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님의 참된 식구가 되자
예수님이 죽게 된 제일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가
우리가 부르는 식구라는 말은 그렇게 허술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식구라는 명사를 내세웠던고? 거기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첫째는 요셉 가정이, 둘째는 세례 요한이, 셋째는 유대교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천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키워온 이스라엘 민족을 믿고 하나님이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을 죽여 놓고, 죽으러 왔다고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하려고 4천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하고 섭리를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섭리하셨겠습니까? 죽어도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인데 무엇 때문에 30살이나 되어 다 자란 후에 시끄럽게 요란을 피우다가 몰려서 죽게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죽게 된 제일 원인은 요셉 가정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태평한 가운데 있더라도 요셉 가정만은 예수님을 중심하고 하늘나라를 세워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신부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남편은 천국으로 가고 부인은 지옥으로 가도록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창조 당시의 이상의 주인공들, 즉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이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지옥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천륜의 뜻에 따라 오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을 이 땅에서 가져야지 영계에 가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면 수많은 제자들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그처럼 피를 흘리고 죽은 제자들을 품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피흘리게 해서 구원하는 것이 본래의 구원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본래부터 그러한 일을 해야 했던 예수님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고, 하나님이 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소망의 세계, 소망의 나라, 소망의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소망의 사람이 없었기에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십자가 대속의 길을 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의 몸을 성전에 비유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자기만은 깨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몰리고 쫓기면서 억울한 심정으로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그 길은 아직까지 눈물의 길로 남아 있고, 그분이 걸어가신 그 피의 노정이 아직까지 역사노정에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16-33, 65.12.26)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었던 예수님
예수님은 나라없는 백성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이 있었어도, 주권국가가 있었어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셨던 예수님, 그분에게는 친척도 있었고 가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부모의 사랑이 그리웠고, 6촌 형제, 아저씨, 할아버지, 동네 사람 등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을 받으려야 받을 수 없었고, 사랑을 하려야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은 참으로 불행한 분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예수님, 사랑을 할 수 없었던 예수님, 이 천지간에 부모는 수없이 많은데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는 어디에 있었던가? 이 땅 위에 수많은 형제들이 있지만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은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친척들은 어디에 있었던가?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민족은 어디 있었으며, 국가는 어디 있었으며, 세계는 어디에 있었던가? 쫓기고 몰림을 받은 예수님, 그러나 하늘은 이처럼 안팎으로 몰리는 예수님의 서러운 사정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 하더라도 예수님과는 비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진정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부모도 진정한 부모가 아니었고. 그분의 친척들도 진정한 친척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살던 세계도 진정한 그분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을 한 사람도 갖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를 사랑하려야 사랑할 수 없었던 예수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다니시면서도 그들을 사랑하려야 사랑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한이 맺혀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 한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라고 하는 명사는 여기서부터 인연된 것입니다. 인류를 모아 하나님이 바라는 식구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 천륜을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식구라는 명사를 내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된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비참하고, 억울하고 분했던 예수님의 한을 책임지고 해원해 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 십자가의 고빗길을 갔던 예수님의 고생길을 대신 책임지고 가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내일을 기대하면서 한을 남기고 가신 예수님, 그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 뜻길을 개척하겠다고 나선 무리가 통일교회 식구들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여러분을 모아 놓고 식구라는 명사를 가르쳐 주게 된 처절한 사정을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깃들어 있는 식구라는 이름을 걸어 놓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나온 것입니다. (16-42, 65.12.26)
예수님의 사랑을 대신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사랑받지 못하셨던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사랑을 하지 못하셨던 예수님을 대신하여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지 못했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만 오늘의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 앞에 충성을 다하는 동생이 될 수 있고, 누나가 될 수 있고, 한 가정의 가족이 될 수 있고, 종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사랑하시지 못했던 그 가정을, 예수님이 사랑하시지 못했던 그 민족을, 예수님이 사랑하시지 못했던 그 세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를 넘어설 수 있어야만 땅 위에서 골고다의 고난을 피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래야만 식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여 당신은 언제 주로서의 대접을 받으셨습니까? 당신은 나그네의 길을 걸으셨지요? 옥에 갇히셨지요?' 하고 예수님의 슬프셨던 사정을 풀어드릴 수 있어야만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으로 오셨던 예수님과 식구의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적용되는 것이지, 종과 같은 입장이라면 그런 말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자식, 또는 사형장으로 가는 자식을 보고 통곡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를 위로해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을 세워야 할 사명, 즉 천도를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내 몸이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인류를 자녀의 입장에 놓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서러워하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자신이 당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심정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식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그런 길을 가고 있다면 그 자식을 천번 만번 찾아가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기 동생이 그런 길을 가고 있다면 대신 가 주고 싶은 것이 형제의 마음입니다. 자기 가족 가운데 그런 식구가 있을 때는 찾아가 보는 것이 식구된 도리입니다.
이 민족과 세계를 이와 같이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자녀가 못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식구라는 명사가 이렇게 엄청나고 두려운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싸움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간곡한 마음으로 걸어온 노정에 이어서 내가 달려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 남은 노정을 책임지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되어야 식구라는 명사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 식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땅 위에서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에게 맺혀 있는 한, 죽음길을 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을 민족과 세계를 붙들고 우리가 해원해 드려야 합니다. (16-45, 65.12.26)
예수님의 심정과 인격을 본받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이나 사랑하는 동생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 가족이 하늘의 심정을 지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는 못 되었습니다. 가정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원하는 가정이 못 되었고, 예수님이 원하는 식구가 못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마을에서 쫓기고, 저 마을에서 쫓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인에게 핍박받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핍박받고, 지금까지의 역사 과정에서도 핍박을 받아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 위에 와서 아버지의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아들딸을 위하여 살며,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식구로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사랑하는 식구들을 품고 아버지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그 식구들까지도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식구를 갖지 못함으로써 유대교단․이스라엘 민족이 전부 그를 불신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면서 어디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의 그러한 사정을 동정할 줄 알아야 되겠고, 머리 둘 곳 없었던 예수님의 안식처를 만들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없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에라도 예수님을 모셔야 하겠고, 예수님을 모시어 눕게 해 드릴 자리가 없으면 자신의 무릎에라도 뉘어드리겠다는 심정을 지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심정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하늘길을 가는 데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식구와 같이 대하고, 식구와 같이 기르시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예수님의 뜻을 아무도 몰랐고, 믿고 의지하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과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은 그것을 조건삼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모는 놀음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인류의 생명나무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러한 자신의 사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참다운 하나의 식구를 얼마나 원했던가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예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식구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환경, 어떤 처소에서든지 하늘 대하여 변치 않고 충성을 다하셨던 예수님의 그 심정과 인격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이 평안히 쉬시며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하셨는데, 그 원수는 누구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슬퍼할 때 슬퍼할 줄 모르는 자가 원수였으며, 하늘의 심정을 증거하기에 애달파할 때 함께 애달파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자들이 원수였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나아가는 길에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고 원수가 되었던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있는 정성을 다하고 심정을 다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가르쳐 주던 제자, 즉 3년 공생애노정을 같이 걷던 사도들까지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고개, 십자가의 고개를 찾아나가고자 할 때,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정과 하나된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섭리의 때를 맞추어 드리는 하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139, 57.10.18)
예수님의 참된 식구가 되려면
오늘날 여러분이 식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말은 실로 두려운 말입니다. 여러분이 신앙노정에서 잘못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던 그 입장을 가로막는 원수가 됩니다. 예수님이 사탄과 싸우시던 입장을 가로막는 원수가 되고, 십자가에 나가 인류를 대속하시려던 뜻을 가로막는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식구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싶어하시던 예수님을 닮은 사람일 것이며, 예수님이 사탄과 싸우실 때 수고하시면서 근심하고 염려하고 탄식하던 모든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그저 따라만 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식구가 아니요,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때까지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식구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어 30여 생애의 노정에서 참다운 증거자의 사명을 띠고 나타나실 때, 당신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고, 사탄과 싸우는데 있어서 같이 싸워줄 수 있는 식구, 골고다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길에 같이 나가줄 수 있는 참다운 식구, 나아가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예수님의 애달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위하여 애달파하시던 것과 같이, 오늘날 여러분도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의 반대를 무릅쓰 고 비장한 심정과 각오를 갖고, 사탄과 싸우시던 예수님의 사정, 하나님의 뜻 성사를 위하여 염려하시던 예수님의 심정을 갖고 대신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생명도 바치겠다는 각오를 하셨던 예수님의 비장한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스스로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겠다는 제물의 정신도 지닐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산 제물이 될 뿐만 아니라 2천년 전 예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인격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탄 앞에 굴복하는 죽은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심정에 사무쳐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다가 낙망해서는 안 되고, 사탄과 싸우다가 패배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끝날에 처한 여러분은 죽음의 고개를 밟고 올라서서, 원수를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이끌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심정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크나큰 뜻을 대행하고 나아가실 때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예비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요, 유대교 교인들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 그 사랑하는 제자들이 믿어야 할 때 믿지 못하고, 증거해야 할 때 증거하지 못하고,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한 것이 예수님에게 가장 큰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늘의 참다운 식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먼저 여러분 각자 각자의 마음이 하나의 마음으로 화합하여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하나의 목표(뜻)를 향하여 싸울 줄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땅 위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지 못하고 돌아가심으로써 맺힌 그 원한을 풀어드리고 위로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룰 때 여러분을 하늘의 참다운 식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141, 57.10.18)
참된 식구의 할 일
여러분은 참다운 식구를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돌아가면 그 가정에서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하고, 교회에 가면 그 교회에서도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하고, 사회에 나가면 그 사회에서도 참다운 식구를 가져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해야 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싸워야 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후에 자신을 증거해 주는 또 하나의 식구를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증거하던 사도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을 증거하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변치않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증거할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하고,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의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희생의 십자가를 지는 참다운 성도가 되기 전에는 여러분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여러분을 대신하여 싸워주고, 여러분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저버리면서 희생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가 증거하는 것은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그가 싸우는 것도 역시 자신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싸운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지심도 자기를 위하여 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 섭리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했고, 예수님을 위해 싸웠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복귀의 뜻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을 증거할 수 있고, 여러분을 위해 싸워 줄 수 있고, 죽어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식구를 갖지 못한다면, 하늘 땅 앞에 혹은 예수님 앞에 원수 입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원인은 자기를 위하여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싸우시게 된 원인은 자기를 위하여 싸워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이 스스로를 증거한 원인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님의 식구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위하여 증거해 주고, 싸워줄 수 있으며, 죽어줄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30평생의 생애노정을 여러분이 탕감하여 산 제물로 아버지 앞에 드리지 못한 원한이 여러분에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참다운 식구를 찾아 나선 여러분은 예수님이 염려하시던 염려의 심정을 지니고, 또 하나님이 염려하던 그 염려의 심정을 지녀야 하며,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마음이 지녀야 합니다. 또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사랑하는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 주셨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과 이스라엘민족이 오히려 예수님을 불신하여 맺힌 모든 원한을 풀어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중심삼은 교회와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남들이 놀 때 하나님을 사탄 앞에 증거하는 일을 해야 하며, 남이 모르는 사이에 사탄과 싸워 나가기 위해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참다운 식구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3-143, 57.10.18)
예수님과 일심동체가 되는 가정 형성의 중요성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까지 나가신 것은 물론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서였고, 나아가서 수많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도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고,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가 증거한 것도 역시 그러했고, 그가 싸운 것도 역시 그러했고, 그가 사신 것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예수님의 식구가 되기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즉 여러분은 증거의 길을 통하여, 싸움의 길을 통하여, 죽음의 길을 통하여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기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여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또는 사탄 앞에서 자신을 위해 증거해 줄 증거자를 가졌습니까? 여러분 대신 사탄과 싸워줄 수 있는 하나의 친구를 가졌습니까? 또한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졌습니까? 이러한 모든 것이 끝날에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가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원수를 맞이하게 됩니다. 먼저 가정에서 자신의 가는 길을 막는 원수가 있게 됩니다. 가정에서 부인이 교회에 나오면 남편이 원수가 되고 남편이 나오면 부인이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오면 부모가 원수가 되고, 부모가 나오면 자식이 원수가 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정을 잃어버리고, 남편과 부인을 잃어버려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부모를 잃어버려야 할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정의 부모와 함께 참다운 부모를 찾아야 하고, 여러분이 참다운 신랑이 되고, 참다운 신부가 되어 신랑 또는 신부가 함께 하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모가 슬퍼하면 자식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자식이 슬퍼하면 부모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남편이 슬퍼하면 부인도 슬퍼해야 할 것이요, 부인이 슬퍼하면 남편도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정에서 한 집안의 모든 식구가 일심동체가 되어 하늘의 뜻을 받들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나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가정에서 몰리고, 사회에서 몰리고, 국가로부터 몰리게 됩니다. 그 때 여러분은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식구가 필요하게 됩니다.
세상의 부모에게 몰리는 대신 참부모를 가져야 되겠고, 부부끼리 불신하는 입장에서 참부부를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깨뜨리려 해도 깨뜨릴 수 없으며, 죽음의 자리까지도 함께 나갈 수 있는 식구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세상의 부모도 자식이 죽을 입장이면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랑의 정을 지니고 있거든 하물며 하늘의 사랑으로 인연맺은 여러분이 세상 가정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 예수님께서 임하려야 임할 수 없고, 하나님이 임해서 안식하려야 안식할 수 없습니다. (1-145, 57.10.18)
그리스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자세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타난 참다운 개인이며 독생자, 즉 하늘가정에 처음 나타난 하늘의 아들된 예수님을 자신의 생활권내에서 모시고 살 수 있는 예수님의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가정권에서 제1인자로 세움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즉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아들로 살 수 있는 기준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신의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금 하늘의 품에 안겨주기 위한 사명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증거하셨으며, '나는 하늘의 식구'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가 반대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전파하고 증거하셨으며, 혈혈단신 죽음을 각오하고 생명을 바쳐 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 그 예수님의 심정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사탄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 위에 어두운 사탄의 세력이 여러분을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러분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며, 또 여러분이 뜻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만민 앞에 선포하는 예수님을 핍박하였고, 예수님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 한 분을 죽이기 위하여 사탄들이 역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것을 이땅에서 추방하고 섬멸하기 위하여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가면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노정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싸움의 봉화를 들고 나섰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개의치 않고 싸움의 길에 나서서 십자가의 길까지 나가시던 일을 상고하면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예수님의 식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이 먼저 하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여러분 각자 각자가 아버지 앞에 머리숙여 하나의 사정권(事情圈)을 이루어 예수님이 편안히 쉴 수 있는 하나의 울타리를 만들어드리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합니다.
당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지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드리는 참다운 식구를 갖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인 원한이었기에, 오늘날 여러분이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풀어드릴 수 있는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내 형님과 같이, 예수님을 내 오빠와 같이 내 가정에 모시고 살면서, 그분의 서글픔이 내 서글픔이요, 그분의 애달픔을 내 애달픔으로 느껴 그를 위로할 수 있고, 그분의 염려를 내 염려로 여겨 대신 염려해 드릴 수 있는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심정을 지니지 못하면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없습니다. (3-137, 57.10.18)
예수님의 참된 식구
여러분은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서로의 사정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서로의 사정과 심정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원수입니다. 여러분은 이웃 형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 그의 사정이 내 사정이요, 그의 애달픔이 내 애달픔이라 할 수 있는 영원하고 참다운 식구의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품고, 서로서로가 하나의 식구라는 마음으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의 입장에서 서로 위하며 살 수 있는 참다운 식구의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안식시켜 드리려 할 때 반드시 이를 가로막는 원수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인연맺고 알았던 것이 원수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원수는 여러분의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가정과 사회․민족․국가․세계에 있는 원수를 제거하면서 천상까지 나아가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정과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의 부모를 모시고 가정을 이루어 사회․국가․세계까지 연해 나가야 할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식구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증거해줄 수 있고, 싸워줄 수 있고, 죽어줄 수 있는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만 여러분은 예수님의 참다운 식구가 될 수 있습니다. (5-147, 5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