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 (사랑이야기 -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2장 재림주님은 인류의 참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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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부모의 사명을 갖고 오신 예수님
구원섭리는 재창조의 원칙을 따라 하게 돼 있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두고 볼 때, 창조한 모든 원리적인 내용은 하나의 공적인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그 기준에 일치가 안 될 때는 그것을 시정하든가 제거당해야 할 것이 창조 이후의 피조세계 존재물들에게 적용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원리원칙 기반에 서지 못하고 탈원리권 내에 섬으로써 아담 해와는 반드시 다시 시정해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인간 자체로서는 분리됐지만 하나님의 본연의 창조이상으로 보게 될 때는, 그 분리된 아담 해와가 본래 하나님의 직계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이것을 구원복귀, 재창조라는 뜻 가운데에서 다시 수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길이 구원섭리역사입니다. 이렇게 구원섭리를 하는 데는 원칙을 따라야 하는데, 아담 해와가 그 원칙의 노정을 몰랐습니다. 아는 입장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르는 입장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모르는 입장에서 인류가 번식되어 세계적인 발전을 해 나오는 가운데 그 배후에 종교권을 세워 아담 해와 이상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권에 한해서는 타락했던 이상의 심정권이 연결될 적마다 하늘이 영계에서 가르쳐 줌으로써 종교권 배후와 하나님의 섭리는 발전적 인연을 묶어 나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종교를 중심삼고 종의 종 시대로부터, 종의 시대, 양자의 시대로 탕감의 길을 걸어 나오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을 하나님이 택해 세웠습니다. 그 선민이라는 것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실수한 모든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본연적 혈통을 맑게 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 아벨 시대에서부터 그 이후의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전부 피를 맑게 해 주어야 합니다. 피를 교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씨를 변경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212-65, 91.01.02) 에서와 야곱,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한 혈통정화 섭리 그래서 하나님은 피를 교체하는 섭리를 하셨습니다. 피를 교체하는 섭리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몰아넣는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은 동생한테 굴복을 해야 하고 동생에게 축복을 상속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역리적인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급시대에도 장자를 쳤던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의 역사는 차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개인적인 섭리기대를 세웠고,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섭리기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쌍둥이 형제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은 뱃속에서도 싸웠고 나와서도 서로 싸웠습니다.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은 따로따로 나왔는데 태어난 후에 싸웠고, 에서와 야곱은 한 뱃속에서 한 핏줄을 받은 쌍둥이로 뱃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이렇게 하여 점점 핏줄을 따라 뱃속을 통해 복귀해 가는 것입니다. (17-188, 66.12.18) 에서와 야곱대에 야곱이 어머니와 합해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아 왔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하나님을 속이고 남편을 속이고 아들을 속인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님을 속이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륜 도덕적으로 볼 때에는 성경은 이해할 수 없는 비법적인 기사로 남아 있지만, 이 비법적인 기사가 사탄세계로 향해 가던 인류역사의 방향을 180도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에서를 돌이킨 것은 40세 때였습니다. 이것은 복중에서부터 40세까지는 돌이키지 못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복중에서부터 다시 돌이켜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역사시대를 거쳐 야곱과 야곱의 아들인 유다, 유다 아들, 이렇게 3대 만에 다말을 중심삼고 다시 돌이키려고 했습니다. 다말이 잉태한 것도 비법적입니다. 시아버지와 관계해서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거기에서 시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기를 밴 것입니다. 다말이라는 여성은 축복받은 혈족을 무엇보다도 사랑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도, 자기 일신이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축복받은 혈대를 남겨야 된다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는 상징적 조건을 통해 아기를 잉태해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리브가의 복중에 잉태한 야곱과 에서, 또 다말의 복중에 잉태한 베레스와 세라는 똑같이 복중에서부터 둘이 싸웠습니다. 복중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다말이나 리브가가 기도하는 내용도 똑같습니다. 하늘 앞에 이 복중의 두 아이가 왜 싸웁니까? 할 때 네 복중에는 두 나라가 있으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 또한 똑같습니다. 그것은 섭리적 입장에서 외적으로 점점점 축소시켜 쌍태로부터 복중까지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나온 형님인 베레스의 팔에 산모가 빨간 실로 표시를 하고 난 후에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을 밀치고 동생인 세라를 먼저 나오게 함으로써 복중에서 장자를 복귀하여 나왔습니다. 복중을 청소해서 비로소 하늘편 사람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212-66, 91.01.02) 예수님이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이유 이렇듯 세라를 중심삼고 야곱이 승리한 외적인 기준을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연결시켜 내적으로 청산지었기 때문에 유다지파를 통해 메시아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온 시대는 사탄이 세계적 판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나라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편성할 수 있는 국가시대를 맞아서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했는데, 섭리사를 중심삼고 4천년만에 메시아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꾸로 복귀해 나옵니다. 즉 외적인 것으로부터 섭리를 시작하여 점점점 내적으로 들어가 복중에서 승리의 결정을 지어 놓은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기준을 닦았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핏줄기를 정화하고 탕감해야 할 내용을 모두 탕감한 승리의 복귀의 터전을 통하여 나온 분은 한분밖에 없었으니, 그분이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섭리적인 책임을 지고 요셉 가정을 통하여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17-189, 66.12.18) 예수님을 복중에 잉태하게 될 때에는 이미 그러한 역사적인 혈통적 승리권을 갖춘 기반을 이어 나옴으로써, 사탄이 너는 나와 혈연적 관계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비로소 역사이래 사탄편의 핏줄을 하늘편으로 전환시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는 제1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생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역사를 볼 때, 어떠한 성자나 성인도 이런 배후를 중심삼고 과거의 피를 맑게 해서 태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피를 맑게 할 수 있는 첫번 사람이요, 하늘의 혈통을 지상에 옮겨 다시 새로운 접붙임을 통해서 돌감람나무 세계를 참감람나무 세계로 만들 수 있는 장본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세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나 유교의 공자나 회교의 마호메트 같은 사람들은 그런 혈통적 성별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는 특정적 내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를 통해서 지금까지 쭈욱 나왔습니다. (212-67, 91.01.02) 원죄없는 제2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해와는 부모인 하나님을 배반하고 남편과 오빠되는 아담을 배반하고 타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를 보면, 마리아가 자기 아버지를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배반했습니다. 그게 오빠의 자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일족을 다 배반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 생명을 내놓았기 때문에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 하니까 난 남자를 알지 못하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알고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중심삼고 비로소 혈통을 맑혀 나왔습니다. (219-64, 91.08.25) 다말이 복중에서 베레스와 세라를 통해 청산한 그 전통을 마리아가 국가적 대표 자리에서 이어 다말 이상 생명을 각오하고 축복받은 혈통을 존중시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늘이 택해 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중에 있을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습니다. 다말이 복중에서 다 청산지었기 때문에, 형제권을 복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전통을 이어받아 국가적 기준에 선 마리아, 그와 같은 심정적 기반 위에 선 마리아에게 있어서는 사탄이 관계를 맺어 아들딸을 참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예수님이 태어났기 때문에 독생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타락하지 않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건 하나님이 지은 것이요, 마리아 몸을 통해 천신만고 돌고 돌아 독생자의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219-65, 91.01.02)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창조를 하셨습니다. 5일 동안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6일째 되는 날에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그 아담과 같은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2의 아담, 즉 후아담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을 창조하고 그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창조하였으니, 이 후아담을 중심삼아 후해와를 세워야 했는데 세우지 못했습니다. 해와는 누가 세워야 하느냐? 아담이 세워야 합니다. 해와가 타락할 때 아담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해와를 아담이 찾아 세워야 합니다. 탕감원칙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며 왜 오셨느냐? 인류의 참부모요, 참아버지의 사명자로 오신 분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인류의 참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고, 해와는 참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써 그 축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준비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참아버지의 사명자로 보냈습니다.(17-190,66.12.18) 신부를 찾아야 했던 예수님 예수님은 오셔서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12제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류를 다시 낳기 위해 예수님은 신부를 반드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성신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3절)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한복음 3장 4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3장 10절) 하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하고 인류는 거듭나야 합니다. 인류를 사탄이 다 빼앗아 갔으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혈연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칙적인 기반, 즉 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부모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습니다. 12제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짓고 나서 해와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찾고 난 후에는 아담이 해와를 찾아야 됩니다. 이게 창조원칙입니다. 재창조라는 것은 이 땅 위에 신랑 되는, 메시아 되는 주님이 와서 신부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아담 대신 온 후아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후해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부모의 자리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하겠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남자를 대신하여 신랑으로 오셨기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협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요셉 가정에서 이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참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 가정은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를 두고 섭리하신 끝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였다는 사실을 알아 가지고 시대적인 총책임을 지고서 그 책임을 완수해야만 되었습니다. 또 그러한 요셉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 차례나 그의 부모를 추궁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끝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정으로부터 배반당하고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예수님은 다시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마저 예수님을 불신하자 예수님은 요셉 가정과 유대 나라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그들에게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신부를 찾아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세움으로써 세상과 하나님 앞에 참부모의 사명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6-180, 66.03.22) 가정을 이루셔야 했던 예수님 2천년 전 예수님은 처음으로 원죄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입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거짓 부모의 피를 받아서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가 있습니다. 원죄가 없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느냐? 참부모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 혼자서 부모가 될 수 있습니까?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되려면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를 맞이해야 합니다. (22-265, 69.05.04) 신랑이신 예수 앞에 신부가 하나밖에 있을 수 없으니 그 신부가 누구냐? 예수는 아버지요, 그의 신부는 어머니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과 그 신부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보내시느냐? 우리가 거짓된 부모의 인연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된 부모를 갖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참부모를 찾아서 참부모의 사랑을 받고 참부모가 인도하는 나라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신랑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장가를 가야 되겠어요, 시집을 오게 해야 되겠어요? 장가를 가는 것도 좋고 시집을 오게 하는 것도 좋지요. 어쨌든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기성교인들은 `아이고 거룩한 우리 주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가를 안 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가가는 것을 반대하는 패들은 악당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장가를 갔다고 합시다. 기성교회에서 이 자리에 처음 온 사람들, 예수님이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다면 예수님의 핏줄을 타고 난 그 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 안 하시겠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의 아들은 뭡니까? 하나님의 손자지요. 그래 하나님이 손자가 있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없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물어볼 게 뭐 있어요. 노인들이 손자들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손자를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정은 원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누구의 가정입니까? 예수님의 가정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가정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족도 원하시는 것이요, 그 예수님의 종족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보아서도 어긋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갔더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땀을 흘려가면서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내용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알고 나서 그것을 의심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보다 못해서 이 노릇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보다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무릎에 굳은살이 박힐 때까지도 기도해 보았습니다. 영계에 대해서 보고 듣고 분석도 해 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하면, 예수님의 결혼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잔치를 한다면 얼마나 큰 잔치를 하겠습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고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도 구경하고 싶어서 뛰쳐 나오려 할 정도로록 크나큰 잔치를 하고 싶을 것입니다. 뱃속에서 팔삭동이가 뛰쳐 나와서 벌떡 일어나 예수님 혼인 잔치에 구경하러 가겠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느라고 합동결혼식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은 왜 죽게 되었느냐? 예수님 자신의 가정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의 백성으로 만들기 전에, 그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자기의 수중에 넣기 전에, 유대교 앞에 제사장의 입장에 서기 전에 맨 먼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늘 앞에 먼저 가정을 찾아 세우지 않고서는 제사장이 된다 해도 헛된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된다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2-273, 69.05.04)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 예수님은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했느냐? 종의 입장으로서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민족, 종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자녀의 입장으로서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또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세계까지 복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아생전에 뭘 했느냐? 종의 몸을 쓰고 아들을 대신하여 부모를 찾아가는 일을 했습니다. 3년 공생애 노정, 3년 준비기간에는 종으로 뛰었습니다. 종으로서 사탄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하늘의 법, 즉 천법을 어겼으니 천사를 굴복시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천사장이 종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으니 배반한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3년 공생애 노정이었습니다. 이 3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쳐 천사장의 입장을 복귀한 실체로 서서 아들의 책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승리한 천사장의 입장에서 하늘편 해와, 즉 신부를 세워 복귀의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의 입장에 서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면, 딸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남자, 즉 아담격 신랑인 예수님은 여자인 해와격 신부를 바라보며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적인 천사장의 사명을 3년 준비기간 동안에 완결짓고 자녀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했습니다. 자녀의 사명을 완결짓는 데는 형제와 인연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형제의 발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발판을 중심으로 부모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에 나가는 데는 신랑과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신랑 신부는 타락하지 않은 인간 조상으로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참아버지 격이 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땅에서 인류의 참아버지로 서려면 참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사명을 완결지었으나 참어머니가 될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만 부모의 인연을 남기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하늘을 대신하고 성신은 신부로 땅을 대신하여 영적 부모의 기준만을 세운 것입니다. 본래 부부란 실체를 쓰고 평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본래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신랑 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고 신부 되신 성신은 땅에 내려와서 다시 영계와 육계를 하나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인류는 영계와 육계권내에서 뒤넘이치고 있습니다. (12-226, 63.05.15)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영적 구원 예수님은 참감람나무로 이 땅에 왔지만 영과 육을 접붙여 나라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본연의 세계,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를 이루려고 하던 것을 전부 이루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준비하였던 이스라엘 나라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다시 이루어야 됩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텐데 육을 사탄에게 내주었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그와 같은 일을 해서 발전시켜 나온 것이 오늘날 세계적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지만, 십자가에서 이스라엘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세례 요한도 잃어버리고, 열두 제자도 잃어버렸고,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출발은 십자가가 아니라 잃어버린 제자들이 전부 부활의 혜택권에 들어와 다시 모인 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 후 40일 기간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구원은 육적 구원 완성이 아닙니다. 영적 구원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기독교를 중심삼고 영적인 구원의 싸움을 또 해야 됩니다. 영적 개인을 세우는 싸움을 해야 되고, 영적 가정을 찾는 싸움을 해야 되고, 영적 민족을 찾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싸우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으려면 피를 흘려야 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발전하는 데는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 외에는 부활권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72-78, 74.05.19) 예수님은 영적 구도자입니다. 영적 구세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적 구세주는 못 되었지만 영적 구세주의 입장입니다. 영적 기준으로 볼 때, 승천하여 아버지적 영을 지니고 천상에 올라간 예수님 앞에 어머니적 영을 이어받아야 할 해와가 하나되어 일체가 되었더라면 어머니적 실체를 쓴 영이 있을 것인데, 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실체 없는 성신이 지상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신은 물과 같고 기름과 같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212-68, 91.01.02) 성신이 오는 이유와 해야 할 역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아담해와는 창조이상 기준에서 완성하여 이루어지는 실체적 하나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사랑이라는 기준에 일체화했더라면 그들은 체를 입은 영원한 지상세계의 부모요, 영원한 천상세계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조상이 되고 왕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고 그 기준을 잃어버림으로써 본래 이상하였던 사랑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기준을 하나님 편에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루어야 할 본연의 이상적 영적 완성실체를 이루지 못한 존재로서 추방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사랑을 중심삼고 아버지적 아담 영을 완전히 체득해 형성할 수 있는 기준에 있지만, 사랑을 통해 아담과 해와가 하나될 수 있는 기준에는 못 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적 기준의 아버지를 중심삼고 천상세계에 올라갔지만, 해와적 영은 실체를 못 이룸으로써 형태 없는 어머니로 지상에 오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사랑은 수직적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아들의 자리에서 이루려고 했던 수직적 사랑을 못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영적으로 완성된 예수님은 천상세계에 올라가고 성신은 지상에 내려와 수직적으로 서로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들은 반드시 정성을 들여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수직의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인연, 세상의 부모라든가 친척이라든가 하는 세상적 인연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세상에서 인연된 것은 사탄세계에서 사탄에 의해 더럽혀진 물건이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사탄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사탄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타락된 사랑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천사장급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전부 생명을 부정할 수 있는 기준, 그 이상에 서는 자만이 수직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개 정성들이는 것을 보면, 기도는 산상에 가서 많이 들입니다. 골짜기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하러 바닷가에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산꼭대기 같은 높은 자리에서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수직의 자리와 가까운 데로 가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정성을 들이는 자리에서만 신랑 신부가 만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정성을 들임으로써 완전히 하나되어 하늘 뜻에 의한 하나의 실체로서 성신을 받아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성신을 받아야만 거듭난다고 했습니다. 그 성신이 뭐냐? 어머니 신입니다. 성신을 받아 20대까지는, 그가 자라서 자립할 때까지는 예수님과 성신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호하듯이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켜 신앙하는, 영계만을 생각하는 기준에서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게 될 때 영적 구원을 받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중생은 홀로 생겨날 수 없습니다. 영적 부모의 사랑권 내에서 화신체와 같은 입장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태어나긴 다른 데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사랑권 내의 화신체와 같은 대신자가 된 그 사람들의 영은 예수님과 성신을 영계에 가서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본래의 창조이상에는 일치가 안 됩니다. 2천년 역사 동안 그렇게 개인시대로부터 가정시대․종족․민족․국가․세계 판도까지 복귀해 나왔습니다. 로마가 전세계를 장악해서 움직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문화권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판도까지 발전해 나가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세계 판도를 움직이는 자리에서 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몸적 기반을 찾기 위해서는 세계 판도까지 이 내적, 영적 기독교문화권은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212-70, 91.01.02) 그러나 영적인 세계의 기준이 아무리 되었다 하더라도 영육으로 타락한 사탄세계가 남아 있는 한, 육적인 기준이 아직까지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이 땅에 와서 육적인 기준을 세워 이 세계형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72-78, 7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