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7장 구원, 해방, 각성)

참사랑 | 20180419175255
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제7장 구원, 해방, 각성

은총

인간은 인간성의 타락과 타락한 환경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러나 신앙의 길에는 우리를 든든히 지켜줄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 때문에(인생행로에)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러 경전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왜냐하면 은총이 없다면 길을 잃고 비참한 상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약한 신앙인에게도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은총이 내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인의 구원자라는 구절들을 선택했다. 은총은 한 개인의 태도나 공적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은총은 선한 일을 통해 얻은 공적을 훨씬 넘어선 것이며, 어려운 삶을 견디거나 선한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구원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는 탕자의 두 가지 비유로 등장하는데, 하나는 신약성서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불교 경전 법화경의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약간 다르지만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연민이라는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 의하면 필사적으로 아들을 찾아 헤매고 수년에 걸쳐 자신의 아들을 완전히 회복시키려는 아버지를 묘사한 불교의 비유는 인류역사를 통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노고를 기술하는 것과 상통한다 할 것이다.

1.구원에 필요한 은총
 
종교경전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헤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2.8-9(기독교)

  이부 후레이라가 사도의 말을 전하였다. “누구도 자신의 행위만으로 천국에 들 수는 없느니라.” 이에 어떤 이가, “하나님의 사도여, 당신도 해당됩니까?”라고 묻자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자비로써 감싸주셨다”라고 대답하였다 
무슬림하디스(이슬람)

[고행자들의]온갖 법복을 갈아입음으로써, 또는 베다의 학습이나 명상에 의하여, 또는 불존의 실천 수행을 통하여 그를 성취한 자는 아무도 없었도다. 나낙이 말하노니, 다만 그의 은총으로 우리가 깨달음을 얻어 거룩하게 되리라. 
아디 그란트, 가우리 바완 아카리,M.5, p251(시크교)

최고아는 높은 학식으로 성취되는 바가 아니며, 경전의 교설을 들음으로써 얻어지는 바도 dks다. 그는 오직 그가 택하는 자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을 뿐이다. 최고가은 그가 스스로 택한 자에게 그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2.3:카타 아파니샤드 1.2.23(힌두교)

비록 너희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부르짖고, 끊임없는 흐느낌으로 눈이 아프게 된다 해도, 또한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고행의 삶으로 나아간다 해도, 너희의 이러한 끈질긴 노력은 진실과 종교의 길로 너희를 인도하는 그 분의 선의와 친절, 그분의 박애와 베푸심, 그리고 그분의자비와 자선의 작은 부분도 보상하지 못하리라. 
나흐줄 비라가, 설교57(시아파 이슬람)

세상의 기초가 놓이던 때부터 주비된 구원의 계획이 없었더라면 죽은 자의 부뢀도 없었을 것이나, 구원의 계획이 이미 준비 되었으니. 이미 알려진 죽은 자의 불활이 있으리라.
몰몬경, 앨마서 12.25(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리 떠나 있었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헤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타내 보이시려고 그리스도를 세워 그의 피로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로마서3.23-25(기독교)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지해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지배할 것이 아닙니까? 로마서 5.17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고린도후서12.9(기독교)

업의 사슬에 얽매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만 그의 은총으로 이 업보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느니라. 스리마드 비카바캄 11.2(힌두교)

모든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웒ㄴ다. 은총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내리기를 바랐던 아브라함도 그 자신이 은총을 필요로 하였다. 창세기 랍바 60.2(유대교)

당신의 권능으로, 오, 주여!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라.
아베스타, 야스나 34.15(조로아스터교)

말씀선집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온 세계를 사탄 마귀가 주관하는 세계가 되었으니 이 세계가 지상지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보다도 강력한 하나의 나라를 세워서 사탄세계의 나라를 흡수하는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한 중심존재로 보낸 것이 메시아요, 이것이 메시아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게 될 때 본래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곳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나라의 터전을 바라보고 찾아오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구원섭리의 세상이요, 구원섭리의 역사시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남의 본래의 뜻으로 볼 때 이 구원섭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없었던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73.203-204, 1974.09.18)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이 땅에서 이루셔야 할 뜻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말할 자리에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져온 것이다. (뜻길, p.74)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역사적으로 자랑할 수 없는 대 악당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복귀해야 할 심정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예수를 거쳐 지금까지 참아 오시면서 구원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이런 은사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현재 심정의 인연이 아닌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 합니다. (16.236, 1966.06.19)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우리 눈은 속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오관 감정은 전부 속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지만, 공의의 법을 가지고는 상대할 수 있는 내용이 절대 없지만, 사랑의 법을 가지고는 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149.38-39,1986.11.01)

구원의 근본 기점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접촉점입니다. 거기에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하난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혈통과 관계없는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원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죄를 제거하는 데는 혈통적인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합니. 혈통적인 것은 타락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35.159, 1970.10.13)

아버님! 오늘의 나를 내 한 자체 속에서 찾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역사를 대신하고 전체 우주를 대신하고 미래의 세계를 대신하여 천륜의 뜻 앞에 부끄러운이 없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며, 그런 아들달이 된 것을 자랑할수 있는 기쁨의 영광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2.280, 1957.06.23)

 2. 탕자를 위한 은총

종교경전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내 몫을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후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재산을 낭비했다. 돈을 쓸 대로 다 썼는데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 아주 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그는 제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그 많은 품꾼은 양식이 풍부하여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겠구나. 나는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 이렇게 말하겠다.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는 일어나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가 집에까지 가려면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하여 견딜 수 없어 달려가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하였다. “어서 좋은 옷을 꺼내어 내 아들에게 입히고 반지를 손에 끼우고 그의 발에 신발을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잔치를 베풀고 이날을 즐기자. 내 다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그래서 잔치가 벌어졌다. 그런데 큰 아들이 받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음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려오므로 종하나를 불러 “ 이것이 무슨일이냐”하고 물어 보았다. 

종이 대답했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여 아버지께서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와서 그를 달랬으나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저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며 한 번도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는데,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함께 지내느라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먹어버린 그 아들이 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들아, 너는 늘 나와 같이 있고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인데, 네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았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아니할 수 있느냐?" 
누가복음 15.11-32, 탕자의 비유(기독교)

비유하건대, 어떤 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다른 지방으로 나가 다니기를 십년, 이십 년, 또는 오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곤궁해져 사방으로 의식을 구하러 떠돌다가 우연히 고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일찍이 아들을 찾아 나셨다가 이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도성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가세가 날로 번창하고 한량없는 재물과 금은보화가 창고마다 가득하였습니다.

그때 빈궁한 아들이 이 마을 저 마을, 이 지방 저 지방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시도 아들을 잊고 산 적이 없으되, 아들을 떠나보낸 지가 오십년이 되도록 다른 이들에게는 일체 이것을 말하지 않았고, 다만 속으로 탄식하기를 “재물은 차고 넘쳐 금은보화가 차고에 가득한데, 내 몸은 늙고 자식은 찾을 길이 없으니, 문득 내가 죽으면 나의 재물도 흔적 없이 흩어져 버리리라. 유산을 물려받을 아들이 없는 까닭이다. 만약 내가 살아생전에 아들을 만나 재물을 줄 수 있다면 무한히 즐거워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그때 빈궁한 아들은 품을 팔며 떠돌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에 이르렀습니다. 대문 밖에 서서 멀리 문 안쪽에 있는 주인을 바라보니, 사자좌에 걸터앉아 보배로 만든 받침에다 발을 올려놓고 많은 바라문과 무사들과 거사들이 다 그를 공경하여 시립해 모시는데, 천만 냥이나 되는 진주와 영락으로 몸을 치장하였고, 하인들이 흰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궁한 아들은 그 주인이 큰 세력을 가진 것을 보고는 곧 두려운 마음이 일어 그 곳에 온 것을 후회하며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는 필시 왕이거나 혹은 왕과 동등한 지위의 어른인가 보다. 이곳은 내가 품을 팔아 삯을 받을 곳이 아니다. 차라리 다른 가난한 마을에 가서 힘대로 일을 하여 의식을 구하는 편이 나으리라. 만일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물다가 눈에 띄어 붙들리기라도 한다면, 강제로 나를 잡아 부릴 것이다”하고 황급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 때 부유한 장자(아버지)는 사자좌에서 즉시 아들을 알아보고 마음이 크게 기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창고에 가득한 재물을 이제 건해 줄 데가 생겼구나. 내가 늘 아들을 생각하였으나 만날 수가 없더니 이제 홀연히 스스로 왔으니 내가 심히 원하던 바이로다. 내가 비록 늙었으나 아들을 아끼는 마음은 변함이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곧 사람을 보내어 급히 좇아가서 그를 데려오도록 분부하였습니다. 그때 명을 받은 하인이 달려가서 붙드니 궁한 아들이 놀라 울부짖으며 원망하기를,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왜 잡아가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하인은 더욱 급하게 붙들며 강제도 데려가려하였습니다. 이때 궁한 아들은 생각하기를 “죄 없이 붙들려가게 되니 필경 죽게 되리라”하고 더욱 놀라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니, 아버지는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하인에게 분부하기를 “그 사람은 필요 없으니 억지로 끌고 오지 말고 냉수를 얼굴에 끼얹어 깨어나게 하고 다시 말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용렬한 줄을 알았고, 아들이 자기의 호귀 함을 어려워 할 것을 알고는 필시 아들임을 알았으나 하나의 방편으로 자기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명을 받은 하인이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너를 놓아 줄 터이니 마음대로 가거라”하자, 궁한 아들은 몹시 기뻐하며 땅에서 일어나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의식을 구하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을 데려오고자 하여 한 방편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하여 행색이 초췌하고 보잘 것 없는 두 사람을 은밀히 불러 이렇게 분부하였습니다. “너희들은 그 사람에게 가서 저기 품 팔 곳이 있는데 품삯은 곱으로 주겠다고 하여라. 그래서 그가 만일 허락하거든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도록 하라. ‘만일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묻거든 분뇨를 치우는 일인데 너희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일한다고 하여라.” 즉시 두 사람은 궁한 아들을 찾아 가서 주인이 시킨 대로 말하였습니다. 그 때 궁한 아들은 먼저 품삯부터 받고 와서 함께 분뇨를 치며 머물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일을 보고 가엾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방 안에서 문틈으로 멀리 아들을 바라보니, 몸은 야위어 초췌하고 먼지와 분뇨로 더럽혀져 더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영략과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를 벗어 버리고, 때 묻은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흙과 먼지를 몸에 묻히고, 오른 손에 분뇨 치는 바가지를 든 채 조심스럽게 일꾼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게으름을 피운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하며, 그러한 방편으로 또한 아들에게 가까이 하여 말하기를 “딱하구나, 이 사람아, 자네는 여기서만 일하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아예 말아라, 품삯도 차차 올려줄 터이고 소용되는 온갖 그릇, 쌀, 밀가루, 소금, 식초 따위도 걱정하지 마라. 늙은 일꾼도 있어 필요하면 붙여줄 터이니 마음을 편히 하고 있어라. 기실 나는 자네의 아버지와 같으니 다시는 염려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는 늙은이요 자네는 아직 젊었으며, 자네는 일할 적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속이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말이 없어서 도무지 다른 일꾼들과 같지 않더구나. 이제 부터는 내가 낳은 친아들처럼 생각하리라”하였습니다. 그 후 장자는 그에게 이름을 다시 지어 주고는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그 때 아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매우 기뻤으나, 여전히 자기를 머슴살이하는 비천한 사람이라 여기며 이십여 년을 분뇨만 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서로 알고 믿게 되어서 허물없이 드나들면서도 궁한 아들은 여전히 본래 있던 곳에 기거하였습니다.

장자는 병이 들어 스스로 죽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궁한 아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에게는 지금 금은보화가 많이 있어 창고마다 가득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재물과 받고 갚아야 할 것들을 모두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라. 나의 마음이 이러하니 부디 내 뜻을 거절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제는 나와 그대가 다를 것이 없게 되었으니 마땅히 더욱 마음을 써서 소홀함이 없게 하라” 하니, 이 때 궁한 아들은 즉시 그 분부를 받고 여러 가지 금은보화와 모든 창고를 맡았으나 밥 한 그릇이라도 가지려는 생각이 없었고, 거처하는 곳도 본래 있던 곳이었으며, 용렬한 마음은 아직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점점 나아져서 큰 뜻을 갖게 되고 지난날의 못났던 생각을 뉘우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임박해 오자 아들을 시켜 친척과 국왕과 대신과 무사들과 거사들을 모이게 하고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아이는 내 아들이요 나의 소생인데, 어떤 도성에서 나를 버리고 달아나서 여러 곳을 유랑하기를 오십 년이었소. 이 아이의 본명은 아무개요. 내 이름은 또한 아무개요. 그 때 고향에서 근심이 되어 찾느라 애를 쓰던 터였는데,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소. 이 아이는 진실로 내 아들이며 나는 이 아이의 아비요. 지금부터 내 소유의 모든 재산을 다 이 아이의 소유가 되며, 이전부터 출납하던 것도 이 아들이 알아서 할 것이요.”
이때 궁한 아들은 전혀 뜻밖에 아버지의 그러한 말을 듣고 크게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 무심하여 아무런 바라는 바가 없었으나 이 엄청난 보배 창고가 저절로 들어왔다”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큰 재물을 가진 장자는 곧 여래이며, 저희는 부처님의 아들과 같사와, 여래께서는 언제나 저희를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세 가지 고통에 얽힌 까닭에 생사고해에서 온갖 괴로운 번뇌를 받으면서도 미혹하고 아는 바가 없어, 하찮은 일들에 탐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오늘 저희로 하여금 모든 희론(戱論)의 찌꺼기를 버리게 하시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열반에 이르는 하루 품삯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얻고서는 마음이 크게 환희하여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고 말하기를, “불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한고로 얻은 바가 매우 크다”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 마음이 하찮은 일들을 좋아함을 아시고 방편으로 저희들의 근기에 맞추어 말씀하셨건만, 그래도 저희는 참으로 부처의 아들인 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말하기를 “본래부터 희구하는 마음이 없는데, 이제 법왕의 큰 보배를 저절로 갖게 되어 불자로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이제야 다 얻었다”하나이다.
법화경4, 탕자의 비유(불교)

말씀선집 

부모는 아들이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가면 ‘이놈의 자식, 잘 갔구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을 용서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서 죽는 시간을 어머니가 안다면 통곡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을 다 변경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변치 않는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을 용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이 참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보다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을 능가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91.148, 1977.02.06)

사망권내에 있는, 천만 번 죽어 마땅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늘의 수고가 있음을 조심스럽게 살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사망권내에 있는 우리를 찾아 주실 때 세상의 무엇보다 귀한 것을 갖고 찾아 주시고, 사망권내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 열며하는 마음과 애달픈 심정을 갖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사망권에서 빼앗아 오실 때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빼앗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6.115-116,1959.04.12)

핍박을 받았다고 보따리 싸고, 중심자와 마음이 안 맞는다고 보따리 싸고, 부부끼리 마음이 안 맞는 다고 이혼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인간세계가 그러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태연자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는 천만 사연이 끓고 있지만 태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입을 열어서 그 사정이 통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된다면 천년만년 통곡할 수 있는 사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통곡하는 것입니까. 아닌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24.60, 1983.01.23)

하나님은 부모의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세상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부모의 아들가운데 불구자가 있는데 그가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 얼마나 비참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백을 사랑해도 백만큼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의 사랑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식을 대하는 부모, 그렇지만 자식을 사랑 안할 수 없는 부모, 언제나 줘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아들을 보게 될 때 백을 기울인 사랑을 가진 부모는 백 이상 몇 배의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단 하난의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려 할 때, 그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식을 갖지 못한 부모는 그 이상 슬픔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상 기가 막힐 것이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백만한 사랑을 주려고 할 때 백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상대자로서 혹은 아들로서 딸로서 나타나게 될 때 그 부모는 얼마나 기쁠 것이냐. 천을 준 이상의 기쁨을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반대의 여건이 성립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자기가 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자식을 갖지 못한 부모는 불쌍한 것입니다. 그 것이 한번만이 아니라 영원히 그런 자리에 서게 된다면 그 부모는 불쌍하고 비참할 뿐만이 아니라, 기가 막힐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 세상에서 미루어 보게 될 때, 만일에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에 있다면….

인정과 천정이 연결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일 것이냐. 아무리 우리가 찾아 올라가봐도 하나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식의 자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스는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에 대하여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부자 관계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냐? 타락선 이하이냐, 타락선 이상이냐 할 때, 이것은 타락선도 될 수 없는 것이요, 타락선 이상의 자리일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된 안간들을 놓고 봐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 이하의 부자관계의 사랑이지만 그 부자관계의 그 사랑을 가지고도 우리가 기가 막힌다고 말할 수 있는데,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 있는 부모가 불효자식을 맞았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주변에서 부자간의 사랑이라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볼 때 그 배후를 가히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타락선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얼마나 강하였겠느냐. 타락선 이상의 자리에 섰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62.19-20,1972.09.10)

사랑하는 아버님! 6000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어리석고 부적한 저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주신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이 시간만이라도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258-259,1958.01.12)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77