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성서에 죽은 자의 부활이 예언되어 있으며 꾸란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ㅂ고된 미래의 삶에 대한 약속이 있다. 부활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죽은 자가 사후 세계로 영혼이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에서 영원한 삶의 영역으로 영혼을 승화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이다. 부활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새 삶의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새 삶의 질적 변화를 수행하는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부활을 통해 죽음의 영역인 지옥에 갇힌 존재에서 하나님 품 안의 축복받은 존재로 영적으로 끌어올려 진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새 삶, 곧 부활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기, 확고한 신앙, 심지어 순교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 완전하게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탄의 관계를 끊고 자신을 ‘죽이는 것’ 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의 전제조건으로 십자가에서 제물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시련에 직면할 수 있다. 예수님이 외견상 로마인의 손에 희생되어 패배한 것처럼 보였으나 승리한 것은 하나님이 패배를 뒤집고 죽음까지도 승리와 생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성서는 모든 정의로운 영혼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말세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서는 144,000의 거룩한 무리가 ‘첫째 부활’ 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후 세계에서도 영혼들이 미래의 해방의 날이 올 때까지 흑암 속에서 견디며 악조건에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세주가 출현하여 사탄을 무리치고 지옥에 가두는 그 날 천상과지상의 모든 여혼들이 부활의 자유와 새 삶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첫째 부활은 다른 사람의 노력의 대가로 특정 신앙인에게 영원한 은총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람들은 바울이 ‘마지막 물리칠 원수는 사망’ 이라고 말한 것처럼, 한 영혼이라도 죽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도록 악의 모든 권세를 물리치는 투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1. 사망에서 생명으로
종교 경전
외치는 자가 가까운 곳에서 외치는 날에는 귀를 기우리라. 그들이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는날 그 날이 무업에서 나오게 디는 날이니라. 진실로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니 우리에게 돌아오리라.
대지가 그들 주위에서 갈라지는 날 그들은 서둘러 나와 모이게 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에게 쉬운 일이니라.
꾸란 50.41-44(이슬람)
여호와께서 손으로 나를 잡으시자 여호와의 기운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셨다. 그래서 들 한가운데 이끌려 나가보니 거기에 뼈들이 가득히 널려있는 것이었다. 그분이 나를 그리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들 바닥에는 뼈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말라 있었다.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것 같으냐?” 내가 “주 여호와여, 당신께서 아시옵니다.” 하고 아뢰니, 그분이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뼈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마른 뼈들아, 이 여호와의 말을 들어라. 뼈들에게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쉬는 기척은 없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너 사람아,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숨이 불어왔다. 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다. 뼈는 마르고 희망은 사라져 끝장이 났다고 넋두리하던 것들이다. 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
내가 이렇게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나 여호와가 한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에스겔37.1-14(기독교)
그들이 말하길, 우리가 정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부서진 뼈가 되었는데도. 그들이 말하길, 그러면 그것은 손해 보는 복귀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마디 외침일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깨어날 것이니라.
꾸란 79.10-14(이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2(기독교)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1.25-26(기독교)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라도
나는 하나님을 뵙고야 말리라.
욥기 19.25-26 (기독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요한복음 12.24-25(기독교)
하나님의 징표를 그대는 황량한 대지에서 볼 수 있노라. 하나님이 그 위에 비를 내리면 곧 생기로 가득 차 약동하노라. 대지를 소생시킨 분은 죽은자도 소생시킬 수 있는 분이시리라. 진실로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분이니라.
꾸란 41.39(이슬람)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42-45 (기독교)
말씀 선집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이 목숨이 끊어져서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타락으로 인한 죽음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성서가 의미하는 부활이라고 해석하여 왔기 때문에, 이미 타계한 성도들의 부활은 곧 흙으로 분해되었던 그 육신이 다시 원상태로 살아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면 이러한 죽음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 아니다. 원래 인간이란 노쇠하면 그 육신은 자연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흙으로 분해되어버린 육신은 다시 원상태로 부활할 수도 없으려니와, 영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된 영인체가 다시 육신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 즉 사탄 주관권내에 떨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 주관권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그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더 선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부활한 것이 된다.
성서에서 부활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품속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한편,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 것이 사망이요, 여기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혈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창 2:17)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된 아담과 해와는 죽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외형적인 아무런 변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었다면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그들의 안색이 변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으로 부활된다 하더라도 그의 외형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성신으로 중생한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에 비하여 분명히 부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와 강도를 비교해 본다면, 하나는 하늘편의 사람으로서 중생한 정도만큼 부활한 입장에 있고, 또 하나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으로서 죽은 입장에 있지만 그들의 회형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예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으로부터 생명에로 옮겨져서 부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기 전 사망한 상태에 따라 있을 때나 예수를 믿고 생명에로 옮겨짐으로써 부활한 후나 그의 육체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할 인간으로 오셨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형으로 본 예수님은 타락인간에 비하여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만일 그에게 다른 것이 있었다면 당시의 측근자들이 그를 믿고 따르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부활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을 벗어나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타락인간이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령의 변화에 의하여 인간의 육신도 사탄이 우거하는 전으로부터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성전으로 사실상 성화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신도 부활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악한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던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건물의 외형에 있어서는 하등의 변화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성스러운 건물로 변화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인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1.3-4)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기 전까지는 내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하나님 것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혈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기 전까지는 우리의 생명 전부는 사탄편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과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고 한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297.265,1998.12.19)
성경은 결론적으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걸 부정하면 부활이 벌어집니다. 예수님도 자기 생명을 부정했기 때문에 부활할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켜 준 것입니다. (307.167.1998.11.08)
(p.387
2. 성인의 부활 : 첫째 부활
종교 경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기독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이 올 것인데,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권위와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22-26(기독교)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음성이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가락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그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땅으로부터 속량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자들로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 속량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5(기독교)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용,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옛 뱀을 붙잡아 결박하여, 아비소스에 던지고 닫은 다음에, 그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 동안 가두어 두고, 천 년이 끝날 때가지는 민족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플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베인 사람들의 영혼과, 그 짐승이나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하께 천 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천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요한계시록 20.1-6(기독교)
말씀 선집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구경하기 위하여 지으셨다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 없습니다. 온 신경을 일ㄴ간에게 기울이고 6천년 기나긴 시련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인간을 대하여 섭리해 나온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직접적인 하늘의 가족, 즉 식구의 인연, 부자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무수한 수고의 고비를 넘고 넘어, 오늘도 이 길을 달음질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가정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의 식구로서 등장하여 그 식구의 위신과 가치를 아버지 앞에 나타내는 그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날이요 재림의 날일 것입니다. (7.265,1959.09.27)
‘첫째 부활’ 이라 함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가 시작된 이후 재림역사에 의하여서 맨 처음으로 인간이 원죄를 벗고 창조본연의 자아를 복귀하여 창조목적을 이루게 하는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유일한 소망은 ‘첫째 부활’ 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재림주님이 강림하시게 될 때, 맨 먼저 그를 믿고 모시고 따라 복귀섭리노정의 전체적이며 또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시는 그의 일을 협조함으로써, 모든 인간에 앞서 먼저 원죄를 벗고 생령체급 영인체를 이루어 창조목적을 완성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복귀섭리를 완수하시기 위해서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하늘 뜻을 받들고 나오다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모든 성현들의 처지를 탕감복귀 할 수 있는 대신자들을 재림주님이 그 일대에서 횡적으로 찾아 세워 사탄세계에 대한 승리의 기대를 닦아 놓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재림주님이 오셔서 찾아 세워야 할 성도들이 그 전체 수가 바로요한계시록 14장 1절 내지 4절과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기록되어 있는 14만 4천 무리인 것이다.
(원리강론, 부활론 1.2.7)
2. 사랑: 영생의 토대
종교 경전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의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살인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으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14-16
말씀 선집
사랑은 영원하길 바라지요? 그건 절대적 사랑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절대적 사랑과 하나 되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근본 하나님의 뿌리에서부터 절대적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사랑에는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며 인간은 상대라면 하나님이 영원히 사니 사랑의 상대, 일체된 인간도 영원히 살아야 되는 것은 이론적이요,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참사람에서만이, 절대적인 사랑에서만이 영생이 존속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51.120,1993.10.17)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어 있으면 세상이야 망하든 뭐하든 걱정을 안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붙들고 하나 못 되게 하더라도 그 칼이 무섭지 않습니다. 죽어서라도 간다는 이런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생애를 중심삼은 그 생애만이 아닙니다. 영생이 그렇게 다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히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생활보다도 영생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본체가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이 본체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플러스 됐으면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위에 마이너스가 안 오고 플러스가 붙어야 됩니다. 그래서 큰 하늘과 거기에 상대적인 것이 하나 되어 돌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플러스만 붙게 되면 여기를 따라서 크는 것입니다. 자식이 크고 전부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인간생활의 완성 표준을 중심삼고 그것이 하나의 씨와 같이 되어서 순환운동을 해서 춘하추동 사계절을 통해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씨가 다시 씨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수증기가 되어 가지고 조화를 부리지만 나중에는 수증기로 돌아와 담수로 돌아오는 거와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돌기 위해서는 이중적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80.88-89,2002.06.05)
아버지는 저희 자신을 입증할 수 있고, 저희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거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신념뿐만 아니라 체휼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와 나는 전후관계, 좌우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그런 입장에서 영원히 같이 있었고, 영원히 같이 살고 있고, 영원히 같이 살 것이라는, 변함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논증의 기원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겟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40.350,197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