데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도 혼자서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대상으로 지은 피조만물은 자신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전개시켜 지었고, 그중에서 자신의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서 창조적인 입장에 세워 놓기 위해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할 수 있고,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소성을 지녀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내정(內情)을 체득하고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동화되고 하나되는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지을 때 서로가 기뻐할 수 있고 또 그 사랑을 느낄 수 있게끔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절대자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우기 위해 절대자와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지었습니다. (39-8, 71.01.09) 참부모는 타락한 인류의 절대적인 소망의 중심 참부모란 어떠한 존재이냐? 참부모는 전체의 소망의 상징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절대적인 소망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6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오늘날 이 세계 국가권의 중심입니다. 참부모는 앞으로의 이상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미래선상에 있어서의 출발점입니다. 역사시대의 선조들은 무엇을 바라겠느냐? 참부모 찾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부모와 영원히 상봉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민이 소원하는 것도 세계 국가를 맞기 전에 참부모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들도 참부모의 핏줄을 통해 태어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는 새로운 미래의 출발점입니다. 참부모는 역사적인 결실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서 주위의 전체가 하나의 가정에 귀결되고, 엉크러졌던 모든 것이 다시 하나의 기점에 직결될 수 있는 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시대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참부모를 만난다면 역사를 찾는 것이요, 시대를 찾는 것이요, 미래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역사를 완전히 사랑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자요,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하려는 자는 세계를 참되게 사랑하겠다는 자요, 참부모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자는 미래세계의 후손들까지 사랑할 줄 아는 가치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 참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희생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참부모의 사랑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35-237, 70.10.19) 메시아에게 접붙여야 하는 타락 인간 첫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후아담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의 복귀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완성한 아담이 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이 땅 위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냐? 인류의 참된 아버지로 와서 참된 어머니를 찾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천사장을 세워 놓고 찾아야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할 때, 아담과 해와 두 사람과 천사장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들이 우주적인 내용을 결정짓고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닦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소원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인 소원의 기점은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거짓부모가 씨를 뿌려 사망권내에서 신음하고 허덕이던 인간에게 소망의 기점이 되는 참부모가 오시는 것은 곧 돌감람나무 밭에 참감람나무가 하나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접붙일 줄 아는 주인이 있어 돌감람나무를 전부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눈을 따다가 돌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면 그 밭은 참감람나무의 밭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전부 다 돌감람나무이므로 밑동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사상과 생각을 부정하지 않고는 완전한 참은 출발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부모를 사랑하던 그런 사랑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과 욕망을 전부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롭게 접붙일 수 없습니다. 과거를 긍정하면서 출발하는 종교는 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자기의 아내나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버리고라도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며, 자식을 버리고라도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걸어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요, 하늘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통일교회는 사회로부터 일시적인 지탄과 온갖 모함을 당했지만 그것이 하늘나라로 가는 데 있어서는 원칙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안 나왔기 때문에 진실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나타나 있는 세계는 부정되어야 합니다. 개인으로부터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청산지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이 세계를 부정하고 심판하더라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심판날이며, 그날에는 자기가 세상을 중심삼고 사랑하던 모든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현실 가운데에 벌어지는 일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썩어진 세계를 밑거름으로 하여 소망의 뿌리를 박아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자라나서 완전한 뿌리를 내릴 때에는 그 싹을 뽑을 자가 없습니다. 윤리가 파탄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낡은 세대에게 비판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망해야 할 세상이 되었는데 그냥 망하도록 내버려두면 둘 다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갈라놓아서라도 살 수 있는 길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나온 내용입니다. (42-287, 70.03.27) 최후의 목적지 하늘이 우리를 세워 놓고 오라 하시는 목적과 천지의 대주재가 소망하시는 귀결점은 참부모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부모와 한번 혈연적인 인연을 맺으면 하나님을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세계를 꿈에도 부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아버지가 계시고 내 생활에 아버지가 계시는 권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심정적인 그 세계로 옮겨 주는 부모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늘이 우리를 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도(道)니, 하나님의 섭리니 해도 최후의 목적은 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결국에는 하나님이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십시오. 부모를 잃은 인간, 고아와 같은 인간, 과부와 같은 인간이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곳이 인생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차피 넘어야 할 삼팔선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넘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거든 넘자! 가야 되겠다. 가자! 할 수 있는 무리가 이 땅위에 나와야 합니다. 넘자! 세계를 위해서 나선 걸음이니 가정이 반대해도 넘자! 사회와 국가가 반대해도 넘자! 이 세계의 주의가 반대해도 넘자!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못 되어 있다면 패잔병이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이념에 젖어 있어야 되겠습니까? 아직까지 내 아들딸, 내 아들딸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다 지나갑니다. 모든 인류가 다 그러한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처자를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냐? 다 끊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몰아칩니다. 인간적인 정을 전부 믿을 수 없게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늘은 깨뜨려 버리기 위해 내모는 것이 아니라 깨뜨리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겠기에 내모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민주주의가 제국주의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악당들이 주권을 갖고 있으면 온 세상이 악당의 세계가 되겠으니, 혁명을 일으켜 깨뜨려서 민주주의를 세우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대통령으로 세워 거꾸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세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늘이 찾아 세우고자 하는 부모의 존재, 충신의 존재, 열녀의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됩니다. 우리는 각오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먼저 하늘이 세워 주시는 세계의 부모 앞에 나서야 됩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온 이념이 통일이념입니다. 사정으로 통일하지 말고 심정으로 통일하자, 부모의 심정을 본받아 너도 나도 형제가 되어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 부모를 따라갈 수 있는 표본의 인격은 어떠한 것이냐? 누구를 터전삼아 부모의 그 심정을 증거할 것이냐? 예수님은 이 땅을 소유하고 주관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배반당했습니다. 선민으로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사랑하는 열두 제자, 나중에는 세 제자까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땅 위의 소망은 다 끊겼습니다. 땅에 와서 이루려던 소원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가지 붙들고 간 것은 부모의 심정입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찾아 세우려는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만은 제가 붙들고 가겠나이다. 창에 찔리고 못에 박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찾으시는 부모의 절개만은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진 예수님이였기에 사망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일지라도 복을 빌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영적인 부모의 위치를 세우고 가신 예수님이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은 때려잡히고 영적으로만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육신까지 이루어야 됩니다. 이제 이 몸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부모의 피살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인연이 찾아질 때까지 한스런 노정에서 탄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부모가 그립기 때문에 그 부모가 올 날을 위해 세계는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주인공, 하나의 부모, 하나의 세계가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한 열매며 바라는 목표물입니다. 여기에 그 부모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심정적인 후계자가 나와야 됩니다, 심정적인 후계자. 말만 하는 후계자 말고, 모양만 같은 후계자 말고, 좋아만 하는 후계자 말고 부모의 슬픔과 고통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아버지 대신 고통하고 아버지 대신 슬퍼하면서 심정적으로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세우려고 허덕이는 후계자입니다. 그런 무리만이 하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9-30, 60.04.03) 인류의 소망은 참부모를 모시는 것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영적 아버지의 사명을 다하고 사탄을 영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사탄을 이기고 갔습니다. 남편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늘로 가야 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땅에서 사탄과 싸워 남편처럼 이기지 않으면 신부의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남자 여자를 유린한 것을 탕감하고 승리하여 재출발해야 합니다. 성신을 중심삼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한계선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신의 사랑의 힘인 부활의 능력, 부활된 생명의 힘을 받아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됩니다. 이렇게 일생 살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어린양 잔치날은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모셔 놓고 잔치하는 날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아니한 인간은 자식된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잔치하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중에 왔기 때문에 거꾸로 된 것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참자녀를 낳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할 텐데 타락한 인간이 번식되다 보니 거꾸로 된 것입니다. 타락 인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된 것을 반대로 다시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따라서 거꾸로 태어난 인간은 전부다 반대로 가야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반대의 길로 가야 됩니다. 이렇게 가면 갈수록 타락세계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인연을 전부 끊어 버리고 가는 길이 종교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서 비로소 본연의 세상, 즉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이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이라도 전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인류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 아담 해와의 성혼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써 인간들은 사탄의 후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6천년 전에 잃어버린 하늘편인 참부모를 다시 이 땅 위에 찾아 세워 참부모의 사랑의 인연을 통하여 중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들은 양자입니다. 직계자녀와는 핏줄이 다른 양자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직접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마음에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고대하고 있으나 그 양자된 자리에서는 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양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핏줄이 아니고 사탄의 핏줄입니다. 그러나 이제 참부모를 찾아 세움으로써 참다운 직계의 아들딸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직계의 아들딸을 포도나무라 비유한다면 타락한 인간들은 이 포도나무의 순에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접붙이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 :5)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타락한 인간을 돌감람나무라고 말씀하시면서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 나타난 모든 철학과 모든 생활들을 전부 일소해 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철학, 새로운 생활,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을 중심삼은 예수님의 사랑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이렇게 이끌어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섭리하는 중심 내용입니다. 남자 복귀의 한계점은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아버지가 돼야 합니다. 이러한 참아버지 앞에 참어머니가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가치적인 내용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이루고 나서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참다운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남자 복귀의 한계점은 개성완성하여 사탄을 분별한 승리의 터전 위에서 상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 역시 개성완성하여 상대인 남성을 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신랑 신부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분이 바로 참부모입니다. (19-202, 68.01.07) 참부모에 대한 참된 모심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이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시는 참부모님을 진정으로 모시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모시는 데는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후에, 만민이 우러러보고 만민이 공경하게 된 자리에서 모시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기를 바라야 합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선조들은 한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부모를 진정으로 모시는 것은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참효자 참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 낙망할 수 있는 자리, 비참하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늘이여, 저를 인도하시는 하늘이여, 참부모님은 예수님보다도 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니, 부모님을 모시는 저로서는 어떤 가중된 십자가를 지게 되더라도 당연합니다. 저는 그것을 찬양하오니 하늘은 저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기준에서 개인이 부모의 승리의 인연에 접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개인적인 승리의 터전이 마련된 사람들이 축복을 받아 가정을 이루는 것인데, 그들이 가정적인 승리의 터전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들이 아무리 가정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어느 한때 그들이 참부모를 모셔 보았느냐 할 때 모셔 보지 못했다면 역사적인 한이요, 하늘의 한이요, 천주의 한이요, 인류의 한이 되는 연고로 가정적으로 부모를 모시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거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후회하고 슬퍼할 일이 있더라도, 그 슬픔을 하늘로 돌려버리는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아직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시고, 참부모가 아직까지 더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는 응당히 져야 할 것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슬픈 자리에서 부모를 모시고, 어려운 자리에서 부모를 모시더라도 부모를 박대하고, 부모를 슬프게 해드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적으로 부모를 모셨다는 기준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13-291, 64.04.12) 모든 존재가 소망하는 가치 기준 우리가6천년 역사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부모 앞에 참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열매요, 역사적인 결실이요, 미래의 출발 기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에게 있습니다. 그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되는 날에는 세계가 하나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될 때 국가도 있는 것이요, 종족도 있는 것이요, 민족도 있는 것이요, 가정도 있는 것입니다. 천지의 모든 영광의 가치를 종합한 실체 기준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세상의 돈과 바꾸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주고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아와야 됩니다. 우리의 아들딸도, 천세만세의 후손들도 그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다릅니다. 천지에 운동하는 수많은 존재물들의 가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핵심이며 중심이 참부모입니다. 모든 존재의 소망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참부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늘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결실을 추구하는 원리의 원인이 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요, 미래의 주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는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중심 본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정성도 참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한다 해도 참부모를 중심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야 합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수고하고 노력하여 결실을 거두어야 하늘 것으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 것으로 거둘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약시대에는 모심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그리워하기 전에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자기 색시부터 그리워하는 사람은 자식의 자격이 없습니다. 부모의 품에서 자라 부모가 제일 좋다고 하는 입장에서 성장하는 것이 자식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앞으로 축복을 받아도 상대와의 인연은 나중에 맺어야 됩니다. 먼저 부모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밤이나 낮이나 세상이 없고 자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부모를 향한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이 우리의 모든 생활을 점령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활과정을 통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상대, 즉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남편을 맞이하고 아내를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삼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 못 받는 것입니다. (30-237, 70.03.23)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하고 있느냐?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그 기준이 어디냐?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68-139, 73.07.29)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 희망의 귀착점 인류가 역사과정을 통해 소망해 나온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나라가 있기 전에 이상적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민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상적인 종족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가정이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가정이 있기 전에 이상적인 부부가 있어야 하며, 이상적인 부부가 있으려면 이상적인 아들딸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이상적인 자유로운 존재로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고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 왜 아들딸이 사지에 들어가도록 두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도 자유로운 하나님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이 가야 할 길과 양자가 가야 할 길을 닦아 왔으며 앞으로 참부모가 와서 가야 할 길까지도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수난의 길을 걸어온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앞에 동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의 그런 내적 사연을 알게 될 때,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굴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이 운행하면서 내 아들아, 내 딸아 사탄의 공포가 어디 있느냐? 하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사랑하게 되면 만물도 기뻐하며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때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 보았습니까? 이런 일이 오늘날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해방되는 날을 갖기 전에는 인류도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해방된 국가가 되려면 해방된 민족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해방된 세계가 되려면 해방된 국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과 인류의 희망의 귀착점이 되고, 신앙자가 승리할 수 있는 기점이 되는 하나의 터전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한의 기원은 인류가 거짓부모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참부모의 거룩한 인연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하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가 해방될 수 있고,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그날이 나오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엄청난 한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한 가운데 나타나야 할 참된 부모의 혈연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고아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사탄의 아들과 딸이자 원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보아서 인간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인간을 쇠사슬로 묶어 못 가게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情狀)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최후의 생사결단을 지을 수 있는 인류의 소망의 기점이 참부모입니다. 참부모는 하나님도 지금까지 바랐던 최후의 소망의 귀착점입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억천만세 죽음의 피로써 호소하고 소망하면서 남아지기를 갈구하여 산 모습으로 세워진 터전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조리한 이 세상을 부정하고, 어서 속히 하나님이 소망하는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업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42-289, 71.03.27)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이상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하나를 이루어 가지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고 사탄의 흔적이 없는 세계가 되어야 지상이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완전히 주체와 대상으로 부자의 관계로서, 완전히 죄 없이 성별된 부자의 관계로서, 완전히 죄 없이 성별된 거룩한 뜻 가운데 일치돼 참부모와 더불어 참자녀․참종족․참민족을 중심삼고 지상천국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소망입니다. (69-92, 7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