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하나님의 섭리역사
창시자들, 선지자들과 성인들
하나님은 종교를 세우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를 경륜하신다. 종교는 새 문명 창조를 선도하면서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고양시킨다, 주요 종교는 각각 종교 창시자로부터 시작된다. 문선명 선생은 이러한 종교 창시자를 성인이라고 부르며 예수, 붓다. 공자. 무함마드를 인류의 대표적 4대 성인의 반열에 세운다.
각 창시자는 자신이 창시한 종교의 핵심진리를 선포하는 특별한 분이다. 기독교에서는 다른 종교 창시자들의 두드러진 성업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무슬림의 신앙은 선지자의 ‘봉인’-마지막 선지자-무함마드의 메시지에 의해서 독특하게 정의된다. 확고한 신앙인은 진리의 기준이요 모범이며 참된 길을 구현하는 하나의 인격체와 마주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갈 자가 없다”(요한복음 14.6)는 선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 외에는 성인이 없다”(법구경,254)는 선언이나. “무함마드는 선지자의 봉인”(꾸란 33.40)이라는 선언은 한결같이 동일한 맥락이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모든 종교 창시자는 한 하나님이 보낸 분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의 진리를 한결같이 증거한다. 모든 창시자는 하나님의 일정한 섭리적인 경륜을 중심하고 각 민족과 문화를 이끌어 하나나의 왕국에 이르도록 준비한다.
그러므로 문선명 선생은 서구 전통이 아벨과 노아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솔로몬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섭리역사 가운데 택함 받은 분들의 명단에 붓다, 공자, 무함마드를 첨가한다.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모두 자신들이 전통적 혈통의 상속자라고 주장한다. 유대교는 예수님 외에 위대한 랍비의 계승을 추가한다. 이슬람은 예수를 위시하여 이스마엘과 이드리스 등 소수 아랍의 선지자들 이 명단에 첨가한다. 한편, 동양에서는 힌두교가 여러시대에 걸쳐 회생하여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계 정의를 회복시킨 아바타의 계승을 인정한다. 유교는 독자적인 성인 혈통, 곧 우왕, 문왕, 무왕 등을 주장하며 주공 공자를 옛 성인의 지혜와 전통을 회생시킨 분으로 간주한다.
여기서는 성인의 공통적 특성에 대해 다룬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인간과 사회를 보다 높은 이상으로 지양시키려는 열정, 국적과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전혀 차별하지 않는 보편적 성찰, 하나님과 천국, 혹은 보다 높은 존재의 힘에 대한 신앙, 그리고 무지한 사회의 박해와 배척을 감당하려는 의지 등이 여기서 성찰된다. 아래 부분에서 서구의 성서적 전통에 특히 관심을 두면서 이러한 성인과 선지자를 개별적으로 다룬다.
1. 하나님의 챔피언과 메신저
종교경전
의가 쇠하고 불의가 성할때마다 나는 나를 세상에 내어 보내리라. 선을 보호하고 악한 자를 멸하여 의를 새로이 세우고자 나는 시대마다 세상에 오느니라. 바가바드기타 4.7-8(힌두교)
실로 하나님은 그대〔무함마드〕에게 계시를 주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노아나 그 이후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아브라함이나 이스마엘, 이삭,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게, 그리고 예수, 욥, 요나, 아론, 솔로몬에게 계시한 것과 같으며, 다윗에게 시편을 내린 것과도 같으리라. 그대에게 이미 언급한 선지자들이 있고, 그대에게 언급하지 않은 선지자들이 있도다.…선지자들을 보냄은 복음을 전하고 경고하며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항해서 논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를 가진 분이다. 꾸란 4.163-165(이슬람)
하늘 보좌의 이 새들〔현시자들〕이 모두 신의의 하늘나라로부터 내려보내지고 그들이 모두 그분의 불가항력적인 신앙을 선포하기 위해 일어나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의 영혼으로, 같은 인격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의 잔으로부터 마시고, 하나의 같은 나무의 과일을 먹기 때문이다. 이들 하나님의 현시자들은 각각 이중의 지위를 지닌다. 하나는 순수한 관념과 본질적 단일성의 지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만일 그들 모두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그들에게 같은 속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분조차도 “우리는 그분의 사자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밝히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기, 그리고 모두 하나님의 단일성을 알리고자 지상의 백성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구별되는 지위로서 피조물의 세계에 속하며, 그 세계의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현시자들은 각자 뚜렷한 개성, 일정하게 규정된 사명, 예정된 계시, 그리고 특정한 제한점을 가진다.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특별한 속성이 있으며, 일정한 사명을 수행하고, 그리고 특수한 계시를 받는다. 키타브 이 이칸, 152, 176(바하이교)
세속적인 일에 폐를 입지 않고, 사물을 장식하지 않으며, 남을 가혹하게 하지 않게 하고, 여러사람들에게 거스르지 않으며, 천하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되어서 백성이 잘 살 수 있고 남도 나와 함께 먹고 입는 것이 모두 풍족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데, 옛날의 도술에는 이러한 경향이 있었다. …(마음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하며) 그들은 이것을 마음의 관대한 행위(心之術)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친하게 다 같이 기쁨을 누림으로써 이것으로 온 나라를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정욕을 절제하려는 이상(조화의 마음)의 실현을 중심사상으로 삼았다. 남에게서 모욕을 받아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 사이의 싸움을 멈추게 하며, 공격을 금지하고 무기를 없앰으로써 세상의 싸움을 없애고자 했다, 이러한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온 천하를 돌며 위로 설득하고 아래로 가르쳤다. 비록 천하 사람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와 아래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지만 억지로 설득하려 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 33 (도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다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을 두고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터이니 말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곳에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캐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히브리서 11.32-38 (기독교)
다음엔 명성 높은 사람들과 우리의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큰 영광을 나타내시어 옛날부터 당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다. 그들 중에는 왕권을 가지고 훌륭하게 다스려서 유명해진 사람도 있고 슬기로써 현명한 조언자가 된 사람도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에 남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이 없으니 그 뒤를 이은 손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의 업적은 잊히지 않았다.
집회서 44.1-10 (기독교)
말씀선집
하늘이 인간들에게 이러한 섭리의 뜻을 책임지우고 내세우게 될 때에는 중심인물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가 처해 있는 시대 전체를 지배하여 하늘의 이념권내에 결부시키기 위하여 어떤 한 사람을 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이 땅을 대해서 시대와 세기 혹은 역사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찾고자 하시는가.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 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 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아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땅을 대신하여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하늘의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4.192, 1958.04.20)
예수, 석가, 공자, 그리고 무함마드 등을 역사적 성인이라 하는데, 역사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표준해서 그들의 전통을 이어받기 위한 놀음을 했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은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 에 태어나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이냐? 그 사람들이 땅 위에 살면서 행복하게 그런 놀음을 하고 간 사람들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보다도, 그들 모두는 평민보다고 더 불행한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본의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바라는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세계를 향해서, 그 것을 따라 살기 위해 그런 생활을 하고 간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은 개인이 살더라도 하나님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의 인격이 어떻게 되어야 된다, 인생살이가 어떠해야 된다 하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통으로 볼 때 가정은 이런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그들은 언제나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회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통으로 볼 때, 개인은 이렇고 가정은 이렇고, 사회생활은 이래야 된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95.271, 1977.12.11)
종교의 교주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쳤느냐? 신을 중심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신의 사상과 뜻을 중심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자시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들이 잘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을 위주로 한 세계관, 신을 위주로 한 인생관, 신을 위주로 한 우주관을 선포하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41.329, 1971.02.18)
우주적 원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의 창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위하여 자기 자신 전체를 투입하셨습니다. 또한, 역사를 통해서 제멋대로 사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희생하여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예언자, 성자 그리고 철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원리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진리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름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 공자, 석가모니, 무함마드, 소크라테스, 그리고 예수님도 모두 고난을 받았으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박해를 받았던 성현들이었습니다. 인류를 일깨우고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분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했습니다. (234.222, 1992.08.20)
성인이란 말의 성(聖) 자에서 이것은 귀 이(耳)자예요. 이것은 입(口)이고, 이것은 왕(王)입니다. 입이 왕이고 귀가 왕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입이 왕이고 귀가 왕인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걸 좋게 왕의 것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듣지만, 듣자마자 입이 ‘빠바바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일 납니다. 모든 것을 듣지만 말하는 데 있어서 왕입니다. 왕이 한마디 하면 법이 되고, 그 나라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 하면 법이 되는 것입니다. (118.44, 1982.05.02)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성인은 국경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성인은 민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종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를 위해 산 사람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만민을 위해서요, 억조창생의 모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이요, 초종파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죽는다고 하면서 세계적인 입장에서 온 세계 인류와 인연을 맺고 죽음 길을 판 가리하고 간 사람들이 성인입니다. (38.350, 1972.01.08)
2. 선지자와 성인의 고난과 핍박
종교경전
선지자가 고향과 친척과 가족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다.
마가복음 6.4(기독교)
싸움터의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들을 참아 견디듯, 나도 비난을 참아 견뎌 내리라.
법구경 320(불교)
한 율법학자가 와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마태복음 8.19-20 (기독교)
사도가 말하였다. “주여, 저희 백성들이 이 꾸란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예언자들에게 죄인들 중의 하나를 적으로 두셨으나. 인도하고 도우시는 분은 그대 주님만으로 충분하리라. 꾸란 25.30-31 (이슬람)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어디로 내 발길을 돌릴까?
가족과 종족이 나를 버렸다.
내가 속했던 동네도, 나라의 악한 지배자도
내게 관심이 없구나.
그러면 오, 주여! 어떻게 내가
당신의 동정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아베스타, 야스나 46.1(조로아스터교)
그들의 선조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당신께서 계실 그 곳을 구원하실 뜻으로 특사들을 다시금 보내어 경고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사들을 조롱하였다. 그의 말이면 무조건 비웃었다. 보내신 예언자들을 놀림감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호와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시게 하고 말았다. 역대기하 36.15-16 (기독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우리들의 조상이 어떤 종교를 추종하고 있었나를 알며 그 조상들의 발자국을 따라 인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라.
이처럼 그들의 말은 하나님이 너희 이전에는 경고자를 어떤 도시에도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이며, 부유한 자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우리들의 조상이 어떤 종교를 추종하고 있었나를 알며 그 조상들의 발자국을 따라 인도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느니라.
경고자가 말하길 너희들의 조상에게서 발견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인도를 내가 너희에게 가져왔다고 하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당신들에게 내려진 것을 믿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징벌하였노라. 보라, 거 부자들에 대한 징벌이 무엇인가를.
꾸란 43.22-25 (이슬람)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7.51-52 (기독교)
말씀선집
인간세계에서 높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높이 서서 전체를 보고 그것을 등급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들이 추구하고 바라고 존경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높고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을 위해서 살겠다는 위대한 미국인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는 위대한 세계인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더 위대하겠느냐? 위대한 세계인입니다. 같이 살고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높고 더 큰 것을 위하고 더 큰 것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4대 성인을 역사적으로 모시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든가 석가모니라든가 공자라든가, 혹은 무함마드라든가 있는데, 그들에게 집이 있었습니까? r들에게 좋은 집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동네를 갖고 살아 봤습니까? 가는 곳곳마다 욕먹고, 죽이려고 하니,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데 무엇이 위대합니까?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들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입니까? 공자님은 이웃집 개라고 했습니다. 얻어먹고 다니니 말입니다. 또, 석가세존은 그때 왕의 아들로서 나라도 있고 집도 있고 모든 것이 있었지만 그걸 다 싫어했습니다. 그걸 다 버리고 나와서 산중수도 한 것입니다.
산에 가서 은둔생활을 시작한 거기서부터 석가모니의 출발이 벌어진 것입니다. 집도 없고 나라도 없고 죽어간 그 사람들을 지금에 와서 왜 추앙하느냐?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왜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 그들의 위대한 정의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겠습니까? 또, 미래에 달라지겠습니까? 안 달라집니다. (115.14-16, 1981.10.25)
이 땅에 선지자들이 와서 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고 막은 것입니다. 나라에서부터 못 간다는 것입니다.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부가 ‘ 이게 뭐 이래?’ 이러면서 차 버리고, 별의별 핍박을 다 받고, 사람 취급도 못 받고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낙오자들…. 세상 사람들이 밀치고 다 도망가니 선지자들은 할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따라가는 가운데서도 세상의 낙오자들, 병신들, 상처 입은 사람들, 세상이 싫다는 이런 사람들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러고 있소?’, 나는 예언자인데, 저들에게 반대 받았기 때문에 이런다‘고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인간 낙오자들을 중심삼고 새로운 인연을 짓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가 있는 것이다. 낙심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하면서 낙망자를 중심삼고 새로운 희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 다 지나고 못난 사람 다 지나간 다음에 병자, 쓰레기통 같은 사람들이 결국 ‘아이고, 새로운 세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랬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잘낫다는 어머니 아버지, 잘났다는 아들딸을 가진, 그런 가정을 가진 사람은 없고 사탄에게 갈기갈기, 아빠도 엄마도 혹은 아들도 딸도 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만 있는데, 이 사람들이 이 세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런 말들을 듣고, 거기서부터 인연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106.176-177, 1979.12.30)
그 시대의 성인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인간들이 가야 할 참된 길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그 시대의 백성들을 위해서 앞으로 올 세계를 가르쳤지만, 무지한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주권자들은 성인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고 몰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인이 나라를 팔아먹고 나라를 망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혼란 가운데 건져내어 미래에 소망의 나라로 만들거나, 어느 나라보다도 고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받들지 못하고 쫓아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인은 만민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도리를 갖췄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그 도리를 점점 받아들여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나온 것입니다. (39.256, 1971.01.05)
3. 종교 창시자의 전통 고수
종교경전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복음 5.17-18
나〔크리슈나〕는 이 불명의 요가를 비바스바트에게 일러 주었노라, 비바스바트는 마누에게 전해 주었고, 마누는 그것을 익슈바쿠에게 가르쳤노라. 이와 같이 아르쥬나여! 수승한 현자들이 끊임없는 전통 속에서 요가의 지혜를 전해 받았느니라.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요가는 세상에서 망실되었노라. 이 가르침의 비의는 실로 심원하나니, 내가 오늘 바로 그 태고의 요가를 그대에게 말해 주었노라. 왜냐 하면 그대는 나의 친구요 나를 신애하는 자이기 때문이니라.
바가바드기타 4.1-3 (힌두교)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인계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장로들에게, 그리고 장로들은 예언자들에게, 예언자들은 회당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미슈나,아보스 1.1 (유대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해져 오는 것을 기술했을 뿐 짓지 않았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했다.” 논어 7.1 (유교)
성서에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진실한 예언자였다. 그가 그의 아버지께 말하였다. “아버지여! 왜 듣지도 보지도 못하며 당신께 효용도 없는 것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그가 그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버리고 떠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삭과 야곱을 주어 그들로 하여 예언자가 되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진실을 말하는 참된 명성을 주었도다.
성서에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선택받은 예언자이며 선지자였도다. 하나님은 산우편에서 그를 불러 신뢰하기 위해, 하나님 가까이 두셨다. 또한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어 그의 형 아론을 예언자로 삼으셨다.
성서에 있는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약속을 지키는 충실한 자로 예언자이며 선지자였느니라.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예배를 드리고 자선금을 바치도록 요구하였으니, 주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기뻐하셨느니라.
성서에 있는 이드리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는 진실한 예언자이었느니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높은 곳으로 올렸느니라.
이들이 아담의 자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푼 예언자들이도다. 그 중에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 오른 자가 있었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자손이 있었으며, 또한 그 중에는 하나님이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선택한 자가 있노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징표가 그들에게 낭송될 때, 그들은 부복하고 경배하여 눈물을 흘렸노라!
꾸란 19.41-58 (이슬람)
우왕․ 탕왕․ 문왕․ 무왕․ 성왕․ 주공은 예를 가지고 정치를 성공시켰다. 이들 여섯 명의 군사들 중에는 예를 성실하게 지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예를 밝혀서 의를 얻게 했고, 예를 실천하여 신의가 행해지게 했고, 예를 기준으로 하고 죄를 따졌고, 어진 사람을 표창하고, 다투는 사람에게는 양보하도록 타일렀으며, 백성들에게 오상의 덕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만약 임금으로서 이상과 같은 예를 따르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의 부나 권세를 상실하게 되고, 대중에게 재앙의 존재로 배척받는다. 예기 7.1.2 (유교)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부처 따라
온갖 도를 구족하게 닦았으니,
심오하고 미묘한 법은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도다.
한량없는 억만 겁에
그 도를 모두 닦고 행하여
도량에서 정각을 이루어
내 이미 그 모두를 다 알고 보았노라.
법화경 2 (불교)
말씀선집
우리는 역대의 신앙 선조들이 세운 전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늘의 혈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하늘을 위하여 충성한 그 정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방의 황무지를 돌아다니던 그 정신, 야곱이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급으로 들어가던 그 정신,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의 땅 애급을 버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을 향하여 총진군하던 그 정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새롱누 가나안복지, 새로운 에덴복지를 향하여 달리려던 그 정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전통을 통하여 이러한 정신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8.25, 1959.10.25)
공자님이 나와 가지고 시대를 거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무시하고 역사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그런 류의 사상을 단지 체계화시키고 일반화시켰을 뿐입니다. (25.93, 1969.09.30)
후손들은 위인이나 성인을 왜 추모해야 되느냐?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들인 역사적인 모든 사연이 얽혀 있고, 선의 사연과 곡절이 그 속에 엉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러한 터전을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향하는 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록 타락의 후손들일망정 인심은 천심과 통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추모하고 성인이 걸었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요, 자연적인 것입니다. (17.268, 1967.02.15)
부활섭리역사에서 그 사명적인 책임을 맡았던 인물들이 비록 그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늘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타락인간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왔던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인간들은 역사가 흐를수록 그 이전의 선지선열들이 쌓아 올린 심정적인 기대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2.1)
‘나’라는 개성체는 어디까지나 복귀섭리역사의 소산이다. 따라서 ‘나’는 이 역사가 요구하는 목적을 이루어야 할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의 뜻 가운데 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햐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의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원리강론, 후편, 서론 3)
역사시대에 있어서 탕감의 사명을 짊어졌던 선조들의 기백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대에 당신이 칭찬하고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습니까? 아버지, 당신은 내적으로 약속하시고 축복하시며 명령하셨지만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저희 선조들은 번번이 당신의 마음에 못을 박고, 아버지를 고독의 자리로 추방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될 때, 저희들이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인연은 기쁜 일이오나, 사명적인 면에 있어서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선조들이 걸어간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더듬어 볼 적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30.39, 1970.03.15)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