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사랑의 종적 참부모인 하나님 (사랑이야기 -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 제 1장 참사랑의 참부모)
무지... | 20180715074440
제 4권 참부모의 사랑편
제 1장 참사랑의 참부모
1. 참사랑의 종적 참부모인 하나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모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부모를 갖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식물을 보더라도, 미물인 곤충을 보더라도 태어나게 한 근본이 있습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부모를 갖고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생명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60억 인류가 있지만 어느 누구를 보더라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 부모 위에 또 부모가 있고, 이렇게 계속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들 수많은 선조를 거쳐 오늘날 60억 인류가 번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심정을 두고 볼 때, 동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과 서양 사람의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다르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부모의 심정과 역사시대 최초 부모의 심정이 다를 것이냐? 만일 다르다면 옛날에 부모를 중심삼고 좋아하던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기준도 달라지고, 선하다는 기준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거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부모의 사랑이나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의 사랑이나 그 사랑은 같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같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 같다 할 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은 어때야 하느냐? 이것은 일반 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역사를 초월해서 이 말을 언제나 같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175-144, 88.04.16) 부모라는 말은 사랑의 기반에 생명이 연결된 데서 부모라는 말이 설정된 것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생명이 연결된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부모가 생겨나고 자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즉 부자지간은 무엇을 매개로 하여 인연되어 있느냐? 생명만이 아닙니다. 사랑과 생명이 매개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입니다. 왜 사랑이 먼저냐?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랑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나를 놓고 볼 때,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먼저가 아닙니다. 무엇을 통해서 내가 연결되어 태어났느냐 하면, 사랑으로 연결되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땠는지,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로 해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명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서 들추어 볼 때 뿌리 중의 뿌리가 무엇이겠느냐? 생명이겠느냐, 사랑이겠느냐? 사랑입니다. 이렇게 올라가서 우리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租上)인 아담 해와까지 찾아 들어가게 되는데, 아담 해와가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창조력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175-147, 88.04.16) 존재의 기원은 사랑 절대적인 하나님이 통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무엇을 선택했느냐? 지식이 아닙니다. 진리의 근본이 뭡니까? 진리라고 할 때, 나 이상 진리가 없습니다. 만국의 진리는 남자 이상 없고 여자 이상 없습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몸 자체, 사지백체가 진리입니다. 글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 중의 아버지, 참된 진리의 아버지는 뭐냐? 참된 사랑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참된 부부는 참된 사랑을 가진 진리체고, 그들이 합하게 될 때 참된 진리의 전당이 됩니다. 사랑으로 형제와 하나될 수 있고, 부모와 하나될 수 있게 될 때 그게 바로 진리체입니다. 그런 진리체를 만드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생명이 격동하는 남자 아버지와 여자 어머니를 합방시킨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랑의 동참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절대시하고 천지가 공인하는 절대적인 사랑 가운데 동참한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뿌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뼛골과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연의 선한 조상, 참부모라고 합니다. 그 참부모는 종적인 사랑을 대표한 부모입니다. (182-81, 88.10.14)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었느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랑의 대상자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은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창조주는 거룩한 것이고 피조물은 속된 것이기 때문에 상관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된 인간과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해 어떻게 아버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지었느냐? 창조한 그 출발의 동기가 무엇이냐?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혼자이기 때문에 종적으로 놓으면 하나밖에 안 되니 종적으로 놓아보았자 아무 존재의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횡적으로 펼쳐 놓아야 하는데, 횡적 부모인 참부모를 통해 번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부부가 필요하고, 부부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이 천지에 꽉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이기 때문에 종적인 부모 앞에 90도로 설 수 있는, 수평으로 설 수 있는 횡적인 부모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횡적인 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하나는 동쪽이요 하나는 서쪽의 입장에서 남자로 커 가지고 여자를 찾아가야 되고, 여자로 커 가지고 남자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어디서 만나야 되느냐? 동쪽과 서쪽의 중심에서 만나야 됩니다. 사위기대라는 논리를 중심삼고 전부 똑같은 중앙점에서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앙점에서 합방을 했다면 그걸 누구도 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명을 받아 태어나면 천지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랑의 동화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핵이 집약됩니다. 평면적인 집약이 아니라 구형적인 집약체가 되어 거기서부터 새로운 싹이 나와 종적인 것에 연결됩니다. 그 종적인 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참된 사랑의 축은 하나님과 인류의 조상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조상이 하나되어 이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깨졌기 때문에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라는 말을 합니다. 그 참부모는 하나님의 종적 참사랑을 중심삼고 횡적인 참사랑의 조상의 자리에 선 분입니다. 참아버지와 참어머니가 하나된 자리는 하나님도 내려오고, 천지운세도 내려옵니다. 그리고 참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뼈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고 참부모의 사랑은 몸과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랑의 조화체를 이루어 하늘도 지배하고 땅도 지배할 수 있는 왕권을 가진 주인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귀한 인생입니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개인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혈통을 타고났으니 하나님을 닮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받고 하나님의 심정권을 이어받았다면 종교라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종교는 사랑도 만들 수 없고 사랑의 길도 닦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찾아가는 것은 사랑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배워 가려고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세계에서는 종교가 필요 없고,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또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절대적인 참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이상권은 영원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인간의 영생논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에서만이 영생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182-82, 88.10.14) 사랑을 뿌리로 해서 태어난 인간 인간시조의 출발이 무엇으로부터 출발했느냐? 진화론자들은 원숭이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붙들고 '당신 원숭이 새끼요?' 하고 물어 보면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원숭이가 당신 조상이다' 하면 주먹으로 내리 갈겨야 마음이 시원하지 가만히 듣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보고 원숭이 새끼라니 그런 끔찍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조상이 출발할 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생겼다. 돈에 의해서 생겼다. 지식에 의해 생겼다' 하는 말들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의 출발은 어디냐? 그 뿌리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후손인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이나 돈이나 지식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면 기분 나빠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류 종지조상 되는 아담 해와도 사랑의 뿌리에서 태어났다고 해야 가만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사랑의 뿌리라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만들 때 한꺼번에 후다닥 만들었겠습니까, 아니면 조각가가 눈 만들고 코 만들듯이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성경 창세기를 보면 도깨비가 요술하듯이 '나타나라!' 하면 후닥닥 나타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왜 했습니까? '힘을 자랑하기 위해서, 전지 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들었지!' 하면 멋집니까? 그럴 때 힘에 의해서 생겨난 물건들이 '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럴 때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내 지혜야?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력한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물건에게 '야! 너 왜 태어났어? 무엇을 자랑할 거야?' 할 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묻는다면, '아, 나야 우리 부모로부터 할 수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주장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아무 것도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주장할 것이 뭐냐? 여성이 '나는 남성 것이니까 멋지다!', 남성이 '나는 여성 것이니까 멋지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남성 여성이 왜 생겨났느냐? 서로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좋아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남성 여성 가운데는 서로 좋아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참된 사랑이 우주 공유의 이상분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주가 공유할 수 있는 이상분모인 참된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살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175-150, 88.04.16) 모든 존재가 자랑할 수 있는 것 선생님은 어렸을 때 새들을 많이 잡아 봤습니다. 선생님이 살던 동네 주변에 오는 철새라든가 텃새 등 안 잡아 본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컷을 잡으면 암컷이 어떻게 하고, 암컷을 잡으면 수컷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잘 압니다. 하루는 암컷을 잡아 집으로 가지고 왔는데 암컷의 짝인 수컷이 죽겠다고 야단했습니다. 밤에 잠도 안 자고 와서 짹짹짹 울면서 야단했습니다. 다른 새들은 가만히 있는데 암컷의 짝인 수컷만이 야단합니다 또 수컷을 잡으면 수컷의 짝인 암컷이 죽겠다고 야단합니다. 왜 잠도 안 자고 와서 짹짹짹 하며 야단하느냐? 어떤 놈은 밤에 창문에 와서 창문을 막 쪼며 야단합니다. 얼마나 극렬한지 모릅니다. '인간세계에도 저런 사랑이 있으면 얼마나 멋지겠나!' 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극렬하게 야단하는 것은 전부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무리 미천한 초목이라 해도 여기에는 수그루 암그루가 있어서 서로 좋아하면서 씨를 만들어 후대를 남깁니다. 그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는 생명의 공통법에 있어서 합격자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법을 만들게 되면 '그거 틀렸소' 할 존재가 없습니다. 개미새끼를 보고 물어 봐도 '문선생 말이 맞지' 그러고, 풀을 보고 물어 봐도 '그렇지'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풀에게 '너, 엄마 아빠 있어?' 하고 물어 보면, '있고 말고!' 합니다. 그리고 '너 신랑 각시 있어?' 하면, '있고 말고!', '너, 아들딸 있어?', '있고 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은 힘도 아니요, 조화도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우주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사랑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175-152, 88.04.16) 참사랑의 독재자는 만세가 찬양한다 하나님은 고집스럽고 욕심쟁이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경이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처럼 욕심쟁이가 없습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을 닮아서 욕심쟁이입니다. 욕심쟁이 중의 욕심쟁입니다. 욕심쟁이 중의 욕심쟁이의 독재자입니다. 그런데 독재자라도 만세에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랑을 중심삼은 욕심쟁이 독재자는 만세에 통합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독재자는 만세가 영원히 보존하고 옹호하며 찬양합니다. 험상궂은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그 집안에서 사랑의 독재자라 할 때는, 할머니도 나빠하지 않습니다. 아들도 좋아하고, 며느리도 좋아합니다. 또한 손자 손녀도 좋아하고, 영원히 같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고 안 계신 곳이 없으며, 지혜의 왕인 하나님은 인간세계에서 제일 나쁜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찾다 보니 하나님이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계시려고 합니다. 사랑의 독재자의 자리가 하나님에게 제일 맞는 자리입니다. (175-154, 88.04.16) 하나님은 참사랑의 독재자 사랑의 독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독재자가 뭐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독재입니다.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독재자입니다. 제멋대로 하는 것이 독재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질서, 교통법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슨 사랑의 독재자냐? 나를 위하라는 독재자가 아니고 상대를 위하겠다는 독재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를 위하는 사람과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위하려고 하는 절대적인 주인인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려는 사랑을 본질로서 절대적인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도 더 높을 수 있는 자리의 독재자가 나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만 사람이 모이면 만 사람이 서로를 높이려고 합니다. 서로가 높여 주려고 하다 보니, 서로를 높여 주려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가 위하려고 하는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집안이 있다면 잘 되는 집안입니다. 아들 며느리가 아버지 어머니를 위하고, 동생을 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위한다고 매일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싸우더라도 그 집안은 발전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참사랑의 독재자입니다. 영원히 위하겠다는, 영원무궁토록 위하려는 사랑의 독재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와 더불어 사랑권 내에서 내가 치리받기 위해서는 나도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주장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상대도 안 해줍니다. (175-156, 88.04.16) 이러한 입장에서 참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된 사람을 모르고는 참된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하나님이 사람같이 생겼다면 사람 중에서도 남자를 닮았겠느냐, 여자를 닮았겠느냐? 올려다보면 남자 닮고, 내려다보면 여자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 같이 닮았다고 하면 큰일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절대적으로 위해 살려고 하는 분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뿌리를 찾고 근본을 파헤쳐야 합니다. 근본을 파헤쳐서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근본을 파헤쳐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자리에 계십니다. 이런 자리에 있다 해도 만유의 존재들이 지금까지의 존재권을 인정하고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고 있습니다. 이럴 수 있는 안전지대라는 것은 위하여 존재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이 가장 안전지대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위해 살겠다는 하나님입니다. 위해 살겠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영원토록 독재자가 되더라도 반대할 자가 없습니다. (175-157, 88.04.16)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소망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로 하는 오직 한 가지는 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 즉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심정의 본체인 하나님은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주를 창조하였고, 특히 창세기 1장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닮은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한 무형의 내적 부모요, 완성한 아담 해와는 영원한 유형의 외적 부모(조상)입니다. 최대의 사랑은 주체와 대상이 영원한 사랑을 주고받아 완전히 하나가 될 때 나타나고 결실됩니다. 진정한 사랑 속에서는 자동적인 통일이 벌어지고, 또 생명이 연결되며, 이상이 실현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대상인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와 자녀로서, 주체와 대상으로서, 또 무형의 창조주와 유형의 실체로서 완전 조화 통일된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이상을 이루고자 함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흔히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여 왔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창조주 앞에는 사랑이상의 실천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은 자녀인 아담 해와를 유형실체대상으로 세워 영원히 그들과 합일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인간 속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사랑이상이 실체인간을 통하여 실현되는 기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상체로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한 인격적 성숙으로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과 생명의 영원한 대상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상적 개체들이 되면 곧 이상적 가정으로 발전하고, 그 다음 이상적 사회, 국가, 세계로 발전해서 절대사랑에 대한 감응으로 얻은 생명의 희열, 행복의 이상, 그리고 조화통일의 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득한 시원(始原)에서부터 사랑의 우주사적 자극을 충족시킬 대상을 그리워하다가 유형 무형의 완전한 대상체로서 인간과 상봉하는 그 사랑의 자극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상에 지었으니 천국은 지상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지상에서 이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영인체가 천상의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써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특히 자라나는 아담 해와에게서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입니다. 하나님의 일성(一性)을 각각 대표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이 허락한 사랑의 교과서인 자연 속에서 사랑을 터득하면서 완전히 자라 횡적으로 일체되는 상대이상을 이루는 것이 우주사적인 하나님의 창조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이 주체와 대상으로서 종적인 사랑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종적인 사랑을 완성하여 아담 해와 자신들의 횡적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내적 부모인 하나님이 외적 부모인 아담 해와와 완전 일체를 이루기 위해 임재하시는 사랑이상의 성취의 순간입니다. 무형의 부모인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에 영존하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담 해와는 참부모, 참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135-10, 85.08.20)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한 종적인 참부모 원래 하나님은 종적인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내 아버지가 하나님입니다. 이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종적인 하나님 앞에 백 퍼센트 90도를 갖출 수 있는, 본연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했던 인류의 참부모가 아담 해와였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혈통에 횡적인 참부모의 사랑, 참부모의 생명, 참부모의 혈통이 합하여 하나되어, 천지합덕(天地合德)이 되어 조화의 열매로 맺히는 것이 나입니다. (198-303, 90.02.05)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의 참사랑은 항상 가장 빠른 속도로 최단거리를 통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 내려오는 참사랑은 최단거리인 수직선으로 내려옵니다. 남녀간의 사랑 역시 최단거리로 통과하여 수평선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수직적인 참사랑이 수평적인 참사랑과 만나게 될 때, 그 교차점은 절대적으로 90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타 다른 방법으로는 이들 사랑의 선이 교차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해진 인류의 조상, 즉 아담과 해와가 참부모로 섰다면 하나님의 수직적인 참사랑과 아담 해와의 수평적인 참사랑이 90도의 교차점을 이루었을 것이고, 우리에게는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 두 쌍의 참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이분들로부터 참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혈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참사랑과 완전히 공명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201-212, 90.04.09) 아담 해와는 참사랑을 중심한 횡적인 참부모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체(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창조해서 체를 입고 나왔습니다. 그 체는 내적인 마음체, 영인체와 외적인 몸체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되느냐? 창조주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입니다. 종적인 참부모인 하나님과 그 창조주의 몸과 같은 횡적인 참부모인 아담 해와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서 하나되느냐?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 자리에서 하나됩니다. 여자도 반쪽이고 남자도 반쪽이니 이것이 서로 완성하려니까 남자는 여자가 절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절대 필요해서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리고 결혼해서 사랑함으로써 동현 서현(東弦西弦), 우현 좌현(右弦左弦)이 하나됩니다. 그 다음에 전현 후현(前弦後弦)이 하나되고 상현 하현(上弦下弦)이 하나됩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동서남북으로 돌게 됩니다. 원심력, 구심력을 중심삼고 돌아갈 수 있는 이상체가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것은 남자도 반쪽이고 여자도 반쪽이니 서로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 중심삼고 완성하느냐? 사랑입니다. 사랑으로만 남자 여자는 완성됩니다. 완성된 남자 여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주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이름 짓는 대로 되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우주문제를 다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삼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첫째, 체를 입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기준입니다. 종은 축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점밖에 없기 때문에 면적이 없으므로 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전개해야 합니다. 종적인 것은 면적이 없지만 횡적인 것은 면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 백성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공장이 부부이고, 생산활동이 부부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들딸을 낳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23-236, 91.11.10) 하나님의 종적인 참사랑은 인간을 통해 세계화된다 참사랑이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참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참된 부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담 해와가 장성해서, 성숙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더라면 횡적인 참부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횡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부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참부모가 어디서 합하느냐? 종적인 하나님과 횡적인 참부모가 사랑을 중심삼고 90도 되는 교차점에서 합합니다. 합해서 하나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화시켜야 합니다. (183-104, 88.10.15) 그러면 하나님이 종적인 분인데,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 종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횡적인 부모가 필요합니다. 횡적으로 자꾸 낳아 세계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는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느냐? 수놈 암놈, 남자 여자가 합해야 됩니다. 그게 천지 이치입니다.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사랑이 연결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합하는 것이 남자 여자의 결혼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은 부모가 주례를 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혼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이 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아담 해와는 부처(夫妻)가 되어 자녀를 낳아야 됩니다. 그래서 부자관계의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으로 하나의 사랑의 구형을 형성해서 이것을 확대시키고, 다시 세계 전체로 연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183-111, 88.11.09) 만약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여 서로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선한 자손을 번성하였더라면 어떤 세계가 되었겠습니까?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무형의 종적인 부모로 모시고 사랑의 부부를 이루어 횡적인 참부모가 되는 이상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 참가정을 근원으로 하여 번성한 일족, 즉 아담 일족의 민족으로 번창하고 그들이 이룩할 국가,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이 충만한 행복한 문화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가 곧 천국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이 천국은 분명히 지상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190-321, 8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