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사랑을 중심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절대자요, 유일무이하며, 전지전능한 분이다'라고 합니다. 또 그러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냐라고 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어떤 의미에서 부르는 아버지냐? 그냥 막연한 아버지냐 아니면 정말 아버지의 내용을 가진 아버지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육신(肉身)을 통해 태어난 부모와 하나님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느냐? 이게 막연합니다.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우주의 근본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근본은 무엇이냐? 여기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갑니다. 인간 이상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할 때,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서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상대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상대가 누구냐? 그 상대가 동물 중의, 혹은 만물 중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사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이든지 하늘을 추앙하고 혹은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 형식을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의 상대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닻을 어디에 내릴 것이냐,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 자체가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어떤 격위(格位)에서 사랑해야 하느냐? 주종관계(主從關係)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종(從)이라는 입장은 반드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신경이 한 방향을 통해서 투입되고 주입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른 목적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종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흐름에서 그 동기를 같이할 수 없고, 바라는 최고의 상대 여건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외적 여건만을 관계지을 수 있는 자리가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참다운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했느냐? 신약성경 로마서 8장을 보면,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양자로 두고 사랑하기를 바랐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 이상입니다.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입니다. 그 사랑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핵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주종관계의 종이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선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관계로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가 어떤 자리냐?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은 또 그 자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만일 그 이상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응당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48-205, 71.09.19)
하나님과 참부모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사랑의 상대로서 둘로 갈라서 지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서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 번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번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영적으로만 번식했다면 종적인 자리에만 있게 됩니다. 종적인 자리에서는 실체적인 번식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길을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참사랑은 종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하나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종적인 아버지로서 하나된 가운데 횡적인 아버지가 왜 필요하냐? 구형을 이루려니까 필요합니다. 구형은 그냥 그대로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수직을 중심삼고 또 횡적인 것을 중심삼고 전후 좌우가 연결되어야만 구형이 이루어집니다. 구형이 이루어져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주는 축을 중심삼고 돕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위권(同位圈)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하나님의 창조적 참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축은 하나여야 합니다.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참부모는 횡적 기준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몇 도 각도에 맞아야 되느냐? 종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 앞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이 90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만약 15도가 되면 90도 중에서 75도는 전부 다 파괴의 힘이 됩니다. 반대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90도의 교차점을 취하다 보니 완전 수직선 앞에 완전 수평선을 그리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 또는 여자가 혼자 가는 길이 없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남자는 태어나기를 여자를 위해 태어났으니 여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여자도 태어나기를 남자를 위해 태어났으니 남자를 찾아가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남자 여자가 수평선에서 하나되려고 하는 때가 사춘기입니다. 수평선은 360도입니다. 사춘기가 수평선이 되는 때이기 때문에 궁둥이를 저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상대를 찾는 방향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찾아가는 그 교차점은 종적인 기준과 수직점입니다. 이 자리를 통하지 않고는 이상적 상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종적인 참부모,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사랑 앞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착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착점은 하나님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수평선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합하는데 어디에서 만나 합하느냐? 중앙입니다. 중앙에서 만나는데, 왜 중앙에 가서 만나야 되느냐? 수직선과 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중앙에서 만나 합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러면 결혼이 뭐냐? 종적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는 자리요, 횡적인 부모의 사랑을 이어받아 만세 인류의 혈통적 기원을 전수받고 상속하는 자리가 결혼입니다. (182-143, 88.10.16)
종과 횡의 사랑을 연결시키는 인간의 마음과 몸
우리 인간은 종적인 성품과 횡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적인 성품을 이어받은 것이 양심, 마음이고 횡적인 성품을 이어받은 것이 몸입니다. 마음이 종적인 나이고, 몸이 횡적인 나입니다. 나에게 종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종적인 나이기 때문에 종적으로 제일 높은 분인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미끼가 바로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을 통해 인연된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내 것이 되지 그 이외에는 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에서만 소유권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여자라도 훌륭한 남자와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날부터 그 훌륭한 남자와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남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나 사랑 관계를 맺었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칙이 그렇습니다. 천리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주라 하더라도 종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종이 주인이지 공주가 주인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그런 위대한 속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낮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그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여왕과 사랑관계를 맺으면 한국에서 제일 낮은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동참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관계가 맺어지면 어디에 가든지, 높은 데 가든지 낮은 데 가든지 어디에 가든지 같은 자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타락한 이 세계에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니 전부 뜯어고쳐야 됩니다.
종적인 기준에서 전부 각도가 찌그러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각도의 차이가 있는 만큼 반대작용이 벌어져서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양심은 언제나 90각도로 바르게 살라고 합니다. 양심은 바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르다는 건 수직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종적인 기준에 90도를 이루어야 합니다. 수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종적인 나이고, 몸은 횡적인 나이기 때문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의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183-105, 88.10.15)
남자와 여자가 생겨나게 된 동기
사람이라 하면 남자 여자를 말하는데, 남자 여자가 왜 태어났느냐? 여자들은 '아이구,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느냐?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나기를 잘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든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만 있어서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가 가치있는 것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여자 앞에는 남자가 절대 필요하고, 사랑 때문에 남자 앞에는 여자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다' 하면 벌써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요, 또 '남자다' 할 때는 벌써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이다' 할 때는 벌써 왼쪽이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하고, '왼쪽이다' 할 때는 벌써 오른쪽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여자가 있다는 것은 남자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하고, 남자가 있다는 것은 여자를 선유조건으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가 태어난 것은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자가 태어나기를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니고 상대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생겨나게 된 동기가 상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하나님 때문에 지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지었는데,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상대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사랑도 갖고 있고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은 것은 상대를 위해 지었는데, 상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183-107, 88.10.15)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지성소
하나님은 인간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지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는데, 어떤 관계로 지었느냐? 하나님이 뼈라면 우리 인간은 살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뼈와 살과 같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게 될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을 위하는 데서는 시작하지 않습니다. 너를 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위해서 내 사랑을 네게 심어 주마. 네 사랑을 이룬 다음에 내 사랑으로 돌려다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감으로써 사랑과 인연된 이 권내에 소유권이 벌어집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감싸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내에 종적 사랑 횡적 사랑이 완전히 하나되어 그 핵과 하나되게 될 때, 모든 것은 자기 소유권 내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리한 분이기 때문에 남자가 주인 될 수 있는 부분을 여자에게 갖다 박아 놓았고, 여자가 주인 될 수 있는 부분을 남자에게 갖다 붙여 놨습니다.
그래서 부처끼리 살게 되면 딴 생각이 없게 됩니다. 자기의 주인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부부의 생활입니다. 그렇게 남자 여자가 서로 엇바꿔 주인 될 수 있는 것이 뭐냐? 그것은 우리 생명의 파이프요, 천지의 생명력을 이을 수 있는 파이프며, 천지를 주관하는 사랑을 이어받을 수 있는 파이프입니다. 그게 바로 남자 여자의 생식기입니다.
그러면 지성소가 뭐냐? 지성소는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시대에 사람이 만든 법궤를 지성소라고 했는데, 그것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남자 여자의 생식기가 바로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만든 지성소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인데, 타락으로 인해 지금까지 제일 속된 것으로 취급되어 쌍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것을 중심삼고 뻗어가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지극히 선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183-109, 88.10.15)
남자 여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
왜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하고,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서로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에게 여자가 절대 필요한 것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자 앞에 남자가 절대 필요한 것도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절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 우주와 동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세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아무리 못나고 형편없는 시골뜨기 여자라 하더라도 그 나라의 대통령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 결혼하게 되면,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사랑의 힘은 그렇게 동위권에 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랑은 동참권(同參圈)이 있습니다. 영국 왕가의 왕자가 한국의 농촌에 가서 돼지를 키우는 아가씨를 사랑했다면, 그 아가씨는 그 왕자가 있는 자리에 언제든지 가서 동참할 수 있습니다. 때가 묻고 험하게 되어 가더라도 차 버리게 안 돼 있습니다. 반드시 새롭게 단장시키든가 해서 그 환경에 맞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동참권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권위가 있더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은 여자가 그 남자 방을 인사하지 않고 발길로 차고 들어가더라도 '어서 들어오소' 하지 '이거 왜 이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은 동참권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사랑의 힘은 상속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의 것이요, 사랑하는 아들딸의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될 때 모든 것이 완성되고 그 사랑을 통해야만 우주 상속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위권 동참권 상속권을 부여해 주시겠다는 분인데, 그런 참사랑의 주체되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어떤 관계냐?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고 우리 인간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176-312, 88.05.13)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
하나님이 중심이라면 하나님을 중삼삼고 남자는 오른쪽이고, 여자는 왼쪽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서로 좋아하려면 서로 당겨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당기고 여자는 남자를 당기면 하나님은 거기서 빙빙 돌게 됩니다. 빙빙 도는데, 왔다갔다하면서 도는 게 아니라 한 자리에서 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축이 생겨납니다.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이 돌 수 있는 사랑의 축이 꽂혔다면, 그걸 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도는 것이 아니라 천근 만근 좋은 아담 해와의 사랑의 힘에 의해 돌기 때문에 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50억 인류가 빙빙 돌더라도 그 축이 하나지 둘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축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에 있겠다고 하느냐? 대우주의 핵의 중심이 하나님이요, 대우주의 핵을 싸고 있는 두 쪽이 하나는 아담이고 하나는 해와입니다. 이것을 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내적인 축의 자리에 있는 부모요, 아담 해와는 참된 사랑의 축을 중심삼은 외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우주의 근본이 뭡니까?' 하고 담판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대답하기를 '부자관계, 부자의 인연이니라'고 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관계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부자관계는 하나님도 뗄 수 없고, 누구도 나눠놓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 만민들이 생겨났다면 그 조상의 맨 조상은, 나무로 말하면 뿌리 가운데 곧은 뿌리는 하나님이고, 그 옆 잔뿌리가 우리 인류시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종대 순이 누구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뿌리와 수직이 되는, 하나님의 참된 뿌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혈통인 종손입니다. 이 천지간에 하나님의 뿌리와 완전히 수직으로 설 수 있는 종대, 순이 될 수 있는 종손이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순이 거꾸로 되어 있고, 뿌리가 말라 들어가고, 요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구원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구원해서는 뭘 할 것이냐? 본연의 사랑의 핵을 중심삼고 수직 축과 완전히 90도, 평행선을 중심삼은 이상적 사랑의 인격관을 형성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구원섭리를 해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고장난 것을 수리하기 위한 수리공장이라는 것입니다. (176-315, 88.05.13)
마음은 종적인 나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참사랑의 주체고, 그 주체가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직단거리를 세우기 위해서 창조한 것이 인간이요, 만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종적인 사랑의 부모라고 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종적인 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이 하나님이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90각도를 맞춘 자연적인 사랑의 직단거리가 되는, 참사랑을 중심삼은 본연의 90각도에 일치되는 자리에 있는 분이 참부모입니다.
그러면 90각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에서 연결되느냐?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부딪칠 수 있는 곳에서 연결되는데, 그곳이 종적 중앙선과 횡적 중앙선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직행하기 때문에, 최단 거리로 가기 때문에 이 핵이 참사랑이 만나서 합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한번 합하게 되면 떼어놓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한 본질적 요소, 동기적 요소가 지금까지 핏줄을 통해 연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조상들이 횡적인 면에서 1도, 2도, …, 360도의 환경을 맞추어 나왔지만 중심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왔다간 수많은 조상들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고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전부다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전의 하나님이나 천년 후의 하나님이나 우리 인간의 마음의 아버지입니다. 종은 하나입니다. 절대입니다. 횡은 무한히 벌어지지만 종은 절대 하나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종적인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부모라면 참부모는 그 종적인 것에 90각도로 동과 서에 연결시키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그렇게 묶어진 것이 씨가 되어 태어났는데, 개인에게서 종적인 것을 닮아 난 것이 마음이고, 횡적인 것을 닮아 난 것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마음은 언제나 90도로 맞아야 됩니다. 위에 가서 거짓말하고 아래에 가서 거짓말하고 동에 가서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동서남북 전후좌우 어디 가도 맞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천년사가 우리들 앞에 동조하지만 이것이 틀어지게 되면 몰아냅니다. 아파서, 병이 나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우주력이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원칙에 의해 우주가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은 아편이 문제가 아닙니다. (187-68, 89.01.06)
종적인 아버지와 횡적인 부모를 완전히 하나로 맞추자
하나님은 종적인 아버지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부모인데, 종적인 수직은 하나밖에 없지만 횡은 360도로 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직이라는 말 가운데는 이미 수평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평선이라는 말 가운데도 이미 수직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수직이라는 말은 수평선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고, 수평선이라는 말은 수직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평선이라는 말을 할 때, 수직이 없게 된다면 수평선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수직이라는 말을 할 때도 수평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횡적인 사랑의 이상적 가정이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딸을 통해 나뭇가지와 같이 뻗는 것입니다. 모든 세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한 나무 뿌리가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종적인 우리의 마음과 횡적인 몸은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둘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종적이요, 몸은 횡적입니다. 몸과 마음이 사랑으로 하나되었다면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안 되어 자리가 안 잡혔기 때문에 요사스러운 것들이 인연이 되어 파괴물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 본성의 욕구인데도, 생존의 기원인데도 자기 위치를 잃어버렸으니 몸 마음이 언제나 균형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잡는 데는, 자기 자신이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근본을 바로잡아야 됩니다. 통일은 어디서 되느냐? 자기 자신으로는 안 됩니다. 근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본연의 하나님을 종적인 아버지로 하고 인류 시조를 횡적인 부모의 자리에 세워 완전히 하나로 딱 맞추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자리에서 우리가 태어나야 하는데, 타락으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에서는 마음을 수직으로 하고 몸을 쳐 나왔습니다. 몸을 수평으로 해서 수직인 마음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희생하라, 자기를 중심삼지 말라, 전체를 중심삼아라 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전체를 위하는 데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세계는 독신생활을 중시합니다. 몸을 부정하는 수양을 통해 마음에 대해 90각도 위치에 억지로라도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통일은 어디서부터 해야 하느냐? 내 생명이 통일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수직적 사랑과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나지 못했으니, 본연의 종적인 것이 다 틀어졌으니 종적인 것부터 먼저 맞춰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에게 절대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나라도 다 버리고 참된 자리로 출가하라는 명령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개인부터 거쳐야 가정이 거쳐지고, 가정이 거쳐야 종족이 거쳐지고, 종족이 거쳐야 민족이 거쳐지고, 민족이 거쳐야 국가가 거쳐지고, 국가가 거쳐야 세계가 거쳐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는 수련장이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교인들을 규합해서 통일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지고 통일하느냐?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상적인 종적 사랑과 이상적인 횡적 사랑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176-321, 88.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