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 (사랑이야기 -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2장 재림주님은 인류의 참부모)
무지... | 20180723084336
제 2장 재림주님은 인류의 참부모
1.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소망과 타락의 슬픔 천지만물을 지은 하나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로 지었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피조물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인간 하나를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의 대상으로 세우기 위해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 하나가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하고, 행복을 노래하는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 함께 살기를 하나님은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창조해 놓고 기뻐하였지만, 타락한 연고로 애절한 심정과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하나의 승리를 완결할 수 있는 그때를 소망해 나왔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해 지어 놓은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좋거니와, 만물을 주관할 아담 해와의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더 좋아하던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소망과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였고, 만유세계에 있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안 될 중심존재인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픈 날이 있어서도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러나 한 날의 실수로 타락이라는 명사가 붙여졌고, 이로 인해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되었으며, 하나님이 소망하던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흑암의 권세가 출현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원통하고 비통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인류가 슬픔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나, 인류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나오던 하나님이 이들로 인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통한 사실입니까? 인간이 슬퍼하는 자리에 떨어짐으로써 하나님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늘땅에 있어서는 안 될 일,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사건이 인류시조의 실수로 벌어진 인간 타락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하나님의 전체 소망을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모든 것을 완비하고 완성된 자리에서, 전부 다 깨달은 자리에서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이상, 즉 하나님의 창조위업은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전체 내용을 다 상속받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던 성장 과정에서 타락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창조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일념 속에서 살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성된 세계가 오늘날까지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세계요, 이로 인해 이 세계가 악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바라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졌습니다.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큰 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슬픔도 크게 되고, 그 하나님의 소망을 지극하면 지극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내적인 고충이 크게 초래되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이 슬픈 분인 줄을 몰랐고, 인간 지음을 탄식한 하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까지 천지를 지은 창조주가 인간의 실수로 슬픔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을 몰랐습니다. (15-321, 65.12.07)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 그러면 천국은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천국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천국이념을 세웠으나 인간이 깨어져 나갔기 때문에 천국이념은 이념대로 남았고, 천국은 내용이 없는 천국, 즉 천국이라는 명사만이 남게 되어 하나님은 만족과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지금까지 비어 있고 하나님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으로 인해 이 땅이 사탄권내로 들어감으로써 사탄권세는 천국의 문까지 밀어젖히고 하나님의 보좌 단상까지 휩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세계에 대해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본연의 소망을 어떻게 복귀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복귀의 한 날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나온 하나님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물에 빠지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이요, 병이 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이 나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이 다시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구주가 된 후에는 형님도 될 수 있고, 오빠도 될 수 있고, 우리의 그 무엇도 다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세계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이 이상한 본연의 세계가 되었더라면 구주로서의 예수님이 필요 없을 것인데, 아직도 이 땅이 죄악 세계에 빠져 신음하고 있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주로서가 아니라 형이요, 오빠로서 환영받을 수 있는 세계가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세우고자 하는 그 세계는 타락전 본연의 세계요, 하나님이 이상 가운데서 추구하고 그리던 세계, 완성의 뜻을 이루어 천하를 그 품에 품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독생자요, 공주로 태어났던 아담 해와가 타락으로 깨져 나갔으니 다시 그 자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하늘땅이 내 것이다 하면서 다시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본연의 욕망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의 천국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인류에게 소망의 천국을 찾아주기 위해서 오늘날까지 수고해 나왔으며, 인류는 오랜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면서 소망의 천국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중에 사모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타락으로 모두 죽은 자식이 되어 버렸고, 사탄의 죄악된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 인간 가운데서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랑하며 붙들고 살 혈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를 복귀하기 위하여 섭리해 나왔습니다. 복귀하는 데는 어디까지 복귀시켜야 되느냐? 직계 아들딸의 자리까지 복귀시켜야 합니다. (15-323, 65.12.07) 복귀섭리역사와 복귀노정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종의 종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종의 종이 무엇이냐? 종의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이 있으되 종의 종은 주인이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사탄세계에서 종의 종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해 있는 종의 종을 빼앗아다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하늘편의 종의 종으로 만들어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시대는 무슨 시대였느냐? 종의 시대였습니다. 종의 종 자리에 있는 인간을 종의 자리로 복귀시켜 나온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도 종이었지 아들이 못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의 종을 세워 충성의 도리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세계 인류를 끌어다가 규합시켜, 세계적인 악한 무대를 하늘편으로 점령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종의 입장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시키고, 종의 위치에서 양자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섭리해 오셨습니다. 신약시대는 종을 양자로 복귀하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는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을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양자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혈통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양자의 자리에 세운 다음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와서,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듯이 접을 붙여서 양자의 인연을 해방시켜 직계 자녀의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소망이었습니다.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로, 양자에서 직계의 아들딸로 복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념은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동시에 천상천국을 완성시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심정적인 발판을 세우고 그것을 천상에까지 닦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본래 타락하지 않은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지상천국의 이념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다 가르쳐 주지 못하고 영적 구원만을 성사시킨 입장에서 독생자로서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뜻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2천년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소원의 한 날을 찾아왔고, 지상에서부터 천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상의 행로를 개척해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낙원에 갔습니다. 낙원은 어떤 곳이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대합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이 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느냐? 그것은 책임완수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만민의 참부모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만민에 대해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재림을 해야 됩니다. 천상재림이 아닌 지상재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오셨던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입장에 세우고 양자의 도리와 직계 자녀의 자리를 찾아 세워 예수님과 하나되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여, 이제 너희가 낳은 아들딸들은 타락한 세계와 상관없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세우려 했으나, 예수님은 그것을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본연의 아담 해와,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당신의 모든 소망을 걸고 지으신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할 존재로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본연의 아담을 대신할 후아담격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타락과 상관없는 복귀된 아담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이고 다시 오시는 재림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해야 할 일은 소망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이루고 천상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15-325, 65.12.07) 6천년 역사는 잃어버린 참부모를 복귀하는 역사다 하나님이 역사노정에서 섭리해 나온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은 복귀도상에서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찾아 나왔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악한 후손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타락 이전의 자리로 올라가기를 소망하며 내일을 희망삼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고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간 수고를 통해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소망의 아담형인 예수님을 찾아 세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누구인가? 참된 조상입니다. 만약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했더라면 그들이 인류의 참조상이 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하였던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를 아담 해와는 잃어버렸습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천하를 호령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너나할것없이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원통한 사실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인류는 지옥으로 맹주(猛走)하고 있나니, 여기에 하나의 표준을 세워 놓고, 참자녀를 품어 줄 수 있는 본연의 부모를 찾아 헤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4천년간의 복귀노정을 통해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본연의 자리를 찾아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메시아란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구주가 되어야 하느냐? 인류가 타락으로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으니, 먼저 참부모로서의 구주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양 잔치는 본래 아담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너희는 선남선녀요, 천지 대주재의 직계 아들딸로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핏줄이 이 땅에 생겨나니 기쁘도다 하며 주는 축복을 받는 것, 즉 하나님의 모든 대유업을 상속받고 성혼의 축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해서 나타나야 할 것이 타락 전의 아담 해와였는데, 이들이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전부 깨지고 말았습니다. 6천년 전 이들을 중심삼고 소망의 천국을 이룩해야 할 것이 타락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인간을 종의 종에서 종으로, 종에서 양자를 거쳐 직계의 아들딸로 복귀시켜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늘의 승리권을 찾아 승리의 왕자로서 하나님의 성혼 축복을 받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인류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참부모를 구원 완성하여 복귀시키는 날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날이 있어야 만사가 이루어집니다. 선한 인간은 선한 부모 밑에서만 태어납니다. 거기서 올바른 가정이 형성되고, 올바른 가정이 생겨나야 올바른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과정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 하나님의 소망은 아담 해와가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혈족으로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세계를 이루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인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부모가 깨져 나가고 자녀가 깨져 나가니 결국 오늘날과 같은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아담은 타락을 하였고 2차 아담은 땅 위에서 뜻을 다 이루지 못했으니,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3차 아담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60억 인류가 하나같이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세의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6천년 역사는 잃어버린 참부모, 즉 아담 해와의 완성한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였습니다. (15-327, 65.12.07)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복귀섭리 노정 원래는 구주라는 명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상담할 수 있는 형제의 입장에서 주님을 모실 수 있어야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요, 복귀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복귀의 길을 가야 하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한번으로 그만일 텐데 타락함으로써 3시대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생인 구약시대를 거쳤고, 장성인 신약시대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새로 오시는 주님을 표본으로 하여 완성시대인 성약시대를 거쳐가야 합니다. 이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아담 한 사람을 재창조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였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하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뜻이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아담 가정에서 노아 가정으로 밀려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노아 시대에서 아브라함 시대로, 아브라함 시대에서 모세 시대로, 모세 시대에서 예수님 시대로 연장되어 나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프로에 의해 전개되어 나왔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복귀의 기준을 세우지 못해 1,600년을 수고하여 아담 가정 대신 노아 가정을 불러 세웠습니다. 노아에게 홍수심판을 하겠다는 것을 예고할 때, 노아 자신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명령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1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난 후 기필코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억울한 내적인 슬픔과 한을 풀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자신을 찾아오셨다는 것을 노아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묵묵히 하나님과 약속한 내용을 일편단심으로, 촌시(寸時)라도 잊지 않는 신념 가운데서 지켜 나왔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40일 홍수심판 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그 후 둘째 아들 함의 실수로 노아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는 깨져 나갔습니다. 온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남겨진 노아 가정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뒤넘이쳤던 그 가정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에 분함과 원통함이 얼마나 사무쳤겠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온 하나님이었던 것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또 노아 가정에서 섭리의 뜻이 저끄러짐으로써 노아 대신 아브라함을 세우기 위해 4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일구월심, 한마음으로 다시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온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오늘날 그 누구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세워 뜻을 해결지으려고 했지만 그의 제물 실수로 말미암아 연장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 하나님이라는 슬픈 명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세워 뜻을 이루려던 하나님이 결과적으로 벌어진 슬픈 그 사정을 바라볼 때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당장에 아브라함 일족을 때려부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소망의 천국을 이루어 나아가야 할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또 참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아브라함 자신은 몰랐습니다. 야곱이 에서와의 싸움에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고 하란 땅 라반의 집에서 21년 동안 고역의 노정을 거쳐 나올 때, 이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야곱은 몰랐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억울하고 분한 사정에 몰리고 천대를 받고 밟힘을 당하고 원수의 시험을 받더라도 또다시 가야 할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이 있었음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그 뜻을 위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라반의 가정 환경 속에서 전부를 복귀시켜 승리함으로써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발붙일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이 생겨났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애급고역 400년 기간을 거쳐 모세 때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지상천국을 이루고자 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다 쓰러짐으로써 다시 제2세를 수습하여 가나안 7족과 대결해 승리한 터 위에 천국이념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지부진하여 가나안 땅을 거치고, 역대의 처량하고 비참한 역사노정을 거쳐 예수님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15-329, 65.12.07)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복귀섭리 하나님은 복귀섭리노정에서 언제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시대를 한꺼번에 복귀시키기를 원하였지만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책임과 가정적인 복귀의 책임은 야곱이 졌고, 민족적인 복귀의 책임은 모세가 졌고, 국가적인 복귀의 책임과 세계적인 복귀의 책임은 예수님이 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 전체적인 책임을 맡기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점장이인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 예물을 줄 때, 온 예루살렘의 성민들이 소동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오시는 메시아가 사람으로 태어날 줄 몰랐습니다. 교법사나 서기관, 어느 누가 버선 한 켤레라도 마련해 주었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났다 해서 옷 한 가지 마련해서 찾아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불쌍한 자리에 오시면 안 되겠다고 초막 대신 거룩한 장소를 예비하고, 예물을 준비해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느냐 말입니다. 하늘의 때는 지나가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4천년 동안의 긴 역사를 통해 준비해 온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 한을 풀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준 메시아를 알지 못했던고! 하나님이 4천년 약속의 주인공으로 보낸 메시아를 어찌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한 사람도 몰랐느냐 하는 것이 억울하고 분한 사실입니다.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들은 어디에 갔던고! 그들은 선민권을 자랑할 줄만 알았을 뿐, 저들을 세운 것이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기 위함이요, 그것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본연의 책임이요, 사명인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마귀 들렸다 바알세불의 괴수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의 비운입니까? 그들은 빌라도와 짝하여 유대의 나사렛 예수, 그는 가짜니 그를 잡아다가 죽여 주시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진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민족이 죽였습니다. 예수는 피살당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 하는 기도를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상에 천국을 완성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그를 믿지 않으니,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왔습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선생님이 영계를 통하고,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를 해서 안 사실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현세의 기독교 앞에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교회 교회마다 십자가를 걸어 놓은 것을 보면, 선생님 마음속에서는 불이 납니다. 원통하고 원통한 십자가이기에 그렇습니다. 한 많았던 예수님,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고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요, 만민의 구세주요, 황태자로 오셨던 그 메시아에게 십자가가 웬말입니까? 하나님은 어찌하여 예수님을 비참하게 죽여 영적인 구주로 만들었겠습니까? 살아 있을 때 군왕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구주의 과정을 다 지내 만왕의 왕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성도들은 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군왕이 필요합니다. 즉 만왕의 왕이 필요합니다. 이 세계가 하나님 주권 밑에서 하늘나라의 치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최후의 운명 시간에 오른편 강도, 왼편 강도가 웬말입니까? 사도들이 오른편 강도처럼 십자가에 못 달린 것이 원통 중의 원통한 일입니다. 낙원의 선봉자가 누구였습니까? 오른편 강도였습니다. 사도들이 아니었습니다. 만민의 구세주요, 만왕의 왕이요, 만인류의 조상으로 오신 그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로 홀로 보냈습니다. 사도들이 같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제자들도 부활했을 것입니다. 만일 사도들이 부활했다면 기독교는 피 흘리는 종교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영적 구원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본래 사명은 영육 아울러 구원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와야 합니다. 그래서 재림이라는 명사는 억울하고 분한 명사입니다. (15-332, 65.12.07) 이스라엘 민족이 유리고객이 된 이유 지상에 끝날이 찾아옴으로써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말세가 다가옴에 따라 하나님은 천국이념을 품고 당신이 소원하였던 그 본래의 천국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땅에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귀된 천국이 어디 있느냐? 하며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왔다간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지지리 고생했고, 2차대전 중에는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느냐? 예수님을 죽인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어느 누구든지 그 민족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번에 망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유리고객이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시달리고 여러 민족에게 쫓김받는 처량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모두가 예수님을 죽인 죄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으면 생명을 걸고 기도해 보십시오. 인류의 참조상으로 오신 예수님을 죽였으니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든지 다 회개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냐? 인류의 참부모요, 인류의 참조상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죽인 것은 자기 부모를 죽인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죄악된 부모를 죽여도 목을 잘라야 할 텐데, 천륜을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여 오셨던 참부모를 잡아 죽였으니, 하늘의 법도에 걸리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가나안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이 뜻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2천년간 기독교를 통해서 영적으로나마 구원섭리를 함으로써 말세의 한때를 대비해 나오고 있나니, 오늘 이 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15-334, 65.12.07) 실체천국을 이루어야 하는 하나님의 복귀노정 그러면 끝날에는 무엇이 오느냐?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천국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천국 하면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인데, 나라가 성립되려면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과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그 뜻은 우선 네 마음에서부터 소망의 천국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소망천국의 내용을 품고 실체천국을 이루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 천국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도들도 소망의 천국을 품고, 치리자(治理者)의 대표인 예수님을 통하여 실체천국을 이루어야 할 과정이 남아 있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원성사의 한날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4천년간 준비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 흘리는 복귀의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에 불벼락을 내려 쓸어버려도 시원찮을 것이었지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장 34절) 하시며 간곡하게 기도했던 예수님의 그 기도의 조건 때문에 쓸어버리지 아니한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죽어 가면서까지 애절하고 간곡한 기도를 드린 것은 왜 그랬느냐? 예수님의 죽음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지상천국의 이념을 잃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이 소원하고 정성들여 놓은 4천년 역사의 공적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그런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기도한 예수님의 기준을 중심삼아 하나님은 또다시 복귀의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고난 후 기독교는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를 다시 세워야 되는 비참한 역사를 이루어 나왔습니다. 제1 이스라엘이 준비한 4천년 역사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 주권과 국가를 이루어 이것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복귀의 천국을 이룰 것이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함으로써 깨졌기 때문에 제2차로 개인적인 기독교, 가정적인 기독교, 종족, 민족, 국가적인 기독교권을 거쳐 지금까지 세계적인 기독교권으로 복귀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적 종말시대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천국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메시아를 고대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메시아가 오면 무조건 모두 천국에 데려가느냐? 천국에는 그냥은 못 데려갑니다. 천국을 이루어 놓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천국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천번 만번 저버릴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이었지만 참고 나오셨습니다. 한 동네를 찾아갔다가 박대를 당하신 하나님이요, 소망의 한을 풀고자 개인의 어려운 투쟁을 통하여 승리하는 그 한날을 바라다가 그때를 맞이하여 개인을 찾아 개인으로부터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가정을 찾아 나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로마 앞에서 배척받고 피 흘려, 그 피값으로 섭리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2천년 역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일국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무대를 갖춰 오늘날 전세계를 민주세계로 만들 수 있는 터전인 기독교권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이 기독교권은 그 방향을 알지 못하고 최후의 절벽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기독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 뭐냐?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피흘린 한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랑 신부의 자리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고자 했던 한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예수님이 찾지 못했기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그 개인을 찾지 못하면 한 가정을 찾지 못하고, 그 가정을 찾지 못하면 한 종족․민족․국가를 찾지 못하고, 종족․민족․국가를 찾지 못하면 한 신랑 신부를 택하지 못합니다. (15-335, 6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