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종교적 자유, 그리고 종교 일치(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8장 종교)

무지... | 20180504085942

관용, 종교적 자유, 그리고 종교 일치
  
관용은 ‘다른 믿음을 가진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시작한다. 비 신앙인과 신앙인을 같은 관심을 갖고 대하도록 가르치는 경전의 구절을 여기에 모았다. 종교적 논쟁이나 교리적 갈등은 비난할만하다. 그들은 종종 경건으로 위장한 이기주의의 충동을 받아 자신의 신앙에 맞지 않는 것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를 확대하면 정부는 종교 자유를 인정하고 신앙 문제에 강제성을 띠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자유를 현대 민주주의의 유일한 특징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30년 전쟁 등등 전쟁의 잔혹성으로 점철된 오랜 기간의 종교적 편협에서 태동된 것이다. 
  
일부 문명에는 종교적 관용의 시기가 있었다. 관용적인 불교신자였던 아소카 왕(기원전 3세기)치하의 인도, 무갈 제국의 계몽 황제 아크바(16세기), 알-안달루스(무슬림 치하의 스페인, 10세기), 그리고 중국의 송 왕조시대(10-13세기)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자유가 지구적 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되면서였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어렵게 성취한 승리의 하나가 종교 자유를 확립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종교 사이의 화해와 연대는 종교의 관용과 종교 자유를 넘어선 보다 높은 비전이다. 인류가 세계의 여러 종교와 더욱 친밀해지고, 종교 지도자들이 대화를 통해 분쟁과 과거의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한 결과, 이러한 현대적 비전이 태동한 것이다. 바하이교는 오래 전부터 종교간 이치를 주장해 왔다. 
   
유대인 대학살의 공포를 겪은 후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바유대주의적 요소가 들어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광범위한 재평가가 이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세속주의 경향이나 종교적 편협이 언젠가 종교를 과거의 유물로 남게 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이다. 종교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이 급속히 번지면서 인류는 세계평화의 구현을 위해서 종교간 협력이 필수적 전제조건임을 깊이 각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종교 일치가 하나님 섭리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라는 신념 아래 50년 이상 조금도 과시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
 


1. 다른 종교인에 대한 관용
  
종교 경전 
  
자신의 교의를 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교의들을 깔보는 자들은 어떤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 수트라 크리탕가 1.1.50 (자이나교)
   
가장 좋은 것이(좋은 언어와 예절) 아니라면 성서의 백성(유대인, 기독교도)들과 논쟁하지 마라. 꾸란 29.46 (이슬람)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2 (기독교)
  
우리의 스승들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가난한 자들도 도와라. 이스라엘의 병자만 아니라 이교도의 병자에게도 찾아가라. 이스라엘인의 주검만 아니라 이교도의 주검도 같이 묻어주어라. 평화의 이름으로.” 
탈무드, 기틴 61a (유대교)
  
카파타카가 여쭈었다. “현자는 어떻게 진리를 견지합니까?”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지녔을 때, 만일 그가 ‘이것은 나의 믿음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때까지 그는 진리를 견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이것만이 진리이며, 그 외에는 모두 거짓’ 이라는 절대적인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맛지마 니카야 2.176 (불교)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지혜로운 자는 여러 경전들에서 그 정수를 받아들이며, 모든 종교에서 단지 장점만 본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11.3 (힌두교)
  
말씀 선집 
  
참부모의 이상과 세계평화의 이상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가와 민족과 문화와 종교들이 서로 백퍼센트 이상 위하고 관용하면서 화합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205.159, 1990.08.16)
  
하나님은 어떤 교리로 생활하는 분이 아니며, 종교 의식이나 형식에 얽매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영적 존재로서 우주의 창조자입니다. 종교는 전 인류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같은 종교 내의 쟁의에 의한 교파간의 투쟁이나 타종교간의 투쟁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의 심정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본인은 두 개의 일치화 운동으로서 뉴 에라(New Era)와 하나님회의를 창설하고 이들을 통하여 기독교 내의 교파간은 물론 타종교간의 조화와 통일에 대한 가능성과 필요성을 시도해 본 결과, 이러한 조화와 통일은 인내와 희생, 그리고 참사랑의 값진 결실로서 실현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종교간 진지한 대화의 조화를 실현함으로써 지상에 하나님의 뜻을 촉진하고 세계평화를 실현코자 본인은 세계종교의회와 세계종교회합을 설립하였는데, 현재 이러한 기구들은 정체된 종교계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청소년들의 인종분쟁 및 종교전쟁을 마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이상적 평화세계를 세우는 데 적극 기여할 기구를 설립하였는데, 세계청소년회의와 청소년종교봉사단이 그것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모든 기루를 통하여 종교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67.99, 1987.06.30)
  
하나 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든 종교에 대해서 하나 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이 있다면, 교리 상으로 모든 것을 풀어서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참는 힘이 많아 가지고 관용심이 많아 가지고 그 종교와 하나 되기 위해서 양보하고 나가던가 하는 두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03.126, 1979.02.18)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가 필요로 하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보다 평화를 제시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되는 것은 자기를 중요시하고, 또 자기 중심삼은 소유관념이나 소유욕을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역사시대에 자기들의 조국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주체적 관념에 지배받던 그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희생시켜야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의 역사를 따라가게 될 때는 전쟁역사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을 아는 하늘은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부정해라’ 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주체의 자리에 서더라도 주체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고, 자길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종교의 길이더라 이겁니다.
(142.14144, 1988.01.10)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지 장로교면 장로교, 감리교면 감리교, 성결교면 성결교 그것 하나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만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참되려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교회가 망하게 되더라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텐데, 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심판하면서 ‘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부정하고 ‘우리들을 위하랴’고 하면서 자기르 절대시하는 교회는 망합니다. (69.87, 1973.10.20)
  
하나님이 이 시대를 경륜하기 위하여 바라시는 종교는 ‘부모 위치에 있는 종교’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품고 사는 종교를 요구하십니다. 본인은 참부모 사상을 교육하고 각자가 그 전통을 닮은 참부모들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참부모가 되고 종족에서 참부모가 되는 종족적 메시아 사명을 다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참부모의 심정을 품은 교인, 참부모의 심정을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갈등과 증오와 죄악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교파를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세계평화 실현에도 하나님의 섭리에도 유용하지 않습니다.
  
천운은 조화된 평화세계를 지향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어떠합니까? 냉전시대가 종식되었으면서도 아직 극복해야 할 대결과 분쟁의 소지는 너무도 많습니다. 인종간 분쟁, 종교간 갈등 등의 근본을 해결해서 인류 한 형제, 세계일가의 화합시대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는 참부모 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260.128, 1994.05.01)



2. 종교 자유
  
종교 경전 
  
너희가 인간들로 하여금 믿는 자가 되도록 강요하려느냐? 하나님의 허락 없다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노라. 꾸란 10.9100 (이슬람)
  
종교에는 강요가 없느니라. 꾸란 2.256 (이슬람)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를지 조심하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가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과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사도행전 5.339 (기독교)
  
알라의 예언자가 메디나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 있던 유태인과 조약을 맺었다. “바니 아우프 족의 유태인은 무슬림 신자들과 하나의 공동체이다. 유태인은 자신의 종교를 실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부, 재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억압을 행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자는 예외이다.” 하디스 (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또 하나의 일은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은 당시의 제도 하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 하겠습니다. 이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재림 시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람을 함부로 잡아 죽일 수 없는 정치제도인 것을 아십니다. 이를 위하여 2천 년 동안 땀 흘려 준비하신 제도가 곧 오늘날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존중하는 제도입니다. 민주주의는 소수파도 다수파 속에 끼어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 자유가 곧 언론의 자유요, 집회의 자유입니다. 그 민주주의의 대표라 볼 수 있는 미국의 헌법을 보면, 자유 가운데 가장 절대적인 자유가 종교의 자유이며, 미국 의회와 정부는 종교를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법도 만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100.246, 1978.10.19)
  
예수님 이후 2천 년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 시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초림 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로 몰리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 는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3.3.2)
  
본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본인을 종교자유 수호를 위한 지도자로서 미국의 영적 각성운동에 점화의 도구로 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133.213, 1984.07.19)
   


3. 종교 공동체와 종교 사이의 유대
  
종교 경전 
  
내게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우리 안으로 인도해야 하겠다. 그리하면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듣고 마침내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16 (기독교)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이사야 56.7 (기독교)
  
말씀 선집 
  
본인이 알고 있는 신은 종파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지엽적인 교리이론에 얽매이신 신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은 교의문자나 의식조건에 융통성 없이 얽매이는 신학적 갈등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서 신과 산 교재를 가져야 합니다. 신도들의 믿음이 생동하고 각자의 영혼이 신과 교통하는 순수한 종교 풍토의 조성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신과 부모의 심정, 그리고 크신 사랑 안에는 민족이나 혈색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나 문화 전통이나 동서양의 벽도 없습니다. 신께서는 오늘도 만민을 같은 자녀로 품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단간의 대화와 화합을 통하여 신의 창조목적이요 인류공망(人類共望)인 단일평화이상 세계를 기어이 실현해야 합니다. (135.221, 1985.11.16)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수많은 기독교 파들 사이에서, 여러 세계 종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 세계 종교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는 상호 몰이해의 현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 공동체들 간의 대립과 적대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벌어졌던 종교전쟁은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상호일치를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시도되어 왔으나, 독실한 신앙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불관용, 종교적 편협 및 종교적 교만의 풍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들이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심지어 같은 교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상호 탄압과 적대행위를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교단주의나 교리나 파당주의를 초월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 왔고, 특정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교단체만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상호간 싸움과 적대행위를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절감하여 왔으나,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번번이 좌절되어 왔습니다.
  
본인이 강조해 온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종교간 화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종교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견해들은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한 하늘 부모의 자녀들인 연고로, 우리는 한 대가족 안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며, 따라서 종교간 갈등과 증오는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133.274, 1984.08.13)
  
하나님이 세계하고 전부 다 격리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합니다. 회회교를 보더라도 말이에요, 무슬림을 중심삼고 자기들 중심삼고 하자 그러는 것입니다. 세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지금까지 안 해 왔습니다. (99.17, 1978.08.27)
  
유대교의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중동에 있는 나라들이 가인 아벨로 하나 되었다면, 벌써 6세기 전부터 인도와 중국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지대를 중심삼고 통일해 자동적으로 하나 될 수 있는 환경을 다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되었더라면 그때는 이미 로마가 부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동이나 어디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제국의 판도 내에 인도니 중국이니 이 종교 권들이 영계에서 하나 되라는 지시만 있으면 한꺼번에 다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힌두교의 나라가 아니고, 유대교의 나라가 아니고, 기독교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의 나라입니다. (406.23, 2003.03.02)
  
동양에서는 무아경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용한 곳,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아이고, 돈이 많고 무엇이 많은 데 가자!’ 이러고 있습니다. 서양식은 ‘있는데 가자. 많은 데 가자’고 해서 눈이 커진 것입니다. 눈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누이 커져 가지고 ‘아이고 어서 가자, 어서 가자’ 한다는 것입니다. 
  
또, 키가 커 가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양 사람은 작습니다. 눈도 작아지고 코도 작아지고 다 작아졌습니다. 다리도 짧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게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냐? 서양은 밖이고 동양은 안이라는 것입니다. (118.47, 1982.05.02)
   
종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종교의 목적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믿는 신은 이름이 여러 가지이며 표현이 다르지만, 그 종교에서 신봉하는 중심존재는 하나의 신에 귀일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그 종교가 가르치는 방향과 목적은 언제나 하나를 표준으로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모든 종교가 자기 나름의 길을 수습해 가지고 일대 하나의 변혁시대를 맞이해야 됩니다. (140.10-11, 1986.02.01)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 절대의 소원이요 목적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나 그것은 먼저 종교 통일을 하고야 가능한 것입니다. 한 아버지인 하나님을 모시고 한 메시아 밑에 하나님주의로 굳게 결속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실 것인즉 세계복귀, 즉 지상천국 구현은 시간문제입니다. (88.211, 1976.09.18)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주장하던 세계적인 사조도 지나가 버리고, 최후에 남아질 것은 재림주로 오시는 신랑을 중심삼고 신부들이 만나는, 그런 새로운 세계적 문화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언어도 통일이요, 생활도 통일이요, 행동도 통일이요, 소원도 통일이요, 심정도 통일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50.62, 1971.10.31)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