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8장 종교)

무지... | 20180509100439

기독교
    
기독교는 문선명 선생이 물려받은 종교이므로, 그는 다른 종교보다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의 주된 가르침도 기독교의 성격과 관련된 기독교의 핵심적 전통, 교회 일치, 기독교의 세계 복음화 등과 직접 관련된 것이다.그리스도의 예에서 보듯이 기독교의 핵심 전통은 사랑과 희생이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통 받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라서 기독교는 쉽고 편안한 종교가 아니며, 언제나 헌신과 용기, 그리고 확신이 필요한 종교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핵심 전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를 모함하고 해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친교는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랑이 완전하게 실천되지 않고, 종종 다른 교회 신자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해서 기독교는 초창기부터 내부 갈등의 문제를 내재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사랑보다 교리의 결벽주의와 교파의 이익을 내세우면서, 교회는 서로 싸우고 핍박하여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큰 피해를 주었다. 문선명 선생은 기독교 핵심 진리를 명확히 천명하면서 사랑의 실천과 교회 일치를 위해 헌신해 왔다.
    
기독교는 모든 인류를 구원할 세계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 문선명 선생에 있어서 이것은 복음을 설교하거나 이교도를 개종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종교 중에서 지구상의 모든 문명을 민주적 가치와 사랑과 박애의 윤리로 이끈 것은 기독교의 혁혁한 공헌이다. 교회의 궁극적 사명은 이러한 가치의 토대 위에 예수님이 다시 강림할 때 세워질 하나님의 지상천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항목은 교회의 사명 성취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으로서 기독교의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는 적지 않은 결함을 노정시킨 역사였다. 교회가 권력과 부, 그리고 세상의 권위라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했을 때는 계속 실패했다. 반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희생과 전통을 중심삼고 참된 신앙의 자유를 추구할 때는 한결같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역사 과정에서 하나님은 권위 있는 기독교 문명 -초창기에 중세시대의 로마 가톨릭을 통해, 그리고 오늘날에는 미국을 중심삼은 개신교를 통해-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 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바티칸의 지도자들이 사랑과 희생 등 예수님의 핵심 전통에 따른 삶을 살기보다 권력과 세속적 영광을 더 추구했던 중세 문명은 사라졌다. 오늘날, 이 세계를 하나님 왕국으로 인도할 사명을 지닌 기독교 국가의 대표국인 미국은 중세와 비슷한 시험에 직면해 있다.


1. 기독교의 핵심적 전통: 사랑과 희생
    
종교 경전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4.27 (기독교)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복음 5.11-12 (기독교)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기독교)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사도행전 2.42-47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7-12 (기독교)
    
기독교는 십자각로 출발하여 가는 곳곳마다 맞았고 피를 흘렸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에서 맞는 입장을 취해야 세계를 주관할 수 있다. 보라! 가장 많이 쓰러졌던 바티칸 언덕에 기독교의 궁전이 서지 않았는가? (뜻길, p.319)
  
말씀 선집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판도를 이루기까지 얼마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순교의 제단에 끊임없이 희생시킴으로써 비참한 그 함성이 지구상에 울려 퍼져 그 울음소리가 안 들린 곳이 없을 만큼 역사를 더럽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의 제단이 연속되어 오늘날 목전에까지 도달한 역사적인 한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이어받아 해원해야 할 엄숙한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하고 기독교를 재차 해방해야 됩니다. (210.361, 1990.12.27)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골고다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을 배반한 배역의 무리가 되었으나 그들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슬픈 역사가 인계된 것입니다. 이 눈물의 역사, 이 땀의 역사, 이 피의 역사를 상속받은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 자는 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몰라서 망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성경과 찬송가만 들고 교회에 출입할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눈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땀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과 죽음으로써 세계를 점령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전통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전통적인 노정입니다. (10.281, 1960.11.06)
   
오늘날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이 따르는 일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의 심정을 끌어들여 ‘아버지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늠름히 넘어서 불쌍한 만민을 위하여 복빌 수 있었던 것처럼 저희들도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가졌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문제는 그것입니다. (7.96, 1959.07.19)
   
기독교인들이 즐겨 외우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이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유대교를, 유대인을 이처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세계의 중심이 되는 존재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 가운데는 세계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들어가고, 이 땅도 들어가고, 전체가 들어간다는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124.294, 1983.03.01)
    

2.기독교의 일치
   
종교 경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한 희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난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에베소서 4.4-6 (기독교)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 세워진 건물이요, 그리스도 예수 스스로가 그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랍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서 함께 건물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하실 곳이 되어갑니다. 에베소서 2.19-22 (기독교)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0-23 (기독교)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골로새서 3.12-15 (기독교)
  
말씀 선집 
  
기독교는 ‘교회는 예수의 몸이다.’라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집이, 교회가 예수의 몸이냐 이것입니다. 예수의 몸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교인들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이 예수의 몸이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찌하여 예수의 몸이라는 말이 됩니까? 예수님의 몸을 중심삼은 그 자리에 내가 대표해서 서게 되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는 예수님의 몸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적 자리에 내가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있으니 이건 전부 잘된 것이 아니라 그릇된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에 분파가 많다는 사실을 예수님 앞에 가장 슬픈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2천 년 동안 기독교가 한 것은 제물···. 예수님의 몸과 같은 제물을 다시 한 번 드려 가지고, 승리의 제물 기반을 바쳐 가지고 넘어가야 할 세계적 하나의 종교, 하나의 기독교가 돼야 할 텐데, 이렇게 됐다는 사실은 예수님 앞에 지극히 비통한 것이요, 하나님 앞에 지극히 비통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마음이라면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입니까? 몸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이 다를 수 있습니까? 다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돼야 됩니까? 하나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온 주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요, 우리 아버지요, 인류는 우리 형제요, 이 땅은 내 땅이라는 그 관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상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내 세계요, 만민은 우리 형제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그래서 한집안 식구가 돼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상이요, 예수의 사상이요, 기독교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교파가 문제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파를 없애 버리더라도 이 땅을 찾아야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93.12-25, 1977.05.08)
    
오늘날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는 왜 생겨났느냐? 기독교 가운데 교파가 생겼다는 사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도교의 교리와는 다릅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리입니다. 자기 교회 내에서는 사랑할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인 끼리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네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형제들은 기독교입니다. 장로교는 감리교, 감리교는 성결교, 전부 형제라는 것입니다. (107.20, 1980.02.21)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 무엇이겠는가 생각해 봤습니까? 그것은 망하는 기독교와 수많은 종교가 문제다 이것입니다. 종교를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제일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를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 때문에 골치를 앓고 계신데 감리교가 ‘아버지 하나님! 다른 기독교는 그만두고 우리 감리교에 복을 주소’ 하면 그게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겠습니까? 400여 종파 가운데 하나 되는 종파인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에이 이놈의 자식들아! 이놈의 교파주의자들아!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를 하나 만들어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기도해라’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한번 기도를 들어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 된 자리에서 ‘하나님이여! 우리 기독교를 통해서 당신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무거운 짐인 종교를 하나 만드는 일을 위해 우리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할 때, 하늘이 ‘오호라, 네 기도가 옳도다’ 하시지, ‘에이 이놈아, 욕심이 많다, 그런 기도는 못 쓴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파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교파를 깨뜨려서 하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98.114-115, 1978.05.07)
    
그래서 세계 기독교를 통일하는 데는 뭐냐 하면 신령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협회라는 것입니다. 주먹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총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통일하느냐? 인간의 힘 가지고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를 움직여야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통일하려면 통일되지 못하였던 기독교의 내용을 완전히 제거시키고 통일될 수 있는 내용만 남겨 놓으면 통일됩니다. 통일하지 못할 것을 제거시키고 통일할 수 있는 것만 남겨 놓으면 통일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전 세계 기독교가 갖지 못하는 새로운 진리체계,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성경으로,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연결될 수 있는 성경체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관을 형성해야 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관 자체가 하나님이 보는 관이요, 영계가 바라보는 관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협조를 받으려면 하나님이 협조하겠다고 나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계의 왕으로 계시다면 왕이 ‘음’ 하고 있는데 졸개들이 암만 했댔자 그거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왕 되신 하나님이 흥분해 가지고 ‘그러면 그렇지! 내 때가 왔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야 그 졸개 새끼 영계가 다 따라 가지고 하나 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반대하고 있는데 영계가 협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가운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내용을 골자로 추린 것을 감정해 보시게 될 때 ‘아, 그 녀석 맞다. 통일교회 그거 괜찮은데’ 하는 이런 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3.97, 1981.05.01)
  
    
3. 세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
  
종교 경전 
  
나 여호와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주고 너를 세워 인류의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이사야 42.6 (기독교)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17 (기독교)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5.19-20 (기독교)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8-20 (기독교)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6-8 (기독교)
  
말씀 선집 
  
여러분 기독교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일반 사회 사람보다도 나쁘다 하는 평을 들어 봤습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더 악하다. 더 이기주의다 이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왜 개인주의가 되었습니까? 예수가 개인주의자입니까? 하나님이 개인주의입니까? 그런데 왜 미국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다는 미국 사람들이, 예수 믿는 국가를 대표하는 미국 사람들이 왜 개인주의가 되었습니까? 예수를 믿었다면 그런 사람이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말은 단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이용했고, 예수를 믿는 것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믿었다는 결론밖에 안 됩니다. (124.294, 1983.03.01)
    
그러면 제물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민이 기뻐한 후에 비로소 머리를 드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고, 만민이 기뻐하시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면 깨어집니다. 기독교가 만민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개혁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요 하늘의 황태자이신 예수께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오셨었던 연고입니다. 영계에 가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지상의 성도는 기뻐하여도 제물이신 예수님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이 기뻐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재림의 날입니다. 이것이 제물이 가는 길입니다. (5.79-80, 1958.12.21)
   
예수님 같은 분을 유대교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로마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 길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간 길은 천도를 따라서 간 길이요, 가치 없는 인생으로서 간 길이 아니라 숭고하고 무한한 가치의 기준을 가지고 간 길이었습니다. 그
    
가치의 기준은 온 세계가 소망할 수 있는 중심 내용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기필코 인간이 찾아야 할 소망의 기준이요, 찾아가야 할 참된 길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가 규합되어 가지고 오늘날 민주 세계가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41.70, 1971.02.13)
   
기독교 문화권은 이 세계의 끝 날에 명실 공히 세계적인 문화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의 국가는 이 문화권을 중심으로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9.44, 1971.01.09)
    
오늘날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적인 투쟁을 밟고 올라서 예수님의 천국의 이념을 받들고 나서야 하겠으며, 나아가 전 세계 기독교인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옛날 이스라엘의 전체적인 가치에 비유할 수 있는 유대교단과 하나 되어 세계를 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이념과, 그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이 되고 있는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23-124, 1957.10.13)
    

4. 기독교의 역사 : 승리주의, 부패와 갱신
    
종교 경전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6.18-19 (기독교)
  
말씀 선집 
  
중세의 로마 교황청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당시에는 이미 부패해서 교권과 교조에 얽매였고 하나님의 뜻이 세계를 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세계는 다 집어치우고 자기들 권력, 자기들이 닦아 놓은 기반이 무너질까봐 눈이 뚱그래 가지고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종족과 모든 희생을 백 퍼센트 치러야 될 텐데 자기의 위치를, 자기들만이 영광을 취하기 위한 그 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전부 다 행동을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뜻을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걸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격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깨뜨려 버리든가 혁명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래서 신교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루터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정명으로 충돌한 것은 잘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믿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희들보다 더 믿고 더 사랑하겠다. 너희들이 교인을 지도하는 그 이상 우리는 세계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자유스러운 자리에서 교인을 지도하겠다’ 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서둘러서 협조하실 것입니다.
(69.102-103, 1973.10.21)
    
하나님께서는 섭리의 기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늘을 염려하는 한 사람, 루터를 중심삼고 종교개혁을 벌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편은 깨뜨리고 한편은 세우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통해 제2의 이스라엘 형을 거치게 하고 문예부흥을 거쳐 일대 혼란을 겪게 한 다음, 인본주의적 이성철학을 중심삼은 계몽사조를 대적해 나설 수 있는 섭리를 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계몽주의자인 볼테르나 루소,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파멸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청렴한 인물들이 나와 신비성을 고취하면서 하나님의 실제적인 내적 체험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영국을 거쳐 요한 웨슬레 형제의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퀘이커파를 일으켜 신비적인 내적 체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성도 잃어버리고 물질을 사랑할 줄 아는 유물사조적인 주의까지 도달하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반드시 본연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어느 때이든지 간에 그 물질을 중심한 사조를 칠 때가 오게 됩니다. (4.18, 1958.02.16)
  
온 인류의 구원을 표방하고 2천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들추어 보라. 로마제국의 그 잔학무도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힘찬 생명의 불길을 던져, 로마인들로 하여금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던 기독정신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이윽고 중세 봉건사회는 기독교를 산 채로 매장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무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절규하는 종교개혁의 봉화는 들렸었으나, 이 불길도 격동하는 어둠의 물결을 막아낼 수 는 없었다. 에클레시아의 사랑이 꺼지고 자본주의의 재욕의 바람이 유럽의 사회를 휩쓸어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서민들이 빈민굴에서 아우성을 칠 때, 그들에 대한 권의 함성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부터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고 나선 기독교가 그 구호만을 남긴 에클레시아의 잔해로 돌아갔을 때, 거기서 그렇게 무자비한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반기가 들렸던 사실은 있을 만하기도 하다. 이렇게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유물사상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회는 유물사사의 온상이 되었다.
    
공산주의는 이 온상에서 좋은 거름을 흡수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저들의 실천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저들의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한 기독교는, 저들이 바로 자기의 품속에서 싹트고 자라서 그 판도를 세계적으로 넓혀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이니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뿐 아니라 온 인류가 한 부모의 후예임을 교리로써 가르치고 또 그와 같이 믿고 있는 기독교 국가의 바로 그 국민들이 다만 피부의 빛깔이 다름을 인하여 그 형제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없게 된 현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실천력을 잃어버리고 회칠한 무덤같이 형식화해 버린 현하 기독교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원리강론, 총서)
    
중세 시대에 기독교는 이 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그 이념 아래 있는 사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흡수하여 융합시켜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도 치게 되었습니다. 만일 로마 교황청이 부패하지 않고, 자기들이 있음은 세계를 위함이요, 자기들이 있음은 인류를 위해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들이 좋으면 자기들이 좋기 전에 남이 좋을 수 있게, 즉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사상을 제창하였다면 교황청은 붕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이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외적으로는 문예부흥을 일으켜 치셨고,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구교를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퓨리턴을 중심삼고 미 대륙으로 건너가 거기서 기독교 이념을 중심한 국가를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즉, 로마의 정치이념, 기독교의 종교이념, 희랍의 지성주의가 융합되어 오늘날 전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범미주의(汎美主義)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미국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통합하여 천륜과 연할 수 있는 그때까지, 국가적인 사명을 대신하고 소유적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 하려면 어떠한 사상을 가져야 할 것인가? 먼저 자기 제일주의 사상을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미국 국민에게 그 무엇보다 긴요한 것입니다. (5.22-23, 1958.11.09)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