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님(사랑이야기 - 제 3권 예수님 사랑편 - 제 3장 참사랑의 예수님)

무지... | 20180614182820
1.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님
  
     
다시 찾아야 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창조된 존재들과 하나님이 영원히 극치의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하고 타락함으로써 그러한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 만상과 인간 앞에 소망의 표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 피조만물에게까지도 영원한 이상의 조건으로 찾아 세워주어야 할 섭리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이 땅 위에 영원한 하나의 중심이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사랑도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내적인 사랑을 충족시켜 주고 인간의 전체적인 이상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기준은 아직까지 완전히 세워놓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해 왔으며, 또 앞으로 인간들에게 소망으로 남아진 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고, 지음받은 모든 만물이 그 사랑을 영원한 이상의 사랑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수고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가 6천년이 경과한 오늘, 어떤 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은사를 받았다 할진대 그 사랑의 은사는 그 사람 개체만을 위한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만민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랑으로 세워야 할 은사입니다. 그래야 내가 기뻐할 때 만민이 함께 기뻐하고 화동할 수 있으며, 천상세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가 함께 화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사가 하늘땅이 기뻐하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사랑을 찾은 다음에라야 하나님은 비로소 모든 원한과 서러움을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죽든지 살든지 승리적인 운명의 조건이요, 불변의 사랑의 실체인 하나의 중심존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즐길 수 있는 한날, 한때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간들이 이 일을 다 이루지 못한다면 인간의 서러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또 인간의 서러움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천상에서도 서러움이 계속될 것이요, 천상에 서러움이 남아 있는 이상 하나님의 서러움도 계속 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땅을 대표하여 영원불변의 사랑의 실체로 세워지는 그 하나의 중심은 우리 인간과 만물이 다같이 만나야 할 소망의 뿌리입니다. 소망의 뿌리로, 영원불변한 사랑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중심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4천년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이 땅에는 하늘의 사랑을 소개하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말할 수 없는 수고와 고난과 역경의 신앙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찾으려는 사랑의 기준과 연결시키기 위해 수고한 수많은 성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수고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하나님의 뜻속에 살기를 원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중심인 예수님 한 분이 오시기를 바라고 행한 수고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택하여 세웠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대표하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늘의 즐거움이 땅위에 미치고, 땅의 소망이 하늘에 미쳐서 하늘과 땅이 비로소 4천년의 원한을 풀고 같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59, 57.2.24)
     
     
사랑을 중심한 예수님의 사명과 소망
     
예수님은 먼저 당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로 만민 앞에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4천년만에 비로소 모든 인류 앞에 나타내고, 4천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랑의 화신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그대로 연결시켜 줄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의 모임과 민족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써 4천년 동안 이루려고 수고했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원한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하나님을 대신한 메시아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4천년 동안 선조들이 피 흘리며 싸워나온 소망의 실체로 알았던들 그들은 예수님을 붙들고 '당신은 우리들의 소망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천상의 원한을 풀어 그 기쁨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실 분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에게까지 연결시켜 주실 선조로소이다' 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영원히 헐어버릴 수 있는 사랑의 승리적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사명 앞에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 외에는 나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의 애달픔과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늘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며, 만물세계에서부터 천상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게 하려고 오신 사랑의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인간들이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유대민족이 믿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오신 예수님은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서러운 사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서러움은 그의 서러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겠다는 결심을 품고 나온 역사상 수많은 선지자들의 서러움이요, 창조이상의 뜻을 실현하고자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서러움으로까지 연결됩니다.
영계의 영인들과 선조들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의 불신으로 인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하나님에게 서러움을 더 보태드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대민족이 저지른 잘못입니다. 그 한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던 예수님의 외로운 사정은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니요, 30여 평생의 서러운 심정을 품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정 역시 예수님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의 사정은 우리의 사정이요, 오늘날 전체 인류의 사정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 서러워하신 것은 당신이 망하고 죽는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서러운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 때문에 서러워하신 것도 아닙니다. 천적인 애달픈 사랑의 심정을 품고 역사의 목적지까지 가야 할 자신의 책임을 염려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땅 위에서 맞아야 할 인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신이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가 되도록 하겠느냐 하는 것을 염려했고, 만인류가 서러움의 고개를 넘어야 할 운명을 지니게 된 사실을 놓고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서러움, 자신만을 위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2-61, 57.2.24)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한 예수님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과 같이 성품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 우주적인 대표자는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뜻을 품고 나오는 자기 자신을 인정시켜야 되겠기에 사랑하는 제자와 교법사들 앞에 그러한 자신의 입장을 실토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뒤따라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7~40절)' 하신 말씀을 실천해야 됩니다. 
그 말씀에는 우주의 핵심적인 이치와 우주의 이상적인 이념과 우주의 생명의 중심이 되는 사랑의 이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대하여 자기의 지성을 다한 분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혈혈단신 천륜의 큰 사명을 붙들고 하늘 대하여 충성하던 예수님의 그 충성심, 마음을 다하던 그 마음, 뜻을 대신하던 그 뜻, 또 사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던 그 성품을 본받아야 됩니다. 
성품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느냐? 천륜을 대하여 움직입니다. 또 마음은 무엇을 대하여 움직이느냐? 마음은 역사성을 지닌 인륜을 대하여 움직이며, 뜻은 생활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에 합당한 생활을 하셨고, 그러한 생애노정을 거치셨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 가운데 처음으로 천륜적인 사랑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역사성을 띤 인륜의 노정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활권내로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즉 천륜적인 사랑을 인륜적인 사랑에까지 끌어내리려고 있는 성품을 다했고 뜻을 다했고 힘을 다하였습니다. 
상징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성품을 대신한 분, 즉 천성의 중심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의 본바탕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고, 그 양심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동입니다. 이것은 천적인 전체의 섭리를 총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품이라는 것은 양심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품의 본바탕은 양심의 뿌리이므로 성품의 본바탕이 양심보다 겉으로 드러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품은 쉬지 않고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얼핏 보면 돌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태양을 중심삼고 돌고 있고, 또 달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성의 본 바탕과 양심과는 이와 똑 같은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한 말씀이요, 천륜적인 인격과 인륜적인 인격, 혹은 천주적인 인격과 생활적인 인격을 나타내는 천륜의 전체 섭리를 대신한 말씀입니다. 4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천륜을 세우려고 수고의 노정을 걸어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나타내신 분이었습니다. (2-65, 57.2.24)
     
     
예수님의 인격과 제물 되신 생활
     
예수님은 역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나타내지 못한 하나님의 성품을 처음으로 나타내신 숫것의 첫 열매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인륜도덕을 세우기 위하여 양심을 기준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원하는 최고의 양심의 표준을 세우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4천년만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숫제물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가운데 나타난 뜻은 하나님이 이상하는 뜻과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상 왔다 간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신 분입니다. 기독교인들, 하늘을 향해 도의 길을 가려고 하는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헤아려 전체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한 순간의 생활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본질이 나타나 있으며,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큰 것을 대신할 수 있는 불변의 결정체와 같은 형태를 갖추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30여 생애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예수님은 전체의 생애를 바쳐서 무엇을 하고 가신 분인가?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찾아 세워야 할 성품이나 마음이나 뜻이나 행함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바칠 전무후무한 숫것 제물로 오신 분입니다. 30여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신 예수님은 우주적인 사랑의 표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본성의 인륜의 법도를 세워 천륜을 향하여 나가려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도 만민을 대표하여 전체적인 선의 기준과 의의 기준을 세워 사탄과 대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땅에 와서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는 생활을 통하여 몸 마음이 선의 실체로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예수님의 상대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의 힘이 우리에게 연결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30여 평생 하나님을 중심삼은 정성의 생활에서 쉴 새가 없었던 예수님의 생활, 역사와 우주를 대표하여 숫제물의 실체로 살아가신 그 예수님의 생활을 본받아야 합니다. (2-67, 57.2.24)
     
     
숫제물로 바쳐져야 할 기독교 신자
     
예수님이 4천년 역사와 만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즐겨 받을 수 있는 산제물로, 생축의 제물로, 숫것으로 바쳐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께 숫제물로 바쳐져야 합니다. 
생애에 인륜과 천륜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왔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아픔을 대신 느낄 수 있고, 예수님이 느끼시던 천적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준비한 교단으로부터 배척받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야 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드리는 신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원한을 비로소 풀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이 땅에, 패역하고 배반하는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이상을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반한 선조들을 가진 우리는 하늘을 배반해 온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버지의 뜻이 이런 것이 아니옵니까? 이 몸을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를 대표하고 나설 숫제물, 어느 누구도 만지지 않고 보지 않았던 숫제물로 드려질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품을 다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성품은 사탄 세상으로부터 용납 받던 성품이요, 마음을 다한다 하더라도 사탄과 속삭이던 마음이요, 뜻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끝날에 처한 우리는 반드시 사탄적인 성품과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인생관과 우주관도 바꿔야 합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신앙관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고, 사탄의 참소조건에 걸려 있는 무대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숫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품과 마음과 뜻을 이 땅의 인간들에게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성을 대표하고 만물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참되다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없는, 사탄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성품을 느낄 때가 있고 예수님의 천적인 인격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예수님의 내적 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내적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찾아야 할 놀라운 역사적인 우주의 초점, 넘어야 할 우주적인 관문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숫것으로 드려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소망을 어떻게 찾아 이룰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소망을 찾으려면 과거의 자신의 부족했음을 깨달아야 하고, 그 부족함을 하나님에게 통회해야 합니다. 회개하더라도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야 합니다. 30여 평생 흘렸던 예수님의 눈물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30여 평생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일편단심 그 한 뜻을 세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던 그 소망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었던 예수님의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땅 위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는 생활을 하셨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나라에 가서까지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내적 심정을 통하고, 내적인 천성의 이념을 알고, 내적인 예수님의 생활적인 모습을 알아 가지고 눈물을 흘려 하늘땅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눈물이 어리고 뼈살이 녹는 애달픈 심정을 이어받고, 성품을 통하고 마음과 뜻을 통한 예수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인격을 나를 통하여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예수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느낀다면 죽음의 구렁에서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 앞에 감사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을 마음 몸에 채우고 온 땅과 하늘에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 해와를 잃어버릴 때 하나님이 느꼈던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또 인간을 찾으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오셨지만, 자신을 보내신 그 뜻을 이루어드릴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릴 때 느끼던 서러움을 느끼셨습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원한을 해원해야 될 인간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게 되었으며, 신랑인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서러워 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러한 입장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나서서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도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헛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하신 것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땅이 감동할 것입니다. (2-69, 57.2.2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우리는 역사를 넘어서 예수님과 성신의 심정을 체휼함과 동시에 6천년전 안타까웠던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예수님께서 소망하시던 사랑을 하늘땅에 이루어 놓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개인적인 가치관과 편벽된 인생관을 가지고 하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내가 되면 아버지를 부르지 않아도 아버지가 찾아올 것이며, 주를 부르지 않아도 주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포옹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마음 몸 전체가 그 사랑에 취하여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을 통하고 나서야 강철이 지남철에 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랑을 중심한 인연에 의해, 이 땅의 만민 앞에 사랑의 실체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던 천국이념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셋만 있었다면 예수님 당시 인류의 완전부활의 역사는 출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붙들고, 4천년 동안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 수고한 하나님을 대신하고, 예수님과 성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셋이라도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갔던들 사탄은 자연굴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불러 세우셨고, 어려운 때나 기쁠 때나 이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삼위신의 역사를 대신한 이런 천륜적인 종교를 인간 세상에 세우시기 위한 뜻이 있었던 것을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갖추어 천적인 내용을 밝히 알아야 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랐던 사도들과 같은 입장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부르시고 택해 주신 교회와 뜻 앞에 일생을 바쳐 하늘의 면목을 세워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예수님의 소망이었던 천국이 땅 위에 나타날 수 있으며, 땅 위에서 원수 사탄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아들딸이 나타나 사탄으로부터도 경배받게 되기를 바라면서 삼위신은 역사해 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수고의 노정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 땅 위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 대한 성품을 중심삼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게 하며, 복귀섭리를 위해 땅 위에 이들을 모두 동원시킬 수 있는 한 인격의 실체가 땅 위에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했던 예수님의 소망과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고, 아니 즐거우려야 아니 즐거울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권내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2-71, 57.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