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수님의 한과 우리의 사명
예수님의 원한이 생긴 이유
우리 인류의 조상이 타락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었다면 그들에게 원한이 있겠습니까? 원한을 품지 않고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살다가 죽어서 가는 곳이 하나님이 지은 천국입니다. 그것이 본래의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원한을 가진 사람이 그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까? 원한을 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의 한을 풀어드리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천국 갈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은 천국에 가서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예수님도 천국에 못 가고 낙원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총각 귀신을 무엇이라 합니까? 총각이 억울하게 죽으면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남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다시 와서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원한을 남긴 것은 신부를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못 찾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낙원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만왕의 왕으로서 만왕의 왕비를 찾지 못했습니다. 만왕의 왕권을 갖기 위해서는 만왕의 왕비의 기준을 갖춘 신부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래의 왕권의 자리에 못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이 타락하지 않은 입장에서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서 만물을 주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녀 평등권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인간의 종지조상(宗之祖上)이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만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래의 기준에 합당한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으로 왔기 때문에 인류는 만왕의 왕후를 받들어 모셔야 됩니다. 인류의 아버지로 오셨다면 인류의 어머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 인류의 스승으로 오셨다면 사모님을 모셔야 됩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을 정성을 다하여 모셔야 완전한 효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효자입니다. 아버지 혼자에게만 효도하고, 어머니 혼자에게만 효도하는 사람은 효자라 할 수 없습니다. 백성이 나랏님을 위해 충성하는데 나랏님만을 위하여 충성해서는 안 됩니다. 나랏님 부인까지를 위하여 충성해야 됩니다. 그래야 완전한 충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선생님과 그 사모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천리원칙 앞에 합당한 만왕의 왕권을 갖추는 데는 혼자서는 안 됩니다.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영광된 자리에는 누굴 데리고 가고 싶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들보다도 색시가 낫다는 것입니다. 기쁜 후에 자랑할 수 있는 대상이 없으면 그 기쁨도 허수아비입니다. 한바탕 기뻤으면 그 다음엔 자랑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자랑하려니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부부끼리 자랑하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아들딸 앞에서 야야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자랑해야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41-227, 71.2.16)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
인류의 아버지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 혼자서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버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부모라면 짝이 있어야 합니다. 부인을 맞아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못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최고의 소원은 나라를 갖기 전에, 자식을 갖기 전에 부인을 먼저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인을 맞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아들딸로 만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의 자격으로 왔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기독교와는 다릅니다. 신부가 없는, 외짝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 말은 참 대왕마마, 중전마마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을 놓고 볼 때 선생님 부부가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 쌍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 벌써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꿈도 안 꾸어 보고 그걸 알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한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한이 맺혔느냐? 신부를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전에 교회를 찾아야 하고, 교회를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종족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하고, 가정을 찾기 전에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지 못하면 가정도 없는 것이요, 종족도, 민족도,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 중의 근본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명에 의한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나라가 배반하고, 교회가 배반하고, 씨족이 배반하니 모두가 한결같이 돌팔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니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면서도 생애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3년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예수님의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고, 종교를 대신할 수 있는 패를 만들기 위해서 공생애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된 이스라엘 민족과 대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신부로 세워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민족을 세우기 위해 나선 것이 3년 공생애노정입니다.
그것은 처량한 노정이었습니다. 계획했던 코스대로 가지 못하고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안팎으로 에워싸여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 보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죽을 것을 의논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한은 신부를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처녀들이 시집 못 가 보고 죽으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또 남자가 그러면 한이 맺히겠어요, 안 맺히겠어요? 여자가 한 맺힌 것에 대하면 남자가 한 맺힌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자는 나이 80이 되어서도 장가들겠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연의 천리 원칙이 그렇습니다. 천국은 본래의 선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우주의 모든 피조물이 그와 더불어 화동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아들딸을 낳아 사랑하고, 그 아들딸들에게 모든 것을 다 상속해 주고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아버지는 가고 어머니는 못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모두 다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41-229, 71.2.16)
열두 제자의 입장과 그들의 불충
기독교에서는 예수 믿고 천국가자고 합니다. 천국은 믿어야만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천국은 자동적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더라면 죽긴 왜 죽습니까? 예수님이 신부를 찾았다면 가만히 있어도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막에 가서 구덩이를 파며 농사짓는 농부가 되더라도 뜻은 이루어집니다. 전도는 무슨 전도예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어부들을 전도해 놨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 이겁니다. 신부를 맞이하여 아들딸 낳아 훌륭하게 키워서 장가 보내고 시집 보내 친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철옹성 같은 인연의 터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지에서 도망가는 그따위 패들은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권내에 있더라도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이종 사촌 형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형제지간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유대나라에서 천재라는 명성이 붙어 모두가 우러러보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서 그러한 형을 내세우면 유대나라가 한꺼번에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나라를 점령한 입장, 아랍권 전체가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유대교회가 돌아가게 되면 나라가 돌아가게 되고, 유대나라와 유대교회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이스라엘이 봉기(蜂起)만 하게 되면 일시에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하나됩니다. 그렇게 되면 편싸움이 벌어져 중동지역에 로마를 대신한 새로운 국가권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제국을 잡았더라면 예수님의 기독교가 왜 순교의 종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죽긴 왜 죽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습니까, 자기의 혈육을 낳아서 하나님의 아들딸 만들고 싶겠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직계 아들딸을 찾을 방도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대표적인 인물을 세워 가지고 교회와 나라를 얽어매기 위한 외적인 일을 준비하려니 제자들을 안 세울 수 없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렸으니 나라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충신들을 모아 놓아야 되고, 교회를 잃어버렸으니 교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하나님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하고 교회가 위하고 종족이 위할 수 있는 패들을 전부 잃어버리고, 나라도 잃어버리고 교회도 잃어버리고 모두 다 잃어버리고 무슨 면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충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적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하고,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못해도 열두 사람은 세워야 합니다. 또 지파가 열두 지파이니까 열두 지파를 대표할 수 있는 열두 사람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12사도는 한 나라의 충신 대신자요, 교회의 제사장 대신자요, 가정의 12지파 중 열두 아들 대신자입니다. 이러한 3단계적 가중된 책임을 위하여 예수님은 오로지 정성을 다했는데도, 그들은 가정의 부모된 입장도 버리고, 교회의 제사장된 입장도 버리고, 나라의 군왕된 입장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국가의 애국자 대표요, 교회의 제사장 대표요, 종족․씨족․가정의 아들 대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도 그들을 세웠고, 교회에도 그들을 세웠고, 씨족에도 그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전부 대표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뿌리를 박아 씨족과 연결시키고, 교회와 연결시키고, 나라와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41-231, 71.2.16)
예수님의 한
그런데 대표적인 중요 인물들이 그 꼴이 되어 버렸으니 예수님이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원수가 되어 버렸으니 사돈 맺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누구와도 사돈을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좋은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같이 가야 합니다. 안팎을 다 갖추어 4천년의 역사적 인연을 계승할 수 있는 틀거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곡절이 엉클어져 있는 하나의 딸,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몰려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죽은 것은 나라 때문도, 교회 때문도, 친척 때문도 아닙니다. 신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신부를 못 찾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종 떼거리 같으니 그런 백성을 두고 뭘 하느냐 이겁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전체가 낙원에 가서 무릎 꿇고 기다려야 됩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알아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나타나서 내가 다시 오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는 데는 신랑으로 신부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부를 찾으러 오겠다는 말은 지금 선생님이 얘기한 말과 맞는 말입니다. 신부를 찾기 위해서,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잔치를 하기 위해서 오신다는 말은 만왕의 왕의 왕후를 책정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어머니를 책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요, 만민의 사모님을 책정하기 위해 오신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아버지로 책정하고, 사부로 책정하고, 만왕의 왕으로 책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안팎의 핵심을 결정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신랑된 남자로서 모든 핵심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만왕의 왕이요, 만인의 아버지요, 만인의 스승 입장이기 때문에 신부되는 사람은 만왕의 왕비요, 만인의 어머니요, 만인의 사모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어야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늘땅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 위에 오셔서 나라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재림주님은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41-233, 71.2.16)
예수님이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신 뜻
하나님이 보낸 왕자를 모시고 하나님의 아들딸들로 공인을 받아서 본연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고, 본연의 부모와 본연의 형제를 중심삼고 본연의 가정, 본연의 민족, 본연의 국가, 본연의 세계, 즉 지상천국을 이룬 다음에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가신 곳은 낙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낙원이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대합실과 같은 곳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천국을 창조한 목적은 참다운 부모로부터 참다운 자녀가 태어나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과 종족, 참다운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고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하늘나라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천국을 창조한 본연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예수님이 낙원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까? 그 처량한 운명과 곡절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여러분은 신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랑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신부와의 인연을 거친 아버지로서 아들딸을 찾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의 이름으로 아들딸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온 세계에 널려 있는 신자들을 신랑되신 예수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을 모시는 참다운 하늘 식구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본연의 부부가 되고 본연의 부모가 되어 인간들을 본연의 자식으로 품으실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이 땅 위에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예수님이 가지고 오셨던 인연이었습니다. 이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가 죄인의 몸으로 죽어가는 억울한 입장에 서게 되셨던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찾는 목적은 자녀를 번식하자는 것입니다. 신부가 없으면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신부를 찾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신랑이라고 하신 것은 인륜의 도리를 거쳐야만 천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인륜의 도리를 거친 천도를 세우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들 앞에 참부모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녀를 이 땅 위에 번식시켜 만물을 주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남 일녀를 지어 놓은 후 기쁨 가운데에서 그들을 보고 이제는 너희들이 생육하였으니 축복해 주겠다고 하면서 결혼식을 해준 일이 있었습니까?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과연 아담과 해와를 결혼시켜 보았습니까? 아담과 해와는 결혼을 잘못 했습니다. 아담 해와는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그렇게 소원하던 결혼식을 못해 주었기 때문에, 거꾸로 탕감복귀의 구멍을 뚫어서 맞추어야 합니다. 참다운 아들, 참다운 딸을 세워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어린양 잔치를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16-34, 65.12.26)
예수님은 다시 와 세계적인 판도에서 신부를 맞이해야
하늘땅을 대표해서 하늘의 왕자로 오셨던 예수님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신부를 맞이해야 했지만 그런 신부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이 맺혔습니다. 이 한을 풀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넓고 높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신부를 찾아야 되겠기 때문에 기독교를 발전시켜 세계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위치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서보다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있지 그보다 낮은 자리에서 신부를 찾았다가는 예수님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역사 이래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여성을 세워 인류의 어머니로 삼고, 만국의 황후로 삼고, 만교회의 사모님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끝날에는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신부를 찾게 되면 예수님의 한은 해원성사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새로운 판도가 전개됩니다.
여기에서 신부를 맞아 아들딸을 낳아서 내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딸만 가지고 해원하겠어요? 본래 천지를 지을 때 땅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니 어머니 아버지의 땅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천지가 다 풀리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땅이 되어야 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야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교인이 되어야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나왔더라면 뜻은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이러한 내용을 갖춘 세계적인 판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왕자가 왕권을 잡기 위해서 왕궁을 세우고 황족권을 만들고 세계를 지휘하기 위해 오신다는 사상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41-235, 7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